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전망] 


왜 미국경제가 기침을 하면
한국경제는 몸살에 걸리나요?




1. 들어가며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후 미국을 중심으로 전 세계의 경제상황은 계속 요동치고 있다. 미국 발 금융위기로 시작된 현재의 위기는 실물경제에도 파괴적인 영향을 미치며 확산되고 있다. 위기의 진원지인 미국에서는 최대 자동차 업체인 제너럴모터스(GM)와 크라이슬러가 위기를 맞아 미 재무부에 자금요청을 하고 또 추가지원을 요청하고 있다. 경제위기에 대응해 오바마 정부는 ‘신뉴딜 정책’과 제로 금리를 기반으로 한 ‘무제한 달러 공급’을 핵심으로 하는 경기부양책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이미 수천억 규모의 금융 구제안이 시행중인 미국 정부가 재정적자를 감당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고, 이것이 금융위기의 2라운드 혹은 ‘디플레이션’으로 상황이 더욱 악화될 가능성도 있다. 또한 헝가리ㆍ크로아티아ㆍ루마니아ㆍ불가리아 등 동유럽 국가들이 집단 채무불이행(디폴트) 상태에 빠질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오면서 동유럽발(發) ‘2차 세계 금융대란’의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이들 국가가 서유럽 은행에서 대출받은 자금은 총 1조6000억 달러(국제결제은행 추산)에 이르는데, 만약 이들 국가가 연쇄적으로 채무불이행 선언을 하게 되면 서유럽 은행들의 부실채권은 급격히 늘어나고, 이는 다시 서유럽의 금융불안을 낳을 가능성이 높다.

최근 언론에서 계속해서 보도되고 있는 1,500원대로 치솟은 환율, 초민족자본의 탈출 러시, 외화유동성 부족 등 널려있는 악재들은 ‘제2차 금융위기’를 떠올릴 수밖에 없게 만든다. 이외에도 한미 FTA와 자본시장통합법으로 미국 중심의 금융세계화에 더욱 깊숙이 발을 들여놓으려는 한국으로서는 불황이 장기화될 것이며 동시에 미국보다 더욱 심각한 위기를 맞이하게 될 것이 뻔하다. 이 글에서는 왜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지를 한국과 미국의 경제관계의 역사를 훑어보면서 파악하고, 몇 가지 키워드를 중심으로 한국경제의 향방을 가늠해보도록 한다.

2. 한국과 미국 경제관계의 역사와 본질

한국이 미국과 정치ㆍ경제ㆍ군사적으로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아는 사실이다. 1945년 한국의 해방 이후 주변에 있던 소련과 중국은 현실 사회주의의 2대 강국이었고, 미국은 동아시아에 사회주의의 물결이 넘치지 않도록 전략을 세웠다. 경제적으로는 한국에 소비물품 중심의 원조를 하였고, 정치ㆍ군사적으로는 주한 미군을 배치하고 한국 정치에 대한 관여를 심하게 한다. 이것은 1950년대까지 이어지는 데 자본주의 세계의 최강국으로서 미국의 좋은 이미지를 보여주는 동시에, 한국인들의 당장의 배고픔을 면하게 하여 사회주의로 경도되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다. 한편 단순한 원조정책은 1960년대 이후 한국경제의 구조를 미국경제의 구조와 긴밀히 연관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이러한 방향은 지금까지도 한국 경제의 특징으로 남아있지만, 이후 세계 자본주의의 모습이 변화함에 따라 함께 변화해간다. 이것은 세계 자본주의가 호황에 있을 때에는 한국의 경제상황 역시 나아지지만, 현재와 같은 경제위기가 닥쳤을 때에는 ‘미국경제가 기침을 하면, 한국경제는 감기에 걸리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여기에서는 한국경제가 미국에 편입되어 가는 과정을 살펴봄으로서, 한미 경제관계의 본질이 무엇인지 살펴보겠다.

□ 1960년대 초~1970년대 말: 발전주의의 시대

냉전시기 동아시아가 사회주의권 국가들의 영향을 받지 않기 위한 가장 좋은 해결책은 바로 자본주의의 싹을 무럭무럭 기르는 것이었다. 이에 일본을 중심으로 동아시아의 경제구조가 확립되어 가는데, 한국ㆍ대만ㆍ홍콩ㆍ싱가폴은 ‘동아시아의 4마리 용’으로서 급격하게 자본주의 체제에 편입해 들어간다. 1965년 체결된 한일회담은 일본으로부터 차관을 받거나 수출자유무역지구를 설립하여 외국으로부터 직접투자를 받기도 한다. 이렇게 모인 자본을 바탕으로 군부독재정권이었던 박정희 정권은 ‘조국 근대화’라는 명목아래 강력한 국가 중심적 경제정책을 실시하였다. 이런 정책은 주로 자본을 집중하여 한 산업에 투자하는 방식이었고, 이로 인해 한국만의 독특한 기업형태인 ‘재벌’이 등장한다. 당시 추구했던 공업화의 내용은 1960년대 노동집약적 경공업에서 1970년대 중화학 공업으로 바뀌는데, 이러한 산업들은 미국ㆍ유럽ㆍ일본과 같은 세계자본주의의 중심부에서 발달한 산업들에 비해 이윤창출이 작은 부분들이었다.

한편 지금도 한국경제의 가장 큰 특징인 수출중심의 경제구조는 이 시기에 만들어진 것이다.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커다란 자국시장을 활짝 열어주되 한국에 시장개방을 강요하지 않았다. 한국은 적극적으로 수출주도 산업화 정책을 추진하였고 자국시장은 개방하지 않으면서도, 소비제품을 중심으로 미국에 대한 수출을 꾸준히 늘릴 수 있었다. 한국경제는 미국의 지원과 국가중심의 강력한 경제정책으로 신흥공업국(NICs)으로 발전하게 된다. 이러한 1960~1970년대의 한국경제를 일컬어 ‘발전주의 정책’이라고 부를 수 있다. 이러한 가운데 한국사회는 급격히 변하기 시작한다. 점차 노동자들이 늘어나기 시작하고, 농촌에서 유입된 인구로 도시인구는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그리고 국가 중심의 동원을 강화하고 자본주의 체제의 정당성을 입증하기 위해 ‘반공주의’가 강화된다. 이런 반공주의는 미국의 영향 아래 있던 자본주의 국가들에서 일반적으로 나타나던 이데올로기였고, 이를 위해 국가를 중심으로 한 폭력과 억압이 심화된다.

□ 1980년대~1990년대 중반: 미국의 개방 압력과 3저 호황

베트남 전쟁에서의 패배와 독일ㆍ일본 등 다른 자본주의 국가들의 추격으로 인해 미국은 최강대국으로서의 면모를 잃어나간다. 또한 경제가 계속 악화되며 1970년대 물가와 실업률이 동시에 올라가는 스태그플레이션이 발생하게 된다. 이에 미국은 1980년대부터 케인즈주의 경제정책을 포기하고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실시한다. 또한 쌍둥이적자(무역적자, 재정적자)에 시달리게 되자 미국은 무역적자를 해소하기 위해, 제 3세계 국가들에게 노골적인 경제적 압박을 가한다. 이는 라틴아메리카 등에서 경제위기를 기회로 미국 자본이 진출할 수 있는 가능성을 높이는 방식으로 경제구조를 바꾸어나간다. 물론 냉전이 지속되는 시기라 정치적으로 의미가 있던 한국은 라틴 아메리카와 같이 완전한 경제적 압박을 하지는 못한다. 한편 무역적자를 타개하기 위해 일본의 엔화를 평가절상하는 내용의 플라자협약은, 80년대 중반 한국에서 ‘3저호황’(저금리, 저달러, 저유가)으로 나타나게 된다. 즉 저금로 많은 자본을 빌릴 수 있고, 저달러로 수입 비용이 줄어들며, 저유가로 생산단가가 낮춰지게 된 것이다. 3저 호황으로 무역 흑자가 발생하기도 하는데, 이를 토대로 한국의 구조조정은 늦추어진다.

그런데 89년 폴란드를 시작으로 소련ㆍ헝가리ㆍ체코 등 동구 사회주의 국가들이 붕괴한다. 미국에 대한 한국의 정치적 의미는 퇴색하였고, 미국의 한국시장 개방 압력은 가속화되었다. 어릴 때 들어봤을 법한 무시무시한 수퍼 301조’는 미국이 불공정한 무역행위를 하는 국가에 보복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하는 조항이다. 그 ‘수퍼 301조 협약’을 89년 미국과 한국은 맺는다. 92년에는 자본시장이 개방되면서 미국계 초민족자본의 ‘국내 증권시장 투자‘가 가능해졌고,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이 타결되면서 농업 등의 분야가 대폭 개방된다. 95년 세계무역기구(WTO)가 출범하면서 이에 가입하였고, 96년에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을 하며 신자유주의 세계경제에 강력하게 편입해 들어간다. 이런 흐름들 속에서 세계화나 경쟁 같은 담론들이 강하게 유포되어 가고, 국내 법제도 역시 신자유주의를 주도하는 미국계 금융자본에 유리하게 바뀌어 간다.

□ 1990년대 후반~2000년대: IMF 구조조정과 금융세계화로의 편입

90년대 중반 이후 ‘4마리의 용’이라고 불리던 동아시아 국가들은 금융자본의 불안정성에 타격을 받게 된다. 97년 12월 급격히 줄어든 외환보유고를 지탱할 능력이 없었던 한국정부는 결국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한다. IMF 구제금융을 받는 조건으로 맺은 ‘IMF 구조조정 협약’을 계기로 한국경제는 이전과는 다른 체제에 진입한다. 즉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에 깊숙이 들어가게 된 것이다. 한국 주식시장과 외환시장은 거의 완전히 개방되었고, 한국기업에 대한 외국인 주식의 총 보유한도가 점점 증가하게 된다. 기업들에 대한 구조조정 과정에서 미국계 자본은 적극적인 투자/투기를 통해 헐값에 매입하게 된다. ‘바이 코리아’(Buy Korea)의 결과 투자자들은 엄청난 수익을 올렸고 그 수익률 또한 막대했다. 그 결과 외국인 보유 상장주식가액은 91년 당시 약 2.4조원 대, 97년 10조 원대였다가 99년에는 약 76.6조 원으로 대폭 증가하였다. 2000년 주식시장 거품이 거지면서 그 해 12월에는 약 56.6조 원까지 하락했지만 이후 다시 증가하여 04년 173.2조 원, 05년에는 급기야 260.1조 원에까지 이른다. 그리고 외국은행 자회사 및 외국증권사 현지법인 설립이 허용되었고, WTO 양허계획에 맞춰 각종 규제와 제도가 철폐되었다.

2003년 이후로 여러 국가들의 다자간 협상을 특징으로 하는 세계무역기구와 도하개발아젠다(DDA)는 제 3세계 국가들을 중심으로 저항에 부딪힌다. 이 때문에 국가와 국가가 직접협상(양자간 협상)하는 자유무역협정(FTA)이 증가하는데, 한국에서는 2004년 한-칠레 FTA를 시작으로 동시 다발 FTA를 추진하고 있다. 그 내용은 DDA가 포괄하는 협정의 대상과 개방 수위를 훨씬 높여, 한국의 경제구조를 완전히 바꾸는 것이다. 특히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를 주도하고 있는 미국과의 FTA는 한국경제의 구조를 완전하게 금융자본이 가장 쉽게 이익을 얻을 수 있도록 바꿔놓을 것이다. 한미 FTA가 시행된다면 이미 그 불안정성이 가시화된 세계 자본주의에 긴밀하게 통합하게 되며, 한국에서 초민족적 자본의 활동과 지배력은 더욱 강화될 것이다. 초민족적 자본의 이득 면에는 민중의 삶과 권리가 파괴되는데, 이미 IMF 이후 비정규직이 확대되는 등 노동 불안정성이 심화되었고, 복지제도가 공격 받으면서 빈곤층으로 분류되는 사람들의 수는 한국인구의 6분의 1에 가깝게 되었다.



3. 향후 한국경제는 어떻게 될 것인가?

위에서 한국경제가 미국경제와 긴밀하게 연관되는 상황을 역사적으로, 간략하게 살펴보았다. 이런 연관은 향후 한국경제가 나아가는 방향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인가? 물론 세계경제가 요동치고 주식시세가 급격하게 오르락내리락 하는 ‘롤러코스터 시세’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당장 하루하루의 전망도 내기 어려운 상황이다. 여기에서는 다만 몇 가지 키워드를 중심으로, 향후 경제위기의 방향을 예측할 수 있는 단상을 제시하도록 하겠다.

키워드 ① : 동아시아와 미국경제

1980년대 이후 미국 경제가 쌍둥이 적자에 시달리면서도 계속해서 세계 최강국으로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동아시아의 역할이 크다. 2000년대 들어 미국의 이중 적자를 메워주고 있는 메커니즘으로서 동아시아 외환보유고 증가에 기반을 둔 달러환류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이것은 동아시아에서 생산된 제품을 판매하여 얻은 달러가 미국의 증권시장에 다시 투자되거나, 그나마 안정적이라고 여겨지는 미국으로 자본이 도피하는 현상을 일컫는다. 동아시아는 이에 걸맞은 체계로 바뀌어 가는데, 기존의 신흥공업국에서 벗어나 금융자본의 유출입을 쉽게 하는 신흥시장으로 탈바꿈한다. 미국에 의한 달러환류가 가능한 이유는 미국의 달러가 다른 통화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치가 높은 것이고,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바로 미국의 발권이익(seigniorage, 액면가치와 발행비용의 차액)때문이다.

동아시아 달러환류 메커니즘의 중요성이 커질 수 있었던 이유는, 동아시아 국가들의 외환보유고가 1990년대 말 금융위기의 이후에 급격히 증가했던 데에서 기인한다. 이것은 동아시아 국가들이 정부정책상 외환보유고를 증가시키기 위해 통화안정채권이나 외평채의 발행을 통해 인위적으로 달러보유액을 늘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렇게 거대하게 늘어난 외환보유고는 집중적으로 미국 재무부 증권에 투자되었다. 이것은 역사적으로 동아시아의 지속적인 생산이 줄곧 미국 시장의 팽창에 의존해 있었기 때문이었다. 즉 미국 시장의 성장지속과 동아시아의 성장지속은 서로에 대한 긍정적 이해관계를 갖게 된다. 동아시아에서 외환보유고가 늘어나게 되는 주원인 중 하나는 미국에 대한 무역수지 흑자이면서, 또한 이를 가지고 미국 경제의 소비의 지속을 지탱해주는 메커니즘이 형성되는 것이다. 한편으로 IMF 구조조정 등으로 동아시아 지역에서는 세계적 금융위기의 가능성에 매우 취약하게 노출되어 있었지만, 이에 대비할 수 있는 장치나 제도가 매우 취약한 상황이다. 이렇게 금융위기에 매우 취약한 상황에서, 외환위기 가능성을 예방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자체적으로 외환 보유고를 늘리는 것뿐이었다. 이런 상황으로 인해 동아시아는 미국의 경제위기를 떠안는, ‘미국의 금고’로서 기능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런 메커니즘이 언제까지 이어질 수 있을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이미 미국 내에서도 경제위기가 심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언제까지 달러의 가치가 유지될 수 있는지 장담할 수 없다. 이는 수출달러 환류를 가능하게 했던 미국의 지위, 즉 세계자본주의의 최종 소비자로서 미국의 지위가 언제 소멸하게 될지 모른다는 뜻이다. 미국 재무부와 연준의 경제위기 극복방향은 은행에 대한 구제금융과 인수ㆍ합병을 주도함으로서 금융자본을 구제하고 있다. 이는 미국에서 정책기조가 약간 바뀌었다고 해도 여전히 현재의 위기를 몰고 온 ‘금융화’를 더욱 지원한다는 것으로, 근본적으로 신자유주의 체제는 바뀌지 않을 것이다. 이에 따라 미국에서 시작하는 세계 경제의 불안정성은 더욱 심화되고, 그 직격탄을 맞는 것은 미국 경제와 긴밀하게 연결된 동아시아일 것이다.

키워드 ② : 자본시장통합법은 한국경제의 돌파구가 될 수 있나?

장기화되는 경제위기 상황에서 한국의 5대 증권사를 미국 월스트리트의 투자은행처럼 거대한 ‘금융투자회사’ 로 만들어, 금융시장을 발전시키겠다는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자본시장통합법)이 지난 2월 4일부로 시행되었다. 07년 7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자본시장통합법은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에 관련된 기존의 6개법을 통합하고 관련 제도를 크게 바꾼 것이다. 자본시장통합법의 핵심은 지금까지 증권사ㆍ자산운용사ㆍ종금사ㆍ선물회사ㆍ신탁회사 등이 각각 판매하는 금융상품도 다르고 적용받는 법률도 달랐지만 이제 업종의 벽을 허물겠다는 것이다. 즉 증권사가 지금까지 선물사, 종금사에서 하던 일도 할 수 있고, 법에 규정되어 있지 않은 새로운 금융상품도 자유롭게 판매하며, 결제송금서비스도 할 수 있게 된다. 또한 CMA(자산관리계좌)와 같은 방식으로 노동자의 임금도 금융의 변화에 긴밀히 연결시켜, 증권사(투자은행)가 모든 노동자를 금융투자자가 되게 한다.

또한 이명박 정권은 자본시장통합법 시행의 후속조치로 각종 법령 개정을 추진하여 법 시행에 따른 제반조건을 보완하고,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의 분리를 완화하고 있다. 금융위원회가 발표한 <은행주식 보유규제 및 금융지주회사 제도 합리화 방안>(금산분리완화방안)의 요지는, 국내외 산업자본(기업)이 현재 4%로 되어 있는 시중은행 지분 보유한도를 10%까지 늘릴 수 있고, 국민연금 등 공적연기금이나 사모펀드도 일정 요건을 갖추면 은행을 인수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또한 증권회사나 카드회사를 자회사로 둔 금융지주회사가 제조업까지 자회사로 둘 수 있게 허용했고, 이에 따라 금융과 비금융회사들이 섞여 있는 기업집단(=재벌)이 금융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할 수 있게 된다. 지금까지는 기업과 금융회사가 함께 위험을 공유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지주회사는 금융회사와 비금융회사를 동시에 보유할 수 없도록 규제해 왔다. 하지만 금산분리가 완화된다면 재벌체제가 더욱 강고해지는 것은 물론 기업의 부실, 금융의 부실이 서로에게 전이될 수 있어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의 동반 위기 폭발의 가능성이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다.

금융시장 활성화와 금융투자기관 대형화를 초래할 자본시장통합법으로 한국에서의 금융화는 한층 더 강화될 것이다. 하지만 미국의 금융위기로 증권시장 중심의 금융세계화가 급격히 붕괴되어 이미 작년 미국의 5대 투자은행이 파산하거나 독자 생존을 포기했고, 자본시장과 투자은행 육성이라는 목표는 무색해진 상황이다. 이러한 시점에서 자본시장통합법은 한국경제의 돌파구가 될 수 있을 것인가? 지속되는 이윤율 하락과 금융거품까지 붕괴하고 있는 상황에서 금융시장 육성으로 한국경제가 독자회생할리는 없다. 이번 경제위기의 시발점이 통제되지 않는 파생상품의 확산으로 형성된 금융거품이었다는 점을 상기해본다면, 오히려 금융시장 육성은 금융위기의 위험도를 더욱 높일 것이다. 자본시장 육성을 통해 금융세계화에 때맞지 않게 편승하는 조치는 한국 경제의 불안정성을 확대하고, 민중의 생존의 위기를 심화시킬 뿐이다.

키워드 ③ : 한-미 통화스왑(SWAP)은 환율불안을 해결할 것인가?

2008년 10월 한국과 미국은 300억 달러 규모의 통화스왑(맞교환) 계약을 체결하였고, 이것이 치솟았던 환율을 크게 하락시키고 1000선을 붕괴시킨 코스피를 급반등시킨 계기가 되었다. 이 계약은 한국에 달러가 부족할 때 한국은행이 미국 연방준비기금(FRB)에 원화를 제공하면 달러를 받고, 계약만기 시에는 다시 빌린 달러를 돌려주고, 원화를 돌려받을 수 있는 것이다. 최대 300억 달러까지 이렇게 하는 것이 가능한데, 미국은 규모 확대까지는 아니더라도 기한 연장은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빌린 달러의 2%에 해당하는 금액을 수수료로 미국에 지불해야 한다. 이명박은 이러한 통화스왑계약을 체결하기 위해 미국 국채 매각 카드로 ‘협박’까지 했다고 하지만, 역으로 말하면 이제 통화스왑으로 인해 미국의 국채를 자연스럽게 매입해야할 상황이 되었다.

미국은 한국을 비롯해 브라질ㆍ멕시코ㆍ싱가포르와 통화스왑을 체결했고, 비슷한 시기 긴급경제구제책으로 쓰이는 7000억 달러 또한 국채 발행으로 해결했다. 이렇게 미국뿐 아니라 다른 국가에서도 달러가 중요시되면서 미국경제가 위기임에도 불구하고 달러강세를 지속시키고 있다. 위기는 당장 지연될 수 있겠지만 이러한 상황은 미국을 중심으로 서로의 배를 쇠사슬로 묶어둔 것과 같이 다 같이 재앙을 맞이하게 될 수 있다.

무엇보다 통화스왑은 환율불안에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외환사정이 호전되려면 현재로서는 그 유일한 길이 경상수지 흑자를 통한 외환확보인데 이에 대한 전망이 별로 밝지 않다. 지금은 1997~98년과는 다른 상황이다. IMF 구제금융 이후에는 원화의 평가절하와 수출 호조가 뒤따랐다. 미국 등 아시아 외 지역경제의 상대적인 안정 속에서 당시 막 붐이 일던 정보기술 제품의 대대적인 수출이 가능하였기에 대규모 무역수지 흑자가 발생한 것이다. 이에 반해 지금은 비록 원화가치가 하락했다 하더라도 다른 나라나 지역의 경제도 부진하여 수출이 크게 늘지 않거나 오히려 줄어들어 무역수지 흑자 규모가 얼마 되지 않을 것이다.


4. 무엇을 할 것인가?

한국정부와 자본은 한미 FTA 체결과 자본시장통합법 시행 등을 통해, 금융규제를 점차 완화가고 금융세계화로의 편입을 강행하고 있다. 한국경제는 더더욱 미국계 초민족적 금융자본에 종속되고, 해외 투자자들이 한국에서 자본을 유출시키면 환율이 급등하고 한국경제는 극도로 불안정해지는 상황에 처하게 될 것이다. 게다가 미국발 금융위기가 중첩되어 한국경제는 더욱 위험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금융위기로 인한 투자손실은 물론이고, 미국의 경기침체로 인해 무역적자가 증가하면서 외환위기가 재발할 가능성도 증가하고 있다. 이런 우울한 전망은 금융위기의 초반임에도 불구하고 벌써부터 한국경제는 벌써 환율인상ㆍ물가인상ㆍ신용경색ㆍ주식시장 하락ㆍ금리인상 등 심각한 상황에 놓여 있다. 본격적으로 경제위기가 발생하면 자본이탈ㆍ거대자본 파산 역시 예상할 수 있고, 이는 실물경제 전 부분에 걸친 고용불안과 임금 삭감으로 민중들을 고통스럽게 만들 것이다. 이미 IMF 때 우리는 ‘환란(患亂)’을 경험하지 않았던가?

주류 경제학자나 경제전문가들이 금융선진화를 이야기하며 미국경제로의 긴밀한 통합을 이야기하고 있는 현재, 이런 상황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혹자는 박정희 정권 시절과 같이 국가 중심의 경제정책을 실시하고, 이를 통해 실물(산업)자본을 키우는 것이 현재 필요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박정희 정권의 경제정책 역시 미국 중심의 세계 자본주의와의 긴밀한 연관 속에 가능한 것이었고, 이 시기에 만들어진 유산이 현재 위기의 원인이 되고 있기도 하다. 또한 이미 경제구조가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에 긴밀히 편입되어 있는 상황에서, ‘정부의 의지’만으로 상황을 역전시킨다는 것은 전혀 가능하지 않다. 한편 세계최강대국이 미국이 아닌 중국으로 이전될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 경제에 편입하는 것이 대안이라는 의견 역시 제시되고 있다. 2008년 7월말 현재 중국의 미국 재무부 증권 보유액은 5187억 달러로 외국인 보유액의 20%를 차지하고 있고, 2007년 말 미국의 대 중국 무역적자는 2562억 달러 수준이었다. 하지만 중국 금융이 양적인 면에서 크게 확대되었다고 하더라도, 이는 오히려 중국이 강하게 미국경제의 운명에 맞물려 있음을 보여주는 지표이다. 그것은 중국의 외환보유고의 상당부분이 대미 수출 시장 팽창에 의존하고, 이는 다시 미국 소비시장 팽창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경제 역시 다른 동아시아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미국의 경제 위기 부담을 계속 넘겨받으며 미국 경제를 지탱하고 있다. 따라서 중국의 성장은 새로운 최강대국이 형성되는 과정이 아니라, 그 양적인 팽창에도 불구하고 내부적으로는 매우 취약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미국경제와 긴밀하게 연관되어왔던 한국경제는, 현재 금융위기 속에서 ‘감기’를 넘어 ‘몸살’, ‘중병’에 걸릴 지경이다. 한미 FTA에 반대하고 미국에 반대한다는 목소리는, 사람들이 이야기하듯이 단순히 ‘반미감정’에 호소하는 일부 ‘반미세력’들의 이야기는 아니다. 현재 국가가 민중들의 삶을 책임지고 있지 못한 상황에서, 한미 FTA에 반대하고 미국에 반대한다는 목소리는 불안정한 금융세계화에 몸을 내맡기지 않겠다는 생존의 목소리이다. 현재 우리는 이런 목소리를 높여 나가며 한국과 미국의 부정적 관계를 끊어낼 방법을 찾아야 한다. 현재의 메커니즘이 만들어진 정확한 이유에 대해서 분석을 해야 하며, 근본적으로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를 넘어설 대안을 찾아야 한다. 이것이 현재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의 시작이다!

Posted by 행진

2009/03/11 13:51 2009/03/11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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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Ⅰ>


자본주의의 위기, 노동자들이 할 일

 

     전 세계에 금융위기의 한파가 몰아쳤다. ‘금융부문’에서 시작된 이 위기는 그러나 전 세계의 금융만 위기에 빠뜨린 것이 아니다. 산업자본 중심으로 돌아가던 세계경제가 이윤율 저하에 따른 금융화로 돌아선지 벌써 30여년이다. 그러나 그 동안 어떤 것이 금융화를 뒷받침하는 정책인지, 금융화는 어느 계급의 편을 들어주는 것인지, 또 이를 뒷받침하는 신자유주의는 무엇인지 제 때 분석하지 못한 채 ‘금융부문’ 이 모든 경제를 주도하게 놔두었으니, 투자은행들의 금융사기극으로 인해 전 세계 실물경제까지 위기가 미치는 것에 크게 놀라기도 뭣하다. 금융위기로 인해 자본주의 체제가 흔들리고, 기업도 흔들리고, 가계도 흔들린다. 자본주의에 필연적으로 맞설 수밖에 없는 노동자들은 이러한 상황에서 무엇을 해야만 하는가? 지금까지 노동자운동이 가졌던 태도와 대응들을 돌아보며 지금 이 위기에 가장 잘 맞서기 위해서는 무엇부터 해야 하는지 찾아보자.

 

자본주의의 종말이 왔으니 노동자들이여, 기뻐하라?!!

      리먼 브라더스가 파산한지 약 두 달, 그 동안 곳곳에서 위기에 대한 분석과 입장을 쏟아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두 달 만에 주가가 폭락하고 환율이 요동치고 흑자 도산하는 중소기업은 왜 생기는지에 대해 알기 위해 열심히 기사를 읽고 나름의 의견을 쏟아냈다. 이러한 수많은 입장 속에서 노동자운동으로 노동권을 쟁취하고 세상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우리들은 그럼 어떠한 태도를 가지고 있었는가?

     우려되는 반응이 있다. 자본주의 위기에 대해 “우리가 망합니까? 자본이 망하지”라는 반응, 위기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정권을 비판하는데만 급급한 나머지 위기를 진지하게 사고하지 못하는 태도, 이러한 우리의 반응과 태도는 포털사이트에서 “좌파들은 경제가 망하기를 기다리고 선동한다.”라는 근거 없는 비판의 빌미를 제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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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본주의의 종말이 가까워오니 이제 그로 인해 억압받던 우리들은 살만하게 되었나? 평범한 임금노동자들도 ‘수익률’ 만 믿고 정기예금보다는 펀드에 돈을 넣었다가 피해를 입었다. 소위 ‘개미투자자’ 들에게 미친 피해가 막심하다는 것을 더 이상 강조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엄청 많은 사람들이 금융에 투자했는데, 망했다! 는 것만으로 금융위기가 심각하다고 말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오히려 이 글을 읽고 있는 동지들 중에서도 투쟁하기보다 펀드에 기대어 노후자금을 마련할 의도로 투자했다 돈을 잃은 사람이 있다면, 혹은 주위에 있는 다른 동지들이 펀드투자를 하는 것을 말리지 못했다면 사태가 이 지경이 되어서야 금융화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알게 된 것에 대해 반성하자.

     이제 금융이외에 무엇이 더 위기에 봉착했는지 돌아보자. 물가는 올랐는데, 임금은 동결한다고 한다. 주가 폭락으로 인해 손해를 입은 회사들은 위기를 대규모 구조조정으로 넘어서려고 한다. 해고와 비정규직화의 압박이 계속되고 있다. 월급에서 계속 꼬박꼬박 돈을 떼어 냈건만, 연기금은 펀드에 투자되었다 돈을 엄청 날렸다고 하고, 낸 돈만큼도 못 받게 되었다. 당장 1년 뒤의 삶이 어떻게 될지 불안하고, 10년 뒤의 삶은 생각하기도 싫어진다. 이것이 지금까지 열심히 일한 대가일수는 없다.



     이런 상황에서도, 우리는 그래도 어쨌든 자본주의가 망하면 자연스럽게 노동자의 세상이 오지는 않을까, 누군가 들고 일어나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스스로를 돌아보자. 나는 이렇게 부조리한 현실에 저항하기 위해 스스로를 조직하고, 옆 사람을 조직하고 금융위기에 맞서 우리 노조는, 우리 단체는 무엇을 해야 하고, 지금 시기에 전태일 열사의 정신을 이어받는 것은 대체 무엇에, 어떻게 맞서 투쟁하는 것인지 진정 열심히 고민하고 행동하였는가?

     운동 없이, 대안 없이 자본주의가 붕괴하는 것은 야만으로 가는 것일 뿐이다. ‘야만’은 가난한 자국민에게 가는 구호물자를 실은 비행기를 격추시키는 아프리카에, 민주주의를 외치며 들고 일어났던 사람들을 폭력적으로 진압한 버마에 이미 존재한다. 그러나 야만은 저 멀리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남한의 이주노동자들의 노동환경과 그들이 처한 처지는 야만이 아니고 무엇인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내몰리는 벼랑 끝은 야만이 아니고 무엇인가?

     이러한 야만을 점점 더 양산하는 것이 ‘자본주의’의 위기라면, 우리는 위기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누가 이 위기를 자초했는지 평가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어떤 운동으로 이 위기와 이미 도래한, 더욱 심해질 야만적인 상황을 넘어설지를 진지하게 고민하자.

 


구제금융과 통화스왑은 진짜 해결책이 아니다.

     우리보다 더 먼저 위기를 넘어설 방향을 제시한 이들이 있으니, 당연히 자본주의가 망하면 큰일이 나는 지배계급들이다. 앞서 펀드에 대한 반성을 촉구했던 이유는, 내가 넣은 펀드 안 망하게 주가가 올라줬음 좋겠는 희망이 너무 강하다 보면, 단기적으로 주가를 올릴 수 있는 공적자금을 투입해서 금융자본부터 구해주는 구제금융이나 최근 남한과 미국이 체결한 통화스왑 등을 별 생각 없이 지지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은 진정 우리를 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에게 위기를 전가시키기 위한 것이다. 최근 자주 들려오는 ‘손실의 사회화’ 란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 미국의 금융개혁과 G20 정상회의 비판

    
미국이 긴급경제구제책으로 7000억 달러의 구제금융을 실시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모두가 익히 잘 아는 사실이다. 7000억 달러라는 큰돈을 어떻게 조달하느냐? 바로 국채를 발행하고, 그것을 판매함으로써 조달된다. 국채를 더 많이 찍어낸다는 것은 그 국가의 빚이 늘어나는 것을 의미하는데, 그래서 미국의 국민들이 왜 ‘금융자본’을 나라 빚 = 결국 국민 전체가 부담하는 빚으로 해결해야 하느냐고 반발했던 것이다. 금융자본의 잘못으로 인해 발생한 손실을 미국 사회 전체가 부담하게끔 ‘사회화’ 한 것이다.

    
그런데 이는 미국만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미국이 7000억 달러를 조달하기 위해 발행한 채권은 누가 구입하는가? 바로 미국 이외의 세계 여타 국가들이 사게 된다. 그 중에서도 특히 대미 상품 수출을 통해 경제성장을 유지˙도모해야만 하는 일본˙중국˙한국과 같은 동아시아 국가들이 살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무역흑자를 통해 확보한 달러로 미국 국채를 매입해서 다시 달러를 미국으로 돌려보내야, 미국경제가 유지되고 미국 내의 소비가 위축되지 않아 수출을 계속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손실의 사회화’는 한 국가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구 사회 전체의 문제가 되고 있다.

    
세계경제를 되살리려면 국제공조가 필수적이다. 올 11월 15일에 열릴 G20 정상회의(국제 경제 정상회의)에는 소위 선진국으로 분류되는 G8을 비롯하여 중국, 인도, 브라질, 한국, 호주 등을 비롯한 G20국가 정상들이 참여할 예정이다. ‘신브레튼우즈체제’ 를 만들어야 한다는 브라운 영국 총리의 말이 여기저기서 보도되는 가운데, 이 회의에서는 현행 금융감독체제의 개혁과 함께 IMF등 국제기구의 개혁 및 규제 권한 강화 등에 대해 논의될 전망이다. 하지만 살아남은 두 투자은행 (골드만삭스, 모건체이스)을 은행지주회사로 만들어 예금은행을 통한 자금조달능력을 키워주면서 말로만 규제를 강화하겠다는 등의 지금까지의 과정을 보았을 때, 이 규제는 자제능력이 없어 말썽을 부리고 다니는 아이를 어느 정도 제어하면서 새로운 놀이방식을 쥐어주는 것과 다름없다. 사람이야 사랑을 쏟고 도덕과 윤리가 어떤 것인지 알면 훌륭한 시민으로 거듭날지 모르겠지만, 자본은 그렇지 않다. 자본은 사람이 죽어가더라도 이윤을 획득하기만 하면 된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 한-미 통화스왑(SWAP) 비판

    
지난 10월 30일, 한국과 미국은 300억 달러 규모의 통화스왑 계약을 체결하였고, 이것이 1000선을 붕괴시킨 코스피를 급반등시킨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것이 결국 미국발 금융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미국에서 돈을 빌릴 수 있는 권리를 요구하고, 이 과정에서 수수료를 미국에 지불하게 되는 어이없는 상황이 일어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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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통화스왑계약은 한국에 달러가 부족할 때 한국은행이 미국 FRB에 원화를 제공하면 달러를 받고, 계약만기 시에는 다시 빌린 달러를 돌려주고, 원화를 돌려받을 수 있는 계약이다. 앞서도 밝혔지만 최대 300억달러까지 이렇게 하는 것이 가능한데, 미국은 언제든 이 한도를 늘려줄 수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빌린 달러의 2%에 해당하는 금액을 수수료로 미국에 지불해야 한다. 이명박은 이러한 통화스왑계약을 체결하기 위해 미국 국채 매각 카드로 ‘협박’까지 했다고 하지만, 역으로 말하면 이제 통화스왑으로 인해 미국의 국채를 자연스럽게 매입해야할 상황이 되었다. 이번에 통화스왑라인을 구축한 나라들이 앞서 이야기한 7000억 달러의 국채를 주로 매입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렇게 미국 뿐 아니라 다른 국가에서도 달러가 중요시되면서 미국경제가 위기임에도 불구하고 달러강세를 지속시키고 있다. 위기는 당장 지연될 수 있겠지만 이러한 상황은 미국을 중심으로 서로의 배를 쇠사슬로 묶어둔 것과 같다. 다 같이 재앙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 남한의 시대착오적 정책 : 자본시장통합법과 금산분리 완화

   
지금까지의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가 파괴적인 결과를 낳는다는 것을 눈으로 보고 있으면서도, 남한은 그래도 최대한 그 시스템으로 개조하기 위해 계속 여러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자본시장통합법과 금산분리가 핵심적인 정책이다.

    
자본시장통합법은 현재 증권사에게 선물사, 종합금융회사 등에서 하던 일을 가능하게끔 하고, 일정 요건만 갖추면 법에 규정되어 있지 않은 새로운 금융상품을 판매할 수 있게 만들어주며, 소액결제기능을 갖출 수 있게 되면서 월급통장 등의 개설을 유도한다. 물론 이렇게 되면 이러한 회사는 ‘증권사’가 아니라 ‘금융투자회사’ 가 되며 금융권의 거의 모든 자금을 포괄할 수 있게 된다. 이 법의 핵심 의도는 한국의 5대 증권사를 이러한 ‘금융투자회사’ 로 만드는 것이다. 이는 미국의 투자은행과 같은 것을 한국에도 만들려고 하는 것이다.

    
금산분리도 오래전부터 제기되었던 쟁점이다. 이는 금융지주회사가 제조업까지 자회사로 둘 수 있게 허용하는 것이고, 재벌이 금융지주회사로 전환하는 것도 가능해진다. 기업의 부실, 금융의 부실이 서로에게 전이될 수 있고, 재벌체제는 더욱 강고해지는 것이다. 이렇듯 위기를 불러왔거나 위기를 심화시킬 계획들이 남한에서는 단 하나도 취소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 이 땅에 사는 우리를 더욱 힘들게 하고 있다.




‘금융억압’ 을 걸고 투쟁하자!

    
위기 때문에 우리 삶도 빡빡하고, 지배계급들은 위기를 해결할 방법은 내놓지 못하고, 한국정부는 계속 위기의 한가운데로 자꾸 들어가려고만 하고… 어쨌든 이명박이 잘못하고 있는 줄은 누구나 알기 때문에 그가 무슨 말만 하면 인터넷에는 어떻게 하면 가장 잘 비웃을까를 고민한 듯한 말들이 주루룩 달린다. 하지만 그것이 진지하고 절박한 거리에서의 저항이 되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인가?

    
우리는 개인적으로 미래를 보장받으려 하지 말고, 집단적으로 현재와 미래의 삶을 쟁취해야 한다. 이명박을 욕하는 댓글에 웃으면서 스스로를 위로하지 말고, 진지하게 저항을 호소해야 한다. 우리가 저항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단결이다. 실제로 이를 증명해왔던 것이 노동자이다.

    
우리는 우선 공공부문 구조조정, 비정규직화, 임금동결에 맞서 싸울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문제들은 돈 놓고 돈 먹기를 최고로 여기는 금융화 국면이기 때문에 일어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투쟁을 지금까지와 같이 비정규직에게 비정규직 투쟁을 맡겨버리고 공공부문 투쟁도 1차적으로는 공공부문 노동자들에게 맡기고, 임금동결에 맞선 투쟁과 다른 의제들을 함께 이야기하지 못한다면 역시 지금까지와 같이 계속 각개격파 당할 뿐이다. 우리는 임금문제, 비정규직 문제, 공공부문 구조조정을 모두 얘기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1차적으로 금융화로 인해 파괴된 민중들의 삶을 구해낼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우리는 또한 ‘금융억압’의 요구를 투쟁의 한가운데에서 제기해야 한다. 자본시장통합법 등으로 한국이 계속 금융화의 한가운데로 들어가고자 하는 것을, ‘금융규제’라고 이야기하며 실제로는 ‘금융해방’을 목적으로 한 전 세계적인 해결책이 눈뜨고 통과되는 것을 우리는 우선 막아야 한다. 이걸로 당연히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물길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터져 나온 강둑을 간신히 막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의 삶이 자본주의의 물결이 다 휩쓸려 떠내려가지 않기 위해서는 우선 강둑을 막아야 한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자본주의를 넘어설 대안으로 가야한다는 것을 그 누구도 아닌 노동자가 가장 열심히 이야기해야 함은 물론이다.

     
투쟁하나 조직하기가 너무 힘들다, 내년에 임금투쟁을 할 수나 있을까 모르겠다, 다 좋은 말이지만 어떻게 하겠냐, 그렇게 결론짓지 말자. 오늘 투쟁하러 이곳에 오지 않았는가? 당신의 옆에 앉아있는 동지도 그렇지 않은가? 입을 열어 당장 토론을 시작하고, 오늘의 투쟁, 내일의 투쟁, 내년의 투쟁의 방향을 고민하자. 이곳에 앉아있는 우리부터가 진지하고, 절박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차고, 활기차야 한다. 그래야 더 많이 동지들이 조직되고, 그리고 우리는 조금이라도 더 승리할 수 있다. 투쟁!




알고 계셨나요? 금융지식 일문일답

1. FRB

연방준비은행, 줄여서 ‘연준’ 이라고도 한다. 한국에는 한국은행이 중앙은행 역할을 하듯이 미국에서는 FRB가 이러한 역할을 한다. 1913년에 중앙은행의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만들어졌다. FRB가 정하는 기준금리는 세계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는데,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일어난 것도 FRB가 경기가 회복되었다는 판단 하에 기준금리를 올렸기 때문이다.

이 연방준비은행의 활동을 결정하는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 역시 세계 경제에 대해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데. 전 의장인 그린스펀이 세계 경제에 미치는 효과가 엄청난 것을 빌어 ‘그린스펀 효과’ 라는 말까지 생겨났고, 현재 의장인 버냉키의 결정에도 사람들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자본이 이미 ‘대불황’ 혹은 ‘대공황’ 이 올 것을 예상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이유 중 하나에는 지금 연준 의장인 버냉키가 대공황 전문가라는 것도 있다.

2. 신브레튼우즈체제

지금의 변동환율제, 순수달러본위제 등의 국제통화체제를 변경하기 위해 새롭게 도입하자고 제안되고 있는 체제. 본래 브레튼우즈체제는 1944년에 전세계 44개국이 모여 고정환율제, 금-달러 본위제(달러를 세계화폐로 하되 금 1온스 = 35달러로 태환해준다는 원칙을 세운 것.) , 금융자본의 이동 금지 등을 골자로 한 국제통화체제이다. 이 체제는 서유럽지원(마셜플랜), 한국전쟁, 베트남 전쟁 등으로 달러를 너무 많이 찍어 낸 미국이 더 이상 금과 달러를 바꿔주지 못하게 되면서 붕괴했고, 이 때부터 금융자본의 이동이 서서히 가능해지고, 고정환율제에서 변동환율제로 바뀐 나라들도 계속 늘어났다. 이렇듯 본래 브레튼우즈체제가 무너진 현재의 통화체제의 불안정성이 위기를 심화시킨다고 하여 ‘신브레튼우즈체제’ 가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달러를 대체할 세계화폐가 존재하지 않는 등 진정 새로운 체제로 가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겠느냐는 전망이다. 본질적으로는 현재와 같이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은 자본에게는 이익이나 노동자들에게는 불리한 체제가 지속될 것이다.

 

Posted by 행진

2008/11/10 15:30 2008/11/10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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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호] 한미FTA와 금융규제 완화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면서,

펀드로 일확천금을 꿈꾸지 말자!

- 한미FTA와 금융규제 완화에 대하여



 

  미국산 쇠고기 반대 촛불집회로 들썩이고 있는 와중에도, 정부는 계속 우리의 삶을 위협하는 조치들을 하나씩 취하고 있다. 금융규제개혁심사단(이명박 정부 하에서 조직개편을 통해 새로이 생겨난 금융위원회에서, 4월 말 ‘새로운 금융규제개혁 접근방향’ 을 발표하고, 이후 위원회 내 “금융규제개혁심사단” 을 꾸려 규제완화를 위한 조사에 착수했다. “금융경제개혁심사단”은 민간전문가로 구성되어 있으며, 금융회사 진입, 영업, 자산운용, 퇴출 등 4개 분야에 걸친 금융규제의 존폐여부를 심사한다.)은 23일 금융회사 업무영역 규제, 25일에는 금융회사 진입요건 규제, 29일에는 금융회사의 지배구조 관련 규제에 대한 심사결과를 발표했다. 물론 이들이 말하는 개혁은 ‘규제완화’를 의미하는 것이므로 은행이 더 다양한 상품을 개발할 수 있도록, 다양한 금융업을 손쉽게 시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 심사를 거쳐 도출된 결론이다.

  원리는 잘 모르지만, 월급통장을 CMA통장(종합자산관리계좌를 가리키는 것으로, 예치된 자금을 채권에 투자하여 수익을 내는 금융상품이다. 최근 이를 이용한 고금리 월급통장을 상품으로 내놓고 있는데 이것이 CMA통장이다.)으로 바꾸면 돈이 늘어난다니까, 역시 원리는 잘 모르지만 펀드가 돈을 훨씬 빨리 불릴 수 있으므로 여윳돈이 생기면 무조건 펀드투자를 하는 시대에 다양한 상품을 선택할 수 있게 해주는 규제완화가 뭐가 나쁘냐고, 광우병은 나쁘고 의료민영화도 문제인 것은 알겠지만, 이건 뭐가 안 좋은 건지 잘 모르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이명박이 설마 우리에게 좋은 일 하겠냐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금융규제 완화 조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고, 한미FTA와 이 사안이 맞물려 돌아가는 매커니즘이 파악 안 되는 사람들 또한 태반이리라. 모두가 모르니까 부끄러워 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금융에 대해 알아야 한다. 우리는 뭐가 뭔지 모르는 사이에 금융세계화 속으로 편입되었고, 지금의 모든 불행은 이 금융화가 초래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까 말이다. 더 이상 모른 채 당하기 전에, 뭐가 문제인지 알아보자.   


한미FTA와 금융화

 

 광우병 쇠고기 수입 반대 목소리가 높아지자, 민주당을 비롯한 많은 야당들이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를 하고자 하는 이명박 정부를 규탄했지만, 이것이 실은 한미FTA를 위한 선결조건이었음을 생각해보면, 미국산 쇠고기 수입은 반대하면서 한미FTA는 찬성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것이다.

  한미FTA는 양국의 비준절차를 거쳐 발효되면 물론 지금보다 훨씬 커다란 파급효과를 일으키겠지만, 그 전부터 한미 FTA의 정신에 맞게끔, 그리고 그 실현이 용이하게끔 한국의 제도를 차근차근 개혁해 나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한미 FTA의 영향이 협상결과에 명시되어 있는 부분에만 미치는 것이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 금융화에 대한 이해는, 협상문의 ‘금융서비스’에 대한 부분을 넘어 그 전에 추진되는 여러 변화들만을 병렬적으로 나열하고 그 각각이 낳는 효과를 따로따로 분석한다고 해서 가능한 것이 아니다. 한미FTA는 그 자체가 금융화를 위한 협정이고, 다른 여타의 협상 분야들은 그에 도움이 되도록 따라오는 것으로 보아도 크게 무리는 없다. 대체 금융화가 뭐길래 이것만이 살길이라고 이렇게 체질변화를 강요하는 것일까?

   이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조금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하다. 1970년에 자본주의에 위기가 닥친다. 호황이었던 경제가 불황으로 돌아서고 실업이 증가했다. 사람들은 - 더 정확히 말하면 제도를 쉽게 움직일 수 있는 저 위에 있는 사람들! 지배계급들! - 케인즈주의가 해결하지 못한 자본주의의 위기를 다른 방식으로 해결하기 시작하는데, 바로 요새 모든 문제의 이유로 들고 있는 ‘신자유주의’ 가 그것이었다. 하지만 이 ‘신자유주의’ 라는 말 안에 온전히 담아지지 않는 것이 있는데, 바로 이 방식이 금융자본의 권력을 강화한다는 것이다. 더 이상 공장에서 물건을 만들어 파는 것으로는 수입이 보장되지 않자, 돈이 많은 이들은 공장에 투자해서 물건을 만들어 파는 과정을 기다리려고도 거기에서 고수익을 얻으려고 기대하지 않고, 가장 손쉽게 돈을 벌 수 있는 곳, - 돈 놓고 돈 먹기가 가능한 바로 그 영역! - 주식시장을 비롯한 금융의 영역을 강화하기에 이른다.

  초기엔 금융투자가들이 가장 쉽게 이익을 얻을 수 있는 금리인상 조치가 취해졌고, 뒤이어 다양한 금융상품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금융화financiarization/financialization”라는 용어는 이러한 금융적 투자로의 새로운 경향을 설명하기 위해 고안되었다. 금융부문(금융기업)의 규모는 그 수익성의 상승과 비례해서 상당히 증대되었다. 증권의 소유는 점점 더 뮤추얼 펀드와 연금기금과 같은 금융기관의 수중으로 집중되고 있다. 기업들은 더 이상 상품을 생산해서 이윤을 창출하는 것이 아니라 주식시장에서 자산 가치를 높여 투자자들을 유치해서 돈을 벌어들인다. 주식시장에서 자산 가치를 높이려면 기업 간의 통합과 투자에 대한 규제철폐가 필연적이다. 이미 전 세계 경제가 실물경제 중심이 아니라 금융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 GM도 자동차를 팔아서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금융산업을 통해 돈을 벌어들인다. 한국의 ‘현대’ 가 자동차뿐만 아니라 ‘현대캐피탈’ 로 돈을 벌어들이게 된 것과 같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미FTA는 서로 잘 만들고 많이 나는 상품들을 사고파는 19세기 무역이 될 수 없다. 농업에서는 손해 봐도 자동차를 팔아서 상쇄하면 된다는 것은 따라서 한미FTA의 본질을 전혀 모르고 하는 이야기이다.

  “한미FTA가 체결되면 IMF구조조정 백배나 힘들어진다.” 라는 말은 한미FTA가 그만큼 강력한 금융화로의 체질개선을 꾀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분야들은 나눠져 있지만 전 사회 전 영역을 금융자본이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한미 FTA의 본질이다. 그리고 그에 맞추어 정말로 ‘금융’ 의 부분에서의 변화가 적극적으로 꾀해지고 있다. 금융규제 완화 조치가 바로 그것이다.     

자본시장통합법, 금산분리 폐지, 헤지펀드 도입, 뭐가 어떻게 된다는 거냐?!

 

 한미FTA 협상 타결과 비슷한 시기에 화제가 된 자본시장통합법부터 시작해서, 구체적으로 지금의 변화를 대표하는 제도들을 살펴보자. 구체적인 지식은 변화를 적확히 분석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다.

  2003년 3월, 금융통합법(은행, 증권, 보험) 제정 추진이 발표된다. 그리고 3년 뒤, 한미FTA 추진을 발표한 2006년 2월에, ‘자본시장통합법’으로 이름이 바뀌어 그 제정 방향이 발표된다. 한미FTA협상 타결 2개월 뒤인 2007년 7월, 자본시장통합법은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였으나 공포 후 1년 6개월의 유예기간을 갖게 되어 2009년 초에 시행될 예정이다. 

 자본시장통합법은 ‘통합’ 이라는 말 그대로 여러 금융기관으로 이루어진 ‘자본시장’ 을 합치는 법이다. 증권사, 자산운용사, 종금사, 선물회사, 신탁회사 등의 금융기관들은 원래 각자 고유의 영역이 있어 판매하는 금융상품도 서로 다르고 적용받는 법도 제각각인데, 지금 이 각각의 자본들을 고유한 영역에만 규제하는 것을 풀고자 하고 있다. 자본시장통합법이 시행되면 금융회사의 겸업이 가능하고, 관련 금융업을 다 다룰 수 있는 ‘금융투자회사’ 설립이 가능해진다. 이 회사의 상품과 영업 영역은 무한대이다. 자본시장통합법 이전에 금융산업은 자금중개의 기능을 맡아 왔다면 시행 이후에는 ‘금융투자회사’ 라는 명실상부한 금융자본이 탄생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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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 참세상 「은행 ,증권, 보험의 무한도전 - 자본시장통합법이 추동하는 금융빅뱅」중)


 


  금산분리 폐지는 지난 3월 31일 금융위원회의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금산분리 정책의 단계적 폐지를 밝힘으로써 수면위로 떠올랐다. 이 역시 말 그대로 현재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의 분리를 위한 제도들을 해체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실은 산업자본은 이미 금융을 지배하고 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이들은 각종 자산운용사, 보험사, 증권사를 소유하고 있다. 대부분 제2금융권이라 불리는 직접금융시장의 금융사들을 이미 산업자본이 손에 넣고 있다. 최근의 금산분리 폐지 조치는 한 단계 더 나아가 은행과 산업자본의 분리원칙을 깨고 산업자본이 은행을 소유할 수 있게 만들겠다는 조치다. 금산분리는 이미 깨진지 오래고 이제는 은산분리마저 깨겠다는 것이라고 지적받고 있는 이유가 그것이다. 문제는 산업자본이 은행을 소유하게 되면, 그 은행의 돈을 마음대로 갖다 쓸 수 있게 된다. 예금을 한 사람들이 직접 통제할 수 없는 ‘눈먼 돈’에, 아무리 많이 빌려도 부도가 나지 않으면 기업의 소유구조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돈’을 얻기 위해 산업자본은 은행을 소유하고자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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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으로 헤지펀드에 대해 보자. 이창용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30일 "내년 2월 자본시장통합법 시행에 맞춰 헤지펀드 도입을 위한 1단계 절차를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헤지펀드는 100명 미만의 투자가들로부터 개별적으로 자금을 모아 위장거점을 설치하고 자금을 운영하는 투자신탁으로, 파생금융상품을 교묘하게 조합해서 도박성이 큰 신종상품을 개발하는 것이 그 특징이다. 그리고 이 때문에 국제금융시장을 헤지펀드가 좌지우지할 수 있게 된다. 예를 들어 전 세계 헤지펀드 가운데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조지 소로스의 ‘퀀텀그룹’은 G7의 중앙은행들이 움직일 수 있는 자금규모보다 훨씬 많은 돈을 움직일 수 있다. 이 펀드의 사익을 위해 여러 나라에서 금융위기가 일어날 수도 있고, 위기가 일어났을 때의 국가가 위기를 해결하는 것도 거의 불가능하다. 그런데도 이 제도를 도입하기 위해 기존의 규제를 해체하려고 하고 있다.

  더 구체적으로 어떻게 규제들이 완화되는지 알아보기 위해 ‘금융규제개혁심사단’이 5월 말 연달아 발표한 심사 결과들을 살펴보자. 먼저 업무영역에서는 ○ 은행에 일반상품파생상품거래 및 파생결합증권 발행 허용 ○ 증권회사․신용카드사간 통합 제휴 신용카드 발급 허용 ○ 보험회사에 지급결제업무 허용 을, 진입규제 관련해서는 ○ 보험업 허가요건 및 보험회사 유지요건 완화  ○  예비 인․허가제도 등 진입절차 개선 등 진입절차를 간소화하는 여러 조치들을 발표하였고, 지배구조에 대해서는 ○ 신규펀드 설정 시 준법감시인의 확인 의무 폐지 ○ 신탁업과 집합투자재산의 보관 ․관리 업무의 임원겸직 허용 ○ 보험회사 임원의 자격 확인 관련 첨부서류 제출의무 완화를 심사결과로 제출하였다.

  이러한 규제 완화 혹은 철폐 조치의 특징은 첫 번째, 금융서비스 간의 경계를 계속 허무는 것이다. 자통법의 핵심 중 하나는 은행이 가진 지급결제 기능이 금융투자회사에 허용되기 때문에 발생하는 보험, 은행 등 금융권별 업무 장벽이 허물어지면서 생기는 ‘금융산업’ 내의 구조 재편이다. 금산분리로 본래의 금융기관뿐만 아니라 산업자본도 이런 금융서비스에 뛰어들게 된다. 심사결과 중 업무영역에 해당되는 부분을 보면 특히 잘 알 수 있다. 두 번째는 금융자본의 대형화, 겸업화이다. 앞서 말한 특징과 매우 깊은 연관이 있다. 경계가 허물어지고 한 회사가 많은 일을 할 수 있게 되면 대형화도 쉬워지고, 겸업도 늘어날 것이다. 금융위원회는 이렇게 되면 경제 내 여유자금을 금융시장으로 유도한 뒤, 금융시장에 모여든 자금을 경제 내 생산적인 부분으로 유통시켜 궁극적으로 경제전반의 생산성을 제고하는 효과를 가지고 오게 될 것이라고 하지만, 실제 금융시장에 모여든 자금이 생산적인 부분으로 유통이 잘 되지도 않을 뿐더러 생산부문에 자금이 투자되더라도 주주배당금 등을 제하면 산업자본이 성장할 만한 자본이 남지 않는다는 것 역시 역사적으로 증명되어 있다. (뒤메닐 ․레비 《자본의 반격》등 참조) 

  오히려 금융에 대한 규제 완화와 인위적인 경기부양책이 연계되어 추동하게 될 자본의 금융적 팽창은 국내 금융시장은 물론이고 실물경제의 버블을 더욱 강화하게 될 것이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도 바로 이렇게 버블이 한 번에 꺼져 일어난 상황이 아니던가. 그러나 우리가 가장 최근의 이 사례에서 볼 수 있었듯이 이러한 실패로 인한 경제위기와 민생파탄의 책임은 가장 하층에 있는 사람들이 감당하게 된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때 히스패닉과 흑인들이 집을 잃었듯이.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다. 피해는 커다란 자본보다는 개미투자자들에게, 지배계급보다는 피지배계급에게 온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누구를 위한 금융화인가? 누구를 위한 규제완화인가?


누굴 위한 규제완화인가?

  “내 얘기 좀 들어 보쇼. 난 한글도 몰라요. 그나마 근근히 살았는데 IMF 지난 후에는 노숙을 시작할 수밖에 없었죠. 지금 노숙한지 7년 쯤 됐나. 근데 자다가 들고 나온 가방을 잃어 버렸어요. 주민등록증, 인감도장 다 들어있었거든요. 근데 2006년부터 무슨 우편물이 저한테 날아옵디다. 난 한글도 모르니까 처음에는 그냥 받아 두기만 했죠. 그러나 아는 사람한테 물어보니 난, 써 보지도 못 했는데 누가 내 이름으로 1500만 원의 돈을 사용했다는 겁니다. 기가 막히죠.”

  작년 11월 ‘금융피해자 행동의 날’ 에 모인, 금융화로 인한 여러 조치들 때문에 97년 이후부터 급증한 금융피해자들의 증언 중 일부다. 글을 읽을 줄 알고 고등교육을 받고 있는 우리도 금융용어들 앞에서는 문맹이다. 매일매일 쏟아져 나오는 금융위원회의 발표를 바로바로 분석할 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래서 우리는 쉽게 금융화로 인한 장밋빛 환상에 속고, 복잡한 현실을 분석하지 못하고 한미FTA 선결조건이었던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을 미리 막지 못했다.

  장밋빛 환상을 좀만 자세히 들여다보자. 펀드로 그래도 조금은 이익을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냐고 생각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펀드 투자를 한다. 하지만 우리는 더 넓게 세계가 어떻게 굴러가는지 봐야한다. 금융화로 힘을 얻은 투기자본들이 올해 원자재에 투기를 마구 하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려보라. 지금의 유가폭등도 수요가 늘어난 것이 주 이유가 아니라 투기자본의 원유로의 투자가 급증했기 때문이다. 동네목욕탕은 문을 닫고, 물가는 여전히 폭등중이고, 화물차들은 멈춰 섰다. 이것이 금융화의 결과다. 이것이 우리들의 정직한 노동을 위협한다. 그들의 이익 때문에 우리가 먹고 못 살게 되었다. 이것이 금융화다.

  한미FTA에 대한 장밋빛 환상은 지금까지 유포된 것 중에 최고이다. 금융규제를 완화해서 외국자본을 유치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도 그 중 하나다. 금융규제를 푸는 것은 무엇을 자유롭게 해줄 것인가? 물론 금융자본이다. 금융자본의 자유가 보장되는 속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자유는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노후보장을 위한 보험 열개 중 하나를 선택할 자유? 어떤 펀드에 여윳돈을 넣을지 고를 자유? 하지만 우리에게 작은 그 자유가 나의 자유와 또 다른 누군가의 자유를 억압한다. 내가 국민건강보험만 가지고도 걱정 없이 살아갈 자유를, 연금만으로 노후보장이 걱정 없을 자유를, 그래서 미래를 위해 끊임없이 현재를 저당 잡혀야 하고 지금 나의 삶을 나 스스로 온전히 결정할 자유도 빼앗기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반대할 부분은 명확하지 않은가. 

  쇠고기 검역 기준 고시 이후 들고일어난 국민들을 보고, 정권은 놀라 우리를 어떻게든 눌러버리려고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계속 그들의 계획을 지속시키고 있다. 규제완화조치도 마구 발표되고, 민영화 계획도 속속 논의되고 있다. 또한 이 순간에도 그들은 금융피해자들을 무능하다고 이야기하며 우리와 갈라치기 하고, 장밋빛 환상을 유포하면서 월급쟁이들도 잘 살 수 있다고 하면서 저들과 우리를 가르고,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힘, 나와 처지가 비슷한 다른 이들과 뭉치고 손잡을 수 있는 힘 - 연대의 힘! - 을 빼앗으려 한다. 거대한 금융자본 말고, 금융자본을 비호하면서 끝까지 좋은 쇠고기만 먹을 저 청와대에 있는 사람들 말고, 노후 자금을 펀드로 밖에 마련할 수 없는 사람들, 펀드할 여윳돈은 평생 꿈꿀 수 없는 비정규직들, 그리고 어디서부터 재개를 꿈꿔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는 금융피해자들까지, 우리는 모두 금융화의 피해자들이다.

  더 이상 무지로 인해 장밋빛 환상에 속지 말자! 더 이상 서로가 서로의 목을 조이는 금융화의 노예가 되지 말자! 그리고, 지금 쇠고기 투쟁을 통해 느끼는 너와 나의 연대를 지속하고 확장시키자. 한미FTA가 가져올, 금융화로 인한 재앙을 막고, 지금부터 다른 세계를 꿈꿔보자. 오늘 당신과 촛불을 함께 들었던 그 사람들과 함께.




 

좀 더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다면


- 참세상 〈금융부문 규제철폐! 누구를 위하여? (1)>

- 참세상  <금융부문 규제철폐! 누구를 위하여? (2)>
- 금융위원회 홈페이지 (최근 금융부문 규제완화 관련 세부사항을 알 수 있음)


Posted by 행진

2008/05/31 17:31 2008/05/31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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