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도 학생회 선거 부정 및 파행 사태를 돌아본다
-학생회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적극적인 행동들을 제안한다!



 

‘정치의 축제’가 ‘정치에 대한 불신의 장’으로?

“지성의 전당이자 기성사회에 대한 '소금' 역할이 기대돼왔던 대학 내 학생회 선거가 최근 부정과 비리로 얼룩지고 있다. 후보 자격 시비는 단골 메뉴가 됐고 대리, 부정 투표에다 이권과 조직폭력배 개입까지 점입가경이다.” 
[연합뉴스 2009년 12월 8일]

  ‘대학 정치의 축제’로 불렸던 대학 학생회 선거, 올해는 선거 부정 및 파행 사태가 전국적으로 급증하였다. 서울대 총학생회 선거에서는 선거관리위원들이 투표함의 봉인을 뜯고 사전에 열어보며 표계산을 했다는 부정선거 의혹이 제기되고, 이 문제를 제기한 선거운동본부(이하 선본)에서는 선관위실에 도청기를 몰래 장착하여 녹음된 파일을 그 증거물로 제출하여 논란이 되었다. 한편 성균관대에서는 한 선본의 후보가 성폭력 가해자라는 문제제기가 있어 자진사퇴했다가, 선거가 무산되고 재선거가 실시되자 다시 후보등록을 하여 재출마했다. 이 선거 투표과정에서 선관위를 사칭한 이가 선관위 아이디를 받아내 전자시스템에 접속해 3백여 명분의 대리투표를 하고, 학내 한 건물에서는 유사 투표지 수백 장이 흩뿌려지면서 사태는 일파만파로 진행되었다. 이에 선관위는 “선거결과에는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는 말만 되풀이하면서 선거를 강행하였다.

  물론 선거 부정 및 파행 사태가 올해 처음 발생한 것은 아니다. 학생사회 내의 자치활동과 학생회운동이 급격히 쇠퇴하면서 동반된, 최근 몇 년간 계속된 낯설지 않은 문제였다. 이 글에서 문제를 드러내는 것은 올해 유난히 많이 발생했다는 양적문제라거나 언론에 많이 보도되었다는 외부적 요인 이상의 이유에서이다. 가속화되고 있는 학생사회 내 ‘정치의 부재’ 문제와 학생회에 대한 학우 전반의 신뢰가 극도로 낮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러한 선본의 부정행위, 선관위의 비민주적이고 비공정한 선거 운영은 이런 현상을 더욱 심화시켜놓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작년 같은 촛불투쟁이 재점화된다 하더라도 (구성원간의 치열한 토론을 토대로) 학생회의 깃발을 내세우며 거리로 나가는 것이 아니라, 개별 주체들이 알아서 판단하고 거리로 나서는 경우가 더 증대될 것이라는 말이다. 또한 이런 경향에 맞서 학생들의 집단적인 움직임, 학생사회를 다시 왁자지껄한 대학생들의 정치의 장으로 세워내기 위해 헌신해왔던 많은 이들의 무수한 노력들을 한숨에 무위로 돌려놓을 수도 있다. 그러하기에 태평하게 ‘비평’하고 그칠 수 없는 어떤 실천이 요청되는 문제 상황일 수밖에 없다.


민주성과 공정성의 부재

  선거에서 두드러진 첫 번째 문제는 ‘민주성과 공정성의 부재’였다. 홍익대 총학생회 선거에서도 봉인된 투표함이 개표 전 이미 뜯겨있었다는 제기가 들어와 개표가 연기되기도 하였다. 이에 선관위에서는 “명부와 표 개수가 일치하니 개표를 속개한다”는 입장을 내세웠다. 성균관대 총학생회 선거에서도 선관위는 이와 유사한 입장으로 투표를 강행했다. 이런 선관위의 문제 처리방식에 대한 학우 일반의 여론은 선관위와 대별되었다. “내 표가 사라졌을 지도 모르고, 내 표가 다른 표로 바꿔치기 되었을 수도 있는 이 선거는 무효다!”, “민주주의를 이야기하던 총학생회에서 어떻게 이런 비민주적 판단을 할 수 있는가!” 이러한 반응은 선관위 책임론으로 이어져 ‘선관위 사퇴’를 요구하기도 하였다.
  비록 이런 (결코 긍정적이지 못한!) 문제 때문이라 할지라도 많은 이들의 관심이 학생회 선거로 집중되었다. 그/그녀들은 ‘의아함’, ‘말도 안 됨’이라는 반응을 대체로 보였다. 첫째, ‘선거’라는 일반적인 민주주의의 형식적 내용에 동의하는 상식적인 사람으로서 부정한 방법까지 동원하여 선거운동을 한 선본과 납득할 수 없는 처리과정을 보여준 선관위에 대한 불신이다. 둘째, “기성 정치판과 다를 바 없다”는 반응처럼 여전히 관념 속에 존재하는(물론 많이 사그라졌다. 하지만 여전히 기대를 걸고 있던 범주에서라도!) ‘대학생들의 정치’가 지닌 의로움, 정당함, 신선함이라는 표상이 다시 한 번 깨진 것이다. 이런 점은 선거에 한 표를 행사했든 하지 않았든 간에 학내 구성원으로서는 당연한 반응이었다. ‘더러워진’ 선거에 대한 불신은 결국 무관심 혹은 적극적인 선거거부의 행동으로 이어졌다. ‘선거-연장투표-재선거-연장투표’의 지난한 과정을 거친 서울대 총학생회 선거가 끝내 투표율 미달로 무산된 것은 이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민주성과 공정성’은 선거로 당선된 선본이 ‘대표성’을 확보하기 위한 전제 요소이다. 과정이 미심쩍은 선거의 결과에 그 누가 신뢰를 보내겠는가.

선관위/선본들은 학생회 신뢰회복을 진정으로 고민했는가?

  선관위와 선본들에게 몇 가지의 질문을 던져보자. 사태의 심각성과 그 성격을 정확히 인지하고 있는가, 사태에 대한 ‘선관위/선본으로서 책임’을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그리고 현 시기 학생회의 방향과 신뢰회복을 위한 핵심과제가 무엇인가? 대체로 이들은 선거/투표에서 발생한 문제들에 대해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은 것 같다. 문제의 심각성에 대한 판단은 일차적으로 학우들의 반응(이런 선거가 신뢰를 받을 수 있는가?)에 준거할 수 있을 것이다. 많은 이들이 직접 발언하거나 혹은 인터넷 게시판, 대자보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문제제기하였다. 상당한 불만이 존재함을 느낄 수 있었음에도 선본이나 선관위는 함구하거나 단순한 해명을 내놓았을 뿐이었다.
  선관위든 선본이든 ‘선거가 차질 없이 진행, 완료되는 것’ 이상의 책임을 보여주었어야 했다. 특히 선거 또한 학생회를 중심으로 학생사회의 정치를 만들어가는 과정 중 하나이고 그 첫 발걸음이라는 점을 핵심적으로 사고했어야 했다. 부정/비리에 대한 고발과 상호비방이 불러일으킬 효과를 고려하여 선거완료 혹은 선거당선의 목표를 넘어서, 사태가 발생한 현 시점에서 ‘학생회에 대한 학우들의 불신을 긍정적으로 해소’하기 위한 (단기/중장기적) 대책을 마련하고 실행하는 데에 온 힘을 다했어야 했다.

“지금 이대로라면 무언가 부족하다는 것. 진상규명과 재투표만으로는 절대 회복되지 않을 서울대 총학생회의 위상과 서울대 학생사회의 신뢰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것! 그 사실 자체는 의혹과 혼란으로 얼룩진 지금의 상황에서 분명하다 말할 수 있는 딱 한 가지입니다.” 
[서울대 학생행진 입장자보 “부정선거 의혹 진상규명과 학생사회 신뢰 회복을 위해 총운영위원회에 제안합니다!” 中]

  덧붙여, 적어도 이런 점을 인식했다면 이른바 ‘진보적’ 단체라 하더라도 “가재는 게편”격으로 선거가 무산, 파행된 것에 대해 ‘아쉬움’, ‘안타까움’으로 표현하지 말았어야 했다.

“2010 학생회가 학우들의 힘으로 잘 건설된 곳도 있고, 이러저러한 사건들로 안타깝게 파행이 되거나 투표율 미달로 보궐로 넘어간 단위가 있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21세기 한국대학생연합]

“부산대 총학생회는 같은 경향의 선관위가 학생회칙을 어기고 휴학생도 피선거권을 갖도록 세칙을 개정하는 무리수를 둬 선거가 무산되는 아쉬움이 있었지만, 지방의 주요 국공립대 학생회 선거에서도 대부분 ‘운동권’ 후보가 당선했다.”  [레프트21]

무엇보다 큰 문제는 학생자치활동 내에서 발생한 문제를 해결할 자정능력의 위기이다!

“한국외대 용인캠퍼스의 경우 3명의 후보가 나와 비방유인물 시비로 1명이 중도사퇴했고 최종 선거 결과, 낙선자측이 타 후보와 선관위원장간 대화 녹취록을 공개하며 법원에 선거무효소송과 학생회장 효력정치 가처분 신청을 낼 태세다. 경상대 총학생회장 선거 과정에서도 낙선 후보가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하며 선거인 명부 등 자료에 대한 증거보전신청을 서울 법원에 냈다.”  [연합뉴스 2009년 12월 8일]

  “어떻게 이런 비상식적인 일들이 일어날 수 있는가?”와 같은 당위적인 언사가 아니라 현실적 차원에서 생각하면 부정선거나 비리문제는 충분히 발생가능하다. 일각에서 분석하는 ‘총학생회의 각종 이권 개입 가능성’, ‘경력을 이용한 정계 진출 및 취업에 유리함’ 등의 이유도 한 몫 하는 듯하다. 그 해결책으로 “예산집행에 대한 투명성을 높이고 '작은 정권'인 총학을 견제할 기구를 학생들이 만들도록 해줘야한다”는 의견도 제시되고 있다. 하지만 견제기구가 있다고 해서 혹은 법적 규제가 있다고 해서 기존 정치판에 비리가 근절되는 것이 아니듯이, 보다 근원적인 진단과 처방을 우리는 고민해야 한다. 그러하기에 우리가 제기해야 할 질문은 “이런 비상식적 문제를 학생자치를 통해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가?”이다. 나아가 “학생자치 내 ‘자정능력’을 복구하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이다. 위 질문은 보다 실천적인 문제를 제기한다. 불신과 한탄의 모습이 언론과 각종 학내 구성원이 참여로 운영되는 인터넷 게시판을 통해 분출되지만, 거기서 잠깐 웅성이다 또 금방 흩어지고 게시판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른 정보들과 관련한 글들로 도배되고 있는 것에서 볼 수 있는 지금의 학생사회 (정치)의 단면에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굳이 ‘선거’ 문제가 아니더라도 학내 구성원의 성폭력 사태에 대한 해결, 대학본부의 일방적인 학과 구조조정, 등록금 인상에 대처하는 대학인들의 모습 등의 다른 쟁점에 대해서도 학생회 및 자치단위들의 입장과 해결노력 그리고 대학인들의 행동양태는 크게 다르지 않다. 학생사회를 둘러싸고 일어나고 있는 제 문제들에 대해 대학인들이 목소리를 한데 모으고 함께 해결하기 위한 토론과 논쟁의 장을 열어 휘발성 불만과 의견으로 그치는 현 상황을 넘어서기 위한 노력이 절실하다. 이것을 그저 ‘화려했던 80-90년대 대학가의 유물’로만 남겨둔 채 스쳐지나갈 것인가?

‘적극적인’ 대학생들이 할 일

  꽁꽁 얼어붙은 학내 연못마냥, 세찬 바람에 움츠러든 어깨마냥 그렇게 나의 생각을 내 안에 가둬놓고 겨울을 보내지는 말자. 인터넷 댓글이나 단짝 친구들과의 수다만이 아닌, 좀더 적극적인 문제해결 방식을 고민하자! 이도저도 아닌 반응이나 무관심은 선거 부정과 파행 사태를 더욱 심화, 지속시키는데 일조할 뿐이다. 그 속에서 학생/학생사회 내에서의 나의 목소리와 권리는 더욱 축소되고 소외될 것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다시금 대학인이 ‘자치(自治)’를 되살리기 위한 작은 노력이다. 단지 겨울방학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다가올 2010년 한해 줄곧 이어져야 할 우리의 ‘실천’이다.

  하나, 학생회에 대한 신뢰회복과 학생회 선거의 위상과 역할에 관한 고민을 나누자! 

  -지난 선거에서 소속되어 있는 학생회에 부정, 비리 등의 문제가 있었다면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 것이 맞을지를 주제로 이야기 나눠보자. 이는 단지 ‘문제처리’의 기술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하기에 학생회 선거 그리고 학생회의 역할과 활동방향이 어떠해야하는지를 함께 토론할 때 보다 근원적인 해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굳이 소속되어있는 학생회가 위의 문제를 겪지 않았더라도 (앞서 봤듯) 학생사회의 문제에 대처하는 양상, 그 문제점은 동일하다. 학내 문제사안(학내 구조조정, 성폭력, 자치활동 규제/탄압 등)에 대해 어떻게 해결해야하는지, 여기서 학생회의 역할이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토론해보자.

  둘, 위의 이야기를 함께 토론하고 논쟁할 ‘공간’을 마련하자!

  -대중단위 LT나 자치단위의 토론자리가 있다면 좋다. 예를 들어, 함께 내년 학생회를 준비하는 집행부들과 함께 학생회의 상과 역할에 대해 다시금 토론해보기도 하고, 만약 3월 재선거가 예정되어 있다면 개강 시기 학생회 차원에서 학내에 유의미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자리를 구상해보는 것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굳이 학생회 활동을 하지 않더라도 자신이 소속된 다양한 공간에서 ‘특별 토론’을 계획할 수 있을 것이다. 2월 새내기맞이 사업을 구상하고 준비하면서 학생사회의 정치 등을 토론하고 이를 근거로 사업의 방향을 잡는 것도 유의미한 시간이 될 것이다. 독자 여러분들의 활발한 토론을 기대한다.

Posted by 행진

2009/12/19 23:41 2009/12/19 2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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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지나가다 2009/12/21 11:24 # M/D Reply Permalink

    이번 문제에 관심을 갖고 지켜보던 사람입니다. 제가 접할 수 있는 정보는 오직 인터넷 뿐이지만, 이를 통해 제가 판단한 것과 글에서 보여진 입장과는 약간 다른 부분이 있네요. (물론 전반적으로는 동의하지만)
    글에서 언급한 성균관대 같은 경우 '진짜' 문제가 되는 것은 글에서 지적한 것처럼 재선거 과정에서 대리투표와 유사 투표지 발생이 아니라, 두 선본이 비도덕적인 행위로 인해 자격이 박탈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재선거과정에서 다시 등록했다는 것이고, 이 과정에서 학생사회가 어떤 문제제기도, 어떠한 자정능력도 발휘하지 못했다는 점에 있는 것 아닐까요? 사실상 재선거의 그 짧은 기간동안 새롭게 후보등록을 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거란 생각을 해 볼 때, 재선거라는 것은 오직 자격이 박탈된 선본에게 기회를 한 번 더 준다는 의미밖에 없는 것이었죠. 그렇게 본다면 글에서 지적한 문제는 이에 비하면 부수적인 사태에 불과하다는 느낌이 드는데요...
    오히려 재선거가 이미 시작되어버린 상황이라는 점에 초점을 맞춰 본다면 (양선본과 선관위 등 선거를 운영하는 누군가의 의도적인 소행이라고 보기 힘든) 위와 같은 범행은 어떻게든 처리하고 정상적으로 선거를 진행시키는게 원칙상 맞지 않을까요? (전적으로 외부자의 입장에서 드리는 말씀이니 실제 학내 상황과는 맞지 않을 수도 있겠습니다.)
    지엽적인 문제로 보일 수도 있겠으나, 선거파행이라는 대처하는 세밀한 방식에 있어서 유념해야 할 부분인 것 같아 지적하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