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쟁보고] 성신 청소용역노동자들의 투쟁, 승리의 14일에 함께했습니다.


성신여대 사회대학생회장 정아

우리 생애 가장 따뜻한 추석
“명절 치를 일이 깝깝해도 이번 추석은 기펴는거야. 학생도 좋지?” 60년 살도록 이렇게 기쁜 날은 처음이라며거듭 말하시던 날. 본때를 보여줬으니 이제부터 시작이라던 한 조합원 동지는 까치발까지 딛으며 주먹을 하늘로 치켜드셨다. 고된 노동이야 몸에 익은 그녀들이었지만 매일같이 대리석 찬바닥에 몸을 누이며 버텨온 14일의 투쟁은 또 다른 고통과 불안이었다. 하지만 ‘신문에 날 정도로 기가 막힌 일’을 겪고 있는데 어떻게 포기하나며 오고가는 수정이들(성신학생들의 애칭)을 한명 한명을 불러세워 설득하고 알리길 14일. 너른 학교 곳곳이 더 이상 대자보를 붙일데가 없을 정도로 우리들의 투쟁이 빼곡히 가득찬 날에 그토록 고대했던 승리의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깨진 플라스틱 그릇이나 쓰다 버리는 거지. 비정규직이라고 우리를 벼룩시장에 판거야 ”

개강을 맞은 대청소를 한다고 바닥을 유리같이 닦아놓은 다음날, 성신여대 청소용역노동자들은 벼룩시장의 신규 채용 광고를 보고서야 자신들의 해고사실을 알았다. 짧게는 2년간 길게는 20년간 성신에서 일해온 노동자들을 해고한 것에 대해 학교측이 밝힌 이유는 ‘노동조합을 만드는 배신행위’를 했다는 것이었다. 성신 재단은 성신여고에서 12년간 일하던 비정규직을 내쫓아 해고판정 받고서도 새로 결성된 노조와 그들과 함께하는 ‘문제 학생들’을 학교 발전을 가로막는 요인으로 꼽아오다가 기상천외한 해고로 노조파괴를 시도했다.

맡은 구역의 청소를 다했어도 쉬는 것 보다 낫다며 매일 멀쩡한 잔디밭 풀을 뜯게 하는 혹사를 당할때도, 수시로 삼청교육대에 보내버린다는 소리를 들을때도, 행여 눈밖에 날까 지나가는 교직원 뒷통수에다 대고 인사할때도 그저 참고 참기를 몇해, 그래도 출근할 수 있는 반평짜리 대기실이 있다는게 고마웠다는 그녀들은 부당한 해고에 더는 분노를 삭힐 수 없었다. 그렇게 시작한 투쟁, 노조를 결성한 이후 학교의 부당한 조처가 있을 때 투쟁조끼를 입어보긴 했지만 막상 본부건물을 점거하고 들어가니, 온갖 회유와 건장한 학교 직원들이 휘두르는 욕설과 폭력 등 겪게되는 어려움이 수다했다. 파업 일차가 더해지면서, 투쟁가를 틀면 가사적힌 수첩을 한참을 뒤적거리고 나서야 뒤늦게 따라부르던 노래들을 꽤 익숙하게 따라부를 수 있게 된 이들도 있고, 또 목이 쉬어서 들리지도 않는 목소리로나마 열심히 구호를 외치는 이들도 있었다. 조합원들은 ‘미화원 일생’을 부를때는 모두가 하나같이 ‘꼭 내 이야기 같은’ 가사에 목이 꽉 매인다고 했다. 요즘 대학생인 나에게, 원곡이라는 ‘여자의 일생’은 도통 들어본적 없는 옛 노래이지만 조합원 동지들과 손을 꼭 잡고 이 노래를 연습할 때마다 가수가 아무리 빼어나게 부른다 한들 이보다 더 절절할 수 없으리라는 생각이 몇 번씩 들었다.


참을 수가 없도록 노동자의 분노를
성신여대 말을 해라 대답 좀 해 봐라
노동자의 억울함을 호소하면서
미화원 노동자를 생각하세요
아 총장님 말좀 하세요 눈물로 호소합니다

미화원 일생 - 미화원 일생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학교 가득 하늘색 풍선, 청소 아주머니들이 만난 ‘수정이’들의 지지

어디나 마찬가지지만 용역업체 현장소장의 횡포도 심했다. 꼭두 새벽부터 학생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시간까지 노동하면서도 63만원을 받고 일하던 성신의 청소용역노동자들은 나랏법 어드매에 보장도 되어있다던 최저임금이라도 제대로 받아보자고 노조를 만들었다. 우리 학생들은 노조 조직시기부터 함께하면서 대기실에서 또 청소중인 계단에서 청소용역노동자를 만났다. 그렇게 가입원서가 쌓일 때 아직은 불안하던 우리의 확신을 분명히 해주었던 것은 수정이들의 노조건설지지 서명이었다. 노동조합 활동가들의 헌신적인 활동에 더해서, 같은 성신의 구성원으로서 청소용역노동자들이 합당한 권리를 행사하는데 힘을 모아야 한다는 우리의 운동에 대해 학생들의 공감을 얻어가고 또 이를 확장해가는 과정을 통해 성신청소용역노동자들의 노동이 비로소 합당하게 인정받기 시작했다. 성신여대 청소용역노동자들과 우리 학생들은 비오는 날이면 이명박 욕을 실컷 하면서 같이 부침개도 부쳐먹기도 하고, 3.8 여성의 날 문화제에도 함께가면서 학생과 노동자가 함께 연대한다는 것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던 차에 전면적인 투쟁이냐, 노조활동의 포기냐는 기로를 맞았고 성신의 청소용역노동자들은 망설임없이 투쟁을 선택했다.

개강 날, 노조와 연대단위가 붙이는 자보만큼 학교도 전 교직원을 동원해서 선전전을 했다. 등교하는 학생들은 학교본부가 붙인 대자보와 청소용역노동자가 붙인 대자보사이를 번갈아보며 갸웃거렸다. 하지만 올해들어 학생들의 의사와 무관하게 ‘장사 안되는’ 학과를 통폐합하면서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할때도 그랬듯이 ‘경쟁력 확보’니 ‘학교 발전‘니 하는 말을 명분으로 삼지만 그저 듣기에나 좋은 말뿐이라는 것을 이내 알 수 있었다. 많은 여성노동자들이 자녀들의 등록금을 감당하기 위해 불안정한 일자리나마 선택할 수 밖에 없지만 교육비는 어마어마하고 여성들이 받는 임금은 그를 감당할 수 없이 형편없이 낮다는 것에도 많은 수정이들이 공감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오며가며 청소용역노동자들의 투쟁을 본 학생들이 지정된 핸드폰 번호로 보낸 응원의 문자가 곳곳에 게시되고 건물전면을 덮는 대형 플랑카드에 청소용역노동자들의 투쟁의 정당함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가득히 모아졌을 때, 투쟁하는 청소용역노동자들은 직접 학생들에게 띄우는 편지를 써서 부착하는 것으로 답했다. ‘부끄럽다 나 못한다’ 하다가도 용기 내어 들어간 강의실에서 지지를 요청하는 발언을 하고 가면, 학생들은 건물 로비에 승리를 바라는 메시지를 담은 포스트 잇을 붙여놓는 것으로 답했다.

투쟁 14일차, 청소용역노동자의 유니폼과 같은 하늘색 풍선을 학교 곳곳에 수백개를 매달았던 날, 시선을 옮기는데 마다 마주칠 수 밖에 없는 투쟁지지 풍선을 외면할 수 없던 학교는 끝내 손을 들었다. 승리의 주역인 성신분회 조합원들은 ‘의리 빼면 시체’답게 제일먼저 연대해온 동지들과 수정이들에게 감사의 인사와 함께 앞으로가 더 중요하다며 향후 투쟁을 약속했다. “그동안 겪은 설움을 생각하면 점거14일은 양에도 안차지만 어서 돌아가서 학교를 깨끗이 청소해야 한다는 내 프로의식이 있으니 학교는 다행인줄 알라” 는 말로 ‘연약한 여성’이라는 말도, ‘청소가 누구나 쉽게하는 무가치한 일’이라는 말도 가당치 않음을 쩌렁쩌렁 선포하는 조합원들이었다.



 
여성리더십을 키운다는 대학 그리고 청소 용역 여성노동자들의 현실

3일이면 나가떨어질 줄 알았던 ‘아줌마’들이 임금의 절반씩을 중간 착취 당해온 지긋지긋한 하청 용역 인생을 끝내자고 말했을 때 ‘당연’하게 여겨지던 많은 것이 고발되기 시작했다. 하청 용역구조를 단박에 엎진 못했지만 몇 해전부터 적극적으로 움직임이 일고 있는 대학내 청소용역 노동자의 투쟁을 진척시켜 나가는데 성신여대의 사례는 원청 사용자인 학교로부터 합의문을 받아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여전히 비정규직인 조합원들에게는 매해 계약해지 시점이 돌아오겠지만 회사가 교체되더라도 노동조건을 훼손하면 계약을 해지한다는 약속과 더불어 고용안정에 대한 책임을 학교가 인정할 수 밖에 없음을 합의문을 통해 시인한 것이다. 몇 년 씩 학교에서만 일했는데 얼굴도 본적 없는 용역회사한테 가서 따지라는 말이 억울했던 조합원들로서는 바라마지 않던, 그리고 너무나 합당한 약속을 받아낸 것이다.

학교비정규직 노동자의 90% 이상이 여성이며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의 절반은 평균 임금이 85만원 수준이라고 한다. 그마저도 청소용역 노동자들은 사무직에 근무하는 학교비정규직 노동자의 임금을 훨씬 밑도는 임금을 받고 있다. 반평 좁은 대기실에서 옷 갈아입을 때조차 관리자들이 벌컥벌컥 문을 열고, 남자 화장실도 청소하는데 창피한줄이나 알겠냐며 여성으로 취급하지도 않다가도, 툭하면 ‘집에 가서 애나보라’는 모욕적인 언사를 들었던 여성노동자들. 소장 눈에 나서 행여 내쫓길까 ‘애보는 건 쉬운건지 아냐’며 항변 한마디 못하고 매해 재계약 시기마다 떨어야했던 불안정한 일자리속의 여성 노동자들. 여성의 일이라고 여겨지는 재생산 노동에 대한 부당한 평가에 터무니없는 저임금을 강요 받아야 했던 여성 노동자들. 성신여대는 재학생들에게 여성 리더를 키운다며 각종 자기계발 프로그램들을 제시하며 성공한 여성에 대한 환상을 부추겼지만 학교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명백한 현실, 이땅의 대부분의 여성들이 처한 불안정노동과 빈곤을 감출 수는 없었다.


“ 앞으로도 함께하자 ”

투쟁을 하면서 사흘만에 6000천이 넘는 지지 서명을 받았지만 그저 감동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광범위하게 형성된 학내의 지지여론을 이어가는 동시에 직접 수정이들이 할 수 있는 실천들은 기획하는 것은 만만치 않았다. 생존권이 위협받는 나이 많은 여성노동자에 대해 보편적으로 느끼는 안타까운 정서를 넘어 사회가 제시하는 여성발전에 대한 환상에 ‘균열’을 내기 위해서는 연대의 의사를 표현하면 혹시나 불이익이 당하진 않을까 고민하는, 그리고 비정규직이 안되기 위해 더욱 도서관으로 향하려는 인식들과 대결하는 다양한 실천들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성신 투쟁은 학생운동 기층의 기반조차 사라지고 있는 지금, ‘대학생들을 다시 봤다’는 다소 성급한 낙관을 뒤로하고 ‘운동의 기반’을 다시 만들기 위한 작업들과, 학생운동과 노동자운동이 활성화될 수 있는 대중정책의 기획과 실험이 필요하다는 것을 다시 확인하는 과정이었다.

이번 성신의 투쟁은 청소용역에 종사하는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을 조직하는 활동과 학생운동 활동가들이 대학에서 불안정노동을 제기하는 운동이 어떻게 만나야 하는지를 지속적으로 고민해야한다는 과제를 남겼다. 성신여대에서는 올해에 들어서만 학생들이 이미 2차례의 본부 점거 투쟁을 벌였던터라 조합원들이 ‘우리가 도중에 멈춘다면 연대하던 학생들이 위험해질 수 있다‘ 며 투쟁의 결의를 다지곤 했는데 이를 함께하는 학생들은 언제나 가슴뭉클했다. 승리를 자축하면서 “앞으로도 함께하자”고 했던 약속을 이제 어떤 내용으로 풀어갈까를 고민하는 것이 모두의 몫일 것이다. ‘밀착’만을 지상 과제로 하는 노학연대의 관계가 아니라 노-학 서로의 운동을 재구조화할 수 있는 운동이 되기 위해서는 학생운동과 노조의 자활력을 배가할 수 있는 교육사업, 당장 자신의 사업장에 투쟁사안이 없어도 불안정노동과 빈곤에 맞서 투쟁하는 이들의 문제를 노조의 문제로 받아 안을 수 있는 일상적인 연대가 필요할 것이다. 학생운동의 역량이 기여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 헌신할 것을 다짐하고 있다.

 

가뭄에 단비 같은 귀한 승리를 마주하고서 많은 활동가들이 ‘성신여대의 모델‘을 확산하자고 말하고 있지만 위에 대한 실천이 담보되고서야 정말로 대학 청소노동자 투쟁의 활로를 열 수 있을 것이다. 성신여대도 아직 많은 과제들을 갖고 있다. 투쟁승리 이후, 모처럼 풍성한 가을을 즐기러 간 북한산 소풍에서 질렀던 ‘막걸리잔 치켜들며 지르는 환호성’을 오래도록 지켜내기 위해서는 정말 지금부터가 승부이지 않을까. 처음에 노조를 만들고 최저임금에서 사천원 더 받는 79만원이 그토록 벅찼다던, 하지만 멈추지 않고 다른 투쟁을 만들어내고 또 끝끝내 승리를 거머쥔 그녀들이 오늘 다시 결의하듯이 이제 시작임을 잊지 않겠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Posted by 행진

2008/09/30 15:17 2008/09/30 15:17
, , ,
Response
받은 트랙백이 없고 , 댓글이 없습니다.
RSS :
http://stulink.jinbo.net/blog/rss/response/129

Trackback URL : 이 글에는 트랙백을 보낼 수 없습니다

[성명]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에 연대합시다!
- 기륭투쟁에 부쳐 -




지난 2005년 8월, 구로 지역 공단에 만연한 최저임금과 불법파견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면서, 이에 앞장서고 있는 기륭전자에 대한 노동자들의 권리를 되찾기 위해 노동조합을 결성했다는 이유로 투쟁을 시작한 기륭 여성노동자들의 기나긴 싸움이 어느 덧 1100일을 훌쩍 넘어가려 하고 있다.

너무나 잘 알고 있듯이,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가 심화될수록 비정규직으로 대표되곤 하는 불안정노동의 경향은 일반화될 뿐만 아니라, 다면화ㆍ구체화된다. 이것은 익히 알고 있듯이, 자본의 이윤율이 경향적으로 저하되는 상황을 상쇄하기 위한 전략 속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인데, 그만큼 저들에게는 노동의 불안정화를 보다 ‘구체적인 정세와 구체적인 세력관계에 적합하게 끊임없이 재조직’하는 것이 사활적이라는 것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렇다면 현재의 구체적인 정세는 어떠한가? 우선, 이명박이 당선될 수 있었던 주요한 근거 중에 하나라고 할 수 있는 ‘경제성장’ 내지 ‘경제위기 극복’이라는 구호에서 알 수 있듯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 금융위기를 타개하는 것은 그 어느 분파를 막론하고 지배세력들에게 중요한 과제이다. 그런데 최근의 환율논란이나 이른바 ‘9월 위기설’ 논란에 대한 여ㆍ야의 이전투구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저들이 이에 대한 실질적인 타개책을 가지고 있을 리 만무하다. 역설적으로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공유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것은 ‘(방법상의 차이만 있을 뿐인)한미 FTA'나 ‘비정규직 악법’ 등의 반노동자ㆍ민중적인 의제일 수밖에 없다. 게다가 민주노총 등이 야심차게 진행해 온 ‘비정규직 전략 조직화사업’이나 이른바 ‘평택투쟁ㆍ한미FTA투쟁’에서도 단적으로 드러난 것처럼 이에 맞서야 하는 대다수의 운동진영들이 실천적으로 무기력에 빠져 있는 상황이 돌파구를 못 찾고 수년 째 이어지고 있다. 물론, 지난 5월 이후 지속되어 온 촛불시위는 ‘이명박’으로 대표되는 지배세력에 대한 거대한 대중적 불만을 극적으로 드러낸 것이지만, 기존의 사회규범 일반에 대한 불만ㆍ환멸을 넘어서는 지배계급의 전략에 맞서는 구체적인 운동으로 자기 스스로를 재조직한 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오히려, 7/8월부터 공안탄압과 각종 기본적인 권리에 대한 심각한 침탈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있으며, 이에 대한 운동의 기획이 전방위적으로 도모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그동안 장기화되어 온 KTX, 이랜드-뉴코아, 기륭, 코스콤 등의 투쟁 역시 이렇다 할 돌파구를 열어제끼지 못하고, 앞으로 예상되는 정권의 각종 탄압의 지속과정을 온 몸으로 맞부딪혀야만 할 것이다. 지금까지 이 투쟁사업장들은 비록 절대적인 의미에서의 많은 사람들은 아니지만, 강고하고 끈질기게 서로간의 연대투쟁을 이어 온 노력들이 모여 그 투쟁을 지속할 수 있었지만, 정권의 더 큰 물리적 탄압은 정확히 이것마저도 고립시키고 해체시키려 할 것이다. 왜냐하면, ‘공세적인 국정운영’을 천명한 정권의 입장에서 이에 걸림돌이 될 만한 운동진영에 대한 탄압의 가장 현재적인 방식이 바로 이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기륭ㆍ이랜드ㆍKTXㆍ코스콤/성신여대 노동자들의 싸움이 남한 노동자 운동의 싸움일 수밖에 없으며, 노동자 운동이 승리해야만 하는 이유이다.

또한 이번 기륭 투쟁에서 우리가 눈 여겨 봐야 할 것 중에 하나는, 남한 자본의 해외이전이라는 문제이다. 사실, 기륭전자의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이 한 달에 받는 월급은 지극히 적은 금액이었기 때문에 “그 까짓 월급 얼마나 된다고, 그걸 안 주고 비인간적으로 저렇게까지 해고 하는가”라는 비난을 할 수도 있겠지만, 이는 사태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 한 것이다. 신자유주의 금융화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주주들의 주요 목적은 노동자의 임금 몇 푼을 절약하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몸살을 줄이고 구조조정하는 그 ‘과정’ 자체만으로도 주식의 가치를 일시적으로 반등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러한 구조조정이 전 세계적인 신자유주의 금융네트워크 및 이에 철저하게 포섭되어 있는 다층적인 하청체계의 선을 따라 이뤄지는 것이라면, 기륭전자뿐만 아니라 구로공단ㆍ창원 등지의 제조업 중심의 중소기업들이 이미 동남아ㆍ중국을 비롯한 해외로 공장을 이전시키고 있다는 것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가 강제하는 불안정노동의 일반화가 낳고 있는 경향 속에 기륭투쟁이 자리 잡아 왔다는 것이며, 이는 앞으로도 여기저기서 끊임없기 제기될 문제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투쟁의 전략이 남한 노동자운동에게 요구되는 것이기도 하다.

앞서 확인한 바 있듯이, 정권의 공안탄압/운동진영탄압은 남한 노동자운동의 실천적인 무기력 속에서 가능한 것이다. 이미 ‘공세적인 국정운영’ 운운하면서 이런 움직임들이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보이는 올 해 가을, 남한 노동자운동은 다시 한 번 자신의 시험대에 올라 있다. 바로 기륭투쟁이 그것이 될 것이다. 기륭 조합원들이 도심의 cctv 철탑에서 고공시위를 전개하고, 그야말로 몸과 마음의 뼈를 깎는 살인적인 단식투쟁을 전개하면서 다시 이른바 ‘사회적 여론’을 타게 되자, 사측에서는 “이만큼 사회적 관심이 집중 되었을 때, 너네가 적당히 양보하여 추석 전에 끝맺는 것이 좋을 것”이라면서 노조에 대한 협박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기륭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은 절대 이대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이미 아주 긴 시간동안 진행된 ‘기륭 투쟁의 승리’가 과연 무엇인가에 대한 의견은 운동주체들 저마다 조금씩 다를 수 있겠지만, 적어도 사측에서 함부로 말하는 것처럼 ‘적당히 양보’하여 끝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분회장 동지를 비롯한 조합원들이 목숨을 걸고 단식투쟁을 진행한 것이 아닐뿐더러, 단적으로 말해서 기륭 투쟁을 중심으로 “단위사업장을 넘어서는 […] 희망을 던”지기 위해 <비정규직 철폐를 위한 만인 선언ㆍ만인 행동>을 준비하고 있다. 무엇보다 기륭 노동자를 비롯한 비정규직 투쟁을 함께 하고 있는 이들이 지금의 싸움을 이렇게 끝 낼 추호의 마음도 없는 것이다. <만인선언ㆍ만인행동>은 9월 11일 저녁 6시, 서울역 앞에서의 ‘1차 예비 행동’을 시점으로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간다. 기륭 투쟁은, 비정규직 투쟁은 이제 다시 본격적으로 시작인 것이다.

Posted by 행진

2008/09/10 12:07 2008/09/10 12:07
, ,
Response
받은 트랙백이 없고 , 댓글이 없습니다.
RSS :
http://stulink.jinbo.net/blog/rss/response/126

Trackback URL : 이 글에는 트랙백을 보낼 수 없습니다

박행난 (금속노조 남부지역지회 기륭전자분회 조합원)


사용자 삽입 이미지
오늘 기아자동차 비정규직지회 여성의 날 행사에 갔다가 시그네틱스지회 투쟁이 담긴 <얼굴들>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늘 만나는 시그 동지들이 집안일과 투쟁을 힘겹게 하는 모습을 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2005년에 투쟁을 막 시작했을 때, 고3이던 작은 딸에게 물질적으로는 물론이거니와 정서적으로도 아무 것도 해주지 못했던 기억이 많이 난다.

2005년 8월, 파업을 처음 시작했을 때는 집에서 협조를 많이 해줬다. 하지만, 1년 반 정도 지난 지금은 눈치가 많이 보인다. 애 아빠는 그만두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꺼내기도 했다. 애 아빠도 금방 끝날 줄 알았는데, 길어지니까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다. 애들 할머니가 편찮으셔서 더 힘들어하는 것 같다. 또, 아이들 교육이며 집안에 들어가야 할 돈은 많은데 그걸 혼자 다 감당하려니 힘든 모양이다. 그래도 애들이 착하고 많이 이해해줘서 고맙고 투쟁하는데 큰 힘이 된다. 많이 도와주고 내가 밖에 나가서 다칠까봐 늘 걱정을 한다. 그래서 애들한테는 많이 미안하다. 얼마 전, 딸애가 졸업식인데 나에게 말을 안 하고 혼자 다녀온 것을 뒤늦게 알고 마음이 많이 아팠다. 아침에 출근투쟁 때문에 일찍 나와야 해서 애들 얼굴을 못보고 나오는데, 그래도 꼭 밥상은 차려놓고 나오려한다. 얼마 전 한 쪽 손을 다쳤는데, 나머지 한 쪽 손으로 빨래를 하다 보니 문득 서글픈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내가 여성이라는 것은 집 안에서 뿐만 아니라 일할 때 처절하게 느꼈었다. 특히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라는 것은 정말... 나는 기륭전자에 들어오기 전까지 정규직으로 일을 했었다. 그때는 아파서 병원에 가는 것이든 경조사가 있든 마음 편하게 휴가를 쓸 수가 있었고 현장 분위기도 가족적이었다. 그런데 기륭전자는 몸이 아파도 경조사가 있어도 해고의 위협 때문에 휴가도 마음대로 쓸 수가 없고 동료들끼리도 살갑게 얘기조차 하지 않았다. 생리휴가는 꿈도 꿀 수 없었다. 자식들과 함께 살아가야하는 엄마의 입장은 안중에도 없는지 여성노동자들을 문자 하나로 자르는 일이 많았다. 심지어는 신체적인 이유까지 언급하면서 해고를 했다. 월급은 또 어떻고. 정규직으로 일할 때는 한 달에 잔업을 40시간만 해도 100만원이 넘었는데, 여기서는 80~90 시간을 해도 100만원이 안되었다. 같은 일을 하는데도 불구하고 남자 직원과 임금의 차별도 있었다. 정규직일 때는 마음의 여유가 있었는데, 비정규직으로 일하면서는 버는 돈은 얼마 안 되고 체력은 딸렸다. 밤늦게 까지 일하고 집안일 까지 하고나면 정말 입에서 단내가 났다. 무엇보다 견디기 힘든 것은 모멸감을 느끼게 하는 대우와 비인간적인 해고였다. 그래서 투쟁에 나서게 되었다. 우리는 짐승이 아니라 인간이기 때문이었다.

투쟁을 하면서 기쁜 일, 통쾌한 일도 많았다. 현장 안에서 농성을 할 때, 사측에서 우리를 셔터로 가둬놓았었다. 나는 그 위 6개월 동안 불면증에 시달릴 만큼 갇혀있는 것이 고통스럽고 공포스러웠다. 그 때, 언제인가 한 번 한 조합원이 그 셔터를 발로 뻥 차는 것을 보고 나도 따라 뻥 찼는데, 얼마나 시원하던지! 2005년 10월 17일, 공권력 침탈로 현장농성이 중단되고 경찰서로 연행이 되었었다. 그 때, 알몸 수색을 거부했던 일이며 깨끗한 화장실을 이용할 권리, 신문을 볼 권리 등을 요구하고, 나올 때 교통비까지 받아갖고 나온 일은 정말 통쾌했던 일이다. 하지만, 경찰서에서 나오자마자 처음으로 설치했던 우리들의 천막을 용역과 전경들이 부수었던 것은 정말 가슴 아픈 기억이다. 투쟁을 하면서 무엇보다 기뻤던 일은 전국의 노동자들을 많이 만난 것이다. 특히, 코롱, 하이닉스, 하이스코, 한국합섬 등 장기투쟁 사업장 동지들은 서로의 마음을 잘 알기 때문에 큰 힘이 되었다. 우리도 힘들지만, 다른 사업장 동지들을 보면 마음이 많이 아프다. 우리도 그렇지만, 다른 장기투쟁 사업장 문제도 빨리 해결이 되어 그 동지들이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동안 기륭 투쟁에 물심양면으로 연대해준 동지들에게도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며칠 전, 내 생일이었다. 그 날, 오후에 집회가 있었는데 김성만 가수가 축가를 불러주고 조합원들이 케익을 준비해주었다. 노래를 듣는데, 여러 가지 생각이 스치고 지나가면서 눈물이 났다. 또, 조합원들이 연락을 했는지 내가 아끼는 많은 연대동지들이 알고 축하메시지를 보내주어서 참 기뻤다. 다들 힘들 텐데, 정성껏 생일을 챙겨준 우리 조합원들과 연대 동지들에게 고마운 마음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지금 우리 기륭분회는 대오가 그리 많지 않다. 일을 못하게 되면서 다들 방세며 전기세, 전화세도 못내는 힘든 생활을 하고 있다. 자식뻘 되는 회사 용역이나 전경들과 싸우고 그러다가 다칠 때는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을 때도 있었다. 특히, 지난해 3월 6일 회사 용역들의 폭력과 회사에서 하루 종일 쏘아댄 물대포, 그리고 이를 방관하던 경찰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치가 떨린다. 그렇지만 우리 조합원들은 노동자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 차별받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없는 세상을 위해 열심히 투쟁하고 연대도 열심히 다니면서 550일이 넘는 투쟁을 하고 있다. 조합원들 모두가 밥 잘 챙겨먹고 힘을 냈으면 좋겠다. 오늘, 집회를 하는데 지나가던 한 시민이 우리 조합원 아가씨들을 보고 나이 들어 보인다고 해서 속이 상했다. 정신적으로도 물질적으로도 여유 없는 투쟁이지만, 우리 조합원들이 건강도 잘 챙기고 피부에도 신경을 썼으면 좋겠다.

“헤일 수 없이 수많은 밤을 내가슴 도려내는 아픔에 겨워 얼마나 울었던가 동백아가씨. 그리움에 지쳐서 울다지쳐서 꽃잎은 빨갛게 멍이 들었고...”

우리 비정규직 여성노동자의 삶이 이미자의 노래에 나오는 동백아가씨처럼 오늘은 아프고 ‘멍’ 투성이지만, 오늘 단결되어 열심히 투쟁하는 우리가 있기에 반드시 기쁜 내일이 올 것임을 믿는다.

Posted by 행진

2007/03/20 18:21 2007/03/20 18:21
, , ,
Response
받은 트랙백이 없고 , 댓글이 없습니다.
RSS :
http://stulink.jinbo.net/blog/rss/response/33

Trackback URL : 이 글에는 트랙백을 보낼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