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화되는 재정적자,
위기의 도화선이 될 것인가?




지방정부의 빚잔치

지난 7월 12일 경기도 성남시 이재명 시장은 LH공사와 국토해양부에 갚아야 할 5200억 원이 없다며 채무지급유예(모라토리엄)를 선언했다. 경기도에서 재정 자립도가 가장 높아 이른바 ‘부촌’으로 불리던 도시에서 발생한 일이었던 만큼 사람들의 충격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성남시 발전연합회는 시장이 시민의 불안감을 조성하는 정치쇼를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행정안전부 역시 성남시 상황은 ‘과대포장’된 것이라며 시장의 ‘섣부른 행동’을 공식 비판했다. 여기저기에서 성남시 시장의 충격적 선언에 맞대응했지만 충격적 사실 그 자체는 변하지 않았다. 성남시의 빚은 여전히 5천억 원이며, 성남시는 현재로서 그 빚을 갚을 능력이 없다.
그러나 문제는 성남시뿐이 아니다. 대부분의 지방자치단체들이 성남시와 비슷하거나 그보다 더한 부채문제를 겪고 있다. 제 2, 3의 모라토리엄 선언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것도 이 때문이다. 2010년 현재 전국 지자체들의 부채 규모는 거의 100조 원 가량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는 국가 전체 예산의 3분의 1을 넘어서는 막대한 액수이다. 특히 인천시 같은 경우는 부채가 거의 3조까지 늘어나 예산규모의 30%에 육박하여 제 2의 성남시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지방 공기업의 부채 문제도 만만치 않다. 지방 부채 중 지방공기업의 부채는 약 42조 정도이며 이는 공기업 전체 예산의 140%에 달하는 금액이다. 더군다나 지방공기업 세 곳 중 하나는 부채비율이 300%가 넘어선다.
지방자치단체들의 재정자립도 수치는 더욱 가관이다. 전국 지방자치단체들 중 80% 가량이 재정자립도 50%를 넘고 있지 못한 상황이다. 지자체로서는 예산의 반 이상을 지원받거나 빌려오지 않는 이상 운영이 불가능해지는 것이다. 특히 군 단위는 열에 아홉이 30%에도 못 미치는 재정자립도를 보이고 있다. 심지어 전라남도 내 지자체 자립도는 평균 11%에 불과하다. 게다가 지자체들의 재정자립도가 1997년 이후로 지속적인 하락 추세 놓여 ‘자치단체’로서 지속 가능성을 위협받을 수 있는 도시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자료 : 행정안전부, “지방자치단체 예산개요"




어쩌다 여기까지 왔는가?

보다시피, 지방재정의 경향적 부실화와 지역 간 재정 불균형 현상은 이미 우려의 수준을 넘어섰다. 이 쯤 되었으면 어쩌다 지방정부가 이 모양이 되었는지 따져봄 직도 하다. 대다수의 재정 전문가라는 사람들은 지방정부의 방만한 재정운영과 비전 없는 지자체 운영으로 현재의 위기가 발생했다고 이야기 한다. 공무원들이 해외 탐방이랍시고 호화여행을 다녀온다거나, 청사신축에 수천억 원을 쏟아 붓는다거나, 공약 지키겠다고 온갖 선심성 행정을 남발하는 행태들이 바로 방만한 재정운영의 예이다. 비전 없는 지자체 운영이란 낮은 재정자립도를 극복하려는 지자체만의 특화된 전략 없이 관성적인 행정운영만 반복하는 지방 관료들의 행태를 말한다. 요컨대 돈을 벌어들여 재정자립도를 향상시킬 고민은 하지 않고 해외탐방이니 업무환경개선이니 하며 돈만 계속해서 축낸다면 재정위기를 겪을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그래서 이들은 철저한 긴축관리를 통한 세출 절감 및 감시제도 도입과, 지역별 특성화 사업을 통한 세출 증대를 대안으로 제시한다. 문제의 원인이 수입 없이 지출만 했기 때문이라면, 역으로 문제의 해결은 쓰는 돈을 줄이고 벌어들이는 돈을 늘리자는 나름 그럴듯한 발상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리 간단하지 않다. 현재의 지방정부 부채위기의 뒤에는 우리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을 것 같은 신자유주의적 금융세계화라는 거대한 괴물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통념과는 달리, 금융세계화는 고삐 풀린 자본이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민중을 착취하는 시스템이 아니다. 제국주의 시대의 서구 열강들이 노동력, 자원, 시장을 찾아 지구 구석구석을 찾아다녔던 것에 반해, 그리고 냉전 시기의 미국이 철의 장막 이편의 나라들을 모두 자본주의화 시키기 위해 온갖 공작을 일삼았던 것에 반해, 현재의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는 몇몇 세계도시(Cosmopolis)만을 쓸모 있는 공간으로 여길 뿐 지구 대부분의 지역들에는 별다른 관심을 갖지 않는다. 이러한 신자유주의의 요구에 따라 지역체계는 점차 재편된다. 한 국가 안에서, 깔끔한 국제공항과 회의 시설, 그리고 금융/통신/법률서비스로 무장한 세계도시가 형성되고 그 외의 도시들은 이로부터 분리된다. 전자는 후자와 운명을 공유하지 않는다.


금융세계화에 급속하게 편입 중인 한국 역시 마찬가지이다. 서울과 몇몇 수도권 도시들은 정보화/서비스화를 통해 나름의 세계도시적 자태변환을 시도하고 있는 반면에 그 외의 거의 대부분의 지역들은 이러한 흐름에서 배제되어 도태되고 있다. 세계도시까지는 아니더라도 (자유무역지구와 같은 반민중적 정책 등을 통해) 외자 유치에 어느 정도 성공한 경우가 간혹 있기도 하지만, 그 역시 매우 일부일 뿐 대다수 도시들은 활로를 찾지 못하고 쩔쩔매는 상황이다. 노무현 정부의 행정수도 이전과 지역 혁신 클러스터, 이명박 정부의 혁신 도시 등이 제기된 이유도 정확히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도태되고 있는 지방 도시들의 문제가 점점 심각해지는 상황에서 중앙정부 차원에서 제시한 나름의 해결책이 행정수도 이전을 통한 지역 균형 발전이나, 지방 특성화 사업을 통한 재정자립도 확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자는 실패했고 후자는 ‘나비도시’ 함평과 같은 소수의 케이스를 제외하고는 큰 효과를 보지 못했다. (배제된 자들의 경쟁으로서) 지역 발전 이데올로기는 남아있지만 지역 현실에 맞는 중장기적 발전을 위한 ‘수단’이 없는 상황에서, 각 지방정부가 택한 방법은 단기간에 가시적인 성과를 보일 수 있는 사업에 돈을 쏟아 붓는 것이었다. 지방자치단체들이 너나 할 것 없이 토목-건설 사업이나 전시행정을 경쟁적으로 수행하게 된 것도, 그리고 이로 인해 막대한 부채를 짊어지게 된 것도 이러한 사정에 기인한 것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 뿐만이 아니다.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의 흐름 속에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었던 금융위기는 현재 지방정부의 재정건전성에 결정타를 날렸다. 2007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지방정부는 침체된 경기를 회복하기 위해 막대한 비용을 쏟아 부었다. 대부분의 경기부양 자금들은 건설-토목 사업을 대폭 늘리는데 사용되었다. 부동산 시장을 활성화시켜 경기부양을 하겠다는 의도였다. 전국 14개 광역자치단체 산하의 도시개발공사가 발행한 채권 규모는 2007년 8000억에서 2008년 14조 8000억으로 1년 새에 약 14배 늘어났다. 특히 인천도시개발공사 같은 경우는 2008년부터 2010년까지 약 2년 사이에 3조 3천억 원 규모의 채권을 신규 발행했다. 이는 2008년 1600억 원 이었던 채권 발행 잔액보다 20배 이상 많은 액수였다. 게다가 이러한 막대한 세출은 경기부양을 위한 감세정책과 함께 이루어졌다. 2009년 한 해에만 지자체의 세출이 12조 2000억 원 증가한 반면, 세입은 7조원이나 감소했다.
문제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사실 건설-토목 사업을 대폭 늘려 부동산 시장이 활성화되고 경기가 부양되어 투자되었던 돈이 회수될 수 있다면 그만이다. 인천도시개발공사도 토지 및 아파트 분양수익으로 차입금을 갚을 수 있다고 호언장담하였다. 그러나 현실은 그와 정반대로 굴러가고 있다. 심각한 경기침체 국면은 벗어났다고 하나 부동산 시장은 낙엽이 나풀나풀 떨어지듯 살며시 낙하하고 있는 중이다. 인천도시개발공사가 착공한 송도국제도시 내 ‘웰카운티 3차’ 분양은 외국인 전용 120가구에 단 1가구만 청약이 들어온 상태이다. 성공을 장담한 것 치고는 결과가 너무 초라하다. 이제 지방정부로서는 정말로 빠져나갈 구멍이 없게 되었다. 성남시가 모라토리엄을 선언한 것도, 인천이 제 2의 성남시가 될 것이라는 예측도, 그리고 소수의 몇몇 도시를 제외하고는 지방 대부분의 도시들이 재정위기로 인해 심각한 곤란을 겪으리라는 예측도 모두 이러한 상황에 근거를 둔 것이다. 미래는 그리 밝지 않다. 




투쟁의 정당함, 투쟁의 유효함

상황이 이러니 누가되었든 해법을 내놓기는 내놓아야 한다. 보수주의자들처럼 전통적인 ‘작은 정부’론에 입각하여 공기업 민영화나 사회보장축소를 주장하건, 소위 재정전문가들처럼 수줍게 지역 특성화 전략과 세출감시제도를 제안하건, 우리에게는 솔직하게 위기를 인정하고 해결을 모색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러나 조금 억울한 감이 있다. 우리는 현재의 금융위기/재정위기가 모두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에 기인한 것임을 알고 있다. 그리고 그 신자유주의라는 것이 곧 돈 있는 자들의 아욕과 탐욕에 다름 아니라는 사실도 알고 있다. 그들은 평범한 사람들의 삶에 관심을 기울인 적이 없다. 지구 대다수의 지역이 ‘무방비도시’가 되고 인간의 삶에 ‘잔혹’이 일상화되어도, 코스모폴리스만 안전할 수 있다면 태평천국을 누릴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들이다. 그렇기에, 신자유주의자들에 대한 단죄 없이 위기 비용을 우리가 감당해야 하는 것은 부당한 일이다. 우리는 절대로 저들이 만들어 낸 위기에 책임을 질 필요가 없다(“We won't pay for their crisis!”). 그리스 노동자들이 사회보장제도를 후퇴시키는 긴축정책에 반대하여 벌이고 있는 투쟁과, 남한의 노동자들이 위기 비용 전가에 반대하면서 생존권 보장과 고용ㆍ성장 정책을 요구하는 투쟁이 그 어떤 해법보다 정당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그러나 노동자들의 요구가 정당하다는 것이 곧 유효하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신자유주의의 파괴적 몸부림을 제어할 합리적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 채 생존권 투쟁에만 머무른다면, 후안무치한 신자유주의자들과 무지한 재정전문가들을 넘어설 수 없다. 특히나 현재 재정위기의 심각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국가의 재정지출확대(‘서민경제 살리기’, 사회보장제도의 양적 확대 등)만을 요구한다면 우리에게 남는 것은 경제적 파산과 정치적 혼란뿐이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사회보장 축소나 공기업 민영화를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누진과세 확대를 통해 과세를 증대하거나 혹은 과세를 개혁하는 등 재정운용을 효율화하여 평등주의적인 정책을 쓸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많이 있다. 중요한 점은 노동자민중의 투쟁이 생존권 투쟁을 넘어 현재 금융위기와 재정위기의 메커니즘을 변혁할 수 있어야 하는 투쟁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것, 그래서 투쟁의 정당함과 투쟁의 유효함이 서로 만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자체이다. 그렇다면 이를 위해 구체적으로 무엇이 행해져야 하고 행해질 수 있는가? 답변의 시간은 많이 남지 않았다. 진보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그들 스스로를 무엇으로 생각하건 관계없이, 이 주제를 토론하며 위험을 감수하는 것은 그들의 몫이다. 발리바르의 말처럼 “실패한다면, 어떠한 변명도 필요 없을 것이다.”

Posted by 행진

2010/08/07 17:07 2010/08/07 17:07

Trackback URL : 이 글에는 트랙백을 보낼 수 없습니다

[교육] 


경제위기, 어디에서 왔는가?



지난해 심각한 금융위기가 발생하면서, 곳곳에서 거대 금융자본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불거져 나왔다. 최근엔 거대금융자본 - 초민족 은행 - 을 적으로 삼은 ‘인터내셔널’ 이라는 할리우드 영화가 개봉하기도 했다. 자본주의의 심장부에서 자본주의의 심장을 적으로 삼는 영화를 만들다니 아이러니하지만 (게다가 정의의 편은 인터폴과 뉴욕지방검사라는 공권력이다!) ‘눈에 보이는 적을 해치워도’ 금융자본의 세계 지배는 계속되는 이 영화를 보고 관객들은 “아무리해도 세상은 안 바뀌는군.” 하고 돌아서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 액션영화에 비해 폭력성․선정성이 두드러지지 않는 이 영화에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을 매긴 것은 금융자본을 비판하는 어떤 내용의 영화도 최대한 접근을 차단하고 싶은 정부의 마음이 반영된 것일 게다.

어설프게 초민족 금융자본을 비판한 영화와는 달리 10년도 전부터 진지하게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를 분석하며, 금융위기가 초래할 평범한 사람들의 삶의 파괴를 막고자 했던 이들이 있었다. 바로 신자유주의를 비판해 온 경제학자들, 대안세계화 운동가들이다. 그들은 신자유주의 하에서 국가는 금융자본의 지배가 쉬워지게끔 온갖 제도적 장치를 마련한다는 것을 밝혀 케인즈주의 하 큰 정부, 신자유주의 하 작은 정부라는 허구적인 쟁점을 해체하려 하였고, 세계경제포럼(다보스 포럼)에 맞선 시위를 조직하고 세계사회포럼을 개최하여 지금 이루어지고 있는 세계화가 전 인류에게 풍요를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줬으며, 금융자본을 비판할 수 있는 경제지식을 시민들에게 돌려주는 교육 사업을 진행하여 비판적 시각과 저항의 언어를 민중들에게 돌려주고자 했다. 남한 전체가 경제위기로 크게 흔들리고 있는 지금, 더 많은 사람들에게 ‘비판적 시각’과 ‘저항의 언어’ 가 절실히 필요하다.


1. 경제위기가 도래한 이유

대학생인 나에게 최근 가장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경제 이슈는 뭘까? 우선 몇 달 전에 비해 엄청나게 급등한 환율로 인해 성인이 되어 해외에 한번 나가보겠다는 꿈은 저 멀리 사라졌다. 몇몇 등록금을 동결한 대학이 그 사실을 자랑스레 떠벌리고 있지만 사립대학 등록금은 평균 7.1% 상승하여 물가상승품목 중 상위권을 차지했다. 설상가상으로 자취비용도 점점 더 많이 들지만 부모님의 월급은 동결되거나 삭감되고 아르바이트를 구하는 것은 더 어려워졌다. 청년실업이 문제된 것이야 옛말이지만, 정부가 내놓은 해결책은 1년짜리 일자리인 ‘청년인턴제’ 이고, 돈 많이 벌 때 임금 팍팍 안올리던 대기업은 위기가 오니까 대졸자 초봉을 깎을 ‘결의’를 했다. 누구든 여기에 몇 줄이고 더 힘든 경제상황을 나열할 수 있겠지만, 이쯤에서 그만하도록 하자. 어쨌든 이렇게 아직 경제활동에 적극 참여하지 않아도 되는 우리의 삶, 그리고 미래까지 팍팍하게 만든 것은 무엇인가?

누구나 알고 있듯이 작년 9월 리먼 브라더스가 파산한 이후로 점점 더 상황이 심각해지고 있다. 리먼 파산과 더불어 메릴린치, AIG와 같은 투자은행과 보험회사가 매각되거나 국유화되더니, 지금은 메릴린치를 인수하면서 더 세를 키울 거라 여겨졌던 BOA(Bank of America)와 거대금융그룹이었던 시티은행, 미국경제를 선도했던 GM과 GE까지 주가가 폭락하면서 경제위기가 심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위기가 시작된 이후로 진행상황을 나열하는 것만으로는 이러한 지경에 이른 ‘원인’을 찾을 수는 없다. 조금 더 앞으로 돌아가, 2000년 이후 핵심 키워드를 가지고 위기의 원인을 찾아보자.

IT붐

2000년, 미국은 민주당의 클린턴 행정부 말기, 한창 고어와 부시가 대통령 선거에서 각축을 벌이고 있을 때였다. 우리는 김대중 정부 하에서 엄청난 구조조정을 통해 IMF위기를 막 극복할 즈음이었다. 지난 몇 년간 세계경제의 희망은 IT산업이었다. 재정적자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되고 역플라자 현상이 일어나자 미국으로 많은 양의 자본이 들어오는데, 이러한 자본이 당시 각광받는 산업이었던 IT관련 주식으로 몰리게 되고, IT분야를 중심으로 미국의 주식시장은 크게 성장한다. 당시 Yahoo와 같은 포털사이트 주식이 최고가를 기록하기도 하고, 우리나라도 산업혁명과 IT를 비교하며 산업혁명에는 뒤졌지만 IT혁명에는 뒤질 수 없다며 컴퓨터와 인터넷을 빠르게 보급, IT벤처기업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IT붐을 보고 ‘신경제’라 일컬으며 희망을 갖던 사람들은 그러나 IT붐은 새로운 경제발전 메커니즘을 만든 것이 아니라 그러했으면 좋겠다는 희망이 만들어낸 거품(버블)이었음을 곧 깨닫게 된다. 어떤 산업이든 기업이든 주식이 실제 가치보다 고평가되면 버블이 생겨난다. 주식의 평가기준은 모호한데, 사람들은 ‘미래수익’을 예상하며 주식에 투자하고, 그러면 그 종목에 또 돈이 몰리기 때문이다. 주식시장의 특성 상 실물영역에서 수익을 내는 것보다 훨씬 단기적인 수익이 많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기업의 이미지’를 잘 설정하여 가치를 순식간에 높이고 거기서 발생하는 주식의 차액을 챙기는 것이 최근 주식투자의 공식이기 때문이다. IT기업들의 가치는 다른 기업보다 훨씬 가상적인 것이었기 때문에 - 대체 인터넷 안의 가상공간은 어느 정도로 새로운 가치를 생산해낼 수 있느냐? - 특히 과하게 고평가된 측면이 있었다. 버블은 언젠가는 꺼지기 마련이고, 2001년 IT주가는 크게 하락, 결국 신경제는 붕괴한다.

부동산의 증권화

IT붐이 꺼지자 미국은 즉시 경기침체에 빠져든다. 여기에서 미국의 FRB는 조치를 취한다. FRB는 오랫동안 경기침체기에는 저금리 정책을 통해 돈을 시중에 풀어 경기 활성화를 꾀하고, 호황기에는 고금리 정책을 통해 인플레이션을 방지하고자 해 왔다. 의도한 대로 사람들은 은행에서 돈을 많이 빌려가기 시작한다. 그런데 이렇게 돈을 빌려서 어디에 투자하느냐가 문제이다. FRB의 저금리 정책은 90년대 후반부터 진행되어온 부동산 호황과 맞물린다. 시장에 풀린 돈은 부동산시장으로 몰리게 된다.

그렇다면 미국 경제의 침체기에 왜 부동산경기는 계속 호황이었을까? 그 이유를 살펴보자. 미국 정부는 다양한 세금제도상의 특전과 보조금으로 주택소유를 지원해왔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이지만, 미국도 대출을 받아 주택을 구입하는데 여러 혜택을 주었고, 모기지(주택저당금융)론이 바로 그러한 방법이었다. 즉 사람들은 국가정책의 도움으로 부채 증가를 통해 소비를 늘리고 있었는데, 부동산도 그 영향을 크게 받은 것이다. 저금리정책의 영향을 받아 2002년부터 주택경기는 더욱 활성화되고, 모기지론이 급증하게 된다. 그 중 특히 신용등급이 가장 낮은 서브프라임 대출자들의 비율이 크게 늘어나, 2002년 주택 담보 대출 시장의 3.4%만을 차지했던 서브프라임 등급은 2006년 말에는 13.7%가 된다.

이 모기지론이 최근 금융위기의 핵심에 있다. 2002년 이후 금융혁신이 매우 빠르게 진행되어 여러 파생상품들이 생겨나는데, 이 금융혁신의 핵심이 바로 ‘부동산의 증권화’이다. 같은 대출이지만, 남한에서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주택을 구입한다면, 미국은 모기지 회사에서 대출을 받는다. 모기지 회사는 은행이 아니라 모기지론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특수한 금융기관인데, 은행이 아니므로 사람들의 예금을 통해 자금을 조달할 수가 없다. 그래서 발명해 낸 것이 바로 모기지를 증권화하여 증권회사에 판매하는 방법이었다. (증권회사는 이것을 가공하여 다른 금융기관에 판매한다.)

모기지회사와 증권회사가 판매하는 증권이 바로 파생금융상품의 일종인 ‘MBS(주택연계증권)'와 ’CDO(부채담보부증권)' 이다. 이러한 증권과 이 증권에서 파생된 또 다른 증권 등이 전 세계 곳곳으로 팔려나갔고, 세계경제는 미국의 주택담보대출자, 모기지 회사, 증권회사, 금융기관, 기관투자가를 비롯하여 증권에 투자한 모든 사람들의 순으로 긴밀히 연결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2007년부터 우리 눈으로 확인했듯이 무너지기 쉬운 연쇄 구조였다.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

금융혁신으로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채 비율이 급상승하고 있던 것과 동시에, FRB는 2004년부터 2006년 중반까지 여러 번에 걸쳐 기준금리를 1%에서 5.25%까지 인상시켰다. 그러자 결국 주택거품이 폭발했다. 주택판매, 주택건설, 모기지 대출, 주택가격이 모두 급락하기 시작했다. 2007년 2∼3월 모기지 대출회사의 부실화와 파산 위기라는 서브프라임 발 금융위기의 태풍이 형성되기 시작했고, 서브프라임 모기지에 대한 이자율 상향조정의 첫 번째 물결이 강타했다. 금융위기의 신호탄이 쏘아진 것이다.

모기지 대출은 보통 3년 이상 운영되며 3년 이후에는 변동금리로 전환된다. 저금리 기조의 영향으로 서브프라임 대부기관은 처음 2년 동안의 1% 수준의 매우 낮은 미끼금리가 이후에 변동금리가 적용되면 18% 수준까지 재설정될 수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제시하지 않았다. 즉 많은 사람들이 빌릴 당시의 금리가 낮았어도 몇 년 후 변동된 금리대로 돈을 갚아야 한다는 것을 제대로 모른 채, 주택가격의 상승이 낮은 금리를 상쇄해줄 것이라 믿고 (실질금리가 마이너스로 유지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가계부채를 계속 늘려왔다.

그런데 금리는 올라가고, 그로 인해 부동산 거품이 꺼져 주택가격이 하락하자 서브 프라임 등급의 대출자들이 돈을 빌릴 당시의 집의 시세보다 훨씬 떨어지게 되고 이들은 집을 팔아도 빚을 갚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 결국 흑인, 히스패닉을 중심으로 한 서브 프라임 대출자들은 돈을 갚지 못하여 담보로 잡혀있던 집을 잃고 (당시 연체율이 약 20%로 급상승한다.), 역시 빌려준 돈을 제 기간에 받지 못한 투자 기관과 서브 프라임 모기지 회사도 타격을 입었다. 2007년 4월, 미국 제2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회사인 뉴 센트리 파이낸셜이 파산 신청을 내는 것을 시작으로 이른바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가 시작된다.

2007년 8월, 미국에서 역시 급락한 주택 시세로 인해 투자 분을 회수하지 못한 미국 10위권인 아메리카 홈 모기지 인베스트먼트(America Home Mortgage Investment) 역시 파산보호를 신청하고, 프랑스계 투자은행 베엔뻬 빠리바가 서브프라임 관련 두 종류의 펀드에 대한 환매를 중단하자 세계적 연쇄반응이 일어났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대출채권과 관련된 파생금융상품의 가격폭락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먼저 MBS 시장이 사실상 소실되었고, 이는 모든 층위의 부채담보부증권(CDO) 시장을 동결시켰다.

앞서 언급했던 연쇄구조는 빠르게 무너진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세계 경제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회사들이 순식간에 파산위기에 몰리고, 주가가 하락하면서 주식에 투자한 개인들도 손해를 입고, 금융에서 시작된 위기가 실물경제까지 영향을 미쳐 실업이 늘어나고… 하지만 이렇게 금융업에 너무 깊게 발을 들여놓은 회사들이 파산하고 곳곳에 영향을 미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금융은 모든 경제영역과 전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 왜 평범하게 일한 사람들이 소위 ‘금융의 탐욕’으로 먹고 살 권리를 빼앗기게 되는 걸까? 우리는 어느새 금융자본에 지배당하게 되었을까? 이에 대한 답을 찾으려면 좀 더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 필요하다.



2. 왜 금융자본이 경제의 중심에 서게 되었나?

때는 70년대, 미국에서는 71년 닉슨이 금창구를 폐쇄하였고 워터게이트 사건이 일어났으며 미국이 베트남과의 정전을 합의한 2년 뒤인 75년에 베트남 전쟁은 북베트남의 승리로 끝이 난다. 70년대 들어 케인즈주의는 약발이 안 먹히기 시작했고 그동안 케인즈주의를 비판해왔던 세력들이 힘을 얻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이를 ‘신자유주의’라 부르기 시작했다. 결국 1979년, ‘불의의 일격’ 또는 ‘볼커의 반혁명’ 이라 불리는 사상최대의 금리인상이 이루어진다. 남한에서 70년대는 박정희의 시대였다. 79년, 그의 독재는 부마항쟁을 비롯한 민중들의 저항이 아니라, 김재규의 총성으로 끝마치게 되었다. 우리는 아주 나중에서야, 70년대 말에 박정희가 그의 경제정책을 발전주의에서 신자유주의로 바꾸려 했던 것, 그것이 79년 4월에 실시된 ‘경제안정화종합시책’ 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미국의 대공황 이후 억압받고 있던 금융자본이 반격을 꾀하기 시작한 것은 바로 이 70년대이다. 보통 70년대를 신자유주의의 과도기, 80년대부터 본격화된다고 본다. 초기에는 대부자본(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아 이익을 취하는 자본) 중심의 금융세계화가 진행된다. 이를 또 두 가지 시기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73~79년의 저금리 대부자본 중심의 금융화, 두 번째는 79년부터 86년까지의 고금리 대부자본 중심의 금융화이다. 마지막 단계인 86년 이후부터는 증권시장에 대한 규제가 풀리면서 가공자본 중심으로 금융화가 전개된다.

대부자본 중심의 금융화

70년대 초반, 미국 경제는 자국 내 투자가 기대한 만큼 수익을 내지 못하자 해외 시장으로 눈을 돌려 이제 막 고도성장을 하고 있는 라틴아메리카의 산업자본에 저금리로 돈을 빌려주기 시작했다. 그러나 79년까지의 저금리는 실질 금리가 마이너스에 다다를 정도의 초저금리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미국은행이 입는 손해는 커지고, 이와 동시에 달러가 시장에 엄청 풀리고 여러 가지 국제 정세가 더해져 달러의 가치는 급격히 하락한다. 이에 대해 미국 재무부는 특단의 조치를 택한다. 이것이 79년 ‘볼커 반혁명’이다. 이로부터 금융화의 두 번째 국면이 전개된다. 이 조치로 인하여 마이너스였던 실질금리는 82년 최고 8~9%까지 상승한다. 금리가 높으니 당연히 전 세계의 달러들은 다시 미국으로 집중되기 시작하고, 금리가 높아지니 제 3세계 국가들은 갑자기 엄청난 이자를 감당해내야만 하게 되고, 결국 산더미 같은 빚을 감당하지 못한 채 ‘외채위기’에 직면하게 된다. 더 이상 빚을 갚을 능력도 없는 제 3세계 국가들은 국가파산을 하거나 아예 돈 갚는 것을 포기하게 된다. (멕시코와 아르헨티나의 구제금융조치와 모라토리움 선언들을 떠올려 보면 된다.) 이렇게 남미를 중심으로 제 3세계 국가들의 경제는 완전히 무너지기 시작한다.

이렇게 되자 초기엔 고금리를 받았던 은행들도 위기에 처한다. 돈을 빌려간 사람이 파산신고를 하고 더 이상 돈을 갚지 못하겠다고 하면 은행은 원금조차 돌려받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당시 고금리에, 가뜩이나 산업도 잘 되지 않으니 새롭게 돈을 대출하지도 않는다. 빌려가는 사람도 없고, 돈을 빌려간 사람은 돈을 갚지 않아 미국의 은행들이 줄줄이 파산하기 시작하기 시작한다.

마지막 금융화의 단계는, 86년 무렵, 즉 대부자본이 줄줄이 파산하고 고금리 정책이 끝이 나는 시기부터 시작한다. 이전에 산업자본들은 대부분 은행에서 돈을 빌려서 재정을 마련하곤 했다. 그러나 이제는 금리가 높으니 은행에서 더 이상 돈을 빌려서 쓰지 않게 된다. 그렇다면 그 재정은 어디서 마련하게 되었을까? 미국의 법인자본이 생겨날 때 취했던 방법, 바로 주식을 발행하는 것이다. 게다가 86년 이전에는 ‘유로달러’ 시장으로 재기를 노렸던 영국이, 이번에는 자국의 주식시장을 전면적으로 개방하고 각종 금융규제 조치를 철폐 하는 ‘빅뱅’을 일으켰다. 이에 각국도 앞 다투어 주식시장을 개방하고 금융규제를 없앰으로써 이제 은행 중심의 금융화 국면은 끝이 나고 증권시장 중심의 금융화가 도래하게 된다.

가공자본이 경제를 지배하는 사회로

이제 가공자본, 즉 주식시장이 경제를 지배하는 사회가 된다. 이전 시기는 대부자본이 누군가에게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형식, 은행이 중심이 된 금융세계화였다. 반면, ‘가공자본’ 이란 말은 현실의 가치를 가지지 않고, 장래 수익을 낳게 하는 원천으로서 가공적인 자본의 형태를 말한다. ‘미래소득에 대한 청구권’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대부자본과 다르다. 대표적인 것이 주식인데, 예를 들어 내가 어떠한 주식에 일정한 돈을 투자를 하면, 투자한 돈에 대한 이자를 받는 것이 아니라, 그 기업이 낸 이윤에 대해 자신이 투자한 만큼의 돈을 받게 된다.

그러나 주식은 이중적인 성격을 갖는데, 한편으로 금융자본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주식을 사야 산업자본이 원활하게 이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공자본(주식)을 통해 주주가 얻을 수 있는 이익은 배당금, 경영권, 시세차익이다. 본래 금융세계화 전에는 앞서 설명한 대부자본을 비롯하여 배당금, 시세차익을 노린 가공자본의 이동이 철저히 금지되고, 경영권만을 목적으로 한 가공자본의 이동은 허용된다. 여기서 배당금과 시세차익을 노린 주식투자를 금융적 목적의 주식투자, 즉 포트폴리오 투자라 하고 경영권을 목적으로 한 주식투자를 산업적 목적의 주식투자, 즉 해외직접투자(FDI)라 한다. 이 두 형태의 가공자본을 구분하는 기준은 조금 애매한데, 다소 인위적인 기준을 설정하여 대충 10% 또는 15% 정도 이상의 주식을 보유하면 금융적 목적이 아닌 경영권을 획득하기 위한 투자로 간주되어 허용된다.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의 핵심은 이러한 가공자본을 비롯한 금융에 대한 규제를 없애는 것, 즉 금융해방이다. 지금까지 대부자본(은행)이나 가공자본(주식)에 가했던 온갖 규제들을 풀고 자유화하는 것인데, 국제적 이동 뿐 아니라 국내적으로도 그러하다. 예컨대 은행은 과거에 주식시장에 투자하지 못했으나 점차 이를 가능케 하고, 이자율의 상한선 규정도 풀리고, 은행이 부동산시장에 투자하지 못했던 것을 풀고, 이런 세세한 제도들을 하나하나 다 없애가는 것이다. 미국에서 글래스-스티걸 법은 80년대부터 점점 해체되어가다, 99년에 완전히 폐지되었고, 남한에서는 겸업은행을 만들고자 하는 자본시장통합법이 최근 발효되었다. 물론 그 전부터 각종 규제가 해체되어 왔음은 물론이다. 이렇게 규제를 푸는 목표는 물가나 환율의 안정을 통해 금융자본의 이익을 보호하는 것이다.

앞서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을 분리해서 이야기했는데, 60년대 말에 이윤율이 하락하면서 초민족 법인기업은 외형상으로는 산업자본이지만 금융그룹처럼 움직이게 된다. 즉 ‘산업을 지배적인 요소로 하지만 금융그룹’ 이 되어간다. 예를 들어 전통적인 자동차 회사인 GM, 가전제품회사인 GE 등도 금융적 활동을 통해 돈을 벌었고, 바로 최근까지 금융부문에서 낳는 이윤이 40% 이상을 차지하기도 했다. (그리고 최근 이 회사들의 위기는 이러한 금융부문으로의 무분별한 확장이라고 이야기된다.) 남한에서도 쉽게 예를 찾을 수 있다. 전통적인 자동차 회사인 현대에서 ‘현대 캐피탈’이 나오고, 이 활동으로 많은 이윤을 남기는 사례가 그러하다.

이렇게 전 세계적으로 금융자본의 이익이 여러 제도와 이념을 통해 비호되고, 전통적인 산업자본도 금융그룹의 성격을 띠면서, 금융은 거의 모든 부문을 지배하게 된다. 그리고 우리의 삶 구석구석까지 그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금융의 헤게모니 역전 전략은 사회제도도 변화시킨다. 단적으로 IMF구조조정과 같이 위기에 처한 국가의 체질개선 조치가 있다. 선진국들은 위기에 처한 제 3세계 국가들을 도와준다는 명목 하에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국가경제의 구조를 바꾸도록 종용한다. IMF는 외채위기를 겪고 있는 나라들에게 돈을 빌려주는 것뿐만이 아니라 돈을 갚기 위한 효율적인 경제구조로 재편하라는 압력 또한 가한다. 여기서 말하는 ‘효율적인’이란 얼마나 그 나라에서 돈이 나오느냐, 이지 그 나라의 국민이 얼마나 잘 사느냐가 아니다. 따라서 구조조정은 보통 사람들에게 매우 폭력적인 방식으로 일어난다. 예를 들어 M&A (기업들을 인수, 합병하는 것)를 보자. IMF에 의한 인수합병 절차는 단순히 부실기업을 정리하고 하나로 뭉쳐서 경쟁력 있는 기업을 만들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기업들을 정리 및 다운사이징하여 금융적 가치를 높이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즉, 투자 가치를 상승 시키는 것이다. 또한 해고와 임금삭감을 통한 구조조정은 위기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일어난 일이 아니라, 위기를 극복하겠다는 명목으로 이루어진 것이었으며, 수많은 위기극복 전략 중 평범한 노동자들에게 가장 고통을 많이 전가하는 방식이었다. 그 뒤에 다시 승승장구한 기업이 많았지만, 매번 ‘IMF보다 힘들다’는 말들이 나왔던 것을 떠올려보자.

또한 각국의 금융시장들은 철저히 개방된다. 물론 여기서 명목은 그 나라에 투자를 유치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알고 보면 개방된 그 나라의 주식시장에 거대자본들이 들어와서 거품을 형성하여 재미를 보는 것이 주된 목적이다. 이제 ‘신흥공업국’ 은 ‘신흥시장’으로 변화하는데, ‘신흥공업국’이 산업 영역에서 새롭게 부상한 국가를 뜻한다면, ‘신흥시장’ 은 새로운 ‘주식시장’ 을 의미한다. 동아시아의 대표적인 신흥시장이 바로 남한과 대만이고, 이러한 국가들에서 외국자본은 자국에서 경제상황이 안 좋아지면 바로 자본을 회수하고, 최근이 바로 그러한 상황이다. 환율이 몇 달 사이에 두 배 가까이 폭등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러한 신흥시장에서 외환위기의 위험성은 항상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각국의 목적은 자신들의 나라를 금융자본이 들어오고 싶은 나라로 만드는 것이다. 외국자본들에 의해서 자국의 존망이 걸려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하여 제 3세계 국가들은 점점 더 금융화를 가속화하게 된다. 위험을 피하기 위해 위험요소를 더욱 끌어들이는, 생명을 건 줄타기를 하며 생존해나갈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3. 사이비 대안 말고 진짜 대안을!

우리는 사건이 일어난 이후 많은 것들을 평가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 30여년의 역사가 자연스럽게 흘러온 것처럼 이해하기 쉽다. 그리고 신자유주의는, 이 흐름이 당연하다고 우리에게 끊임없이 이야기해 왔다. ‘문제가 있는 건 알지만 우리도 막을 수 없어’ ‘이것 말고 무슨 대안이 있단 말이야?’ 등등의 얘기들을 끊임없이 속삭이면서, 혹은 윽박지르면서 말이다.

위기가 심화되고 실업률이 높아지면서 신자유주의 정책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추진했던 세력들도 뭔가 대책을 마련하려고 하고 있다. 최근 가장 이슈가 되고 있는 것은 ‘일자리 나누기(Job sharing)’ 는 그 중 가장 대표적인 정책으로, 온갖 언론에서도 이 정책이 가장 현실적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자본은 하나도 내주는 것이 없이 노동자들이 임금을 동결하거나 삭감하면서 해고를 막는 방법이다. 위기의 부담은 노동자들이 나눠서 지는 것이다.

청년실업이 더욱 심해지면서 이에 대한 대안으로 나온 청년인턴제도, 1년짜리 비정규직일 뿐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는 못한다. (우습게도 한나라당 김문수 같은 자들이 청년인턴제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기도 하다.) 또한 청년실업 문제의 해결도 나이든 노동자들이 빨리 일자리를 그만두고 그 자리를 젊은 사람들로 채우라는 이데올로기가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 또 다시 노동자 내부에서의 싸움을 부추기는 것이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던 경제학자들과 활동가들은 이러한 사이비 대안이 아니라, 진정한 대안을 찾으려 해 왔다. ‘위기라고 해서 사람들을 생존의 벼랑 끝으로 내몰면 안 돼. 기업에 투여하는 공적자금을 평범한 사람들이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기금으로 주자.’ ‘돈 많은 사람만 더 돈을 많이 불릴 수 있는 구조를 바꿔야 해. 금융으로 이익을 얻는 사람들에게는 세금을 많이 걷자.’ ‘이런 상황을 우선 사람들에게 알려야만 해. 교육 사업을 하자’ 등등으로 말이다. 이런 시도 중 현실화된 것도 있고 아닌 것도 있다. 하지만 이런 문제의식으로 유럽에서는 자본의 이익을 비호하는 유럽헌법을 부결시켰으며, 남미에서는 FTA와는 다른 대안무역협정을 맺기도 하였다.

남한에서는 아직 크게 이렇다 할 성과를 낸 것은 아니다. 그러나 세계의 활동가들은 WTO협정에 반대하는 남한 농민들의 활동으로 희망을 얻기도 하고, 몇몇 이들은 작게나마 자신의 권리를 찾기도 했다. 너무나 거대한 문제인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에 맞서는 대안은 실은 가장 구체적인 사람들의 삶에서부터 나와야 한다. ‘우리의 삶이 구체적으로 나아지려면 어떻게 제도가 바뀌어야 하는가? 어떤 사고방식을 바꾸어야 하는가?’ 이렇게 문제의 실마리를 찾아가보자.

이 글에서 ‘금융자본’의 이익을 보장하는 것이 사람들의 삶을 팍팍하고 만드는 원인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우리는 이 원인에 맞선 실천을 고민해야 한다. 더 구체적으로 공부를 해갈수록, 그리고 구체적으로 노동자 민중이 어떤 부분에서 힘에 겨워하고 있는지를 직접 보고 알아갈 수록 우리가 무엇에 맞서야 하는지가 명확해질 것이다. 그렇다면 이 글의 결론인 ‘금융자본에 맞서자!’라는 막연한 방향성은 점점 더 구체화 될 것이다. 출혈적인 경쟁만을 해 왔던 지금까지의 삶의 원리를, 더 많은 사람들이 정당한 권리를 누리며 살 수 있는 사회로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삶으로 만들어가자. 그러면 우리의 세계는 더 크게 열릴 것이다.

Posted by 행진

2009/03/11 14:06 2009/03/11 14:06

Trackback URL : 이 글에는 트랙백을 보낼 수 없습니다

[정세전망] 


왜 미국경제가 기침을 하면
한국경제는 몸살에 걸리나요?




1. 들어가며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후 미국을 중심으로 전 세계의 경제상황은 계속 요동치고 있다. 미국 발 금융위기로 시작된 현재의 위기는 실물경제에도 파괴적인 영향을 미치며 확산되고 있다. 위기의 진원지인 미국에서는 최대 자동차 업체인 제너럴모터스(GM)와 크라이슬러가 위기를 맞아 미 재무부에 자금요청을 하고 또 추가지원을 요청하고 있다. 경제위기에 대응해 오바마 정부는 ‘신뉴딜 정책’과 제로 금리를 기반으로 한 ‘무제한 달러 공급’을 핵심으로 하는 경기부양책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이미 수천억 규모의 금융 구제안이 시행중인 미국 정부가 재정적자를 감당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고, 이것이 금융위기의 2라운드 혹은 ‘디플레이션’으로 상황이 더욱 악화될 가능성도 있다. 또한 헝가리ㆍ크로아티아ㆍ루마니아ㆍ불가리아 등 동유럽 국가들이 집단 채무불이행(디폴트) 상태에 빠질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오면서 동유럽발(發) ‘2차 세계 금융대란’의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이들 국가가 서유럽 은행에서 대출받은 자금은 총 1조6000억 달러(국제결제은행 추산)에 이르는데, 만약 이들 국가가 연쇄적으로 채무불이행 선언을 하게 되면 서유럽 은행들의 부실채권은 급격히 늘어나고, 이는 다시 서유럽의 금융불안을 낳을 가능성이 높다.

최근 언론에서 계속해서 보도되고 있는 1,500원대로 치솟은 환율, 초민족자본의 탈출 러시, 외화유동성 부족 등 널려있는 악재들은 ‘제2차 금융위기’를 떠올릴 수밖에 없게 만든다. 이외에도 한미 FTA와 자본시장통합법으로 미국 중심의 금융세계화에 더욱 깊숙이 발을 들여놓으려는 한국으로서는 불황이 장기화될 것이며 동시에 미국보다 더욱 심각한 위기를 맞이하게 될 것이 뻔하다. 이 글에서는 왜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지를 한국과 미국의 경제관계의 역사를 훑어보면서 파악하고, 몇 가지 키워드를 중심으로 한국경제의 향방을 가늠해보도록 한다.

2. 한국과 미국 경제관계의 역사와 본질

한국이 미국과 정치ㆍ경제ㆍ군사적으로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아는 사실이다. 1945년 한국의 해방 이후 주변에 있던 소련과 중국은 현실 사회주의의 2대 강국이었고, 미국은 동아시아에 사회주의의 물결이 넘치지 않도록 전략을 세웠다. 경제적으로는 한국에 소비물품 중심의 원조를 하였고, 정치ㆍ군사적으로는 주한 미군을 배치하고 한국 정치에 대한 관여를 심하게 한다. 이것은 1950년대까지 이어지는 데 자본주의 세계의 최강국으로서 미국의 좋은 이미지를 보여주는 동시에, 한국인들의 당장의 배고픔을 면하게 하여 사회주의로 경도되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다. 한편 단순한 원조정책은 1960년대 이후 한국경제의 구조를 미국경제의 구조와 긴밀히 연관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이러한 방향은 지금까지도 한국 경제의 특징으로 남아있지만, 이후 세계 자본주의의 모습이 변화함에 따라 함께 변화해간다. 이것은 세계 자본주의가 호황에 있을 때에는 한국의 경제상황 역시 나아지지만, 현재와 같은 경제위기가 닥쳤을 때에는 ‘미국경제가 기침을 하면, 한국경제는 감기에 걸리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여기에서는 한국경제가 미국에 편입되어 가는 과정을 살펴봄으로서, 한미 경제관계의 본질이 무엇인지 살펴보겠다.

□ 1960년대 초~1970년대 말: 발전주의의 시대

냉전시기 동아시아가 사회주의권 국가들의 영향을 받지 않기 위한 가장 좋은 해결책은 바로 자본주의의 싹을 무럭무럭 기르는 것이었다. 이에 일본을 중심으로 동아시아의 경제구조가 확립되어 가는데, 한국ㆍ대만ㆍ홍콩ㆍ싱가폴은 ‘동아시아의 4마리 용’으로서 급격하게 자본주의 체제에 편입해 들어간다. 1965년 체결된 한일회담은 일본으로부터 차관을 받거나 수출자유무역지구를 설립하여 외국으로부터 직접투자를 받기도 한다. 이렇게 모인 자본을 바탕으로 군부독재정권이었던 박정희 정권은 ‘조국 근대화’라는 명목아래 강력한 국가 중심적 경제정책을 실시하였다. 이런 정책은 주로 자본을 집중하여 한 산업에 투자하는 방식이었고, 이로 인해 한국만의 독특한 기업형태인 ‘재벌’이 등장한다. 당시 추구했던 공업화의 내용은 1960년대 노동집약적 경공업에서 1970년대 중화학 공업으로 바뀌는데, 이러한 산업들은 미국ㆍ유럽ㆍ일본과 같은 세계자본주의의 중심부에서 발달한 산업들에 비해 이윤창출이 작은 부분들이었다.

한편 지금도 한국경제의 가장 큰 특징인 수출중심의 경제구조는 이 시기에 만들어진 것이다.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커다란 자국시장을 활짝 열어주되 한국에 시장개방을 강요하지 않았다. 한국은 적극적으로 수출주도 산업화 정책을 추진하였고 자국시장은 개방하지 않으면서도, 소비제품을 중심으로 미국에 대한 수출을 꾸준히 늘릴 수 있었다. 한국경제는 미국의 지원과 국가중심의 강력한 경제정책으로 신흥공업국(NICs)으로 발전하게 된다. 이러한 1960~1970년대의 한국경제를 일컬어 ‘발전주의 정책’이라고 부를 수 있다. 이러한 가운데 한국사회는 급격히 변하기 시작한다. 점차 노동자들이 늘어나기 시작하고, 농촌에서 유입된 인구로 도시인구는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그리고 국가 중심의 동원을 강화하고 자본주의 체제의 정당성을 입증하기 위해 ‘반공주의’가 강화된다. 이런 반공주의는 미국의 영향 아래 있던 자본주의 국가들에서 일반적으로 나타나던 이데올로기였고, 이를 위해 국가를 중심으로 한 폭력과 억압이 심화된다.

□ 1980년대~1990년대 중반: 미국의 개방 압력과 3저 호황

베트남 전쟁에서의 패배와 독일ㆍ일본 등 다른 자본주의 국가들의 추격으로 인해 미국은 최강대국으로서의 면모를 잃어나간다. 또한 경제가 계속 악화되며 1970년대 물가와 실업률이 동시에 올라가는 스태그플레이션이 발생하게 된다. 이에 미국은 1980년대부터 케인즈주의 경제정책을 포기하고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실시한다. 또한 쌍둥이적자(무역적자, 재정적자)에 시달리게 되자 미국은 무역적자를 해소하기 위해, 제 3세계 국가들에게 노골적인 경제적 압박을 가한다. 이는 라틴아메리카 등에서 경제위기를 기회로 미국 자본이 진출할 수 있는 가능성을 높이는 방식으로 경제구조를 바꾸어나간다. 물론 냉전이 지속되는 시기라 정치적으로 의미가 있던 한국은 라틴 아메리카와 같이 완전한 경제적 압박을 하지는 못한다. 한편 무역적자를 타개하기 위해 일본의 엔화를 평가절상하는 내용의 플라자협약은, 80년대 중반 한국에서 ‘3저호황’(저금리, 저달러, 저유가)으로 나타나게 된다. 즉 저금로 많은 자본을 빌릴 수 있고, 저달러로 수입 비용이 줄어들며, 저유가로 생산단가가 낮춰지게 된 것이다. 3저 호황으로 무역 흑자가 발생하기도 하는데, 이를 토대로 한국의 구조조정은 늦추어진다.

그런데 89년 폴란드를 시작으로 소련ㆍ헝가리ㆍ체코 등 동구 사회주의 국가들이 붕괴한다. 미국에 대한 한국의 정치적 의미는 퇴색하였고, 미국의 한국시장 개방 압력은 가속화되었다. 어릴 때 들어봤을 법한 무시무시한 수퍼 301조’는 미국이 불공정한 무역행위를 하는 국가에 보복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하는 조항이다. 그 ‘수퍼 301조 협약’을 89년 미국과 한국은 맺는다. 92년에는 자본시장이 개방되면서 미국계 초민족자본의 ‘국내 증권시장 투자‘가 가능해졌고,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이 타결되면서 농업 등의 분야가 대폭 개방된다. 95년 세계무역기구(WTO)가 출범하면서 이에 가입하였고, 96년에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을 하며 신자유주의 세계경제에 강력하게 편입해 들어간다. 이런 흐름들 속에서 세계화나 경쟁 같은 담론들이 강하게 유포되어 가고, 국내 법제도 역시 신자유주의를 주도하는 미국계 금융자본에 유리하게 바뀌어 간다.

□ 1990년대 후반~2000년대: IMF 구조조정과 금융세계화로의 편입

90년대 중반 이후 ‘4마리의 용’이라고 불리던 동아시아 국가들은 금융자본의 불안정성에 타격을 받게 된다. 97년 12월 급격히 줄어든 외환보유고를 지탱할 능력이 없었던 한국정부는 결국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한다. IMF 구제금융을 받는 조건으로 맺은 ‘IMF 구조조정 협약’을 계기로 한국경제는 이전과는 다른 체제에 진입한다. 즉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에 깊숙이 들어가게 된 것이다. 한국 주식시장과 외환시장은 거의 완전히 개방되었고, 한국기업에 대한 외국인 주식의 총 보유한도가 점점 증가하게 된다. 기업들에 대한 구조조정 과정에서 미국계 자본은 적극적인 투자/투기를 통해 헐값에 매입하게 된다. ‘바이 코리아’(Buy Korea)의 결과 투자자들은 엄청난 수익을 올렸고 그 수익률 또한 막대했다. 그 결과 외국인 보유 상장주식가액은 91년 당시 약 2.4조원 대, 97년 10조 원대였다가 99년에는 약 76.6조 원으로 대폭 증가하였다. 2000년 주식시장 거품이 거지면서 그 해 12월에는 약 56.6조 원까지 하락했지만 이후 다시 증가하여 04년 173.2조 원, 05년에는 급기야 260.1조 원에까지 이른다. 그리고 외국은행 자회사 및 외국증권사 현지법인 설립이 허용되었고, WTO 양허계획에 맞춰 각종 규제와 제도가 철폐되었다.

2003년 이후로 여러 국가들의 다자간 협상을 특징으로 하는 세계무역기구와 도하개발아젠다(DDA)는 제 3세계 국가들을 중심으로 저항에 부딪힌다. 이 때문에 국가와 국가가 직접협상(양자간 협상)하는 자유무역협정(FTA)이 증가하는데, 한국에서는 2004년 한-칠레 FTA를 시작으로 동시 다발 FTA를 추진하고 있다. 그 내용은 DDA가 포괄하는 협정의 대상과 개방 수위를 훨씬 높여, 한국의 경제구조를 완전히 바꾸는 것이다. 특히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를 주도하고 있는 미국과의 FTA는 한국경제의 구조를 완전하게 금융자본이 가장 쉽게 이익을 얻을 수 있도록 바꿔놓을 것이다. 한미 FTA가 시행된다면 이미 그 불안정성이 가시화된 세계 자본주의에 긴밀하게 통합하게 되며, 한국에서 초민족적 자본의 활동과 지배력은 더욱 강화될 것이다. 초민족적 자본의 이득 면에는 민중의 삶과 권리가 파괴되는데, 이미 IMF 이후 비정규직이 확대되는 등 노동 불안정성이 심화되었고, 복지제도가 공격 받으면서 빈곤층으로 분류되는 사람들의 수는 한국인구의 6분의 1에 가깝게 되었다.



3. 향후 한국경제는 어떻게 될 것인가?

위에서 한국경제가 미국경제와 긴밀하게 연관되는 상황을 역사적으로, 간략하게 살펴보았다. 이런 연관은 향후 한국경제가 나아가는 방향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인가? 물론 세계경제가 요동치고 주식시세가 급격하게 오르락내리락 하는 ‘롤러코스터 시세’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당장 하루하루의 전망도 내기 어려운 상황이다. 여기에서는 다만 몇 가지 키워드를 중심으로, 향후 경제위기의 방향을 예측할 수 있는 단상을 제시하도록 하겠다.

키워드 ① : 동아시아와 미국경제

1980년대 이후 미국 경제가 쌍둥이 적자에 시달리면서도 계속해서 세계 최강국으로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동아시아의 역할이 크다. 2000년대 들어 미국의 이중 적자를 메워주고 있는 메커니즘으로서 동아시아 외환보유고 증가에 기반을 둔 달러환류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이것은 동아시아에서 생산된 제품을 판매하여 얻은 달러가 미국의 증권시장에 다시 투자되거나, 그나마 안정적이라고 여겨지는 미국으로 자본이 도피하는 현상을 일컫는다. 동아시아는 이에 걸맞은 체계로 바뀌어 가는데, 기존의 신흥공업국에서 벗어나 금융자본의 유출입을 쉽게 하는 신흥시장으로 탈바꿈한다. 미국에 의한 달러환류가 가능한 이유는 미국의 달러가 다른 통화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치가 높은 것이고,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바로 미국의 발권이익(seigniorage, 액면가치와 발행비용의 차액)때문이다.

동아시아 달러환류 메커니즘의 중요성이 커질 수 있었던 이유는, 동아시아 국가들의 외환보유고가 1990년대 말 금융위기의 이후에 급격히 증가했던 데에서 기인한다. 이것은 동아시아 국가들이 정부정책상 외환보유고를 증가시키기 위해 통화안정채권이나 외평채의 발행을 통해 인위적으로 달러보유액을 늘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렇게 거대하게 늘어난 외환보유고는 집중적으로 미국 재무부 증권에 투자되었다. 이것은 역사적으로 동아시아의 지속적인 생산이 줄곧 미국 시장의 팽창에 의존해 있었기 때문이었다. 즉 미국 시장의 성장지속과 동아시아의 성장지속은 서로에 대한 긍정적 이해관계를 갖게 된다. 동아시아에서 외환보유고가 늘어나게 되는 주원인 중 하나는 미국에 대한 무역수지 흑자이면서, 또한 이를 가지고 미국 경제의 소비의 지속을 지탱해주는 메커니즘이 형성되는 것이다. 한편으로 IMF 구조조정 등으로 동아시아 지역에서는 세계적 금융위기의 가능성에 매우 취약하게 노출되어 있었지만, 이에 대비할 수 있는 장치나 제도가 매우 취약한 상황이다. 이렇게 금융위기에 매우 취약한 상황에서, 외환위기 가능성을 예방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자체적으로 외환 보유고를 늘리는 것뿐이었다. 이런 상황으로 인해 동아시아는 미국의 경제위기를 떠안는, ‘미국의 금고’로서 기능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런 메커니즘이 언제까지 이어질 수 있을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이미 미국 내에서도 경제위기가 심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언제까지 달러의 가치가 유지될 수 있는지 장담할 수 없다. 이는 수출달러 환류를 가능하게 했던 미국의 지위, 즉 세계자본주의의 최종 소비자로서 미국의 지위가 언제 소멸하게 될지 모른다는 뜻이다. 미국 재무부와 연준의 경제위기 극복방향은 은행에 대한 구제금융과 인수ㆍ합병을 주도함으로서 금융자본을 구제하고 있다. 이는 미국에서 정책기조가 약간 바뀌었다고 해도 여전히 현재의 위기를 몰고 온 ‘금융화’를 더욱 지원한다는 것으로, 근본적으로 신자유주의 체제는 바뀌지 않을 것이다. 이에 따라 미국에서 시작하는 세계 경제의 불안정성은 더욱 심화되고, 그 직격탄을 맞는 것은 미국 경제와 긴밀하게 연결된 동아시아일 것이다.

키워드 ② : 자본시장통합법은 한국경제의 돌파구가 될 수 있나?

장기화되는 경제위기 상황에서 한국의 5대 증권사를 미국 월스트리트의 투자은행처럼 거대한 ‘금융투자회사’ 로 만들어, 금융시장을 발전시키겠다는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자본시장통합법)이 지난 2월 4일부로 시행되었다. 07년 7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자본시장통합법은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에 관련된 기존의 6개법을 통합하고 관련 제도를 크게 바꾼 것이다. 자본시장통합법의 핵심은 지금까지 증권사ㆍ자산운용사ㆍ종금사ㆍ선물회사ㆍ신탁회사 등이 각각 판매하는 금융상품도 다르고 적용받는 법률도 달랐지만 이제 업종의 벽을 허물겠다는 것이다. 즉 증권사가 지금까지 선물사, 종금사에서 하던 일도 할 수 있고, 법에 규정되어 있지 않은 새로운 금융상품도 자유롭게 판매하며, 결제송금서비스도 할 수 있게 된다. 또한 CMA(자산관리계좌)와 같은 방식으로 노동자의 임금도 금융의 변화에 긴밀히 연결시켜, 증권사(투자은행)가 모든 노동자를 금융투자자가 되게 한다.

또한 이명박 정권은 자본시장통합법 시행의 후속조치로 각종 법령 개정을 추진하여 법 시행에 따른 제반조건을 보완하고,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의 분리를 완화하고 있다. 금융위원회가 발표한 <은행주식 보유규제 및 금융지주회사 제도 합리화 방안>(금산분리완화방안)의 요지는, 국내외 산업자본(기업)이 현재 4%로 되어 있는 시중은행 지분 보유한도를 10%까지 늘릴 수 있고, 국민연금 등 공적연기금이나 사모펀드도 일정 요건을 갖추면 은행을 인수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또한 증권회사나 카드회사를 자회사로 둔 금융지주회사가 제조업까지 자회사로 둘 수 있게 허용했고, 이에 따라 금융과 비금융회사들이 섞여 있는 기업집단(=재벌)이 금융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할 수 있게 된다. 지금까지는 기업과 금융회사가 함께 위험을 공유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지주회사는 금융회사와 비금융회사를 동시에 보유할 수 없도록 규제해 왔다. 하지만 금산분리가 완화된다면 재벌체제가 더욱 강고해지는 것은 물론 기업의 부실, 금융의 부실이 서로에게 전이될 수 있어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의 동반 위기 폭발의 가능성이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다.

금융시장 활성화와 금융투자기관 대형화를 초래할 자본시장통합법으로 한국에서의 금융화는 한층 더 강화될 것이다. 하지만 미국의 금융위기로 증권시장 중심의 금융세계화가 급격히 붕괴되어 이미 작년 미국의 5대 투자은행이 파산하거나 독자 생존을 포기했고, 자본시장과 투자은행 육성이라는 목표는 무색해진 상황이다. 이러한 시점에서 자본시장통합법은 한국경제의 돌파구가 될 수 있을 것인가? 지속되는 이윤율 하락과 금융거품까지 붕괴하고 있는 상황에서 금융시장 육성으로 한국경제가 독자회생할리는 없다. 이번 경제위기의 시발점이 통제되지 않는 파생상품의 확산으로 형성된 금융거품이었다는 점을 상기해본다면, 오히려 금융시장 육성은 금융위기의 위험도를 더욱 높일 것이다. 자본시장 육성을 통해 금융세계화에 때맞지 않게 편승하는 조치는 한국 경제의 불안정성을 확대하고, 민중의 생존의 위기를 심화시킬 뿐이다.

키워드 ③ : 한-미 통화스왑(SWAP)은 환율불안을 해결할 것인가?

2008년 10월 한국과 미국은 300억 달러 규모의 통화스왑(맞교환) 계약을 체결하였고, 이것이 치솟았던 환율을 크게 하락시키고 1000선을 붕괴시킨 코스피를 급반등시킨 계기가 되었다. 이 계약은 한국에 달러가 부족할 때 한국은행이 미국 연방준비기금(FRB)에 원화를 제공하면 달러를 받고, 계약만기 시에는 다시 빌린 달러를 돌려주고, 원화를 돌려받을 수 있는 것이다. 최대 300억 달러까지 이렇게 하는 것이 가능한데, 미국은 규모 확대까지는 아니더라도 기한 연장은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빌린 달러의 2%에 해당하는 금액을 수수료로 미국에 지불해야 한다. 이명박은 이러한 통화스왑계약을 체결하기 위해 미국 국채 매각 카드로 ‘협박’까지 했다고 하지만, 역으로 말하면 이제 통화스왑으로 인해 미국의 국채를 자연스럽게 매입해야할 상황이 되었다.

미국은 한국을 비롯해 브라질ㆍ멕시코ㆍ싱가포르와 통화스왑을 체결했고, 비슷한 시기 긴급경제구제책으로 쓰이는 7000억 달러 또한 국채 발행으로 해결했다. 이렇게 미국뿐 아니라 다른 국가에서도 달러가 중요시되면서 미국경제가 위기임에도 불구하고 달러강세를 지속시키고 있다. 위기는 당장 지연될 수 있겠지만 이러한 상황은 미국을 중심으로 서로의 배를 쇠사슬로 묶어둔 것과 같이 다 같이 재앙을 맞이하게 될 수 있다.

무엇보다 통화스왑은 환율불안에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외환사정이 호전되려면 현재로서는 그 유일한 길이 경상수지 흑자를 통한 외환확보인데 이에 대한 전망이 별로 밝지 않다. 지금은 1997~98년과는 다른 상황이다. IMF 구제금융 이후에는 원화의 평가절하와 수출 호조가 뒤따랐다. 미국 등 아시아 외 지역경제의 상대적인 안정 속에서 당시 막 붐이 일던 정보기술 제품의 대대적인 수출이 가능하였기에 대규모 무역수지 흑자가 발생한 것이다. 이에 반해 지금은 비록 원화가치가 하락했다 하더라도 다른 나라나 지역의 경제도 부진하여 수출이 크게 늘지 않거나 오히려 줄어들어 무역수지 흑자 규모가 얼마 되지 않을 것이다.


4. 무엇을 할 것인가?

한국정부와 자본은 한미 FTA 체결과 자본시장통합법 시행 등을 통해, 금융규제를 점차 완화가고 금융세계화로의 편입을 강행하고 있다. 한국경제는 더더욱 미국계 초민족적 금융자본에 종속되고, 해외 투자자들이 한국에서 자본을 유출시키면 환율이 급등하고 한국경제는 극도로 불안정해지는 상황에 처하게 될 것이다. 게다가 미국발 금융위기가 중첩되어 한국경제는 더욱 위험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금융위기로 인한 투자손실은 물론이고, 미국의 경기침체로 인해 무역적자가 증가하면서 외환위기가 재발할 가능성도 증가하고 있다. 이런 우울한 전망은 금융위기의 초반임에도 불구하고 벌써부터 한국경제는 벌써 환율인상ㆍ물가인상ㆍ신용경색ㆍ주식시장 하락ㆍ금리인상 등 심각한 상황에 놓여 있다. 본격적으로 경제위기가 발생하면 자본이탈ㆍ거대자본 파산 역시 예상할 수 있고, 이는 실물경제 전 부분에 걸친 고용불안과 임금 삭감으로 민중들을 고통스럽게 만들 것이다. 이미 IMF 때 우리는 ‘환란(患亂)’을 경험하지 않았던가?

주류 경제학자나 경제전문가들이 금융선진화를 이야기하며 미국경제로의 긴밀한 통합을 이야기하고 있는 현재, 이런 상황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혹자는 박정희 정권 시절과 같이 국가 중심의 경제정책을 실시하고, 이를 통해 실물(산업)자본을 키우는 것이 현재 필요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박정희 정권의 경제정책 역시 미국 중심의 세계 자본주의와의 긴밀한 연관 속에 가능한 것이었고, 이 시기에 만들어진 유산이 현재 위기의 원인이 되고 있기도 하다. 또한 이미 경제구조가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에 긴밀히 편입되어 있는 상황에서, ‘정부의 의지’만으로 상황을 역전시킨다는 것은 전혀 가능하지 않다. 한편 세계최강대국이 미국이 아닌 중국으로 이전될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 경제에 편입하는 것이 대안이라는 의견 역시 제시되고 있다. 2008년 7월말 현재 중국의 미국 재무부 증권 보유액은 5187억 달러로 외국인 보유액의 20%를 차지하고 있고, 2007년 말 미국의 대 중국 무역적자는 2562억 달러 수준이었다. 하지만 중국 금융이 양적인 면에서 크게 확대되었다고 하더라도, 이는 오히려 중국이 강하게 미국경제의 운명에 맞물려 있음을 보여주는 지표이다. 그것은 중국의 외환보유고의 상당부분이 대미 수출 시장 팽창에 의존하고, 이는 다시 미국 소비시장 팽창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경제 역시 다른 동아시아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미국의 경제 위기 부담을 계속 넘겨받으며 미국 경제를 지탱하고 있다. 따라서 중국의 성장은 새로운 최강대국이 형성되는 과정이 아니라, 그 양적인 팽창에도 불구하고 내부적으로는 매우 취약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미국경제와 긴밀하게 연관되어왔던 한국경제는, 현재 금융위기 속에서 ‘감기’를 넘어 ‘몸살’, ‘중병’에 걸릴 지경이다. 한미 FTA에 반대하고 미국에 반대한다는 목소리는, 사람들이 이야기하듯이 단순히 ‘반미감정’에 호소하는 일부 ‘반미세력’들의 이야기는 아니다. 현재 국가가 민중들의 삶을 책임지고 있지 못한 상황에서, 한미 FTA에 반대하고 미국에 반대한다는 목소리는 불안정한 금융세계화에 몸을 내맡기지 않겠다는 생존의 목소리이다. 현재 우리는 이런 목소리를 높여 나가며 한국과 미국의 부정적 관계를 끊어낼 방법을 찾아야 한다. 현재의 메커니즘이 만들어진 정확한 이유에 대해서 분석을 해야 하며, 근본적으로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를 넘어설 대안을 찾아야 한다. 이것이 현재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의 시작이다!

Posted by 행진

2009/03/11 13:51 2009/03/11 13:51

Trackback URL : 이 글에는 트랙백을 보낼 수 없습니다

[선특호]2009 학생회선거 총론


 2009 학생회선거 총론



프롤로그 : 2008년을 돌아보다

# 2MB 정권 첫 해

경제성장이라는 부푼 꿈을 안고 이명박 정권이 출범했다. 인수위 시절부터 한반도 대운하와 영어 몰입교육으로 시끄러웠지만, 경제성장이라는 대의 앞에 이명박은 굴하지 않았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사태로 인한 위기는 전 세계로 확산됐다. 갈 곳 잃은 투기자본이 몰린 덕에 곡물가와 유가는 폭등했다. 한국도 이를 비껴나지는 못했다. 라면, 우유, 과자 등의 가격이 폭등하는 것을 시작으로, 민중들은 경제위기의 한파를 온몸으로 느꼈다. 그럼에도 경제 대통령 이명박은 여전히 장밋빛 미래를 포기하지 않았고, 당초의 경제성장률 목표를 7%에서 6%로 낙관적으로 다잡았다. 서민경제를 위해 물가를 잡겠다며 50여 개의 생필품 관리품목을 발표했지만, 한편으로는 공기업 민영화와 학교 자율화, 의료보험 민영화, 금산분리법 완화 등의 정책을 추진했다. 이는 이명박 정부의 ‘경제성장’이 ‘비지니스 프렌들리’라는 기조대로 기업과 자본을 위한 것이지, 민중들을 위한 것이 아님을 명확하게 보여줬다.

이랜드, 기륭, 코스콤 등 더 이상 물러설 곳도 없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은 계속됐지만, 이명박은 탄압과 폭력으로 답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절박한 심정으로 세운 천막은 공권력에 의해 수시로 철거당했고, 故이철복 열사는 사측의 구타로 사망했고, 비인간적인 단속에 쫓기던 이주노동자는 두 다리가 부러졌다.

그렇게 민중들을 내몰았지만, 애초에 그/녀들의 탓이 아니었기에 경제위기는 극복될 수 없었다. 이명박 정권은 어떻게 해서든 활로를 뚫어야 했다. 한-미 FTA를 조속히 추진하기 위해, 국민들의 건강과 안전을 팔아 넘기는 협상을 감행한다. ‘광우병위험통제국’인 미국에서 연령 제한을 풀고, 뼈까지 포함하여 쇠고기가 수입된다.

 

# 뿔난 시민들, 광장에서 촛불을 들다

청계천에 촛불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소라 광장에는 급식으로 나올 미국산 쇠고기를 먹기 싫다는 여중생, 정부의 정책 때문에 아침밥도 못 먹고 0교시부터 야자까지 학교에서 답답해하던 여고생, 치솟는 등록금과 실업률에 불안한 대학생, 광우병에 불안하고 의료민영화에 더 불안한 노동자, 도무지 서민을 염두에 두지 않는 2MB가 원망스러운 자영업자들이 모였다.

정부는 ‘광우병은 괴담’이라고 일축했고, 뿔난 국민들은 ‘끝장을 보자’며 계속해서 거리로 뛰쳐나왔다. 광장에 뛰쳐나온 시민들의 목소리가 너무나 많아서 잘 들리지 않았는지, 정부는 ‘배후세력이 있다.’ ‘광우병이 발생하면 수입을 중단하겠다.’는 동문서답만을 내놓았다.

보름이 넘게 광장에서 촛불이 타올랐지만, 정부는 꿈쩍하지 않았고, 마침내 촛불들은 이명박을 만나야겠다고 폴리스라인을 벗어나 거리로 나섰다. 정부는 본질을 드러냈다. 시민들에게 물대포, 곤봉이 날아왔다. 촛불은 급속도로 번졌다. 대학생, 주부, 종교인, 노동자들이 합세했고 ‘대운하 반대’ ‘의료 민영화 반대’ 등 보다 많은 구호들이 광장에서 거리에서 울려 퍼졌다. 촛불은 꺼지지 않고 계속 타올라, 100회가 넘게 계속되었다. 정부는 물산업지원법 입법 예고를 유보하는 등 시장화/사유화 조치들에 일정 제동을 건 것처럼 보였다.

 

# 2MB의 반격

이명박은 ‘아침이슬’을 들으며 어떻게 촛불을 흩뜨리고 자신의 계획을 추진할 것인지 생각했던 것 같다. 정부의 정책 방향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공기업 선진화’라고 이름을 바꿔 사유화/시장화 계획을 진행하고, 비정규악법을 확대 시행하고, 한미 FTA 비준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공정택의 당선에 힘입어 일제고사, 국제중 설립, 자립형 사립고 등의 교육 정책도 추진되었고, 경기활성화를 위해 부동산에 대한 규제가 풀렸다.

그와 동시에 촛불들에 대한 대대적인 ‘반격’이 시작되었다. ‘사회주의노동자연합(사노련)’의 사무실, 자택을 압수․수색하고, 참여연대, 환경연합의 압수․수색에 이어 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 간부를 국보법 위반으로 구속했다. 언론 통제․장악이라는 비난에도 불구하고 PD수첩에 대한 수사가 이뤄지고, KBS 사장 임명에 반대했던 직원들은 좌천되었다. YTN도 마찬가지이다. 시위대 진압을 위한 캡사이신 분사기가 보급되어 사실상 최루액이 부활했다는 논란이 일어났다. 한나라당은 집단소송제와 사이버모욕죄를 신설하였다.

 

# 불안에 잠식당한 시대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파생상품의 그물망을 타고 세계 곳곳으로 퍼져나가고 있다. 미국 정부는 7000억 달러를 투입하여 사태를 진정시키려 하고 있으나, 꼬리에 꼬리를 문 파생상품들 덕에 피해 금액이 산출조차 되지 않는 상황이다. 실물경제에까지 영향을 미치면서 미국에서는 정리해고 바람이 분다고 한다. 코스피 지수가 1000을 붕괴하고, 개미투자자들은 엄청난 손해를 보았다. 옆집 누구네 펀드가 반토막 났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환율과 코스피는 한때 만났다가 점점 멀어지고 있다. 상황이 이런데, 정부는 계속해서 국민연금을 풀어 주식을 사들이고 있다.

 

# 누가 답을 갖고 있는가?

한 때 이명박은 국내 경제와 증시가 호전될 것이라는 자신의 믿음을 강하게 표현했다. 그러나 금융세계화에 동참하여 경제를 발전시키겠다는 이명박의 구상은 갈수록 불투명해지고 있다. 한나라당 박희태 대표는 "금고와 장롱 속 달러 내놓는 것이 애국"이라면서 IMF때의 사기극을 떠올리게 했고, 한나라당 의원들은 '외화통장 만들기'운동을 제안했다. 한국은행은 금융시장 불안이 국내 경기 둔화를 더 가속시킬 수 있다며 금리 0.75% 포인트를 대폭 인하했지만, 피부로 느껴지는 불안을 없애주지 않는다. 상대적으로 안전하다는 CMA, 미국에 맞설 수 있는 경제권이라는 브릭스 등이 거론되고 있지만, 그 나물에 그 밥이다.

국민들이 경제위기에 허덕이는 사이에 진행된 국정감사는 더 큰 환멸을 안겨주었다. 한 해 열심히 씨 뿌리고 농산물을 기르는 농민들에게 돌아가야 할 쌀 직불금이 고위공직자와 부동산업자들에게 돌아갔다고 한다. IMF 이후 10년 동안 신자유주의 개혁에 앞장섰던 자들이 이명박과 다른 양 거드름을 피우고 있고, 이명박 뒤에 줄 서 있는 자들은 ‘잃어버린 10년을 되찾겠다’면서 정말로 시계를 10녀 뒤로 돌리는 것 같다.

지금, 그 누구도 현 시기를 극복할 수 있는 대답을 가지고 있지 않다. 정부와 언론이 내놓는 대책은 변죽만 울릴 뿐이다. 어느 정치인이, 어느 경제학자가 답을 내려줄 것을 기대하며, 불안한 미래에 나의 오늘을 내맡길 순 없다.


. 2008년 금융위기는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가? 극복할 수 있는가?
 
1. 2008년 금융위기는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가? 극복할 수 있는가?
 
2. 2008년, 우리는 촛불을 어떻게 기억하는가
  3. 미래는 오직 현실을 직시하는 우리에게 달려있다

. 실천전략
 
1. 2009년 금융위기에 대해 집단적으로 분석, 토론하는 학생회를 건설하자!
     - 경제위기의 원인이 무엇인지 알자!

  2. 각종 분할에 맞서 '연대'로 생동하는 학생회를 건설하자!
     - 금융화를 떠받치는 교육을 비판하고, 민중의 지식권을 쟁취하자!
     - 끝없이 불안한 미래, 불안정노동과 빈곤에 맞서자!
     - 여성인력활용전략의 허구성을 밝히고 진짜 페미니즘을 발언하자!

  3. 진정한 민주주의에 한 걸음 다가가는 학생회!

[한대련 비판]: 다극화 시대 경제블록 형성, 남북경협은 탈출구가 될 수 있는가?

 

>>글 전문을 보시려면 첨부파일을 다운로드 받으세요.

Posted by 행진

2008/10/30 18:26 2008/10/30 18:26
, , ,
Response
받은 트랙백이 없고 , 댓글이 없습니다.
RSS :
http://stulink.jinbo.net/blog/rss/response/139

Trackback URL : 이 글에는 트랙백을 보낼 수 없습니다

[교육분석] 금융위기는 어디에서 도래했는가?



한 시기가 마무리되려 하고 있다. 신호는 몇 년 전부터 있어 왔지만, 최근의 경보음은 그 어느 때보다 컸다. 80년 남짓한 미국 헤게모니의 끝자락에 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이전보다는 훨씬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 미 정부의 7000억 달러라는 공적자금 투입을 골자로 한 구제금융안이 현실화되면 위기가 봉합될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지만, 아무도 그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진 않다. 이러한 사상 초유의 위기는 도대체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는가? 


1. 신자유주의의 도래

신자유주의는 전후 세계를 지배한 경제 정책이었던 케인스주의와 그를 뒷받침하는 브레튼우즈 체제가 해체되면서부터 등장한다. 1929년 미국 증시를 폭락시키고 이후 대공황을 불러온 금융자본을 억압하기 위해 미국은 1933년 글래스-스티걸 법을 제정하여 은행, 증권, 보험 등 금융업종간의 칸막이를 쳤다. 특히 고객 예금을 가진 상업은행이 위험이 큰 투자은행의 업무를 하지 못하게 한 것이 핵심이다. 또한 세계2차대전 이후에 케인스주의는 저금리와 완만한 인플레이션을 통해 금융의 이익을 축소하고, 금융자본의 국제 이동을 막았다. 산업자본으로의 투자와 소비를 촉진하기 위한 재정적자 정책 또한 이루어졌다. 세계적인 화폐제도로는 금-달러 본위제와 고정환율제가 유지되었는데, 이를 약속한 것이 1944년의 브레튼우즈 협정이다.
금융 억압, 부채경제를 특징으로 한 케인스주의 정책이 효과를 낼 수 있었던 것은 미국의 법인자본주의가 이윤율을 회복하고, 호황기에 있었던 시기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그러나 이윤율은 1965년에 정점을 도달, 이후 점차 하락하기 시작한다. 설상가상으로 마셜플랜과 한국 · 베트남 전쟁으로 인해 달러를 마구 찍어낸 결과, 스스로 약속했던 금-달러 본위제 (35달러를 금1온스로 바꾸어주겠다는 약속)를 지키지 못하고 1971년 미국 대통령 닉슨은 금창구를 폐쇄한다.

번영의 시대에 기여했던 원칙인 케인스주의가 70년대의 위기를 막아내지 못하자 이전부터 케인스주의를 비판해왔던, 금융자본을 뒷받침하는 이론들이 힘을 얻는다. 금융자본은 헤게모니를 다시 찾아오려 한 것은 물론이다. 결국 1979년, ‘불의의 일격’ 또는 ‘볼커의 반혁명’ 이라 불리는 사상최대의 금리인상이 이루어진다. 그리고 금리 인상으로 찾아온 금융 자본의 이익 뒤에는 남미의 외채위기를 시작으로 한, 무수히 많은 사람들의 생존을 위협하는 위기가 뒤따라 왔다.

1980년 글래스-스티걸 법에도 변화가 오고, 규제는 점점 완화된다. 투자은행들은 막대한 차입자금을 첨단 금융상품에 투자해 천문학적 수익을 거뒀고, 이들이 벌어들인 돈은 세계화폐로서의 달러의 지위를 지탱해주었다. 미국 내에서도 위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어서 간간이 규제 강화 목소리가 제기됐으나 이내 묻히고 말았다. 90년대 클린턴 대통령은 금융 규제를 더 풀었다. 유럽의 은행 겸업화 추세에 뒤쳐지고 있다는 비판에 99년 '그램 리치 브릴리'법을 만들어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을 일부 겸업하도록 허용했다. 금융자본은 점점 더 세계 곳곳에 깊숙이 침투해갔다. 



2. 파생금융상품

글래스-스티걸 법에 변화가 오기도 전에, 브레튼 우즈 체제가 붕괴하고 고정환율제에서 변동환율제로 국제화폐제도가 변하자 ‘파생금융상품’ 이라는 것이 등장했다. 파생금융상품은 말 그대로 외환·예금·채권·주식 등과 같은 기초자산으로부터 파생된 금융상품을 말한다. 변동환율제로 전환되면서 불안정성이 심화되자 환차손(환율의 변동으로 인하여 발생하는 손해. 환율이 오르면 수입 회사가 손해를 보고, 환율이 내리면 수출 회사가 손해를 입는다.)을 피하기 위하여 1972년 미국에서 처음 도입되었다.

파생금융상품은 그 종류도 매우 많을뿐더러, 대표적인 상품인 선물(future)·옵션(option)·스왑(swap) 등이 있는데, 이들 파생상품을 대상으로 하는 선물 옵션, 스왑 선물, 스왑 옵션 등 2차 파생상품, 또 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3차 파생상품 등, 말 그대로 계속 파생되는 것이 그 특징이다. 모든 파생금융상품을 다룰 수도 없으니, 최근의 위기를 파악하는데 필요한 파생금융상품에 대해 간단히 보도록 하자. 여기에서는 ‘신용파생상품(CDS와 CDO)’과 ‘옵션’ 대해서 보면서 위기를 추적해 보겠다.


- 신용 파생상품

신용 파생상품(credit derivatives)은 점점 더 복잡해진 금융 퍼즐의 마지막 조각이며, 미국발 위기의 뇌관이었다고 이야기 되고 있다. 신용 파생상품은 본질적으로 대출에 대한 보험처럼 특정 기업의 신용도에 배팅을 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두 가지 기본형이 있는데, 바로 신용디폴트 스왑(CDS; Credit Default Swap)과 부채담보부 증권(CDO; Collateralized Debt Obligation)이다.

먼저 CDO에 대해 보자. 표준적인 CDO는 은행 등 금융회사가 특별목적회사에 대출이나 채권 등 채권증서를 팔고, 특별목적회사는 그것을 쪼갠 뒤 각 조각들과 연계된 증권을 발행하는 방식을 취한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연쇄구조를 파악하려면 이 합성 CDO가 무엇인지에 대해 알면 된다. 메릴린치나 리먼 브라더스, 베어스턴스 등의 투자은행들과 시티그룹, BoA 등 거대 상업은행의 투자은행 자회사들은 주택융자 전문회사나 저축금융기관, 상업은행 등으로부터 주택융자를 사들여 그것을 새로운 증권인 MBS(주택담보증권)로 전환시켰다.

이를 부동산의 ’증권화’ (securitization, 채권과 부동산 등을 담보로 새로운 증권을 발행하는 것)라고 부른다. 투자은행들이 증권화과정에서 막대한 수수료 수입을 챙겼음은 물론이다. 앞서 말했지만 파생상품은 2,3차로 파생되는 것이 특징이다. 증권화 과정 또한 같은 길을 걷는다. 투자은행들은 1차 증권화 과정에서 발행된 MBS에 카드론, 자동차론, 기업대출, 대학생 학자금론 등을 담보로 발행된 다른 증권을 혼합하여 새로 합성 CDO를 만든다.

1970년대부터 현대 금융시장의 발전 속도를 따라잡기를 포기한 규제당국은 금융회사들이 어떤 증권을 사거나 팔 수 있는지에 대해 일일이 결정을 내리고 그런 결정을 규정화하는 대신 ‘신용등급에 의존하는 법규’를 만들었는데, 구체적인 결정을 내리는 일을 신용평가회사들에게 넘긴 것이다. 이렇게 권력을 넘겨받은 무디스, 스탠더드앤푸어스 등의 국제 신용평가회사는 CDO의 조각들을 고평가해 주었다.

그러나 CDO의 가치를 평가하는 데 쓰인 컴퓨터 모델은 그 바탕이 되는 부채보다 CDO의 조각들을 더 높게 평가하는 것을 복잡한 방식으로 정당화하는 것일 뿐이며, 이런 컴퓨터 모델들 대부분은 사실 CDO거래를 하는 은행들 스스로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미국에서 어느 신용평가회사 직원이 이런 모델의 세부적인 내막을 알게 되면, CDO 거래를 하는 은행이 많은 돈을 주고 그를 스카우트 해갔다. 그래도 신용평가회사들은 자신들이 돈을 버는데 방해받지 않으니 이러한 부분에 대해 전혀 손을 댈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이제 CDS에 대해서 보자. 가장 단순한 형태의 CDS는 대출과 보험을 결합시킨 것으로, 예를 들어 A은행이 B회사에 제공한 대출을 놓고 미국의 투자은행‘C’와 일본의 보험회사‘D'가 CDS 계약을 체결할 수 있다. 이러한 거래에서 보험회사 D는 B회사가 채무불이행(디폴트) 하지 않는 이상 돈을 벌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A은행에 대해 돈을 빌려준 것과 비슷한 위치에 설 수 있다. CDS는 결국 특정 기업이 채무를 불이행할 것인지 아닐 것인지에 대한 여부를 놓고 배팅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당연히도 배팅에서 이긴 쪽이 돈을 지불하게 된다. 은행들은 이런 CDS를 통해 자신들이 기업들에게 빌려준 돈을 되돌려 받지 못할 위험, 즉 신용위험을 외부로 이전시킨다. 은행들은 어느 기업이 채무를 불이행할 경우 해당 대출금을 제3자로부터 지불받을 수 있다. 보험회사인 AIG가 긴급구제 조치를 받을 정도로 급격히 상황이 안 좋아진 것은 이 CDS라는 파생상품에 투자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CDO와 CDS는 밀접한 관계에 있는데, 이는 금융혁신으로 인해 등장한 합성 CDO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일반적인 CDO와 다른 점은 금융회사가 특별목적회사에 파는 것이 대출이나 채권이 아니라 바로 앞서 설명한 CDS라는 점이다.

이렇게 되면 특별목적회사의 자산은 CDS가 된다. 이렇게 되자 합성 CDO의 근거가 되는 채권을 갖고 있는 기업은 합성 CDO라는 게 만들어졌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특별목적회사의 투자자들은 물론 그 모기업 격인 금융회사도 합성 CDO의 근거가 되는 대출이나 채권을 만져볼 일이 없다.

2000년 이후 주택경기 호황으로 인해 시작된 주택담보대출 - 주택담보증권(MBS) - CDO로 이어지는 파생상품의 연쇄구조는 대출자들이 착실하게 빚을 갚는 구조라면 문제없지만 어느 한 고리에 문제가 발생하면 전체가 위험에 빠지게 된다. 고금리로의 전환과 주택경기의 악화로 대출자들이 빚을 갚을 수 없게 되면서 담보대출로 시작된 파생금융상품 전체가 연쇄적으로 부실해지는 결과를 낳은 것이 바로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다. 신용등급이 가장 낮은 (서브 프라임) 대출자들이 주택을 담보로 해서 돈을 빌리고, 부채의 증권화 → 주택담보부증권(= MBS) 발행 → MBS와 다른 채권을 섞은 CDO 발행. 이 연쇄구조가 주택가격 하락과 금리 인상으로 인해 채무 불이행 급증 → MBS 시장 붕괴 → CDO 시장 붕괴 → 국책 모기지 회사 위기 → 대형 금융기관 파산 → 헤지펀드 손실의 순서로 무너지게 된 것이다.

이 글에서 우리는 몇 가지 예만을 들어 아주 쉽게 설명했다. 파생금융상품 시장은 이보다 훨씬 복잡하게 얽혀 있으며 금융혁신으로 인해 몇 단계에 걸쳐 금융상품이 파생되었기 때문에 CDO에 투자한 투자자들은 이 증권이 처음에 무엇을 가지고 만들어졌는지 알 수 없다. 이러한 그물망은 또한 전 세계에 퍼져 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도 지금의 위기의 시발점이 된 MBS가 어디에 숨어있는지 찾아낼 수가 없고, 따라서 이 위기가 어디까지 영향을 미칠 것인지 정확히 예측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 옵션

옵션이란 미래의 어느 시점에 어떤 물건을 사거나 팔 수 있는 권리를 가리킨다. 살 수 있는 권리를 콜 옵션, 팔 수 있는 권리를 풋 옵션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우리가 한 달 뒤에 일본으로 여행을 갈 계획을 갖고 있다고 해보자. 한 달 뒤의 엔화 가치가 지금보다 떨어진다면 같은 돈으로 더 많은 엔화를 환전해 받을 수 있기 때문에 평상시 꿈꾸어왔던 값비싼 스시를 먹으러 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엔화의 가치가 상승한다면 그런 꿈을 접고, 편의점에서 도시락을 사먹는 것으로 만족해야 할 것이다.

이처럼 엔화의 가치가 상승할 가능성에 대비하기 위해 오늘부터 한 달 뒤에 미리 정해진 환율로 엔화를 살 수 있는 권리를 누군가로부터 사둘 수 있다. 예를 들어 오늘의 환율이 100엔당 1000원이라고 한다면, 한 달 뒤에도 이 환율로 환전할 수 있는 권리를 오늘 사두는 것이다. 다만 이런 환전의 권리를 사려면 그 대가로 ‘프리미엄’ 이라고 불리는 수수료를 외환 브로커에서 지급해야 한다. 여기까지 했다면 그것은 바로 ‘엔 콜 옵션’ 을 매입한 것이다.

엔 콜 옵션은 환율 변동에 따른 손실을 막아준다는 점에서 보험계약과 같다고 보면 된다. 만약 한 달 뒤에 100엔당 900원으로 엔화의 가치가 떨어진다면 굳이 엔 콜 옵션을 사용할 필요는 없다. 언제 콜 옵션을 행사할지는 매입자가 스스로 선택하면 된다. 사용하지 않을 경우 콜 옵션은 만기가 되어 사라진다. 반대로 100엔당 1100원으로 엔화가치가 상승했을 땐 콜 옵션을 사용하는 것이 유리하다. 그러나 실제로 이러한 콜 옵션에 붙는 수수료는 매우 높기 때문에, 앞서 예를 들었던 것처럼 외국 여행을 위해 콜 옵션을 사 두지는 않으며, 훨씬 큰 금액을 거래하는 대형 은행이나 기업들이 주로 활용한다. 통화옵션에서 가장 중요한 변수는 통화의 변동성이다. 그리고 투기 자본은 이러한 변동성을 예측하여 베팅을 한다. 예를 들어 누군가 최근 심각한 한국의 원-달러 환율의 폭등을 예상하여 달러 콜 옵션을 사두었다면, 엄청난 이익을 챙길 수 있는 것이다.

통화옵션에 대해 자세히 본 이유는, 최근 남한에서 ‘키코(KIKO)’ 라는 환헤지(환위험 회피용) 통화옵션상품에 중소기업들이 대거 가입했다가 흑자도산을 하는 등의 일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키코는 수출기업을 대상으로 환율이 미리 정한 상한선과 하한선 사이에 움직일 경우 약정 금액을 약정 환율로 팔 수 있는 권리를 주는 통화옵션상품이다. 예를 들어 A라는 수출회사가 키코 약정을 달러당 1000원~1050원에 했을 경우, 계약한 달러 가격 내에서 환율이 하락하면 기업에 이익이 발생한다. 왜냐하면 달러당 1050원에서 1000원으로 환율이 하락했을 경우에도, 여전히 달러당 1050원으로 교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다면, 10억 달러를 수출하여 이를 원으로 바꾸었을 때 500억원의 이익이 발생한다. 만약 달러당 1000원보다 환율이 하락한다면 계약해지가 된다. 문제는 1050원 이상으로 환율이 올라갈 경우인데, 이럴 때 기업은 계약한 금액 내에서 은행에 달러를 팔아야만 한다. 예를 들어 환율이 1100원으로 오르면, 10억 달러를 수출한 기업은 500억원의 손해를 보게 되는 것이다.

기업들이 키코를 구입했을 때는 세계적인 달러 약세일 때라, 환율이 하락할 것이라 예상하고 있었다. 그러나 미국발 금융위기로 외국인들이 주식을 매도하고 달러를 차입하기 어려워지면서 환율은 급등했다. LCD의 광원장치인 밸라이트유닛(BLU)을 제조하는 태산LCD라는 기업은 연 매출 6000억 원을 기록했던 중소기업이었으나, 회생신청서를 내게 되었다. 대다수 기업들은 은행이 투자위험성을 제대로 알리지 않았고, 약관 자체가 불공정(계약환율 상한선 돌파시에는 2,3배를 물어야 한다.)했다고 이야기하며 구제를 요청했고, 정부의 선별 구제책이 논란이 되고 있는 상황이다. 키코로 인한 기업의 손실액은 1조 7천억원에 달하며, 이익은 외국계은행이 60%정도를 가져갔다고 한다. 이런 방식으로 파생금융상품은 실물경제까지 뒤흔들고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3. 위기에 대처하는 저들의 자세

위기의 시발점이 된 미국은 7000억 달러라는 사상초유의 공적자금을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시민들의 반발, 민주당과 공화당 의원 모두와 대선 주자들의 비판을 받았지만 결국 정부와 의회는 28일 구제금융안에 잠정합의했다. 이로써 미 행정부는 앞으로 2년간 7000억 달러로 금융회사를 사들이게 된다. 이는 지난해 미국 GDP의 5%를 차지하는 것이지만 (이미 올 들어 미 정부는 베어스턴스의 JP모건체이스 피인수 중재과정에서 290억 달러, 양대 국책 모기지업체인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의 국유화 과정에서 2000억 달러의 구제금융을 제공했고, 16일 AIG에도 850억 달러의 구제금융을 실시했다.) 이 금액으로도 위기를 벗어날 수 있을지는 아무도 장담하지 못한다.

어쨌든 이미 AIG는 지분의 79.9%를 미국 정부가 인수하여 거의 국유화를 하는 것과 다름이 없어졌고 투자은행 빅5 중 살아남은 골드만삭스와 모건스탠리는 은행지주회사로 전환하게 되었다. 은행지주회사가 되면 상업은행을 인수할 수 있게 되어 예금을 자금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되고, 대신 이전보다 훨씬 엄격한 규제를 받게 된다.

미국뿐만이 아니다. 전 세계 금융시장이 촘촘히 엮여 있기 때문에 한 곳에서 부실이 터지면 다른 나라로 전파되게 마련인 현 세계 경제의 상황에서, 선진국들은 미국의 위기를 막기 위한 다양한 정책 공조에 나선다. 유럽은행 역시 달러공급을 늘리는 등의 조치를 계속 취하고 있다. 미국이 금융자본에 대한 규제를 강화할 수밖에 없게 되자 유럽 각국도 ‘이제 와서’ 글로벌 규제강화를 지지하기 시작했다.

너도 나도 이야기하는 ‘규제 강화’ 는 앞서 말했지만 금융위기가 발생할 때마다 미국 내에서도 강조되어 왔던 것이며, 실은 지금 미국도 정부가 기업을 살리려고 개입하고 있지, 월가의 탐욕을 막기 위한 처벌과 금지 조항을 차근차근 마련하는 것은 뒷전이다. 또한 규제를 한다고 해서 하락하고 있는 이윤율이 반등할리 만무하고, 당연히 불황이 극복되고 호황이 올 리도 없다. 구제금융과 규제강화는 대안도 무엇도 아니다. 위기를 심화시키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규제바람이 분다.’ 거나 ‘규제가 대안이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설상가상, 우리는 이들을 비판하기에도 바쁜데 이러한 최소한의 조치가 왜 취해지고 있는지도 파악하지 못한 채 엉뚱한 소리를 계속 하고 있는 정부와 금융기관들이 있는 나라도 있다. 바로 한국이다.

한국의 지배계급은 ‘위기는 기회다!’ 라고 얘기하면서 자신들이 이전에 주장했던 내용을 번복하면서까지 금융화의 길을 계속 가야한다고 외치고 있다.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신청으로 금융위기가 확산된 지난 16일부터 나흘간만 이미 국내의 주식과 펀드 손실액이 20조가 훌쩍 넘었으며, 국민연금의 2조가 넘는 투자손실도 시민들을 불안하게 하고 있는데, 대통령은 펀드를 사겠다고 하고, 은행에는 ‘주가가 내리는 지금, 주식투자를 하셔야 합니다.’라는 식의 플래카드가 걸려있다.

바로 엊그제만 해도 노동자들의 파업과 촛불집회 등 그 어떤 저항도 외국인 투자자들 유치가 안 된다며 막았던 정부는 위기로 인해 금융시장에서 외국인 투자자 비율이 줄어들고 있으므로 바람직하다고 하고, 금산분리 완화 방안 등 금융규제 완화책을 강행하겠다고 하고 있다. 마음 같아서는 실컷 비웃어주고 넘어가고 싶지만, 이들의 이러한 결정이 또 많은 이들을 절망으로 빠져들게 할 것이다.

 
4. 1930년대가 시사하는 바

 

… ‘허리띠를 더 졸라매시오’ 라는 것이 무책임한 각국 정부 대변인들이 국민에게 하는 충고였다. 그러나 지구 전역의 실업자 수가 4천만 명에 이르게 되자. 그러한 통계 작업도 중단되어 버렸다. 그들은 지금의 사태가 단지 과잉생산의 결과일 뿐이라 말했지만, 그 어디에서도 민중들은 아무것도 갖고 있지 못했다.

세계 전역이 이해하기 어려운 모순 덩어리였다. 수백만의 사람들이 제대로 입지 못한 채 헐벗고 있었지만, 미국에서는 목화밭들을 뒤엎어버렸고, 수천만의 삶들이 굶주리고 있었지만, 캐나다에서는 수확한 밀을 태워버렸다. 길모퉁이에서마다 사람들이 커피 한잔을 마시기 위해 동전 한 닢을 구걸하고 있었지만, 브라질에서는 생산된 커피를 바다에다 무더기로 쓸어 넣었다. 몬트리올의 노동자 거주 지역에서는 어린이들이 구루병으로 앙가발이가 되고 있었지만, 남부에선 오렌지들을 짓밟아버렸다…

- 『닥터 노먼 베쑨』 중, 1930년대 초반 대공황의 상황에서

 

리먼 브라더스가 무너지자마자 많은 금융 전문가와 경제학자들은 1930년대를 돌아보았다. 19세기 말에서 대공황까지의 기간은 당시에 막 탄생한 현대금융이 헤게모니를 쥐었던 시기이다. 당시의 대공황과 지금을 비교하는 것은 무서운 일이고, 이런 파국의 가능성은 농담일 수도 있다. 우리가 잠시 숨을 고르고 잠깐 1930년대를 돌아보고자 하는 이유는 당연히 어떤 이들처럼 자본주의의 수명을 연장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며, 자본주의를 비판해 온 사람들로서 자본주의의 몰락을 비웃기 위함도 아니다. 우리는 진지하게 위기를 사고해야 한다. 어쨌든 위기는 많은 사람들의 생존을 위협할 것이기 때문이다.

대공황은, 여전히 생산시스템에서 중요하지만 후진적인 부분에 잠재되어 있던 위협과 통제되지 않는 화폐금융 시스템이라는 두 요소의 영향이 누적된 결과였다. 1929년의 경기침체는 이와 같은 과정을 거쳐 불황으로 발전했다. 모든 것은 1929년 중반 보통의 경기침체에서 시작되었다. 산업생산은 1929년 2월에 정점에 달했지만 9월에는 26퍼센트가 하락했다. 엄청나게 폭등했던 주식시장은 10월에 폭락했다. 중앙은행과 은행시스템이 주식 투자자를 구제하러 나섰고, 이전의 패닉에서 그랬던 것처럼 주가는 신속히 안정되었다. 주식시장의 위기가 경기침체나 불황을 촉발한 것은 아니었다. 1930년 초에는 경제활동이 더 이상 하락하지 않고 안정되는 듯했지만 회복되지는 않았다. 1932년 초 위기가 더 심각해졌고 1933년에는 기업이 파산하고 물가가 폭락하며 은행위기가 닥쳐왔다. 경제는 여전히 신용을 필요로 했지만 대출금 상환의 중지로 인해 은행 시스템은 신용창출의 역할을 거의 포기했다. 은행들은 대신 별로 수익이 높지 않지만 덜 위험했던 정부채권의 보유를 선호했다. 1933년 초반 이후 은행위기, 즉 은행들의 파산이 심각해졌다. 루스벨트는 후버에게서 정권을 넘겨받던 바로 그날 밤, 전국적인 차원에서 은행 시스템을 폐쇄한다고 발표했다. 이것이 뉴딜 정책의 시발점이다. 같은 해 글래스-스티걸 법이 제정되었다는 것은 앞서 이야기 했다.

대공황은 방지될 수 있었을까 아니면 필연적이었을까? 다른 정책들이 파국을 막을 수 있었을까? 이러한 질문은 또 여러 가지 문제를 제기한다.

먼저 언제가 적극적인 경제개입을 위해 최선의 시기였는지 질문할 수 있다. 위기가 처음 시작된 1932년이었을까? 과열된 경제가 임박한 불황을 예고하던 1929년이었을까? 중앙은행이 만들어지고 그 임무가 확정된 1913년이었을까? 화폐금융 메커니즘이 급성장하던 20세기 초반이었을까,. 아니면 미국경제의 이중성이 나타나기 시작하던 19세기 말이었을까?

또한 우리는 역사를 다시 쓰는 과정에서 제도들을 개혁하는 데까지 나가도 되는 것일까, 아니면 제도적인 틀은 놔두고 대안의 정책만을 생각해보는 정도에서 그쳐야 하는 것일까? 를 질문할 수 있다. 우리는 반드시 당시 미국의 통화시스템 안에서, 그리고 그것이 갖고 있던 문제점들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것은 확실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했던 것이 분명하며 이는 곧 제도에 대해 재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당시의 위기는 경제정책의 실수로 인한 것이 아니다. 위기는 이윤율의 하락 때문에 일어났다. 그렇다고 해서 당시에 실수가 없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대공황이 경제를 엄청난 위험과 전례 없는 상황에 이르도록 한 데는 몇 가지 요인들이 원인을 제공했다. 화폐금융을 통제할 제도가 늦게 발전한 것은 지배계급의 책임이다. 위기상황에서 지배계급의 경험 부재와 그들의 기득권에 대한 고수는 위기를 더욱 심화시켰다.

앞서 제기한 질문들을 현재에 다시 가져와보자. 위기는 분명 이윤율 하락을 이윤량의 증대로 상쇄하려는 금융화로 인해 일어났다. 그러나 우리는 위기가 가장 파괴적인 방식으로 드러나는 것을 막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미 늦었는가? 아직 늦지 않았는가? 우리는 아주 작은 것만을 변화시킬 수 있는가? 제도와 체제 전반을 바꿀 수 있는가? 지배계급의 책임은 어디에 있는가? 그들의 탐욕을 제어하지 못하고 우리 역시 편승했을 때 다가올 미래의 모습은 무엇인가?

 

5. 위기 해결의 원칙

 

당시의 관료들이 그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 비난하는 것은 무척이나 순진한 일이다. 지배계급은 그런 식으로 변화하지 않는다. 그들은 지식과 사건의 예상에 기초하여 행동하지 않으며 스스로 생각하기에 그들의 이익과 상충되는 행동을 하지 않는다. 오직 폭력적인 위기만이 대전환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 뒤메닐, 레비 《자본의 반격》중

 

30년대의 위기를 겪고도 지배계급은 80년대 남미의 외채위기를, 90년대 동아시아의 외환위기를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바라보았다. 그 때 그 땅에 살던 사람들이 어떤 괴로움을 겪었는지에 대해서는 철저히 무시하면서 말이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이러한 위기가 어떤 땅에서 어떤 이들을 죽음으로까지 내몰았다 하더라도 지배계급의 이익에는 그다지 영향을 미치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했다.

지배계급에게 폭력적인 위기는 피지배계급에게는 더욱 폭력적인 방식으로 드러난다. 지배계급이 지금처럼 위기 이후, 사후적으로 계속 위기를 처리한다면, 자본주의의 경향과 위기, 대혼란, 위기의 종언, 위기의 종언의 위기, 다시 대혼란… 역사는 반복될 것이다. 이러한 역사의 반복을 끊어내기 위해 우리는 지금과는 다른 위기 해결의 원칙을 제시해야 한다.

그것이 다른 국가든, 다른 계급이든 간에 위기를 외부로 이전시키는 것을 방관해서는 안 된다. 중심부 국가들이 제3세계로 위기를 수출하는 것에 대해 문제제기를 해야 한다. 이미 지구의 많은 곳은 야만적인 상황에 처해있다. 이에 대해 중심부 국가들은 최소한의 책임을 져야 하며 이들이 스스로 일어서고자 했을 때 - 그들의 혁명을 막았던 수많은 조치들을 규탄해야 한다.

구조조정과 같은 우리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방식으로 위기를 극복하려 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 그 안에서 여전히 공공적 권리들은 지켜져야 한다. 물, 전기, 가스, 주거권은 우리가 위기를 넘어 미래의 삶을 영유하기 위해 지금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사람들 사이의 유대와 연대의식을 가로막는 방식으로 위기를 해결해서는 안 된다. 여성들이 남성들의 일자리를 위협하는 것이 아니다. 이주노동자들이 정주노동자들의 일자리를 빼앗는 것이 결코 아니다. 노동의 조건을 악화시키고 우리의 생존을 힘들게 하는 것은 자본이며, 이윤 극대화라는 자본주의의 정신이다.

인간사회의 발전의 새로운 대안적 경로를 규정하는 것은 분석만으로는 가능하지 않다. 그것은 완전히 새로운 원칙을 사회화할 때만 가능하다. 앞서 제시한 몇 가지 원칙은 매우 초벌적인 것이다. 우리는 지금부터 이 원칙을 늘리고, 구체화해야 한다.

Posted by 행진

2008/09/30 15:45 2008/09/30 15:45
,
Response
받은 트랙백이 없고 , 댓글 하나가 달렸습니다.
RSS :
http://stulink.jinbo.net/blog/rss/response/132

Trackback URL : 이 글에는 트랙백을 보낼 수 없습니다

Comments List

  1. KM 2008/12/01 08:44 # M/D Reply Permalink

    글 잘 봤습니다. 근데, 한글파일로도- 항상 같이 따라올라오면 좋을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