그렇게 많은 노동자들이 자기 몸이 상하는 줄도 모르고 일하는 동안, 자기 손으로 노동을 하지 않고도 한없는 부와 권력을 누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부동산, 주식시장이라는 화수분에 자기 재물을 넣어두면 신기하게도 그것들은 끊임없이 새끼를 쳐 불어나기만 했습니다. 그에 반해 밤낮없이 일한 노동자들의 삶은 갈수록 열악해져 가기만 했습니다. 모든 국민 앞에 평등하다던 법도 이 부와 권력 앞에만 서면 작아졌습니다. 이들이 소유한 주식의 가치를 올리기 위해 노동자들이 해고되어 길거리로 나앉아도 ‘국가경쟁력 상승’이라는 말로 멋지게 포장되었습니다.
그렇게 부와 명예를 누리던 사람들이 새 정부의 장관이 되고 총리가 되겠다고 합니다. 이들이 자기 몸을 다쳐가며 하루하루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 노동자들을 섬기겠다고 합니다. 아, 아니죠. 이들은 분명 “국민을 섬기겠다”고 했죠. 국민과 국민 아닌 사람을 나눠놓기 좋아하는 당신과 이들에게 영어도 할 줄 모르는 노동자들은 분명 그들에겐 국민이 아닐 테죠. 그래도 분명한 사실 하나는 말씀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누구나 하나같이 열심히 산 건... 아니었습니다.”
대체 누구에게 베풀었습니까?
그렇습니다. 우리나라는 도움을 받는 나라였습니다. 도움을 준 나라들이 모두 선의를 갖고 도와준 건 아닌 듯 하지만, 고마웠다고 칩시다. 그런데 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누구에게 베풀었나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삼성 중공업이 태안 앞바다에 기름을 쏟아 부은 지 벌써 2달 반이 다 되어 가지만, 법원은 삼성 중공업엔 중과실 책임이 없다고 말하고 정부는 뒷짐만 진 채, 자원봉사자들의 손길만을 재촉할 뿐입니다. 그러는 동안 태안의 어민들은 발암물질에 노출되어 병들어 가고 있는 상황입니다. 또 지난 2월 11일은 여수 출입국관리소 화재 참사 1주기가 되는 날이었습니다. 1년 전 수많은 이주 노동자들을 화염속에 떠나보내게 했던 정부의 불법적 단속과 반인권적 강제추방 정책은 전혀 변함이 없습니다. 이 땅에서 소위 3D업종에 종사한다는 이주 노동자들이 처음 배우는 한국말이 “때리지 마세요!”라는 것을 당신은 아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정말 보호받아야 할 사람들이 내팽겨쳐 지고 있는 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입니다. 자비로운 이 나라의 손길은 한 번도 이들에게 다가간 적이 없습니다. 대체 이 나라가 언제, 누구에게 베풀었단 말입니까?
아, 알 것 같습니다. 당신이 그렇게 자랑스러워하는 이 나라는 자기 아들이 술집에서 싸우다 맞았다고 조폭 끌고 가서 멋지게 복수해 준 한 재벌 회장 아버지의 부정(父情)을 감싸 안았죠. 어디 그 뿐인가요? 헐값으로 인수한 외환은행을 매각하면서 1,000여명의 노동자들을 하루아침에 실업자 만들었던 론스타에게도 상당한 친절을 베풀었던 나라가 우리나라지요.
참으로 자비로운 대한민국입니다.
저희 청년 학생들도 열심히 살겠습니다.
당신의 취임사를 보고 있자니 ‘열심히 일하자’는 말이 유독 눈에 띱니다. 그 유명한 성공신화의 주인공께서 말씀하시는 것인 만큼 그 호소가 가슴을 찌르듯 다가옵니다. 대통령님의 호소대로 저희 청년 학생들도 열심히 살겠습니다. 예전에 대통령님이 한 지방대에서 진행한 강연에서 “우리나라에 비정규직이 많은 편이 아니다”라고 하신 것을 생각해 볼 때, 젊은이들에게 일자리를 많이 제공하겠다는 말씀이 비정규직 일자리 많이 제공하겠다는 말과 다르지 않으니 열심히 사는 것 밖에 도리가 없을 것 같습니다. 여성부를 폐지하려 하시던 과감성을 생각해 볼 때, “양성평등 정책을 추진해서 (여성의) 시민권과 사회권의 확장에 힘쓰겠다”라는 말도 진심은 아니신 것 같으니 여학생들은 더욱 열심히 살아야겠네요. 게다가 이명박 대통령님의 취임을 축하라도 하는지 바야흐로 “등록금 1000만원 시대”도 문을 열었으니 말이죠.
하지만 ‘베푸는 나라’의 청년답게 혼자만의 안위와 출세만을 위해 살지는 않겠습니다. 이 땅에는 저희 말고도 열심히 일할 것을 강요받는, 그것도 ‘국가경쟁력’, ‘선진한국’이라는 그들과는 별 상관없는 것들을 위해 열심히 일하기를 강요받는 이들이 참 많습니다. 비정규직, 여성노동자, 이주노동자, 장애인, 농민 등등... 이들은 아마 대부분 대통령님이 섬겨야 할 ‘국민’의 목록에 없는 사람들인 것 같습니다. 뭐, 괜찮습니다. 저희가 이들과 연대해서 스스로 ‘국민’이 되겠습니다. 아, 국적이 다른 이주노동자 분들이 계시니 국민이 되기보다는 ‘시민’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이 땅에서 우리의 권리가 박탈당하지 않고 온전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당당한 ‘시민’ 말이죠. 그로 인해 저희가 때때로 대통령님의 심기를 불편하게 해 드리는 일이 많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넓은 아량으로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해 못하시더라도 어쩔 수 없습니다. 대통령님께서 만드시겠다는 ‘작은 정부, 큰 시장’의 세상이 저희에겐 내가 발을 잘못 디디면 내 옆의 개미가 굴러 떨어져 개미귀신에게 잡아먹힐 수밖에 없는 ‘개미지옥’처럼 여겨져, 너무나도 무섭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희가 택할 수 있는 방법은 이것 뿐입니다. 그런 저희들의 행동을 쉬운 말로 표현하자면, 대통령님이 취임사에서 꼭 지양해야 할 것으로 지목하신 <강경투쟁>이 될 것 같습니다.
투쟁하는 민중이 가장 빛나는 2008년을 만들겠다는 마음을 담아 뉴스레터 11호를 이명박 대통령님께 드립니다. 임기 5년 동안 건강하시길 빌겠습니다.
2008년 2월 26일 늦은 밤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