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신년연설을 통해 본 2010년 예상도
■“2009년, 우리가 얻은 것은 자신감입니다.”
집권 3년차를 맞는 이명박 대통령은 4일 신년연설에서 '더 큰 대한민국'을 내세우며 2010년 국정운영에 대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구체적으로 보면, 올해 3대 국정운영기조로 ▲글로벌 외교 강화 ▲경제 활력 제고 및 선진화 개혁 ▲친서민 중도실용을, 5대 국정과제로 ▲경제회생 ▲교육개혁 ▲정치선진화 개혁 ▲전방위 외교 및 남북관계 변화를 각각 제시했다.
지난 해 신년연설의 기조 및 과제와 비교해보면 내용에 있어서 큰 틀에서는 차이가 없었으나, 지난 해 연설에서 '위기'를 29차례나 언급하면서 '위기를 기회로' 전환하기 위한 국민들의 고통분담 강조에 중점을 두었다면, 올해 연설은 '대한민국'을 14차례, '변화'를 13차례 언급하면서 2010년을 향한 긍정적, 희망적인 비전을 중점적으로 전달했다. '세계 최초로 원조를 받는 나라에서 원조를 주는 나라로', 'G20 정상회의 2010년 개최국', '원자력 수출 협정 체결'은 대한민국의 변화된 위상을 보여주었고, '선진 일류국가'라는 브랜드에 '외환보유고 6위', 사상최대 무역흑자, 내년 경제 성장률 4.5% 예상' 등 희망적인 수치들을 새겨 넣었다.
■ “올해 우리 정부는 '일자리 정부'로 자리매김하겠습니다.”
여러 정책 중에서 이명박 정부는 일자리 창출에 중점을 두면서 스스로를 ‘일자리 정부’라 명명하며 특히 이 부분을 강조했다. 그러나 실제 조사에 따르면 2010년 정부가 창출하는 일자리의 월평균 임금은 최저임금(83만6천원. 2009년 기준)에도 미치지 못하며 초단기 일자리가 대부분이어서 2010년에도 정부의 일자리 정책은 결국 더 많은 불안정 노동을 양산할 것으로 예상된다. 일자리를 20만개 창출하겠다고 발표하고 있으나 수치만 높여서 강조할 뿐, 실제로는 올해에도 작년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일자리 정책이 시행될 것이라고 예상되고 있다.
작년을 돌이켜보면, 정부에서 일자리 정책 중 매우 적극적으로 추진했던 청년인턴 사업은 이로 인해 6만 6000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혜택을 봤지만 몇 개월이 지나고 곧 다시 일자리를 잃었다. 이러한 땜질식 일자리 대책으로 일시적으로 공식 실업자 수를 낮추면서 정부는 경제 위기 속에서도 OECD국가 중 실업률이 매우 낮은 편에 속한다고 선전하지만, 공식 실업자 수에 취업준비생이나 구직단념자 등을 포함한 ‘사실상 실업자’는 지난 11월 300만 명을 넘어서고 있어 사실상 실업률이 12.6%를 기록했다. 정부가 발표하는 공식 실업률(3.3%)의 4배 가까이 되는 실업률이 은폐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고용 없는 성장’ 속에서 정부가 추진하는 일자리 정책은 결국 당장 실업률을 끌어내리기 위한 불안정 일자리 만들기에 불과했다.
올해 연설에서 추가적으로 실업 해결책이라고 제시한 ‘직업 훈련 체제 강화’나 ‘노동력 수요-공급 불일치를 해소하기 위한 통합정보망 구축’ 등 어느 것도 궁극적인 원인에 대한 처방을 비껴가는 것이었다. 그런데 더욱 가관인 것은 신년 연설에서 실업과 단기적 취업을 오갈 수밖에 없는 현재 사람들의 불안정한 상황을 ‘복수 직업 시대’라 포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평생 하나의 직장만 갖는다는 고루한(!) 생각에서 벗어나 일자리에 대한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이야기하면서 경제 수단이 아닌 ‘자아실현’ 수단으로서 일자리를 바라볼 것을 당부하지만, 자아실현은커녕 경제 수단에도 미달하는 것이 현재 사람들의 일자리이다.
■ “'일로영일(一勞永逸)'의 자세로 선진 일류국가로 가는 초석을 확실히 다지겠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신년 연설에서 드러나는 자신감은 지지율 상승에 힘입은 것이다. 올해는 임기중반을 통과하는 해로 초기의 지지율을 다시 되찾기 위한 이미지 쇄신을 꾀하고 있다. 그 결과 촛불집회,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사태이래로 급격히 하락했던 국정 수행에 대한 지지율은 50%대를 회복했으며, 모 언론사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70%에 가까운 사람들이 내년 우리 경제가 좋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일로영일의 마음으로 나라의 기초를 튼튼히 닦겠’다고 말하면서 신년화두를 ‘일로영일’로 삼았다. 청와대가 올해의 사자성어로 뽑은 ‘일로영일(一勞永逸)’이란 ‘지금의 노고를 통해 이후 오랫동안 안락을 누린다’라는 뜻이 담긴 것으로, 정책을 택함에 있어서 지금 당장의 효과도 중요하지만 먼 미래 후손의 안녕을 더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는 뜻에서 이 사자성어를 택했다고 청와대는 그 취지를 밝혔다. 마치 이명박 대통령 스스로는 당장의 인기에 영합하지 않고 후대의 경제번영까지 생각할 줄 아는 ‘현인’으로 승격시켰으며, 이에 대조하여 생존권을 지켜내기 위해 목숨을 걸고 투쟁하는 사람들을 당장의 잇속밖에 차릴 줄 모르는 무지한 사람들로 격하했다. 올해에도 다시 한 번 어떠한 저항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밀어붙이겠다고 선언한 셈이다. 올해는 또 어디서 용산에서와 같은 불꽃이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갈지, 쌍용자동차 공장에서처럼 매캐한 최루액이 쏟아져 내릴지 모를 일이다. 분명한 것은 ‘잘 살기’ 위해 추진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경제성장 정책이 어떻게든 ‘살아보겠다’고 외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짓밟을 것이라는 것이다.
당장의 노고와 어려움은 고통분담으로 함께 이겨내자고 말한다. 신년 연설에서 ‘세계에서 경제위기를 가장 잘 극복한’ 것은 ‘고통을 분담하려는 정부의 정책에 국민들이 너무도 잘 참고 잘 호응해’주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2년 연속 임금 동결을 감내해준 공무원들에게 감사의 말까지 보냈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처럼 과대 포장된 2010년 경제성장률을 마치 고통을 분담하여 대한민국 특유의 저력으로 경제위기를 잘 이겨낸 결과 얻어진 것으로 만들면서, 더 큰 경제성장을 이루기 위해서는 올해에도 아낌없는(!) 고통분담을 주문했다. 그러나 최근 5년간 경제위기의 여파에도 불구하고 국내 기업의 매출이 꾸준히 증가했던 것에 반해, 평균 임금인상률은 1998년 외환위기 이후 최저 수준으로 1.7%(물가상승률을 적용하면 사실상 ‘삭감’이다)에 머물렀다는 점을 볼 때, 그토록 지난 해 호소했던 ‘고통분담’이 민중에 대한 일방적인 책임 전가에 불과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 우리 목을 조여 올‘선진화’라는 환상을 벗어던지자!
신년을 맞이하여 모 언론사에서 실시한 설문조사의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가 10년 안에 선진국 대열에 진입할 것이라고 예상하는 사람이 과반수에 이르렀다. G20 개최, 원자력 수출 등 지난 해 쏟아져 나왔던 몇몇 상징들은 사람들의 머릿속에 ‘선진 일류 국가’로서의 이미지에 사로잡히게 했다. 그러나 이처럼 정부에서 유포하는 ‘선진국’이라는 이미지에 집단적으로 도취되어 있다면 정부에서는 끊임없이 이러한 환상을 부추기면서 더 나은 미래를 위한 당장의 고통 감내, 즉 ‘일로영일’ 정신을 내세워 우리의 생존권을 공격해 올 것이다.
출구전략에 대한 논의가 곳곳에서 쏟아져 나오지만 여전히 전세계적으로 경기 침체는 계속되고 있고 더블딥 가능성까지 점쳐지고 있는 상황에서 세계 경제와 연동되어 작동되고 있는 우리나라가 유일하게 경제위기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얼마간은 경제위기가 계속될 것인데, 경기 침체의 장기화는 실업, 부채 증가 등 사람들이 삶의 질을 점점 더 악화시킬 것이다. 그러나 정부는 ‘선진화’, ‘선진화’를 외치면서 더 악화된 삶의 조건마저 장밋빛 미래를 위해 감내하게 만들 것이고 이에 대한 저항은 ‘생각, 행동양식의 선진화’를 내세우면서 다시 억압당할 것이다.
“오늘 소담스런 눈이 온 세상을 하얗게 뒤덮으며 새해의 시작을 축복하는 듯합니다.”라는 말로 시작된 신년 연설에서처럼 그날은 유례없이 많은 눈이 내렸던 하루였다. 새해 첫 근무일에 예상치 못한 폭설로 서울의 온 교통은 마비되었지만 어쨌든 눈은 그러한 세상사에는 초연한 듯 쏟아져 내렸다. 이처럼 생존권을 보장하라고 외치는 우리의 목소리 위에도 ‘선진국’이라는 새하얀 이미지가 뒤덮으려 하고 있다. 정부는 지금 당신의 고통은 대한민국이 아직 선진화되지 않았기 때문인 것처럼 이야기하면서 경제성장에 방해가 되는 어떤 걸림돌도 제거할 기세이지만 ‘선진국’이라는 이미지는 언젠가는 녹아 없어져버릴 환상일 뿐이다. 경제 위기 시기 어느 때보다도 거세질 노동에 대한 공격에 맞서 진짜 우리의 삶을 선진화시켜낼 수 있는 대안을 이야기하자. 경제위기에 따른 고통분담을 명분으로 노동자들의 탄압이 정당화될 수 없음을, 정부의 일자리 정책이 사실상 단기간, 저임금 일자리 양산에 불과함을 적극 알려내자. 우리의 생존권은 선진화 정책에 의해 오히려 억압될 것임을 폭로해내는 2010년을 만들어가자.
Posted by 행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