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쟁점2] 

교육, 실업, 경제위기의 삼각함수




0. 대학 천태만상(千態萬象)

  캠퍼스에 봄이 흘러넘치면, 각 대학에서는 설렌 모습의 새내기들을 맞이하게 된다. 그런데 이렇게 활기가 넘치는 캠퍼스의 한 편에는 또 다른 걱정이 솟아난다. IMF 이후 대학을 졸업해도 취직하기 쉽지 않으면서 대학은 일종의 ‘취업 학원’으로 변모하였고, 많은 대학인들의 최대 관심사는 더 좋은 직장을 구하는 것이 되었다. 최근 경제위기가 더욱 심해지면서 이런 현상은 더욱 강화되었고, ‘낭만이 넘치는 캠퍼스’의 모습은 3월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사라진다. 낭만이 사라진 공간에서 남은 것은 학점관리ㆍ어학점수관리ㆍ경력관리와 같이 길고 긴 스펙관리에 들어가게 된다. 현재 대학인들은 자기계발의 환상과 도태의 공포 속에서 적극적으로 자기의 노동력을 경영하고 관리하며, '열심히 사는 대학생'으로 자신의 투자가치를 높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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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우리가 다니고 있는 대학의 모습 역시 10년도 채 안 되는 변화의 모습이다. 기업의 이름을 딴 건물이 들어서고, 단과대 건물에 기업의 실험실과 연구실이 버젓이 들어오고, 학내에 각종 상업 시설이 들어오는 모습. 학부제 도입ㆍ졸업인증시험ㆍ영어점수 획득 등 학사과정이 더욱 엄격해 지는 모습. ‘평생직장’은 없다며 직장을 잡은 후에도 주말에는 영어학원에 나가는 등 ‘평생교육’을 받는 모습. 캠퍼스에 5~6학년과 졸업생들이 많아지고, 더 이상 기초과학에는 관심이 없게 된 모습. 이러한 모습은 어디에서 기원하고, 어떤 본질을 가지고 있는가? 2009년 마이너스 경제성장률이 예상될 정도로 경제위기가 심화되는 가운데, 대학교육의 모습은 어떻게 바뀔 것인가? 이러한 지점들을 예상하며 대학을 다니는 것은 우리가 공부하는 것들의 본질이 무엇인지 알 수 있게 할 것이다. 그리고 경제위기 상황에서 어떤 행동들을 해야 하는지, 그 방향을 가늠해 볼 수 있다.  

 

1. 교육은 어떤 의미를 갖느냐?

  흔히 대학은 ‘진리의 상아탑’이라고 불렀고, 대학인들은 ‘지식인’으로 불리던 때가 있었다. 대학은 학문연구를 하는 기관으로 각종 세상사에 대해 중립적인 입장을 취하면서 진리를 추구한다고 ‘생각되었’다. 혹은 대학은 ‘가난한 수재들의 공동체’로서 유일하게 계층상승을 이룩할 수 있는 방법, 개천에서 용 나는 장소로 생각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2008년 대학 진학률은 83.8%에 이르며 아무도 대학인을 지식인이라고 부르지 않고, 모든 대학인들이 취직에 매달려 있는 상황에서 ‘진리의 상아탑’은 옛말이 되었다. 그리고 사회적인 재원과 자원을 갖추고 있어야만 좋은 대학에 들어간다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캠퍼스의 낭만’과 같은 말도 옛말이 되었다. 그런데 대학의 모습이 많이 바뀌었어도 사실 그 본질은 경성제국대학이 성립된 1920년대나, 학생운동이 활발했던 1970~80년대나, 2000년대 현재나 크게 다르지는 않다. 현재의 모습은 오히려 대학의 본질이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시기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대학의 본질을 제대로 살피기 위해서 우리는 ‘근대경제체제=자본주의체제’라는 요인을 함께 살펴봐야만 한다. 근대 시민혁명 이후 사람들은 자유와 평등과 같은 가치들을 내면화하였고, 이를 위해서는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따라서 지배계급이나 귀족들만 독점하고 있던 지식을 분배할 것을 요구하였고, 19세기 노동자들의 투쟁에서 핵심적인 과제 중 하나는 ‘지식의 분배’였다. 한편 산업혁명 이후 기계제 생산 방식이 널리 확산되며, 그전까지는 숙련 노동자들이 가지고 있던 핵심적인 기술과 노하우가 기계로 넘어가게 된다. 예를 들어 그 전까지 무기를 만드는데 있어서 대장장이의 기술이 가장 중요한 요소였고, 이런 기술은 도제 과정을 거친 몇 명 제자에게만 전수되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기계로 무기를 만들게 되면서, 기계에 의한 대량생산이 가능해지게 되었고, 기계를 관리ㆍ운영하는 방식이 더욱 중요해진다. 또한 대규모 기계제에 적합한 대규모의 노동자들이 필요하게 되었고, 이를 육성하는 교육이 필요로 했다. 이를 필요로 하는 것은 다름 아닌 기계를 이용하여 생산을 하는 자본이었다.

이렇게 지식의 배분을 원하는 시민들의 투쟁과 교육된 노동자들을 원하는 자본의 요구가 만나며 초등교육을 중심으로 한 대중적 학교교육이 확대된다. 노동자들에게 들어가는 교육의 비용을 줄이는 것은 ‘공교육’을 이용하는 것인데, 학교의 설립과 운영에 드는 비용을 국가가 전담하며 ‘대중교육’ 확장되어 간다. 초등교육 기관에서는 기본적인 글 읽기 및 산수와 같은 노동을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상식만을 제공한다. 한편 20세기에 들어서면 생산과정을 관리하고 이를 유통ㆍ판매 등과 연결하기 위해 회계ㆍ재무관리ㆍ마케팅 등의 활동이 주목받기 시작한다. 이런 일들을 담당하는 중간관리자 계층이 등장하게 되고, 이들을 양성하게 위해 중등교육ㆍ고등교육 역시 확대된다. 상급학교로 진출함으로서 사무ㆍ관리를 담당하는 지식노동자가 되는 것은 육체노동자에 비해 고임금을 보장하였고, 중등 이상의 학교교육은 빈곤과 실업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계층상승의 통로로 인식된다. 이로 인해 노동자의 지위와 임금이 학력에 의해 규정되기 시작한다. 이는 형식적으로는 모든 대중에게 평등한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자본의 필요에 따라 대중들 내부의 경쟁을 강화하고,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의 분할을 교육을 통해 정당화한다.

미국과 서유럽과 같은 중심부 국가를 중심으로 발전하였던 대중교육은, 1945년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 미국식 자본주의가 전 세계로 확대되는 과정에 발맞추어 확대된다. 한국 역시 해방과 한국전쟁을 거치며 자본주의 체계로 빠르게 변화해가고, 대학 역시 자본주의체제에 부합하는 노동력을 양성하는 기관으로 기능한다. 지금까지 살펴보았듯이 대학의 역사와 기능은 자본주의체제의 변화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습니다. 대학은 자본주의에서 필요로 하는 지식을 생산하는 공간으로서, 그리고 이에 적합한 노동력을 생산하는 공간으로서 기능하는 것이다. 따라서 현재 경제위기의 양상과 이에 대한 대응을 살펴보는 것은, 우리가 다니는 대학이 어떤 모습으로 변해갈 것인지 알아보는데 필수적이다.  

 

2. 금융화에 발맞추는 대학

  2009년 많은 대학들에서 등록금 동결을 선언했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높은 등록금에 힘들어 하고 있다. 등록금은 이미 물가인상을 주도하는 전 사회적인 문제로 인식되고 있고, 사실 신자유주의에 맞춰 대학이 변해가는 징후는 바로 등록금 인상이었다. 즉 대학의 자율성을 높인다는 미명 아래 재정을 차등지원하고, 알아서 살아남기를 강요하는 과정에서 등록금이 인상되었다. 한편 높은 등록금을 부추기는 원인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좀 더 복잡한 교육의 변화과정을 보아야 한다. 그것은 흔히 말하는 대학 구조조정인데, 구조조정의 방향은 전 사회적으로 진행되는 '금융화'와 발맞추게 된다. 이것은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진행되는데 1) 대학의 운영 자체를 금융자본의 이익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만드는 것 2) 대학에서 가르치는 지식 및 통제 방식이 변해가는 것. 이런 두 가지 모습은 서로를 보충해가며 현재 대학의 모습을 특징짓는다.

최근 가장 대표적인 현상은 대학 내 산학협력단이 주식회사 형태의 자회사를 설립할 수 있도록 하여, 대학이 직접 기업을 설립하고 수익을 얻을 수 있게 한 대학기술지주회사이다. 대학기술지주회사 설립과 관련하여 2008년 2월 통과된 ‘산업교육진흥 및 산학협력촉진에 관한 법률’은 최근 더욱 완화되어 더욱 많은 대학이 회사를 설립할 수 있게 되었다. 지난 2월 국내 최초의 대학기술지주회사인 한양대의 ‘HYU홀딩스’가 첫 매출을 기록하였고, 서울대 역시 ‘서울대 기술지주 주식회사’를 출범하여 ‘매출 1조원 목표’의 장사를 본격적으로 시작할 예정이다. 또한 경희대와 고려대 및 동국대 등도 2009년 안 설립을 추진 중이고, 각 대학이 보유하고 있는 기술가치를 평가하고 있다. 이에 대학은 일종의 기업이 되어 자금구조를 최대한의 수익을 얻는데 사용하고, 기업과의 연계를 더욱 노골적으로 강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대학에서 생산되는 지식 역시 기업에서 바로 쓸 수 있는 것을 만들어 내는데, 이미 이공계의 대학원 과정을 중심으로 진행된 산학협동 과정이 사회과학ㆍ인문과학에도 침투하여 지식의 상품화 현상이 강해진다. 이런 과정에서 돈이 되지 않는 학문은 다른 분야에 통폐합되거나, 더욱 기업의 입맛에 맞추는 지식을 생산하게 된다.

대학에서 적극적으로 수익을 창출하려는 지점은 갖가지 지점에서 나타난다. 최근에 금융의 불안정성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며 주춤해지기는 했지만, 많은 대학에서는 자금을 주식투자와 같이 단기간에 수익을 얻을 수 있는 곳에 투자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그리고 자금을 구하기 위해 동문이나 교직원들에게 발전기금 명목으로 기부를 받거나, 심지어 등록금의 일부를 사용하려고 시도하기도 하였다. 또는 캠퍼스 내에 상업시설을 유치하는 현상이 늘어나고 있고, 최근에는 '잡 셰어링'이라는 명목으로 학내 노동자들의 임금을 삭감하고 구조조정을 하려는 시도들 역시 나타나고 있다. 이렇듯 대학의 재단이 기업의 소유가 되며 둘 사이의 연계가 강화되는 것을 넘어, 현재는 대학이 적극적으로 '금융투기'의 주체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와 함께 학교의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상품화하고 있고, 이는 학교의 발전이 곧 구성원들의 발전과 동일하다는 '학교 발전이데올로기'로 이어진다. 학교 발전이데올로기는 대학과 그 구성원들의 배타적인 이익을 옹호하는 기관으로 변모하고, 이런 전략과 위배되는 행동을 하거나 반대하는 세력들을 '외부세력'으로서 배제한다.

경제위기 속에서 대학의 금융화ㆍ기업화 현상은 점점 더 심해지고 있습니다. 혹자는 대학이 많은 돈을 버는 것이 무엇이 나쁘냐고 이야기할 수도 있고, 대학의 경쟁력이 높아져야 학생들도 잘 되는 것 아니냐고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경제위기의 원인이었던 금융화에 대학들이 발맞추는 것은, 사회 전체적으로는 '장작을 지고 불 속에 들어가는' 결과를 초래할 따름이다. 또한 대학의 지식이 단기적으로 기업의 수익을 창출하는데 맞춰짐에 따라, 지식의 내용과 사회에 대한 장기적인 기여도는 낮아질 수밖에 없다. 현재 점점 기업이 되어가고 있는 대학의 모습 속에서, 우리 자신의 미래는 어떻게 될지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만 한다. 

 

3. 대학은 실업률 관리기관?

  2009년 2월 대학의 졸업식장의 풍경을 취재하는 기사들은 '실업', '취업난', '졸업자 감소'와 같은 단어들이 뒤따르는 대학의 우울한 자화상이 담겨있었다. 대졸취업률이 역대 최저에 치달은 상황에서, '잡 셰어링(job sharing)'을 통해 대졸 초입을 깎고 신규인력을 창출할 것을 강력하게 권고 하고 있다. 몇몇 신문에서는 한국의 대학 진학률이 84%에 달하는 현재 상황에서 요즘 같은 불경기에도 대한민국 대다수 학생이 대학에 진학하는 것이 문제라고 이야기하며, 기술ㆍ기능을 연마해 빨리 사회 적응에 나서야 한다고 설교하였다. 하지만 학력격차는 노동시장에서 곧 임금격차로 나타나고, 상급학교에 진출하지 못하면 할 수 있는 일 자체의 폭이 줄어든다! 따라서 실업이 늘어나는데도 불구하고 대학진학률이 이렇게 상승한 이유는 문화ㆍ의식이 성숙하지 못했기 때문이 결코 아니다.

그렇다면 캠퍼스에 '장수생'들이 많아지는 이유는 무엇인가? 한국이 금융자본 중심의 경제구조에 깊숙이 들어가면서 주식ㆍ양도성예금ㆍ모기지 등 금융관련 상품이 증가하고, 벤처사업을 육성한다며 1996년 코스닥 시장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금융을 육성하여 한국경제가 선진국이 될 수 있다는 사람들의 말과 달리, 금융자본은 새로운 가치가 만들어지는 영역이 결코 아니다. 따라서 금융시장을 육성함으로서 사람들을 많이 고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대부분 외국인 투자자들의 행위에 따라 주식의 허구적인 가치가 상승ㆍ하강할 뿐이다. 이것이 바로 '고용 없는 성장'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 게다가 최근 경제위기의 양상은 금융시장의 불안정성이 실물자본에까지 옮겨가 기업들이 줄줄이 도산하고, 고용되어 있던 노동자들도 해고되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실업은 개개인이 능력 없는 탓으로 환원될 수 없으며, 단순히 '눈높이'를 낮추는 것으로 해결할 수도 없다. 문제는 금융자본의 이익에 초점이 맞춰진 현재 경제체제의 문제이고, 몇몇 경제전문가들이 좋은 정책을 제시하는 것으로 현재의 체제를 바꿀 수 없다.

이미 몇 년 전부터 취업률이 최고의 홍보수단이 된 대학들은, 심각해진 실업문제와 관련하여 대안을 내놓고 있다. 숙명여대는 취업하지 못한 졸업자와 졸업예정자를 위한 무상 프로그램인 '학사 후 과정(Post-Bachelor Program)'을 시행하고 있다. 동문멘토링ㆍ취업캠프 등 프로그램으로 '백수 졸업자'의 취업 지원을 하는 학교들도 있는데, 한국외대는 7월 '졸업생 업그레이드 프로그램'을 개설하여 어학강좌와 경영회계실무 등을 교육할 예정이고, 성공회대도 내년 여름방학부터 '모의회사프로그램'이라는 졸업자 취업지원제도를 시행한다 한다. 이런 프로그램들은 학생들의 취업을 지원한다는 측면도 가지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양산되고 있는 '예비실업자'들을 학교에 묶어놓아 취업률 통계를 관리하는 방법이다. 한편 이것은 정부에서 취업자에 대한 지원을 강화한다는 내용을 담은 '포뮬러 펀딩(Formula Funding)' 등과 맞물려 정부지원을 획득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정부에서 실시하며 이미 그 부작용이 드러나고 있는 '청년 인턴제 정책'과 맞물려, 각 대학의 실업대책 역시 낮은 임금의 임시직을 양산하는 것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자본주의에 걸맞은 노동력을 양성하며 급격히 증가한 한국의 대학은 경제위기 상황에서 '실업률을 관리하는 기관'으로 변하고 있다. 그리고 대학인들에게 언제 잘릴지 모르는 불안정한 노동시장에 들어가서, 계속 일하고 싶다면 끊임없이 개인의 경쟁력과 스펙을 쌓아야 하는 것을 가르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억지로' 교육을 받아야 하는 기간은 무한히 늘어나고, 실업 인구는 적체되어 가고 있다. 대학들은 실업문제를 결코 해결하지 못하며 문제를 유예하고 봉합하는 데 적극 동참할 뿐이다.  

 

4. 어떤 대학생활을 할 것인가?

  우리가 대학에 다니는 이유는 무엇인가? 혹은 무엇 때문에 대학에 존재한다고 생각하는가? 물론 ‘진리 추구’ 혹은 ‘학문 연구’라고 대답하는 사람들도 간혹 있을 것이다. 더 많은 사람들은 더 좋은 직장을 얻기 위해서, 혹은 남들이 다 가니까 어쩔 수 없어서라는 대답을 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현실적인 목표’도 현재의 상황에서는 달성하기 어려워 보인다. 경제위기 속에서 실업률은 점차 증가하지만, 역설적으로 교육을 받는 시기는 점점 늘어간다. 대학은 금융화ㆍ기업화에 적극적으로 편입하며 경제위기에 대응한다고 하지만, 일부 사람들만이 그 혜택을 받을 수 있을 뿐이다. 그런 과정에서 인간을 자유롭게 해야 할 지식은 오히려 인간을 구속하고 있다.

현재 더욱 중요한 것은 개인의 경쟁력을 높이고 스펙을 쌓는 것 보다, 대학에서 지식을 습득하고 공부를 하는 것의 의미를 좀 더 근본적으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최소한 아직 대학생활의 여유가 남아 있다면, 졸업까지는 많은 시간이 남았다면 위와 같은 것들을 성찰할 수 있는 활동을 할 필요도 있을 것이다. 취업과는 상관없어 보이는 변혁적인 사회과학을 공부하는 것, 거리에 몸을 맡기고 사회적 문제를 풀어나가는 실천을 하는 것, 최대한 학내에서 자치활동을 많이 해보는 것. 이를 통해서 대학에서 쏟아지는 엄청난 지식에 짓눌리지 않게, 교육을 받는 것이 더욱 많은 사람에게 행복한 일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더 이상 대학을 ‘진리의 상아탑’이라고 부르지 않고, 대학 자체가 기업이 되고 있는 현재. 대학-실업-경제위기의 삼각함수를 풀 수 있는 방법을 함께 고민해보자!

Posted by 행진

2009/03/11 04:40 2009/03/11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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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야기 하나.

1630년대 중반 네덜란드 튤립 버블 당시의 기록에 따르면, 누군가 황소 1.000마리를 팔아 튤립 뿌리 40개를 사고도 득의의 웃음을 터뜨렸다고 한다.

16세기 후반 사치품 정도로 여겨졌던 튤립은 1630년대에는 튤립 구근의 공급이 늘어나 가격이 떨어졌고, 일반 대중도 찾기 시작했다. 이런 대중화에 따라 원예사들은 튤립 재배에 ‘우아하고 제한된 방식’ 대신 ‘공격적이고 기업가적인 방식’을 도입했다. 직조업자, 목수, 제분업자, 대장장이, 작은 배의 선장 모두가 원예 열풍에 사로잡혔다. 1630년대 중반이 되자 꽃은 계절적인 상품이라는 요인도 가세해 공급이 수요를 쫓아가지 못했다. 당연히 튤립의 가격은 매우 가파르게 상승했다.

튤립가격이 치솟자, 암스테르담의 증권거래소는 튤립 거래를 아예 상장 종목으로 내걸기 시작했다. 돈부터 받고 물건은 나중에 건네주는 현대판 ‘선물 거래’가 판을 치는가 하면, 이 북새통에 상인들은 이중 삼중 계약으로 돈을 챙긴 뒤 부도를 내기도 했다. 한 번은 수입 화물을 싣고 온 선원에게 수고의 뜻으로 주인이 훈제 청어 한 마리를 내주었더니, 그는 무심코 선주 사무실의 ‘양파’ 하나를 들고 나가 기분 좋게 점심 식사를 마쳤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양파는 ‘셈페르 아우구스투스’(황제 튤립)라는 튤립 구근이었다. 프랑스 경제학자의 계산에 따르면 당시 ‘셈페르 아우구스투스’ 튤립 구근은 한 뿌리에 현재의 한화 4,000만 원이나 된다. 4,000만 원짜리 점심을 먹은 선원은 이유도 모른 채 옥에 갇혔다.

# 이야기 둘.

" (...) 본인의 실패한 인생을 회고함으로써 누군가 이글을 읽어본다면, 본인의 잘못된 삶의 모습을 보고 답습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 또한 가지고 있습니다.

(...) 본인은 주식과 선물옵션을 21년째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처럼 활황장세에 파생에 실패한 파생인의 기록을 남김으로 해서, 파생에 위험성을 고지함과 동시에 잘못된 시장의 생리를 파헤쳐 누군가 또다른 피해자가 나오지 아니하길 간절히 바랄 따름입니다. 파생시장은 투자의 개념이 아닌 도박성을 띄운 상품입니다. 인간의 본성 속에 깊게 자리한 물욕이란 더러운 욕심이 만들어낸 허울 속에서, 인간이 만들어 놓은 더러운 도박판인 것이지요.

(...) 이제 과거의 잘못을 뉘우치면서 그리고 주식이나 파생을 하시는 분들이 읽어보면 좋을 것 같아서, (...) "

위 글은 한 증권전문사이트에서 필명 '시골국수'로 활약하던(이른바 파생상품투자의 '재야고수'로 불리던) 한 주식투자가의 유서이다. 그는 유서를 남기고 잠적한 지 2주 후인 6월 말, 숨진 채로 발견되었다고 한다.

다른 듯 보이는 위의 두 이야기에는 커다란 공통점이 하나 있다. 바로 ‘투기적인 시장구조’가 그것이다.

여기서 차이점이 있다면 16세기의 튤립이 오늘날 탄소배출권, 광고시간, 통신주파수대역, 에너지, 기후 등등의 파생상품과 같은 이상한 것들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만약 ‘봉이 김선달’이 현대를 살았다면 결코 많은 돈을 벌지 못했을 것이다.  ‘물 사유화’가 진행되고 있을 뿐 아니라, ‘물’ 투자 상품도 이미 거래되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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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를 틀기가 무섭게 금융상품광고가 쏟아지고, 서점가는 재테크 관련 서적들로 넘쳐나고, 심지어 요즘 대학가에서 소위 가장 잘 나가는(?) 동아리는 ‘부자학연합동아리’라고 한다. 모든 사람들이 투자를 잘하면 언제든지 부자가 될 것처럼 사회분위기를 조장하지만, 최상위 20%와 가장 낮은 계층 20%의 소득 격차는 8배로 사상 최대치로 벌어졌고 금융거래가 불가능한 사람만 하더라도 500만 명 이상으로 추산된다고 한다. 미국에서는 서브프라임모기지(Sub-prime Mortgage) 사태로 인해 허리케인 ‘카트리나’ 때보다도 많은 200~300만가구가 집을 잃을지도 모른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은 자신이 투자한 주식의 등락에 안절부절못하는 이른바 스톡홀릭(stockholic·주식중독)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면 일확천금을 꿈꾸는 사람들의 도덕성을 탓해야 하는 문제일까? 아니면 기본적인 생활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대출을 해야만 하는 사람들의 능력이 부족해서인가?

앞서 이야기했듯이 문제의 본질은 ‘투기적 시장구조’이다. 이는 특히 오늘날의 경우, ‘주주가치의 극대화’를 위해 노동자민중의 일방적 희생을 강요하는 ‘금융(세계)화’를 통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간단하게나마, 현재의 금융세계화의 특징에 대해 살펴보자.

세계경제는 1970년대 이후 이윤율이 하락하면서 금융화가 재개된다. 1970년대의 ‘금융세계화’가 은행을 중심으로 진행되었다면, 1990년대 이후에는 증권시장을 중심으로 하는 신자유주의적 금융세계화가 진전된다. 보통 시장이 세계화된다고 하는데, 여기서 시장은 증권시장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다.

증권시장의 주요 행위자는 기관투자가와 법인자본이다. 연기금을 매개로한 기관투자가는 현재 금융화의 핵심 동력이라 할 수 있다. 연기금은 연금과 여러 가지 기금들을 말하는데, 다양한 펀드들을 포함한 대규모 공무원 연금 같은 것이 이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미국은 개인이 납부한 연금적립금을 퇴직 뒤 되돌려 받는 적립식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데 최근 우리나라도 이런 시스템으로 가고 있다. 기관투자가들은 연기금의 수익률을 올리기 위해 단기투자나 위험을 무릅쓰고 투자를 하기도 하고, 투자대상 기업에 구조조정 압력을 넣어 투자한 기업의 시장가치를 높이려는 노력을 하게 된다. 여기서 연기금 자체가 노동자의 발목을 잡는 사이클을 형성하는 역설이 발생하는데, 거대 규모가 된 연기금의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주식시장에 투자하는데 연기금이 대주주이니까 투자대상 기업에게 강력한 구조조정을 요구하게 된다. 구조조정의 가장 손쉬운 방법은 인원감축이고, 그러면 기업의 시장가치는 올라가게 된다. 또한, 산업지배적인 금융그룹이 등장하게 되는데, 제조업 기반을 가졌던 기업들이 주소득원을 더 이상 제조업에서 찾지 않고 금융업 쪽으로 변신하여 복합기업을 이루는 형태가 늘어난다. 대표적인 예로 제네럴일레트릭(GE)를 보면 “주주 가치 극대화를 통한 시장 가치 경영”을 내걸고 핵심적으로, 1. 기업 인수와 기존 사업 부문 매각, 2. 대규모 정리 해고 등 ‘산업적’ 비용 절감, 3. 금융서비스 부문 등으로의 진출(‘GE금융서비스’는 현재 GE의 이익구조에서 30%이상을 차지하는 핵심 부문.) 등 구조조정과 정리해고를 강력하게 추진하면서 기업의 시장가치를 높이려 했다. 그리고 이를 통해, 1980년과 1998년을 비교했을 때, 주주들에게 돌아간 몫이 1200%증가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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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현재의 금융세계화 국면에서는 전 세계의 금융이 거미줄처럼 얽혀있다. 혹자들은 ‘미국 경제의 재채기에 다른 나라들은 몸살을 앓는다.’는 표현을 하기도 한다. 초국적 기업이 자회사 형태를 통해 복잡한 상호투자의 네트워크를 형성하게 되는데, 이 투자망이 매우 복잡하게 얽혀있어서 국가를 단위로 보호주의적으로 분리되는 것은 불가능하게 된다. 어떤 국가도 독립적 경제를 분리시켜낼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하루에도 1조 달러가 넘는 투기자본이 이익을 쫓아 국경을 넘나들고 있는 상황은 약간의 위험신호가 언제 어느 때 태풍으로 돌변할지 알 수 없게 되었다. 97년 11월 일본 은행들이 우리나라에 대출했던 대규모 자금을 한꺼번에 회수한 것이 외환위기 발생의 주원인 중 하나였다는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덧붙여, 미국으로 군사력이 집중되는 점에도 주목해야 한다. 특히, 9.11이후의 상황에 주목할 필요가 있는데,  금융세계화가 진전됨에 따라 세계적 통치성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동시에 군사세계화가 진전된다.(금융세계화와 군사세계화는 평행적으로 발전.) 신자유주의 세계화로 남반구 국가들의 국가구조 자체가 해체에 가까운 상태로 몰리고 발전주의의 환상이 힘을 잃고 있어 남반구 국가들이 기존의 세계질서에서 이탈할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미국은 압도적 군사력의 우위를 바탕으로 세계적 통치성을 확보하게 된다. 이는 9.11 이후 ‘예방전쟁’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군사세계화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이며, 이라크 전쟁이나 전략적 유연성의 문제도 금융세계화를 위한 세계적 통치성의 문제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외환위기 이후 10년, 한국사회


IMF 이후 한국에서의 10년은 곧 금융화의 진행과 금융세계화로의 적극적인 편입과정이었다. 즉, 사회의 모든 요소들이 금융적 이익의 추구가 가능한 형태로 재편되었다는 것이다. 김대중 정권은 IMF를 경유하면서 4대 부문 구조조정 등을 제기하면서 기업의 소유지배구조를 개혁하고 주식시장을 자유화함으로써, 기업과 은행을 주식시장에서 거래 가능한 형태로 전환시켰고, 주식시장을 개방하여 초민족적인 자본 거래가 가능토록 하였으며, 주주와 투자자의 가치를 극대화하기 위해서 정리해고, 노동유연화가 대대적으로 진행해왔다.

최근 시행된 비정규개악법은 정부 차원에서 이것이 안정적으로 진행될 수 있도록 제도화하고 법의 힘으로 뒷받침하겠다는 강력한 제스추어로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결과 금융(세계)화에 적응한 기업들은 주가폭등, 수출확대를 경험했지만, 세계적 금융자본의 한국 경제에 대한 지배력과 경제 불안정성은 끊임없이 커져왔다. ‘해외투자자’들은 경제위기를 틈타 국내기업의 지분을 헐값에 인수한 후 구조조정으로 주식가치를 키워 되팔아 막대한 이득을 챙겨 나갔다. 이 과정에서 농촌 붕괴, 고용불안, 빈곤의 확산으로 노동자 민중의 삶의 위기는 오히려 더욱 심각해졌고, 특히 여성들에게는 그 위기를 완충하는 역할이 강제되고 있다.

한미 FTA로 상징되는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이러한 신자유주의 재편의 수준을 한 단계 더 높여, 국내 재벌의 금융화를 촉진하는 한편 금융서비스, 사업서비스를 개방하여 한국사회 법과 제도 전반을 금융자본이 활동하기에 적합하도록 재편하겠다는 것이다. 이와 동일한 맥락에서 최근 통과된 ‘자본시장통합법’은 노무현의 동북아 금융허브론에 있어 결정적 준거점인 만큼, 이를 단순히 금융산업 발전방안이 아니라, 국가 발전 전망으로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고부가가치 서비스업을 주력산업으로 하는 통상국가로의 발전전망). 왜냐하면 초민족적 자본의 세계적 순환의 축(hub)이 되겠다는 것은 곧 초민족적 자본의 투자가 활성화되는 국내 조건을 조성하겠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이는 한미 FTA가 ‘투자와 무역의 자유화’ 그 중에서도 ‘투자자-국가 소송제’로 대변되는 ‘투자의 자유, 투자자의 보호’를 핵심으로 한다는 점과 일맥상통한다. 이는 또한 한미FTA가 미국산 소고기 수입을 둘러싸고 드러나고 있는 문제들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민중들의 삶과 가치와는 무관한 철저히 자본을 위한 협정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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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질은 ‘금융화’다!
‘금융화’에 대한 전방위적 비판을 수행하자!


최근 서브프라임모기지론 부실사태로 인한 세계경제위기에 대한 우려는 단순히 주식시장 자체의 불안정성을 뛰어넘는 문제다. 금융화를 핵심 동력으로 하는 현재의 자본주의가 전염되는 불안정성을 띄고 있으며, 예측할 수 없는 백척간두의 정점에 서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최고경영자들과 금융자본가의 소득이 이전에 비해 10배, 20배씩 증가하기 위해서는 항상적인 고용불안과 저임금에 시달려야 하는 노동자들이 10배 20배 증가해야만 하는 것이다. 절벽을 향해 질주하고 있는 금융세계화가 제시하는 길이 비정규악법과 한미FTA, 전쟁과 폭력이라면, 노동자-민중이 밝혀가야 하는 길은 비정규악법폐기와 한미FTA저지, 그리고 전쟁과 폭력의 종식이어야 한다. ‘(금융)세계화’라는 단어는 지난 10년간 아주 바빴다. 이제 쉴 때도 되었다. 하반기,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본질,  ‘금융화에 대한 전방위적 비판을 진행하자!

Posted by 행진

2007/09/08 20:48 2007/09/08 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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