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생에서 연대와 투쟁이 가장 소중한, 성영(고려대)
칠흑같은 시대에도
노래가 불리어질까?
그때에도 노래는 불리어질 것이다.
칠흑같은 시대에 대한 노래가.
- 베르톨트 브레히트

개강이 낼름 다가오는 가을의 문턱에서 한달전의 포럼을 기억해 내려니 어제 먹은 반찬도 기억나지 않는 머리로는 상당히 무리인것 같습니다. 오히려 선명하게 떠오르는 것은 여름내 동지들과 몸에 세겨넣었던 투쟁들이네요. 그 투쟁들속에서 발언해 내었던 여성노동권/지역운동/비정규직 철폐등등으로 기억을 더듬어 올라가는 것이 가물해진 포럼의 기억을 선명하게 떠오르게 해주는 것 같습니다.

불안정노동 철폐 포럼을 준비하며 팀내에서 나누었던 이야기들이 떠오릅니다. 노동운동의 역사와 투쟁들을 되짚어 가며 현시기에서 우리가 발언해내야 할 것들을 확인하며 가리워진 이야기들을 밝혀내는 것은 개인적으로도 많은 도움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포럼 자리 자체에서는 시공의 촉박함으로 많은 이야기를 하지 못하였지만 고민의 공유와 나누는 이야기는 의미가 있었고 더욱이 방중을 거치는 투쟁의 과정에서 확인했던 것이 많았습니다. 기간 나누었던 투쟁과 토론들을 뒤돌아보며 하고자 했던 이야기들을 하나씩 짚어나가는 가운데 우리가 더욱 풍성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허허.

여성노동권


포럼이 따로 마련되기 까지 했던 여성노동권에 관한 이야기가 있었는데요. 불안정 노동을 이야기하며 여성노동권을 이야기 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아마 여성노동권 포럼이 따로 기획되었지 않았다면 불안정노동 포럼이 여성노동권 포럼에 가까와 졌을 것입니다. 신자유주의가 만들어내는 노동의 분할과 적대의 논리에 가장 첨예하게 서있는 여성노동권에 주목하지 않고서는 누구의 해방도 가능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허나 지금의 투쟁들이 무언가 성차에 기반한 여성 노동권으로 제기되고 있는가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많은 투쟁 사업장이 여성 비정규직의 투쟁들인데 여성노동권으로 발언되지 않는것은 우리가 할 일들이 아직 많다는 것을 의미하는것 같아요. 더욱이 그저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 숫자가 많으니-가 아니라 여성노동권으로 쟁취할 수있는 해방에 관한 이해가 더욱 확산 되어야 할 것입니다.  

비정규직 개악법 그리고 넘어서 금융세계화 비판 / 반신자유주의


비정규직 개악법에 관한 장은 제가 직접 준비하고 발제한 터라 더욱 애착이 갔습니다^^;; 비정규직의 출현과 경제적 배경에 대해서 많은 부분이 축소되었었는데 김덕민 선생님의 시민강좌로 채워졌을 것이라 믿습니다. 비정규직 개악법에 맞서는 투쟁의 의미를 더 많은 동지들이 어떻게 받아들일까 하는 의문이 제 주된 고민이였는데 하나의 법을 두고 부르주아 의회정치에 대한 규탄과 반대를 넘어서는 주체화 과정이 더 중요할 것 입니다. 그냥 이야기하자면 그럼 비정규직 개악법 이거하나 차버리면 끝인가? 법을 폐기할 수있는가? 를 넘어서는 노동자의 권리로서 이야기 되어야 한다라는 생각이 있어요. 우리가 바라는 것은 비정규직의 차별시정을 넘어서는 비정규직 철폐이고 그 이후에는 노동자의 온전한 권리니까요.

이러한 이야기를 하려면 불안정노동의 출현과 관련되 이해가 필요합니다. 발제에서는 길게 다루지 못했는데 비정규직은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가 구조조정을 강제하게 되는 과정에서 나타난 것인데 이러한 원인에 대한 분석과 발언들이 중요합니다. 그러기에 자본이 넘나들 자유인 FTA와 자본이 날뛸 자유인 비정규직 개악법(일반적으로 노동 유연화/불안정 노동의 확산)이 함께 다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반신자유주의 선봉대 기간에도 이러한 맥락의 발언들은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있었는데 꾸준히 연습하고 만들어 내야할 것입니다.   

그리고 운동의 공간으로 아래로부터의 투쟁을 위한 지역 운동과 사회운동으로서의 노동운동의 의미도 함께 되새겨 보았습니다. 여러모로 포럼들과 맞닿아 있어서 어디까지 이야기 해야 할까하는 고민들이 들기도 하고 아-이 열쇠는 꾸러미 구나 하는 생각도 하고 그랬어요.

마치며


07년 하반기에 가장 많이 나올 이야기는 무엇일까요?  아마 대선이 아닐까 싶습니다. 벌써부터 지배계급들은 이합집산을 거듭하며 사람들의 눈과 귀를 쏠리게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대선 보다 많이 나와야 할 단어. 우리가 주목하게 만들어야 할 단어는 불안정노동 철폐! 한미FTA저지! 입니다. 민중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의 종이 쪽지의 권리가 아닌 투쟁할 권릭입니다. 대선시기 자신들의 이익을 쫓아 싸움을 거듭할 지배계급에 맞서 그 논쟁의 장에서 진정한 권리와 민주주의가 무엇인지를 밝혀내고 힘차게 투쟁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공간에서 마주치는 학우들과의 이야기는 어쩌면 더 어려울찌도 모르겠습니다. 이 권리들이 모두와 맞닿아 있다는 것을 알려내고 끊임없이 논쟁하는 가운데 올해말 대선의 공간이 누군가의 승리가 아닌 대중운동의 승리를 확인하는 자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Posted by 행진

2007/09/08 21:30 2007/09/08 21:30
, , , ,
Response
받은 트랙백이 없고 , 댓글이 없습니다.
RSS :
http://stulink.jinbo.net/blog/rss/response/57

Trackback URL : 이 글에는 트랙백을 보낼 수 없습니다

- 경미(대구대)


‘더불어숲’, ‘교활’을 가서는 ‘말 그대로 우리 모두가 더불어 숲이 되어야 하겠구나.’하는 생각으로 현재 사회의 교육에서 강요하는 무한경쟁, 다른 사람들의 행복을 끊고 나는 더 높은 곳으로 가는 것을 가르치는 게 아니라, 모두 함께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그런 방법을 가르치는 교육을 하고 싶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나는 ‘인권’을 주제로 아이들과 수업을 했었고, 아이들은 자기가 굳이 생각하지 못한 부분에서 차이가 차별이 된다는 것들을 앎으로써 신선한 충격을 받는 듯 했다. 그리고 내가 소중하듯 다른 사람도 나와 똑같이 행복하게 살고 싶어 하는 사람이고, 생명이 있고, 인격이 있다는 것을 말해줌으로써 나 아닌 다른 사람도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일깨워 주는 시간이었다.

더불어 숲 초반부에는 학년별 위계질서라든지, 서로를 경계하거나 무시하는 등의 일종의 따돌림 현상도 있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런 분위기는 사라졌고 모두가 하나 되는 느낌이었다.  한 명 한 명이 나무가 되어서 정말로 더불어 숲이 되는 과정이랄까. 나는 그러한 것들을 보고 느끼며 정말 감동을 받았다. 더불어숲 교활이라는 것은 이런 의미에서 정말 중요한 것이 아닐까?  더불어숲이라는 모든 활동. 즉, 수업이든 아니든 아이들과 부대끼고 마음 나누고 하는 것들, 그리고 예비교사끼리 급간을 뛰어넘어 이런저런 고민도 들어보고 새로운 점들도 알게 되는 것들. 이 모든 게 아동끼리이든, 예비교사이든 함께 더불어 숲을 만들어 준다고 생각한다.

다시 돌아와서, ‘교육이란 무엇일까?’라는 근본적인 물음은 항시 하고 있다. 대학교 수업시간에 교수는 ‘젓가락질조차 제대로 못하는 사람이 무슨 아이들 앞에서 교육을 하겠냐고’ 라는 말을 자주한다. 그 때 마다 난 속으로 나에게 묻는다. ‘나의 젓가락질이 흔히들 말하는 표준에 맞지 않지만, 그렇다고 난 이것이 틀리다고 생각한 적도 없고 밥만 잘 먹으면 된다…’고 생각 하면서 대체 아이들 앞에서는 나의 생활습관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을 한다.

나 혼자서는 ‘괜찮아, 밥만 잘 먹으면 되지’라고 생각하면서 나도 모르게 교수의 말에 세뇌가 되었는지, 아니면 나의 젓가락질이 눈에 띄어 혼날 것을 두려워했는지, 내가 생각하는 그것이 사회가 받아들이지 않고 옳지 않다고 터부를 할까봐 그리고 그걸로 나를 비판하며 몰아내 칠까봐 스스로 움츠러들었는지도 모르겠다. 맨 후자의 가능성이 왠지 내 가슴을 찌른다.

모든 교육이라는 것이 그렇지만, 더군다나 ‘유아’를 ‘교육’하는 것을 전공하는 나로서 참 고민이 많이 된다. 인생의 맨 초기의 교육으로서 아이가 세상을 보는 눈을 처음 뜨게 하는 곳이랄까, 아님 세상을 보는 눈의 방향을 잡아주는 곳이랄까.

유아기 때 남성과 여성의 구분 ․ 차이, 모든 생활의 기본 습관 등을 규칙성 있게 올바르게(?) 잡아주기 등. 내가 무엇을 어떻게, 어떤 내용으로 아이들에게 교육을 해야 할지 매우 조심스럽다.

나조차도 아직은 사회를 바라보는 눈이 서툴고, 또 어떻게 바라봐야 하고 나는 무엇을 지향하는지 등 아직은 그것들에 대한 깊은 고민이 부족하니까 내가 말하는, 내가 가르치고 싶은 내용에 대해서 확신이 제대로 서지 않는지도 모르겠다. 즉, 아직은 나만의 교육철학에 대한 고민이 부족한가 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대학에서 배우는 과정들이, 즉 이러저러한 내용을 가르쳐야 한다고 말하는 것들이 옳은 건지, 왜 저것을 가르치라고 하는 건지 하는 근본적인 물음도 하게 되고 말이다.

예비교사들이여~ 자신이 대학에서 배우는 ‘학생에게 교수해야할 교육내용’에 대해서 ‘물음’을 한 번 던져보자! 왜 내가 이러한 내용을 가르쳐야 하는지? 그리고 그러한 논리, 담론들은 어떻게 만들어 졌는지를. 그리고 그러한 것들을 만드는 사회를 바라보는 눈, 해석하는 눈은 교사로서 제일 기본으로 갖추어야 할 점이다.

졸업하기 전까지 나만의 교육철학을 세울지는 모르겠지만, 예비교사로서 열심히 고민하고 공부하겠다. 투쟁 ^^

Posted by 행진

2007/09/08 21:24 2007/09/08 21:24
, , ,
Response
받은 트랙백이 없고 , 댓글이 없습니다.
RSS :
http://stulink.jinbo.net/blog/rss/response/56

Trackback URL : 이 글에는 트랙백을 보낼 수 없습니다

[9호] 12차 행진운영위 엿보기

지난 8월 24일, 행진(건) 12차 운영위원회가 경북대학교 생활도서관 ‘열린글터’에서 열렸습니다.

(지난 5월 19일 광주순례단 일정과 맞물려 광주에서 진행되었던 10차 운영위에서 앞으로는 서울과 서울 외 지역에서 1차례씩 번갈아가며 운영위를 개최하기로 결정하였답니다. ^^;;)

보통 행진 운영위는 2개월여마다 열립니다. 그러다 보니 내용이 방대하고, 확인해야 할 바가 조금은 많지만, 대부분 중요한 사항들입니다. 이번 뉴스레터 개강호에서는 9/10월 정세전망과 대중운동계획이 논의되었던 12차운영위에 대한 관심도 높이고, 개강을 맞이하는 여러 동지들의 실질적 고민도 나눌 겸 뒤풀이 자리를 슬쩍 취재해 보았습니다.

애초의 기획은 개강을 앞두고 있는 동지들의 고민을 들어보려고 했는데, 술잔도 한 순배 돌고 이야기도 이어지다 보니 단순히 개강에 한정되지 않는 많은 이야기들이 오갔던 것 같습니다. 지면관계상 뒤풀이에서 오갔던 수많은 이야기들 중 일부만을 담았습니다. 당시의 진지하고 생산적인 이야기들을 다 전달하지 못해 아쉽네요. 12차 운영위 안건지도 다시 한 번 꼭 확인해보시구요, 개강을 보다 힘차게 맞이했으면 합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건준위장 민혜: 뒤풀이 자리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려니 조금 어색하긴 하지만, 이야기하다보면 편해질 것 같네요. 용길 동지부터 한번... ^^;;

(편의상 경어로 정리했습니다. 양해바랍니다.)

경북대 용길: 편하게 이야기하면 되죠? 교지에서는 행진에서 작년부터 진행하고 있는 월례포럼의 문제의식을 살려서 9월은 군가산점제, 11월은 대선 10월은 잘 기억안나네요...^^;; 캠퍼스 전체적으로는 여러 부문영역단위 문예패, 교지, 생도 등등 부문영역별 문제의식을 가지고 포럼 진행할 계획임. 현재는 언론 포럼을 계획중이고, 학교가 너무 조용하다는 느낌이 드는데, ‘광장’을 형성하는 사업을 진행할 예정이다. 대중들과 부딪치고 마주치는 문화를 만들고 싶다. 이주투쟁에 4년째 결합하고 있는데 현재 많이 동력이 떨어지지만, 기존 연대 단위들과의 연대투쟁을 지속적으로 만들어나가야겠다. 경북대 간병인노조 투쟁에도 더 열심히 결합할 계획이다.

고대 태민: 방중에 이랜드 투쟁이 참 자주 있었는데, 내가 할 수 있는 영역이 매우 적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회 발언이나 선동 외에 내가 과연 할 수 있는 게 무엇일까라는 고민이 들었다. 방학이라 여기저기 웹자보 같은 걸 올리면 리플을 달기도 하는데, 그걸로 그치곤 해서 아쉬웠다. 개강하면 할 수 있는 일이 참 많아질 텐데 학우들을 만날 걸 생각하니... 가슴이 설렌다.

성대 민혜: 한편으론 학우들 만나기가 좀 무섭기도 하다. 방중에 현장 활동이 많다보니 내 활동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는 것 같아 좋았는데... 수업듣기 너무 싫다. --;; 개강사업을 준비하고 있는데 학우들을 만나는 게 단순 보고형식이 되버리진 않을까 걱정이다. 설레긴 하는데... 잘하고 싶다.

연대 현석: 방중에 이랜드투쟁에 주로 결합하면서 연세의료원 투쟁에 제대로 결합하지 못해 아쉬움이 남는다. 반신자유주의 선봉대 가기전날 타결되었는데(2000명이상의 대규모 파업이었는데...), 참 많은 고민이 들었다. ‘연세춘추’에서는 연세의료원 파업에 대한 기사를 실었는데, 활동하고 있는 교지 ‘문우’를 통해서는 어떻게 알려나갈 수 있을 지 고민이 많이 든다.

동아대 상균: 저희도 고민지점이 비슷한데, 여름에 현장활동을 하면서 느낀 점도 많았지만, 관건은 개강을 맞아 활동을 같이 했던 친구들과 여러 학우들이 현장활동에서의 경험이나 느낌들을 공유하는 거라는 생각이 든다. 개인적으로는 얼굴이 너무 타서 학우들 만나기가 두렵다. 동아대는 2학기에 축제, 학술제 등의 사업이 집중되어 있는데, 1학기때 투쟁 흐름이 2학기에 끊기는 느낌이 든다. 2학기 때 싸이클 사업에 매몰되어 투쟁을 제대로 만들어 내지 못해 항상 아쉬웠는데, 그러한 부분들에 대해 오늘 이 자리에서 많이 이야기해보면 좋겠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경북대 용길: 부산교대나 동의대 부산대 등등 다른 대학의 동지들과도 상시적으로 만나나요?

상균: 단위 일정이 바쁜 이유도 있지만, 현재 상시적인 소통체계 같은 건 없다. 집회나 사업으로 만나는 편이다. 부산지역의 투쟁을 논의하거나 이런 자리는 아직 없고, 작년 메이데이때부터 2년째 공동으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일단 2학기 때 모일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보면 좋겠는데. 430/메이데이 끝나고 서로 잘 못 만나게 아쉽다. 잘못이었던 것 같다.

경북대 용길: 겨울 현장활동에 대한 고민을 한번 해봤는데, 부산/대경지역 민중연대투쟁단과 같은 형식을 함께꾸려보면 좋지 않을까? 연대의 경험, 공동의 사업 발굴 등등 의의가 많을 것 같다. 서로의 운동에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은데 함께 고민해보자.

동아대 태엽: 겨울에 지역 차원의 활동이 저조한데... 그러다 보니 새내기 사업에만 집중하게 된다. 말씀하신 것처럼 현장활동을 기획해보면 좋을 것 같다. 지역운동의 활로를 찾기 위한 사업들이 중요하다.

건준위장 민혜: 매시기 사업들의 흐름을 어떻게 이어나가야 할지 모르겠다라는 건 우리 모두의 고민인 것 같다. 서울 역시나 마찬가지인 것 같다. 각각의 사업이나 투쟁들이 일회성으로 그치지 않기 위해서는 활동에 대한 장기적인 시야와 안목을 확보해 나가는 노력이 필요할 것 같다. 그래야 여러 실무에 지치거나 각각의 사업의 성패에 연연하기 보다는 한 발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상반기에 성과도 많았지만, 예를 들어 연세의료원 투쟁이랑 이랜드투쟁이랑 마주치지 못하고 광주시청투쟁이랑 이랜드투쟁이 마주치지 못하는 건 지금의 한계인 것 같다. 그래서 선봉대처럼 전국을 순회하는 투쟁도 중요하고, 자신이 속한 지역에 기반한 투쟁을 펼치는 것 또한 중요할 것이다. 요즘 학생운동이 흥을 북돋와 주거나 기특한 애들 정도로 생각되는 경향이 있는데 이를 뛰어넘기 위한 노력도 필요하다. 방중의 성과가 2학기 대중사업 싸이클 속에서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이어질 수 있는 활동을 펼쳐나가자.

고대 태민: 캠퍼스 내 논쟁이 없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학교에 운동단위들은 많은데 대중운동으로 외화 되는 건 없는 것 같다. 광장만들기처럼 정치의 공간을 확장하려는 노력이 꼭 필요한 것 같다.

성대 민혜: 선거 공약이었던 ‘아고라’ 사업을 통해 온라인을 통한 마주침을 기획해보자는 취지로 여러차례 주제를 던졌는데 아무런 답글이 없었다... 6월달에 농활문제를 가지고 금잔디광장에서 포럼을 했었는데 상당히 괜찮았다. 학우들이 지나가다가 듣기도 하고, 유인물도 나눠주고... 등등. 단순히 물리적인 공간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공간에 대한 고민도 필요할 것 같다.

성신 골룸: ‘메이데이’는 올해 2기인데, 작년에 이어 올해도 대학로 마로니에에서 거리공연을 진행했다. 처음 취지는 학내나 집회 뿐 아니라, 직접밖에 나가보자는 의미였다. 마로니에는 사람들이 자유롭게 쉬기도 하고 혼자 노래도 하고 기타도 치고... 이런 사람들이 많은데 관객이랑 무대가 단절되지 않은 분위기라 좋은 것 같다. 올해의 경우에도 느낌이 좋았는데, 자연스러운 분위기에서 공감하는... 그런 경험들이 소중한 것 같다. 일상적인 발언들 속에서 사람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거창하진 않지만, 소소한 자리... 모두가 함께 할 수 있는 자리를 자주 만들어갈 필요가 있겠다. 아무도 안 들으시나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강원대 재명: 대학로에서의 거리공연 참 참신해요!! ^^;; (약간 취기가 오른 듯한...)  국립대 법인화 관련한 쟁점을 여론화시키는데 대한 고민이 있다. 사실... 올해 총학생회가 국립대 법인화를 신자유주의 교육재편의 문제로 바라보기보다는 등록금인상 때문에 막연한 반대... 단순한 문제제기에 그쳤다. 강원대 삼척대 통폐합이나 캠퍼스 이전과 관련한 학교발전이데올로기의 문제 등이 올바르게 문제되지 못했다. 교육투쟁에 대한 고민이 크다. 어떻게 우리의 언어로 이야기할 것인가? 학내 여러 단위들과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공감은 하지만 신자유주의 교육재편에 대한 문제에 대해 합의가 부족하다. 반전투쟁하면서 반전에 대한 입장이 다르고, 한미FTA 투쟁하면서 입장이 다르고... 안타깝다.

우리가 그동안 타 단위와의 연대경험이 부족하기도 하고 그러다 보니 선험적으로 재단한 측면도 있는 것 같다. 올해는 연대하기 위한 시도를 많이 했는데, 한계도 있었지만 단절되었던 그동안을 되돌아보면 성과도 분명이 있었던 것 같다. 서로가 서로에게 개입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개강하면 연대에 대한 노력을 다시 기울일 것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개입하는 과정.. 일희일비하지 않고.... 사람 한명 한명에 얽매이지 않는 꾸준함이 필요한 것 같다.

건준위장 민혜: 다시 운영위 자리에서 만날 때까지 각자의 공간에서 열심히 살자. 그리고 서로의 풍부한 경험들을 앞으로 홈페이지등을 통해 공유해나가자. 짠~~~

Posted by 행진

2007/09/08 21:16 2007/09/08 21:16
, ,
Response
받은 트랙백이 없고 , 댓글이 없습니다.
RSS :
http://stulink.jinbo.net/blog/rss/response/55

Trackback URL : 이 글에는 트랙백을 보낼 수 없습니다

우리는 전노협을 통해 1980-90년대를 들여다보며 우리 생에서 다시 그렇게 불꽃같은 세월과 마주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다.
우리가 발견한 것은 전노협이라는 노동자계급의 강렬한 빛만은 아니었다.
오히려 불굴의 투지로 삶 전체를 부딪쳐감으로써 자기를 철저히 부정함으로써 자유롭고자 했던 인간들이었다.
전노협 백서는 바로 역사 속의 그들에게 바친다.
설사 그들이 지금은 탕아가 되고, 적이 되고, 자신들이 경멸했던 산업사회의 쓰레기가 되고, 노동귀족이 되었다 할지라도 망설임 없이 그들의 1980-90년대 삶에 바친다.
- 전노협 백서 중에서

1부. 들어가며


지난 5월28일 한국일보가 서울지역 4개 대학 학보사와 함께 대학생 1,089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1987년에 6월 항쟁이 일어났다는 사실 자체를 잘 모르는 학생이 68%에 달했다. 그리고 6월 항쟁을 잘 모르는 이유에 대해서 이 중 57.3%는 ‘관심이 없어서’라고 답했으며, 23.4%는 ‘얘기해 주는 사람이 없어서’라고 했다.(한국일보, <대학생 10명 중 6명 "6·10항쟁 잘 모릅니다">)

이러한 현상은 다양한 측면에서 분석될 수 있을 것이나, 이 기획연재에서 그 이유를 분석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을 것 같다. 그보다 우리들 스스로는 얼마나 ‘87년’ 이라는 역사적 계기에 대해서 사고하고 있었는지, 위 설문조사에서 관심이 없다고 한 57.3%의 관심을 촉구하고, 얘기해주는 사람이 없었다고 하는 23.4%에게 얘기해줄 수 있는 다양한 시도를 했는지 등에 대해서 평가해보려고 한다. 결과적으로 위의 설문조사는 신자유주의 개혁세력들이 스스로를 87년 6월 항쟁의 투사이자 그 성과물로 표상시키면서 대대적인 ‘선전홍보’를 수행하고 있는 상황에서, 신자유주의에 맞선 아래로부터의 투쟁을 만들어 가는 우리들이 6월 항쟁의 성격을 놓고 ‘맞대결’을 벌이지 못하고 있음을 반증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7,8,9월 노동자대투쟁은 어떠한가? 모르긴 몰라도, 6월 항쟁에 비해 대중적 역사인식은 더욱 취약할 것으로 예상된다. 대대적인 기념행사들이 추진되고 수많은 언론에서 기획연재하는 6월 항쟁에 비해서, 노동자대투쟁과 이후의 노동운동의 전개과정은 소외되고 억압되어 있는 의제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이번 이랜드-뉴코아 투쟁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이라는 것이며 무엇보다 신자유주의의 위기를 체제 내적으로 극복하고자 지배계급의 노력 속에서 이러한 여성-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빈곤과 폭력은 더욱 다양하고 일상적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다. 과거, 대공장의 남성노동자들의 투쟁이 노동운동의 일정한 표상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면, 신자유주의 시대에 비정규직-여성 노동자들의 투쟁을 우리는 주요하게 볼 수 있는 것이며, 이에 따른 현재  노동운동의 새로운 국면과 더불어 각종 한계과 부침 역시 그 안에서 위치지어 지어 있음을 우리는 확인하고 있다.

현재의 모순을 지양하고, 보다 민중적이고 대안적인 생산의 관계와 삶의 양식을 고민하며 대안을 세계화하고자 하는 운동은 모순과 갈등, 즉 현실의 모순을 주되게 만들어 내고 있는 자본축적과 이에 맞서는 민중들의 투쟁의 양상을 중심으로 역사를 인식하고자 하는 데에서 부터 출발할 수 있을 것이다. 특정 시기의 자본축적체제와 국가의 통치체제는 하나의 몸뚱이에서 뻗어 나온 두 개의 머리이고, 특정 시기의 노동자들의 투쟁은 바로 그 ‘두 머리의 독수리’가 강요하는 ‘착취’와 ‘지배’를 넘어서기 위한 구체적 과정이기다. 이러한 관점에서 87년 노동자 대투쟁과 그 이후 20년의 노동운동 전개과정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다음의 다양한 층위가 분석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첫째, 세계적 차원에서의 자본축적 과정의 변모와 이 속에서의 헤게모니 국가의 역할을 살펴보고, 이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한국이라는 (半)주변부 국가의 경제성장 전략 및 통치체제를 분석할 수 있어야 한다. 둘째, 한국 지배계급의 정치-경제 전략 및 대중이데올로기 상의 변모를 분석해야 한다. 여기에서는 정권의 정책적 이데올로기적 공세, 노동현장에서의 노동통제 상의 변모를 파악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셋째, 위와 같은 조건에서 노동자들이 착취와 지배를 넘어서기 위해서 어떻게 투쟁했는지를 분석해야 한다. 이 부분이 바로 ‘노동운동’이며, 이는 또한 노동운동의 ‘이념’, ‘주체형성’, ‘조직’이라는 세 가지 측면으로 나누어 분석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이번 기획연재 역시 준비되었다.

<< 이번 기획연재가 현재의 노동운동 위기 극복 논의에 직접적인 도움이 되지는 못하더라도, 20년의 시야를 바탕으로 우리의 현재 실천을 보다 더 긴 역사적 맥락 속에서 객관화하여 되돌아보는 간접적으로나마 도움의 계기를 만드는 데에 일조할 수 있길 바랍니다. 총3회로 나누어 연재될 예정이며 이번호에는 아래 목차 2부까지를 담았습니다. 웹상으로는 요약문을 담았으니, 첨부파일을 꼭 확인해주세요. >>

more..

Posted by 행진

2007/09/08 21:06 2007/09/08 21:06
, , , ,
Response
받은 트랙백이 없고 , 댓글이 없습니다.
RSS :
http://stulink.jinbo.net/blog/rss/response/54

Trackback URL : 이 글에는 트랙백을 보낼 수 없습니다

비정규악법 폐기 투쟁의 분수령,
이랜드-뉴코아 여성노동자들의 투쟁


사용자 삽입 이미지
비정규악법 시행과 함께 폭발한 홈에버, 뉴코아 노동자들의 투쟁은 비정규직 보호법안의 기만을 여과 없이 드러내며 대중들의 전폭적 지지 속에 전국적 쟁점으로 부상했다. 신자유주의 정권은 그녀들의 투쟁을 ‘이랜드라는 기업과 노동자들의 대결’로 한정지으려하고, 불법 운운하며 공권력을 투입하고, 손배가압류와 직장 폐쇄, 구속 등의 각종 법적 조치를 통해 왜곡하고 탄압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시도들에도 불구하고 비정규악법의 기만이라는 하늘은 ‘보호’라는 손바닥으로 가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녀들은 계속해서 매장을 타격하고 거점 형성을 위한 점거를 계획해오고 있으며 다양한 단위들과 함께 불매운동과 같은 일상 선전을 진행하고 있다. 또한 다가오는 추석을 앞두고 전국 동시다발 매장봉쇄 투쟁 등의 계획을 준비하고 있다. 연대단위들 또한 매장점거와 매출제로 투쟁 등에 결합을 중심으로 연대를 지속해오고 있다.

하지만 점거와 타격을 중심으로 하는 투쟁을 지지 엄호하는 과정과 동시에 진행되어야 할 ‘쟁점의 전환’과 ‘투쟁의 대중적 저변 확보’를 위한 일상적 정치활동의 취약함은, 폭발적이었던 대중들의 지지와 전국적 쟁점형성이라는 조건을 지속적으로 이어오며 상승시키지 못하는 현재적 한계라 볼 수 있을 것이다. 그간 이랜드-뉴코아 투쟁의 주된 전술이었던 ‘점거’와 ‘매장 봉쇄’ 투쟁이 공권력 탄압과 내부 분열 조장, 거점 재형성의 어려움 등으로 인해 그 효과를 다하지 못하고 이랜드-뉴코아 투쟁이 점차 지구전으로 돌입해 가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는 지금의 투쟁이 비정규악법 폐기 투쟁의 중대한 분수령이라는 사실을 인식하며 다시금 전선의 확장을 위한 투쟁을 결의해야 할 것이다. 최근 노동부의 주선으로 교섭이 진행되고 있지만, 사측은 불성실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어 실질적인 교섭전망은 불투명해 보이며 오히려 투쟁전선은 이완될 가능성이 존재한다. 결국 추석을 전후로 한 투쟁이 향후 투쟁의 성패를 가르게 될 것이며, 하기에 보다 공세적인 돌파가 요구되는 시점이다.

이랜드 투쟁, 승리의 열쇠는 어디에 있는가.


이랜드vs노동자의 대결구도를 넘어 비정규악법 폐기 투쟁으로 나아가자.

이랜드 투쟁의 전국적 쟁점화 이후 투쟁의 의의를 축소시키기 위한 지배계급의 시도는 투쟁의 대상을 ‘이랜드’라는 기업에 국한시켜 실제 사태의 원인인 비정규악법에 대한 발언을 봉쇄하고 있다. 또한 이들의 투쟁을 박성수 개인, 이랜드라는 일개 기업, 같은 매장에서 장사하는 소상인들 등과 대립하는 것으로 보이게 만듦으로써 투쟁의 확장을 가로막으려하고 있다. 이러한 왜곡에 맞서 이랜드 노동자들의 투쟁을 보편적인 서민들의 삶의 문제로 제기하지 않는다면 그녀들의 투쟁 또한 특수한 몇몇 사람들의 권익다툼에 그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금의 사태가 이랜드 노동자들의 문제로만 그치지 않으며, 금융화의 필연적 결과로서의 구조조정, 불안정노동 확산으로 인한 민생파탄을 폭로하고 비정규악법 폐기 투쟁을 적극 제기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여성노동권을 적극 발언하자.

이랜드 여성노동자들은 대부분이 비정규직인 이 땅 여성노동자들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신자유주의 경제 위기 이후 여성노동자들은 더욱 유연하고 관리하기 쉬운 노동력으로서 비정규직으로 노동시장에 대거 유입되었다. 그녀들은 기존의 성별분업의 모습 그대로 대거 저임금/장시간/서비스직 등의 조건에서 여성적 이미지를 착취당하며 부차화 되어왔다. 이러한 자본의 이윤형성과 생존을 위한 필수적 전략으로서 ‘여성의 노동권 제약’에 대해 발언해 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일상적이고 다양한 지역별 연대 운동을 활성화하자.

이랜드 투쟁은 홈에버, 뉴코아 등 지역 주민들의 생활의 거점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투쟁이다. 상암점에서의 점거에서도 확인하였듯 지역에서의 지지기반 형성은 투쟁의 성패를 좌우하는 중요한 지점이다. 특히 추석을 앞두고 더욱 심해질 노동자-주민 간의 갈등 조장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지역에서의 이해와 지지, 그리고 동참을 끌어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현재 지역별로 지원대책위가 존재하지만 활동이 그다지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지대위 결합이나 공동투쟁진행 등의 계획을 적극적으로 고민할 수 있어야겠다.

선도적인 투쟁을 기획하고 헌신적인 대중운동을 진행하자.

앞선 발언의 얼개로 대중들을 끊임없이 만나는 것과 함께, 쟁점을 확장시킬 정세적이고 선도적인 투쟁들이 기획될 수 있어야 한다. 이 투쟁을 지속적인 ‘정치적·전국적 쟁점’으로 만들 수 있는 다양한 대중운동 계획을 고민하고 일상적인 정치 활동을 수행하자.

개강과 함께 서명운동을 중심으로 다양한 대중운동을 기획하자!


사용자 삽입 이미지
앞서 언급했듯 이랜드-뉴코아 향후 투쟁에 있어 9월 말까지의 흐름은 정말 중요하다. 특히 9월 말 추석 전후는 이랜드 자본의 매출이 가장 많을 때이며, 이랜드-뉴코아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가정에서의 압박이 가중될 수밖에 없는 시기이기에 집중적인 연대가 필요하다. 또 투쟁의 대상을 끊임없이 한정짓고 특정한 권리들의 충돌로 몰아가려하는 시도들이 추석이라는 시점을 계기로 폭발적으로 드러날 수 있다는 점에서, 개강과 함께 공세적으로 대중들의 지지를 확장하고 쟁점을 상승시키는 투쟁을 진행하는 것이 필요하다 할 것이다. 비정규악법 폐기와 이랜드 사태 해결을 위한 서명운동을 진행하면서 학교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이랜드 문제에 대해서 다시금 고민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가자. 1차적으로 추석까지의 공세적인 진행으로 실질적으로 ‘대중의 지지를 확장하는 투쟁의 무기로서’ 효과를 창출할 수 있을 정도의 수위로 서명을 조직하자.

서명운동과 함께 다양한 연대 활동을 계획하자. 서명운동 자체에서도 학내 노동자 만나서 서명받기, 학교 주변 알바생 서명받기 등 다양한 주체화의 경로 및 연대 확장의 경로를 고민해 볼 수 있을 것이며, 서명운동을 통한 기반 위에서 학교-지구별 간담회, 모금 운동, 축제 기간 연대 주점 등을 기획하고 적극적으로 추진하도록 하자. 이 과정에서 광장사업 몇 번을 더 배치하는데 그치기보다는 각 대중운동단위의 싸이클 사업-개강맞이 사업, 축제, 학술제 등-과 유기적으로, 대중의 삶과 마주치는 방식으로 계획이 구상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Posted by 행진

2007/09/08 20:58 2007/09/08 20:58
, , , ,
Response
받은 트랙백이 없고 , 댓글이 없습니다.
RSS :
http://stulink.jinbo.net/blog/rss/response/53

Trackback URL : 이 글에는 트랙백을 보낼 수 없습니다

# 이야기 하나.

1630년대 중반 네덜란드 튤립 버블 당시의 기록에 따르면, 누군가 황소 1.000마리를 팔아 튤립 뿌리 40개를 사고도 득의의 웃음을 터뜨렸다고 한다.

16세기 후반 사치품 정도로 여겨졌던 튤립은 1630년대에는 튤립 구근의 공급이 늘어나 가격이 떨어졌고, 일반 대중도 찾기 시작했다. 이런 대중화에 따라 원예사들은 튤립 재배에 ‘우아하고 제한된 방식’ 대신 ‘공격적이고 기업가적인 방식’을 도입했다. 직조업자, 목수, 제분업자, 대장장이, 작은 배의 선장 모두가 원예 열풍에 사로잡혔다. 1630년대 중반이 되자 꽃은 계절적인 상품이라는 요인도 가세해 공급이 수요를 쫓아가지 못했다. 당연히 튤립의 가격은 매우 가파르게 상승했다.

튤립가격이 치솟자, 암스테르담의 증권거래소는 튤립 거래를 아예 상장 종목으로 내걸기 시작했다. 돈부터 받고 물건은 나중에 건네주는 현대판 ‘선물 거래’가 판을 치는가 하면, 이 북새통에 상인들은 이중 삼중 계약으로 돈을 챙긴 뒤 부도를 내기도 했다. 한 번은 수입 화물을 싣고 온 선원에게 수고의 뜻으로 주인이 훈제 청어 한 마리를 내주었더니, 그는 무심코 선주 사무실의 ‘양파’ 하나를 들고 나가 기분 좋게 점심 식사를 마쳤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양파는 ‘셈페르 아우구스투스’(황제 튤립)라는 튤립 구근이었다. 프랑스 경제학자의 계산에 따르면 당시 ‘셈페르 아우구스투스’ 튤립 구근은 한 뿌리에 현재의 한화 4,000만 원이나 된다. 4,000만 원짜리 점심을 먹은 선원은 이유도 모른 채 옥에 갇혔다.

# 이야기 둘.

" (...) 본인의 실패한 인생을 회고함으로써 누군가 이글을 읽어본다면, 본인의 잘못된 삶의 모습을 보고 답습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 또한 가지고 있습니다.

(...) 본인은 주식과 선물옵션을 21년째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처럼 활황장세에 파생에 실패한 파생인의 기록을 남김으로 해서, 파생에 위험성을 고지함과 동시에 잘못된 시장의 생리를 파헤쳐 누군가 또다른 피해자가 나오지 아니하길 간절히 바랄 따름입니다. 파생시장은 투자의 개념이 아닌 도박성을 띄운 상품입니다. 인간의 본성 속에 깊게 자리한 물욕이란 더러운 욕심이 만들어낸 허울 속에서, 인간이 만들어 놓은 더러운 도박판인 것이지요.

(...) 이제 과거의 잘못을 뉘우치면서 그리고 주식이나 파생을 하시는 분들이 읽어보면 좋을 것 같아서, (...) "

위 글은 한 증권전문사이트에서 필명 '시골국수'로 활약하던(이른바 파생상품투자의 '재야고수'로 불리던) 한 주식투자가의 유서이다. 그는 유서를 남기고 잠적한 지 2주 후인 6월 말, 숨진 채로 발견되었다고 한다.

다른 듯 보이는 위의 두 이야기에는 커다란 공통점이 하나 있다. 바로 ‘투기적인 시장구조’가 그것이다.

여기서 차이점이 있다면 16세기의 튤립이 오늘날 탄소배출권, 광고시간, 통신주파수대역, 에너지, 기후 등등의 파생상품과 같은 이상한 것들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만약 ‘봉이 김선달’이 현대를 살았다면 결코 많은 돈을 벌지 못했을 것이다.  ‘물 사유화’가 진행되고 있을 뿐 아니라, ‘물’ 투자 상품도 이미 거래되고 있으니까. 

사용자 삽입 이미지
TV를 틀기가 무섭게 금융상품광고가 쏟아지고, 서점가는 재테크 관련 서적들로 넘쳐나고, 심지어 요즘 대학가에서 소위 가장 잘 나가는(?) 동아리는 ‘부자학연합동아리’라고 한다. 모든 사람들이 투자를 잘하면 언제든지 부자가 될 것처럼 사회분위기를 조장하지만, 최상위 20%와 가장 낮은 계층 20%의 소득 격차는 8배로 사상 최대치로 벌어졌고 금융거래가 불가능한 사람만 하더라도 500만 명 이상으로 추산된다고 한다. 미국에서는 서브프라임모기지(Sub-prime Mortgage) 사태로 인해 허리케인 ‘카트리나’ 때보다도 많은 200~300만가구가 집을 잃을지도 모른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은 자신이 투자한 주식의 등락에 안절부절못하는 이른바 스톡홀릭(stockholic·주식중독)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면 일확천금을 꿈꾸는 사람들의 도덕성을 탓해야 하는 문제일까? 아니면 기본적인 생활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대출을 해야만 하는 사람들의 능력이 부족해서인가?

앞서 이야기했듯이 문제의 본질은 ‘투기적 시장구조’이다. 이는 특히 오늘날의 경우, ‘주주가치의 극대화’를 위해 노동자민중의 일방적 희생을 강요하는 ‘금융(세계)화’를 통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간단하게나마, 현재의 금융세계화의 특징에 대해 살펴보자.

세계경제는 1970년대 이후 이윤율이 하락하면서 금융화가 재개된다. 1970년대의 ‘금융세계화’가 은행을 중심으로 진행되었다면, 1990년대 이후에는 증권시장을 중심으로 하는 신자유주의적 금융세계화가 진전된다. 보통 시장이 세계화된다고 하는데, 여기서 시장은 증권시장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다.

증권시장의 주요 행위자는 기관투자가와 법인자본이다. 연기금을 매개로한 기관투자가는 현재 금융화의 핵심 동력이라 할 수 있다. 연기금은 연금과 여러 가지 기금들을 말하는데, 다양한 펀드들을 포함한 대규모 공무원 연금 같은 것이 이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미국은 개인이 납부한 연금적립금을 퇴직 뒤 되돌려 받는 적립식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데 최근 우리나라도 이런 시스템으로 가고 있다. 기관투자가들은 연기금의 수익률을 올리기 위해 단기투자나 위험을 무릅쓰고 투자를 하기도 하고, 투자대상 기업에 구조조정 압력을 넣어 투자한 기업의 시장가치를 높이려는 노력을 하게 된다. 여기서 연기금 자체가 노동자의 발목을 잡는 사이클을 형성하는 역설이 발생하는데, 거대 규모가 된 연기금의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주식시장에 투자하는데 연기금이 대주주이니까 투자대상 기업에게 강력한 구조조정을 요구하게 된다. 구조조정의 가장 손쉬운 방법은 인원감축이고, 그러면 기업의 시장가치는 올라가게 된다. 또한, 산업지배적인 금융그룹이 등장하게 되는데, 제조업 기반을 가졌던 기업들이 주소득원을 더 이상 제조업에서 찾지 않고 금융업 쪽으로 변신하여 복합기업을 이루는 형태가 늘어난다. 대표적인 예로 제네럴일레트릭(GE)를 보면 “주주 가치 극대화를 통한 시장 가치 경영”을 내걸고 핵심적으로, 1. 기업 인수와 기존 사업 부문 매각, 2. 대규모 정리 해고 등 ‘산업적’ 비용 절감, 3. 금융서비스 부문 등으로의 진출(‘GE금융서비스’는 현재 GE의 이익구조에서 30%이상을 차지하는 핵심 부문.) 등 구조조정과 정리해고를 강력하게 추진하면서 기업의 시장가치를 높이려 했다. 그리고 이를 통해, 1980년과 1998년을 비교했을 때, 주주들에게 돌아간 몫이 1200%증가했다고 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또한, 현재의 금융세계화 국면에서는 전 세계의 금융이 거미줄처럼 얽혀있다. 혹자들은 ‘미국 경제의 재채기에 다른 나라들은 몸살을 앓는다.’는 표현을 하기도 한다. 초국적 기업이 자회사 형태를 통해 복잡한 상호투자의 네트워크를 형성하게 되는데, 이 투자망이 매우 복잡하게 얽혀있어서 국가를 단위로 보호주의적으로 분리되는 것은 불가능하게 된다. 어떤 국가도 독립적 경제를 분리시켜낼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하루에도 1조 달러가 넘는 투기자본이 이익을 쫓아 국경을 넘나들고 있는 상황은 약간의 위험신호가 언제 어느 때 태풍으로 돌변할지 알 수 없게 되었다. 97년 11월 일본 은행들이 우리나라에 대출했던 대규모 자금을 한꺼번에 회수한 것이 외환위기 발생의 주원인 중 하나였다는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덧붙여, 미국으로 군사력이 집중되는 점에도 주목해야 한다. 특히, 9.11이후의 상황에 주목할 필요가 있는데,  금융세계화가 진전됨에 따라 세계적 통치성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동시에 군사세계화가 진전된다.(금융세계화와 군사세계화는 평행적으로 발전.) 신자유주의 세계화로 남반구 국가들의 국가구조 자체가 해체에 가까운 상태로 몰리고 발전주의의 환상이 힘을 잃고 있어 남반구 국가들이 기존의 세계질서에서 이탈할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미국은 압도적 군사력의 우위를 바탕으로 세계적 통치성을 확보하게 된다. 이는 9.11 이후 ‘예방전쟁’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군사세계화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이며, 이라크 전쟁이나 전략적 유연성의 문제도 금융세계화를 위한 세계적 통치성의 문제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외환위기 이후 10년, 한국사회


IMF 이후 한국에서의 10년은 곧 금융화의 진행과 금융세계화로의 적극적인 편입과정이었다. 즉, 사회의 모든 요소들이 금융적 이익의 추구가 가능한 형태로 재편되었다는 것이다. 김대중 정권은 IMF를 경유하면서 4대 부문 구조조정 등을 제기하면서 기업의 소유지배구조를 개혁하고 주식시장을 자유화함으로써, 기업과 은행을 주식시장에서 거래 가능한 형태로 전환시켰고, 주식시장을 개방하여 초민족적인 자본 거래가 가능토록 하였으며, 주주와 투자자의 가치를 극대화하기 위해서 정리해고, 노동유연화가 대대적으로 진행해왔다.

최근 시행된 비정규개악법은 정부 차원에서 이것이 안정적으로 진행될 수 있도록 제도화하고 법의 힘으로 뒷받침하겠다는 강력한 제스추어로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결과 금융(세계)화에 적응한 기업들은 주가폭등, 수출확대를 경험했지만, 세계적 금융자본의 한국 경제에 대한 지배력과 경제 불안정성은 끊임없이 커져왔다. ‘해외투자자’들은 경제위기를 틈타 국내기업의 지분을 헐값에 인수한 후 구조조정으로 주식가치를 키워 되팔아 막대한 이득을 챙겨 나갔다. 이 과정에서 농촌 붕괴, 고용불안, 빈곤의 확산으로 노동자 민중의 삶의 위기는 오히려 더욱 심각해졌고, 특히 여성들에게는 그 위기를 완충하는 역할이 강제되고 있다.

한미 FTA로 상징되는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이러한 신자유주의 재편의 수준을 한 단계 더 높여, 국내 재벌의 금융화를 촉진하는 한편 금융서비스, 사업서비스를 개방하여 한국사회 법과 제도 전반을 금융자본이 활동하기에 적합하도록 재편하겠다는 것이다. 이와 동일한 맥락에서 최근 통과된 ‘자본시장통합법’은 노무현의 동북아 금융허브론에 있어 결정적 준거점인 만큼, 이를 단순히 금융산업 발전방안이 아니라, 국가 발전 전망으로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고부가가치 서비스업을 주력산업으로 하는 통상국가로의 발전전망). 왜냐하면 초민족적 자본의 세계적 순환의 축(hub)이 되겠다는 것은 곧 초민족적 자본의 투자가 활성화되는 국내 조건을 조성하겠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이는 한미 FTA가 ‘투자와 무역의 자유화’ 그 중에서도 ‘투자자-국가 소송제’로 대변되는 ‘투자의 자유, 투자자의 보호’를 핵심으로 한다는 점과 일맥상통한다. 이는 또한 한미FTA가 미국산 소고기 수입을 둘러싸고 드러나고 있는 문제들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민중들의 삶과 가치와는 무관한 철저히 자본을 위한 협정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본질은 ‘금융화’다!
‘금융화’에 대한 전방위적 비판을 수행하자!


최근 서브프라임모기지론 부실사태로 인한 세계경제위기에 대한 우려는 단순히 주식시장 자체의 불안정성을 뛰어넘는 문제다. 금융화를 핵심 동력으로 하는 현재의 자본주의가 전염되는 불안정성을 띄고 있으며, 예측할 수 없는 백척간두의 정점에 서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최고경영자들과 금융자본가의 소득이 이전에 비해 10배, 20배씩 증가하기 위해서는 항상적인 고용불안과 저임금에 시달려야 하는 노동자들이 10배 20배 증가해야만 하는 것이다. 절벽을 향해 질주하고 있는 금융세계화가 제시하는 길이 비정규악법과 한미FTA, 전쟁과 폭력이라면, 노동자-민중이 밝혀가야 하는 길은 비정규악법폐기와 한미FTA저지, 그리고 전쟁과 폭력의 종식이어야 한다. ‘(금융)세계화’라는 단어는 지난 10년간 아주 바빴다. 이제 쉴 때도 되었다. 하반기,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본질,  ‘금융화에 대한 전방위적 비판을 진행하자!

Posted by 행진

2007/09/08 20:48 2007/09/08 20:48

Trackback URL : 이 글에는 트랙백을 보낼 수 없습니다

[9호] 9호를 발간하며

다들 개강 잘 하셨나요?

이번 뉴스레터 9호는 나름 ‘개강특집호’입니다. 비록, 개강과 동시에 발행되지 못해 죄송스럽네요. 하지만, 아직 개강이 얼마 지나지 않았으니 충분히 유효할거라 생각합니다. --;;

레닌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고 합니다.

“미래의 사람들은 우리보다 훨씬 행복하게 살꺼야. 적어도 지금처럼 잔혹한 시절은 아니겠지.”

물론 그가 꿈꾸던 미래의 모습은 당연히 지금과는 다른 모습이었겠죠. ^^

비록 그가 어떤 뜻으로 이런 말을 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들은 스스로 미래를 너무 비관적으로 이야기해온 것은 아닌지,

FTA가 체결되고, 비정규악법이 시행되면, 대통령이 누가되던지 민중들의 삶은 더 잔혹해 질 거라는 식으로...

지키는 것에 급급하다 보니, 꿈꾸는 것을 게을리 한 건 아닌지.

2학기엔 우리들이 꿈꾸는 것들과 실천하는 것들이 좀 더 가까워지길 기대해 봅니다.

잡답이 길었네요. 아무튼 이번 뉴스레터에서는 <Main Voice>「‘금융화’에 대한 전방위적 비판을 수행하기 위하여」라는 글을 실었습니다. ‘금융화’가 현재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본질이라면, 이에 대한 투쟁은 결코 우회할 수 없을 것입니다. 아직은 구체적인 방법에 대한 고민이 부족한 게 사실이지만, 월례포럼이나 여러 일상적인 실천들을 통해 동지들과 함께 부족한 부분들을 채워봤으면 합니다.

다음으로「이랜드사태 해결! 비정규악법 폐기!」라는 제목의 제언 형식의 글을 실었습니다. 이미 개강하면서 여러 학교에서 이와 관련한 실천을 다양하게 진행하고 있으실 텐데요. 지난 12차 행진 운영위에서 논의한 서명운동을 비롯한 각 캠퍼스에서의 다양한 실천들을 홈페이지를 통해 꼭 공유 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기획연재>「87년이후, 한국노동운동 20년史」라는 제목으로 이번호부터 총 3회에 걸쳐 연재됩니다. 20년의 시야를 바탕으로 우리의 현재 실천을 보다 더 긴 역사적 맥락 속에서 객관화하여 되돌아보는 데 간접적으로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기대되시죠? 분량이 많아 웹상으로는 요약문을 담고, 파일을 첨부했으니 파일도 꼭 확인해주시기 바랍니다.

마지막 기사로는 「12차 행진운영위 엿보기」라는 글을 실었습니다. 사실 운영위 뒤풀이 자리에서 개강을 맞는 여러 동지들의 고민을 살짝 들어본 기사인데요. 이 기사뿐만 아니라 운영위 안건지 역시 행진 홈페이지 회의자료실에 있으니 꼭 확인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회원마당에는 여름교육활동 '더불어숲' 봉화 교장선생님, 대구대 경미 동지가 '교활 수기'를 보내주셨고, 대안세계화 학생포럼 불안정노동포럼 기획단에 참여했던 고려대 성영동지가 후기를 보내주셨습니다.

Posted by 행진

2007/09/08 20:46 2007/09/08 20:46
,
Response
받은 트랙백이 없고 , 댓글이 없습니다.
RSS :
http://stulink.jinbo.net/blog/rss/response/51

Trackback URL : 이 글에는 트랙백을 보낼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