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특호_각론2] 불안정노동

불안정노동을 강요하는
금융화의구조적 위기를 폭로하며
 대학사회에서 노동권을
보편적인 권리로 알려내자!



0. 들어가며

얼마 전, 한국노동연구원 원장은 “노동 3권(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을 헌법에서 빼야 하고 모든 노동자를 비정규직화하는 것이 소신이다”라는 말을 국정감사에서 뻔뻔스러운 얼굴로 내뱉었다. 자본연구원장도 아니고 노동연구원장이라는 사람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황당한 궤변이었다. 전경련에서는 1인당 GNI(국민총소득) 대비 대졸초임이 다른 나라들에 비해 훨씬 높다라며 조작된 수치로 밝혀진 초임비교 분석표를 내세우며 초임삭감이 필요하다는 논리를 펼치기도 했다.

2009년을 돌아보자. 대한통운 화물노동자들의 투쟁, 쌍용차 정리해고에 맞선 영웅적인 77일간의 파업 투쟁, 금호타이어 투쟁, 비정규악법, 최저임금법 투쟁 등 올 한해 곳곳에서 노동자․민중의 싸움은 끊임없이 진행되었다. 08년, 전 세계적인 금융위기로 경제위기가 닥친 이후 계속되는 지배계급의 위기전가의 칼바람은 2009년에도 어김없이 여느 곳 하나 가리지 않고 매섭게 불어 닥쳤고 이에 맞선 노동자․민중의 투쟁은 너무나 정당했다. 지금의 위기는 자본이 스스로 만들어 낸 덫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위기를 노동자 민중에게 뒤집어씌우며 극복하려고 하고 있다. 하지만, 2009년 우리의 싸움은 어떠했는가? 경제위기 책임전가에 맞서는 투쟁들은 하나의 전선으로 모아져 상승작용 했다기보다는 뿔뿔이 흩어져 별개의 문제들처럼 투쟁을 할 수 밖에 없었고 무더기 대량해고에 맞선 노동자들의 투쟁이, 최저임금을 낮추려는 지배계급에 맞서는 투쟁이 모두의 문제로 인식되지 못하고 흩뿌려져 버렸다.

지배계급은 경제위기가 더 이상 하향곡선을 그리지 않고 다시 날개를 치며 하늘로 오르고 있다고 선전하고 있다. 하지만 무엇을 담보로 한 경제위기 회복인지 우리는 똑똑히 알고 있다. 바로 노동자들의 임금삭감과 정리해고다. 그리고 이 같은 일들은 더욱 강한 강도로 더욱 교묘한 수법을 통해서 계속해서 이어질 것이다. 그렇다면 거세지는 그들의 공격에 우리는 어떻게 맞서야 할까?


1. 금융화의 위기와 경제위기 책임전가 : 임금삭감과 정리해고

1-1. 금융화 먹이사슬 1단계, 노동자 쥐어짜기

자본주의의 구조적 위기는 자본 편향적인 기술진보로 야기되는 유기적 구성의 상승, 그리고 장기적으로 이윤율이 하락하는 경향으로부터 나타난다. 자본주의의 대응은 자본의 과잉으로 나타나는데, 이는 곧 금융우위의 축적구조가 확립되는 금융화이다. IMF 이후 한국에서의 10년은 곧 금융화의 진행과 금융세계화로의 적극적인 편입과정이었다. 즉, 사회의 모든 요소들이 금융적 이익의 추구가 가능한 형태로 재편되었다는 것이다. 주식시장을 자유화함으로써, 기업과 은행을 주식시장에서 거래 가능한 형태로 전환시켰고, 주식시장을 개방하여 초민족적인 자본 거래가 가능토록 하였으며, 주주와 투자자의 가치를 극대화하기 위해서 정리해고, 노동유연화가 대대적으로 진행해왔다. 금융화에 동반한 혹은 그 결과인 인구의 과잉이 나타나는데 이는 상대적 과잉인구(실업자)를 창출, 즉 ‘궁핍화’이다. 따라서 실업률이 계속 증가할 수밖에 없고 더욱 큰 문제는 실업률 통계에도 잡히지 않는 비경제활동인구는 훨씬 많다는 것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비경제활동인구가 1632만 3000명에 달해, 관련 통계를 작성한 이후로 최고치를 기록했다. 전체 인구의 40%에 육박하는 비율이다.
한편 실업자가 대량 양산되는 것뿐만 아니라 기존에 있던 노동자들에게 공격이 자행된다. 경제위기 이후 많은 중소기업들이 도산하며 노동자들이 조금씩 잘려나갔고 최근에는 대기업이나 대규모사업장에서도 구조조정이 자행되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경제위기가 시작된 08, 09년을 경유하며 경제위기를 극복하겠다며 지배계급이 행했던 일은 가관이었다. 경제위기 고통을 함께 나누자며 노·사·민·정 합의를 강조하며 노동자들의 투쟁을 이기적인 것으로 만들고 저항하는 세력에 대해서 철저히 고립시키고 탄압을 했는데 이는 우리가 알고 있다시피 쌍용차 노동자들의 처절한 싸움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최저임금위원장은 최저임금 수준이 너무 높으면 고용감소가 발생할 수 있다며 고용을 계속 유지하기 위한 것처럼 여론을 만들며 최저임금 삭감을 시도하였다. 비정규보호법이 올 해 2년째를 맞이하면서 정규직으로 전환을 해야 하는 상황이 오자 다시 정부와 한나라당은 지금과 같은 경제위기 상황에서 비정규보호법이 시행되는 것은 오히려 더 많은 실업자를 만들어내는 상황을 발생시킨다는 '100만 실업대란설'을 유포하며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계속해서 비정규직으로 쉽게 고용하고, 해고할 수 있도록 하기위한 제도들을 안착화 시키기에 혈안이 되었다. 경제위기로 인해, 아니 그보다 훨씬 전부터 착취받고 고통받아온 노동자들의 현실을 외면한 채 이명박 정권과 자본은 최저임금을 깎아야 경제가 산다며, 비정규직이라도 좀 더 오래 일할 수 있는 것이 어디냐며 경제위기에 대한 책임자가 누구인지에 대한 잘, 잘못은 덮어버리고 자신들이 내놓은 대안만이 경제가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이고 그 길엔 너희의 희생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만 반복했다. 뿐만 아니라 지금의 위기를 만들어온 금융을 통제하기는커녕 금융선진화라는 이름으로 자본시장통합법을 시행하고 금산분리 완화를 시행하면서 금융자본의 이동을 더욱 자유롭게 만들어주며 불안정성을 확대하고 구조적 위기를 전가 시키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1-2. 09년, 자본의 위기 전가에 맞선 투쟁

앞에서 살펴보았듯 지배계급은 지금의 위기를 불러 온 원인은 숨긴 채, 위기의 순간을 함께 지혜롭게 극복하자는 이야기만 할 뿐이다. 아니 오히려, 함께 극복하자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민중에게 위기를 떠넘기려 했다. 위기 극복을 오롯이 민중들에게 전가하려는 모습에 맞서 노동권과 생존권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이 그 어느 해보다 중요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나 경제위기를 빌미로 계속되는 지배계급의 노동권에 대한 공격에 맞선 투쟁이 절실 할 수밖에 없는 한 해였기 때문에 그것은 더욱 중요했다. 하지만 09년 민중들의 생존권을 쟁취하기 위한 처절한 투쟁들이 반MB 정서와 함께 가면 더 크게 상승 작용할 것이라는 환상에 젖었던 세력들은 오로지 이명박 정권에 맞서기 위한 하나의 전술로서 노동권을 사고했고 결국, 중요하게 밝혀내고 알려야할 '노동권'은 반MB라는 이름 속에서 희석되어져 버렸다. 반MB투쟁 역시도 중요하지만 무엇으로 반MB투쟁을 만들 것인가가 더 중요했다. 그 핵심은 바로 모든 민중의 보편적 권리, 노동권의 문제를 대중적으로 더욱 확산시키는 것이었다. 이러한 모습은 대중들의 반MB정서에 묻어 가려했던 민주당의 모습에서도 확연히 드러났다. 반MB법으로 전국이 떠들썩했을 때, 그들은 미디어 법에는 강경지조로 대응했지만 비정규 법에 대해서는 협상의 여지를 열어두며 반MB 전선을 당의 지지율을 높이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했을 뿐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제기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다.

노동의 권리를 외치는 것이 보편적인 사회적 문제로 제기되지 못한 모습은 쌍용차 투쟁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세계적으로 경제성장속에서 자동차 산업은 경쟁적으로 설비투자를 늘려가면서 금융투기에도 동참해 왔다. 그런데 설비확장에 투자된 자본회수가 늦어지자 자동차산업의 수익성이 하락하고 전 세계적인 경제침체와 함께 자동차 산업 역시도 위기에 직면할 수밖에 없었다. 쌍용차의 파산위기와 이로 인한 정리해고도 이러한 맥락에 이어져 있었다. 쌍용자동차에 파산위기가 오자 사측이 선택한 카드는 과도한 인건비와 강성노조 때문에 회사가 어렵다는 이유를 들며 2646명의 정리해고를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사태의 책임은 명백하게 정부와 자본에 있었다. 쌍용자동차는 IMF 경제위기 당시, 매각과 구조조정을 거듭하며 상하이자동차에 매각이 되었고 그 후 쌍용차는 인수비용을 제외하고는 한 푼도 투자하지 않은 채 기술 유출과 구조조정에만 전념해왔다. 그러던 중, 또 다시 세계적인 경기침체로 자금 유동성이 악화되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고 이런 상황에서 기술이전을 완료한 상하이자동차는 정상운영을 위한 자금 투입이 아닌 법정관리신청을 택했다. 또한 정부는 상하이자본에 매각하는 것을 반대해 온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묵살한 채, 오히려 초국적 자본에 쌍용차를 팔아넘기는데 앞장섰고 그 끝은 정리해고로 나타났다. 이런 부당한 정리해고에 맞서는 노동자들의 정당한 투쟁은 77일의 옥쇄파업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쌍용차 투쟁은 초국적 자본과 정부의 책임을 명시적으로 제기하였다는 의의를 가졌다. 특히, 해외매각의 문제, 고용과 노동자 생존의 문제가 분출된 계기였고 이를 통해 생존권을 위협하는 인력구조조정과 해외 매각에 대한 여론을 일정 형성할 수 있었다. 우리는 쌍용차 투쟁에 연대하며 정부가 책임져야하는 것은 초민족자본과 이를 지원한 채권단이 아니라 공장에서 묵묵히 열심히 노동해온 노동자들의 고용과 생존권이라는 것을 발언해 왔다. 하지만 투쟁에서 보인 한계들과 아쉬움도 존재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쌍용차 투쟁을 시작으로 해외매각과 정리해고에 대한 문제는 어느 정도 사회적으로 환기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단순히 여론 환기의 차원을 뛰어 넘어 경제위기 시대 노동자 민중의 생존권 쟁취라는 정세적인 요구로 논의를 확대하는 데는 한계가 존재했다. 쌍용차 노사 간의 최종합의로 정리해고 비율이 확정되자 산업은행의 1300억 공적자금 지원이 확정되었는데 지원금의 대부분은 정부의 입장대로(구조조정을 전제로 한 공적자금 투입) 정리해고자 퇴직금 등의 구조조정 자금으로 지출되고 기업회생, 고용과는 전혀 상관없이 사용되고 마는 상황이 연출되었다. 또 정리해고의 문제가 쌍용차만의 문제로 인식되면서 구조조정이 불가피한 것이라는 여론을 벗어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지배계급의 공세적인 공격에 맞서는 투쟁은 곳곳에서 이루어졌지만 산발적으로 흩어진 채 고전을 면치 못했고 보편적인 투쟁으로 확장·상승하지 못하면서 지배계급의 경제위기 책임전가에 맞서는 집단적인 저항이 미약한 수준에 그칠 수밖에 없었다.


2. 경제위기와 불안정노동이 대학인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불안정노동의 심화는 대학인들의 삶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IMF 이후 대학을 졸업해도 취직하기 쉽지 않게 되자 대학은 일종의 ‘취업 학원’으로 변해가고 많은 대학인들의 최대 관심사는 더 좋은 직장을 구하는 것이 되었다. 최근 경제위기가 더욱 심해지면서 이런 현상은 더욱 강화되었고 대학교 1학년 때부터 학점관리, 토익점수관리, 경력관리와 같이 길고 긴 스펙관리에 들어간다. 현재 대학인들은 자기계발의 환상과 도태의 공포 속에서 적극적으로 자기의 노동력을 경영하고 관리하며 열심히 사는 대학생으로 자신의 투자가치를 높이고 있다.

불안정노동의 심화로 인해서 대학인들은 취업준비에 열을 올릴 수밖에 없지만 높은 실업률로 인해 취직은 더욱 어려워지는 현실에 직면한다. 턱없이 높아만 가는 취업의 벽 앞에서 대학인들은 피곤함을 느끼고 불만을 느끼지만 이러한 모습은 저항으로 이어지기 보다는 또다시 스펙 쌓기에 몰두하는 모습으로 나타났다.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는 노동자들의 문제를 자신의 모습과 일치시키지 않기도 했다. 쌍용차 노동자들의 공장점거 파업투쟁을 보면서 쌍용차 투쟁 자체에 대해 자체입장을 가지지 못하고 노사가 벌이는 극단적 폭력에만 반대하거나 대규모로 집단적인 투쟁을 만드는 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거부감을 표하기도 했다. 대공장을 점거하고 투쟁하는 노동자들은 평범한 노동자들과 다르다는 이데올로기가 퍼지기도 했으며, 불안정 노동에 규정당하고 있는 자신들의 삶을 노동자들의 그것에 투영시키지 못하기도 했다. 취업난이 심할수록 이를 만드는 현실에 저항하기보다는, 현실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공감하면서도 자신의 경제생활을 챙겨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아르바이트를 하고 인턴으로 일을 하고 있으면서도 노동권이 권리로 인식되기 보다는 지금은 감내해야하는 것으로 인식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이런 감내를 통해서 미래가 보장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는 불만과 불안이 깔려있는 모순된 생활을 하고 있다.  최근 이명박 정권의 실정이나 민주주의가 역행하고 있다고 하는 데는 공감하고 발언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지만 취업의 문제에서 만큼은 개개인들의 문제로 바라보면서 스스로 해결해야만 하는 문제로 인식한다.

2-1. 대학에서 청년실업과 불안정노동의 확산을 말하는 이유

 IMF 이후, 가파르게 치솟는 실업률을 보며 많은 운동단위들은 실업을 주제로 한 운동의 전망에 기대를 걸었었다. 좌파 학생운동 역시 청년실업운동본부 등의 실천을 벌여왔다. 하지만 불안정한 취업전망을 선전하는 것만으로는 즉각 대중들의 분노가 조직되지 않음을 평가하며 청년 실업운동의 목표로서 조직적 성과를 염두에 둔 실천은 한계적임을 확인한 바 있다. 관련 주제에 대한 한대련의 실천 역시 맹점이 있기는 마찬가지였는데 실천적으로 그들의 투쟁은 학생운동의 장점, 즉 전체 운동을 아우르며 전민중적 문제를 제기하고 부문 이해에 갇히지 않는 사회적 문제에 선도적인 제기를 해왔던 역할을 포기함에 다름 아니었다. 그들의 등록금 투쟁, 청년고용할당제 투쟁은 자신들의 운동 과제 중에서 정세적으로 발언되어야할 모든 민중적인 의제를 압도하는 양상이었는데, 이러한 방식으로 청년실업을 제기하는 것은 당장에 청년들에게 일자리를 주어줄 수 있게 되고 학대중들의 공감을 얻어냈을지언정, 전체 실업문제를 제기하는 데에는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오히려 신자유주의의 위기관리 전략인 민중들의 분할 통치- 즉 계층 간에 차별적으로 적용되는 노동 불안정화의 양상과 대결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세대 간의 갈등을 유발할 수도 있는 한계점이 있다. 우리는 이러한 점에 대한 반성적인 평가에 이어, 청년실업의 문제를 구조적 문제로 보지 않고 당사자의 문제로 보면서 해결하려는 접근 방식에 대한 경계를 강조해왔다. IMF이후 찾아온 10년만의 경제위기에 또 다시 실업문제가 대두되는 속에, 경제위기에 맞선 대학생 공동행동의 주요 기조로 청년인턴제 폐기를 기조로 제시했다. 그러나 상반기 용산, 쌍용차 투쟁과 같은 굵직한 정세에 학생운동이 주요역할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이와 같은 문제의식을 두드러지는 실천으로 만들어내지 못했다.
우리를 포함한 많은 운동 단위가 넘어서지 못한 한계들처럼, 청년 실업을 발언하는 것은 여러 가지 난점을 내포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시기 청년층의 실업에 대한 적극적인 주목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실업, 특히 청년실업의 문제는 자본주의의 모순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으로 이 문제가자본주의 안에서는 절대 해결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한다. 경제위기의 심화와 더불어 실업의 문제가 더욱 확산되고 있는 것은 정부와 자본에게도 역시 부담스러운 상황일 수밖에 없는데 여기서 제시할 수 있는 그들의 카드란 금융화의 심화일 뿐이었다. 금융자본 중심의 경제구조에 깊숙이 편입된 한국의 경제는 마치 금융을 육성하면 선진국이 될 수 있는 것처럼 말하지만 금융은 절대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내는 영역이 아니다. 따라서 금융시장을 육성한다고 해서 사람들을 더 많이 고용할 수 있지도 않으며 그저 외국인 투자자들의 행위에 따라 주식의 허구적인 가치가 상승/하강할 뿐이다. 바로 고용 없는 성장이 바로 금융화의 모습인 것이다. 게다가 최근 경제위기의 양상은 금융시장의 불안정성이 실물자본에까지 옮겨가 기업들이 줄줄이 도산하고 고용되어 있던 노동자들도 해고되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실업은 개개인의 능력 없는 탓으로 환원될 수 없으며 단순히 눈높이를 낮추는 것으로 해결 할 수도 없다. 대학인들도 ‘고용 없는 성장’ 속에서 노동시장에 편입되지 못하여 실업인구는 계속해서 늘어만 갈 뿐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실업의 문제 특히, 청년실업의 문제는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게 되었다. 실업의 문제를 해결할 수없는 지배계급은 실업을 조금이나마 해소해 보기 위해 청년인턴제나 잡 셰어링을 통해 대졸초임을 깎고 신규인력을 창출하려는 미봉책을 제시하고 있지만 이 역시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최근에는 경기가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고 연일 보도하며 더 이상의 위기는 없을 것처럼 선전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올해 청년실업률은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기도 했다. 지배계급에게도 실업의 만연은 위협적일 수밖에 없지만 그에 대해 제시하는 기만적인 해결책들의 대다수가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음을 적극 알려내면서 은폐할 수 없는 자본주의의 모순을 폭로해 가야 한다.

자본주의의 위기가 가속화되는 지난 몇 년간, 청년실업의 문제는 적극 사회화 되었다. 그렇게 만들기 위한 운동 주체들의 적극적인 역할이 있었다기 보다는 사실상 누가 설명할 것 없이 대중들이 가장 먼저 느끼는, 그들의 삶을 강하게 규정하는 요소였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청년 실업의 문제를 사회적인 문제로 인식하게 된 데에는 ‘한창 일할 나이인 청년들이 노는 것’에 대해 더욱 민감하게 느끼는 정서나 공감대가 있기도 했다. 곳곳의 드라마, 개그프로의 소재로 사용될 만큼 청년실업의 문제는 많은 사람들의 관심의 대상이다. 실제로 실업률을 살펴보면 청년실업률(15~29세)은 8.4%로 전체실업률인 3.9%보다 두 배 이상 높은 수준이며 유사실업자를 포함할 경우 체감 청년실업률은 20%에 달한다. 그러다 보니 현재 대학인들의 사회적 위치와 이데올로기를 가장 많이 규정하고 있는 것은, 노동 시장으로의 진입일 수밖에 없다. 끝없이 실업률이 높아지며 이에 대한 공포가 대학인들에게 내면화되고, 노동시장에 진입하기 위한 끊임없는 경쟁은 대학인들이 몸소 경제위기를 체감하게 하는 대목이다. 취업경쟁과 만연한 실업에 대한 불만은 개인들이 정치적 지향을 뛰어넘어 공유하는 것이기도 하다.

2-2. 어떻게 발언할 것인가

향후 경제위기의 진행 양상에 따라 실업이 더욱 큰 사회 문제로 대두되겠지만, 우리가 관련한 투쟁을 고려할 때는 지난 시기의 난점을 인지하면서, 전체 학생운동의 실천에서 청년층의 불안정 노동의 문제는 정세적으로 제기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대학생인들의 규합할 수 있는 요구가 거기서만 머물지 않고 전 사회/전 민중에 대한 대안적인 전망을 제시할 수 있는 실천이 되어야한다. 결국 청년 실업의 문제는 이미 확인 된바와 같이 신자유주의가 야기하는 빈곤과 불안정 노동에 대한 다양한 실천 중 하나로 문제제기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계속해서 벌어지는 임금삭감과 정리해고의 부당함에 대해 무매개적으로 강의실에서 외칠 것이 아니라면, 즉 대학과 멀리 떨어져 있는 것으로 보이는 노동현장의 투쟁을 전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것이 대학인의 삶과 어떻게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지를 밝히는 과정으로서 제시할 수 있는 투쟁과제가 청년층의 실업인 것이다.

우리는 청년실업의 문제에 대해, 청년층을 특수집단화한 후 그 당면 이해로서 실업의 해결을 촉구하는 방식이 아니라 전 민중의 문제로서 실업의 문제라는 식으로 제기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반드시 ‘구조적인 위기’에 대한 대안은 개인이 감내한다고 해서 가능한 것이 아님을, 연대와 집단적인 저항을 통해 가능함을 설득하면서 이데올로기에 균열을 낼 수 있어야 한다.
경제회복이 되고 있다는 그들의 말대로 라면 계속해서 고용이 늘어나야 하지만 여전히 실업자의 수는 증가세를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그 중 청년실업자 수는 더욱 증가하고 있다. 결국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경제회복이라는 것은 그저 말뿐이라는 것, 경제위기가 극복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장 창출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이 말은 다시 말하면 경제위기가 잠시 잠깐 왔다가는 소나기 같은 것이 아니었다는 것이고 바로 지금의 위기는 지배계급, 경제학자들이 제시하는 갖가지 정책으로는 극복 될 수 없는 구조적위기인 것이다. 이를 우리는 선전·선동 할 수 있어야 한다. 만연한 실업에 대한 학대중의 인식은 다소 갈등적인데, 자신의 삶을 강하게 규정짓는 취업과 생존의 압박이 사회 구조적 문제와 연결되는 것이라는 것을 스스로 해명하지는 못하기도 하는 것이 현실이다. 지금의 위기는 결코 극복될 수 없는 위기라는 것을 폭로하면서 학생대중들이 자본의 위기를 인식할 수 있어야 하고 그럴 때만이 청년실업의 문제를 발언 해 내는 것이 변혁적 의미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앞에서 한계로 지적했던 부문운동의 이해만을 대변하는 방식의 선동과는 실천적으로 구별되는 것이 될 수 있다.
 

3. 학생운동의 임무

3-1. 학우대중에게 보편적인 권리로서의 노동권을 알려내자!

청년실업의 문제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인다고 하지만, 학대중 개인의 조건에 따라 불안정 노동이나 실업의 문제는 다르게 인식되기도 한다. 소위 명문대나 취업하기 좋은 과를 다니는 대학생의 경우 ‘실업’ 자체, 즉 구직의 실패에 대한 공포는 그리 많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불안정노동의 양상은 다양한 방식으로 그들의 현실이 될 수밖에 없다. 대학생들이 가장 동경한다는 금융권직장에서도 경제위기의 여파로 출근시간이 당겨지며 실질적 근무시간이 연장된다던가, 튼튼해 보이는 대기업도 정년이 점점 단축되는 상황에서 평생직장이 될 수 없다는 현실이 말하는 것은 무엇인가? 불안정 노동의 칼바람은 사회의 빈곤층에만 불어 닥치는 것이 아니라 이 사회에서 노동하는 인간이라면 그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보편적인 문제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학생회라는 공간에서 노동권을 발언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는 앞서 총론에서 정치를 복원해야한다고 말한 바 있다. 정치라는 것이 기본적으로 사람들의 삶에 개입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사람들의 삶을 구성하고 있는 것들을 변화시켜내고 다양한 권리를 밝히면서 그 권리를 쟁취해 가는 것이 정치일 것이다. 역사적으로든 지금의 시대적으로든 노동권은 보편적 권리로 이해되지 않지만 이러한 보편적 권리를 제기하지 않고서는 온전한 정치를 구성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사실, 예비노동자라는 호명이 대학인들을 규정하기에는 불완전한 것이라고 할 수 있지만 대학인들이 어떻게 노동을 인식하고 있고 어떤 노동자로 살아갈 것인지, 현재 노동자들을 바라보는 관점은 대학이라는 공간에서 결정 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현재 대학에서 받고 있는 정규교육장치들은 그러한 내용을 담보해 내지 못하므로 '시민'을 만드는, '시민'으로 재사회화하는 공간으로서 대학이라는 공간이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럴 때만이 보편적 권리의 노동권을 인식하는 시민을 대학에서 길러낼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대학 안에서 경험하는 다양한 관계맺음과 지식, 혹은 정세적 투쟁 등으로 구성될 것인데 그러기 위해서는 대학 내에서 그를 추동할 수 있는 공간이 학생회가 되어야 한다. 보편적인 권리로서 노동권을 학생사회에서 학생회가 발언하자!

3-2. 불안정노동과 실업에 대한 정치폭로를 강화하자!
 
2010년을 준비하는 선거기간을 통해 앞서 밝힌 대로 허구적인 실업대책과 노동관리 정책의 무능함을 폭로하며 불안정 노동의 구조적 원인에 대한 인식의 틀을 확장 시킬 수 있게 해야 한다. 현재의 경제를 움직인다는 금융업계에서 열심히 일했지만 해고될 수밖에 없었던 코스콤 비정규직 노동자들, 계약해지로 200여명의 노동자들을 해고한 KBS 노동자들의 투쟁이 좋은 예가 될 수 있다.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하고 스펙을 쌓아서 꿈의 직장인 금융업계와 공영방송사에 취업을 했지만 개인의 노력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사회적 틀 앞에서 그들은 해고의 위기에 직면할 수밖에 없었던 현실의 노동자들의 삶을 알려내자. 자기발전을 위해 노력해서 스펙을 열심히 쌓고 취업을 한다고 해도 안정적인 일자리가 보장될 수 있는지는 절대 장담할 수 없는 현실의 사회의 근본적인 문제를 적극적으로 폭로해 내자! 


Posted by 행진

2009/11/24 12:50 2009/11/24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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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실업, 경제위기의 삼각함수




0. 대학 천태만상(千態萬象)

  캠퍼스에 봄이 흘러넘치면, 각 대학에서는 설렌 모습의 새내기들을 맞이하게 된다. 그런데 이렇게 활기가 넘치는 캠퍼스의 한 편에는 또 다른 걱정이 솟아난다. IMF 이후 대학을 졸업해도 취직하기 쉽지 않으면서 대학은 일종의 ‘취업 학원’으로 변모하였고, 많은 대학인들의 최대 관심사는 더 좋은 직장을 구하는 것이 되었다. 최근 경제위기가 더욱 심해지면서 이런 현상은 더욱 강화되었고, ‘낭만이 넘치는 캠퍼스’의 모습은 3월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사라진다. 낭만이 사라진 공간에서 남은 것은 학점관리ㆍ어학점수관리ㆍ경력관리와 같이 길고 긴 스펙관리에 들어가게 된다. 현재 대학인들은 자기계발의 환상과 도태의 공포 속에서 적극적으로 자기의 노동력을 경영하고 관리하며, '열심히 사는 대학생'으로 자신의 투자가치를 높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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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우리가 다니고 있는 대학의 모습 역시 10년도 채 안 되는 변화의 모습이다. 기업의 이름을 딴 건물이 들어서고, 단과대 건물에 기업의 실험실과 연구실이 버젓이 들어오고, 학내에 각종 상업 시설이 들어오는 모습. 학부제 도입ㆍ졸업인증시험ㆍ영어점수 획득 등 학사과정이 더욱 엄격해 지는 모습. ‘평생직장’은 없다며 직장을 잡은 후에도 주말에는 영어학원에 나가는 등 ‘평생교육’을 받는 모습. 캠퍼스에 5~6학년과 졸업생들이 많아지고, 더 이상 기초과학에는 관심이 없게 된 모습. 이러한 모습은 어디에서 기원하고, 어떤 본질을 가지고 있는가? 2009년 마이너스 경제성장률이 예상될 정도로 경제위기가 심화되는 가운데, 대학교육의 모습은 어떻게 바뀔 것인가? 이러한 지점들을 예상하며 대학을 다니는 것은 우리가 공부하는 것들의 본질이 무엇인지 알 수 있게 할 것이다. 그리고 경제위기 상황에서 어떤 행동들을 해야 하는지, 그 방향을 가늠해 볼 수 있다.  

 

1. 교육은 어떤 의미를 갖느냐?

  흔히 대학은 ‘진리의 상아탑’이라고 불렀고, 대학인들은 ‘지식인’으로 불리던 때가 있었다. 대학은 학문연구를 하는 기관으로 각종 세상사에 대해 중립적인 입장을 취하면서 진리를 추구한다고 ‘생각되었’다. 혹은 대학은 ‘가난한 수재들의 공동체’로서 유일하게 계층상승을 이룩할 수 있는 방법, 개천에서 용 나는 장소로 생각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2008년 대학 진학률은 83.8%에 이르며 아무도 대학인을 지식인이라고 부르지 않고, 모든 대학인들이 취직에 매달려 있는 상황에서 ‘진리의 상아탑’은 옛말이 되었다. 그리고 사회적인 재원과 자원을 갖추고 있어야만 좋은 대학에 들어간다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캠퍼스의 낭만’과 같은 말도 옛말이 되었다. 그런데 대학의 모습이 많이 바뀌었어도 사실 그 본질은 경성제국대학이 성립된 1920년대나, 학생운동이 활발했던 1970~80년대나, 2000년대 현재나 크게 다르지는 않다. 현재의 모습은 오히려 대학의 본질이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시기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대학의 본질을 제대로 살피기 위해서 우리는 ‘근대경제체제=자본주의체제’라는 요인을 함께 살펴봐야만 한다. 근대 시민혁명 이후 사람들은 자유와 평등과 같은 가치들을 내면화하였고, 이를 위해서는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따라서 지배계급이나 귀족들만 독점하고 있던 지식을 분배할 것을 요구하였고, 19세기 노동자들의 투쟁에서 핵심적인 과제 중 하나는 ‘지식의 분배’였다. 한편 산업혁명 이후 기계제 생산 방식이 널리 확산되며, 그전까지는 숙련 노동자들이 가지고 있던 핵심적인 기술과 노하우가 기계로 넘어가게 된다. 예를 들어 그 전까지 무기를 만드는데 있어서 대장장이의 기술이 가장 중요한 요소였고, 이런 기술은 도제 과정을 거친 몇 명 제자에게만 전수되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기계로 무기를 만들게 되면서, 기계에 의한 대량생산이 가능해지게 되었고, 기계를 관리ㆍ운영하는 방식이 더욱 중요해진다. 또한 대규모 기계제에 적합한 대규모의 노동자들이 필요하게 되었고, 이를 육성하는 교육이 필요로 했다. 이를 필요로 하는 것은 다름 아닌 기계를 이용하여 생산을 하는 자본이었다.

이렇게 지식의 배분을 원하는 시민들의 투쟁과 교육된 노동자들을 원하는 자본의 요구가 만나며 초등교육을 중심으로 한 대중적 학교교육이 확대된다. 노동자들에게 들어가는 교육의 비용을 줄이는 것은 ‘공교육’을 이용하는 것인데, 학교의 설립과 운영에 드는 비용을 국가가 전담하며 ‘대중교육’ 확장되어 간다. 초등교육 기관에서는 기본적인 글 읽기 및 산수와 같은 노동을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상식만을 제공한다. 한편 20세기에 들어서면 생산과정을 관리하고 이를 유통ㆍ판매 등과 연결하기 위해 회계ㆍ재무관리ㆍ마케팅 등의 활동이 주목받기 시작한다. 이런 일들을 담당하는 중간관리자 계층이 등장하게 되고, 이들을 양성하게 위해 중등교육ㆍ고등교육 역시 확대된다. 상급학교로 진출함으로서 사무ㆍ관리를 담당하는 지식노동자가 되는 것은 육체노동자에 비해 고임금을 보장하였고, 중등 이상의 학교교육은 빈곤과 실업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계층상승의 통로로 인식된다. 이로 인해 노동자의 지위와 임금이 학력에 의해 규정되기 시작한다. 이는 형식적으로는 모든 대중에게 평등한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자본의 필요에 따라 대중들 내부의 경쟁을 강화하고,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의 분할을 교육을 통해 정당화한다.

미국과 서유럽과 같은 중심부 국가를 중심으로 발전하였던 대중교육은, 1945년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 미국식 자본주의가 전 세계로 확대되는 과정에 발맞추어 확대된다. 한국 역시 해방과 한국전쟁을 거치며 자본주의 체계로 빠르게 변화해가고, 대학 역시 자본주의체제에 부합하는 노동력을 양성하는 기관으로 기능한다. 지금까지 살펴보았듯이 대학의 역사와 기능은 자본주의체제의 변화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습니다. 대학은 자본주의에서 필요로 하는 지식을 생산하는 공간으로서, 그리고 이에 적합한 노동력을 생산하는 공간으로서 기능하는 것이다. 따라서 현재 경제위기의 양상과 이에 대한 대응을 살펴보는 것은, 우리가 다니는 대학이 어떤 모습으로 변해갈 것인지 알아보는데 필수적이다.  

 

2. 금융화에 발맞추는 대학

  2009년 많은 대학들에서 등록금 동결을 선언했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높은 등록금에 힘들어 하고 있다. 등록금은 이미 물가인상을 주도하는 전 사회적인 문제로 인식되고 있고, 사실 신자유주의에 맞춰 대학이 변해가는 징후는 바로 등록금 인상이었다. 즉 대학의 자율성을 높인다는 미명 아래 재정을 차등지원하고, 알아서 살아남기를 강요하는 과정에서 등록금이 인상되었다. 한편 높은 등록금을 부추기는 원인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좀 더 복잡한 교육의 변화과정을 보아야 한다. 그것은 흔히 말하는 대학 구조조정인데, 구조조정의 방향은 전 사회적으로 진행되는 '금융화'와 발맞추게 된다. 이것은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진행되는데 1) 대학의 운영 자체를 금융자본의 이익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만드는 것 2) 대학에서 가르치는 지식 및 통제 방식이 변해가는 것. 이런 두 가지 모습은 서로를 보충해가며 현재 대학의 모습을 특징짓는다.

최근 가장 대표적인 현상은 대학 내 산학협력단이 주식회사 형태의 자회사를 설립할 수 있도록 하여, 대학이 직접 기업을 설립하고 수익을 얻을 수 있게 한 대학기술지주회사이다. 대학기술지주회사 설립과 관련하여 2008년 2월 통과된 ‘산업교육진흥 및 산학협력촉진에 관한 법률’은 최근 더욱 완화되어 더욱 많은 대학이 회사를 설립할 수 있게 되었다. 지난 2월 국내 최초의 대학기술지주회사인 한양대의 ‘HYU홀딩스’가 첫 매출을 기록하였고, 서울대 역시 ‘서울대 기술지주 주식회사’를 출범하여 ‘매출 1조원 목표’의 장사를 본격적으로 시작할 예정이다. 또한 경희대와 고려대 및 동국대 등도 2009년 안 설립을 추진 중이고, 각 대학이 보유하고 있는 기술가치를 평가하고 있다. 이에 대학은 일종의 기업이 되어 자금구조를 최대한의 수익을 얻는데 사용하고, 기업과의 연계를 더욱 노골적으로 강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대학에서 생산되는 지식 역시 기업에서 바로 쓸 수 있는 것을 만들어 내는데, 이미 이공계의 대학원 과정을 중심으로 진행된 산학협동 과정이 사회과학ㆍ인문과학에도 침투하여 지식의 상품화 현상이 강해진다. 이런 과정에서 돈이 되지 않는 학문은 다른 분야에 통폐합되거나, 더욱 기업의 입맛에 맞추는 지식을 생산하게 된다.

대학에서 적극적으로 수익을 창출하려는 지점은 갖가지 지점에서 나타난다. 최근에 금융의 불안정성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며 주춤해지기는 했지만, 많은 대학에서는 자금을 주식투자와 같이 단기간에 수익을 얻을 수 있는 곳에 투자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그리고 자금을 구하기 위해 동문이나 교직원들에게 발전기금 명목으로 기부를 받거나, 심지어 등록금의 일부를 사용하려고 시도하기도 하였다. 또는 캠퍼스 내에 상업시설을 유치하는 현상이 늘어나고 있고, 최근에는 '잡 셰어링'이라는 명목으로 학내 노동자들의 임금을 삭감하고 구조조정을 하려는 시도들 역시 나타나고 있다. 이렇듯 대학의 재단이 기업의 소유가 되며 둘 사이의 연계가 강화되는 것을 넘어, 현재는 대학이 적극적으로 '금융투기'의 주체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와 함께 학교의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상품화하고 있고, 이는 학교의 발전이 곧 구성원들의 발전과 동일하다는 '학교 발전이데올로기'로 이어진다. 학교 발전이데올로기는 대학과 그 구성원들의 배타적인 이익을 옹호하는 기관으로 변모하고, 이런 전략과 위배되는 행동을 하거나 반대하는 세력들을 '외부세력'으로서 배제한다.

경제위기 속에서 대학의 금융화ㆍ기업화 현상은 점점 더 심해지고 있습니다. 혹자는 대학이 많은 돈을 버는 것이 무엇이 나쁘냐고 이야기할 수도 있고, 대학의 경쟁력이 높아져야 학생들도 잘 되는 것 아니냐고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경제위기의 원인이었던 금융화에 대학들이 발맞추는 것은, 사회 전체적으로는 '장작을 지고 불 속에 들어가는' 결과를 초래할 따름이다. 또한 대학의 지식이 단기적으로 기업의 수익을 창출하는데 맞춰짐에 따라, 지식의 내용과 사회에 대한 장기적인 기여도는 낮아질 수밖에 없다. 현재 점점 기업이 되어가고 있는 대학의 모습 속에서, 우리 자신의 미래는 어떻게 될지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만 한다. 

 

3. 대학은 실업률 관리기관?

  2009년 2월 대학의 졸업식장의 풍경을 취재하는 기사들은 '실업', '취업난', '졸업자 감소'와 같은 단어들이 뒤따르는 대학의 우울한 자화상이 담겨있었다. 대졸취업률이 역대 최저에 치달은 상황에서, '잡 셰어링(job sharing)'을 통해 대졸 초입을 깎고 신규인력을 창출할 것을 강력하게 권고 하고 있다. 몇몇 신문에서는 한국의 대학 진학률이 84%에 달하는 현재 상황에서 요즘 같은 불경기에도 대한민국 대다수 학생이 대학에 진학하는 것이 문제라고 이야기하며, 기술ㆍ기능을 연마해 빨리 사회 적응에 나서야 한다고 설교하였다. 하지만 학력격차는 노동시장에서 곧 임금격차로 나타나고, 상급학교에 진출하지 못하면 할 수 있는 일 자체의 폭이 줄어든다! 따라서 실업이 늘어나는데도 불구하고 대학진학률이 이렇게 상승한 이유는 문화ㆍ의식이 성숙하지 못했기 때문이 결코 아니다.

그렇다면 캠퍼스에 '장수생'들이 많아지는 이유는 무엇인가? 한국이 금융자본 중심의 경제구조에 깊숙이 들어가면서 주식ㆍ양도성예금ㆍ모기지 등 금융관련 상품이 증가하고, 벤처사업을 육성한다며 1996년 코스닥 시장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금융을 육성하여 한국경제가 선진국이 될 수 있다는 사람들의 말과 달리, 금융자본은 새로운 가치가 만들어지는 영역이 결코 아니다. 따라서 금융시장을 육성함으로서 사람들을 많이 고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대부분 외국인 투자자들의 행위에 따라 주식의 허구적인 가치가 상승ㆍ하강할 뿐이다. 이것이 바로 '고용 없는 성장'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 게다가 최근 경제위기의 양상은 금융시장의 불안정성이 실물자본에까지 옮겨가 기업들이 줄줄이 도산하고, 고용되어 있던 노동자들도 해고되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실업은 개개인이 능력 없는 탓으로 환원될 수 없으며, 단순히 '눈높이'를 낮추는 것으로 해결할 수도 없다. 문제는 금융자본의 이익에 초점이 맞춰진 현재 경제체제의 문제이고, 몇몇 경제전문가들이 좋은 정책을 제시하는 것으로 현재의 체제를 바꿀 수 없다.

이미 몇 년 전부터 취업률이 최고의 홍보수단이 된 대학들은, 심각해진 실업문제와 관련하여 대안을 내놓고 있다. 숙명여대는 취업하지 못한 졸업자와 졸업예정자를 위한 무상 프로그램인 '학사 후 과정(Post-Bachelor Program)'을 시행하고 있다. 동문멘토링ㆍ취업캠프 등 프로그램으로 '백수 졸업자'의 취업 지원을 하는 학교들도 있는데, 한국외대는 7월 '졸업생 업그레이드 프로그램'을 개설하여 어학강좌와 경영회계실무 등을 교육할 예정이고, 성공회대도 내년 여름방학부터 '모의회사프로그램'이라는 졸업자 취업지원제도를 시행한다 한다. 이런 프로그램들은 학생들의 취업을 지원한다는 측면도 가지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양산되고 있는 '예비실업자'들을 학교에 묶어놓아 취업률 통계를 관리하는 방법이다. 한편 이것은 정부에서 취업자에 대한 지원을 강화한다는 내용을 담은 '포뮬러 펀딩(Formula Funding)' 등과 맞물려 정부지원을 획득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정부에서 실시하며 이미 그 부작용이 드러나고 있는 '청년 인턴제 정책'과 맞물려, 각 대학의 실업대책 역시 낮은 임금의 임시직을 양산하는 것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자본주의에 걸맞은 노동력을 양성하며 급격히 증가한 한국의 대학은 경제위기 상황에서 '실업률을 관리하는 기관'으로 변하고 있다. 그리고 대학인들에게 언제 잘릴지 모르는 불안정한 노동시장에 들어가서, 계속 일하고 싶다면 끊임없이 개인의 경쟁력과 스펙을 쌓아야 하는 것을 가르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억지로' 교육을 받아야 하는 기간은 무한히 늘어나고, 실업 인구는 적체되어 가고 있다. 대학들은 실업문제를 결코 해결하지 못하며 문제를 유예하고 봉합하는 데 적극 동참할 뿐이다.  

 

4. 어떤 대학생활을 할 것인가?

  우리가 대학에 다니는 이유는 무엇인가? 혹은 무엇 때문에 대학에 존재한다고 생각하는가? 물론 ‘진리 추구’ 혹은 ‘학문 연구’라고 대답하는 사람들도 간혹 있을 것이다. 더 많은 사람들은 더 좋은 직장을 얻기 위해서, 혹은 남들이 다 가니까 어쩔 수 없어서라는 대답을 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현실적인 목표’도 현재의 상황에서는 달성하기 어려워 보인다. 경제위기 속에서 실업률은 점차 증가하지만, 역설적으로 교육을 받는 시기는 점점 늘어간다. 대학은 금융화ㆍ기업화에 적극적으로 편입하며 경제위기에 대응한다고 하지만, 일부 사람들만이 그 혜택을 받을 수 있을 뿐이다. 그런 과정에서 인간을 자유롭게 해야 할 지식은 오히려 인간을 구속하고 있다.

현재 더욱 중요한 것은 개인의 경쟁력을 높이고 스펙을 쌓는 것 보다, 대학에서 지식을 습득하고 공부를 하는 것의 의미를 좀 더 근본적으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최소한 아직 대학생활의 여유가 남아 있다면, 졸업까지는 많은 시간이 남았다면 위와 같은 것들을 성찰할 수 있는 활동을 할 필요도 있을 것이다. 취업과는 상관없어 보이는 변혁적인 사회과학을 공부하는 것, 거리에 몸을 맡기고 사회적 문제를 풀어나가는 실천을 하는 것, 최대한 학내에서 자치활동을 많이 해보는 것. 이를 통해서 대학에서 쏟아지는 엄청난 지식에 짓눌리지 않게, 교육을 받는 것이 더욱 많은 사람에게 행복한 일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더 이상 대학을 ‘진리의 상아탑’이라고 부르지 않고, 대학 자체가 기업이 되고 있는 현재. 대학-실업-경제위기의 삼각함수를 풀 수 있는 방법을 함께 고민해보자!

Posted by 행진

2009/03/11 04:40 2009/03/11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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