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무엇인가?

- 4.9총선을 바라보며 잃어버린 10년을 다시 생각한다 -



작년 대선, 한나라당은 ‘잃어버린 10년’을 이야기했다. 김대중과 노무현이라는 두 친북 좌파가 집권한 지난 10년 동안 우리나라는 경제성장과 선진국 도약의 기회를 잃어버렸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명박은 역대 최대 득표율로 대통령이 되었다. 노무현의 실정에 대한 심판과 경제성장에 대한 전 국민적 열망의 표현이다. 이 정도 되면 퇴임하는 노무현은 국민들에게 짱돌이라도 맞으면서 물러가야 정상이다. 그러나 봉화마을로 내려간 노무현은 전 국민적 스타가 되었다. 서민들과 친근하게 들녘을 거니는 모습을 보며 많은 사람들은 ‘정치적 논쟁’에서 벗어난 그의 이미지가 좋다고들 한다.

한편 이명박 정부는 출범 3개월만에 최악의 지지율을 보이고 있다. 강부자 내각, 대운하 강행, 영어몰입교육 등이 민심이반을 부추겼다. 혹자는 “이명박 정부가 이렇게 설쳐대는게 참 피곤하다. 지난 3달이 노무현 정부 5년보다 더 길게 느껴진다.”고 말하기도 한다. 이렇듯 새로운 대통령과 ‘전’ 대통령의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그리고 며칠 뒤면 우리는 또 선거를 치러야 한다. 국민들은 혼란스럽다. 부자정부가 서민경제를 살리겠다는 말은 영 믿을 수가 없지만, 그렇다고 지난 5년간 민생경제를 파탄내고 비정규직을 확산시킨 정당을 찍을 수도 없다. 그래서 온갖 여론조사에서 ‘지지정당 없음’ 또는 ‘무응답’이 25%를 상회하고 있다. 지난 대선의 기록을 깨는 역대 최저 투표율이 예상되고 있다. 정치에 대한 냉소와 허무주의가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무엇이 한국 정치를 이렇게 만들었는가? 지금으로부터 20여년 전, “독재타도! 민주쟁취!”를 외치던 이들의 비판의식과 뜨거운 함성은 다 어디로 갔는가?



87년 이후 20년이 남긴 것 - ‘정치적 대리주의’의 환상

현재 드러나고 있는 정치적 허무주의는 87년 6월 항쟁의 부정적 결과에 기원을 둔다. 이는 혹자들이 말하듯이 “정치적 민주주의는 달성되었는데, 경제적 민주주의가 달성되지 못했다”는 정도로 설명될 수 없는 것이다. 오히려 그 제한된 정치적․절차적 민주주의의 함정이 대중의 더 많은 민주주의를 차단하는 역설적인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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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항쟁의 한 축을 이루고 있던 보수야당은 당시의 모든 사회경제적 쟁점들을 ‘직선제 개헌’이라는 단일한 법․제도적 이슈로 소급시켜버리고, 이를 벗어나는 요구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외면했다. 이들은 이러한 방식으로 신군부세력과 6.29협약(pact)을 맺고 곧장 대선 준비모드로 전환했다. 즉 이들은 사회변혁에 대한 대중적 열망을 스스로 잠재우는 역할을 했던 것이다.

문제는 많은 민주․진보진영에서도 이런 흐름에 편승해 갔다는 것이다. 권력이 가히 초법적, 카리스마적 통치에 의존했던 87년 이전의 상황에서 사회운동들은 굳이 투쟁의 적법성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87년을 경유하면서 권력은 일정한 수준에서 대중들이 요구하던 제도적 틀을 양보했다. 그런 면에서 직선제는 마치 국가가 전 국민에게 권력을 1/n로 똑같이 나누어 주는 듯한 환상을 유포했다. 국가권력은 이제 이 1/n의 권리를 어떻게 써먹을지 논의하는 정도까지만을 사회운동의 활동 영역으로 허용한 것이다. 그러나 이는 중요한 사실 한 가지를 은폐하고 있다. 9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더욱 심화된 신자유주의적 흐름에 따라 국내 재벌들은 초민족적 금융자본과 손잡고 노동자의 권리를 더욱 탄압하면서, n/n 아니 2n/n, 3n/n 이상의 권리들을 누리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국가권력은 대중들이 이 허구적인 1/n의 권리 이상을 요구하는 것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탄압으로 일관했다. 이제 사회운동이 할 수 있는 역할은 낙천낙선운동 또는 공정선거감시활동 정도 뿐이다. 그 결과 우리의 대표가 군인에서 민간인으로 그리고 다시 진보인사로 바뀌었지만, 그 ‘대표’들이 갈수록 심화되는 신자유주의와 비정규직 확산에 대한 대중들의 불만을 대변해 주지 않았다. 정치의 주체가 되어야 할 노동자와 농민 등 대다수의 서민들은 여전히 배제되어 있다. 그들에겐 오로지 투표소 안에서만, 그것도 답을 잘 모르는 객관식 문항에 답을 체크하는 것처럼 불안하고 신뢰할 수 없는 자유만이 주어진 것이다.



정치의 상품화??

물론 직선제는 87년 항쟁의 소중한 성과다. 문제는 직선제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쟁취하는 과정이고 내용이다. 그것이 국가권력에 의해 심각하게 왜곡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번 18대 총선은 미디어와 상업주의가 결합되면서 대중정치의 장(場)이 되어야 할 선거의 의미를 또 한번 왜곡시키고 있다.

2000년 이후 선거에서는 옥외 연설회가 금지되고 미디어를 통한 선거광고가 늘어났다. 특히 인터넷 포털 사이트를 돌아다니다 보면 플래시 광고가 눈에 많이 띤다. 그런데 당명을 지우고 본다면 어떤 당의 광고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비슷한 내용의 문구들로 가득하다. 또한 언제부턴가 공직자 선거에 눈에 띄게 연예인들이 많이 따라붙고 있다. 기업이 CF모델을 섭외하듯이 정당을 홍보하는 선전도구로 연예인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선거에서 대중의 능동적 참여가 배제되고 단지 표 찍는 기계가 되어버리면서, 선거운동은 갈수록 더 많은 표를 벌기 위한 ‘정치상품’ 판촉행사가 되어가고 있다. 전국의 어떤 편의점에 가도 똑같은 상품이 진열되어 있는 것처럼, ‘정치의 상품화’로 인해 전국에 어떤 선거구에 가더라도 ‘개발’과 ‘성장’이라는 장밋빛 미래를 약속하는 공약들뿐이다. 한나라당의 대운하 공약을 맹비난하고 있는 민주당에서 이명박의 청계천 공사를 연상시키는 ‘도림천을 관광특구로’라는 공약을 내건 것만 봐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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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만고만한 저질 정치상품들의 범람은 정치의 주체여야 할 대중들을 객체로 전락시킨다. 특히 이번에 민주노동당이 내건 <88만원세대특별보호법>을 보면 비정규직 노동자를 ‘보호’해 주겠답시고 이들의 권리를 박탈한 <비정규직보호법>이 연상되기도 한다. <88만원세대>라는 책은 분명 “20대여, 토플책을 덮고 바리케이트를 치고 짱돌을 들어라!”는 말로 선동하고 있다. 그런데 이 뒤틀린 선거판이 <88만원세대>담론을 제 멋대로 가져다 쓰면서 20대를 정치의 객체로, 보호받아야만 하는 나약한 존재로 만들고 있다.



지난 10년, 잃어버린 것은 ‘대중정치’다!!

부실하게 획득된 직선제의 가장 비극적인 결말은 더 이상 1인1표제의 원칙마저도 지켜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현재 일용직, 비정규직 노동자가 많은 사업장의 대부분은 공휴일로 지정된 선거일에도 쉬지 않는다. 이런 사업장은 점점 많아지고 있다. 그러는 사이 가진자들의 구미에 맞는 공약들만 쏟아져 나온다. 선거일에 쉬지 않는 노동자들과 저질 정치상품들에 질려서 투표를 포기한 사람들을 배제한 채, 부자들만을 위한 투표가 버젓이 진행되고, 그렇게 뽑힌 사람들이 금배지를 단다. 그러나 새우깡이라는 불량식품에서 생쥐머리가 나오듯이 이런 불량 정치상품들에서는 필연적으로 부정부패, 비리, 노동탄압, 생태파괴가 나올 수밖에 없다. 이것은 진보정당이라고 예외가 될 수는 없다.

지난 10년간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과연 무엇인가? 정확한 지표상으로 경제성장은 지체되지 않았다. 재벌들은 국경을 넘나들면서 부를 축적하는 새로운 경제성장의 터전을 닦았다. 반면 수많은 대중들이 실업자가 되고, 사회적 빈곤에 허덕이고 있다. 87년 이후 획득된 허울 좋은 직선제의 평등담론이 이런 모순을 가리고 있었다.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경제성장이 아니라 바로 부조리에 저항할 수 있는 힘이다. 87년 6월 그렇게 민주주의를 되찾기 위해 외쳤던 대중들의 힘. 그 잃어버린 힘을 다시 되찾아야 한다. 이제 선거라는 ‘제한된 권리’를 넘어선 정치적 상상력을 발휘할 때다.

Posted by 행진

2008/04/01 03:50 2008/04/01 0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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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비밀방문자 2008/04/01 18:29 # M/D Reply Permalink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2. 비밀방문자 2008/04/01 18:48 # M/D Reply Permalink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1. 행진(건) 2008/04/01 23:59 # M/D Permalink

      관심 가져 주셔서 감사합니다.
      '최다 득표'라는 말은 "최다 득표율"로 고치면 되겠군요.
      그리고 '마담'이라는 말에 대해 지적해주신 것도 동의합니다.
      수정하겠습니다.

      그리고 생쥐머리가 나온 새우깡은 불량식품이 맞는 것 같습니다.ㅎㅎ

  3. 보스코프스키 2008/04/06 20:52 # M/D Reply Permalink

    우리의 대표가 군인에서 민간인으로 그리고 다시 진보인사로 바뀌었지만 ===> 우리의 대표가 군인에서 민간인으로 그리고 다시 자유주의 인사로 바뀌었지만 이렇게가 맞지 않나요. 민간인인 김영삼을 민간 극우주의자로 볼 때 이것이 맞는 것 같습니다. 더 지적하자면 민주․진보진영이 아니라 민주․자유진영이 더 적절할 것 같습니다. 아울러 사진 중엔 심상정 - 문소리의 선거운동사진인데 반해서 비판은 민주노동당 것 만 있습니다. 진보신당의 사회연대전략에 대한 비판도 있는 데 이건 아닌 것 같습니다. 수고 하십시요.

  4. 행진 2008/04/09 00:44 # M/D Reply Permalink

    관심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진보, 자유 등과 관련된 개념들에 대해서는 엄밀한 규정을 사용하지 않고 써서 세심하게 글을 읽으시면 그런 차이가 드러날 수도 있었겠네요. 김영삼 정권이 '문민정부'를 들고나왔다는 점에서 시기규정의 도구로 사용해 볼 수 있지 않을까요? 또한 우리가 흔히 '진보진영'이라 부르는 세력들도 직선제에 대한 환상을 공유했던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인것 같습니다.

    그리고 심상정-문소리 사진은 바로 위에서 설명하고 있는 '정치의 상품화'라는 측면을 부각시키기 위해 실었습니다. 최근 진보신당의 선거운동이라는 것이 (김석준 대표도 인정했듯이) 스타마케팅에 의존하고 있는 경향이 있죠.

    그리고 사회연대전략에 대한 비판이 있다고 하셨는데, 어떤부분을 두고 말씀하신 건가요? 딱히 그런 부분을 지적하진 않았는데요...

  5. 금복주 2008/04/23 16:33 # M/D Reply Permalink

    진보신당 당원으로서 뭐 그냥 가려다 한마디 하고 적고 가렵니다.
    글에서 풍기는 노린내를 참을수가 없군요....

    당신들이 말하는 정치적 상상력이라는 것의 실체가 무엇인가요? 대중정치를 말하지만 실제적인 실천을 어떻게 하는가가 중요하고 고민되어야 하고 행동으로 보여주어야 합니다.

    선거는 그러한 고민들을 대중에게 보여줄 수 있는 중요한 장입니다. 그러고 그런 설천의 장이 선거때에만 매몰되어지지 않고 일상적인 정치활동의 공간으로 지역에서 실천되어져야 합니다. 그러한 예는 민주노동당시절 활동에서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가장 먼저 이랜드 투쟁을 촉발한 단위는 당신들이 더럽다고 참여하지 않았던 정당의 당원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주말마다, 금요일마다 집회에 참여하고 대중에게 선전하고 있는 많은 당원들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런것들이 정당정치의 참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많은 진보신당 당원들이 만들어 가고 싶은 정치의 모습이기도 하고요..(물론 지금은 둘로 쪼개져서 활동하고 있지만...ㅎㅎ), 물론 학생단위들의 열혈적인 연대에도 눈물겹게 고마워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고민들을 대중에게 선전할 수 있는 선거라는 공간과 그것에 대응하기 위한 당원들의 모임을 이렇게 폄하 할 수 있는 겁니까? 오히려 그것을 비켜가는 당신들의 모습이 비겁해 보입니다.

    진보정당 운동은 이러한 고민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정치가 더럽다고 발에 진흙을 붙치지 않겠다는 당신들의 지난 과거를 한번 돌아보십시요..

    학생운동은 정당운동이 갖는 틀에서 벗어나 좀더 자유로운 모습으로, 실천적 활동으로 빛을 발하기를 희망하는 한사람이지만 이런식으로 정당운동을 폄하하는 글을 볼때 화가 치밀어 오름을 느낍니다.

    또하나..
    위 사진의 문소리씨나 김부선씨, 하리수씨등은 타의에 의해서 동원된 스타들이 아닙니다. 그건 당신도 알고 활동하는 당원이며 모두 아는 사실입니다. 자신들의 정치적 견해와 가장 근접한 정당의 선거운동을 스스로 자청해서 참여한 운동원입니다. 진보신당이 무슨 돈이 있어 그들을 동원한 것이라 생각하시지는 않겠지요?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적극적으로 선전하는 당원이고 당신이 말한 잃어버린 대중정치를 스스로 찾으려고 하는 대중인 것입니다. 그런 사람의 사진을 정치의 상품화라는 제목의 글에 끼워넣어야 합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