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호] FTA, 금융세계화, 한국경제

노무현 정권은 한미 FTA 체결이 ‘수출증대’와 ‘외국인 투자 증대’를 가져올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하여 한국 경제의 위기를 극복하고 민생경제를 다시 살려낼 것이라고 역설한다. 하지만 과연 그렇게 될까? 물론 우리의 대답은 부정적이다. 이 글은 정부의 논리를 비판하면서 금융의 세계화가 한국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간략하게 살피게 될 것이다.

사실 굳이 정교하게 논리를 펼치지 않더라도, 즉 이제까지의 ‘경험’에 기초해 생각해봤을 때도 FTA는 대안이 될 수 없다. 미국과 NAFTA를 체결한 멕시코가 어떻게 되었는지를 봐도 이는 분명하다. 또 IMF 협약 이후 한국 경제가 살아났는가?

과거 김대중 정권은 한국 경제가 ‘IMF 조기졸업’에 성공했다면 자신의 개혁을 자랑하기에 급급했다. 하지만 그것은 기업매각, 금융개방, 그리고 (소위 ‘벤처붐’을 타고 잠깐 빛을 발한) 정보통신 분야에 대한 대대적인 투기성 투자가 만든, 그야말로 일시적 효과일 뿐이었다. 그렇다면 그것의 대가는 무엇이었는가? 그 일시적인 효과를 위해, 김대중은 한국 경제를 금융세계화에 깊숙이 편입시켰다. 하지만 이렇게 해서 한국 경제에 유입된 초민족 금융자본은 한국 경제의 종속성과 불안정성을 더욱 극단적으로 심화시킨다. 그리고 소위 ‘주주의 권리’를 행사하면서 온갖 반민중적 정리해고/구조조정/불안정노동化를 추동해내고, 이로써 엄청난 이윤을 누린다. 하지만 이러다가도 한국 경제 내에서의 수익성이 떨어질 기미가 보이면 거침없이 한국 경제 밖으로 빠져나온다. 이러한 자본유출로 인해 한국 경제는 궁극적으로 파국에 치닫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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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이 바로 금융세계화의 원리에 대한 요약 설명이다. 이제 이것을 보다 구체화하면서, FTA를 옹호하는 정부의 논리를 하나하나 반박해보기로 하자.

너무나도 진부한, ‘수출증대’ 논리


WTO개방을 옹호할 때마다, 쌀개방의 필연성을 설파할 때마다, 정부의 논리는 한결같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수출주도형 제조업으로 먹고산 나라이기 때문에, 쇄국정책을 고수하지 않고 세계 흐름의 대세에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쌀과 같은 것을 조금 양보하더라도, 대신 자동차나 TV를 많이 팔아 외화를 벌자는 것이다. 이 논리는 너무나도 진부하면서도, 그리고 단순하면서도, 또 너무 자명하여 논쟁을 ‘봉합’하는 효과를 불러온다.

하지만 금융자본의 동학에 주목할 때, 우리는 정부가 계속 강조하는 ‘비교우위’ 논리 - 농업을 양보하는 대신 자동차를 미국에 수출하기 - 가 얼마나 시대착오적인지 알 수 있다.

사실 정부의 논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더라도 이미 한미FTA는 대단히 해학적이다. 농업에서 피해가 생긴다는 것은 정부도 사실 어느 정도 인정하는 것이고 다만 제조업에서 대미 수출이 증가할 것이라는 것이 정부가 자신있게 제시하는 근거인데, 여러 가지 통계는 이조차도 ‘근거 없는 낙관’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설령 관세를 철폐해서 미국시장 진입이 좀 용이해진다고 해도 이미 미국의 수입관세는 불과 2~3%에 그친다. 따라서 이를 철폐한다 하더라도 그 효과는 미미할 것이다. 반면 미국보다 높은 국내 관세가 철폐된다면 미국 제품의 국내시장 경쟁력은 보다 강화될 것이다. 제품별로 차이가 있긴 하지만 자동차의 경우만 봐도 FTA 이후 한국에 유리한 결과가 낳을 것이라 장담하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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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여기서는 농업은 어떻고, 제조업은 어떻고 등 분야별 손익계산을 따지는 이런 식의 논의를 지양할 것이다. 대신 여기서는 보다 본질적인 비판을 가하고자 한다. 즉 초민족적 금융자본 주도의 신자유주의 속에서, 이미 ‘수출경제’라는 말 자체가 ‘형용모순’인 것이다! IMF 프로그램으로 한국 경제가 금융자유화된 이후, 현재 한국 경제는 외국계 초민족적 금융자본이 지배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들은 주식의 매입을 통해 회사의 실질적인 막후 지배자로 자리잡는다. 특히 김대중 때의 공기업 사유화 및 해외매각 정책으로 인해, 거대 핵심 공기업의 주식 또한 외국계 초민족자본이 대거 장악하고 있다. 이는 더 이상 ‘민족자본’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수출이 아무리 증가해도, 그것이 일국 경제상의 성장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예컨대 IMF 위기 이후 구조조정이라는 극약처방을 내리고 환율을 대거 평가절하하면서 제조업의 수출이 잠깐 증가하기도 하였지만, 이 시기에도 경제성장률(GDP)는 여전히 저조했다. 이미 초민족자본이 수출부문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상황에서, 수출증가는 내수 소비 및 투자로 연결되지 않는다.

분배 악화와 빈곤 심화


신자유주의와 FTA가 야기하는 노동자들의 권리 파괴 또한 금융자본의 동학과 연결지을 때 그 본질을 더 잘 파악할 수 있다. 흔히들 신자유주의 속에서 이루어지는 정리해고/비정규직化를 두고 노동자들 임금이 몇 푼이나 된다고 사람들을 그렇게 무지막지하게 자르나?”라는 의문을 가질 만하다. 하지만 주주들(즉 금융자본가들)의 주요 목적은 노동자의 임금 몇 푼을 절약하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다. 끊임없이 몸살을 줄이고 구조조정(downsizing)하는 그 ‘과정’ 자체만으로도 주식의 가치를 일시적으로 반등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즉 “허리띠를 잠시만 졸라매자,”라는 약속은 영구적인 구조조정을 정당화하기 위한 거짓말일 가능성이 높다. 금융자본가들의 투기적 이윤 속에서 민중들은 최소한의 삶의 권리를 박탈당하고 있다.

경제를 분석함에 있어서, 우리는 (주식과 외환시장이 주요 무대인) ‘금융 영역’과 ‘실물경제 영역’을 일정 부분 분리해서 사고할 필요가 있다. 뉴스를 보면 항상 말미에 주가 변동 일일보고가 나온다. 그것도 일기예보와 함께 연달아 나오는데, 사람들을 이를 보면서 주가가 한 나라 경제의 중추를 이루는 아주 핵심적인 수치라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하곤 한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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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의 본질을 ‘성장과 고용·분배’라고 간단하게 설정해보자. 이렇게 봤을 때 금융영역의 성장과 주가의 상승이 실물경제의 활성화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정부는 한미FTA를 통해 더욱 더 규제벽을 낮추고 투자를 유치하려 한다. 하지만 이렇게 해서 유입되는 해외자본 중 단지 5%만이 생산자본으로 투입된다. 나머지 대부분을 이루은 초민족적 금융자본은 공장을 지어 상품을 생산하고 고용을 창출하는 것에 전혀 관심이 없다. 이들은 새롭게 산업을 형성하는 것보다는 기존의 기업들을 인수·합병(M&A)하는 것을 더 선호한다. 이는 주식시장에서의 초과이윤을 창출하는 주요 수단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투기를 위한 자본이 엄청나게 넘나드는 동안, 정작 일자리는 오히려 줄어들고 가난한 사람들은 더욱 늘어나는 그런 역설적 상황이 도래하게 된다. ‘고용 없는 성장'과 ‘빈부의 양극화’가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의 특징임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한미FTA가 이러한 경향을 극단으로 밀어붙일 것은 자명하다.

소위 '재벌 개혁'에 대해


김대중 때 신자유주의 개혁이 힘을 얻은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재벌개혁’에 대한 기대였다. 물론 이는 허구적이었다. 현실에서는 재벌의 폐해라 불려졌던 독점적 성격이 없어지지도 않았던 것이다. 초민족 금융자본에게 중요한 것은 개혁이 아니라 어쨌던 이윤이며, 초민족 금융자본은 그것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할 것이다. 실제로, 금융화 속에서 대우와 같이 공중분해되고 여기저기 팔린 것도 있는 반면, 상위 몇 개 그룹은 오히려 이전보다 독점적 성격이 강화되었다. 재벌들 사이에서 광범위한 인수·합병, 즉 ‘빅딜’이 이루어졌고 그것을 지탱하기 위해 밑빠진 독에 물을 붓는 양 엄청난 공적 자금이 투입되었다. 그런데 앞에서 언급했듯, 기업을 인수·합병하면 그 기업의 상장 가치가 치솟기 마련이며 여기서 이익을 얻는 것은 주주권을 가진 초민족적 금융자본들이다. 민중들이 그 부담을 감내하는 동안, 금융자본들은 너무나 위험한 ‘돈놓고 돈먹기’를 하는 것이다.

물론 신자유주의의 전세계적 추세와 한국 재벌의 속성 사이에는 분명 ‘긴장감’이 있다. 그래서 재벌의 투명성 이야기가 종종 나오는 것인데, 이는 어디까지나 ‘자본 내부의 헤게모니 다툼’일 뿐이다. 재벌개혁의 핵심은 재벌의 족벌적 연계를 끊고 재벌을 금융세계화에 걸맞게 법인자본으로 전화시키자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개혁의 최대 수혜자는 초민족적 금융자본일 뿐이다. 법인자본의 핵심은 소유와 경영의 분리이며, 금융화의 핵심은 경영에 대한 소유의 우위라는 이 두 가지 원리를 종합적으로 파악해보자. 문제의 본질이 너무 훤히 보이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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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다시 삼성을 두고 다들 왈가왈부하고 있다. 재벌의 비대화를 막고 투명한 경영을 위해 순환출자를 금지하자는 것이 참여연대를 비롯한 신자유주의자들의 생각이다. 삼성의 경우… 1995년 반도체 호황 때문에 삼성전자가 갑자기 커져버리면서 이건희 일가의 지분을 다 합쳐도 삼성을 지배할 수 없게 되자, 이재용의 지분을 늘려 에버랜드를 지배할 수 있게 만들었다. 에버랜드가 순환출자를 통해서 삼성을 지배하는 실질적인 지주회사이기 때문이다. 그런대 만약 참여연대가 주장하는 것처럼 이재용의 지분과 순환출자를 무효화한다면, 삼성은 ‘외국계 기관투자가들’에게 지배되게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소액주주운동, 그리고 김영삼 정권 때의 ‘금융실명제’가 가지는 본질이다. (그래서 최근에는 참여연대식의 주장에 반대해서 재벌의 긍정성에 주목하자는 웃지 못할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재벌이 법인화한다 하더라도 이건희가 누리는 지배적 지위에는 본질적인 차이는 없다. (적어도 민중들이 보기에는… 물론 소유와 경영을 동시에 가져가려는 그 사람들의 욕심은 한도 끝도 없겠지만…) 90년대 들어 금융실명제 등이 시행되면서 ‘개혁’의 긍정성에 주목하자는 흐름이 운동 사회 내부에서조차 나왔지만, 이제 우리는 ‘재벌개혁 vs. 재벌수호’라는 논쟁지형이 가지는 허구성을 낱낱이 폭로해야 한다. 요컨대 ‘재벌해체’ 논쟁은 허구적인 측면이 많으며, 양자 입장 모두 민중의 권리와는 하등 관계가 없다고 볼 수 있다.

이젠 현실을 바로 볼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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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아르헨티나가 이미 겪은 절망적 상황이 바로 머지 않아 닥칠지 모르는 우리의 절망적 미래이다. 결과가 불 보듯 뻔한데, 아직까지도 FTA에 찬성할 것인가? 이젠 냉정하게 현실을 바라볼 때이다. 금융세계화는 한국 경제를 붕괴시킬 것이며, 민중들에게 절망을 안겨줄 것이다. 정부는 어설픈 통계자료를 가지고 억지 주장을 펼치는 행동을 즉각 중단하라. 그리고 자신의 반민중성에 보다 솔직해져라. 물론 우리는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명백하지 않은가?

Posted by 행진

2006/10/13 13:36 2006/10/13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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