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특호_입장1] 이주-국제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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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회용 노동자 ’
이주노동자가 등록, 미등록과 상관없이 사업장에서 차별과 언어적, 신체적 폭력에 노출
이주노동자 2008년 산업재해 사망자는 117명으로 2007년보다 34% 증가
같은 기간 한국노동자의 산업재해 사망은 4.7% 증가
E-6 예술흥행비자로 입국한 많은 여성들이 성희롱과 성폭행을 당함
이들이 선택할 수 있는 일은 수치심을 참으며 업소에 남거나 도망을 쳐 ‘불법체류자’가 됨

이주노동자가 부당해고 같은 착취와 인권침해에 취약한 이유 :
고용허가제가 이주노동자의 사업장 이동을 3회
구직기간을 2개월 이내로 제한

[국제 엠네스티] - 이주노동자 인권보고서



버려지는 일회용품, 그/녀들은 이주노동자

정부는 지난 10월 12일부터 ~ 12월까지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대대적인 집중단속을 시작했다. 법무부와 노동부를 포함한 7~8개의 정부 부처가 합동단속에 함께 하고 있으며 이주노동조합에 대한 불법사찰 및 이주노조 활동가에 대한 표적단속을 시도하려는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이 과정에서 미디어활동가이자 음악인인 네팔인 미누씨가 체포되어 23일 강제 추방당하였다. 그리고 일요일 단 하루 만에 경기도에서는 100여명에 달하는 미등록 노동자가 단속되었다. 마치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씨를 말리려는 듯 가택 무단침입, 옷을 벗긴 채, 아이가 있는 임산부들도 무자비하게 단속하는 불법적인 방법, 인간적으로 행해질 수 없는 방법은 기본이다. 또한 수도 없는 폭력으로 미등록이주노동자들의 심리적 압박감은 자살기도를 할 만큼에 다다르고 있다. 심지어는 등록 노동자든 미등록 노동자든 상관없이 모든 이주노동자들을 타깃으로 단속을 일삼고 있다.
벌써 상반기에 2만 명에 달하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이 단속되었고 전국적으로 경쟁을 하듯 할당량을 두어 단속을 감행하는 등 가게에서 사고픈 물건을 집어오듯이 이주노동자들을 단속하고 있는 것이다. 남한에서는 일하는 이주노동자들은 2008년 12월 말 현재 국내 취업 중인 이주노동자는 약 70만 명으로 국내 총 취업자의 3%, 국내 임금노동자의 4.4%를 차지하고 있다. 합법적 체류자격을 가진 이주노동자는 전체의 73.5%, 미등록 상태의 이주노동자는 전체 이주노동자의 26.5%이며 이주여성이 전체 외국인의 42.1%이고 이주노동자의 성별 현황은 남성이 67%, 여성이 33%이다.
기억을 떠올려보자면 몇 년 전만해도 이주노동자들은 내국인들의 눈에 잘 띄지 않는 존재였다. 그러다 어느 순간 외국인, 이주민들을 소재로 한 tv프로그램이 등장하고, 이주민들이 사회 속에서 그/녀들의 존재를 보이기 시작했다. 여성은 결혼이주여성으로, 남성들은 이주노동자로 대표되는 것 같다. 결혼 이주여성은 남아선호사상으로 정주 여성이 부족하고 혼인의 시기를 놓치거나 하지 못한 남한 남성들의 동반자가 되어 출산율을 높이는 존재, 남성 이주노동자들은 땀을 흘리며 정주노동자들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에서 일하는 존재로 인식되고 있다.

그런데 왜 이명박 대통령은 경제위기가 오니 이주노동자들을 축출하자고 이야기 했던 것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한국의 중소기업들은 정주노동자가 아닌 이주노동자들을 고용하는 것일까? 이는 정부의 고용허가제라는 정책으로 이주노동자를 도입하는 이유와 다르지 않다. 기본적으로는 정주노동자들이 3D업종에서 일하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에 이주노동자를 고용함으로 내국의 구인난으로부터 비교적 3년이라는 안정적인 고용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주노동자를 고용함으로 인해 저임금을 주면서 인건비를 절감할 수 있다. 잔업 및 초과노동 등 사측의 명령에 고분고분 잘 따르는 유순한 노동력으로 비정규직이라는 굴레에도 다가가기 힘든 조건에 위치해있다는 것에 이주노동자들을 고용하는 이유가 있다.
이렇게 이주노동자들은 한국 사회에서 그 누구보다 먼저 경제위기 속에서 자신들의 일자리를 정주노동자에게 내어주는 희생양이 되고 가장 먼저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지게 된다. 경제적으로 남한보다 못사는 나라에서 왔다는 이유로 차별과 착취, 편견 속에서도 꿋꿋이 살아남아야 하는, 남한보다 못사는 고국(故國)을 숨 쉬게 하는 존재다.

내부 - 계획적인 ‘선 긋기’

정부는 이미 고용허가제라는 정책을 통해 이주노동자들의 사업장 이동과 구직기간을 제한하는 것에서부터 문제로 제기되었던 정책에 더해 올 초 작년 하반기 경제위기가 가시화, 장기화될 전망이 제기되자 경기침체로 인한 내국인 실업자 증가에 대한 대응 및 국내 취업 중인 이주노동자들의 일자리를 보호한다는 기조로 2009년 이주노동정책을 발표하였다. <내국인 인력대체 지원>, <건설산업 취업허가제 도입>, <신규 이주노동자 도입 중단 및 2009년 도입규모 축소>, <숙식비용 최저임금 산입>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들은 정작 실업과 일자리 양산에 대한 해결책 없이 정주노동자들이 꺼리는 직업을 굳이 이주노동자들을 축출해 내국 인력으로 채우려는 ‘눈 가리고 아웅’ 식의 구멍난 정책이 아닐 수 없다.
다문화사회, 이미 몇 년 후면 남한의 낮아진 출산율을 결혼여성이주민이 높여주고, 거기서 태어난 고국의 인력을 잘 키워낼 교육과 사회에 대비해야 한다. 그러나  이것 이외에 다문화사회에 포함시킬 다른 벽은 너무도 높다. 합법(결혼여성이민자, 외국인 투자자, 등록 이주노동자) vs 불법(혼인빙자 이주여성, 미등록 이주노동자, 불법체류자)라는 선을 긋고 합법과 불법이라는 모순적인 틀로 이주민들을 나누고 있기 때문이다. 이주민으로서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은 합법이어야 가능한 일이라는 것이다. 곰곰이 생각해보자. 무엇이 그/녀들을 불법으로 만들까? 불법과 합법의 기준은 어디에 있을까? 사람이라는 존재가 불법이 될 수 있는 것일까? 불법사람은 사람의 존재를 부정하기 때문에 불법이 된다. 즉 이 사회가 등록 이주노동자는 합법, 미등록 이주노동자는 불법이라고 규정하기 때문에 합법과 불법사이에 선이 생기고 그 선을 뛰어넘기엔 너무도 높은 벽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집중단속이 강화되면서 정부는 이주노동자를 다르게 규정하고 갈등을 유발시키는 것을 넘어 더욱 높은 벽을 만들고 있다.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타깃으로 삼아 단속을 정당화 하기위해서 외국인 범죄 전담반과 지문날인 부활을 통해 이주노동자들을 불법체류자, 범죄자, 테러집단으로 몰아간다. 이것은 정부가 내국인들에게 이주민에 대한 제노포비아를 부추기며 분열을 조장하는 것이며 다문화사회라는 얼굴에 침을 뱉고 있는 것과 다름 아니다.
 
외부 - 누구를 위한 세계화 인가?‘자본의 횡포’

 [인도]  ‘포스코’
 2005년 6월 22일 인도의 오릿사 주정부와 1200만 톤 규모의 제철소 건설에 합의하는 투자양해각서(MoU)를 체결. 제철소 건설부지 주민들이 강제이주에 저항. 2007년 4월, 9월, 11월에는 주정부와 주민들 간의 폭력사태가 계속 발생 - 지역으로 이어지는 진입로 다리의 주요 검문소를 지키고 있던 지역 주민들이 100명의 무장괴한에 의해 공격을 받았다. 무장괴한들은 사제폭탄을 시위텐트를 향해서 던지고 항의하는 주민들을 구타했으며, 대부분 여성으로 이뤄진 시위대를 성적으로 희롱했고 이 과정에서 약 50여명의 주민들이 부상당하고, 그 중 15명이 중상을 입었다.

 [콜롬비아] ‘현대’
 남미 콜롬비아에서는 농민, 활동가들이 정부군과 친정부적인 준군사조직에 의해 무자비하게 납치되고 살해되는 등 심각한 위협과 탄압에 노출되어 있다. 2007년 5월 18일 만쿠소는 공청회에서 전임 지도자인 카를로스 카스타뇨가 직접 현대의 콜롬비아 지사장인 카를로스 마토스를 만나 현대에게 헬리콥터 지원을 요청했고, 현대는 이를 거절하는 대신 연간 4대의 택시를 지원. 현대가 기증한 택시들은 ACVC와 같은 단체의 활동가들을 위협하고 살해하는 데 직접 동원되었다.

 [인도] ‘현대자동차’
 지난 7월 인도 현지법인 현대자동차 노조 간부 2인을 한국으로 초청했지만, 한국 정부가 '아국 기업체 내에서 불법활동을 한 혐의'와 '이들의 입국이 국익에 바람직스럽지 않다'는 이유로 비자 발급을 거부했다. 한국의 대기업 현대자동차 사측이 합법적인 노동조합을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핵심 간부들을 강제 전보, 해고, 정직 등의 징계 조치와 작업안전관리 상의 부실 및 그에 따른 산업재해, 사업장에 있던 힌두신상을 철거 등 종교적 권리 침해하고 노동자를 개로 묘사한 게시물을 만드는 인권침해를 저질렀다.

남한의 큰 기업들은 생산의 거점을 세계로 진출한 수많은 자본을 투자해 돈을 벌고 있다. 사회적 공헌을 많이 하는 기업 포스코(POSCO)는 인도 정부와 주민의 동의 없이 체결된 협약을 밀어 붙이며 평생을 터전으로 살던 지역에서 주민들을 몰아내고, 초국적기업인 현대가 콜롬비아의 정부에 제공한 택시는 사람을 죽이는 수단으로 쓰이고, 인도의 현대자동차는 노동자를 '자본의 개'로 명명하며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을 착취, 학살하고 있다. 큰 기업들의 진출만 봐도 지금 지구는 국제사회, 세계화 사회라 부를 수 있다. 특히 자본은 세계의 내부와 외부를 넘나들며 자유롭게 노동자들을 탄압, 착취하며 더 값싼 노동력을 얻기 위해 곳곳으로 이동하며 돈을 벌고 있다. 그러나 자본의 이동, 일자리의 양산을 따라서 이동하는 이주노동자들은 각 나라의 정부와 자본들이 이동을 제한하고 정책적으로 탄압을 일삼고 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현실이다.

편견과 차이 그리고 위기를 넘어

올 여름을 더욱 뜨겁게 달궜던 쌍용자동차 투쟁에서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비정규직노동자들의 목숨 건 투쟁에 함께 일했던 정규직노동자들이 구사대가 되어버린 참혹한 투쟁에서 정부와 자본은 끝끝내 노동자들을 분할하려 시도했고, 쌍용자동차를 필두로 대기업 노동자들을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분할하고 노동자들의 투쟁을 산산이 부숴버리려던 지배계급의 계략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 정주노동자와 이주노동자들 역시 마찬가지다. 정부의 기만적인 정책 속에서 현재 내국인들 사이에서 이주노동자 단속에 지지적인 분위가 형성되는 것에 동요되어서는 안 된다. 바로 정부와 자본이 원하는 것은 한국사회와 이주를 분할하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주노동자들을 단속하고 축출하여 일자리를 늘리는 것은 최저임금도 못 받는 이주노동자들의 삶을 송두리째 빼앗을 뿐만 아니라 전체 노동자의 일자리 질을 낮추는 것과 다름 아니다. 오히려 경제위기를 빌미로 노동의 질을 낮추고 노동자들을 분할하여 더욱 값싸고, 강도 높고 유연한 노동의 분위기를 조장하려 미등록이주노동자에 대한 단속과 추방을 강행하는 것이다. 이는 곧 자본이 만들어낸 위기를 노동자들에게 전가하는 것과도 다르지 않다.
전 세계가 구조적으로 발전국가가 저발전국가의 자원과 인력을 갉아먹고 착취한다. 저발전 국가는 키워낸 자국의 인력에게 일자리를 만들어 줄 수 없어 발전국가로 노동자들을 송출하고 가족의 생계와 자국의 경제를 책임지러 떠나온 이주노동자들은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멈추어 지지 않는 한 끊임없이 존재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자본의 세계화가 한나라를 넘어 움직이고 노동자의 이동 역시 지금의 체제 안에서 구조적으로 나타나는 문제라는 것을 그리고 지금의 사회가 국제적인 것에서부터 지역적인 것까지 연결된 하나의 고리라는 것을 다시금 기억하자.

진정 지구가 세계화, 다문화 된 사회가 되고 있다고 한다면 평등한 자유, 노동자들의 이동도 자유로울 수 있어야 한다. 자본의 노예로 착취당하고 있는 노동자들의 권리를 문화, 종교, 인종, 계급에 대한 차별과 착취를 뛰어넘자. 경제위기의 책임을 전가하는 정부와 자본에 대한 저항을 발붙이며 생활하는 학생사회에서부터 시작하자!

Posted by 행진

2009/11/24 16:14 2009/11/24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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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벳 유혈사태를 어떻게 볼 것인가?

- ‘종족적 민족주의’를 넘어, 대안세계화-국제주의로.



 

- 회원 LSH




‘선량한 시민’의 관점으로는 티벳 문제를 명확히 바라볼 수 없다.

우리는 지난 3월 10일 티벳 라싸에서 독립봉기 49주년 기념일을 맞아 일어난 시위가 확산되었다가, 14~15일경 중국 정부의 무력진압에 의해 최대 100명에 가까운 사망자가 발생했다는 비극적인 소식을 접했다. 이러한 참사 이후 대규모의 봉기는 일단 잦아들었지만, 인도에 망명 중인 티벳인들이 8월 개막될 베이징 올림픽에 이르기까지 강력한 반대운동을 펼치겠다고 밝히고 있는 상황에서, 갈등은 언제고 다시 폭발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중국이 지난 50여 년 동안 티벳 민중들에 대해 행한 압제와 폭력이 야만적인 것이었음은 두말할 나위 없는 사실이다. 1959년 독립봉기를 진압한 이후부터 전면적인 통치를 시작한 중국은 티벳을 ‘시짱(西藏) 자치구’로 영내에 편입시키고 불교(라마교) 탄압정책, 동화정책 등을 펼쳤다.(티벳 문제 및 중국의 對 티벳 정책에 대한 개괄적 소개는 다음을 참조하라. 이동률, 「중국의 티베트 정책: 현황과 전망」) 이러한 역사를 돌이켜볼 때, 티벳 민중들의 저항과 독립 또는 자치 요구는 당연히 정당한 것이며, 티벳의 ‘운명’에 대한 결정권이 1차적으로 티벳의 그/녀들에게 있음 역시 당연하다. 마찬가지로, 중국의 티벳 지배에는 어떠한 근거도 있을 수 없으며, 우리가 근간 한국에서도 논란을 일으킨 동북공정(동북공정에 대한 분석으로는 다음을 참조하라. 백승욱, 「중국의 동북공정과 고구려사를 둘러싼 한-중의 대립을 보면서」 중국은 이미 1980년대 중반 이후, 티벳의 중국역사로의 편입을 내용으로 하는 ‘서남공정’을 강행한 바 있다.) 등에서 드러나는 ‘중화민족주의’에 반대해야함 역시 자명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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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문제는 위와 같이 단순한 관점, ‘선량한’ 세계시민주의(cosmopolitanism)적 입장으로는 실제로 이번 티벳 사태와 같은 민족적 갈등을 해결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인권’을 운운하며 중국 정부를 비판하는 부시, 사르코지 등의 위선과, 티벳인들의 시위를 ‘제국주의의 책동’과 ‘분리주의’로 비판하고 탄압정책을 지지하는 북한이나 차베스 등의 터무니없는 주장은 일단 차치하고라도 말이다. 현재 티벳 문제로 불거진 중국 내 민족 (어떤 면에서는 차라리 ‘종족’(참고로 (자유주의 이데올로기에서) ‘citizen'(시민)은 국가에 대해서 ’people'(인민/국민)을 구성하고, 인류에 대해서는 ‘nation'(민족)을 구성한다. 나아가 ’ethnos'(종족)는 ‘nation'의 언어적/문화적 특징을 강조하고, ’race'(인종)는 언어적/문화적 특징과 함께 유전적/육체적 특징을 강조한다.) 간, 종교 간 갈등에 대한 입장을 마련할 때, 우리는 적어도 다음과 같은 문제를 고려해야 한다.



중국의 세계경제로의 편입과 통치성(governability)의 문제

현재의 중국, 즉 개혁/개방 이후 사회주의적 전망과 단절한 일종의 ‘후발 자본주의 국가’로서 중국의 소수민족 억압/통치정책은 세계경제로의 급속한 편입과 그것을 지지하기 위한 ‘통치성’의 문제와 연관되어 있다. 중국의 개혁개방 이후 30년은 주지하다시피 고속성장의 기간이었다. 그리고 대외개방형 시장경제를 지향한 중국의 발전전략의 일정한 ‘성공’은 무엇보다도 노동력에 대한 과잉착취에 따른 이윤율 상승에 기인하는 것이다. 종신고용의 해체, 성과급체계 도입 등 신자유주의적인 노동신축화에 따른 빈곤 문제, 사회적 보호틀의 붕괴에 따른 도농분리 및 격차 심화 등의 문제는 노동자, 빈민들의 대규모 저항을 불러일으켰다.

더불어, 1997~98년 동아시아 외환위기 및 2001년 WTO가입 이후, 중국은 미국이 주도하는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의 흐름에 더욱더 편입되어왔다는 사실을 상기해야 한다. 금융시장의 점진적 개방에 따라 초민족적 금융자본의 유입규모는 거대해졌으며, 아직 (對미국) 소비재 수출을 중심으로 하는 발전주의적 전략을 완전히 폐기한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차스닥’(중국판 나스닥) 출범이나 적극적인 국영기업 구조조정 및 인수합병 등에서 나타나듯이, 중국 경제는 주식시장 (또한 부동산시장) 중심의 금융화로 변모해가고 있는 중이다.

이와 같은 과정에서 중국 사회에 그 동안 누적되어온 빈곤과 차별이 더욱 심화되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특히 금융세계화의 동학이란 기본적으로 초민족적 자본의 투자처가 될 만한 지역, 주식시장을 부양하는 데에 필요한 지역만을 선별적으로 포섭하고, 나머지 지역은 배제하는 것이다. 중국의 경우, 이러한 위계화된 분할은 베이징-칭다오-상하이-홍콩 등 이른바 ‘연해(沿海)지역’에 금융/부동산 투자와 제조업이 집중되고 내륙지방과의 격차가 점점 벌어지는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또한 내륙지방에서도 소위 ‘중원’ 바깥의 변방지역, 특히 소수민족들이 살아가는 지역은 경제성장으로부터 어떠한 수혜도 누리고 있지 못하다. 따라서 이처럼 지역적/종족적 분할과 위계가 낳는 불평등은 격심한 불만과 저항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2005년 파리 근교에서의 아랍계 이주자들의 봉기는 최근 가장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와 같은 비롯되는 대립과 갈등은 필연적으로 종족/민족, 인종, 종교, 문화와 같은 ‘동일성’들 간의 적대라는 모습을 띠곤 한다. 우리는 그간 이를 금융세계화의 세계적 ‘통치성’을 유지하기 위한 군사세계화로서, 또한 탈냉전 시대의 전쟁을 특징짓는 ‘비대칭적 전쟁’, ‘새로운 전쟁’으로서 분석해온 바 있다.(이에 대해서는 전국학생행진 일반자료실에 있는 2007년 7월의 「대안세계화 학생포럼」 자료집 중 반전/반핵/평화 포럼 내용을 참고하라.)

티벳의 경우 역시 개혁/개방 이후 중국정부는 지배정책을 그간의 이데올로기적/문화적 동화전략에서 경제개발전략 중심으로 변경하고, 대규모의 재정투입과 한족이주정책을 펼쳤다. 그동안 지배의 근거였던 티벳지역의 지정학적/군사안보적 중요성과 더불어, 개발과 투자의 대상으로서의 중요성이 부각되었다. 하지만 투입된 재정은 경제성장을 뒷받침하기 위한 에너지, 교통 등 산업인프라 구축에 쓰였고, 따라서 대부분이 목축과 농업에 종사하는 티벳 민중들에게 이러한 지원이란 어떠한 도움도 되지 않는 것이었다. 오히려 티벳 선주민들과 한족이주자들 사이의 불평등이 격화되고, 자원의 수탈과 경제적 종속이 심화되며, 티벳인들 고유의 전통과 문화, 자연환경이 파괴되는 결과를 낳았을 뿐이다.

이런 관점에서 봤을 때, ‘국가이미지 제고’로 표현되듯이 해외 금융투자 활성화 및 주식시장 부양을 주요한 목표로 하는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벌어진 티벳 봉기에 대해 중국정부가 극도로 강경한 진압에 나선 것은 필연적인 결과라고 볼 수 있다. 티벳 뿐만 아니라 최근 위구르 독립운동세력들이 비행기 납치를 기도한 것을 기화로 삼아, 중국정부는 올림픽을 앞두고 ‘테러와의 전쟁’을 벌이겠다고 공표한 상황에서 중국 내 소수민족들에 대한 감시와 탄압은 더욱 극심해질 수 있다.

나아가, 금융세계화가 낳는 극도의 차별과 맞물린 종족적 또는 종교적 갈등은 민족국가 자체를 붕괴시킬 수 있고, 1990년대 내내 이어진 내전 끝에 유고슬라비아가 해체된 것이 그 대표적 사례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다종족 국가인 중국의 경우에게도 잠재적인 위협으로 다가오는 문제이다. 중국 정부는 명시적으로 이와 같은 사례에 경계심을 표한 바 있고, 티벳에 대한 투자와 대규모 한족이주정책을 내용으로 하는 ‘서부 대계발 계획’의 경우 1998년 코소보사태 직후 적극 추진된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예방’정책은 상술한 바와 같이, 티벳인들의 삶을 오히려 더욱 파괴하며 ‘실패’했고, 집적된 민중들의 불만은 지난 50년의 압제의 기억과 함께 최근의 대규모 시위로 나타났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앞으로 티벳인들의 저항이 더욱 격화된다면, (유고내전에서 벌어졌던 ‘인종청소’와 같은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그에 못지않은!) 극단적인 폭력으로 또다시 탄압에 나서리라는 점을 예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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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족적 민족주의’를 넘어, 대안세계화-국제주의로.

따라서 티벳민중들에 대한 중국민중들의 연대가 사활적인 문제로 보인다. 이 문제를 풀지 않고서는, 중심부 국가들의 허울뿐인 ‘인도주의적 개입’(예컨대, 중국이 ‘대미수출’과 ‘달러환류’를 축으로 하여 미국 주도의 세계경제에 포섭되어있는 상황에서, 중-미 간의 관계는 ‘상보적’이라 할 수 있으며, 마찰은 표면적인 것일 수밖에 없다. 미국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언론플레이 용으로만 티벳 문제를 제기하고 달라이라마를 이용할 뿐이다.)은 물론이며, ‘제3국’ 민중들의 지지연대 역시 별다른 개입력을 가질 수 없다. 대부분의 ‘한족민중’들 자신이 이를 지지하고, 심지어는 스스로가 티벳인을 비롯한 소수민족들에 대한 증오와 원한을 재생산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들에게 모든 종류의 개입은 ‘제국주의적 외압’일 따름일 것이다.

이는 개혁/개방 이후 ‘부활’하는 ‘종족적 민족주의’(민족주의의 기원은 미국혁명, 프랑스혁명 및 나폴레옹 전쟁을 기원으로 하여 이탈리아/독일의 민족통일 등에 이르는 일련의 역사들로 볼 수 있다. 민족자결과 인민주권을 강조하는 시민적 민족주의와 달리, 종족적 민족주의는 현대 이전의 민족에 주목하면서 종족적 신화와 상징이 민족을 구성한다고 주장한다. 서양의 경우 전자의 예로는 자유주의적 전통이 강한 프랑스, 미국, 후자의 예로는 자유주의가 취약하고 보수주의가 강한 독일, 이탈리아를 들 수 있다. 윤소영, 「민족주의 비판」, 『일반화된 마르크스주의의 쟁점들』, 2006. 참조.)로서 ‘중화주의’를 극복함으로써 해결해야할 문제다. 다만 현재의 중국민족주의는 현대 이전의 상, 또는 사회주의 시기의 상과 다르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현대 이전에 관해서는 윤소영, 앞의 책. 사회주의 시기에 관해서는 백승욱, 「동아시아 속의 민족주의-한국과 중국」,『문화과학』07년 겨울. 참조.) 이는 곧 사회주의 시기, 또는 현대 이전시기의 문제와 구별해서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종족적 민족주의의 문제를 발전주의적 전망의 소실과 정치의 위기 및 민족국가의 위기라는 현 시기의 정세적 특징과 연결시켜 바라보지 못한다면, 또한 동아시아 전반의 문제로 파악하지 못한다면, 중국민족주의에 반정립하는 ‘한민족주의’, ‘일본민족주의’ 사이의 대결과 같은 ‘원한의 정치’로 빠져들 뿐이다.

따라서 금융화에 대한 비판과 더불어 중국 내의 문제, 동아시아 전체의 문제에 대한 역사적 반성과 평가 역시 중요하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동아시아 티벳과 중국, 그리고 동아시아 민중들을 분열시키는 과잉결정된 요인들을 조금씩 바꿔나가야 한다. 금융세계화가 낳는 착취와 배제에 맞서는 동아시아 민중들 사이에서 대안세계화 운동의 전선을 형성하는 것이, 추상적으로 들리지는 몰라도, 가장 근본적이고 현실적인 관점일 것이다.

Posted by 행진

2008/04/01 02:01 2008/04/01 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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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젠장 2008/04/14 22:05 # M/D Reply Permalink

    뭘하자는건가? <<따라서 금융화에 대한 비판과 더불어 중국 내의 문제, 동아시아 전체의 문제에 대한 역사적 반성과 평가 역시 중요하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동아시아 티벳과 중국, 그리고 동아시아 민중들을 분열시키는 과잉결정된 요인들을 조금씩 바꿔나가야 한다>> 어떻게? 대안을 세계화해서? 할말이 없다...

  2. 참.. 2008/04/18 08:11 # M/D Reply Permalink

    참...
    '어떻게'?
    떠먹여줘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