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호] 87년, 노동자 대투쟁을 기억하며

6월이다.

대선을 의식한 정치인들의 입과 발이 분주해지고 있다. ‘민주주의’라는 화두로 근사하게 다가갈 수 있는 계기가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87년 6월 항쟁이 그것이다. 전국에서 20년 전 6월을 기념하는 다채로운 행사들이 열렸고, 각종 언론에서도 기획·특집 기사와 방송을 연일 쏟아냈다. 국회위원들이나 이른바 저명인사들은 연일 방송에 출연하여 무용담을 회고하면서 자신의 전과를 자랑스럽게 떠들어댔다.

이러한 정황들을 차치하고서라도 어찌되었든 ‘호헌철폐’, ‘민주주의 쟁취’는 당시 민중들의 있는 그대로의 요구 그 자체였다. 신군부 군사독재정권의 억압적 폭력적 제도에 맞서서 민중들의 피로써 쟁취한 혁명이었던 것이다. 87년 6월 혁명의 주인공은 바로, 그 당시 거리를 매웠던 민중들이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6월 항쟁의 기운이 그대로 7,8,9월 노동자 대투쟁으로 번진다는 점이다. 군부독재를 무너트리고 민주주의 쟁취를 위해 싸운 6월의 민중들과 노동자들은, 다시 전근대적 작업장체제 속에서 뛰쳐나와 거리를 물들인다.

인간답게 일할 수 있는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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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년 플라자 협약이후 조성된 3저호황으로 인해 신자유주의적인 구조조정은 다소 유예되는 한편, 수출시장이 대거 열리게 되고 자본생산의 일시적인 반등으로 인해 한국자본들의 이윤율 역시 일시적으로 반등하게 된다. 원자재가격의 안정, 국제적 저금리, 물가안정 속에서 한국경제는 85년 이후 3년간 사상 최대의 호황을 맞이하였다. 연평균 12.8%라는 경제성장률, 국제수지흑자 연평균 100억 달러 내외의 수출을 달성한다. 또한, 노동자는 1980년 646만명에서 1989년 1,000만 명을 넘어 10년간 400만 명이 늘어났다. 그러나 이러한 호황에도 노동자의 임금, 생활 상태는 변하지 않았다. 이는 결국 한국 자본주의 사회는 노동자들의 피와 땀의 착취를 대가로 급속한 고도성장을 이루게 되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며, 동시에 87년 대투쟁의 배경으로 작용하게 된다.

1987.8.18. 4만 여명의 현대그룹 노동자들이 시내로 진출
87년 당시의 대표적인 사례로, 울산 현대 중공업 노동자들이 태화강 둔치에 모였을 때 요구사항으로 내걸었던 21개 요구를 살펴보자면,

첫 번째 요구로, “머리를 기를 수 있게 해 달라!”였다. ‘몇 센티미터 이하’ 이렇게 회사가 정해 놓으면 해고당할 각오를 하지 않는 한 절대로 그것보다 더 길게 기를 수 없었다고 한다. 두 번째 요구는 “복장자율화”였다. ‘출/퇴근시 만이라도 사복을 착용하게 해 달라!’는 말에서 당시만 해도 정권의 노동천시 사상을 적극적으로 유포함으로 인해 공돌이, 공순이로 무시당했기에 출퇴근 시간만이라도 자신이 노동자임을 감추고 싶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 또한 ‘안전화신고 쪼인트 까지 마라!’-주머니에 손 넣고 걸을 수 있게 해 달라!'라는 요구는 당시 군사정권의 통제방식을 엿볼 수 있다.

그런데 그런 87년의 노동자들과 2007년의 노동자들이 오버랩 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겉으로는 좀 더 나은 노동조건과 제도 속에서 노동권을 보장받으며 일을 하고 있는 것으로 비춰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인간답게 일할 수 있는 권리’는 그러한가?

현재에도, 전국 곳곳의 계약해지 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들이 터져 나오고 있으며 심지어 얼마 전 서울의 학교비정규직으로 투쟁하고 계시던 한분의 노동자는 수면제를 복용하며 자신의 목숨을 끊으려 시도하였다. 아파도 해고될까 두려워 병원에 가지 못한 채 일을 하다가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는 도중에 목숨을 잃은 이랜드 유통비정규직 노동자도 있다. 마찬가지로 해고될까 두려워 일을 하다가 다쳐도 사측에게 산재요구를 하지 못하고 병원비를 갚아나가는 노동자들도 태반이다. 1500만 노동자들 중에서 노동조합에 소속된 노동자는 500만이 채 안되고 대다수의 노동자들은 여전히 노동법상의 근로조건이 지켜지지 않고 있으며, ‘특수고용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노동자로서의 정체성조차 보장받지 못하며, 지금도 뜨거운 여의도 국회 앞에서 노동자성을 인정받기 위한 싸움을 전개해나가고 있다.

7월 1일 비정규직 확산법의 본격적인 시행을 앞두고 대다수의 노동자들이 비정규직으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일상적인 해고위협으로, 해고된 노동자들은 원직복직투쟁 혹은 새 직장을 찾아 다시 비정규직의 삶을 이어갈 것인가라는 갈등의 기로에 놓여있게 되었다. 이미 대다수 민중들의 불안정한 일자리와 가난한 일상의 대물림이 이제는 ‘비정규직 보호법안’이라는 허구적인 수사에 뒤덮여 돌이킬 수 없는 재앙으로써 민중들의 삶에 뿌리내리게 될 위기에 놓여있다.

87년의 인간으로서의 권리와 일할 수 있는 기본적인 조건들을 요구하면서 온갖 수치심과 자존심이 짓밟히면서 자연발생적으로 일어났던 노동자들의 투쟁은, 현재에 이르기까지 역사속의 기록으로 살아 숨 쉬고 있다. 현실에서 존재했던 그들의 외침과 투쟁은 기념으로 묻혀질 수 없을 것이다.

87년 20주년을 맞는 오늘, 여름방학 역시 전국 곳곳의 노동자민중들과 만나 함께 연대하고 힘을 모아 싸워나갈 수 있는 시기로 만들어 가야 할 것이다. 민중들의 절박한 요구들과 투쟁을 얼룩지게 하지 않고, 올곧이 때 묻지 않은 민중의 언어와 요구로 채워나갈 수 있는 시공간을 열어 나가자!!

민중들의 수심어린 얼굴이 미소로 바뀔 때,
지친한숨이 투쟁의 함성으로 바뀔 때,
비로소 진정으로 87년을  기념할 수 있지 않을까?

Posted by 행진

2007/06/29 20:09 2007/06/29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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