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벳 유혈사태를 어떻게 볼 것인가?

- ‘종족적 민족주의’를 넘어, 대안세계화-국제주의로.



 

- 회원 LSH




‘선량한 시민’의 관점으로는 티벳 문제를 명확히 바라볼 수 없다.

우리는 지난 3월 10일 티벳 라싸에서 독립봉기 49주년 기념일을 맞아 일어난 시위가 확산되었다가, 14~15일경 중국 정부의 무력진압에 의해 최대 100명에 가까운 사망자가 발생했다는 비극적인 소식을 접했다. 이러한 참사 이후 대규모의 봉기는 일단 잦아들었지만, 인도에 망명 중인 티벳인들이 8월 개막될 베이징 올림픽에 이르기까지 강력한 반대운동을 펼치겠다고 밝히고 있는 상황에서, 갈등은 언제고 다시 폭발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중국이 지난 50여 년 동안 티벳 민중들에 대해 행한 압제와 폭력이 야만적인 것이었음은 두말할 나위 없는 사실이다. 1959년 독립봉기를 진압한 이후부터 전면적인 통치를 시작한 중국은 티벳을 ‘시짱(西藏) 자치구’로 영내에 편입시키고 불교(라마교) 탄압정책, 동화정책 등을 펼쳤다.(티벳 문제 및 중국의 對 티벳 정책에 대한 개괄적 소개는 다음을 참조하라. 이동률, 「중국의 티베트 정책: 현황과 전망」) 이러한 역사를 돌이켜볼 때, 티벳 민중들의 저항과 독립 또는 자치 요구는 당연히 정당한 것이며, 티벳의 ‘운명’에 대한 결정권이 1차적으로 티벳의 그/녀들에게 있음 역시 당연하다. 마찬가지로, 중국의 티벳 지배에는 어떠한 근거도 있을 수 없으며, 우리가 근간 한국에서도 논란을 일으킨 동북공정(동북공정에 대한 분석으로는 다음을 참조하라. 백승욱, 「중국의 동북공정과 고구려사를 둘러싼 한-중의 대립을 보면서」 중국은 이미 1980년대 중반 이후, 티벳의 중국역사로의 편입을 내용으로 하는 ‘서남공정’을 강행한 바 있다.) 등에서 드러나는 ‘중화민족주의’에 반대해야함 역시 자명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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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문제는 위와 같이 단순한 관점, ‘선량한’ 세계시민주의(cosmopolitanism)적 입장으로는 실제로 이번 티벳 사태와 같은 민족적 갈등을 해결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인권’을 운운하며 중국 정부를 비판하는 부시, 사르코지 등의 위선과, 티벳인들의 시위를 ‘제국주의의 책동’과 ‘분리주의’로 비판하고 탄압정책을 지지하는 북한이나 차베스 등의 터무니없는 주장은 일단 차치하고라도 말이다. 현재 티벳 문제로 불거진 중국 내 민족 (어떤 면에서는 차라리 ‘종족’(참고로 (자유주의 이데올로기에서) ‘citizen'(시민)은 국가에 대해서 ’people'(인민/국민)을 구성하고, 인류에 대해서는 ‘nation'(민족)을 구성한다. 나아가 ’ethnos'(종족)는 ‘nation'의 언어적/문화적 특징을 강조하고, ’race'(인종)는 언어적/문화적 특징과 함께 유전적/육체적 특징을 강조한다.) 간, 종교 간 갈등에 대한 입장을 마련할 때, 우리는 적어도 다음과 같은 문제를 고려해야 한다.



중국의 세계경제로의 편입과 통치성(governability)의 문제

현재의 중국, 즉 개혁/개방 이후 사회주의적 전망과 단절한 일종의 ‘후발 자본주의 국가’로서 중국의 소수민족 억압/통치정책은 세계경제로의 급속한 편입과 그것을 지지하기 위한 ‘통치성’의 문제와 연관되어 있다. 중국의 개혁개방 이후 30년은 주지하다시피 고속성장의 기간이었다. 그리고 대외개방형 시장경제를 지향한 중국의 발전전략의 일정한 ‘성공’은 무엇보다도 노동력에 대한 과잉착취에 따른 이윤율 상승에 기인하는 것이다. 종신고용의 해체, 성과급체계 도입 등 신자유주의적인 노동신축화에 따른 빈곤 문제, 사회적 보호틀의 붕괴에 따른 도농분리 및 격차 심화 등의 문제는 노동자, 빈민들의 대규모 저항을 불러일으켰다.

더불어, 1997~98년 동아시아 외환위기 및 2001년 WTO가입 이후, 중국은 미국이 주도하는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의 흐름에 더욱더 편입되어왔다는 사실을 상기해야 한다. 금융시장의 점진적 개방에 따라 초민족적 금융자본의 유입규모는 거대해졌으며, 아직 (對미국) 소비재 수출을 중심으로 하는 발전주의적 전략을 완전히 폐기한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차스닥’(중국판 나스닥) 출범이나 적극적인 국영기업 구조조정 및 인수합병 등에서 나타나듯이, 중국 경제는 주식시장 (또한 부동산시장) 중심의 금융화로 변모해가고 있는 중이다.

이와 같은 과정에서 중국 사회에 그 동안 누적되어온 빈곤과 차별이 더욱 심화되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특히 금융세계화의 동학이란 기본적으로 초민족적 자본의 투자처가 될 만한 지역, 주식시장을 부양하는 데에 필요한 지역만을 선별적으로 포섭하고, 나머지 지역은 배제하는 것이다. 중국의 경우, 이러한 위계화된 분할은 베이징-칭다오-상하이-홍콩 등 이른바 ‘연해(沿海)지역’에 금융/부동산 투자와 제조업이 집중되고 내륙지방과의 격차가 점점 벌어지는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또한 내륙지방에서도 소위 ‘중원’ 바깥의 변방지역, 특히 소수민족들이 살아가는 지역은 경제성장으로부터 어떠한 수혜도 누리고 있지 못하다. 따라서 이처럼 지역적/종족적 분할과 위계가 낳는 불평등은 격심한 불만과 저항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2005년 파리 근교에서의 아랍계 이주자들의 봉기는 최근 가장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와 같은 비롯되는 대립과 갈등은 필연적으로 종족/민족, 인종, 종교, 문화와 같은 ‘동일성’들 간의 적대라는 모습을 띠곤 한다. 우리는 그간 이를 금융세계화의 세계적 ‘통치성’을 유지하기 위한 군사세계화로서, 또한 탈냉전 시대의 전쟁을 특징짓는 ‘비대칭적 전쟁’, ‘새로운 전쟁’으로서 분석해온 바 있다.(이에 대해서는 전국학생행진 일반자료실에 있는 2007년 7월의 「대안세계화 학생포럼」 자료집 중 반전/반핵/평화 포럼 내용을 참고하라.)

티벳의 경우 역시 개혁/개방 이후 중국정부는 지배정책을 그간의 이데올로기적/문화적 동화전략에서 경제개발전략 중심으로 변경하고, 대규모의 재정투입과 한족이주정책을 펼쳤다. 그동안 지배의 근거였던 티벳지역의 지정학적/군사안보적 중요성과 더불어, 개발과 투자의 대상으로서의 중요성이 부각되었다. 하지만 투입된 재정은 경제성장을 뒷받침하기 위한 에너지, 교통 등 산업인프라 구축에 쓰였고, 따라서 대부분이 목축과 농업에 종사하는 티벳 민중들에게 이러한 지원이란 어떠한 도움도 되지 않는 것이었다. 오히려 티벳 선주민들과 한족이주자들 사이의 불평등이 격화되고, 자원의 수탈과 경제적 종속이 심화되며, 티벳인들 고유의 전통과 문화, 자연환경이 파괴되는 결과를 낳았을 뿐이다.

이런 관점에서 봤을 때, ‘국가이미지 제고’로 표현되듯이 해외 금융투자 활성화 및 주식시장 부양을 주요한 목표로 하는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벌어진 티벳 봉기에 대해 중국정부가 극도로 강경한 진압에 나선 것은 필연적인 결과라고 볼 수 있다. 티벳 뿐만 아니라 최근 위구르 독립운동세력들이 비행기 납치를 기도한 것을 기화로 삼아, 중국정부는 올림픽을 앞두고 ‘테러와의 전쟁’을 벌이겠다고 공표한 상황에서 중국 내 소수민족들에 대한 감시와 탄압은 더욱 극심해질 수 있다.

나아가, 금융세계화가 낳는 극도의 차별과 맞물린 종족적 또는 종교적 갈등은 민족국가 자체를 붕괴시킬 수 있고, 1990년대 내내 이어진 내전 끝에 유고슬라비아가 해체된 것이 그 대표적 사례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다종족 국가인 중국의 경우에게도 잠재적인 위협으로 다가오는 문제이다. 중국 정부는 명시적으로 이와 같은 사례에 경계심을 표한 바 있고, 티벳에 대한 투자와 대규모 한족이주정책을 내용으로 하는 ‘서부 대계발 계획’의 경우 1998년 코소보사태 직후 적극 추진된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예방’정책은 상술한 바와 같이, 티벳인들의 삶을 오히려 더욱 파괴하며 ‘실패’했고, 집적된 민중들의 불만은 지난 50년의 압제의 기억과 함께 최근의 대규모 시위로 나타났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앞으로 티벳인들의 저항이 더욱 격화된다면, (유고내전에서 벌어졌던 ‘인종청소’와 같은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그에 못지않은!) 극단적인 폭력으로 또다시 탄압에 나서리라는 점을 예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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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족적 민족주의’를 넘어, 대안세계화-국제주의로.

따라서 티벳민중들에 대한 중국민중들의 연대가 사활적인 문제로 보인다. 이 문제를 풀지 않고서는, 중심부 국가들의 허울뿐인 ‘인도주의적 개입’(예컨대, 중국이 ‘대미수출’과 ‘달러환류’를 축으로 하여 미국 주도의 세계경제에 포섭되어있는 상황에서, 중-미 간의 관계는 ‘상보적’이라 할 수 있으며, 마찰은 표면적인 것일 수밖에 없다. 미국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언론플레이 용으로만 티벳 문제를 제기하고 달라이라마를 이용할 뿐이다.)은 물론이며, ‘제3국’ 민중들의 지지연대 역시 별다른 개입력을 가질 수 없다. 대부분의 ‘한족민중’들 자신이 이를 지지하고, 심지어는 스스로가 티벳인을 비롯한 소수민족들에 대한 증오와 원한을 재생산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들에게 모든 종류의 개입은 ‘제국주의적 외압’일 따름일 것이다.

이는 개혁/개방 이후 ‘부활’하는 ‘종족적 민족주의’(민족주의의 기원은 미국혁명, 프랑스혁명 및 나폴레옹 전쟁을 기원으로 하여 이탈리아/독일의 민족통일 등에 이르는 일련의 역사들로 볼 수 있다. 민족자결과 인민주권을 강조하는 시민적 민족주의와 달리, 종족적 민족주의는 현대 이전의 민족에 주목하면서 종족적 신화와 상징이 민족을 구성한다고 주장한다. 서양의 경우 전자의 예로는 자유주의적 전통이 강한 프랑스, 미국, 후자의 예로는 자유주의가 취약하고 보수주의가 강한 독일, 이탈리아를 들 수 있다. 윤소영, 「민족주의 비판」, 『일반화된 마르크스주의의 쟁점들』, 2006. 참조.)로서 ‘중화주의’를 극복함으로써 해결해야할 문제다. 다만 현재의 중국민족주의는 현대 이전의 상, 또는 사회주의 시기의 상과 다르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현대 이전에 관해서는 윤소영, 앞의 책. 사회주의 시기에 관해서는 백승욱, 「동아시아 속의 민족주의-한국과 중국」,『문화과학』07년 겨울. 참조.) 이는 곧 사회주의 시기, 또는 현대 이전시기의 문제와 구별해서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종족적 민족주의의 문제를 발전주의적 전망의 소실과 정치의 위기 및 민족국가의 위기라는 현 시기의 정세적 특징과 연결시켜 바라보지 못한다면, 또한 동아시아 전반의 문제로 파악하지 못한다면, 중국민족주의에 반정립하는 ‘한민족주의’, ‘일본민족주의’ 사이의 대결과 같은 ‘원한의 정치’로 빠져들 뿐이다.

따라서 금융화에 대한 비판과 더불어 중국 내의 문제, 동아시아 전체의 문제에 대한 역사적 반성과 평가 역시 중요하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동아시아 티벳과 중국, 그리고 동아시아 민중들을 분열시키는 과잉결정된 요인들을 조금씩 바꿔나가야 한다. 금융세계화가 낳는 착취와 배제에 맞서는 동아시아 민중들 사이에서 대안세계화 운동의 전선을 형성하는 것이, 추상적으로 들리지는 몰라도, 가장 근본적이고 현실적인 관점일 것이다.

Posted by 행진

2008/04/01 02:01 2008/04/01 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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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젠장 2008/04/14 22:05 # M/D Reply Permalink

    뭘하자는건가? <<따라서 금융화에 대한 비판과 더불어 중국 내의 문제, 동아시아 전체의 문제에 대한 역사적 반성과 평가 역시 중요하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동아시아 티벳과 중국, 그리고 동아시아 민중들을 분열시키는 과잉결정된 요인들을 조금씩 바꿔나가야 한다>> 어떻게? 대안을 세계화해서? 할말이 없다...

  2. 참.. 2008/04/18 08:11 # M/D Reply Permalink

    참...
    '어떻게'?
    떠먹여줘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