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탄소 녹색성장? 람사르 총회?

생태위기의 해법은 어디에 있는가?



람사르 총회를 통해 본 정부의 모순


지난 10월 28일부터 11월 4일까지 경상남도 창원에서 ‘건강한 습지, 건강한 인간(Healthy Wetlands, Healthy People)’ 을 주제로 10차 람사르 협약 당사국총회가 열렸다. 람사르 협약1)은, ‘습지의 보호와 지속가능한 이용에 관한 국제 조약’으로, 165개 당사국, 국제기구, 민간단체 관계자 등 약 1,500명이 참가하는 큰 회의이다. 정부는 2006년부터 람사르 총회를 개최하기 위해 백방으로 애를 썼다. 환경선진국으로 도약하겠다는 포부일진대, 그와 동시에 환경 파괴를 지속적으로 대놓고 벌여 국내외로부터 비판받았다.


요 몇 년 간 생태계 파괴 논란을 일으킨 새만금 간척 사업은, 지난달 국무회의를 열어 농지 규모를 70%에서 30%로 축소시키고 그 자리에 산업단지 등을 조성토록 했다. 또, 람사르 총회를 3개월 앞둔 지난 7월, 중앙연안관리심의위원회를 열어 전남 신안군 23개 지구 매립을 승인했다. 인천시, 충남 서산시는 각각 조력발전소를 추진해 습지 파괴를 앞 당기려하고 있다. 지난 6월 환경부는 람사르 총회 사무국에 제출한 ‘새만금 환경 모니터링 보고’에서 “새만금과 같이 연안 습지를 대량 손실시키는 대형 매립 계획에 제한을 가하겠다”고 해놓고  한 달 뒤 낙동강 하구에 대규모 연안 습지 매립을 승인했다.


이명박 정부의 모순된 언행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니긴 하다. 시장일 때에는 청계천 개발을 생태적 복원이라고 하다가 당선 된 후 한반도 대운하를 친환경 사업이라고 하지를 않나, 이러니 8월 15일 ‘저탄소 녹색성장’을 새로운 국가 발전의 비전으로 삼겠다. 녹색성장은 온실가스와 환경오염을 줄이는 지속가능한 성장으로, 녹색 기술과 청정에너지로 신 성장 동력과 일자리를 창출하는 신 국가발전 패러다임”이라는 이 대통령의 연설은 많은 사람들을 당혹케 할 수밖에 없었다. 이어서 그는 람사르 개막식 축사로 ‘람사르 모범국가가 되겠다’고 발언 해 또 한 번 폭소를 자아냈다.


저탄소 녹색성장? '고탄소 황색성장!'

정부는 저탄소 녹색성장을 천명해 놓고도 실제로는 반대의 일을 벌이고 있다. 지난 3월 환경부의 업무계획에 제시된 보수적인 온실가스 감축계획도 지나치다며 폐기시켰다. 또 5월에는 상수원 보호지역을 대폭 축소하고 규제를 완화했다. 최근엔 경제가 당장 어려워지니 수도권 그린벨트를 해제해서 공장을 유치하겠다 발표했다. 또 정부는 스스로가 말하는 녹색성장과 배치되게도 “원전산업도 유력한 대안”이라며 “자원빈국의 입장에서 원전을 통해 대체에너지를 얻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MB식 저탄소 녹색성장론은 원자력발전소 건설기술을 보유한 대형 건설업체들에 호재로 인식되고 있다. 정부가 계획대로 2030년까지 10~11개의 원자력발전소를 짓게 되면, 이를 지을 수 있는 회사는 원자력 및 화력발전소 건설 실적을 보유한 업체로, 전기공사업 등록과 토건업·산업설비공사업 면허 등을 모두 갖고 있어야 한다. 이는 국내에 거대 건설 기업 5개사뿐이다. 최고의 부가가치업인 것이다. 원자력 경제로의 추진이, 화석연료를 대체하는 저탄소 녹색경제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원자력 에너지를 자가 동력원으로 하는 공장이나 핵자동차를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면 원자력 에너지로 대체할 수 있는 것은 전력 부문뿐이다. 그런데 전기는 최종 에너지 소비에서 고작 17%를 차지한다. 한국은 수입한 석유의 55%를 석유화학, 섬유제품으로 소비하고 있으며, 36%를 수송부문 에너지로 사용하고 있다. 총 석유 소비에서 발전용으로 사용되는 석유는 3.5%에 불과하기 때문에 고유가의 대책으로 원자력 발전은 터무니없는 이야기이다.


2003-04년 정권의 폭력 탄압에 맞서 싸웠던 부안 핵 폐기장 반대 투쟁을 돌아본다. 정부와 주류 언론에서는 님비 현상으로 몰아붙였다. 그러나 부안의 주민들은 이구동성으로 “이 땅, 우리나라, 아니 전 세계 어디에도 핵 폐기장이 들어서서는 안 된다”고 말했었다. 생태를 걱정한다는 정부는 안면도, 굴업도, 부안 등지에서 값비싼 사회적 비용을 치루고 20여 년 만에 현금 3천억 원과 각종 특혜제공 약속, 부정선거로 중저준위 핵폐기장 부지를 마련했다. 그러나 정말 위험하고 마땅한 처리방법이 없어서 문제가 되는 사용 후 핵연료 처리 방법에는 아무런 대안이 없는 상태다. 이러한 문제점이 상당 해 유엔 기후변화협약에서는 핵 산업계와 일부 국가의 로비에도 불구하고 원자력을 청정에너지원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정부는 이처럼 원자력의 비중을 과도하게 설정한 반면 기후변화와 에너지 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유일한 기술인 재생에너지 확대 목표를 낮게 설정했다. 중국조차도 2030년이면 전체 에너지의 20%를 재생에너지로 공급하겠다는 계획을 밝히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은 2030년까지 11%라는 목표를 제시했다. 더군다나 그 내용을 보면 재생에너지로 분류할 수 없는 수소에너지, 연료전지, 폐기물 소각열까지 포함하고 있다. 이미 정부는 2011년까지 신재생에너지 5%로 확대할 목표를 제시했는데 그 후 19년간 6%를 더 늘리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2030년까지 111조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게다가 예산의 확보는 어떻게 하는지에 구체적인 설명이 없다. 정부의 정책의지가 심히 의심된다.


지속가능한 재생에너지 체제로 전환해야


정부가 각 계의 비판에도 아랑곳 않고 에너지기본계획을 일방적으로 추진하는 이유는, 효율성을 최우선으로 하는 공공부문 사유화/시장화를 현실화하기 위해서이다. 이는 민중들의 최소한의 생존권마저 박탈하는 방향으로 갈 것이다. 또 에너지기본계획 5대 비전 중에서 첫 번째로 제시하고 있는 ‘에너지 자립사회 구현’의 ‘자주개발률2) 제고’가 큰 문제이다. 2005년 4.1%였던 자주개발률을 2030년 40%로 높이는 것이 목표다. 그러나 한국의 에너지 자주개발은 전 세계적인 에너지 위기와 분쟁을 가속화할 수도 있다.

이 대통령은 현재 5% 남짓한 에너지 자주개발률을 임기 중에 18%, 2050년에는 50% 이상으로 끌어올리겠다고 천명했다. 새 정부는 대통령 인수위원회 시절, 이라크 쿠르드 지역의 유전을 개발하겠다고 했다가 이라크 중앙정부의 반발을 샀다. 이밖에 가스공사 및 대기업들은 러시아의 서캄차카 유전개발과 사할린 천연가스 도입까지 추진 중이다. 정부와 언론에선 한국은 세계 95위 산유국이라며 자랑스레 홍보한다. 이것이 정녕 자랑스러운 일인가?


한국의 자주개발률 제고는 전 세계적인 에너지 위기와 분쟁을 가속화하는 방향으로 작용할 것이다. 지난 20세기부터 석유를 둘러싼 지정학적 갈등은 전쟁까지 불러왔다. 21세기에 들어와서도 계속되는데, 미국은 대테러전쟁을 빌미로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침공하고, 베네수엘라와 이란을 불량국가로 지목하며 위협하고 있다. 이는 석유 자원 확보를 위한 갈등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제국주의 깡패국가의 야망으로만 치부할 수 없는 초민족적 법인자본의 석유 통제가 새로운 전쟁을 만들어 낸 것이다. 이러한 현실에 자주개발률을 확보를 주장하는 한국정부는 이 행보에 적극적으로 참가하겠다는 선언이다. 이미 이라크 파병에서 드러났다. 국익을 위한 참전과 자원 확보 경쟁은 쿠르드 유전 개발권 논란에서 보듯이 평화는커녕 중동의 분쟁을 심화시키고 있다.


에너지 위기는 문제를 발생시킨 화석연료 중심의 에너지 체제를 지속하는 한 해결할 수 없다. 유일하게 가능한 기술적인 해결책은 지속가능한 재생에너지 체제로의 전환이다. 지속가능한 재생에너지에는 태양광, 태양열, 바이오에너지, 풍력, 지열, 해양에너지, 소수력이 포함될 수 있다. 에너지기본계획이 에너지 위기에 맞서는 한국사회의 대안이 될 수 있으려면 화석연료 중심의 에너지 체제를 지속가능한 재생에너지 체제로 전환하는데 집중해야 한다.

물론 기술적으로만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에너지 위기는 사실 국제사회의 협력이나 일국 정부의 정책으로 해결하기 어렵다. 문제의 원인이 자본주의 체제에 내재되어 있기 때문에 근본적인 변화를 추구하기가 어렵고, 기술적인 조정의 효과도 미미하다. 자본주의 역사는 인력, 축력, 나무를 대체할 수 있는 효율적인 에너지원의 발견과 응용의 역사였다. 19세기 영국 자본주의 발전을 위한 핵심 에너지였던 석탄의 시대가 끝난 후 20세기 미국 자본주의는 석유와 함께 도래한다. 유한한 화석연료의 채굴로 자원고갈이 임박했고, 자원 확보 과정에서 지정학적인 긴장과 분쟁이 심화되어 에너지 위기를 부추기고 있다. 따라서 기후변화와 에너지 위기는 자본주의의 역사와 그 모순과 직접적으로 결부되어 있으며, 문제해결을 위한 근본적인 방책도 체제의 변혁과 떨어뜨려 사고할 수 없다.


문제는 ‘자연으로 돌아가자’는 기술문명으로부터의 탈피나, 기술 개발을 위해 연구기관에 호소한다거나, 저탄소 녹색성장과 같은 허구적 정책에 희망을 건다거나, 람사스 회의 같은 전 지구적 회의로 합의를 표방하며 면죄부를 뒤집어쓰는 협약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위의 계획들이 무의미하다는 것이 아니다. 환경위기에 맞서는 운동은 반드시 급진적 상상력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인류는 45억년 지구의 역사의 끄트머리에 등장한다. 그런데 찰나 동안 이렇듯 인류가 생태계를 비가역적 위기로 몰아가고 있으니 더욱 심각한 일이라 할 수 있겠다. 인류가 만들어 낸 자본주의 체제, 그 체제가 이제는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이 위기의 뿌리가 ‘사회적’인 것임을 인정하며 그 해결책 역시 전 세계 차원의 역사적 관계에 대한 변혁이 수반되어야 할 것이다.


엥겔스의 오래된 이 말, “자연의 전통적 과정에 대한 개입을 조절하는 것은 단순한 지식 이상의 어떤 것을 요구한다. 그것은 기존 생산양식의 완전한 혁명과 아울러 동시대 사회질서 전반의 혁명을 필요로 한다.”는 지적을 떠올리며 대안세계화를 향한 생태 운동을 다져나가야 할 때이다.  


Posted by 행진

2008/12/08 11:50 2008/12/08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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