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회말 2아웃 미국, 오바마는 미국의 구원투수가 될 것인가?



  8년만의 공화당 정부가 끝나고, 232년의 백인 대통령 시대가 끝났다. “CHANGE” 와 “Yes, we can.”을 외치던 버락 오바마는 첫 흑인 대통령이 됨으로써 온 몸으로 ‘무언가 변하리라’ 는 것을 증명했다. 대공황에 비견되는 경제위기 상황에서 미국의 새로운 대통령과 정부가 어떻게 움직일지, 부시 대통령 시절 끊임없었던 군사개입은 축소될 것인지, 세계의 시선은 미국으로 쏠려있고 오바마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그의 정치적인 행보뿐만이 아니라 개인적인 취향과 가족관계에 이르기까지 폭넓다. 미국인들이 이렇게 ‘변화’를 외치고 실제로 지금의 자본주의의 모습을 ‘변화’시키지 않으면 도저히 미 헤게모니가 유지될 수 없는 상황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희망과 꿈을 투영하고 있는 오바마의 미국 정부 하에서 앞으로 과연 무엇이 얼마만큼 변할 것인가? 


무엇인가 변하긴 할 것이다. 


  반전운동을 비롯한 미국의 시민운동, 미국 노총을 비롯한 노동운동은 이번 2008년 대선에 '올인'했다고 한다. 그 유명한 '식코(Sicko)'의 마이클 무어 감독도 오바마를 지지했을 정도다. 이들은 모두 오바마의 정책에 100퍼센트 만족하지는 않는다고 하면서도, 어쨌든 오바마가 당선되어야 한다고 굳게 믿었다.

  미국의 운동세력이 믿었던 것처럼, 어떤 방식으로든 ‘변화’는 올 것 같다. 몇 십 년 전만해도 억울한 죽음 하나도 호소하기 어려웠던 흑인 중에 대통령이 나왔다는 사실은, 브래들리 효과를 두려워한 흑인들이 오바마 선본에 급진적인 요구를 하나도 하지 못했다는 역설적인 상황 속에서도 여러 흑인들의 자존감을 회복시키는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리고 어쨌든 ‘인종문제’ 가 사람들의 머릿속에 어떤 방식으로든 각인된 것도 확실하다.

  또한 부시와 네오콘이 주도해 온, 일방주의적인 미국의 대외정책도 새로운 전환점을 예고하고 있다. 북한과의 관계도 이전과는 달라질 것으로 전망되며, 이라크에서의 미군철수를 공약으로 내세웠던 만큼 이라크 전쟁도 전환기를 맞이할 것이다. 어쨌든 민주당은 역사적으로 공화당보다 군사행동을 좀 더 진지하게 고민해왔던 당이니 말이다.

   앞서 언급한 '식코(Sicko)'의 마이클 무어 감독이 “오바마의 정책은 단일 보편적 보험체계가 아니다. 모두를 포괄하지도 않고, 비영리의 성격도 아니다. 여전히 수십만 달러를 보험기업과 제약기업의 손에 넘길 것"이라고 지적하긴 했으나, 오바마의 주요 공약 중 하나인 국민의료보험제도 도입은 현실화 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그는 의료보험 혜택을 전 국민에게 확대하겠다고 공약을 내걸었는데, 직장에서 의료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거나 현재 연방 의료보험 프로그램에 자격을 갖추지 못한 개인들을 위한 전국의료보험 신설을 검토하고 있다. 또한 25세 이하 미국 시민들은 부모의 보험으로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기회를 열어주겠다는 방침이다.

  노동 분야에서 오바마는 노동자자유선택법안(Employee Free Choice Act)을 지지하고 있다. 이 법안은 다수의 노동자가 서명을 통해 지지할 경우 사용자는 노조결성 요구를 의무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현재 미국에서 노조를 만들기 위해서는 노동자들이 투표를 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회사의 개입이 심해서 실제로 노조를 만들기가 매우 어렵다. (참고로 한국은 2인 이상 사업장에서 자유롭게 노조를 결성할 수 있다. 물론 회사와 국가에서 노조를 깨기 위한 수많은 시도를 하여 결성된 노조가 유지되는 것이 힘든 경우가 많지만, 법적으로는 미국보다 열려있는 셈이다.) 노동자자유선택법안이 통과되면 노동자의 절반 이상이 ‘노조 결성을 지지한다.’ 는 카드에 서명하기만 하면 되므로 노동조합 결성이 이전보다 쉬워진다. 이 법안은 2003년 민주당을 중심으로 하원에서 발의됐지만, 상원과 백악관이 처리를 미루고 있었는데, 오바마가 대통령에 당선됨으로써 법추진에 가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인다.

  이외에도 부유층을 위한 감세제도의 폐지도 현실화 될 가능성이 높으며, 시간당 최저임금은 9.05달러로 인상시킨다는 것도 공약 중 하나이다.


오바마, 미국 경제의 구원투수가 될 것인가?


  그러나 미국인들이 '변화'를 위해 투표장으로 향했던 그 날에도, 미국 경제는 여전히 암울했다. 위기는 이미 실물경제에 파급되어 제조업을 크게 강타했다. 9월 공장주문은 한 달 전에 비해 2.5% 하락했으며, 자동차와 항공기 부문을 제외하면 하락률은 3.7%로, 1992년 이후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실업률도 지난 9월 6.1%로 상승해 2003년 9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재무부는 금융업계의 전망을 종합해 2009회계년도에 전체 재정적자가 1조 4천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집계했으며, 한 비정부기구는 같은 기간 재정적자가 무려 2조 6천억 달러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며칠 전에는 내년 1월 20일 오바마의 대통령 취임 당일 경제 회복과 예산 지출 법안에 바로 서명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기사가 올라오기도 했다. 보통 대통령 취임 2주전은 의회가 열려도 휴식기나 다름없는 상황이었으나, 이번엔 경제위기 등으로 인해 도저히 그럴 수 없는 상황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고 한다. 또한 오바마 행정부 중 가장 주목받았던 부분은 힐러리 클린턴이 국무장관을 맡느냐보다, 재무장관을 비롯한 경제팀 인선이었다. 이를 보더라도 역시 초미의 관심사는 경제문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초호화 인선이라고 일컬어지고 있는 이 경제팀이 어떻게 지금의 난국을 헤쳐나갈지에 전 세계의 이목이 총집중되어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이는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주도해온 미국에서의 변화가 세계 경제 질서의 재편까지 수반할 것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오바마가 구체적으로 어떤 정치학을 가지고 있든지, 그는 미국이 현재 가지고 있는 세계에 대한 지배력을 유지해야 하고, 특히 경제적인 부분에서의 헤게모니를 잃지 않기 위해 전력을 다해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 그는 9회말 2아웃까지 온 미 헤게모니 하 자본주의의 구원투수이다.


  올해, 금융이 지배하는 경제구조로 인한 위기가 파괴적으로 드러나기 전에도 미국의 경제구조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지적해 온 이들은 있었다. 이 중 프랑스의 경제학자인 뒤메닐과 레비가 미 헤게모니를 유지하기 위해서 필요한 조치가 무엇인지를 이야기한 바 있는데, 이를 살펴보자. 이들은 미국이 효율적인 제국주의 국가로서 나머지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고 하면서도 미국이 점점 더 외국자산에 종속되고 있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미국의 우위에 문제가 생길 것이라고 이야기 해 왔다. 신자유주의 시대에 미국 자본주의가 맞닥뜨린 모순의 장기적 과정은 오른쪽과 같은데, 이 고리가 무한정 연장된다면, 미국의 자본가계급은 점차 소득과 부를 빼앗기게 된다. 그렇게 되면 당연히 미국 자체의 힘도 침식될 것이다. 그러나 미국 자본주의의 미래가 이렇게 될 것 같지는 않으며, 이 말은 곧 새로운 궤적이 추진될 것이라는 뜻이다. 이는 미국 경제와 사회가 새로운 국면, 신자유주의의 새로운 단계나 신자유주의를 넘어서는 새로운 단계로 진입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같다.

거대한 자본소득(세계 다른 국가들로부터의 유입을 통해 커졌다)과 상대적으로 느슨한 통화정책

부유계급의 소비증가

경상수지 적자 확대

외채 증가

외국으로의 거대한 소득 유출

국내 자본소득의 감소


  현재 미국경제의 구조에서 새로운 방향으로 전환하기 위한 핵심적인 요소는 1) 부유층 가계의 지출 축소, 2) 국내 시장을 향한 수요의 방향 전환, 3)국내적으로 조달되는 더 큰 축적률이다. 이러한 경로설정은 가능하지만 그 길에 도달하기는 어렵다. 이 길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첫째로, 기업 내의 이윤 유지는 부유층 가계의 소득을 줄이고 투자에 자금을 조달하는 직접적 방식이 되어야 하는데, 이는 더 낮은 이자율과 더 적은 배당금 지급을 뜻한다. 그러나 이것은 경영자와 소유자 중 후자의 손을 들어주고자 하는 신자유주의의 근본목표와 모순된다. 둘째로, 국제수지의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데 엔, 유로, 위안화 등의 평가절상을 통한 달러가치 하락을 조장하는 것은 이를 위한 수단이긴 하지만 이는 미국의 금융적 지배나 효율적 제국주의 권력으로서의 역량과 모순된다. 또 다른 수단으로서 무역장벽도 가능하겠지만, 이것은 외국이 보복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세계적 지배의 양상과 어울리지 않는다.

  오바마는 이전부터 부시 행정부의 시장근본주의가 위기의 뿌리라며, 시장에 대한 정부의 적절한 규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해 왔다. 또한 보호무역을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그러나 현재 확산되고 있는 금융위기가 부시정권의 실정의 문제로만 소급될 수 없다는 점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민주당 출신의 클린턴 대통령이 1992년 대통령에 당선된 후부터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를 비롯한 자유무역이 확산되었고, 글래스 - 스티걸법 폐지하여 상업은행이 투자은행 업무도 병행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금융시장을 자율화하는데 결정적인 기회를 제공하였다. 오바마의 경제정책 방향과 경제팀의 면면을 보았을 때, 현재로서는 이러한 클린턴의 유산, ‘루비노믹스’를 뛰어넘기가 힘들겠다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루비노믹스는 클린턴 시절 재무장관이었던 로버트 루빈의 정책노선을 가리키는 말로, 균형 예산, 정부의 적절한 시장 개입, 자유무역, 금융규제 완화, 강한 달러 등으로 특징지어진다. 오바마 경제팀의 투 톱인 서머스와 가이트너가 바로 클린턴 행정부 시절 루빈과 함께 일했던, 이른바 ‘루빈 사단’이다. 루빈은 90년대 클린턴 행정부 시절 미국 경제를 초유의 성장과 안정으로 이끄는 데 성공했지만, 한국을 비롯하여 외환위기를 경험한 국가들에겐 루비노믹스는 악몽처럼 기억되기도 한다. 외환위기를 틈 타 아시아 각국의 산업ㆍ기업이 미국 자본에 속속 넘어갔던 경험 때문이다.

  이러한 경험으로 인해 루비니스트를 중심으로 강력한 미국을 재건하기 위한 시도가 시작되면 주변국은 금융ㆍ의료ㆍ서비스 등 시장을 더욱 열어젖히도록 요구받을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전문가들이 새로 출범할 오바마 행정부의 상황이 90년대식의 루비노믹스를 그대로 재현하기엔 현재의 상황이 다르다고 지적하면서, 금융규제 완화보다는 규제, 균형 예산이 아니라 적자 재정(을 통한 경기부양)의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지만 미국의 금융화의 방향을 크게 틀수는 없을 것으로 보이며, 기본적으로 강력한 미국을 만들기 위해 부담을 외부로 수출하는 부분에서는 기존의 루비노믹스를 그대로 재현할 듯하다. 강력한 금융규제와 실물경제 회복을 위한 계획이 필요함에도, 미국의 이러한 태도로 인해 신자유주의 금융화의 방향을 틀고 이를 실현시키기는 어려워 보인다. 비록 오바마가 불참하고 부시가 참가하긴 했지만 G20에서도 미국은 빠르고, 광범위하고, 강력한 규제를 추진하길 원했던 유럽의 입장과 다르게 시간을 가지고 더 조정된 정책 개입을 원했다. 결국 미국은 그 헤게모니를 관철시키기 위해 앞서 ‘부유층 가계의 소득을 줄이고 투자에 자금을 조달하는 방식’이 아니라, ‘세계 다른 국가들에게 더 압력을 행사하는 방식’을 취할 것이다. 


오바마, 전쟁을 종식시킬 것인가? 


  이번 대선에서 경제문제 다음으로 유권자의 주목을 받았던 문제는 이라크 전쟁이다. <CNN>조사결과 응답자의 10퍼센트가 이라크 문제를 관심사로 꼽았다고 한다. 2001년 9월 11일 테러에 대한 응징이었던 아프간과 이라크 전쟁은 최근 급격히 확산하고 있는 경제위기와 함께 미국의 대외적 지도력과 위상이 추락하는 결과를 낳았고, 부시 행정부와 여기에 이은 공화당 매케인 후보의 패배에 결정적 요인이 되었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오바마는 이라크에서의 철군을 공약으로 내세웠고, 새로운 미 정부는 예전보다는 군사행동을 결정하는데 많은 고민을 할 것이다. 대부분이 사람들이 이라크 문제와 대북정책 등 대외정책에서는 항상 공화당보다 민주당에게 많은 희망을 걸어온 것 또한 사실이다. 하지만 오바마가 약속한 7대 외교안보분야 정책목표 중 하나는 ‘알카에다 분쇄 및 테러리즘과의 투쟁’이다. 베트남 전쟁영웅인 매케인조차도 그가 ‘흑인’이라는 이유로 그의 애국심을 의심해서는 안 된다고 이야기했듯, 오바마 역시 미국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리라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이미 곳곳에서 “관리 스타일만 바뀔 뿐이다.” 라는 냉소적인 시각의 분석이 쏟아지고 있다. 영국 <타임>은 미국이 오바마의 철군 시간표에 따라 이라크에서 철군을 하겠지만, 2009년까지 이라크에 배치할 두 개 여단을 아프간으로 배치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의 진보 저널 <카운터펀치>의 알렌산터 콕번 편집자는 "만약 그(오바마)가 당선된다면 아프간에서 실패해서는 안된다는 약속에 스스로 갇히게 되는 결과가 될 것"이라고 꼬집고, "오바마가 승리한다면, 해외에서 가장 즉각적인 결과는 아마도 무뚝뚝한 제국의 재확인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오바마는 반테러전쟁의 중심전선은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이고, 여기에 전력을 집중하여 알카에다를 분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그는 이러한 전략적 관점에 근거해서, 이라크전은 오히려 반테러전쟁의 역량을 분산시킨 “불필요한 전쟁”이었다고 말한다. 따라서 이라크에 주둔한 미군을 재배치하여 중심전선으로 투입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파키스탄에서의 군사행동은 더 확대될 전망이다.

  부통령으로 당선된 조지프 바이든은 오바마는 최대 약점인 대외정책에 대한 경험부족이라는 비난을 불식시키기 위해 선정된 파트너 이며, 이는 대외정책에 대해서 상당부문 바이든에게 의존해야 하는 상황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그러나 바이든은 부통령 당선인은 2002년 이라크전 개전에 민주당 당론과 달리 찬성표를 던진 이력을 가지고 있으며, 1990년대 발칸반도에서의 미국의 군사행동을 지지했고, 당시 군사적 개입을 주저하고 있던 클린턴 행정부를 집요하게 압박해 미국의 군사적 개입을 이끌어 낸 장본인이기도 하다.

  오바마는 그가 흑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오히려 인종문제를 미국에 대한 애국심 혹은 민족주의 - 인종과 일치하지는 않는, 그래서 일반적인 ‘민족주의’로 보이지는 않지만 아메리카적 생활방식에서 비롯되는 민족주의 - 로 해결하려 들 것이다. 오바마를 지지했던 콜린 파월은 NBC-TV의 '언론과의 만남(Meet The Press)'에서 오바마를 공식 지지하기 위해 나와 이렇게 말했다.

  “전 (공화당의 일부 의원들이) ‘오바마는 무슬림이야’라고 말하는 것에 불편함을 느낍니다. 정답은? 그는 무슬림이 아닙니다. 기독교인입니다. 항상 그랬어요. 그러나 진짜 옳은 대답은, 만약 그렇다면? 이 나라에서 무슬림인 것이 무슨 문제라도 됩니까? 답은 '노'입니다. (문제가 된다면) 그것은 미국이 아닙니다. 7살짜리 무슬림계 미국 아이가 앞으로 미국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믿는 것에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중략)…이런 식의 행동을 우리가 미국에서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면서 그는 목이 메인 채로 이런 일화를 들려주었다고도 한다. 

  “잡지에서 본 한 장의 사진 때문에라도 특히 이 부분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복무 중인 군인들에 대한 포토에세이였어요. (버지니아의) 알링턴 군인 묘지에 있는 한 어머니가 아들의 무덤 비석에 머리를 묻고 있었습니다. 사진이 보여주는 것은 바로 그 비석의 머릿말이었는데, 자주색 하트와 동색 별이었어요. 이라크에서 죽었다는 뜻이죠. 20살이었는데, 그 다음 사진이 뭐였냐면 비석의 제일 윗 부분인데, 그것은 기독교의 십자가도 아니고 이스라엘의 다비드별도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초생달과 별로 되어있는 이슬람교도의 표시였어요. 그 병사의 이름은 카림 라샤드 술탄 칸. 그는 미국인이었습니다. 뉴저지에서 태어났고 9·11 당시 14살이었는데 군대에 들어오기만을 기다렸답니다. 그리고 목숨을 바쳤지요. 자, 지금 우리는 이런 식으로 우리 스스로를 분열시키는 행위를 중단해야 합니다.”

  그의 말을 듣고 감동했을 미국의 흑인이나 무슬림들이 미국을 지킨다는, 혹은 세계를 구원하고 “악”과 싸우겠다는 명분으로 다시 파키스탄으로, 팔레스타인으로, 이란으로 떠날 수 있다는 사실은 우리를 섬뜩하게 한다. 오바마의 애국심은 파월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는 결코 전쟁을 끝낼 수 없다.

 

인민주의자 오바마와 정치의 주체로서 인민 사이에서


  오바마가 경제위기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못하더라도, 전쟁을 완전히 종식시키지는 못하더라도, 그래도 공화당보다는 민주당이 낫다, 조금이라도 개혁이 되는 것은 바람직한 것이 아닌가, 라고 의견을 피력하는 이들이 많다. 그러나 우리는 ‘오바마가 얼마만큼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인가’ 에 여러 자료를 분석하고 정리해서 답하는 것으로는, 실은 아무것도 변화할 것이 없다고 말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 답은 정치를 그에게 온전히 맡긴다는 전제 하에 나오는 대답이기 때문이다. 

  대공황 당시 노동자들은 구조조정을 피하기 위해 노동자들끼리의 출혈적인 경쟁을 하기보다 파업과 쟁의로 맞섰고, 길고 긴 베트남 전쟁을 끝낸 것은 미국의 정권교체가 아니라 전 세계에서 일어난 반전운동 때문이었다. 지금 여기에서 금융세계화에 맞선 대안세계화 운동과, 전쟁에 맞선 평화운동이 아니라 오바마의 일거수 일투족에 기대를 품는 것은 정치의 위기를 적나라하게 드러내준다.

  인민들이 무지하고, 스스로 정치의 주체가 되고자 하지 않을 때 인민주의는 발호한다. 그가 이룩한 작은 변화를 보고 감동하는데 그친다면, 우리는 탁월한 인민주의자를 또 한 번 만들어내게 될 것이다. 그가 이룩한 작은 변화에 만족한다면, 우리의 현실적인 대안은 오히려 점점 더 이상(理想)으로만 남아 저 멀리 가버릴 것이다. 초국적 제약기업과 보험회사를 통제하지 못하면 하다못해 오바마가 약속한 국민의료보험제도도 본래의 안보다 훨씬 축소될 수 있으며, 미국 사회 내 흑인운동이 침묵한다면 실업에서 의료보험까지 모든 측면에서 불평등이 명백히 남아있는데도 많은 미국인들, 많은 백인들이 인종문제가 더 이상 중요하지 않는 문제라고 점프할 수 있다. 

  전 세계의 대안세계화 운동은 이미 구체적인 대안을 이야기하고 있다.3) G20을 넘어서는 민주적인 참여와 토론이 필수적이므로 국제 금융ㆍ화폐 질서 개혁을 위한, 세계 모든 정부와 시민사회 ․ 시민조직 ․ 사회운동 등의 대표자가 참여하는 유엔 주최 국제회의를 열자, 모든 통화와 금융상품들은 반드시 금융규제를 받아야 한다는 원칙을 세우자, 세계적 기업이나 부유한 개인들이 자국의 세금을 피하기 위한 도피처를 제공하는 조세피난처를 폐쇄하자, 등등. 이러한 대안은 운동 없이 관철될 수 없다. 오바마는 한시도 자기 스스로와 자신의 정권이 미 헤게모니를 유지하기 위한 최후의 보루라는 사실을 잊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미 흑인역사를 연구한 매러블 교수의 이 말을 빌려올 수 있을 것이다.

  “진짜 도전은 오바마가 하는 것이 아니라 진보진영이 하는 것이다. 우리는 매우 불편하고 보기 드문 상황에 있다”

  스스로 뛰어들어 변화를 꿈꾸고, 요구하고, 만들어갈 수 있는 사회운동이 아니라, 60억이 넘는 인구의 운명을 오바마의 정책 방향에 우선 맡겨버리는 현재의 상황에서 역사가 앞으로의 4년을 인민주의자 오바마의 시대로 기록할지 정치의 주체로서 인민들을 기록할지, 모든 것은 우리에게 달려있다.

Posted by 행진

2008/12/08 11:56 2008/12/08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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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보스코프스키 2008/12/15 01:57 # M/D Reply Permalink

    그림이 안 보이네요... 처리 부탁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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