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의 무수한 죽음들을 ‘기억’하며

- 당대비평,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자의 죽음』 서평 -

                                             


 노무현에 대한 대대적인 애도가 가리키는 것


 2009년 5월, 전 대통령의 자살이라는 사건은 한국 사회에 유례없는 충격과 반향을 가져왔다. 곧 광장과 학교, 지역마다 주요 역의 입구에 분향소가 차려졌다. 노무현이 대통령으로 재임하던 시절 그와 그의 정책에 대해 비판적이었던 사람들의 반응은 크게 둘로 나뉘었다. 하나는 “노무현을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 그가 부족한 게 있었다고 하더라도 상대적으론 존경할만한 대통령이었다.”는 것이었다. 다른 하나는, “노무현의 집권기에 죽어갔던 수많은 농민·노동자들을 기억한다면, 그 때 노무현을 비판했던 진보진영마저 무비판적으로 애도의 물결에 동참하는 건 말이 안 된다.”는 것이었다. 후자의 입장은 상대적으로 소수였고, 전자에 의해 죽음 앞에서 원칙만을 고수하는 냉혈한으로 비난받기도 하였다. 이 간극을 해결하기 위하여 ‘정치인 노무현’과 ‘인간 노무현’을 분리하여, 전자가 잘못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후자는 기릴 만 하다고 얘기하는 이들도 있었다. 비슷한 맥락에서 시기적 구분으로 ‘한국 사회의 신자유주의적 재편을 가속화한 대통령 재임기의 노무현’과 ‘대통령 집권 이전에 노무현이 추구하였고, 지금 대중들이 그에게 투영하고 있는 가치들’을 구분하여 후자의 의미로 그를 애도하자는 주장도 존재했다.


 그러나 그 중 어떤 입장도 우리 앞에 벌어진 상황을 충분히 설명해 주지는 못했다. 사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 이후에 만들어진 추모의 분위기 속에는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어떤 ‘과잉’이 존재했다. 한 필자의 표현대로 “실제로 한 번도 가져본 적 없는 그런 대통령 노무현을 대중들은 마치 갖고 있었다가 지금 막 상실한 것처럼 애도했다(정용택, 117p.).” 혹은 노무현과 자신의 처지를 동일시하며, 자기도 모르게 눈물을 펑펑 흘렸다. 마치 마음껏 울 계기가 필요했다는 듯이 말이다. 나는 당시에 그의 죽음 자체보다도 죽음 이후에 있던 ‘거대한 울음의 행렬’에 더 놀랐다. 추모에 동참하고 있는 사람들 스스로도 예상치 못했고, 온전히 이해할 수 없던 흐름이었다. 그 추모의 열기가 어느 정도 가라앉은 시점(2009년 12월)에 출간된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자의 죽음』의 열 명 남짓한 필자들은 다시금 찬찬히 그 죽음과 추모의 의미를 되짚고 있다. 서문에서 밝히고 있듯, “어떤 죽음이 대대적으로 애도될 때, 그것은 단지 죽은 자의 사회적 지위 탓으로 돌릴 수 없는 애도하는 자의 정치적 욕망이 투여”(서동진, 20p.)되어 있는 법이다. 그렇기에 이 행위가 옳은지 옳지 않은지를 따지기 이전에 ‘대체 어디에서 연유하는 것인지’를 돌아보는 것이 우리 사회가 위치한 자리와 나아갈 자리를 가늠하기 위해 더 유의미한 시도일 것이다.


 많은 이들이 노무현의 죽음 앞에서 ‘인간 노무현’에게 정서적 동질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2002년 대선 당시 그는 기존 한국 정당 정치에 대한 환멸의 정서를 대변했다. 상고 졸업, 농촌 출신, 민주화 운동, 인권 변호사, 통기타를 치며 상록수를 부르던 모습 등에서 대중은 기존 정치인과 다른 노무현의 ‘비주류 정서’에 공감을 표하며 ‘변화’를 기대했다. 그는 늘 그의 신념이나 정책 그 자체보다도 탈권위주의적인 언행으로 주목받아 왔다. 그리고 노무현에 대한 추모 분위기 속에서 부각되는 것도 다른 어떤 것이기보다는 이런 노무현 개인의 ‘통치 스타일’이었다. 때문에 ‘정치인 노무현(신자유주의자)’과 ‘인간 노무현(탈권위주의와 진정성)’을 분리해서 보려는 시도가 존재하는 것이다. 하지만 김원의 지적처럼 노무현의 이 두 가지 측면은 결코 분리될 수 없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노무현의 죽음 이후 인간 노무현과 정치인 노무현을 분리하자고 말한다. 하지만 이 두 가지 수준은 강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이는 노무현 죽음 이후에도 반복되고 있다. 노무현이 내세운 정치 스타일은 (····) 한국 정치 위기의 다른 면이었다. 기존 보수 정치에 대한 불만과 반감을 지닌 대중은 한나라당과 민주당 보수 양당의 대안 이념 부재, 무능력과 부패 등에 부단히 실망했다. 그 실망의 틈에 등장했던 것이 노무현이었다. 하지만 그가 내세웠던 지역주의와 분열주의 반대, 도덕성, 서민성, 권위주의 역사 청산 등은 신자유주의 하에서 대안적 정치 이데올로기로 작동할 수 없었다.

- 김원, <우리는 노무현을 지키지 못해 미안해야 하나?> 중에서, 65p.


 노무현 집권기의 실패는 노골적인 경제 대통령 이명박의 당선으로 귀결되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이명박 역시 나의 불안한 삶을 책임져줄 수는 없다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집권 초기부터 이명박 정권이 보여주는 무능함과 치졸함, 몰상식함에 누구나 극도로 지쳐 있었다. 사람들에게 목 놓아 울 계기가 절실했다는 것을 이해하기란 어렵지 않다. 그 시점에 갑자기 들이닥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은 ‘내가 붙잡을 수 있는 대안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는 막막함이자 울음의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달라 보이지만, 그 모든 과정에서 사람들을 움직인 것은 결국엔 모두 같은 원리였다. ‘내 삶의 문제를 해결해줄 수 없는 현실 정치(때로는 노무현이었고, 때로는 이명박이었던)에 대한 반(反)경향’ 말이다. 다시 말해, 노무현의 죽음과 그에 대한 애도가 가리키는 것은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시대에 한국 정치가 봉착한 ‘어떤 한계지점’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다시금 노무현의 인간적 스타일을 대체할 누군가를 찾아 헤매는 건 아닐 것이다. 오히려 그 ‘한계지점’을 넘어설 방책이 필요한 것일 텐데, 당장은 누구도 시원하게 그것을 제시해줄 수 없다는 데에 어려움이 있다. 그리하여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추모 국면 속에서도, 이 한계는 여러 가지 모습으로 스스로를 드러낸다.



  애도의 공동체 속에 배제되고, 망각되는 이들은 누구인가?


 사실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 이전에도 다른 무수히 많은 ‘죽음’들이 존재했다. 가장 눈에 띄는 사건은 2009년 초, 서울 한복판에서 공권력의 진압에 의해 여섯 사람이 불에 타 목숨을 잃었던 ‘용산 철거민 참사’일 것이다. 『아무도···죽음』은 용산참사의 기억을 불러와 전대통령의 죽음에 대한 애도와 비교하며 이야기를 풀어간다. 우리는 두 죽음의 비교를 통해, 노무현에 대한 애도(나아가 김대중에 대한 애도까지도)가 갖는 성격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된다.


 2009년의 광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잠시 2008년 5-7월의 촛불의 기억을 떠올려보아야 한다. 촛불은 그 이전에 있었던 어떤 집단적인 저항의 모습과도 달랐다. 그것은 저항의 새로운 주체와 방식의 발견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그 성격이 매우 모호한 것이기도 했다. 이른바 ‘개혁 세력’의 집권기 동안 대중들은 역설적이게도 스스로를 주체화할 정치적 언어들을 잃어버렸다. “민주, 개혁, 진보, 노동··· 신성한 기표들의 훼절을 겪고 벌거숭이로 남겨진 대중이 무엇을 말할 수 있을까.(김성태, 141p.)” 촛불을 든 대중들은 ‘반MB’라는 모호한 정체성으로 묶여 있었고, 결국 몇 달 간의 집회 끝에도 이렇다 할 성과를 만들어내지 못한 채 다시 뿔뿔이 흩어져갔다. 그리고 2009년 1월 20일의 용산참사. 김성태는 이 사건이 ‘촛불이 어디로 갈 것인가’를 가름하는 시험대(리트머스지)가 될 만한 것이었다고 얘기한다.


 그럼 용산에 대한 대중들의 반응은 어떠했나? 참사 당일 저녁부터, 적지 않은 사람들이 현장으로 달려가 가두시위를 벌였다. 촛불이 잦아든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여론도 철거민 쪽에 우호적이었다. 이전과는 확연히 달랐다. “희생된 이들이 매도당하지 않고, 공감해야 할 사회적 고통의 일부로 인지되고 받아들여진다는 것에서 ‘일단’ 안도(김성태, 145p.)”할 만 했다. 그러나 그것은 전 대통령의 죽음 앞에 눈물을 흘리며 광장으로 나왔던 사람들에는 한참 미달하는 것이었으며, 근본적이고 지속적인 운동이 되지는 못했다. 그 이유에 대한 필자들의 설명은 다음과 같다. 하나는, “그 불타는 몸은 너무 강렬하기에 시민이 공유할 수 없어서”라는 것이다. 일종의 축제이자 퍼포먼스였던 광우병 쇠고기 반대 촛불집회와 비교했을 때, 죽음에 직면한 결사 항전은 너무나 부담스러운 것이었다. “무엇에서든 유머를 필요로 하게 된 몸들이 되어버린 ‘개그적 소비 사회’의 시민들에게 쾌락 없는 투쟁이란 ‘참아줄 수 없는 진지함’에 다름 아니었다는 것이다.(김진호, 266p.)” 다른 하나는, ‘사유재산’이라는 자본주의의 질서, 혹은 ‘뉴타운’이라는 사람들의 욕망의 대상을 근본적으로 건드렸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이 그것에 대해 절규하는 것은 안타깝지만 저런 희생은 질서를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는 것(엄기호, 37p.)”이라는 인식이 용산에 대한 적극적 애도를 어렵게 만들었다.


 즉, “대중들은 용산을 의도적으로 애도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외려 그것을 애도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에 대한 부채감과 상실감은 무의식적으로 남아 있었다. 이렇게 본다면, 노무현·김대중에 대한 추모 행위를 두고 “마땅히 애도되어야 할 대상이 애도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엉뚱하게도 바로 옆의 것이 누가 봐도 너무 과하게 애도되고 있다면, 그 과열된 애도 행위의 배후에는 정작 애도해야 할 것을 애도하지 못하고 있는 것에 대한 슬픔이 감춰져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김진호, 101p.)”고 분석하는 것은 (약간은 ‘과장’처럼 느껴진다고 하더라도) 의미심장하다.


 책은 주로 용산참사와 노무현, 김대중, 그리고 그 죽음들에 대한 ‘사회적 기억의 비대칭성’을 다루고 있지만, 조금 더 크게 본다면 다른 것들도 눈에 들어오게 된다. 그러고 보면 2009년에는 참 많은 죽음이 있었다. 용산의 철거민들, 투쟁 중에 목을 맨 대한통운 특수고용 노동자 박종태 열사, 쌍용자동차 파업 중에 목숨을 끊었던 여러 노동자와 그 가족들... 그리고 다른 한 편에는 김수환 추기경·노무현 전 대통령. 김대중 전 대통령이라는 세 명의 지도자들. 전자의 죽음과 후자의 죽음에 사람들은 많이 다르게 반응했다. 이름도 권력도 가지지 못한, 진정으로 ‘평범한 사람’이었던 이들의 죽음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채로 빠르게 잊혀 갔다.


 사실 노무현 추모 정국 속에서 이처럼 애도되고 있지 못한 ‘다른 이들’의 죽음을 불러오려는 시도들도 존재했다. 엄기호는 이를 ‘초혼의 정치’라 명명한다. 죽은 자에 대한 애도 앞으로 같이 애도되어야 하는 죽은 자들을 불러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는 성공회대 교수의 이광일이 당시 참세상에 기고한 글이 그런 논지에서 쓰인 글이었다.


민주주의는 과거의 경력을 불러내는 것이 아니라 오직 살아 움직이는 지금 이 순간의 부당한 관계들을 문제시하고 그것을 넘고자 하는 실천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죽은 노무현을 잡고 기억하는 것에 멈추는 것이 아니라 지금 살아 고통 받는 용산을, 특수고용 노동자들을, 이주노동자들을, 소수자를, 수탈 받는 환경과 생태의 아픔을 안고 함께 싸우는 것이 진정 그를 살리는 유일한 길입니다.

- 이광일, <한 편의 ‘희극’이 ‘비극’으로 끝나다> 중에서, 2009년 6월 1일, 참세상


그러나 전 대통령들의 추모 의례는 이 죽음을 최대한 ‘충돌이 아닌 정상화(‘화해’라는 모호한 이름의)’로 수습하려는 경향이 더욱 컸고, 불편한 다른 죽음들, 평범한 이들의 죽음들은 초대받지 못한 채였다. 이 사실은 지금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가 ‘어디까지인지’를 보여준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이 책마저도 매우 비대칭적으로 죽음을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책의 제목이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자의 죽음』임에도, 대부분의 필자들은 ‘노무현·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과잉된 애도’가 어떤 의미인지를 설명하는 데에 대부분의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물론 그만큼 그 추모의 분위기는 놀라운 것이었으며,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자의 죽음’을 불러오기 위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하는 부분이다. 많은 논쟁이 애매모호하게 마무리된 속에서, 노무현 추모정국을 이렇게 해석하려는 것은 매우 유의미한 시도이다. 그러나 ‘용산’보다도 더 기억되지 못한 다른 죽음들. 2009년에 죽어가야 했던 노동자, 농민들... 2009년 이전에도, ‘민주화 되었다던’ 그 시절, 노무현 정부의 집권기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으나 곧 잊혔던 수많은 이들.. 그 죽음들을 불러오는 것, 그들의 죽음이 왜 이렇게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것이 되어버렸는지를 성찰하는 것, 그 과정이 부족해서 아쉬움이 남는다.



 정치를 만드는 데에 끊임없이 실패하는 우리들


 앞에서 짚은 한계와 연결되어 있는 또 하나의 쟁점은, 이 광범위한 애도의 행위가 참가한 사람들을 ‘정치적 주체’로 만드는 데에 실패했다는 것이다. 엄기호에 따르면 두 전직 대통령과 용산의 죽음을 가르는 그 ‘경계’야말로 우리 사회가 필사적으로 감추고 회피하려는 정치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경계를 넘는 것에 끊임없이 실패하고 있다. 그래서 지금 우리 사회에서 정치란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질서를 지키는 것-치안, 혹은 신자유주의 법치라 불리는 것-에 불과한 것이다.


 문학 비평가인 권명아의 시선은 이 ‘광장에서의 애도’에서부터 올해 베스트셀러였던 책과 영화, 『엄마를 부탁해』와 『해운대』에까지 가서 머문다. (다른 필자인 정용택이 영화 『워낭소리』의 흥행에 관해 갖는 입장도 이와 비슷하다는 사실이 인상적이다) 그녀는 “죽음의 책임이라는 모티프가 촛불과 광장과 조문 행렬에서 극장가와 서점가로 이동”했다고 보고 있는데, 이것이 “삶에 대한 새로운 의식이나, 타자의 죽음과 나의 생존의 불가피한 의존과 관계성, 삶의 취약성에 대한 윤리적 의식의 자리를 만들지 못하고 있”(권명아, 74p.)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그 매체들에서 각각 죽음을 다루는 방식이 ‘청소’를 통한 삶의 정상화(영화 『해운대』), ‘피붙이’의 죽음에만 감응하는 것(소설 『엄마를 부탁해』)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죽음에 대한 상실감과 애도가 이처럼 정치적 주체화의 자리가 아닌 ‘다른 자리’에서 수행될 때, 우리는 무력할 수밖에 없으며, 폭력 시스템은 지속된다.


 신학 연구자인 정용택은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을 애도하는 대중을 ‘우울증적 주체’로 명명한다. “우울증적 주체는 자신이 무엇을 잃었는지 알지 못하면서 그것에 대한 상실감에 시달린다.” 사실상 한 번도 존재하지 않았던 민주주의의 표상을 노무현에게 부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대중들이 진정으로 추구하는 것은 잃어버린 노무현이 아니라 실은 민주주의의 부재” 그 자체이다. 문제는 이러한 우울증적 충동이 촛불집회나 추모 행렬과 같은 집합 의례의 형식으로만 남아, 현실의 구조를 변화시키는 정도로까지 힘을 행사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그는 2009년의 애도의 광장에 ‘종교’만 남았을 뿐, ‘정치’가 보이지 않는다고 말한다. (124p.)


 필자들의 공통된 문제의식은 놀라울 정도로 과열되어 있었던 대중들의 ‘집단적 애도·추모 의례’가, 이상하리만치 ‘정치’로 이어지지는 못한다는 사실에 있다. 마치 2008년 촛불집회 때 그러했듯이 말이다. 그리고 나아가 2009년의 수많은 죽음들을 가르는 ‘경계’를 가리킴으로써, 우리의 실패가 무엇 때문인지를 밝히고 있다. 여기가 바로 죽음들에 대한 ‘사회적 기억의 비대칭성’이 연유하는 지점이다. 우리를 나아가지 못하게 하는 것은 어쩌면, 2003년, 잇따른 노동자들의 죽음 앞에 노무현 전 대통령이 던졌던 말, “분신으로 투쟁하는 시대는 갔다. 이제는 민주화된 시대가 아니냐.”하는 논리인 것은 아닐까? 20년에 걸친 ‘민주화 시대’와 ‘신자유주의 세계화’ 시대의 교직(김성태) 속에서, 우리는 여전히 87년의 그 자리에 멈추어 방황하고 있다. 대안 없는 위기의 시대, 여전히 ‘또 다른 구원자’나 ‘대변자’를 갈구하는 눈물을 흘리면서(김원) 말이다.



 이 불안한 세상을 바꾸기 위해 필요한 과정들


 『당비의 생각』 시리즈가 매번 그렇듯이, 이 책 한 권 안에도 통일될 수 없는 다양한 입장들이 존재한다. “(앞으로)무엇을 할 것인가”의 문제에 있어서는 특히 그렇다. 그 중에서도 가장 구체적으로 진보진영이 해야 할 바를 서술하고 있는 것은 박동천의 글인 <노무현 이후의 한국 정치를 생각한다>라고 하겠다. 그러나 나는 이 글이 말하는 바가, 앞의 다른 글들이 열심히 분석한 것들과 묘하게 어긋난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우선은 그의 ‘진보진영’이라는 개념 자체가 ‘(이명박·한나라당으로 표상되는)보수진영’ 대 ‘(노무현·김대중을 포함하는)개혁진영’으로 틀지어져 있다는 것이 그렇다. 이러한 오래 된 구도 속에는 노무현·김대중 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한 애도가 과연 무얼 말했던 것이고, 무엇을 말하지 못했던 것인지에 대한 성찰은 보이지 않는다.


 “현재 한국의 진보에는 대안이 없는 것이 탈이 아니라 너무나 많은 것이 문제”라는 말에는 나도 동감한다. 그러나 바로 이어, 그렇기 때문에 이제 “무수히 불거져 나와 있는 제안과 묘안과 비책과 처방들을 어떻게 하나의 프로그램으로 엮어 낼 것인가(박동천, 257p.)”가 중요하다는 주장은 납득하기 힘들다. 인물 중심의 정치로 국회의원 선거에 대비하자는 것도 그렇다. 다른 필자들이 짚고 있는 맥락에서 보았을 때, 우리에게 당장 필요한 것은 ‘더 정교한 정책 대안’이나 ‘서민을 대리해 줄 다수의 국회의원들’은 아니지 않은가? 오히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현실에 대한 수많은 물음들이다. 민주화 20년이 이명박 정부의 탄생으로 귀결되었고, 이명박 역시도 대안이 아님이 판명되었다면, 이제는 무엇을 고민해야 하는가? 무엇이 바뀌어야 내 삶이 나아질 수 있는가? 08-09년 그렇게 많은 이들이 광장에 나왔음에도, 왜 그 경험이 스스로의 삶을 바꾸고 세상을 흔드는 ‘정치’가 되는 데에는 실패하고 있는가? ‘정치’를 만들기 위해 나는 나의 자리에서 무엇을 해야 하나? 등등..


 우리의 아픔이 어디에서 연유하는 것인지 설명할 수 있는 언어가 지금 우리에게 부족하다. 손쉽게 대안을 만들어내는 일보다도, 이 아픔의 ‘보편성’을 설명할 새로운 언어를 만들어내는 것이 더욱 절실하다. 노무현을 ‘아름다운 순교자’나 ‘서민의 대변자’로 불렀듯이 또 다른 구원자나 대변자를 필요로 할 때에 그 시도는 필연적으로 실패에 이를 것이다. “진정 필요한 건 구원자가 아니라, 새로운 정치를 구성하기 위한 자기 조직화이다.(김원, 67p.)” 그리하여 '진짜 평범한 사람들'의 죽음을 우리의 아픔으로 느끼며, ‘이제 그만!’이라고 외칠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에게 다른 세계가 가능해질 것이다.


 2009년, 우리는 한 시대의 종언을 목도했다. 그러나 어떤 세계가 시작될지는 아직 알 수 없는 일이다. 우리는 이 폐허 같이 불안한 세상에 ‘맨몸’으로 각자 부딪히며 살아야 하는 걸까? 그런 삶은 서러운 울음을 동반하는 것이거나, 어떤 계기가 오기까지 울음을 꾹꾹 눌러 참는 그런 것 밖에는 될 수 없지 않을까? 『아무도··죽음』은 이 불안한 세상을 사는 우리에게 인상적인 질문들을 던지고 있다. 2010년대를 시작하며, 읽어볼 만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Posted by 행진

2010/02/14 21:11 2010/02/14 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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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를 치러도
용산참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355일 만이다. 삶의 터전을 떠날 수 없어 망루에 올랐지만 살아서 내려올 수 없었던 그 철거민들의 장례를 치르는데 꼬박 일 년이 걸렸다. 언제나 회피하려고만 했던 정부가 자신의 책임을 일부 인정하면서,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던 용산참사는 이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당연한 권리를 박탈당한 채 외로움 싸움을 벌이다 산화한 고인들의 장례를 늦게나마 치를 수 있게 된 건 분명 다행인 일이다. 냉동고에 있는 아버지, 남편의 주검을 곁에 두고 장례식장에서 일 년을 지낸 유가족의 고통도 조금은 덜어질 수 있기를 바란다.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하듯이 용산참사는 자본의 이윤을 보장하기 위해 내달리는 우리 사회의 본질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사건이었다. 하지만 시민들의 주거권을 축소하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던 뉴타운/재개발의 문제를 고발하는 대가는 결코 적지 않았다. 정부의 거듭된 탄압을 견디면서도 이 문제의 해결을 바란 양심 있는 사람들의 노력이 없었다면 총리의 불만족스런 유감 표명을 끌어내는 일조차 난망했을 것이다. 이렇듯 용산 문제가 다른 궤도에 접어든 데에는 많은 시민들의 지지와 성원의 힘이 컸다. 다만 서울시가 연말에 갑자기 태도를 달리하며 협상을 요구한 일은 어딘지 미심쩍다. 일 년 가까이 아무런 진전도 없었던 데서 볼 수 있듯 용산참사를 망각시키려는 정부의 의지는 조금도 흔들림이 없었다. 달라진 것처럼 보이는 서울시와 정부의 태도 이면에 숨겨진 계산법은 무엇일까.


선거를 앞둔 서울시의 이미지 관리

서울시와 용산범대위는 작년 수차례 대화를 진행했지만 번번이 정부 사과 부분에서 막혔다. 사과 얘기가 나올 때마다 서울시는 "우리 소관이 아니다"라며 문제를 회피하기에 급급했다. 용산참사는 돈 없는 사람들을 내쫒으면서 도시를 '디자인'하는 정부가 빚어낸 학살이기 때문에, 정부에게 책임이 있음을 분명히 하지 않고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다. 서울시의 퇴짜로 대화는 번번이 결렬되었고, 그 동안에도 용산과 관련된 기자회견․캠페인․문화제는 불법으로 간주되어 참가자들이 연행당하는 등 정부의 탄압은 멈추지 않았다.
그런데 연말이 되자 서울시는 갑자기 용산범대위와 물밑 접촉을 하며 대화 재개를 요구했다. 과거와는 확연히 다른 서울시의 '협조적'인 자세는 정부가 그토록 기피하려 애쓰던 책임 인정의 문제를 이끌어냈다. 갑자기 진행된 대화에서 일 년을 두고 싸웠던 핵심 사안 중 하나가 합의된 것이다. 어딘가 변한 것처럼 보이는 서울시의 달라진 태도는 올해 그들이 생각하는 '중요한 일정'과 관련이 있다. 6월에 예정된 지방 선거에서 서울시장에 출마하는 경쟁자들의 상호견제가 벌써부터 뜨거워지는 가운데 현 서울시장인 오세훈의 마음은 조급하다. 만약 용산참사가 해를 넘겨 올해까지 사회적으로 쟁점화 된다면, 쟁쟁한 라이벌과의 선거 경쟁에서 오세훈의 입지는 상대적으로 줄어들 것이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장례를 치른 것을 이유로 용산 문제가 더 이상 불거지지 않기를 소망하고 있다. 그리고 한 술 더 떠서 서울시가 도움을 주려 노력했기 때문에 고인의 장례나마 치를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그동안 일관되게 용산 문제를 억압해왔던 서울시는 정부 사과를 제외한 다른 핵심 쟁점을 오히려 무마시키면서 자신이 해결에 앞장섰다는 거짓말로 추락한 이미지를 개선시키려 한다. 오세훈과 서울시가 진심으로 사건 해결을 위해 노력했다면 일 년 동안의 숱한 탄압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 이번 협상으로 유가족에게 마치 자선사업이라도 한 것처럼 광고하는 서울시의 의도는 지방선거 재선을 위한 이미지 만들기에 다름 아니다. 장례 하루 전 처음으로 빈소를 찾아가 유족들에게 "유사한 사례가 발생되지 않도록 …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한 오세훈의 속내는 따로 있었다.


살인 재개발은 계속 된다

핵심 쟁점이었던 정부의 사과는 받아냈지만 용산범대위가 요구한 다른 문제들의 해결은 아직 요원하기만 하다. 용산 범대위는 △대통령 사과 △책임자 처벌을 위한 특별검사제 도입 △명예 회복 및 정신적, 물질적 피해에 대한 배상을 위한 특별법 제정 △재개발 관련 법제도 개선 △전철연과 범대위에 대한 공안 탄압 중단 등을 요구했다. 대통령이 아닌, 그것도 참사가 일어날 당시에 임기가 아니었던 총리의 사과가 정부의 완전한 책임을 공표했다고 보긴 어렵다. 더욱이 '떼잡이', '도심 테러리스트' 운운하며 구속한 용산의 철거민들에게 징역 *년의 중형을 선고하는 등 철거민들에 대한 정부의 탄압은 계속되고 있다. 재개발 법안(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 11군데 개정하긴 했지만 보상을 조금 늘리거나 집행력이 없는 분쟁 조정 기구를 세우는 등 실효성이 없고 형식만 갖춘 것이라며 전문가들에게 비판받고 있다. 하지만 가장 심각한 문제는 제 2, 제 3의 용산참사를 불러올 '살인 재개발'이 지금도 버젓이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작년과 올해 주요 건설사들이 재개발하며 분양하는 지역만 봐도 서초구, 동대문구 제기동/답십리, 옥수, 동작구 흑석동, 성동구 금호동, 마포구 아현동 등으로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다. 여기에 서울시가 5년 이후를 보며 계획하는 재개발 지구까지 포함한다면 사실상 도시 전체에 재개발이 진행되고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용산이 분명하게 보여주었듯이 개발을 통해 이득을 얻는 자, 그리고 얻어맞고 쫓겨나도 하소연조차 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다. 개발이익을 둘러싼 가진 자들의 동맹은 삼성물산․대림건설․포스코 같은 자본들, 그리고 이들과 함께 직접 개발에 투자하거나 승인/감독하며 계획을 세우는 지자체, 용역깡패의 불법적 행위를 묵인하고 동조하는 경찰, 사법적으로 이 모든 과정을 비호하는 검찰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을 포함한다. 있던 곳에서 묵묵히 삶을 일궈온 사람들을 내몰고 세워진 휘황찬란한 건물에 그 평범한 사람들이 들어설 자리는 없다. 돈이 없어 살던 곳을 잃고, 다시 형편에 맞는 집을 찾아 헤매다 어딘가 정착할 그곳도 결국은 재개발이다. 주거가 없는 삶을 상상할 수 없다면, 이 땅에서 살아가기 위해 우리는 절박한 심정으로 질문을 던져야 한다.


무엇을 위한 개발인가?

4일에 있었던 대통령의 신년연설은 “잘 될 것”이라는 자화자찬과 추상적 의지만 가득했다. 그가 이야기 한 ‘일로영일(一勞永逸, 지금의 노고를 통해 오래 안락을 누린다)’이란 말에는 우리가 먼 훗날엔 마치 안락을 누릴 수 있을 것처럼 믿게 만드는 환각효과가 있다. 그리고 기약할 수 없는 미래를 담보로 현실의 고통을 정당화한다. 지금도 경제 위기 하에서 대기업들의 영업이익은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지만, 노동자 서민들은 실업과 구조조정, 실질임금 하락, 복지예산 감축 등으로 삶이 피폐해지고 있다. 고생하는 사람과 안락을 누리는 사람은 서로 일치되지 않는다. 서울시가 이야기하는 재개발 담론은 집을 빼앗기는 사람과 그럼으로써 이익을 얻는 자를 만드는 구조를 은폐한다는 점에서 대통령의 연설과 닮았다.
장례를 치른 이후 건설자본과 서울시는 그 동안 중단된 용산 재개발에 박차를 가할 예정이다. 보수 언론에서는 철거민들의 보상 문제로 몰아가지만, 용산이 제기하는 것은 철거 당사자나 보상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용산참사를 이야기하는 것은 인간답게 산다는 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묻는 것과 같다. 우리는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권리들을 보장받고 있는가. “올 부동산투자 이렇게 하세요”(2010.01.01, 머니투데이), “한강변 재개발․재건축 최고 블루칩”(2009.12.31, 해럴드경제) 같은 기사를 보며 돈 벌 궁리를 하는 사람들에게 집은 곧 자본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집은 곧 생활이며 살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다. 누구에게나 보장되어야 하는 보편적인 권리로서 주거권을 이야기하지 않는다면, 용산참사는 보상금을 둘러싼 철거민들만의 문제로 남고, 집은 사는(Buy) 것이 된다. 보상금이 합의 된 지금, 정부와 개발사들은 용산 문제가 완전히 끝났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용산범대위는 지금부터 시작이라고 했다. 장례를 치렀어도 용산참사는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고인들은 이제 없지만, 자본을 위한 재개발은 없어지지 않았다. 2010년에도 멈추지 않을 살인 재개발에 맞서, 끝나지 않은 용산참사의 문제를 적극적으로 알려 나가자!!



Posted by 행진

2010/01/15 01:14 2010/01/15 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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