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이 감동해서 눈물을 흘린다?

허구적인 ‘여행(女幸)’을 넘어 전면적인
‘여성권’을 제기하자

!


  거리로 나가면 오고가는 버스마다 ‘여자를 울려라’는 광고를 누구나 봤을 법 하다. 이는 서울 특별시에서 2007년 7월 부터 추진되었던 “여성이 행복한 서울 만들기 프로젝트”, 줄여서 “여행(女幸)”프로젝트의 광고이다. 지하철 역 광고판을 통해서도 ‘길 등 설치, 보도 블럭 개선, 보육도우미제도’ 등을 적극 홍보하고 있다.
  “여행(女幸)”프로젝트는 도시 생활 전반에 걸친 서울시의 새로운 여성정책명인데, <돌보는 서울․ 일있는 서울․넉넉한 서울․안전한 서울․편리한 서울> 이렇게 다섯 가지 분야에서 각각의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돌보는 서울’에서는 영․유아 플라자 설치, 급식도우미제도, 노인돌보미 바우처 제도 강화․확대 등의 정책들이 있으며 2010년까지 90개소의 공공보육시설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일있는 서울’ 은 여성들을 위한 창업스쿨, 탄력근무제, 육아휴직 활성화 계획 등이 있으며, ‘안전한 서울’에는 여성친화적 뉴타운 건설과 콜택시 운영 등, ‘편리한 서울’에는 공공시설의 여성화장실 변기 수 확충․편의시설 개선, 여성 우선 주차구획 설치 등 총 90여개의 사업들이 기획되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서울특별시 여성가족 정책관(http://women.seoul.go.kr/)을 참고하시라.
 

여성의 일자리 창출! 바우처제도 강화?

  시민의 행복지수를 높여 서울시의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복지정책의 일환으로 시행되고 있는 ‘여자를 울려라’프로젝트가 선뜻 반갑지만은 않다. 그 이유는 신자유주의 시대의 여성의 현실은 실행력 있는 여성정책, 예산, 정책 대상의 확대 등을 통해서 보완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미 기륭투쟁, 이랜드 투쟁, KTX 투쟁을 통해서 우리가 목격해온 여성노동자들의 현실은 여성착취를 등에 업고 자라온 신자유주의가 이미 내재하고 있는 문제이다. 따라서 여성을 위한 사회적 일자리 확대, 직장과 가사의 양립을 위한 보육정책 강화와 같은 직접적인 지원책을 아무리 덧댄다고 해도 근본적인 여성의 위기를 해결할 수는 없다. 또다시 저임금 여성노동자들을 양산하는 악순환을 낳을 뿐이다.  
  실제로 ‘여행프로젝트’중 여성의 일자리를 창출해주겠다는 다양한 정책들은 가부장제에서 비롯되는 여성억압(성별분업이데올로기)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의식 없이 육아휴직 활성화, 노인 돌보미바우처 바우처(이용권)는 일정한 자격을 갖춘 계층에 대해 정부가 지불을 보증하는 일종의 전표로서, 특정한 재화나 서비스를 구입할 수 있도록 구매력을 높여주는 소득지원의 한 형태(보건복지부a, 2007)
, 아이돌보미 바우처 제도 등을 정책으로 내놓고 있다. 그런데 이 정책들이 얼마나 효과적으로 실행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은 둘째치더라도, 그간 사회서비스 시장화전략 속에서 우리가 밝혀왔던 바우처제도에 대한 비판, 더욱더 불안정한 일자리로 내몰릴 수 밖에 없는 여성노동자들의 현실을 해결하려는 의지가 전혀 없어 보인다.  
  바우처제도는 사회서비스 이용자들의 선택권을 보장할 수 있다는 것과 서비스 제공기관의 경쟁을 유도할 수 있다는 이유로 정부가 도입한 사회서비스 지원방식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바우처제도는 기업 간 경쟁과 비용의 문제 때문에 저소득층은 낮은 수준의 서비스를 이용할 수 밖에 없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노동자들에게는 저임금, 불안정 노동을 강요하게 된다. 서비스 제공기관의 경쟁은 결국 기관에 소속되어 일하는 노동자들의 노동조건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회서비스 공대위 ‘사회 서비스 공공성 확보를 위한 과제’ 참고.
 
  이렇게 노인·아이돌보미 바우처제도를 더욱 확대·강화하겠다는 ‘여행’의 계획은 2006년부터 실시된 사회서비스 확충전략과 전혀 다르지 않다. 육아, 간병, 노인요양과 같이 전통적으로 가정에서 담당하던 것들을 복지수급자들이 이용권(바우처)을 주고 사용할 수 있게 하는 것을 골자로 했던 사회서비스 확충전략은 여성들의 일자리를 창출하겠다 하지만 이는 오히려 여성노동자들을 서비스부문으로 확충하면서 사회서비스를 시장화 할 뿐이고, 노동자에게는 저임금을 강제할 뿐이다. 특히 사회서비스 부문은 여성이 가정에서 손쉽게 하는 일이라는 인식 아래, 여성노동자들에 대한 저임금을 정당화 한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경제위기의 부담을 여성에게 전가하는 신자유주의 정책이 지속되는 한, 아무리 여성들의 일자리가 늘어나는 ‘척’해도 빈곤한 여성노동자들의 현실은 조금도 나아질 수 없다. 전사회적 이슈인 비정규직의 문제를 여성의 시각에서 바라보고 그 본질을 밝혀내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지 않는다면, 여성이 일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서울시의 여행프로젝트는 ‘눈가리고 아웅하기’에 다름 아닐 것이다.

시혜가 아닌 여성의 권리로!
 
  ‘그 남자에겐 가족을 만날 수 있는 지름길입니다.
  그 여자에겐 가슴이 조마조마한 길입니다.‘

  여행프로젝트 광고 중 ‘길등’편에 나오는 대사이다. 어느 여성이든 으슥한 골목을 지날 때면 한번쯤 불안을 느끼게 되는데, 이러한 여성의 심리를 잘 읊은 광고라는 생각이 든다. 여성에 대한 극단적 폭력인 성폭력을 예방하기 위해 어두운 골목길에 길 등을 설치해준다니 ‘이 정도도 감지덕지지.’하고 고마울 따름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그동안 운동으로서 제기되었던 반성폭력의 언어나 페미니즘이 광범위한 대중의 불만을 관리하는 신자유주의 정책의 일환으로 변모되어가는 것에 위협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이제 지배계급은 신자유주의로 비롯된 정치의 위기와 대중의 불신 속에서 여성의 이미지를 적극 활용하며 정치개혁의 담론을 만들어 가고 있다. 이는 ‘여성 친화적 뉴타운 개발’이라는 계획에서도 드러나는데, 무수한 서민들을 내쫓으며 추진되고 있는 뉴타운 개발에 대한 비판을 ‘여성이 행복한 주거환경’이라는 이미지로 포용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어두운 골목길에 길 등을 설치하고, 하이힐이 끼기 쉬운 도로의 보도 블럭을 교체하고, 화장실에 비데를 설치하는 것과 같은 ‘서비스’들이 여성을 위한 권리로서 말해질 수 있는 것들인가. 여기서 우리는 페미니즘이 지배계급의 ‘도덕적 의무’로써의 시혜가 아니라 여성에 대한 폭력과 착취를 폭로할 수 있는 언어임을 다시 확인해야 할 것이다. 마치 서비스 센터처럼 여성의 편의를 봐주는 것으로써 ‘여성이 행복한 도시’를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는 ‘여성 상위시대’라고 하는 여성발전담론이 사회전반에 걸쳐 착취 받고 있는 여성 일반의 현실을 은폐시켰던 것과 비슷하게,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기만적인 행정일 뿐이다. 여성의 복지를 위한 서비스 일괄은 좋다. 그러나 사회구조적으로 억압되어 있는 여성의 발본적인 권리를 발굴하고 제기하지 못한다면, 페미니즘의 언어는 신자유주의적 통치로 흡수되어 이중 착취 속에서 살아가는 여성들의 불만을 ‘관리’하는 것에 그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에 맞서, 대안 이념으로서의 페미니즘이 어떠해야 하며, 누구에게 돌려주어야 할 언어인지를 명확히 하자.

누가 위기를 해결하는가

  다양한 여성정책이라는 이름으로 페미니즘을 남발하는 지배계급을 보면, 이제 여성주의 혹은 페미니즘이 운동하는 주체들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도 피해갈수 없는 문제가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일정부분 페미니즘운동의 성과이기도 하지만, 여성들을 방패막음 삼아 발전해온 신자유주의가 이제 더 이상 여성의 현실을 모른 척 하고는 그의 위기를 해결할 수 없음을 말한다.   
  착취 받고 있는 이 땅의 여성들이 자신의 권리를 되찾는 주체가 되기 위해서는 넘어야할 난관들이 많다. 자본주의 경제를 존속시키기 위해서 지배계급에게 반드시 활용되어야 할 ‘가족’이라는 공간은 여전히 여성들의 발을 묶어두며 재생산 노동을 여성의 몫으로만 유지시켜 왔다. 재생산의 수단으로서 여겨지는 여성의 몸은 오직 도덕적 의무를 다하는 지배계급의 시혜 속에서만 구원이 가능하며, ‘노동의 유연화’를 달성하고자하는 각 기업들은 여성들을 저임금․불안정 노동의 현실로 내몰면서 이윤을 창출해왔다. 
  즉 저임금의 불안정한 일자리라도 부족한 노동력을 메워야 할 주체이자, 많은 자녀를 낳아 출산율을 유지하고 가족 해체를 막기 위해 애써야 할 주체로서 이중 삼중의 역할을 여성에게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메커니즘을 폭로하지 않고서 온갖 화려한 수사들을 동원한 ‘여행’프로젝트가 진정 여성을 행복하게 하기에는 공허할 수밖에 없다. 
  사회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은 더 이상 참아낼 수 없는 여성의 현실에 대한 폭로였으며, 야만적인 신자유주의 세계화로 가는 흐름의 필연적인 결과였다. 그녀들이 투쟁할 수 밖에 없었던 진실들, 어떠한 법과 정책도 담보해주지 않았던 여성들의 삶을 기만하며 여성 종속의 자본주의 원리를 은폐시켜버리는 일련의 무수한 여성정책들에 더욱 날카로운 비판을 가하자! 여성의 이름으로 점점 더 세련되어지는 지배계급의 위기극복 전략에 맞서, 이 시대를 살고 있는 대다수의 여성들의 권리를 사회에서 갖추어야할 보편적인 권리로 제기할 수 있는 페미니즘과 그 실천들이 절실한 때이다.

Posted by 행진

2008/12/30 10:47 2008/12/30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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