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주의적 연대활동을 위한

2008 여름 현장활동
반성폭력 주체학교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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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교시

[교양] 성폭력의 의미와 쟁점

4

2교시

여성농민과의 연대를 위하여!

16

3교시

성폭력 사례발표와 조별토론

26




Posted by 행진

2008/07/14 15:01 2008/07/14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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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현장활동에 대한 상반된 기억


현장활동은 많은 추억을 남긴다. 민중들과 함께 땀 흘리면서 노동의 댓가를 깨닫게 되고, 물씬 풍기는 서로의 땀냄새와 잠버릇, 술버릇에 대한 이야기는 현장활동 일정을 끝내고 돌아와서도 한동안 계속 안주거리가 된다. 그리고 직접 몸으로 체험하게 되는 현장활동은 현장활동 공간의 현실을 몸과 가슴으로 느끼고 이후, 더욱더 힘차게 연대하면서 세상을 바꿔나가겠다는 결의를 다지는 계기가 되곤 한다. 연대의 의미가 아니더라도 공기 좋은 환경에서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일하고 술마시는 기억은 대학생활 내내 소중한 인연을 맺게 하는 계기가 된다.

하지만 이러한 소중한 현장활동의 기억은 누군가에는 다시는 가고 싶지 않은 기억으로 남아 있기도 하다. ‘아가씨 말고 힘 센 남학생 좀 보내달라’며 일을 하러 온 여학생들을 못마땅해 하시는 모습, 여자가 따르는 술 맛이 제 맛이라며 술시중을 강요하는 상황, 마을에 결혼 못한 노총각들이 많으니 아가씨는 농촌으로 시집오라며 엮어(?) 주시는 상황에 빈번히 처하면서 이런 상황에 대해 불만을 제대로 한번 제기하지도 못하고 무력하게 참아내야만 하는 여학우의 경우는 스스로의 자존감을 상하지 않고 현장활동을 지속할 수 있을까. 또한 아동․여성농민과의 분반활동의 책임이 여성에게만 전가되는 경우, 신체적 차이가 고려되지 않은 작업 분배, 안주 마련이나 식사 뒤처리를 여성이 맡게 되는 암묵적인 분위기, 평가시간에 어렵게 꺼낸 성폭력에 대한 제기를 무심코 넘겨버리는 경우 등에서 여학우들은 ‘농활의 좋은 기억’과 ‘나쁜 기억’ 사이에서 혼란을 가질 수밖에 없다. 여학우에게 농활이 소중하지 않은 경험이라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또한 동시에 그 소중한 경험에서 스스로가 배제당하고 성적 불쾌감을 끊임없이 경험한다는 것이다.

이렇듯, 농활을 비롯한 현장활동에서의 성폭력은 일상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학생과 학생들 사이, 혹은 연대단위와 학생 사이에서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으며 기간의 농활을 되돌아보아도 항상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아직까지도 한국사회가 철저하게 가부장적인 모습을 탈피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여학우가 현장활동을 가는 것은 그러한 모든 상황에 대하여 각오하고 참아낼 것을 결의하고 가는 것도 아니며, 현장활동이 ‘그럴 줄 몰라서’이기 때문도 아니다. 그래도 희망을 놓지 않으려는 의지를 다지며 다시 오늘의 현장활동에 참여하는 여성들과 함께하기 위해, 연대과 소외, 가능성과 절망이라는 여학우가 느끼는 양가적인 감정들에 대해 고려하고 ‘여성주의적’ 농활을 만들기 위해 기간 농활에서 ‘단절’해야 할 것을 찾아내지 못한다면 또 다시 그녀‘만’의 문제로 치부되며 ‘모두’가 즐거운 농활이 아니라 그 누군가만의 반쪽짜리 현장 활동이 될 것이다.

2. 현장활동을 여성주의적으로 재구성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현장활동을 여성주의적으로 재구성한다는 것은 무엇을 일컬음인가. 그에 대한 답을 확정적으로 내리기는 어렵지만 분명한 것은 농활, 연대활동을 진행하면서 수다하게 발생할 수밖에 없는 - 우리는 뿌리깊은 가부장적 질서 속에서 살아가고 있음을 잊지 말자 - 反여성적이고 여성배제적인 상황들에 의해 연대활동의 소중함보다는 성적수치심과 피해감, 무기력감을 느끼고 돌아올 수밖에 없는 이들이 매년 생겨난다는 사실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여성주의라는 것이 성적 차이를 차별로 만드는 폭력에 맞서 서로의 차이가 존중되고 인정되게끔 하는 하나의 운동이라고 하였을 때, 현장활동을 여성주의적으로 재구성한다는 것은 기간 당연하게 여겨져 왔고 문제로 제기되지 못했던 현장활동 전반의 반여성적이고 여성배제적인 구조를 전변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현장활동을 진행하여 오면서 간과되었던 여성의 문제에 대해 보다 진지하게 고민하는 계기들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현장활동 현장에서의 성폭력 사건을 예방하고 발생한 성폭력 상황에 대처하는 것은 여성주의적 인식이 확장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기간 반성폭력 내규만으로 한정된 여성주의적 실천은 여성주의에 대한 여러 가지 왜곡된 문제를 발생시키고 있다. 즉, 반성폭력 내규의 제정, 합의를 뛰어 넘는 여성주의에 대한 실천은 계속되어야 하고 이는 현장활동에서 적극적으로 실험되어야 한다.

우선, 반성폭력 내규를 고민함에 있어 현재적으로 내규 제정 및 “합의”가 말처럼 쉽지 않을 뿐더러 일정정도 관성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합의”의 과정은 처벌을 위한 과정이 아니라고 할 때, 여성주의에 대한 인식의 지평을 넓혀질 수 있는 방식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현장활동을 함께 가는 구성원들 사이에서 폭넓은 논의를 통해 여성주의가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공유하고, 여성주의를 실천하는 것이 여/남의 차이를 인식하고 그 차이에 기반하여 여/남이 우애롭게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과정이라는 것에 대한 폭넓은 동의지반을 획득해 나가야 한다.

3. 현장활동에서의 여성주의적 실천은


여성들이 현장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의 문제이다.

2004년 농활에서의 성폭력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서울대 몇몇 농활대에서 불가피하게 농활을 철수하는 일이 있었다. 이것이 언론에 공개되면서, 철수한 농활대는 “연대의 의지가 없다.”, “학생들이 어르신을 가르치려 한다” 등의 대대적인 비난을 받아야 했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연대'란 과연 무엇일까? “연대”는 서로간의 차이를 인식하는 과정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특히, 성적 차이에 대한 인식 없이 무조건 연대가 중요하니, 학생들이 참아야 한다는 식의 논리는 연대의 진정한 의미와는 거리가 멀다. 연대를 위해서 일정 기간 동안 자신의 삶을 위협하는 문제를 그저 참고 견디고만 있어야 한다는 것은, 결국 일주체의 일방적인 희생에 다름 아니며, 이것은 연대의 참 의미를 도리어 파괴하는 것이다! 현장활동이 끝난 이후, 우리는 이렇게 상처를 입은 사람들에게 과연 FTA 반대 농민집회에 힘있게 나오라고, 그리고 내년에 농활에 또 함께 가자고, 정말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 것인가?

"연대의 의지가 없다"라는 말은 사실 어불성설이다. 연대의 의지가 없는 것이 아니라, 성폭력 사건이 발생하고 그것이 더 이상 공동체의 관계 속에서 다시금 긍정적으로 해소되고 그리하여 신뢰가 회복될 가능성이 희미해지는 그 순간, 이미 연대는 '불가능'하게 된 것이다. 이미 연대가 불가능한 조건이 있는데 연대의 의지가 없다고 주체에 대한 비난을 가하는 것은 무슨 논리인가? 결국 그토록 연대를 소중하게 여긴다면, 그리고 연대를 다시 가능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연대를 불가능하게 하는 그 <조건들>에 대해 문제제기하고, 그것들을 바꿔나가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이 아닐까?

그렇다면, 다시 '철수'의 문제로 되돌아가보자. 현장활동에서 '철수'하는 것이 그 자체로 문제의 온전한 해결을 보장하는 것인가? 앞에서도 말했듯이 한국사회의 가부장제가 닿지 않는 공간은 거의 없다. 현장활동을 철수하느냐마느냐라는 쟁점보다는 오히려 농촌과 대학사회, 그리고 이 사회의 모든 장소를 가로지르는, <한국사회 전반의 가부장제>를 바꿔내기 위한 과정을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가가 고민의 일차적 초점이 되어야 한다. 사실 현장활동이 여성배제적이라기 보다는 우리의 <모든 관계>와 <공동체적 삶>의 남성중심성이 문제이며, 농촌의 가부장성이 독자적으로 문제라기보다는 강의실, 술자리 등 우리가 몸담고 관계맺고 있는 삶의 장 '전체'가 문제이기 때문이다. 물론 철수를 해서는 안된다고 말하는 것 또한 아니다. 다만 문제 해결을 위한 시기시기의 구체적인 과정 - 그것이 철수가 되었든 아니면 다른 방식이 되었든 - 을 결정하기에 앞서, '진정한 해결'이란 과연 무엇을 말하는지, 그 '원칙'을 다시 한 번 확인하자는 것이다. 이러한 원칙에 입각할 때,  <현장활동의 여성주의적 재구성>이라는 프로젝트 역시도 그 의의가 살려질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은 여성의 '권리'를 찾아가는 지난한 투쟁의 과정 중 일부이다.

반성폭력 운동이 그렇듯 ‘현장활동’에서도 반성폭력에 대해 이야기하고 긴장감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이것이 여성의 권리와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위에서 사례들이나 유형들을 살펴본 것은 단지 ‘이런이런 피해 사례가 있으니 여성을 보호해주세요’라고 소극적으로 청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여성에게도 성적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울 ‘권리’, 원하는 현장활동을 참여하고 누릴 수 있는 ‘권리’가 당연히 있기 때문이다. 남성에게는 굳이 ‘권리’라는 거창한 말을 붙이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보장되는 것들이 왜 여성에게는 그렇지 않은 걸까. 그것은 보편적 ‘권리’ 개념이 ‘남성’을 중심으로, 남성을 기준으로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보편’적 권리에서 어느 누군가(여성)의 권리는 제외되어 있다면 이미 그것은 ‘보편’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그 권리 개념을 재구성해내기 위해 여성에게 가해지는 성적 억압과 폭력을 종식시키기 위한 실천들을 벌여나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농활이나 환활등의 현장 활동에서 반성폭력 운동을 한다는 것은 농민들을 여성주의로 계몽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여학우와 남학우가 동등한 농활대원으로 즐겁게 활동을 수행할 수 있도록 물적 조건들을 확보하고 합의를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따라서 현장활동에서의 반성폭력 운동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지만 하면 더 좋은 것’이 아니라, 현장활동을 수행하기에 앞서 기본 전제인 것이다. 누군가(여성)는 배제되고 있는데 어찌 그것에 ‘연대’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겠는가. 혹은 ‘연대’를 위해서는 왜 여학우가 참고 희생을 해야 한다는 것인가. 여학우들이 배제당하지 않고 남학우와 같이 즐겁게 농활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은 왜 농민을 무시하는 태도로 취급받는가. 현장활동에서의 반성폭력 운동은 먹물 묻은 대학생들의 잘난 척이 아니라 여학우들의 현장활동에 대한 ‘권리’의 문제로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4.현장활동을 여성주의적으로 재구성하기 위한 실천전략


현장활동을 여성주의적으로 재구성하기 위해서는 우선, 철저한 사전준비가 진행되어야 한다. 당장 현장활동에서 성폭력 사건이 발생하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사전에 성폭력적인 상황에 대해서 학생들 사이에 합의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그리고 연대단위와도 충분히 여성주의적인 문제의식을 전달하고 이에 대해서 합의해 나가는 과정을 밝아야 할 것이다.

특히, 연대 단위와의 사전준비는 중요한데, 농활, 환활, 빈활의 현장활동 공간은 한국 사회의 가부장제 속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공간이다. 서로의 차이에 기반한 “연대”의 의미에 대해서 사전에 동의지반을 마련하고 공동으로 현장활동에서 여성주의적인 실천을 결의하는 과정을 거쳐야 할 것이다. 사전답사와 현장활동단위와의 간담회에서 충분히 논의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학생들과 연대 단위들이 사전에 현장활동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반성폭력 주체학교”와 같은 형태로 사업을 진행하여 연대단위들의 상황에 맞게끔 창발적인 기획을 통해서 여성주의에 대한 문제의식을 확장시킬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또한, “반성폭력 주체학교”라는 형태가 아니더라도 사전 답사에서 마을 주민들과 간담회 혹은 호별방문을 통해서 사전에 여성주의에 대한 문제의식을 나눌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현장활동을 준비하면서 학생들 사이에도 성폭력 문제와 여성주의에 대한 문제의식을 함께 나누고 함께 여성주의적인 실천을 결의하고 성폭력적인 상황에 대처할 것을 결의해야 한다. 현장활동에서 발생할 수 있는 성폭력적인 상황에서 적극적으로 문제제기하고 이를 바꿔나갈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그럴 때만이 현장활동이 반쪽짜리 현장활동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우애롭고 평등하게 참여할 수 있는 공간이 될 수 있을 것이며, 더 나아가서 가부장제에 맞서 여성의 권리를 확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또한, 현장활동에 참여해서도 일상적으로 여성주의적 실천을 담보해낼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해 나가야 한다. 현장활동에 참여한 구성원들뿐만 아니라 주민들과 함께 해나갈 수 있는 여성주의적 실천을 고민하고 만들어 나가야 할 것이다. (반성폭력 주체학교 자료집을 참고하세요, stulink.jinbo.net)

물론 이것은 글처럼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끝임 없는 노력과 혁신의 자세 없이는 또 다시, 현장활동에 대한 실망과 상처를 가슴에 안은 채 돌아올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또다시 현장활동은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만 소중했던 기억이 될 것이며,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다시 가고 싶지 않은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현장활동에서 여성주의적 실천이 바로 여성의 권리를 쟁취해나가는 과정이란 것, 여성이 현장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의 문제임을 가슴 속으로 새기고 이러한 실천을 하나하나 시작해 나가는 소중한 결의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만이 진정한 연대활동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며, 한국사회 가부장제 자체를 변화시켜나갈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 갈 수 있다.

Posted by 행진

2006/06/28 06:12 2006/06/28 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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