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화되는 재정적자,
위기의 도화선이 될 것인가?




지방정부의 빚잔치

지난 7월 12일 경기도 성남시 이재명 시장은 LH공사와 국토해양부에 갚아야 할 5200억 원이 없다며 채무지급유예(모라토리엄)를 선언했다. 경기도에서 재정 자립도가 가장 높아 이른바 ‘부촌’으로 불리던 도시에서 발생한 일이었던 만큼 사람들의 충격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성남시 발전연합회는 시장이 시민의 불안감을 조성하는 정치쇼를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행정안전부 역시 성남시 상황은 ‘과대포장’된 것이라며 시장의 ‘섣부른 행동’을 공식 비판했다. 여기저기에서 성남시 시장의 충격적 선언에 맞대응했지만 충격적 사실 그 자체는 변하지 않았다. 성남시의 빚은 여전히 5천억 원이며, 성남시는 현재로서 그 빚을 갚을 능력이 없다.
그러나 문제는 성남시뿐이 아니다. 대부분의 지방자치단체들이 성남시와 비슷하거나 그보다 더한 부채문제를 겪고 있다. 제 2, 3의 모라토리엄 선언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것도 이 때문이다. 2010년 현재 전국 지자체들의 부채 규모는 거의 100조 원 가량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는 국가 전체 예산의 3분의 1을 넘어서는 막대한 액수이다. 특히 인천시 같은 경우는 부채가 거의 3조까지 늘어나 예산규모의 30%에 육박하여 제 2의 성남시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지방 공기업의 부채 문제도 만만치 않다. 지방 부채 중 지방공기업의 부채는 약 42조 정도이며 이는 공기업 전체 예산의 140%에 달하는 금액이다. 더군다나 지방공기업 세 곳 중 하나는 부채비율이 300%가 넘어선다.
지방자치단체들의 재정자립도 수치는 더욱 가관이다. 전국 지방자치단체들 중 80% 가량이 재정자립도 50%를 넘고 있지 못한 상황이다. 지자체로서는 예산의 반 이상을 지원받거나 빌려오지 않는 이상 운영이 불가능해지는 것이다. 특히 군 단위는 열에 아홉이 30%에도 못 미치는 재정자립도를 보이고 있다. 심지어 전라남도 내 지자체 자립도는 평균 11%에 불과하다. 게다가 지자체들의 재정자립도가 1997년 이후로 지속적인 하락 추세 놓여 ‘자치단체’로서 지속 가능성을 위협받을 수 있는 도시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자료 : 행정안전부, “지방자치단체 예산개요"




어쩌다 여기까지 왔는가?

보다시피, 지방재정의 경향적 부실화와 지역 간 재정 불균형 현상은 이미 우려의 수준을 넘어섰다. 이 쯤 되었으면 어쩌다 지방정부가 이 모양이 되었는지 따져봄 직도 하다. 대다수의 재정 전문가라는 사람들은 지방정부의 방만한 재정운영과 비전 없는 지자체 운영으로 현재의 위기가 발생했다고 이야기 한다. 공무원들이 해외 탐방이랍시고 호화여행을 다녀온다거나, 청사신축에 수천억 원을 쏟아 붓는다거나, 공약 지키겠다고 온갖 선심성 행정을 남발하는 행태들이 바로 방만한 재정운영의 예이다. 비전 없는 지자체 운영이란 낮은 재정자립도를 극복하려는 지자체만의 특화된 전략 없이 관성적인 행정운영만 반복하는 지방 관료들의 행태를 말한다. 요컨대 돈을 벌어들여 재정자립도를 향상시킬 고민은 하지 않고 해외탐방이니 업무환경개선이니 하며 돈만 계속해서 축낸다면 재정위기를 겪을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그래서 이들은 철저한 긴축관리를 통한 세출 절감 및 감시제도 도입과, 지역별 특성화 사업을 통한 세출 증대를 대안으로 제시한다. 문제의 원인이 수입 없이 지출만 했기 때문이라면, 역으로 문제의 해결은 쓰는 돈을 줄이고 벌어들이는 돈을 늘리자는 나름 그럴듯한 발상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리 간단하지 않다. 현재의 지방정부 부채위기의 뒤에는 우리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을 것 같은 신자유주의적 금융세계화라는 거대한 괴물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통념과는 달리, 금융세계화는 고삐 풀린 자본이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민중을 착취하는 시스템이 아니다. 제국주의 시대의 서구 열강들이 노동력, 자원, 시장을 찾아 지구 구석구석을 찾아다녔던 것에 반해, 그리고 냉전 시기의 미국이 철의 장막 이편의 나라들을 모두 자본주의화 시키기 위해 온갖 공작을 일삼았던 것에 반해, 현재의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는 몇몇 세계도시(Cosmopolis)만을 쓸모 있는 공간으로 여길 뿐 지구 대부분의 지역들에는 별다른 관심을 갖지 않는다. 이러한 신자유주의의 요구에 따라 지역체계는 점차 재편된다. 한 국가 안에서, 깔끔한 국제공항과 회의 시설, 그리고 금융/통신/법률서비스로 무장한 세계도시가 형성되고 그 외의 도시들은 이로부터 분리된다. 전자는 후자와 운명을 공유하지 않는다.


금융세계화에 급속하게 편입 중인 한국 역시 마찬가지이다. 서울과 몇몇 수도권 도시들은 정보화/서비스화를 통해 나름의 세계도시적 자태변환을 시도하고 있는 반면에 그 외의 거의 대부분의 지역들은 이러한 흐름에서 배제되어 도태되고 있다. 세계도시까지는 아니더라도 (자유무역지구와 같은 반민중적 정책 등을 통해) 외자 유치에 어느 정도 성공한 경우가 간혹 있기도 하지만, 그 역시 매우 일부일 뿐 대다수 도시들은 활로를 찾지 못하고 쩔쩔매는 상황이다. 노무현 정부의 행정수도 이전과 지역 혁신 클러스터, 이명박 정부의 혁신 도시 등이 제기된 이유도 정확히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도태되고 있는 지방 도시들의 문제가 점점 심각해지는 상황에서 중앙정부 차원에서 제시한 나름의 해결책이 행정수도 이전을 통한 지역 균형 발전이나, 지방 특성화 사업을 통한 재정자립도 확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자는 실패했고 후자는 ‘나비도시’ 함평과 같은 소수의 케이스를 제외하고는 큰 효과를 보지 못했다. (배제된 자들의 경쟁으로서) 지역 발전 이데올로기는 남아있지만 지역 현실에 맞는 중장기적 발전을 위한 ‘수단’이 없는 상황에서, 각 지방정부가 택한 방법은 단기간에 가시적인 성과를 보일 수 있는 사업에 돈을 쏟아 붓는 것이었다. 지방자치단체들이 너나 할 것 없이 토목-건설 사업이나 전시행정을 경쟁적으로 수행하게 된 것도, 그리고 이로 인해 막대한 부채를 짊어지게 된 것도 이러한 사정에 기인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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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뿐만이 아니다.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의 흐름 속에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었던 금융위기는 현재 지방정부의 재정건전성에 결정타를 날렸다. 2007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지방정부는 침체된 경기를 회복하기 위해 막대한 비용을 쏟아 부었다. 대부분의 경기부양 자금들은 건설-토목 사업을 대폭 늘리는데 사용되었다. 부동산 시장을 활성화시켜 경기부양을 하겠다는 의도였다. 전국 14개 광역자치단체 산하의 도시개발공사가 발행한 채권 규모는 2007년 8000억에서 2008년 14조 8000억으로 1년 새에 약 14배 늘어났다. 특히 인천도시개발공사 같은 경우는 2008년부터 2010년까지 약 2년 사이에 3조 3천억 원 규모의 채권을 신규 발행했다. 이는 2008년 1600억 원 이었던 채권 발행 잔액보다 20배 이상 많은 액수였다. 게다가 이러한 막대한 세출은 경기부양을 위한 감세정책과 함께 이루어졌다. 2009년 한 해에만 지자체의 세출이 12조 2000억 원 증가한 반면, 세입은 7조원이나 감소했다.
문제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사실 건설-토목 사업을 대폭 늘려 부동산 시장이 활성화되고 경기가 부양되어 투자되었던 돈이 회수될 수 있다면 그만이다. 인천도시개발공사도 토지 및 아파트 분양수익으로 차입금을 갚을 수 있다고 호언장담하였다. 그러나 현실은 그와 정반대로 굴러가고 있다. 심각한 경기침체 국면은 벗어났다고 하나 부동산 시장은 낙엽이 나풀나풀 떨어지듯 살며시 낙하하고 있는 중이다. 인천도시개발공사가 착공한 송도국제도시 내 ‘웰카운티 3차’ 분양은 외국인 전용 120가구에 단 1가구만 청약이 들어온 상태이다. 성공을 장담한 것 치고는 결과가 너무 초라하다. 이제 지방정부로서는 정말로 빠져나갈 구멍이 없게 되었다. 성남시가 모라토리엄을 선언한 것도, 인천이 제 2의 성남시가 될 것이라는 예측도, 그리고 소수의 몇몇 도시를 제외하고는 지방 대부분의 도시들이 재정위기로 인해 심각한 곤란을 겪으리라는 예측도 모두 이러한 상황에 근거를 둔 것이다. 미래는 그리 밝지 않다. 




투쟁의 정당함, 투쟁의 유효함

상황이 이러니 누가되었든 해법을 내놓기는 내놓아야 한다. 보수주의자들처럼 전통적인 ‘작은 정부’론에 입각하여 공기업 민영화나 사회보장축소를 주장하건, 소위 재정전문가들처럼 수줍게 지역 특성화 전략과 세출감시제도를 제안하건, 우리에게는 솔직하게 위기를 인정하고 해결을 모색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러나 조금 억울한 감이 있다. 우리는 현재의 금융위기/재정위기가 모두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에 기인한 것임을 알고 있다. 그리고 그 신자유주의라는 것이 곧 돈 있는 자들의 아욕과 탐욕에 다름 아니라는 사실도 알고 있다. 그들은 평범한 사람들의 삶에 관심을 기울인 적이 없다. 지구 대다수의 지역이 ‘무방비도시’가 되고 인간의 삶에 ‘잔혹’이 일상화되어도, 코스모폴리스만 안전할 수 있다면 태평천국을 누릴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들이다. 그렇기에, 신자유주의자들에 대한 단죄 없이 위기 비용을 우리가 감당해야 하는 것은 부당한 일이다. 우리는 절대로 저들이 만들어 낸 위기에 책임을 질 필요가 없다(“We won't pay for their crisis!”). 그리스 노동자들이 사회보장제도를 후퇴시키는 긴축정책에 반대하여 벌이고 있는 투쟁과, 남한의 노동자들이 위기 비용 전가에 반대하면서 생존권 보장과 고용ㆍ성장 정책을 요구하는 투쟁이 그 어떤 해법보다 정당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그러나 노동자들의 요구가 정당하다는 것이 곧 유효하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신자유주의의 파괴적 몸부림을 제어할 합리적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 채 생존권 투쟁에만 머무른다면, 후안무치한 신자유주의자들과 무지한 재정전문가들을 넘어설 수 없다. 특히나 현재 재정위기의 심각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국가의 재정지출확대(‘서민경제 살리기’, 사회보장제도의 양적 확대 등)만을 요구한다면 우리에게 남는 것은 경제적 파산과 정치적 혼란뿐이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사회보장 축소나 공기업 민영화를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누진과세 확대를 통해 과세를 증대하거나 혹은 과세를 개혁하는 등 재정운용을 효율화하여 평등주의적인 정책을 쓸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많이 있다. 중요한 점은 노동자민중의 투쟁이 생존권 투쟁을 넘어 현재 금융위기와 재정위기의 메커니즘을 변혁할 수 있어야 하는 투쟁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것, 그래서 투쟁의 정당함과 투쟁의 유효함이 서로 만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자체이다. 그렇다면 이를 위해 구체적으로 무엇이 행해져야 하고 행해질 수 있는가? 답변의 시간은 많이 남지 않았다. 진보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그들 스스로를 무엇으로 생각하건 관계없이, 이 주제를 토론하며 위험을 감수하는 것은 그들의 몫이다. 발리바르의 말처럼 “실패한다면, 어떠한 변명도 필요 없을 것이다.”

Posted by 행진

2010/08/07 17:07 2010/08/07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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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된 G20 투쟁을 전개하자!




4차 캐나다 회의 결과

6월 28일 캐나다 토론토에서 막을 내린 주요 G20 4차 정상회의에서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재정건전성 강화를 위해 선진국들이 2013년까지 재정적자를 절반으로 줄이고 2016년까지 GDP 대비 부채비중을 줄이기로 합의했다. 이는 남부유럽금융위기에 직면하여 재정건전성에 주력해야 한다는 유럽의 의견을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공식발표문에는 "재정적자 감축 노력이 경기 회복을 더디게 할 수 있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는 문구가 들어가 남부재정위기를 해소하기위해 재정긴축이 시급한 유럽과 하루빨리 세계경제를 재편해야 자국경제의 붕괴를 막을 수 있는 미국이 재정정책을 두고 대치하고 있다. 또한 은행세에 대한 선진국과 신흥국 간의 갈등 역시 해결되지 못하고 있으며 은행세 안건자체가 폐기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이외에도 글로벌 무역 균등화, 중국 위안화 절상 등의 민감한 사안들이 거론되었지만 효력 없는 합의만 있을 뿐 실질적으로 진행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런 현실은 G20을 통한 국제적공조로 경제위기해소, 금융을 규제하겠다는 저들의 선전을 무색하게 만들고 있다.  지난해까지 주요국 정부들은 ‘전례 없는 국제 공조’에 따른 공격적 경기 부양으로 경제위기를 물리칠 수 있었다며 득의만만했다. 그런데 이런 모습을 이제는 찾아볼 수 없다. 지난 3차 회의 때만 하더라도 출구전략을 논의하던 지배계급들은 당장 터진 위기 앞에서 당황하며 출구전략 논의를 미루고 결정한 것이 고작 재정건전성확보, 재정긴축이 필요하다는 합의가 고작이었다. 캐나다 토론토에 모인 G20 정상회의도, 그리고 IMF도 ‘이제는 누가 뭐라 해도 재정건전성을 위해 힘쓸 때’입니다. 라며 해결책도 의지도 없이 그저 말뿐인 선언만 되풀이 하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저들은 지금까지 선언된 것들이 5차 서울회의에서 그동안 회의를 통해 합의된 결과물들의 구체적 방안이 도출될 것이라며 온갖 수사를 갖다 붙이고 있다.  하지만 벌써 4번이나 회의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경제위기해소와 금융규제를 위한 제대로 된 합의조차 이뤄내지 못한 G20이 갑자기 5차 회의에서 ‘선언’이상의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또한 각국들의 자국의 이익을 두고 팽팽한 대립하고 있는 상황에서 5차 회의가 진행되는 11월 즈음 이 상황이 극적으로 타개될 것이란 희망을 품는다면 이는 공상일 뿐이다. 이와 같이 G20은 어떤 것도 해결해주지 못하고 있지만 각 정권은 G20에 목을 매며 밑도 끝도 없이 G20만이 우리의 살길이라며 전 국민들이 G20을 올림픽처럼 환영해야함을 강조하고 있다. 그렇다면 저들이 이토록 G20을 고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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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20을 통해 노리는 것

각 정권은 G20정상회의가 경제위기를 비롯하여 모든 위기와 문제의 해결사인 마냥 홍보하지만 이는 환상일 뿐이라는 것은 지난회의 결과들이 증명하고 있다. 허나 더 큰 문제는 금융규제안에 대해서 내놓는 각 국의 안들이, 현재 위기의 원인인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를 억압하고 규제하는 것이 아닌, 오히려 진전시키려는 방향 속에서 설정되고 딱 그 수준에서 각 국의 이해를 도모하는 방식으로 대립하고 있다는 데 있다. 때문에 그 합의가 무엇이든 금융이윤을 보장하기 위한 저들의 기만은 계속될 것이며 한국에서 진행되는 5차 G20을 성대히 마친다면 우리에게 돌아올 것은 파국일 수밖에 없다. 그들이 말하는 위기극복이란 위기전가와 다를 바 없다. 지난 2차 런던 회의에선 ‘경기부양’이 핵심적으로 논의되면서 신흥개도국들을 지원하기 위한 1조 1천억 달러 출자가 합의되었고 이중 7천5백 불이 IMF에서 확충되었다. 즉 IMF를 통해 신흥개도국들에게 지원을 해주겠다는 것이다. 이는 기존에 IMF의 구제금융을 받았던 나라들이 대부분 신자유주의적으로 재편된 사실들만 보더라도 ‘지원’이라는 단어가 가지는 의미가 결국에는 G20국가들을 중심으로 한 강력한 세계경제 재편의 질서를 신흥개도국들에게 제시하면서 모든 고통을 ‘전가’하겠다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닐 수 없는 것을 우리는 97년의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또한 국제금융기구 개혁 등의 구체적인 사안들이 IMF와 기존 국제기구들에게 맡겨졌으며 이는 결국 국제금융기구의 자본과 기능을 강화를 하겠다는 것 그 이상 그이하도 아니다. 더불어 5차 G20정상회의 의장국인 한국은 스스로를 선진국과 개도국 사이의 ‘가교’로서 역할을 설정하면서, 개도국과 신흥국의 입장을 대변하겠다는 포부를 밝히고 있다. 이렇듯 의장국의 체면상 중립을 표방하고는 있지만, 사실 한국의 역할은 미국이 계획하고 있는 세계경제질서 재편 과정에서 미국의 입장으로 개도국을 잘 달래주는 것에 불과하다. 즉 G20으로 금융을 앞세운 국경 없는 수탈을 이름만 바꾼 채 계속 해나가겠다는 것이다. 이것이 3차 피츠버그 정상회의에서부터는 논의된 ‘지속가능한 균형성장’을 위해서 위기 극복 이후에도 글로벌 거버넌스로서 G20을 활용하는 것에 대해 각 국의 정상들이 한 치의 거리낌조차 없이 동의하는 이유이다. 이와 같은 G20의 5차 회의를 성대히 진행해야할 한국정부는 적극적으로 거리의 노점상을 몰아내 디자인 서울로서의 면모를 다지고, 이주노동자들을 단속하며 추악한 한국의 노동현실을 가리려 하고 있다. 또한 한국경제가 안정기에 접었으니 ‘금리인상’을 하라는 IMF와 OECD의 요구까지 모범국가답게 열심히 받아들이면서 서울회의 이전에 이를 추진할 예정이며, 지방선거가 끝나자마자 온갖 공공요금을 인상시키며 노동자민중에게 고통을 전가하는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물론 이렇듯 G20 스스로가 자신들의 기만성을 온몸으로 드러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G20에 자신의 삶을 맡기고 희망을 거는 사람들이 있다. 거센 금융위기에 몸살을 앓았지만 그래도 국민들이 ‘해내야 한다.’는 정부의 이데올로기 공세 역시 만만치가 않기 때문이다.


G20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는?

때문에 G20에 대응하는 우리의 투쟁은 그 목표와 방향이 명확해야만 한다. 하지만 우리의 모든 요구를 병렬적으로 나열하는 방식으로 투쟁을 진행한다거나, 독재, 반민주와 같이 현 정권의 정책에 대한 일반적 비판이나 G20회의테이블이 약소국 배제하는 절차와 체계를 비판하는 운동으로 G20투쟁의 내용을 채워갈 벌여선 안 될 것이다. 현재 국격 상승과 경제위기 해결을 내걸어 민중들에게 환상을 심으며 본질인 금융세계화 심화를 은폐하고 있는 G20의 본질적인 성격과 그 모순에 대한 비판을 해야만 한다. 그렇지 못한다면 G20 정부의 이데올로기 공세 속에서 국민들의 희망을 망치고 국익에 반하는 적으로 몰려 고립될 수밖에 없으며 G20의 본질을 흐리고 대응을 지지부진하게 만들뿐이다. G20이 정당성의 확보를 위해 여러 의제를 가져다 붙이고는 있지만 결국 자본과 정권 자신들이 몰고 온 금융위기의 비용을 세계적으로 전가시킴과 동시에, 금융시장을 더욱 더 탄탄하게 만들고 확장시키기 위해 만들어졌음을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 즉 위기의 원인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 자신들에게 수많은 이익을 가져다 준 금융세계화의 연명만을 논의하고 있는 곳이 바로 G20인 것이다. 이를 명확히 파악하고 운동을 만들 때 비로소 우리는 G20에 대항할 수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현재 민중운동진영 내에서의 G20대응투쟁은 금융세계화반대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G20을 ‘계기’로 투쟁을 벌여낸다는 것은 단순히 G20이 포괄하는 수많은 의제별로 대응하여 따낼 것은 따내고 반대할 것은 반대하자는 이야기부터 사람들이 분노할만한 내용으로 투쟁하자는 대중추수적인 논의들 그리고 11월 투쟁 중간에 거치는 일정정도로 G20을 사고하는 모습 등을 보이고 있다. 이는 아직 운동진영 내에서 G20에 대한 공동대응이 필요하다는 합의 이상의 논의가 진행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G20에 맞선 공동대응을 말하고 있으면서도 불구하고 의제에만 매몰되거나 G20의 핵심이 금융세계화 심화, 세계경제구조 재편에 있다는 사실을 간과된 채 각자 고립된 실천을 하려는 현재의 양상은 금융세계화에 대한 인식이 부재한 것에서 기인한다. 때문에 의제별로 잘 대응하는 것 말고 왜 G20에 맞서서 ‘공동’의 대응이 필요한 것인지에 대한 합의나,  어떤 대안을 제시할 수 있을지에 대한 논의로 까지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G20에 맞선 투쟁의 지지부진함이 지속된다면, 운동진영은 결코 민중들의 요구와 융합할 수 없으며 한 발 더 퇴보할 수밖에 없다.


금융세계화 비판을 핵심으로 두고 G20에 반대하는 강고한 투쟁이 필요하다!

G20정상회의로 세계경제질서를 좌지우지하려는 지배계급들의 새로운 판짜기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저들의 금융규제시도는 실패할 수밖에 없으며 만약 성공한다 하더라도 이는 구조조정, 양극화와 같이 민중들을 더욱 착취하는 구조로 드러날 것이다. 그리고 이는 현재 노조탄압, 이주민․노점상등의 탄압이 심화와 같은 형태로 강화되어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이에 대응하는 우리의 연대와 전략은 생각보다 강고하지 못하다. 만일 G20에 맞선 투쟁이 일회성으로만 그친다거나, G20반대투쟁의 의미를 잘 밝혀내지 못한다면 우리는 국격상승을 해치는 자들로서 공격당하며 또 다시 한 발 ‘뒤로’ 물러나야 할 판이다. 또한 G20을 두고 개입이냐 혹은 반대냐 혼란 속에서 우리의 선택은 G20에서 저들이 이루려는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 자체를 반대하는 투쟁을 벌여내는 것이 G20에 대한 올바른 개입이라는 것을 명심해야한다. 더 이상 노동자민중에게 물러설 곳은 없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한 걸음이라도 더 내딛을 수 있는 투쟁과 이를 뒷받침해줄 강고한 연대의 끈이다. 때문에 지금부터 우리는 G20에 맞서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어떠한 실천을 만들어 나갈지, 또 어떠한 쟁점을 만들고 어떻게 대답을 내릴지에 대한 고민을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신자유주의금융세계화에 반대하는 공동의 합의와 계획을 통해 곧 다가올 G20을 예비해야만 한다. 초민족적 자본의 수탈과 이를 옹호하는 G20이 고용없는 성장 속에서 전세계 노동자들의 임금을 삭감하고 빈곤층을 확산시킬 것임을 폭로하면서, 자본과 정권의 유지를 위한 ‘저들만의’ 협상에 반기를 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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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행진

2010/08/07 16:52 2010/08/07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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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유연화 심화시키는
파견확대시행을 중단하라!


 지난 6월 24일 윤증현 기획부장관은 ‘하반기 경제운영정책’을 발표하였다. 여기에는 파견범위를 조정하겠다는 내용과 함께 알선수수료 상한제 개선, 고용지원센터와 구직정보 공유, 위탁단가 현실화 등 민간고용서비스 규제 완화와 대형화, 전문화에 대한 계획을 담고 있다. 이를 두고 파견범위 조정이 아니라 확대시행이 아니냐는 얘기가 나오고 있으며 곳곳에서 이번 발표에 반대하는 기자회견이 진행되기도 하였다. 그러면 이처럼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파견확대와 관련하여 그 내용이 무엇인지 살펴보면서 문제점들을 짚어보자.

 우리나라에서는 1997년 IMF 이후 파견법이 시행되었다. 이름은 ‘근로자파견법’이지만 파견노동자들을 보호하기는커녕 불법파견과 위장도급 형태의 불법, 편법적인 노동자파견을 급속히 확산시켜 법제정 이유가 곧바로 무색하게 됐다. 간접 고용노동자들을 저임금으로 활용하면서도 사용자로서의 법적 책임까지 간단하게 회피할 수 있는 이 같은 악법은 13년째 이어져 오고 있는 것이다. 결국 기업들의 효율적인 운영과 탄력적인 노동력 사용을 위해 시작된 파견법의 결과는 대규모 구조조정으로 인한 해고와 대부분의 일자리가 비정규직으로 채워지는 형태로 드러났다. 그런데 이런 파견법의 범위를 현재 제조업과 건설업을 제외한 32개의 업종에서 홍보도우미와 단순 제조업무, 종사원, 택시운전원, 전기전자 부품조립원 등 최대 17개 업무에서도 파견이 추가로 확대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또한 하반기 경제운영계획 발표 이후,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와 고용서비스발전위원회는 ‘공공고용서비스 강화 및 민간고용서비스 활성화를 위한 합의문’을 채택하였다. 합의문의 내용을 살펴보면 공공부문에 2012년까지 통합일자리정보망을 구축하여 여러 곳에 산재해 있는 공공부문 일자리 정보를 한 곳에서 통합 검색 할 수 있게 만들겠다는 것이다. 민간부문에서는 ‘종합인재서비스업’을 활성화하여 구인구직-직업정보제공-직업훈련 등 상호 밀접한 연관이 있는 고용서비스들을 원스톱으로 이용할 수 있게 하겠다는 계획이다. 2012년까지 사회복지 통합망과 고용정보망의 연계가 추진될 경우 고용·복지의 통합서비스가 가능해지고 업무 효율화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2011년부터 구인기업에 대한 직업소개요금을 자율화하고 구직자로부터의 요금징수를 금지함으로써, 민간 직업소개 시 발생하는 비용의 현실성을 반영해 구직자들에게 발생할 수 있는 경제적 부담을 방지될 수 있다고 선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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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정부의 이같은 방침에 대해 파견법‘확대’ 시행을 ‘조정’이라고 말하며 말장난을 하고있다는 반응들도 많다. 또한 정부의 이번 발표에는 공공연하게 제조업까지 파견을 허용해야 한다는 입장을 담고 있어 정책에 대한 반발이 더욱 거세지고 있다. 지금도 곳곳에서 불법파견이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의 이와 같은 발표는 불법파견을 합법적으로 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결국 자본의 편에서 노동력을 그들이 원하는 수준만큼 더욱 탄력적으로 유연하게 이용할 수 있는 기틀을 만들어 주겠다는 것이다.

 고용선진화 방안 역시도 정부가 선전하는 것만큼의 효과를 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들은 규제를 대폭 풀어 민간고용서비스업을 활성화하고 이를 통해 시장을 선도하는 고용서비스 기업이 육성되면 산업 전체가 활성화되고 고용촉진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고용서비스 산업이 발달하려면 직업소개 수수료를 높이거나 많은 노동자들이 사업장 이동을 해야 고용 서비스업이 돈을 벌기 때문에 고용구조는 더욱 왜곡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또한 구직자가 소개수수료를 내지 않도록 하겠다고 하고 있으나 기업은 이윤을 더 남기기 위해 채용 시 드는 비용이 결국 노동자 임금저하로 귀결될 가능성이 크다. 일자리 창출의 중간과정이 클수록 중간착취는 더 커지기 때문에 정부의 이같은 발표는 눈가리고 아웅하는 격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민간고용서비스 산업의 활성화는 일자리 불안정성을 확대하면서도 기업은 안정적인 인력을 공급받는 시스템을 만들겠다는 것이며 이러한 계획안에는 노동자의 안정된 일자리와 그들의 권리는 없다.

 지금까지 위장도급=불법파견=사내하청=간접고용의 무차별 확산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으면서 불법, 탈법을 밥 먹듯이 해온 사용자들에게 면죄부를 주는데 앞장서온 정부가 계속해서 저임금에 불안정한 일자리를 창출하면서 마치 이것이 지금의 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인 양 말하는 것은 기만이다. 노동자들에 대한 착취를 극대화하고 노동시장전체를 비정규직 일자리로 가득채운 형태로 재편할 파견업종 확대 시도 및 민간고용서비스산업 육성은 즉각 중단되어야 한다. 또한 지금 이 순간에도 불법·편법을 횡행하며 노동자들의 일할 권리를 빼앗아 가고 있는 파견법 자체에 대한 근원적 성찰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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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07 16:41 2010/08/07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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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지방선거, 무엇을 남겼나?


지방선거 결과 스케치_북풍 누른 노풍의 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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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류언론들과 여론조사 모두 한나라당 대세론을 이야기 했지만, 투표결과는 예상과 전혀 달랐다. 개표 전 기세등등하게 대거 당선을 예상한 한나라당은 참담한 표정이었다. 서울시장에서 오세훈 후보가 간발의 차로 당선된 것부터 시작해서 전체 기초단체장 당선자 수에서 민주당이 앞선 것까지 사실상 ‘이변’이 일어났다. 많은 언론들은 '북풍을 누른 노풍의 승리'라고 떠들어댔다. 언론은 안희정과 이광재, 김두관을 두고 노무현의 '좌희정', '우광재' 그리고 '리틀 노무현'이라 표현하기도 했다.  천안함 사건 이후 그 원인을 북한의 어뢰 공격에 의한 것이라고 공식 발표하면서 시작된 강경 대북제재는 ‘북풍’을 불어오기는커녕 한나라당에게 ‘역풍’으로 돌아왔다.

 진보정당들도 성적이 크게 나쁘지는 않다. 야권연대를 적극 추진했던 민주노동당의 경우 이번 선거에서 기초단체장 3명(창당 이후 첫 수도권 기초단체장), 광역·기초 의원 139명을 당선시키면서 기대 이상의 성적을 거뒀다는 평가를 하고 있다. 민주노동당은 현재 야권 단일 후보가 당선된 인천과 강원, 경남 등 3곳 광역단체와 서울 강서와 경기, 성남 등 28곳의 기초단체에서 민주당과 공동지방정부를 실험하기로 한 것에 기대를 걸고 있다. 진보신당의 경우 25명의 지방의원을 당선시켰다. 창당 2년이 지나지 않았다는 점과 1만 5천명 정도에 불과한 당세를 감안한다면 선전했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심상정 경기도지사 후보 사퇴 사건으로 혼란이 가중된 것을 비롯하여 중앙당의 불명확한 선거 전략으로 명분과 실리 모두를 얻지 못하는 불만족스러운 선거 결과에 대한 내부 평가가 지속될 전망이다.


반MB 표심의 확대, 국민의 선택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번 지방선거 결과는 현 정권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을 일정하게 반영하고 있다. 15년 만에 처음으로 54.5%라는 높은 투표율을 기록했다. 특히 청년층의 투표율이 증가했다. 선거과정에서 화두가 되었던 천안함 침몰 사건과 관련한 한반도 전쟁위협의 고조와 이명박 정권의 독단적 국정운영에 대한 반감을 ‘투표’로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상대적으로 분열된 보수층에 비해 진보ㆍ민주진영의 후보 단일화 전술이 효과를 발휘했음도 부정할 수 없다. 현 정권을 견제할 수 있는 현실적인 세력을 선택하려는 국민들의 심리를 후보 단일화라는 틀이 흡수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정권에 대한 중간평가의 성격을 가진 선거에서 여당이 패배한 것은 비단 이번 선거만의 일은 아니다. 2006년에는 당시 집권 여당이었던 열린우리당이 한나라당에게 큰 차이로 패배했다. 엄밀히 말해 이번 지방선거결과를 한나라당의 참패라고 보기 어려운 부분도 존재한다. 정당지지율로는 여전히 한나라당이 민주당에 뒤지지 않고 있고, 수도권 지역만 보더라도 한나라당이 여전히 안정적인 지지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한나라당 패배-민주당 승리라는 표면적인 결과 이면에 존재하는 것들에 대해 자세하게 분석할 것을 요구한다. 한나라당에 대한 심판 여론을 단순히 ‘민심의 진보화’ 혹은 ‘계급의식의 확대’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국민들의 ‘정권심판’ 요구는 탄탄한 토대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 대부분의 국민들은 민주당을 자신들을 대표할 수 있는 진정한 대안세력이라기보다는 집권 정당에 대한 현실적인 견제세력으로 사고하고 있다. 정당을 지지하는 기준이 집권 정당에 대한 반발에 머무는 한 언제든 상황은 역전될 수 있다는 것을, 김대중-노무현 정권 10년의 역사가 이미 말해주고 있지 않은가. 여당과 다르지 않은 야당이라는 여론이 광범위하게 확산되는 순간, 지지는 한 순간에 사라지고 말 것이다.

 때문에 현실의 모순을 근원적으로 해결하려는 진보진영은 대중들의 분노와 불만을 동원하여 선거에서 승리하려는 안일함을 넘어, 전반적인 삶의 불안정화와 비민주적 상황에 맞서는 확고한 이념과 대안을 모색하려는 흐름을 만들어야 한다. 여-야 할 것 없이 서민중심과 일자리 창출을 이야기 했지만 국민들에게 선거기간 반짝하는 공약 이상의 진지한 대안으로 받아들여졌을지는 의문이다. 선거 막바지로 갈수록, 타 정당에 대한 비난이나 후보이미지로 표심을 잡으려는 모습이 더욱 두드러지게 드러났다. 지금 당장은 이명박 정권에 대한 분노로 인해, 범야권에게 상대적으로 유리한 국면이 펼쳐지고 있지만, 구체적인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무능력한 모습을 보인다면 대중들은 곧 등을 돌리게 될 것이다. 진보진영은 현 정권에 대한 ANTI 세력으로 머물기보다는 경제위기와 불안정노동, 저임금과 불평등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는 세력으로 아래로부터 힘을 키워야 한다.

 그러나 이번 지방선거에서 진보정당들은 현 정권에 대한 불만을 동원하는 것과 정치공학을 통한 자리 얻기에만 열을 올렸다. 반MB연대에 대한 환상으로 진보정당으로서의 정체성을 상실한 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들의 우경화는 선거 이후 더욱 강화되고 있다.

정체성을 상실한 진보정당 운동 

 이명박 정권을 심판하기 위해 야권연대를 추구해야 한다는 ‘민주대연합’의 핵심은 민주당 주도의 후보단일화 전략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민주노동당은 이에 적극적으로 힘을 실었다. 민주노동당은 서울시장과 경기도 지사를 비롯한 수도권 지역 기초단체장 선거에서 민주당을 적극 지지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러한 활동의 결과로 민주당으로부터 구청장 후보 등을 양보 받아 당선되는 성과를 내기도 했는데, 이것을 마냥 ‘승리’로 평가하는 것은 정말 위험한 일이다. 민주당 집권 10년은 이명박 정권이 실행하는 정책의 토대를 닦은 기간이었다. 금산분리 완화, 한미 FTA 추진, 자본시장통합, 각종 기업에 대한 해외매각 등 한국 사회를 신자유주의로 깊숙하게 편입시킨 것은 김대중-노무현 정권의 작품이었다. 이들이 이제와 ‘왼쪽’으로 노선을 선회한 것처럼 선전하는 것은 아주 기회주의적인 모습이다. 이러한 이들의 본질을 알면서도 적극적으로 연합을 추진하는 민주노동당의 모습은 어쩔 수 없이 선택해야 하는 전술적 판단이라고 하기에는 도가 지나쳤다. 선거 이후 민주노동당의 행보는 더욱 우려스럽다. 이번 선거결과를 발판삼아 2012년 민주당과의 공동 집권과 공동내각을 구상하겠다는 이야기를 공개석상에서 서슴지 않고 내뱉고 있다. 일각에서는 진보세력과 자유주의세력이 당내에 공존하는 ‘미국 민주당 모델’을 생각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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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편 진보신당은 원칙 없는 반MB연합에 반대한다고 하면서도 5+4회의에 참가하고 지역별로 야권연대에 동의하는 등 혼란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결국에는 5월 30일에 경기도지사 후보였던 심상정 후보가 국민참여당 후보였던 유시민 후보를 지지하면서 사퇴를 공식선언하는 일이 생겼다.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한 노회찬 후보는 끝까지 입장을 고수했는데, 오세훈 후보가 간발의 차이로 한명숙 후보를 제치고 당선하자 단일화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많은 질타를 받았다. 선거 과정에서 보인 여러 가지 한계들로 인해 진보신당 내부에서는 중앙당의 방침과 대표들에 대한 불신과 불만이 표출되었고, 선거 이후 이를 수습하기 위한 방안들을 마련하는 중이다. 진보신당이 선거기간동안 여러 가지로 좌충우돌했던 것은 지방선거의 의의와 목표를 명확하게 설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생긴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민주대연합이 아닌 독자 행보를 하겠다고 호언장담 했으되, 진보신당의 정책이나 방향은 민주당의 그것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았다. 반신자유주의와 경제위기 책임전가 반대 등의 입장을 분명하게 내세운다기보다는 ‘복지확대’에만 초점을 맞추었던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선거 전략으로는 ‘진보정당’으로서의 명확한 위치를 확보할 수조차 없을 것이다.

 이러한 모습들은 진보정당에 대한 사표심리를 더욱 부추길 뿐이다. 한나라당 심판을 위해 일단 민주당을 찍으라고 주장하는 진보정당들은 스스로 무덤을 파고 있는 것이다. 신자유주의 세력과의 단절 없이는 민중들의 정치가 불가능한 것을 알면서도 정치적 이해관계를 위해 이 같은 이념을 희생시키는 것은 ‘진보정치’가 아니다. 노동자-민중의 정치세력화라는 목표 자체가 반MB연대에 의해 희미해지고 있는 상황, 대중운동들로부터 대안세력을 만들어가는 노력보다는 표심을 잡기에 급급한 모습의 진보정당은 대중들의 지지를 받을 수 없다.

신자유주의에 맞선 노동자-민중의 저항을 엄호하는 진보세력의 재정비가 필요하다!

 민주당이 지방자치단체장에 많이 당선됐다고 해서 민중들의 삶을 억압하고 빈곤을 확산하는 신자유주의가 역전될 리 만무하다. 한나라당의 부진에도 불구하고 하반기 이명박 정권의 정책기조는 변화하지 않을 예정이다. 소리 소문 없이 생존권과 노동권을 박탈당하는 이들이 전국 곳곳에 존재하고, 이에 저항하는 노동자-민중의 투쟁을 억압하는 폭력의 강도도 더욱 높아질 것이다. 소위 ‘국민의 힘으로 당선되었다는’ 민주당은 노동자-민중과 같은 길을 걸을 수 없다. 정부여당의 국정운영에 대한 견제역할 정도는 수행할 수 있지만, 큰 틀에서 현재 경제위기에 대한 민중들의 불만을 관리해야하는 이해관계는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현실적인 생존의 문제에서 상층중심의 야권연대를 통해 타협과 합의를 이어나가는 방식이 지속되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실리적인 이익을 찾으며, 잘못 잡은 손을 놓지 않으려 발버둥 친다면 진보의 미래는 없다. 초유의 경제위기 하에서 어렵더라도 대중적 투쟁을 엄호하면서, 장기적 전망을 가지고 분열을 넘어 단결을 구축하려는, 그야말로 ‘재정비’가 필요하다. 다시금 진보정당의 역할에 대한 원칙과 이념을 바로 세울 수 있어야 한다. 이는 더 이상 진보정당들만의 과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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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6/23 22:21 2010/06/23 2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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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



얼마 전 그리스에서 온 소식이 신문경제지면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지구 반대편에서 나타나는 이 ‘위기’는 유럽을 포함한 모두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총리부터 그리스의 국민들까지, 그들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앞으로의 세계경제의 향방을 좌우할 수 있는 중요한 것이기에 세계는 그리스를 주목할 수밖에 없다.

이미 그리스에서는 위기 비용을 뒤집어 써야 할 노동자들이 생존을 건 총파업을 시작했다. 3월 3일, 그리스 정부의 재정긴축안 발표에 따른 노동자들의 봉기이다. △부가가치세 인상(19%→21%) △공무원의 특별보너스 30% 삭감 및 복지수당 삭감폭 확대(10%→12%) △2010년 연금 동결 △유류세·담뱃세·주류세 추가 인상 등을 담은 추가 긴축안이 발표된 이후, 각 50만명과 200만명을 조합원으로 둔 그리스 공공노조연맹(ADEDY)과 노동자총연맹(GSEE) 등 양대 노총은 정부의 재정 긴축안에 반대하며 총파업에 나섰다. 아테네의 시내버스, 전차, 지하철, 교외철도 등 대중교통은 24시간 멈추었고, 교사들이 파업에 참여했다. 병원 역시 비상근무 체제로 운영됐고, 중앙·지방정부의 대민 서비스 업무도 오후부터 중단됐다. 그리스 인구 5명 중 1명이 일손을 멈추었다. 위기를 해결한다며 긴축재정을 하려는 그리스 정부의 모습에 최고 수위의 ‘반대의사’를 표명하고 있는 것이다.

노동자들의 파업, 그리고 이러한 파업의 시초인 그리스 위기는 어디에서부터 시작된 것인가? 그리고 이 위기가 내포하고 있는 함의는 어떤 것이기에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는 것인가?






그리스 위기의 시작


유럽 내에서의 경제통합이 긍정적인 효과를 발휘하는 것으로 보일 때, 그리스는 유럽의 외톨이가 되지 않기 위해 무리한 과정을 밟으면서 유로존에 합류했다. 국가 안의 재정적자와 부채의 규모를 숨기면서 단일화폐동맹을 맺기 위해 투기 세력들과의 연합을 꾀한 것이 바로 그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과 블룸버그에 따르면 그리스는 2001년 100억달러의 달러 및 엔화표시 채권을 발행하는 방법으로 채무를 졌는데, 이 채무는 국가부채로 잡히지 않았다. 그리스가 들어온 원금 100억달러로 골드만삭스와 통화스왑계약을 맺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그리스는 약 10억 달러의 이익을 본 것으로 알려졌다. 골드만삭스는 이 계약으로 그리스 정부로부터 3억 달러나 받았다고 계약에 정통한 은행가들이 전했다. 그리스 정부는 골드만삭스와 같은 국제 금융회사의 도움을 받아 첨단 금융상품과 회계기법으로 국가 장부와 통계를 조작하면서 재정적자나 공공부채의 규모를 속이고 유로존에 가입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유로존의 ‘환상’을 쫒아 유로단일통화권에 가입함으로 인해 그리스는 국가 차원의 통화정책을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단일통화인 유로화에 매여 있는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조치는 고작 정부 지출을 줄이고 세금을 높이는 일 뿐이다.








이러한 와중에 골드만삭스의 주도로 파생상품 전문가들이 그리스 사태를 활용해 돈을 버는 상황도 생겨났다. 상호 정보교환 등으로 그리스 경제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예측한 그들은 2008년 이후 그리스 국채에 대한 CDS(대표적인 신용파생상품인 신용부도 스왑. 투자 상품의 부도 시 손실 보상을 받기 위해 지급하는 일종의 보험료)를 엄청나게 사들였다. 그리스 국채 CDS는 당시만 해도 0.2%에 불과한 헐값이었는데, 그리스 위기가 불거지면서 CDS를 매입하려는 채권자들이 폭증하여 CDS는 3%에 다다랐다. 한편으로는 CDS를 고가에 팔고 한편으로는 헐값에 쏟아지는 국채를 매입하는 전략으로 돈방석에 앉은 것이다. 이것은 일종의 담합을 통해 보험 성격의 CDS를 투기적 거래에 활용하여 그리스의 위기를 더욱더 증폭시킨 사례이다.




<CDS(신용부도스와프(Credit Default Swap))이란, 국가나 기업이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채권을 발행하면 투자자들이 채권의 부도 위험을 피하기 위해 매입하는 보험증서라고 보면 된다. CDS를 판매한 금융회사들은 수수료를 받지만 부도가 발생할 경우 손실을 보전해줘야 한다. 거래되는 CDS의 프리미엄(가산금리)은 국가와 기업의 부도 리스크를 반영하는 신용등급과 동일하게 인식된다. 자세한 것은 전국학생행진 일반자료실『2009 경제위기대응 자료집』을 참고하시길.>




현재 그리스 정부는 긴축재정과 동시에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방안으로 국채발행을 실시하고 있다. 해외 금융기관들이 선뜻 그리스 국채를 매입하게 하기 위하여 3월 4일, (독일 국채금리보다 무려 3% 높은) 6~7%의 높은 금리에 50억 유로 국채를 발행하였다. 그리스 정부는 그렇게 조달한 자금으로 기존 부채의 이자를 상환해야 하는 입장이다. 그러나 이러한 국채가 또다시 ‘투기’의 위험을 불러오고 있는데, 이러한 위험성에 그리스 정부는 국채입찰 당시 '헤지펀드 금지령'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자산운용사, 연기금, 생명보험사 등의 기관투자자들은 국채를 장기 보유하는 경우가 대부분인 반면 헤지펀드들은 단기 차익을 노리는 경우가 많아 채권 가격의 급격한 변동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최근 헤지펀드들은 그리스 재정 위기에 대한 불안감을 키웠다는 비판 여론에 직면한 상태였다.

하지만 아무리 그리스 정부가 헤지펀드 투자 금지령을 내렸다고 하더라도 끊임없이 자태변환하며 이익을 내려는 투기세력들에게는 무용지물이다. 헤지펀드 투자금지만으로는 ‘투기’를 막을 수 있는 근본적인 해결이 될 수 없으며, 이는 위기를 전가 받는 민중들에 대한 기만일 뿐이다.



문제는 금융세계화이다!


한편 일각에서는 ‘공공부문의 비대화’를 그리스 위기의 원인이라 보는 시각이 있다. 사회보장비의 과다한 지출이 재정을 악화시키는 주된 요인이라는 것이다. 복지비용으로 지출되는 비용을 줄여 국가 재정을 확충하면 경제가 다시 되살아날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진짜 그럴까? 사실관계를 따져보면 경제위기는 국가의 재정구조에만 의지하지 않는다. 경제위기는 시장의 자율이 중시되는 신자유주의 국가에서도, 사회보장 망이 잘 구축되어있는 국가에서도 일어난다. 공공복지의 확대가 한 국가를 위기로 몰고 갔다는 분석은 (복지를 인기몰이에 활용한다는)포퓰리즘이라는 오명을 앞세운 보수진영의 책임전가일 뿐이다. 오히려 국가와 사회의 책임을 축소시키고 시장의 자율성을 확대시켜 ‘투기’가 활성화될 때, 세계의 많은 나라에서 도미노처럼 경제위기가 몰아친다. 기초적인 생활조건의 하나인 ‘집’이 없어 빚을 내어 집을 구해야만 했던 미국의 가난한 사람들이 파산당하고 금융시장에서의 혼란이 최고로 가중되었던 2008년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대표적인 예이다.

더불어 이러한 시각 하에 그리스위기 해결책의 하나로 제시되고 있는 공기업 민영화 역시 위험한 논리이다. 공기업을 팔아서 이로 인해 발생하는 이득으로 국가위기를 해결해야한다는 주장은 오히려 공공부문이 책임졌던 민중의 기본권을 포기하는 것이며 더욱더 철저한 자본의 논리로 대다수 민중의 삶을 파괴시키는 것이다. 이는 온전히 ‘자본’을 살리기 위한 해결책으로만 가능할 뿐, 전 민중을 위한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대안을 향한 움직임은 이미 시작되었다!


지난 달 말, 그리스가 지구 어느 편에 붙어있는지 모른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한마디에 또 한 번 누리꾼들이 조소를 흘렸다. 유럽발 금융위기와 관련해 이명박 대통령은 "이제 세계는 하나다. 그리스가 들어보기는 했지만 지구상 어디 붙었는지 모른다. 그런데 그런 나라가 문제 생겨도 우리 주가가 떨어진다"면서 "외국이 도와주고 싶어도 노조가 반대하니 나라는 어려워지고, 이것 때문에 (우리) 주가가 떨어진다"며 "우리나라는 직접 관계가 없다. 금융 거래도 없고 상품 파는 것 얼마 없다. 그래도 영향을 미친다"고 언급하면서 세계가 유기적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고 한다. 그렇다. 금융세계화는 모든 것을 초월하여 ‘위기’를 조성하고, 이러한 ‘위기’를 담보로 자신의 이윤을 챙기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반복되는 위기와 위기의 지연 속에 제 2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제 3의 그리스 위기가 우후죽순으로 폭발할 것이라는 것은 예상 가능한 일이다.

현재 그리스에서는 경제위기가 지속되면서 ‘고통감내 이데올로기’가 강하게 유포되고 있다. 그리고 이명박 대통령이 말했듯이 그리스의 자본 역시 ‘노동조합의 투쟁’이 경제위기의 원인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경제위기를 불러온 것은 열심히 일한 노동자들이 아니라 자본임을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한다.

그리스의 젊은 그래픽 디자이너인 조지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5백 유로[약80만원]세대입니다. 많은 사람이 그 정도밖에 벌지 못합니다. 우리는 먹고살기도 빠듯합니다. 그런데 이제 정부는 우리가 가져갈 돈을 더 줄이려 합니다. 유럽연합은 우리한테 경제 위기의 대가를 지불하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그런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우리는 싸울 수밖에 없습니다.”


시위 참가자들은 소리치고 있다.
“우리에게 희생을 강요하지 마라! 부자들이 위기의 대가를 치르도록 하라!”


지금 그리스에서 노동자들이 만들어가고 있는 ‘투쟁’은 바로 새로운 사회를 향한 움직임이다. 자본이 만들어 놓은 위기와 그것의 책임전가를 거부하고, 새로운 대안을 만들어나가는 과정을 노동자 스스로가 제시하고 실천하고 있다. 투기자본의 이윤추구에 노동자가 희생될 수 없다. 그리스 노동자민중이 소리치고 있듯이, 우리도 정당한 권리를 되찾기 위한 그들의 싸움에 지지의 목소리를 보내자.
“노동자에게 경제위기의 책임을 전가하지 말라!”

Posted by 행진

2010/03/15 21:12 2010/03/15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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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두헌 2010/04/06 18:55 # M/D Reply Permalink

    글씨체 알아보기 어려워요; 그리고 글씨도 좀 작은거 같아요;

[정세전망] 


왜 미국경제가 기침을 하면
한국경제는 몸살에 걸리나요?




1. 들어가며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후 미국을 중심으로 전 세계의 경제상황은 계속 요동치고 있다. 미국 발 금융위기로 시작된 현재의 위기는 실물경제에도 파괴적인 영향을 미치며 확산되고 있다. 위기의 진원지인 미국에서는 최대 자동차 업체인 제너럴모터스(GM)와 크라이슬러가 위기를 맞아 미 재무부에 자금요청을 하고 또 추가지원을 요청하고 있다. 경제위기에 대응해 오바마 정부는 ‘신뉴딜 정책’과 제로 금리를 기반으로 한 ‘무제한 달러 공급’을 핵심으로 하는 경기부양책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이미 수천억 규모의 금융 구제안이 시행중인 미국 정부가 재정적자를 감당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고, 이것이 금융위기의 2라운드 혹은 ‘디플레이션’으로 상황이 더욱 악화될 가능성도 있다. 또한 헝가리ㆍ크로아티아ㆍ루마니아ㆍ불가리아 등 동유럽 국가들이 집단 채무불이행(디폴트) 상태에 빠질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오면서 동유럽발(發) ‘2차 세계 금융대란’의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이들 국가가 서유럽 은행에서 대출받은 자금은 총 1조6000억 달러(국제결제은행 추산)에 이르는데, 만약 이들 국가가 연쇄적으로 채무불이행 선언을 하게 되면 서유럽 은행들의 부실채권은 급격히 늘어나고, 이는 다시 서유럽의 금융불안을 낳을 가능성이 높다.

최근 언론에서 계속해서 보도되고 있는 1,500원대로 치솟은 환율, 초민족자본의 탈출 러시, 외화유동성 부족 등 널려있는 악재들은 ‘제2차 금융위기’를 떠올릴 수밖에 없게 만든다. 이외에도 한미 FTA와 자본시장통합법으로 미국 중심의 금융세계화에 더욱 깊숙이 발을 들여놓으려는 한국으로서는 불황이 장기화될 것이며 동시에 미국보다 더욱 심각한 위기를 맞이하게 될 것이 뻔하다. 이 글에서는 왜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지를 한국과 미국의 경제관계의 역사를 훑어보면서 파악하고, 몇 가지 키워드를 중심으로 한국경제의 향방을 가늠해보도록 한다.

2. 한국과 미국 경제관계의 역사와 본질

한국이 미국과 정치ㆍ경제ㆍ군사적으로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아는 사실이다. 1945년 한국의 해방 이후 주변에 있던 소련과 중국은 현실 사회주의의 2대 강국이었고, 미국은 동아시아에 사회주의의 물결이 넘치지 않도록 전략을 세웠다. 경제적으로는 한국에 소비물품 중심의 원조를 하였고, 정치ㆍ군사적으로는 주한 미군을 배치하고 한국 정치에 대한 관여를 심하게 한다. 이것은 1950년대까지 이어지는 데 자본주의 세계의 최강국으로서 미국의 좋은 이미지를 보여주는 동시에, 한국인들의 당장의 배고픔을 면하게 하여 사회주의로 경도되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다. 한편 단순한 원조정책은 1960년대 이후 한국경제의 구조를 미국경제의 구조와 긴밀히 연관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이러한 방향은 지금까지도 한국 경제의 특징으로 남아있지만, 이후 세계 자본주의의 모습이 변화함에 따라 함께 변화해간다. 이것은 세계 자본주의가 호황에 있을 때에는 한국의 경제상황 역시 나아지지만, 현재와 같은 경제위기가 닥쳤을 때에는 ‘미국경제가 기침을 하면, 한국경제는 감기에 걸리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여기에서는 한국경제가 미국에 편입되어 가는 과정을 살펴봄으로서, 한미 경제관계의 본질이 무엇인지 살펴보겠다.

□ 1960년대 초~1970년대 말: 발전주의의 시대

냉전시기 동아시아가 사회주의권 국가들의 영향을 받지 않기 위한 가장 좋은 해결책은 바로 자본주의의 싹을 무럭무럭 기르는 것이었다. 이에 일본을 중심으로 동아시아의 경제구조가 확립되어 가는데, 한국ㆍ대만ㆍ홍콩ㆍ싱가폴은 ‘동아시아의 4마리 용’으로서 급격하게 자본주의 체제에 편입해 들어간다. 1965년 체결된 한일회담은 일본으로부터 차관을 받거나 수출자유무역지구를 설립하여 외국으로부터 직접투자를 받기도 한다. 이렇게 모인 자본을 바탕으로 군부독재정권이었던 박정희 정권은 ‘조국 근대화’라는 명목아래 강력한 국가 중심적 경제정책을 실시하였다. 이런 정책은 주로 자본을 집중하여 한 산업에 투자하는 방식이었고, 이로 인해 한국만의 독특한 기업형태인 ‘재벌’이 등장한다. 당시 추구했던 공업화의 내용은 1960년대 노동집약적 경공업에서 1970년대 중화학 공업으로 바뀌는데, 이러한 산업들은 미국ㆍ유럽ㆍ일본과 같은 세계자본주의의 중심부에서 발달한 산업들에 비해 이윤창출이 작은 부분들이었다.

한편 지금도 한국경제의 가장 큰 특징인 수출중심의 경제구조는 이 시기에 만들어진 것이다.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커다란 자국시장을 활짝 열어주되 한국에 시장개방을 강요하지 않았다. 한국은 적극적으로 수출주도 산업화 정책을 추진하였고 자국시장은 개방하지 않으면서도, 소비제품을 중심으로 미국에 대한 수출을 꾸준히 늘릴 수 있었다. 한국경제는 미국의 지원과 국가중심의 강력한 경제정책으로 신흥공업국(NICs)으로 발전하게 된다. 이러한 1960~1970년대의 한국경제를 일컬어 ‘발전주의 정책’이라고 부를 수 있다. 이러한 가운데 한국사회는 급격히 변하기 시작한다. 점차 노동자들이 늘어나기 시작하고, 농촌에서 유입된 인구로 도시인구는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그리고 국가 중심의 동원을 강화하고 자본주의 체제의 정당성을 입증하기 위해 ‘반공주의’가 강화된다. 이런 반공주의는 미국의 영향 아래 있던 자본주의 국가들에서 일반적으로 나타나던 이데올로기였고, 이를 위해 국가를 중심으로 한 폭력과 억압이 심화된다.

□ 1980년대~1990년대 중반: 미국의 개방 압력과 3저 호황

베트남 전쟁에서의 패배와 독일ㆍ일본 등 다른 자본주의 국가들의 추격으로 인해 미국은 최강대국으로서의 면모를 잃어나간다. 또한 경제가 계속 악화되며 1970년대 물가와 실업률이 동시에 올라가는 스태그플레이션이 발생하게 된다. 이에 미국은 1980년대부터 케인즈주의 경제정책을 포기하고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실시한다. 또한 쌍둥이적자(무역적자, 재정적자)에 시달리게 되자 미국은 무역적자를 해소하기 위해, 제 3세계 국가들에게 노골적인 경제적 압박을 가한다. 이는 라틴아메리카 등에서 경제위기를 기회로 미국 자본이 진출할 수 있는 가능성을 높이는 방식으로 경제구조를 바꾸어나간다. 물론 냉전이 지속되는 시기라 정치적으로 의미가 있던 한국은 라틴 아메리카와 같이 완전한 경제적 압박을 하지는 못한다. 한편 무역적자를 타개하기 위해 일본의 엔화를 평가절상하는 내용의 플라자협약은, 80년대 중반 한국에서 ‘3저호황’(저금리, 저달러, 저유가)으로 나타나게 된다. 즉 저금로 많은 자본을 빌릴 수 있고, 저달러로 수입 비용이 줄어들며, 저유가로 생산단가가 낮춰지게 된 것이다. 3저 호황으로 무역 흑자가 발생하기도 하는데, 이를 토대로 한국의 구조조정은 늦추어진다.

그런데 89년 폴란드를 시작으로 소련ㆍ헝가리ㆍ체코 등 동구 사회주의 국가들이 붕괴한다. 미국에 대한 한국의 정치적 의미는 퇴색하였고, 미국의 한국시장 개방 압력은 가속화되었다. 어릴 때 들어봤을 법한 무시무시한 수퍼 301조’는 미국이 불공정한 무역행위를 하는 국가에 보복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하는 조항이다. 그 ‘수퍼 301조 협약’을 89년 미국과 한국은 맺는다. 92년에는 자본시장이 개방되면서 미국계 초민족자본의 ‘국내 증권시장 투자‘가 가능해졌고,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이 타결되면서 농업 등의 분야가 대폭 개방된다. 95년 세계무역기구(WTO)가 출범하면서 이에 가입하였고, 96년에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을 하며 신자유주의 세계경제에 강력하게 편입해 들어간다. 이런 흐름들 속에서 세계화나 경쟁 같은 담론들이 강하게 유포되어 가고, 국내 법제도 역시 신자유주의를 주도하는 미국계 금융자본에 유리하게 바뀌어 간다.

□ 1990년대 후반~2000년대: IMF 구조조정과 금융세계화로의 편입

90년대 중반 이후 ‘4마리의 용’이라고 불리던 동아시아 국가들은 금융자본의 불안정성에 타격을 받게 된다. 97년 12월 급격히 줄어든 외환보유고를 지탱할 능력이 없었던 한국정부는 결국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한다. IMF 구제금융을 받는 조건으로 맺은 ‘IMF 구조조정 협약’을 계기로 한국경제는 이전과는 다른 체제에 진입한다. 즉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에 깊숙이 들어가게 된 것이다. 한국 주식시장과 외환시장은 거의 완전히 개방되었고, 한국기업에 대한 외국인 주식의 총 보유한도가 점점 증가하게 된다. 기업들에 대한 구조조정 과정에서 미국계 자본은 적극적인 투자/투기를 통해 헐값에 매입하게 된다. ‘바이 코리아’(Buy Korea)의 결과 투자자들은 엄청난 수익을 올렸고 그 수익률 또한 막대했다. 그 결과 외국인 보유 상장주식가액은 91년 당시 약 2.4조원 대, 97년 10조 원대였다가 99년에는 약 76.6조 원으로 대폭 증가하였다. 2000년 주식시장 거품이 거지면서 그 해 12월에는 약 56.6조 원까지 하락했지만 이후 다시 증가하여 04년 173.2조 원, 05년에는 급기야 260.1조 원에까지 이른다. 그리고 외국은행 자회사 및 외국증권사 현지법인 설립이 허용되었고, WTO 양허계획에 맞춰 각종 규제와 제도가 철폐되었다.

2003년 이후로 여러 국가들의 다자간 협상을 특징으로 하는 세계무역기구와 도하개발아젠다(DDA)는 제 3세계 국가들을 중심으로 저항에 부딪힌다. 이 때문에 국가와 국가가 직접협상(양자간 협상)하는 자유무역협정(FTA)이 증가하는데, 한국에서는 2004년 한-칠레 FTA를 시작으로 동시 다발 FTA를 추진하고 있다. 그 내용은 DDA가 포괄하는 협정의 대상과 개방 수위를 훨씬 높여, 한국의 경제구조를 완전히 바꾸는 것이다. 특히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를 주도하고 있는 미국과의 FTA는 한국경제의 구조를 완전하게 금융자본이 가장 쉽게 이익을 얻을 수 있도록 바꿔놓을 것이다. 한미 FTA가 시행된다면 이미 그 불안정성이 가시화된 세계 자본주의에 긴밀하게 통합하게 되며, 한국에서 초민족적 자본의 활동과 지배력은 더욱 강화될 것이다. 초민족적 자본의 이득 면에는 민중의 삶과 권리가 파괴되는데, 이미 IMF 이후 비정규직이 확대되는 등 노동 불안정성이 심화되었고, 복지제도가 공격 받으면서 빈곤층으로 분류되는 사람들의 수는 한국인구의 6분의 1에 가깝게 되었다.



3. 향후 한국경제는 어떻게 될 것인가?

위에서 한국경제가 미국경제와 긴밀하게 연관되는 상황을 역사적으로, 간략하게 살펴보았다. 이런 연관은 향후 한국경제가 나아가는 방향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인가? 물론 세계경제가 요동치고 주식시세가 급격하게 오르락내리락 하는 ‘롤러코스터 시세’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당장 하루하루의 전망도 내기 어려운 상황이다. 여기에서는 다만 몇 가지 키워드를 중심으로, 향후 경제위기의 방향을 예측할 수 있는 단상을 제시하도록 하겠다.

키워드 ① : 동아시아와 미국경제

1980년대 이후 미국 경제가 쌍둥이 적자에 시달리면서도 계속해서 세계 최강국으로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동아시아의 역할이 크다. 2000년대 들어 미국의 이중 적자를 메워주고 있는 메커니즘으로서 동아시아 외환보유고 증가에 기반을 둔 달러환류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이것은 동아시아에서 생산된 제품을 판매하여 얻은 달러가 미국의 증권시장에 다시 투자되거나, 그나마 안정적이라고 여겨지는 미국으로 자본이 도피하는 현상을 일컫는다. 동아시아는 이에 걸맞은 체계로 바뀌어 가는데, 기존의 신흥공업국에서 벗어나 금융자본의 유출입을 쉽게 하는 신흥시장으로 탈바꿈한다. 미국에 의한 달러환류가 가능한 이유는 미국의 달러가 다른 통화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치가 높은 것이고,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바로 미국의 발권이익(seigniorage, 액면가치와 발행비용의 차액)때문이다.

동아시아 달러환류 메커니즘의 중요성이 커질 수 있었던 이유는, 동아시아 국가들의 외환보유고가 1990년대 말 금융위기의 이후에 급격히 증가했던 데에서 기인한다. 이것은 동아시아 국가들이 정부정책상 외환보유고를 증가시키기 위해 통화안정채권이나 외평채의 발행을 통해 인위적으로 달러보유액을 늘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렇게 거대하게 늘어난 외환보유고는 집중적으로 미국 재무부 증권에 투자되었다. 이것은 역사적으로 동아시아의 지속적인 생산이 줄곧 미국 시장의 팽창에 의존해 있었기 때문이었다. 즉 미국 시장의 성장지속과 동아시아의 성장지속은 서로에 대한 긍정적 이해관계를 갖게 된다. 동아시아에서 외환보유고가 늘어나게 되는 주원인 중 하나는 미국에 대한 무역수지 흑자이면서, 또한 이를 가지고 미국 경제의 소비의 지속을 지탱해주는 메커니즘이 형성되는 것이다. 한편으로 IMF 구조조정 등으로 동아시아 지역에서는 세계적 금융위기의 가능성에 매우 취약하게 노출되어 있었지만, 이에 대비할 수 있는 장치나 제도가 매우 취약한 상황이다. 이렇게 금융위기에 매우 취약한 상황에서, 외환위기 가능성을 예방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자체적으로 외환 보유고를 늘리는 것뿐이었다. 이런 상황으로 인해 동아시아는 미국의 경제위기를 떠안는, ‘미국의 금고’로서 기능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런 메커니즘이 언제까지 이어질 수 있을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이미 미국 내에서도 경제위기가 심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언제까지 달러의 가치가 유지될 수 있는지 장담할 수 없다. 이는 수출달러 환류를 가능하게 했던 미국의 지위, 즉 세계자본주의의 최종 소비자로서 미국의 지위가 언제 소멸하게 될지 모른다는 뜻이다. 미국 재무부와 연준의 경제위기 극복방향은 은행에 대한 구제금융과 인수ㆍ합병을 주도함으로서 금융자본을 구제하고 있다. 이는 미국에서 정책기조가 약간 바뀌었다고 해도 여전히 현재의 위기를 몰고 온 ‘금융화’를 더욱 지원한다는 것으로, 근본적으로 신자유주의 체제는 바뀌지 않을 것이다. 이에 따라 미국에서 시작하는 세계 경제의 불안정성은 더욱 심화되고, 그 직격탄을 맞는 것은 미국 경제와 긴밀하게 연결된 동아시아일 것이다.

키워드 ② : 자본시장통합법은 한국경제의 돌파구가 될 수 있나?

장기화되는 경제위기 상황에서 한국의 5대 증권사를 미국 월스트리트의 투자은행처럼 거대한 ‘금융투자회사’ 로 만들어, 금융시장을 발전시키겠다는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자본시장통합법)이 지난 2월 4일부로 시행되었다. 07년 7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자본시장통합법은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에 관련된 기존의 6개법을 통합하고 관련 제도를 크게 바꾼 것이다. 자본시장통합법의 핵심은 지금까지 증권사ㆍ자산운용사ㆍ종금사ㆍ선물회사ㆍ신탁회사 등이 각각 판매하는 금융상품도 다르고 적용받는 법률도 달랐지만 이제 업종의 벽을 허물겠다는 것이다. 즉 증권사가 지금까지 선물사, 종금사에서 하던 일도 할 수 있고, 법에 규정되어 있지 않은 새로운 금융상품도 자유롭게 판매하며, 결제송금서비스도 할 수 있게 된다. 또한 CMA(자산관리계좌)와 같은 방식으로 노동자의 임금도 금융의 변화에 긴밀히 연결시켜, 증권사(투자은행)가 모든 노동자를 금융투자자가 되게 한다.

또한 이명박 정권은 자본시장통합법 시행의 후속조치로 각종 법령 개정을 추진하여 법 시행에 따른 제반조건을 보완하고,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의 분리를 완화하고 있다. 금융위원회가 발표한 <은행주식 보유규제 및 금융지주회사 제도 합리화 방안>(금산분리완화방안)의 요지는, 국내외 산업자본(기업)이 현재 4%로 되어 있는 시중은행 지분 보유한도를 10%까지 늘릴 수 있고, 국민연금 등 공적연기금이나 사모펀드도 일정 요건을 갖추면 은행을 인수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또한 증권회사나 카드회사를 자회사로 둔 금융지주회사가 제조업까지 자회사로 둘 수 있게 허용했고, 이에 따라 금융과 비금융회사들이 섞여 있는 기업집단(=재벌)이 금융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할 수 있게 된다. 지금까지는 기업과 금융회사가 함께 위험을 공유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지주회사는 금융회사와 비금융회사를 동시에 보유할 수 없도록 규제해 왔다. 하지만 금산분리가 완화된다면 재벌체제가 더욱 강고해지는 것은 물론 기업의 부실, 금융의 부실이 서로에게 전이될 수 있어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의 동반 위기 폭발의 가능성이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다.

금융시장 활성화와 금융투자기관 대형화를 초래할 자본시장통합법으로 한국에서의 금융화는 한층 더 강화될 것이다. 하지만 미국의 금융위기로 증권시장 중심의 금융세계화가 급격히 붕괴되어 이미 작년 미국의 5대 투자은행이 파산하거나 독자 생존을 포기했고, 자본시장과 투자은행 육성이라는 목표는 무색해진 상황이다. 이러한 시점에서 자본시장통합법은 한국경제의 돌파구가 될 수 있을 것인가? 지속되는 이윤율 하락과 금융거품까지 붕괴하고 있는 상황에서 금융시장 육성으로 한국경제가 독자회생할리는 없다. 이번 경제위기의 시발점이 통제되지 않는 파생상품의 확산으로 형성된 금융거품이었다는 점을 상기해본다면, 오히려 금융시장 육성은 금융위기의 위험도를 더욱 높일 것이다. 자본시장 육성을 통해 금융세계화에 때맞지 않게 편승하는 조치는 한국 경제의 불안정성을 확대하고, 민중의 생존의 위기를 심화시킬 뿐이다.

키워드 ③ : 한-미 통화스왑(SWAP)은 환율불안을 해결할 것인가?

2008년 10월 한국과 미국은 300억 달러 규모의 통화스왑(맞교환) 계약을 체결하였고, 이것이 치솟았던 환율을 크게 하락시키고 1000선을 붕괴시킨 코스피를 급반등시킨 계기가 되었다. 이 계약은 한국에 달러가 부족할 때 한국은행이 미국 연방준비기금(FRB)에 원화를 제공하면 달러를 받고, 계약만기 시에는 다시 빌린 달러를 돌려주고, 원화를 돌려받을 수 있는 것이다. 최대 300억 달러까지 이렇게 하는 것이 가능한데, 미국은 규모 확대까지는 아니더라도 기한 연장은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빌린 달러의 2%에 해당하는 금액을 수수료로 미국에 지불해야 한다. 이명박은 이러한 통화스왑계약을 체결하기 위해 미국 국채 매각 카드로 ‘협박’까지 했다고 하지만, 역으로 말하면 이제 통화스왑으로 인해 미국의 국채를 자연스럽게 매입해야할 상황이 되었다.

미국은 한국을 비롯해 브라질ㆍ멕시코ㆍ싱가포르와 통화스왑을 체결했고, 비슷한 시기 긴급경제구제책으로 쓰이는 7000억 달러 또한 국채 발행으로 해결했다. 이렇게 미국뿐 아니라 다른 국가에서도 달러가 중요시되면서 미국경제가 위기임에도 불구하고 달러강세를 지속시키고 있다. 위기는 당장 지연될 수 있겠지만 이러한 상황은 미국을 중심으로 서로의 배를 쇠사슬로 묶어둔 것과 같이 다 같이 재앙을 맞이하게 될 수 있다.

무엇보다 통화스왑은 환율불안에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외환사정이 호전되려면 현재로서는 그 유일한 길이 경상수지 흑자를 통한 외환확보인데 이에 대한 전망이 별로 밝지 않다. 지금은 1997~98년과는 다른 상황이다. IMF 구제금융 이후에는 원화의 평가절하와 수출 호조가 뒤따랐다. 미국 등 아시아 외 지역경제의 상대적인 안정 속에서 당시 막 붐이 일던 정보기술 제품의 대대적인 수출이 가능하였기에 대규모 무역수지 흑자가 발생한 것이다. 이에 반해 지금은 비록 원화가치가 하락했다 하더라도 다른 나라나 지역의 경제도 부진하여 수출이 크게 늘지 않거나 오히려 줄어들어 무역수지 흑자 규모가 얼마 되지 않을 것이다.


4. 무엇을 할 것인가?

한국정부와 자본은 한미 FTA 체결과 자본시장통합법 시행 등을 통해, 금융규제를 점차 완화가고 금융세계화로의 편입을 강행하고 있다. 한국경제는 더더욱 미국계 초민족적 금융자본에 종속되고, 해외 투자자들이 한국에서 자본을 유출시키면 환율이 급등하고 한국경제는 극도로 불안정해지는 상황에 처하게 될 것이다. 게다가 미국발 금융위기가 중첩되어 한국경제는 더욱 위험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금융위기로 인한 투자손실은 물론이고, 미국의 경기침체로 인해 무역적자가 증가하면서 외환위기가 재발할 가능성도 증가하고 있다. 이런 우울한 전망은 금융위기의 초반임에도 불구하고 벌써부터 한국경제는 벌써 환율인상ㆍ물가인상ㆍ신용경색ㆍ주식시장 하락ㆍ금리인상 등 심각한 상황에 놓여 있다. 본격적으로 경제위기가 발생하면 자본이탈ㆍ거대자본 파산 역시 예상할 수 있고, 이는 실물경제 전 부분에 걸친 고용불안과 임금 삭감으로 민중들을 고통스럽게 만들 것이다. 이미 IMF 때 우리는 ‘환란(患亂)’을 경험하지 않았던가?

주류 경제학자나 경제전문가들이 금융선진화를 이야기하며 미국경제로의 긴밀한 통합을 이야기하고 있는 현재, 이런 상황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혹자는 박정희 정권 시절과 같이 국가 중심의 경제정책을 실시하고, 이를 통해 실물(산업)자본을 키우는 것이 현재 필요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박정희 정권의 경제정책 역시 미국 중심의 세계 자본주의와의 긴밀한 연관 속에 가능한 것이었고, 이 시기에 만들어진 유산이 현재 위기의 원인이 되고 있기도 하다. 또한 이미 경제구조가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에 긴밀히 편입되어 있는 상황에서, ‘정부의 의지’만으로 상황을 역전시킨다는 것은 전혀 가능하지 않다. 한편 세계최강대국이 미국이 아닌 중국으로 이전될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 경제에 편입하는 것이 대안이라는 의견 역시 제시되고 있다. 2008년 7월말 현재 중국의 미국 재무부 증권 보유액은 5187억 달러로 외국인 보유액의 20%를 차지하고 있고, 2007년 말 미국의 대 중국 무역적자는 2562억 달러 수준이었다. 하지만 중국 금융이 양적인 면에서 크게 확대되었다고 하더라도, 이는 오히려 중국이 강하게 미국경제의 운명에 맞물려 있음을 보여주는 지표이다. 그것은 중국의 외환보유고의 상당부분이 대미 수출 시장 팽창에 의존하고, 이는 다시 미국 소비시장 팽창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경제 역시 다른 동아시아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미국의 경제 위기 부담을 계속 넘겨받으며 미국 경제를 지탱하고 있다. 따라서 중국의 성장은 새로운 최강대국이 형성되는 과정이 아니라, 그 양적인 팽창에도 불구하고 내부적으로는 매우 취약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미국경제와 긴밀하게 연관되어왔던 한국경제는, 현재 금융위기 속에서 ‘감기’를 넘어 ‘몸살’, ‘중병’에 걸릴 지경이다. 한미 FTA에 반대하고 미국에 반대한다는 목소리는, 사람들이 이야기하듯이 단순히 ‘반미감정’에 호소하는 일부 ‘반미세력’들의 이야기는 아니다. 현재 국가가 민중들의 삶을 책임지고 있지 못한 상황에서, 한미 FTA에 반대하고 미국에 반대한다는 목소리는 불안정한 금융세계화에 몸을 내맡기지 않겠다는 생존의 목소리이다. 현재 우리는 이런 목소리를 높여 나가며 한국과 미국의 부정적 관계를 끊어낼 방법을 찾아야 한다. 현재의 메커니즘이 만들어진 정확한 이유에 대해서 분석을 해야 하며, 근본적으로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를 넘어설 대안을 찾아야 한다. 이것이 현재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의 시작이다!

Posted by 행진

2009/03/11 13:51 2009/03/11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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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을 유지하기 위한 집안일, 가족을 돌보는 일, 아이를 낳고 기르는 일 등의 재생산노동은 가족과 사회가 유지되는 데 필수적인 일입니다. 그러나 그동안 '노동'으로 인정받지 못했으며, 정당한 보상도 받지 못했습니다. 대부분의 가정이 남성의 수입만으로 가계를 유지할 수 없어 맞벌이를 하는 요즘에도 여전히 재생산노동은 여성의 책임입니다. 또한, 가사에 대한 책임 때문에 여성의 저임금이 정당화됩니다.
최근 정부는 '사회서비스 확충전략'을 통해 재생산노동을 '사회화'하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여전히 저임금으로 또 다른 여성에게 전가되며, 여전히 여성의 책임입니다. 정부가 시행하는 이러한 정책에 반대한다면,우리는 누가, 어떤 방식으로 이를 책임지라고 해야 할까요? 재생산노동에 왜 주목해야하는지, 지금의 위기가 어떻게 가족/여성에게 전가되는지, 현재 정부의 관점과 정책은 무엇인지, 재생산노동의 '사회화'가 무엇인지 함께 고민해봅시다.


::프로그램
1교시: 재생산노동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2교시: 사회서비스 확충전략 비판을 통해 본 재생산노동의 사회화

::공부방 전에 미리 읽어보면 좋을 자료들
「근대적 가족형태 비판」『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의 현재성』 공감, 권현정
「재생산의 위기와 페미니즘적 경제학의 재구성」  중 1장, 4장, 권현정
「사회서비스 공공성 확대와 노동권 확보를 위한 과제」 사회서비스공대위 발족자료집
(「재생산의 위기와 페미니즘적 경제학의 재구성」논문과 사회서비스공대위 자료집은 행진 홈페이지 자료실에 등록되어 있습니다.)

대안세계를 향한 여성행진 http://club.cyworld.com/womenmarch


Posted by 행진

2008/07/14 15:16 2008/07/14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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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세계를 향한 여성행진 http://club.cyworld.com/womenmarch에서 진행한
여성주의 공부방 첫 번째 자료집입니다.


 

Posted by 행진

2008/07/14 15:13 2008/07/14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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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현대사를 어떻게 봐야 할까요?
- '2008, 한국현대사를 만나다' 총론 -



0. 들어가며

 한국 현대사는 많은 단위에서 진행하는 세미나/교양 주제입니다. 한국 현대사의 굵직한 시기에 맞춰(3. 8 → 4. 3 → 4. 19  → 5. 1 → 5. 18 → 6. 10 ) 교양을 진행하거나, 한 학기의 세미나 주제가 되기도 합니다. 운동성이 있는 단위들은 현대사를 새롭게 바라보고, 의식을 전환하기 위해서 학습을 진행합니다. 그 외에도 많은 단위들에서 최소한 한국현대사는 알아야 한다는 의식으로, 교양을 진행하곤 합니다. 대중교육의 커리큘럼에서 사회과학의 과소교육이 존재하고, 이에 대해서 한국현대사에 대한 교양을 진행하는 것은 일정한 의미가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현대사에 대한 학습을 진행하는 것이 단지 사실관계만을 훑고 지나가거나, 어떤 교훈집 정도로 끝나는 경우들도 있습니다. 역사의 총체로서의 현재라는 의미가 잘 파악되지 않고, 과거의 일들은 현재와 별로 상관없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진보적인 목적의식으로 현대사 학습을 진행하는 경우조차 민주 대 반민주의 구도로 짚고 넘어가며, 2008년 신자유주의가 고도화된 현재의 한국사회와 연관관계를 찾지 못합니다. 이런 경우 결론은 기껏해야 일반 민주주의자(GD)들이 이야기하듯이 지금은 형식적 민주주의를 달성되었으니, 신자유주의 속에서 실질적 민주주의를 더욱 강화시켜야 한다는 주장으로 그치고 맙니다. 2008년 현재 신자유주의가 고도화 된 상황에도 불구하고, 한국현대사를 살펴보는 것은 우리의 역사이기 때문에 훑고 지나간다는 당위 이상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학생사회에서 한국현대사 학습의 이론적-실천적인 무능력은, 물론 현대사에 대한 학습을 진행하는 단위들의 문제로만 돌릴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한국 현대사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던 연구자 집단의 무능력에도 일정정도의 책임이 있습니다. 1980년대의 폭발적인 대중운동은 활동가들과 연구자들에게, 마르크스주의적으로 역사를 해석하는 것을 시도하게 했습니다. 하지만 1990년대 한국에서의 마르크스주의의 위기로 인해, 이러한 역사해석들은 위기를 자초했던 한계들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마르크스주의의 대안처럼 다가오기도 했지만, 역사에 대한 일종의 허무주의나 미시사에 대한 집착을 낳을 뿐이었습니다. 진보적 역사해석의 무능력 속에서 뉴 라이트의 역사해석이 나오며 보수반동화 경향마저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신자유주의가 도입된 지 30년이 지나고 있고, 이명박 정권의 등장과 함께 2008년에는 신자유주의의 자태변환까지도 예상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방식으로 한국현대사를 바라보는 것은, 현재와 과거를 유기적으로 연결시키지 못하게 합니다. 또한 한국사회에서 커다란 단절이 있었다는 일종의 환상까지 유포할 수 있습니다. 단순한 교양이나 회고를 넘어서, 의미 있는 한국현대사의 재구성이 절실하게 요구되고 있습니다. 행진에서 추진하는 정책 사업인 '2008, 한국현대사를 만나다'는 이러한 재구성을 위해서 한국현대사에 대한 관점과 커리큘럼을 제공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사업은 지식 탐미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신자유주의를 넘어서는 대안을 만드는 실천들과 함께 해야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분량이 많기 때문에 더 많은 내용은 아래 파일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Posted by 행진

2008/02/26 22:40 2008/02/26 2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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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jh 2009/08/27 16:10 # M/D Reply Permalink

    파일 다운이 안 되네요ㅠ

  2. 행진 2009/09/08 14:50 # M/D Reply Permalink

    말씀해 주신 것처럼 현재 블로그에 첨부된 파일들이 정상적으로 다운되지 않고 있습니디. 급하신 내용은 요청하시면 메일로 보내드리겠습니다. 빠른 시일 내에 복구하도록 하겠습니다^^

- 전국대선학생투쟁본부

민생파탄이 경제대통령을 염원하고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 사진: 민중언론 참세상

대선이 막바지를 향하고 있는 가운데 ‘경제 대통령’을 내세운 후보의 독주는 온갖 비리 의혹과 정치 공방 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계속되고 있다. 한편 마지막까지 반전을 노리고 있는 개혁 세력은 온갖 합종연횡을 구상하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용을 써도 여의치 않아 초조해 하는 그들의 모습은 애처롭기까지 하다. 역대 대선 중에서 가장 많은 후보들이 출마했지만, 더 이상 이념도 정책도 대통령을 선택하는데 거의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저 경제 성장에 대한 막연한 기대, 경제 관료적인 이미지만이 혼탁한 선거판에서도 ‘표를 던저야 할 이유’로 남아있다.

10년 전 경제위기에 빠진 한국 사회를 구하겠다고 등장한 김대중 정권과 그 뒤를 이은 노무현 정권은 본격적인 신자유주의 재편을 진행해왔다. 하지만 신자유주의 재편은 경제위기를 해결하기 보다는 그것을 지연시키면서 부를 소수에게 집중시키는 한편 민생을 파탄에 이르게 하고 한국 경제의 상시적인 불안정성을 가속화 했다. 하지만 민중들의 불만은 지배세력 이전투구 속에 왜곡되고 교란되어, 경제에 무능한 ‘386개혁세력들’에 대한 불만으로 조직되어왔으며, 이에 대한 반대급부로서 유능하고 관료적인 카리스마를 지닌 지도자를 갈망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러한 열망은 2007 대선에서 ‘경제대통령’에 대한 염원으로 드러나고 있다.

경제대통령은 민생파탄을 해결할 수 없다!


그러나 이른바 ‘386들의 경제 무능’은 ‘경제대통령’의 강력한 경제성장 정책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민생이 파탄 지경에 이른 원인은 ‘고용 없는 성장’ 속에서의 비정규직의 확대, 공공서비스의 사유화로 빈곤이 확산되었기 때문이다. 이는 자본주의의 구조적 위기에 따른 장기불황이라는 조건에서 지배계급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선택한 신자유주의 금융 세계화의 결과이다.

이미 금융화 된 세계 경제에 깊숙이 편입한 한국사회의 조건에서 보수와 개혁을 막론하고 다른 선택지는 없다. 노무현 정권, 열린우리당, 한나라당이 쉼 없이 다투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공히 신자유주의 정책 기조를 공유하고 있었다. 지배 정치인 중 누가 차기 대권을 거머쥐든 경제성장 이라는 명목으로 초국적 금융자본의 이윤추구에 용이한 환경을 조성 하기위해 금융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을 보장하는 정부 정책과 사회적 보호 장치의 해체가 가속화 될 것이며, 일상적 구조조정으로 인한 비정규직화와 저임금화 역시 훨씬 강도 높게 추진될 것이다. 노무현 정부와 한 치도 다르지 않은 전략을 구상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능한 좌파정부 심판론’을 앞세워 민중의 삶의 문제를 해결할 것처럼 포장하고 있는 세력들은, 신자유주의 금융화가 낳은 생존의 위협 속에서 안정된 삶을 염원하는 열망을 자극해 인민을 동원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비정규악법 철폐투쟁의 전면화로 지배계급이 답할 수 없는 질문을!


이와 같은 지형 속에서 대선학생 투쟁본부는 2007년 대선이 ‘신자유주의적 보수화냐와 신자유주의에 맞서는 주체 형성이냐’라는 기로에 서있는 시기라고 판단하였다. 지배계급은 대선을 대중의 불만을 자신들에 대한 지지로 수렴시키는 장으로 만들기 위해 허구적인 쟁점을 중심으로 증발성 높은 인기몰이에 집착하고 있으며 이는 정치에 대한 환멸을 가속화 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심판해야 할 대상은 비단 노무현 정권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라는 전망을 공유하고 있는 지배계급과 대선 후보들이 되어야 하며, 이에 맞서는 투쟁을 전개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난여름 비정규직 보호법이 비정규직을 보호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폭로한 이랜드-뉴코아 노동자들의 투쟁은 비정규직 악법의 폐기 없이 비정규직의 문제가 해결될 수 없음을 증명하고 있다. 이러한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이어, 비정규직 투쟁을 적극적으로 대선 공간에 제기하여 정치 쟁점화 하는 것이 요구되었다. 그래서 대선학생 투쟁본부는 지배계급의 발전 전망인 금융화로의 편입이 노동유연화를 사활적 과제로 하고 있음을 폭로하고 이것이 철회되지 않는 한 민중들의 생존권은 보장될 수 없다는 것을 알려내기 위해 비정규악법 철폐투쟁의 전면화에 앞장서고자 했다. 또한 시민들과 학생들을 만나 비정규 악법 폐기와 이랜드-뉴코아 투쟁을 해결하기 위한 서명운동을 받으면서, 비정규직의 문제를 알리는 설문조사를 진행하면서, 그리고 민중들의 삶과 목소리를 담은 신문을 나눠주면서, 비정규직 투쟁의 절실함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신자유주의에 맞서는 주체를 형성하기위한 투쟁을 만들어 가자!


그러나 현재 경제대통령을 표방하는 후보의 지지율 고공행진이 보여주고 이는 것처럼, 지배계급의 성장을 통한 민생문제 해결이라는 이데올로기가 나라 경제가 망하면 국민들은 더 살기 어려워질 것이라는 위기감과 결합되어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이 보여주고 있는 것은 김근태의 말처럼 국민들이 ‘노망’이 들어서라거나, 우매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신자유주의의 파괴적인 결과에 대한 원인을 밝혀내고, 이것을 넘어서는 대안적 전망을 민중운동이 구축하고 있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혁세력에 대한 민심 이반이 진보진영에 대한 지지로 이어질 수 있다고 낙관하며, ‘진보적 성장’을 내세워 정책대결에 골몰하거나 득표율을 높이기 위한 외연확대 등에 치중하는 것은 반신자유주의 운동의 진전에 보탬이 되지 않는다. 우리는 이번 대선 투쟁에서 확인한 바를 평가하고 민중운동의 혁신을 통해 반신자유주의 투쟁을 보다 전면화 할 수 있어야 한다. 나아가 경제성장을 통한 분배(양극화 해소) 담론과 분배(내수 활성화)를 통한 경제성장 담론 양자 모두가 공유하는 성장-분배의 틀을 뛰어넘는 반신자유주의 운동의 전망을 민중운동이 함께 구축해나갈 수 있어야 한다.

만약 현재의 여론조사 추세대로 대선 결과가 나온다고 한다면, 08년에는 비정규악법이 중소기업까지 확대되고, 공공부문의 대대적인 구조조정이 예상되고 있다. 그리고 민중들의 삶은 더욱 불안정해질 것이고 이에 따라 대선주자들이 호언장담하던 신자유주의적인 민생 해법이 얼마나 허구적인지가 드러나게 될 것이다. 하지만 ‘경제대통령’ 이데올로기가 무너져 내리는 그 순간은 더 좋은 세상의 출발점일 수도 더 나쁜 세상의 출발점일 수도 있다. ‘신자유주의적 보수화냐와 신자유주의에 맞서는 주체 형성이냐’라는 기로는 이제 우리 앞에 더욱 선명하게 다가와 있다. 지배계급에 대한 기대의 좌절과 분노가 정치에 대한 환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신자유주의 모순을 인식하고 그것에 맞서는 주체가 형성될 수 있는 투쟁을 전개하자.

Posted by 행진

2007/12/18 21:41 2007/12/18 2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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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 세계화와 맞서기


미국 헤게모니가 처음으로 위기에 처했던 1970년 이후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가 현재까지 지속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자본 축적의 위기를 생산과 고용이 아닌 금융적 팽창으로 해결하려 하는 금융세계화는 IMF, 세계은행, GATT 등 국제 금융,무역기구들은 자본의 초민족화를 각국에 강요하면서 금융자본의 영역을 일국차원을 넘어서게 하는데 큰 역할을 하게 된다. 이같은 과정에서 기존의 좌파정당과 노조는 선거정치와 코포라티즘에 매몰되면서 제대로 된 대응은커녕 포섭되거나 오히려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선봉장이 되기도 하는 아이러니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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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WTO가 더욱 강력하게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추동하기 위해 나타나면서 대안세계화 운동이 맹아를 보이기 시작한다. 대안세계화 운동은 세계화에 대해 배타적인 자국산업보호주의와 어설프게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교정하려 한 ‘인간의 얼굴을 한 세계화’의 한계에서 벗어난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파괴적인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대항하여, 대안을 세계화하기 위한 다양한 운동을 다양한 공간에서 펼치고자 하는 대안세계화 운동. 그 대안세계화 운동이 어떻게 펼쳐지고 있는지를 살펴보도록 하자.

대안세계화 운동의 맹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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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세계화운동의 맹아가 된 사건을 들자면,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가 발효된 날인 1994년 1월 1일에 멕시코의 치아빠스 지역에서 봉기한 싸빠띠스따 민족해방군의 투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NAFTA로 인해 멕시코 혁명이후 80년 이상을 지속해온 토지공유테를 초국적 자본들의 토지 이용을 용이하게 하려는 이유로 폐지하여 주민들의 생존과 자치를 위해 봉기했던 것이었다. 이들은 멕시코 정부로 인해 고립되는 것을 막기 위해 자신들의 투쟁을 인터넷으로 세계에 알려내었다. 아래로부터의 투쟁을 강조하는 이들의 투쟁은 무기력하게 세계화에 휩쓸려가던 세계의 운동진영에 커다란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이후 이들은 자신들의 근거지에서 국제적인 회합을 개최, 세계 곳곳에서 벌어진 신자유주의 반대투쟁들을 매개하는 데 큰 기여를 했으며, 여전히도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이후 이러한 흐름은 1998년 OECD가 추진한 다자간투자협정(MAI)에 대한 전세계적인 공동행동으로 이어졌다. 단기성 투기까지도 투자의 권리로 인정하는 등 초국적 자본에 무한한 권리를 부여하려던 이 시도는 전세계적인 사회운동의 저항에 직면하여 결국 무산되는 크나큰 성과를 얻게 된다.

이러한 경험은 1999년 WTO의 활동범위를 대폭 확대시키는 뉴라운드의 출범을 무산시켜낸 ‘시애틀 전투’로 이어졌다. 목표, 위상 등 동일하다고 할 수 없는 다양한 단위들의 직접행동이 뉴라운드를 무산시킨 것이다. 이러한 직접행동은 이후 프라하, 제노바 등에서도 이어졌다.

세계사회포럼


시애틀 투쟁은 큰 성과를 남겼지만 해결해야할 여러 문제들을 안고 있었다. WTO에 반대한다는 점에서 비슷하게 보였던 시애틀 투쟁의 내부에는 신자유주의 자체에 반대하는 각국의 사회운동가들도 있었고, 중국이 WTO에 가입하게 되면 자신들의 임금 등 노동조건이 악화될 것이라는 예상하여 투쟁에 나섰던 미국노총(AFL-CIO)도 있었으며, 단지 ‘미국 중심’의 세계화에 반대하는 제3세계의 농민들과 노동자들도 있었다. 기본적으로 각자가 신자유주의에 대한 상이한 판단을 가지고 있는 조건 속에서 새로운 세계화의 전망과 이를 위한 운동이 안정적으로 보장될 수는 없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시애틀 투쟁의 성과는 자본의 세계화에 반대하는 ‘또 다른 세계’를 가능하게 하는 대안을 토론하기 위한 ‘세계사회포럼’의 결성으로 이어졌고, 결국 2001년 첫 번째 세계사회포럼이 브라질에서 개최되었다.

이렇게 시작한 세계사회포럼은 참여자들의 구성, 조직화 방식과 형태, 주요 이슈 등 모든 측면에서 그 이전의 국제적 운동들과 다른 특징을 보였다. 세계사회포럼은 정당이나 노조 등 기존에 있었던 모든 유형의 운동들도 참여했고, 지방-지역-민족-초민족적 형태로 결성된 집단들도 포함되었다. 또한 이 모두를 총괄하고 지도하는 상부단위를 만들지 않고 활동을 벌여나갔으며, 중심부 국가와 주변부 국가의운동이 결합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여성, 이주자, 노동, 반전 등 서로 다른 문제들이 하나의 모순으로 환원되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운동들이 서로 다른 운동들과의 결합 속에서 자신의 실천과 사고방식을 변화시켜나가는 방향으로 전체운동의 수평적 교류를 실험했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새로운 운동의 원리는 전 세계 사회운동이 ‘세계사회포럼 호소문’을 통해 신자유주의 세계화 속에서 ‘모든 인민들의 권리’를 지키기 위한 ‘요구목록’을 재작성하는 원칙들을 살펴보는 과정에서 확인할 수 있다. 세계사회포럼에서는 1) 상호배제적인 권리가 아니라 상호증식적인 권리, 2) 따라서 보편화(확장)될 수 있으며, 3) 인문들의 자율적인 운동을 통해 쟁취될 수 잇는 권리라는 원칙 속에서 모든 인민들의 권리가 재작성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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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회포럼은 기존의 운동이 신자유주의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저항의 보편성, 새로운 저항의 주체를 형성하지 못했던 한계를 넘어, 신자유주의에 대한 저항을 국제적인 수준에서 보편적인 언어와 행동으로 정식화하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커다란 의의를 지닌다. 한편, 현재 세계사회포럼에서는 단순히 운동의 전망과 입장에 대한 토론과 공유, 즉 말 그대로 ‘포럼’에서 더욱 전진하여 보다 적극적인 형태의 투쟁을 벌여낼 방안 등을 중심으로 자기발전을 꾀하고 있다. 또한 올해에는 3대륙 (라틴아메리카-베네수엘라, 아프리카-말리, 아시아-파키스탄) 에서의 잇따른 개최를 통해 보다 활발한 교류와 논의를 전개하고 있다.

유럽의 대안세계화 운동


유럽연합을 출범시킨 마스트리히트조약, 유럽연합을 확대하려는 암스테르담조약(1997)·니스조약(2000)에 이어 2004년 회원국 정상들이 그 초안에 서명한 헌법조약은 유럽연합을 지지하는 다양한 조직들을 단일화하고 체계화하여 신자유주의적 금융세계화를 제도적으로 공고화하려는 데 주된 목적이 있었다. 게다가 유럽연합은 입법권과 집행권을 모두 기술관료집단인 각료평의회와 집행위원회가 장악한 반면 유럽의회는 실제로 자문기관에 불과하여 ‘민주주의의 결핍’이 드러났다. 무엇보다 유럽헌법조약은 유럽의 시민들이 직접 선출한 제헌의회에 의해 제정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헌법’일 수 없었다. 또 유럽중앙은행이 완전한 독립성을 보장받고 유럽경제인회의와 같은 초민족자본가단체가 막후에서 영향력을 행사한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우위가 명시됨으로써 유럽의 외교정책에 대한 미국의 지배가 보장된다.

한편 유럽헌법조약에서 제시되는 ‘시민권’의 내용도 지극히 제한적인 것이었다. 조약에 따르면 노동자의 기본권은 노사정 협약에 의해 크게 제약되고 피임·낙태·이혼과 같은 여성의 기본권도 카톨릭의 권위에 의해 제약된다. 특히 유럽연합의 시민은 회원국의 국적을 지닌 자로 한정됨으로써 유럽 이외 국가 출신의 이주자를 배제하고 있다.

경제위기와 그에 뒤이은 유럽통합은 결과적으로 전후 호황기에 구축된 노동 안정성과 사회복지 모델의 쇠퇴를 의미했다. 이러한 ‘사회적 민족국가’의 위기 속에서 한정된 일자리와 복지 서비스를 종족 공동체의 성원에 국한하여 배분함으로써 위기의 충격을 완화하고 낙후된 삶의 질을 회복해야 한다는 요지의 인민주의적 선동이 가세하면서 이주자에 대한 배제와 폭력이 점증한다. 프랑스 민족전선, 이탈리아 북부동맹, 오스트리아 자유당 등 극우정당은 이민 반대나 유럽연합 반대와 같이 인종주의와 인민주의적 반세계화 논리를 동원하여 세계화와 유럽연합으로 인해 피해가 가장 극심한 하층 노동자와 청년실업층으로부터 광범위한 지지를 얻고 있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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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금융거래과세시민연합>(ATTAC)이나 <공산주의재건당>(PRC)과 같이 대안세계화 운동을 추동하는 핵심적 사회운동들은 유럽헌법조약에 반대하여 ‘대안적 유럽’을 주창하며 노동권과 여성권을 핵심으로 시민권을 재구성하려는 시도를 광범하게 조직하고 있다. <금융거래과세시민연합>은 금융세계화에 대한 발본적 이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인식하게 시민교육운동을 자신의 주된 과제로 천명하는 한편 정당이나 노조의 사회운동적 개조, 사회운동적 마르크스주의의 부흥에 복무함으로써 오늘날 유럽에서 대안세계화 운동의 진원이 되고 있다. 공산주의재건당은 ‘자율적이고 동시에 세계에 개방된 유럽, 자본주의적 세계화와는 다른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모델을 가진 유럽’을 주창하며 노동자운동과 페미니즘과의 결합, 정당의 사회운동적 개조를 이러한 전망 속에서 구현하고 있다. 이들이 주축이 된 유럽의 사회운동들은 2004년 10월에 열린 유럽사회포럼에서 채택한 사회운동 호소문을 통해 유럽헌법조약이 구현하고자 하는 유럽에 명백히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러한 흐름은 유럽통합의 신자유주의적인 기획인 유럽헌법조약 체결시도에 맞선 투쟁을 조직하는데 큰힘이 되었으며 네덜란드와 프랑스에서 유럽헌법조약의 부결이라는 결과를 이끌기도 했다.

남미의 대안세계화 운동


1990년대 후반부터 촉발되기 시작한 라틴아메리카의 새로운 사회운동은 기존 정당과 노동조합이 선거정치에 매몰되거나 코포라티즘을 수용하면서 대중운동을 분할하는 상황을 극복하고 신자유주의적 금융-군사 세계화에 정면으로 맞서는 한편, 다양하게 분출하고 있는 사회운동 간의 연대를 강화하고자 했다. 이들은 지난 해 11월 아르헨티나 마르 델 플라타에서 열린 미주정상회의에 즈음하여 ‘미주지역자유무역협정(FTAA)’ 체결 논의를 중단시켰는데, 당시 차베스 대통령은 정상회의장 안팎에서 ‘미주대륙을 위한 볼리바리안 대안(ALBA)’을 주장한 바 있다. 물론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정권을 비롯한 역내 좌파 정권의 미래는 ‘무적의 제국’으로서 자신의 권력과 ‘신자유주의 정책의 비가역성’이라는 신화를 유지하기 위한 미국의 간섭과 자본의 초민족화라는 구조적·객관적 조건에 의해 크게 제약된다. 실제로 FTAA 협상 타결 실패 이후 미국은 하위-지역 협정을 병행 추진하며 경제통합을 시도 중이다. 도미니카공화국-중앙아메리카-미국 자유무역협정(DR-CAFTA)을 법제화하고 파나마와 여타 안데스 3개 국가들과 양자간 자유무역협정을 추진 중이다. 한편 역내에서 미국의 전략적 파트너인 브라질은 남미공동시장(MercoSur) 8개 회원국을 확대 규합한데 이어 2004년 10월에는 안데스공동체(CAN)와 정치·경제 협정을 수립했다. 또 2004년 12월에는 총 12개국이 남미공동체(SACN)를 결성하는데 합의했다. 이에 거의 대부분의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은 자주적인 경제정책을 실용할 수 없음을 인식하고, 미국·브라질과 협상중이거나 모종의 협정에 가입하고 있다. 따라서 ALBA가 실질적으로 역내 국가들에 끼치게 될 영향력이 얼마나 클지는 미지수다.

그러나 라틴 아메리카의 새로운 사회운동들은 최근 들어 각 국에서 좌파 정권이 줄을 이어 등장하고 있는 현상이 남미 대륙에서 폭발하고 있는 자유무역, 군사주의, 사유화 정책에 반대하고, 자연자원과 식량주권을 지켜내기 위한 사회운동의 흐름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선언했다. 또 ‘좌파 정권에 대한 정치적 자율성’과 ‘각국 정부가 신자유주의를 수용하지 않도록 압박’하는 것을 재천명하며 대안적 지역통합의 노력을 구체화하고 있다. 특히 미주사회동맹이 제출한 ‘미주대륙을 위한 대안’은 차베스 대통령이 제시한 ALBA와 최근 볼리비아 모랄레스 대통령이 발의한 인민무역협정(TPC)에도 참조되었다. 라틴아메리카 사회운동들은 ALBA 협정이 ‘아래로부터의 참여’를 바탕으로 한다는 취지와 다르게 각 국 정상들이 주도하는 협정이라는 점에서 한계를 지적하지만 신자유주의에 바탕을 둔 미국 주도의 FTAA가 아닌 다른 형태의 지역적인 교류의 가능성을 이러한 시도를 통해 제시하며 FTAA 반대 투쟁을 조직하는데 이를 활용하고 있다.

대안세계화 운동을 만들어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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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맞서 각각의 운동들이 민중적 대안을 만들어가기 위해 관계를 맺으면서 활동해나가는 대안세계화운동은 앞으로도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이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한미FTA와 평택미군기지 확장 등의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를 고착화하기 위한 시도에 맞서서 어떻게 운동을 해나갈 것인가가 바로 이와 관련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전국학생행진(준) 역시 자신의 공간, 영역에서 다양한 단위들과 민중적 대안을 만들기 위한 교육과 그에 기반한 구체적 실천들이 바로 우리가 만들어 나가는 대안세계화의 모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Posted by 행진

2006/10/13 13:50 2006/10/13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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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민중들은 인간다운 삶을 위해 끊임없이 싸운다. 불안정노동 철폐, 한미FTA 저지, 평택 전쟁기지 건설 저지… 이것들은 어느 것 하나도 놓칠 수 없는 절박한 사안들이다. 우리는 이러한 투쟁들에 헌신적으로 임해야 한다. 동시에 우리는 각각의 사안들이 결코 별개의 것이 아니라, ‘신자유주의’라는 거대한 흐름이 만드는 지배계급의 총공세라는 점을 명확히 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모순들을 낳는 노무현 정권의 본질, 즉 '신자유주의 위기관리정권'이 필연적으로 보여줄 수밖에 없는 폭력, 기만, 구조적 무능력을 강력하게 폭로하면서, 이를 민중의 힘으로 심판해야 한다.

신자유주의는 철저하게 이 체제의 ‘구조적 문제’이다. 즉 체제의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는 한 신자유주의는 해결될 수 없다. ‘계급타협적인 사회협약’이나 ‘실용주의적인 로비활동’ 등으로 빈곤과 불안정노동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또 민주화 투사의 명함을 팔고 다니던 김영삼과 김대중, 그리고 노동자의 친구라던 노무현이 민중에게 가한 일을 다시 한 번 똑똑히 기억하라. 민중의 이름을 등에 업고 철저하게 민중을 배신한 이들의 만행은, 90년대 이후 진행된 민주화의 본질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따라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명확하다. 오로지 강력한 투쟁, 그리고 사회변혁을 향한 대중들의 아래로부터의 운동만이 현실을 바꿔낼 수 있다.

‘신자유주의 반대! 노무현 정권 퇴진!’의 기치로, 이러한 역사의 진리를 증명해나가자. 신자유주의 위기관리정권의 분열 책동을 넘어 민중연대를 실현하고, 세상을 바꾸자!

신자유주의의 충실한 집행자, 노무현


93년 집권하면서 과거 군사독재정권과 대비되는 ‘민간정부’의 표상을 얻으려 했던 김영삼 정권의 본질은, “한국자본주의를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에 연착륙시키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김영삼 정권의 대표적인 개혁정책이었던 금융실명제, 각종 세계화 정책들(쌀개방 등)은 바로 이러한 본질의 산물이다. 또 97년 외환위기라는 특수한 정세를 틈타 ‘개혁세력’으로 표상되었던 김대중 정권은 재벌-보수 진영의 강력한 유착관계를 깨뜨릴 수 있는 세력으로 부각되었다. 김대중 정권은 자본주의의 구조적 위기, 체제의 위기라는 외환위기의 본질을 은폐하고 이를 ‘민족고난’이라는 형이상학적 수사로 치장하였다. 그리고 고통분담이라는 논리로 노동자민중에게 구조조정 프로그램을 들이밀었다. 이런 가운데 남한 경제는 99년 일시적 호황국면을 맞기도 하였으나, 2000년대부터 다시 불황기에 접어들면서 카드빚/가계부채 급증으로 상징되는 민생파탄의 시대가 도래한다. 그리고 지배세력의 통치성에 균열이 가해지기 시작했다. IMF에서 강요한 구조조정 프로그램은 김대중 정권 하에서 금융세계화에 전략적으로 조응하기 위한 계획의 일환이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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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에서, 02년에 집권한 노무현은, 실패한 김대중 정권과의 '연속성'(똑같은 신자유주의, 똑같은 개혁 이데올로기)과 '차별성'(해결되지 않은 경제위기에 뒤이은 광범위한 정치 불신을 배경으로 한 사회적 갈등과 분열에 대한 대응)을 동시에 획득해야만 했다. 따라서 그는 강화된 386정서(노무현 코드)와 업그레이드된 정치개혁을 강조하였고, ‘참여 정부’로 표상되는 ‘참여 민주주의’를 내세웠다. 그러나 노무현 정권이 말한 개혁 역시 개혁은 개혁이되 신자유주의로의 급속한 개혁이었으며, 노무현이 강조한 참여는 지배체제의 안정이 확보되는 한에서의 제한된 참여였다. 또한 노무현 정권은 노동/자본간의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사회통합적 노사관계의 필요성을 역설하였으나, 이것은 결국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기 위한 전략일 뿐이었다. 노무현 정권은 각종 공기업들을 민영화하고, 노동시장이 유연해야 경제가 성장한다며 불안정 노동을 확대해 전체노동자의 60%에 달하는 비정규직을 양산하였다. 이처럼 노무현 정권은 전 세계적인 차원으로 진행되는 자본주의의 위기를 관리하기 위한 신자유주의 정책의 충실한 집행자이자, 그의 위치에서 충실하게 계급투쟁을 수행한 민중의 착취자였다.

신자유주의 속에서 파괴되는 민중의 삶


1970년대 세계자본주의는 자본수익성의 감소, 이윤율의 저하라는 위기국면에 봉착하였고 이것을 지연시키기 위한 방법으로 신자유주가 채택되었다. 신자유주의는 실물경제를 통한 이윤획득과 체제유지가 더 이상 불가능한 자본주의 체제가, 이른바 ‘금융’부문의 팽창을 통해 이윤을 획득하며 위기를 지연시키려는 체제이다. 따라서 상품, 서비스, 화폐 등 자본의 개입이 가능한 거의 모든 부문의 급속한 자유화를 지향하고, 시장개방·민영화·규제 완화·노동시장의 유연화 등을 그 특징으로 한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또한 자본주의의 위기를 우회하여 지연시키려는 방식이라는 점에서 근본적 대안은 될 수 없다. 1970년 브레튼우즈 체제 붕괴의 주요 원인인 미국의 재정적자 심화가, 현 시기 쌍둥이적자(재정적자와 경상수지 적자)로 대표되는 미국경제의 대외불균형이라는 양상으로 되풀이되는 모습은 이러한 체제적 한계점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자본주의의 위기를 그저 ‘지연’시킬 뿐이라는 신자유주의의 ‘내재적 한계’는, 신자유주의 체제 안에서의 개별 국가권력 또한 위기를 근본적으로 타개할 수 없다는 한계로 이어진다. 이미 금융세계화에 편입된 국가 경제는 초민족적 금융자본의 지배력 하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며, 지배계급이 제시하는 ‘새로운’ 성장 모델 역시 금융세계화를 충실히 따르며 이러한 흐름을 더욱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따라서 신자유주의가 금융세계화라는 전 세계적 ‘글로벌 스탠더드’를 강요하는 지금의 질서 속에서 ‘일국의 독자적인 경제 번영 혹은 블록화’는 불가능에 가깝다. 하기에 노무현 정권 역시 신자유주의적 발전전망에 포섭되기 위한 기회만을 노리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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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설사 남한 사회가 신자유주의적 체제 재편을 완수하고 금융세계화의 흐름에 완벽히 포섭되어 지배계급이 주장하는 것처럼 GDP의 수치가 상승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오히려 대다수 민중들의 삶의 질과는 반비례한다. 노무현 정권을 비롯한 지배계급이 제시하는 새로운 성장 모델은 투자환경 개선과 규제완화로 외국계 기업 유치를 유도하면서, 특히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제시되고 있는 지식기반서비스산업(금융거래와 금융화를 보조하는 비즈니스서비스산업, IT/BT 등의 첨단기술산업, 의료·보험 등 공공서비스산업 등)을 통해 초국적 금융자본의 활동과 지배력을 보장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또한 자본유치를 위한 투자환경 개선과 규제완화는 상시적인 구조조정을 통한 불안정 노동의 심화와 이를 제도적으로 완성하기 위한 노동법 개악, 민중들의 기본적 생존권조차 박탈하는 공공분야의 민영화 등을 수반한다. 게다가 저들이 말하는 ‘투자’는 지난 론스타 사건에서 볼 수 있듯이 단기적 이익만을 얻으려는 금융‘투기’에 지나지 않는다. 이미 금융세계화로 일정부분 편입된 남한 경제에서 수출․외자유치를 통해 획득된 자금은 설비투자나 고용창출 없이 주식배당금이나 기술개발에 대한 투자로 반복되고 있을 뿐이다. GDP와 같은 가시적 경제지표가 상승하여도 민중들의 삶의 조건은 오히려 파괴되어 가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신자유주의 하에서의 위기관리 전략


앞서 살펴본 것처럼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 속에서 각 민족국가들은 개별적으로 위기를 극복하는 것이 불가능하며, 금융세계화가 야기하는 민중생존권 파괴는 필연적으로 각종 분노와 불만을 발생시킨다. 그러나 이것은 (금융세계화가 바로 그 원인이기 때문에) 금융세계화의 체제 아래에서는 결코 해결될 수 없다. 따라서 각 민족국가들은 이러한 분노와 불만이 체제 자체를 위협하는 데까지 나아가지 않게 하기 위해, 모든 쟁점들에 미봉책으로 일관하며 분노와 불만을 ‘관리’하는 것 이상으로 나아갈 수 없다. 따라서 오늘날 신자유주의 체제에 포섭된(혹은 포섭되고 있는) 국가의 성격은 ‘신자유주의 위기관리국가’라고 할 수 있고, 노무현 정권 또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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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신자유주의 위기관리국가의 전략’은 대체로 크게 두 가지 방식으로 나타나는데, 그중 한 가지는 경찰․군대와 같이 ‘억압적’성격을 가지는 국가장치들을 적극 활용하여 투쟁하는 민중들을 통제하는 방식이다. 대표적인 예로는 지난 5월의 ‘여명의 황새울’이나 7월 포스코 노동자들에 대한 폭력 탄압 등을 들 수 있다. 이처럼 공권력을 동원한 무력행사, 즉 엄청난 수의 경찰이 방패와 곤봉으로 시위대를 구타하고 수많은 사람들을 연행하는 위기관리 방식에서, ‘국가기구’가 이미 획득하고 있는 ‘공적·합법적’이라는 표상은 그 빛을 발한다. 지배계급은 거대 미디어를 이용하여 ‘소수 몇몇의 이익을 위한 불법 시위대의 이기적 폭력’에 대한 ‘시민일반을 위한 공권력의 합법적/불가피한 무력’이라는 식으로 호도하면서, 공권력이 자행하는 폭력 행사에 당위성을 부여한다. 또한 모든 투쟁을 (자신이 정한) ‘불법/합법’이라는 틀에 맞춰 ‘불법폭력시위’로 규정하면서 문제의 본질을 은폐하며, 민중들의 정치적 발언과 행동을 직/간접적으로 제한한다. (불법/합법 논쟁은, 합법적인 대화와 타협의 자리를 마련하고, 결국엔 ‘현재의 조건’에 타당한 협상안을 정리해서 정권의 의도대로 추진하려는 사회적 합의주의에서도 적극 활용된다.)

이처럼 개별 국가가 억압적 성격의 국가기구를 통해 분노와 불만을 관리하는 방식은, 전 세계적으로 금융세계화에 대한 분노와 불만을 관리하고 그것을 뒷받침하기 위한 군사세계화와도 맞닿아 있다.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의 중심축인 미국은 천문학적 국방비를 쏟아 붓고, 세계 곳곳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을 재편하며 전략적 유연성이라는 이름으로 신속성과 정밀성, 기동성을 강화하고 있다. 이처럼 미국이 막대한 예산을 들여 군사력을 강화하는 것은, 그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테러’와 ‘악의 축’과 같은 인류 공통의 적에 대한 ‘정의로운 개입’이라거나,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한 ‘성전’을 위해서가 절대 아니다.

금융세계화의 본질이 전 세계적인 자본의 자유로운 투자와 이동이라는 점에서, 그 착취 양태는 개별 국가 경계에 따라 결정되거나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초월하여 나타난다. 따라서 그에 따른 불만과 저항도 국가라는 경계 안에 매몰되지 않고, 때때로 개별 국가의 지배계급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금융세계화를 작동하는 중심축인 미국과 초국적 자본에 대한 직접적인 저항의 목소리로 나타난다. 또한 금융세계화에서 제외된 지역(그것이 자의적이든, 자의적이 아니든)은 ‘배제와 포섭’이라는 신자유주의의 기본 전략에 따라 차별과 불평등을 겪게 되고, 여기에서 발생하는 분노와 불만 세력 또한 미국에게는 위협적일 수밖에 없다. (그것이 한 국가에서 체제적으로 나타날 때는 북한이나 이란과 같은 ‘악의 축’으로 규정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불만과 저항의 세력들을 무력으로 억압하여 금융세계화를 뒷받침하고, 때로는 무력을 먼저 앞세워 금융세계화를 관철시키는 수단으로써 군사세계화가 진행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금융세계화와 군사세계화는 ‘불가분의 관계’이다.

다시 개별 국가의 위기관리 전략으로 돌아가면, 대중들의 정치적 실천에 대한 억압적 통제와 더불어 신자유주의 위기관리 국가를 지탱하는 또 하나의 축은 ‘인민주의’이다. 근시안적 미봉책으로 일관하는 신자유주의 체제 속에서 국가권력은 대중들이 제기하는 쟁점에 대해 어떠한 해결책도 내놓지 못한다. 따라서 이러한 자신들의 정치적 무능함을 은폐하고 회피하기 위해 허구적인 쟁점을 던지고, 미디어와 스타 정치인을 동원하여 정치를 희화화하는 수단으로 인민주의를 활용한다. 흔히 ‘포퓰리즘’이라고 알려진 인민주의는 자유주의, 보수주의, 사회주의 식의 체계적인 정치이념이나 전략이 부재하다. 대신에 그저 모든 권력의 정당성의 근원인 다수 인민들에게 직접 무엇인가를 호소하고, 이를 통해 끊임없이 ‘적과 아’ 사이의 허구적인 대립구도를 설정하여 기존 정치에 대한 대중들의 불만을 동원한다. 그러나 여기서 사용되는 쟁점은 그야말로 문제의 본질과는 상관없는 허구적인 것이기 때문에, 근본적 해결과는 거리가 먼 대중조작적 정치 ‘스타일’ 혹은 ‘공학’일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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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기반이 없고 현실 정치판에서 안정적인 지지기반을 갖지 못한 노무현은 인민주의 정치 스타일의 가장 극단적인 방식을 택함으로써 이를 해결하려 한다. 즉 정당을 통해 안정적인 지지 세력을 규합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아예 정당정치, 의회정치라는 것 자체를 우회한다. 지구당을 폐지하는 등 정당을 통한 대중들과의 접촉을 포기하고, 대신 텔레비전, 인터넷 등의 미디어를 통해 대통령 그 자신이 광범위한 대중들과 직접 접촉한다. (물론 이 과정에서 ‘이미지의 형성’은 필수이다. 예컨대 노무현은 이회창이 절대 따라 할래야 할 수 없는 자신의 고유한 이미지 - TV에 나와 기타를 치며 상록수를 부르고 눈물을 흘리는 모습 -를 창조해냈다.) 또한 ‘한나라당 = 보수 vs 열우당 = 개혁’ 식의 허구적인 대립 구도를 만들고 상대방의 부정부패와 스캔들을 들추어내는 등의 과정을 통해 ‘가상의 적’을 만든 다음, 그곳에 모든 대중들의 원한을 집중시키기에 바쁜 정권의 모습은 ‘원한의 정치’라는 인민주의의 전형을 보여준다.

신자유주의 반대! 노무현 정권 퇴진!


2006년 현재 남한 사회에서 지배계급이 보여주고 있는 행보는, 신자유주의라는 거대한 반민중적 흐름의 일관된 목적 아래에서, 금융-군사세계화가 작동하는 메커니즘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금융세계화로의 편입 전략은 한-미 FTA로, 그것을 예비하기 위한 체제 정비와 노동권 약화는 비정규개악안과 노사관계로드맵으로, 금융세계화를 뒷받침하기 위한 군사세계화는 평택 전쟁기지 건설로 나타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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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최근의 ‘바다이야기’ 문제만 보더라도, 정작 중요한 핵심들은 건드려지지 않고 있은 채 지배계급 사이에서 소모적인 논쟁들만 이루어되고 있는 실정이다. 사행성 게임업체에 관한 문제의 핵심은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인한 빈곤, 실업에 대한 민중들의 불만을 ‘로또’나 ‘도박’에 대한 허황된 꿈으로 관리하는 동시에, 이러한 투기성 산업 육성을 통해 민중들을 ‘두 번’ 착취하는데 있다. 따라서 한나라당의 ‘권력형 도박게이트’라는 규정은 문제의 본질은 비껴간 채, 노무현 정권의 ‘개혁세력’이라는 이미지조차 해체함으로써 반사이익을 얻기 위한 전략에 불과하다. 이러한 본질을 비켜난 저들의 허구적인 이전투구 속에서, 신자유주의 금융-군사세계화가 만들어내는 갖가지 중대한 문제들은 뒷전으로 밀려난다. 허구의 쟁점에 민중들의 불만이 동원되고, 민중들이 가상의 적을 향해 원한을 불태우고 있을 때, 노무현 정권은 한편에서 조용히 민중들의 삶의 파괴하는 신자유주의 금융-군사세계화의 정책들을 착착 진행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맞서야 할 적이다.

각각의 사안들은 관통하는 근본적 원인인 신자유주의, 그리고 그것을 기획․집행하는 정권에 반대하는 것은 우리 민중들이 임해야 할 공통적이고 본질적인 정치적 목표이다. 이러한 목표를 뚜렷하게 세우고 투쟁에 임할 때, 각각의 투쟁들은 개별적인 사안의 차원을 넘어 ‘시대적 보편성’이라는 커다란 무기를 얻을 수 있다. 만약 ‘시대적 보편성’이라는 것이 잘 머리 속에 그려지지 않는다면, 80년대 거대한 민중의 반역을 이끌었던 시대의 보편성, ‘민주주의’를 기억하라. 80년대 이루어졌던 모든 크고 작은 투쟁들은 결국 ‘민주주의’를 향한 민중들의 거대한 행진이었다. 80년 광주에서 우리는 동지들의 죽음을 목도했지만, 살아남은 자들은 살아남았다는 사실이 주는 부끄러움을 민주주의에 대한 책임감으로 승화시켰다. 80년대의 거대한 흐름이 마무리 된 후, 90년대 민중운동은 보편적인 지향성을 상실한 채 끊임없이 표류해오지 않았는가? 이제 이러한 현실에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 오로지 ‘보편적인 투쟁’ 속에서 민중들의 광범위한 연대를 이끌 수 있고, 희망을 만들 수 있다.

또 우리는 노무현 정권의 지지도가 끊임없이 추락하고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라는 식의 시니컬한 우스갯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리는 이 때, 反노무현 전선을 강화하는 것의 정세적 의미를 다시 한 번 확인해야 한다. 현재 노무현은 만인의 희화화 대상이 되고 있다. 하지만 이는 문제의 원인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생산적인 흐름으로 이어지지 않은 채 감정적인 적대와 원한, 증오만을 재생산하면서 오히려 퇴행적인 모습을 띠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정권 퇴진 기치에 대한 맹신에서 벗어나, ‘노무현 정권 퇴진’의 기치를 진정으로 ‘정세적’으로 만들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라는 식의 원한과 적대가 어떻게 정치를 불가능하게 하고 운동을 후퇴시키는지 우리는 이번 5.31 지방선거에서 확인하지 않았는가? 우리는 노무현이 왜 퇴진되어야 하는지, 그 이유를 명확하게 폭로할 수 있는 투쟁을 벌여나가야 한다. 노무현 정권 퇴진!의 기치가 신자유주의 반대!의 기치와 짝이 되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정권 퇴진 투쟁을 전면에 내세우는 것은, 어떤 이가 대통령이 되든 민중을 탄압할 수밖에 없는 현재의 사회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고 민중들의 대안 세상을 만들자는 강력한 의지의 표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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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 반대! 노무현 정권 퇴진! 의 기치로, 민중의 강력한 반격을 만들어 나가자! 신자유주의 위기관리정권을 심판하고, 대안세계를 만들어나가자.

Posted by 행진

2006/09/07 07:39 2006/09/07 0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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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경쟁의 시대가 도래했다 / 세계화의 전사가 되란다
살아남으려면 너희들 스스로 / 무장을 갖추라 한다
그 모든 전쟁에서 / 너희들이 만든 그 모든 전쟁에서
승전국의 병사들과 패전국의 병사들은
너희가 만든 그 더러운 싸움에서 무엇을 얻었나
죽어야만 얻을 수 있는 영예를 얻었고
다쳐야만 얻을 수 있는 명예도 얻었지
폐품이 될 때까지 일할 수 있는 그 고마운 자유도 얻었지
승전국의 병사들과 패전국의 병사들은
너희가 만든 그 더러운 싸움에서 무엇을 얻었나
- 노래, 「시대」의 가사 중.


“전쟁을 멈춰라!” 이것은 진보와 평화를 염원하는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이 외쳐왔던 말이다. 그리고 「반전평화」라는 것은 미국의 전세계적인 군사패권전략이 노골적으로 강요되고 있는 평택에서, 이라크에서, 더 나아가 우리가 몸담고 있는 현실의 모든 곳곳에서 싸워 얻어나가야 할 소중한 보편적 가치이다.

물론 전쟁은 인류 역사상, 조금 좁게 볼 때는 자본주의의 역사상 계속해서 발발해왔다. 그런 점에서 오늘날의 「반전평화」는 과거의 「반전평화」 운동과 비교해봤을 때 그 구체적인 내용 면에서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진정으로 평화를 쟁취하기 위해서, 「반전평화」 운동에 임하는 우리들은 이 구체적인 지점까지 파고들지 않으면 안 된다. 즉 현재의 전쟁을 일으키는 「구체적인 원인」은 무엇인지 주도면밀하게 분석하고, 그 원인을 근본적으로 제거하기 위한 「정세적인 운동」을 벌여나가야 한다. 정세에 대한 구체적인 분석과 이에 바탕을 둔 구체적인 실천이 빠진 「반전평화」 운동은 무기력함과 관성에 빠지기 쉽다.

이런 점에서, 90년대와 21세기 들어 전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수많은 전쟁 문제들 - 아프리카와 남미에서의 수많은 국내 분쟁들, 미국의 이라크 침공, 그리고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과 평택 문제 등 - 은 「신자유주의」 문제와 떼어 놓고 생각할 수 없을 것이다. 즉 현재의 「반전평화」 운동과 「反신자유주의」 운동은 다른 목표를 가진 별개의 운동이 아닌 것이다. 이 점에 대한 보다 명확한 이해를 위하여, 이 기획글를 쓰게 되었다.

(참고로 이 글에서 미처 다 설명하지 못했지만, 전국학생행진 집행부는 더 자세한 설명을 담은 몇몇 논문들 - 예컨대 「무장한 세계화」라는 표현을 만든 끌로드 세르파티 Claude Serfati 씨의 글이나 메리 칼도 Mary Kaldor 씨의 글을 요약번역한 텍스트를 가지고 있습니다. 아쉽게도 파일로는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필요한 분이 있으시면 stu_link@hanmail.net으로 연락주세요.)

자본주의의 역사를 전반적으로 훑어봤을 때, 전쟁은 막대한 이윤을 남기는 동시에 체제의 위기를 극복하고 강대국들의 지배권을 굳건하게 하는 수단이었다. 특히 2차 세계대전 이후 소련과의 냉전 대결을 벌이면서, 미국은 자신의 정치적 지배력을 세계 자본주의 진영 곳곳에서 유지하기 위해, 온갖 테러와 전쟁을 서슴지 않았다. 예컨대 1965년 미국은 2만2천명의 병사를 투입해 도미니카 시민들의 민주화운동을 진압했다. 이 결과 도미니카의 수도 산토도밍고의 길거리에서는 3천 명의 사람들이 사살당했다. 또 10년에 걸친 베트남 침공에서 미국은 프랑스 식민지 시절부터 이어져 오던 부패한 (하지만 친미적인) 남베트남 정권을 수호하기 위해 베트남인 한 명당 0.25톤에 달하는 폭탄을 베트남 영토에 퍼부었고, 200만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인도차이나에서 죽어갔다. “때로는 그 나라를 구하기 위해 그 나라를 파괴할 필요도 있다.” 이것이 바로 미국의 논리였다.

냉전 시기 동안 계속된 군비 경쟁의 결과, 소련은 결국 파산했다. 그리고 소비에트 진영의 많은 국가들은 일순간에 무너지기 시작했다. 이렇게 냉전은 끝났다. 하지만 1991년 걸프전, 그리고 1992년 보스니아 내전 등을 보면서, 사람들은 “냉전이 끝나면 지구의 평화가 도래할 것이다.”라는 것이 잘못된 생각이자 순진한 환상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현재의 전쟁은 오히려 냉전 시절보다도 더 예측불가능하고, 신속하고, 더욱 잔인하게 벌어지고 있다.

70년대 미국 중심의 세계 자본주의가 걷잡을 수 없는 불황과 위기에 빠진 후, 이를 극복한답시고 지배세력들이 새롭게 내놓은 전략이 바로 「신자유주의」이다.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의 광풍 속에서 전 세계의 많은 이들이 극단적인 불평등과 빈곤에 시달려왔다. 「고용 없는 성장」과 「빈부의 양극화」라는 세계화의 덫에 걸린 수많은 사람들은 최소한의 삶의 희망을 잃어간 채 체제에 대한 증오를 키워간다. 그리고 저항한다. 이러한 저항은 전 세계 각지에서 정치질서들을 뒤흔들고,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토대인 에너지 네트워크(예컨대 석유)와 금융 네트워크, 사적 소유권들을 위협한다. 이제 신자유주의를 관철시키고자 하는 세력들에게 있어, 이러한 저항들을 어떻게든 진압하는 것이 가장 관건적인 문제가 된다.

신자유주의 세계화 시대에서, 미국과 동맹세력들(대표적인 것이 남한 노무현 정부)의 국익은 새롭게 정의되고 있다. 세계화는 미국 중심의 세계 자본주의를 유지하는 핵심 메커니즘이기 때문에, 이 세계화를 보호하는 것이 바로 국가 안보의 가장 큰 목적으로 자리잡게 된다. 세계 곳곳에 배치된 미국의 무장 군인들은 19세기의 식민화 시대 때 영국해군이 그러했듯, 중요한 시장들을 보호하고 미국의 헤게모니를 관철시키는 「세계경찰」의 역할을 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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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바로 탈냉전 이후 미국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각종 전쟁들의 의미이다. 미국, 미국의 하위파트너인 동맹세력들(일본 정부, 남한 정부 등), 그리고 금융세계화에서 막대한 비중을 차지하는 거대 군수산업체들(록히드 마틴社, 보잉社 등)은 ‘공통의 이해’로 똘똘 뭉친 채, 「자유」와 「민주주의」, 그리고 「정의」를 위한 전쟁을 수행한다. 그것이 바로 지금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수많은 전쟁들의 작동 메커니즘이다. 이 점에서 남한의 평택과 이라크의 바그다드는 결코 다르지 않다.

“다른 나라의 시장 개방을 추구하기 위해 우리는 우리의 무기고에 있는
모든 수단을 사용할 준비를 해야 한다.
나는 임무를 완수하길 좋아한다. 나는 문제 해결사다.”
- 수전 슈워브 미국 무역대표부 신임대표,
조만간 있을 한국과의 FTA 협상을 앞두고 진행한 인터뷰 중.


노무현 정권은 영광스럽게도(?!) 미국의 「전략적 유연성」에 부응하는 세계 최초의 미 동맹국이 되었다. 만약 미국과 노무현 정부의 계획대로 평택의 전쟁기지 건설이 완료된다면, 이제 몸집이 한결 가벼워진 주한미군은 한반도 붙박이군의 수준을 넘어 전 세계 분쟁지역에 민첩하게 투입될 수 있는 유동군으로 탈바꿈될 것이다. 평택과 오산은 각각 항구와 공군기지를 갖고 있기 때문에, 주한미군의 병력과 장비가 들락거리기 좋은 곳이 될 것이다.쉽게 말해 주한미군은 전 세계 아무데로나 파병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마치 이라크에 군대가 파견되었듯.

결국 평택에서의 싸움은 평택 주민들만의 싸움이 아니라, 남한 전체, 더 나아가 전 세계의 평화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싸움이다. 미국은 「민주주의와 자유」를 위해서라면 ‘선제공격’까지 불사하겠다고 하지만, 그 민주주의와 자유의 본질은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의 확산’, 바로 이것이다. 미국 중심의 세계 질서재편을 통해 전 세계를 신자유주의 질서로 안정적으로 통합시키는 것, 현재 진행 중인 자유무역협정(FTA)을 통해 초국적 금융자본이 더욱 활개를 치고 다닐 수 있도록 하는 것, 바로 이것인 것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저항하던 정권에 대해서 미국이 무력개입까지 불사한 경험은 셀 수 없이 많다. 개입 이후 미국은 해당 국가에서 민중들에게 자유와 민주주의가 확보되었다고 선언했지만, 그 결과는 IMF가 권고하는 구조조정 프로그램의 실행 후 파탄날대로 나버린 민중들의 삶이었을 뿐이다.

결국 FTA 반대 투쟁과, 평택 탈환 투쟁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금융세계화」와 「군사세계화」는 신자유주의를 이루는 동전의 양면이다. 우리는 민중들의 인간다운 삶을 지켜내고 평화를 쟁취하기 위해, 「반미-반전-반세계화」라는 거대한 싸움에 헌신적으로 임해야 한다.

지금까지의 운동 모습을 돌이켜봤을 때, 아쉬운 점이 많다. 반전평화라는 이름 아래 벌어졌던 많은 운동들은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반대하는 흐름으로까지 이어지지 못하고, 부시나 노무현 등의 위정자들의 양심과 도덕에 기대는 청원하는 그런 소극적인 수준에 머무르거나, 또는 마이클 무어 씨의 「화씨 9.11」에서 드러나는 것과 같이 부시 개인에 대한 비판에 머무르기도 하였다. (물론 「화씨 9.11」은 비교적 괜찮은 영화이지만^^) 하지만 전쟁은 단순히 몇몇 정치가들의 도덕과 결단으로 좌우되는 그런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시스템, 영화제목으로 표현하자면 강고한 매트릭스(Matrix)의 문제인 것이다. 전쟁을 야기하는 주요 원인 - 신자유주의 - 에 대한 근본적인 비판과 반대 속에서, 우리의 반전평화 운동은 더욱 빛을 발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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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보다 쉽게 읽힐 수 있는 책으로서, 『전쟁중독 - 미국이 군사주의를 차버리지 못하는 진정한 이유(조엘 안드레아스)』를 또한 소개한다. 이 책은 건국 시기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침략과 살육으로 점철된 미국의 역사를 보여주고, 미국을 ‘전쟁중독’으로 몰아가는 소수들의 집요한 네트워크를 밝히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 즈음에는 신자유주의 군사세계화 국면에서 일어나는 소위 「테러와의 전쟁」에 대한 내용도 담고 있다. 84쪽의 얇은 분량에 만화라는 친숙한 형식으로 만만치 않은 주제를 날카롭고도 평이하게 다루고 있다. 주위 사람들과 함께 읽어보시길~^^

(앞에서 말했듯이 전국학생행진 집행부가 현재 가지고 있는 몇몇 논문들 - 아쉽게도 시중에서는 아직 정식으로 번역되지 못하였다 - 이 필요한 분은 이메일을 통해 연락 바랍니다.)

Posted by 행진

2006/04/24 05:31 2006/04/24 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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