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분석] 금융위기는 어디에서 도래했는가?



한 시기가 마무리되려 하고 있다. 신호는 몇 년 전부터 있어 왔지만, 최근의 경보음은 그 어느 때보다 컸다. 80년 남짓한 미국 헤게모니의 끝자락에 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이전보다는 훨씬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 미 정부의 7000억 달러라는 공적자금 투입을 골자로 한 구제금융안이 현실화되면 위기가 봉합될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지만, 아무도 그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진 않다. 이러한 사상 초유의 위기는 도대체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는가? 


1. 신자유주의의 도래

신자유주의는 전후 세계를 지배한 경제 정책이었던 케인스주의와 그를 뒷받침하는 브레튼우즈 체제가 해체되면서부터 등장한다. 1929년 미국 증시를 폭락시키고 이후 대공황을 불러온 금융자본을 억압하기 위해 미국은 1933년 글래스-스티걸 법을 제정하여 은행, 증권, 보험 등 금융업종간의 칸막이를 쳤다. 특히 고객 예금을 가진 상업은행이 위험이 큰 투자은행의 업무를 하지 못하게 한 것이 핵심이다. 또한 세계2차대전 이후에 케인스주의는 저금리와 완만한 인플레이션을 통해 금융의 이익을 축소하고, 금융자본의 국제 이동을 막았다. 산업자본으로의 투자와 소비를 촉진하기 위한 재정적자 정책 또한 이루어졌다. 세계적인 화폐제도로는 금-달러 본위제와 고정환율제가 유지되었는데, 이를 약속한 것이 1944년의 브레튼우즈 협정이다.
금융 억압, 부채경제를 특징으로 한 케인스주의 정책이 효과를 낼 수 있었던 것은 미국의 법인자본주의가 이윤율을 회복하고, 호황기에 있었던 시기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그러나 이윤율은 1965년에 정점을 도달, 이후 점차 하락하기 시작한다. 설상가상으로 마셜플랜과 한국 · 베트남 전쟁으로 인해 달러를 마구 찍어낸 결과, 스스로 약속했던 금-달러 본위제 (35달러를 금1온스로 바꾸어주겠다는 약속)를 지키지 못하고 1971년 미국 대통령 닉슨은 금창구를 폐쇄한다.

번영의 시대에 기여했던 원칙인 케인스주의가 70년대의 위기를 막아내지 못하자 이전부터 케인스주의를 비판해왔던, 금융자본을 뒷받침하는 이론들이 힘을 얻는다. 금융자본은 헤게모니를 다시 찾아오려 한 것은 물론이다. 결국 1979년, ‘불의의 일격’ 또는 ‘볼커의 반혁명’ 이라 불리는 사상최대의 금리인상이 이루어진다. 그리고 금리 인상으로 찾아온 금융 자본의 이익 뒤에는 남미의 외채위기를 시작으로 한, 무수히 많은 사람들의 생존을 위협하는 위기가 뒤따라 왔다.

1980년 글래스-스티걸 법에도 변화가 오고, 규제는 점점 완화된다. 투자은행들은 막대한 차입자금을 첨단 금융상품에 투자해 천문학적 수익을 거뒀고, 이들이 벌어들인 돈은 세계화폐로서의 달러의 지위를 지탱해주었다. 미국 내에서도 위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어서 간간이 규제 강화 목소리가 제기됐으나 이내 묻히고 말았다. 90년대 클린턴 대통령은 금융 규제를 더 풀었다. 유럽의 은행 겸업화 추세에 뒤쳐지고 있다는 비판에 99년 '그램 리치 브릴리'법을 만들어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을 일부 겸업하도록 허용했다. 금융자본은 점점 더 세계 곳곳에 깊숙이 침투해갔다. 



2. 파생금융상품

글래스-스티걸 법에 변화가 오기도 전에, 브레튼 우즈 체제가 붕괴하고 고정환율제에서 변동환율제로 국제화폐제도가 변하자 ‘파생금융상품’ 이라는 것이 등장했다. 파생금융상품은 말 그대로 외환·예금·채권·주식 등과 같은 기초자산으로부터 파생된 금융상품을 말한다. 변동환율제로 전환되면서 불안정성이 심화되자 환차손(환율의 변동으로 인하여 발생하는 손해. 환율이 오르면 수입 회사가 손해를 보고, 환율이 내리면 수출 회사가 손해를 입는다.)을 피하기 위하여 1972년 미국에서 처음 도입되었다.

파생금융상품은 그 종류도 매우 많을뿐더러, 대표적인 상품인 선물(future)·옵션(option)·스왑(swap) 등이 있는데, 이들 파생상품을 대상으로 하는 선물 옵션, 스왑 선물, 스왑 옵션 등 2차 파생상품, 또 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3차 파생상품 등, 말 그대로 계속 파생되는 것이 그 특징이다. 모든 파생금융상품을 다룰 수도 없으니, 최근의 위기를 파악하는데 필요한 파생금융상품에 대해 간단히 보도록 하자. 여기에서는 ‘신용파생상품(CDS와 CDO)’과 ‘옵션’ 대해서 보면서 위기를 추적해 보겠다.


- 신용 파생상품

신용 파생상품(credit derivatives)은 점점 더 복잡해진 금융 퍼즐의 마지막 조각이며, 미국발 위기의 뇌관이었다고 이야기 되고 있다. 신용 파생상품은 본질적으로 대출에 대한 보험처럼 특정 기업의 신용도에 배팅을 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두 가지 기본형이 있는데, 바로 신용디폴트 스왑(CDS; Credit Default Swap)과 부채담보부 증권(CDO; Collateralized Debt Obligation)이다.

먼저 CDO에 대해 보자. 표준적인 CDO는 은행 등 금융회사가 특별목적회사에 대출이나 채권 등 채권증서를 팔고, 특별목적회사는 그것을 쪼갠 뒤 각 조각들과 연계된 증권을 발행하는 방식을 취한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연쇄구조를 파악하려면 이 합성 CDO가 무엇인지에 대해 알면 된다. 메릴린치나 리먼 브라더스, 베어스턴스 등의 투자은행들과 시티그룹, BoA 등 거대 상업은행의 투자은행 자회사들은 주택융자 전문회사나 저축금융기관, 상업은행 등으로부터 주택융자를 사들여 그것을 새로운 증권인 MBS(주택담보증권)로 전환시켰다.

이를 부동산의 ’증권화’ (securitization, 채권과 부동산 등을 담보로 새로운 증권을 발행하는 것)라고 부른다. 투자은행들이 증권화과정에서 막대한 수수료 수입을 챙겼음은 물론이다. 앞서 말했지만 파생상품은 2,3차로 파생되는 것이 특징이다. 증권화 과정 또한 같은 길을 걷는다. 투자은행들은 1차 증권화 과정에서 발행된 MBS에 카드론, 자동차론, 기업대출, 대학생 학자금론 등을 담보로 발행된 다른 증권을 혼합하여 새로 합성 CDO를 만든다.

1970년대부터 현대 금융시장의 발전 속도를 따라잡기를 포기한 규제당국은 금융회사들이 어떤 증권을 사거나 팔 수 있는지에 대해 일일이 결정을 내리고 그런 결정을 규정화하는 대신 ‘신용등급에 의존하는 법규’를 만들었는데, 구체적인 결정을 내리는 일을 신용평가회사들에게 넘긴 것이다. 이렇게 권력을 넘겨받은 무디스, 스탠더드앤푸어스 등의 국제 신용평가회사는 CDO의 조각들을 고평가해 주었다.

그러나 CDO의 가치를 평가하는 데 쓰인 컴퓨터 모델은 그 바탕이 되는 부채보다 CDO의 조각들을 더 높게 평가하는 것을 복잡한 방식으로 정당화하는 것일 뿐이며, 이런 컴퓨터 모델들 대부분은 사실 CDO거래를 하는 은행들 스스로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미국에서 어느 신용평가회사 직원이 이런 모델의 세부적인 내막을 알게 되면, CDO 거래를 하는 은행이 많은 돈을 주고 그를 스카우트 해갔다. 그래도 신용평가회사들은 자신들이 돈을 버는데 방해받지 않으니 이러한 부분에 대해 전혀 손을 댈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이제 CDS에 대해서 보자. 가장 단순한 형태의 CDS는 대출과 보험을 결합시킨 것으로, 예를 들어 A은행이 B회사에 제공한 대출을 놓고 미국의 투자은행‘C’와 일본의 보험회사‘D'가 CDS 계약을 체결할 수 있다. 이러한 거래에서 보험회사 D는 B회사가 채무불이행(디폴트) 하지 않는 이상 돈을 벌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A은행에 대해 돈을 빌려준 것과 비슷한 위치에 설 수 있다. CDS는 결국 특정 기업이 채무를 불이행할 것인지 아닐 것인지에 대한 여부를 놓고 배팅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당연히도 배팅에서 이긴 쪽이 돈을 지불하게 된다. 은행들은 이런 CDS를 통해 자신들이 기업들에게 빌려준 돈을 되돌려 받지 못할 위험, 즉 신용위험을 외부로 이전시킨다. 은행들은 어느 기업이 채무를 불이행할 경우 해당 대출금을 제3자로부터 지불받을 수 있다. 보험회사인 AIG가 긴급구제 조치를 받을 정도로 급격히 상황이 안 좋아진 것은 이 CDS라는 파생상품에 투자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CDO와 CDS는 밀접한 관계에 있는데, 이는 금융혁신으로 인해 등장한 합성 CDO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일반적인 CDO와 다른 점은 금융회사가 특별목적회사에 파는 것이 대출이나 채권이 아니라 바로 앞서 설명한 CDS라는 점이다.

이렇게 되면 특별목적회사의 자산은 CDS가 된다. 이렇게 되자 합성 CDO의 근거가 되는 채권을 갖고 있는 기업은 합성 CDO라는 게 만들어졌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특별목적회사의 투자자들은 물론 그 모기업 격인 금융회사도 합성 CDO의 근거가 되는 대출이나 채권을 만져볼 일이 없다.

2000년 이후 주택경기 호황으로 인해 시작된 주택담보대출 - 주택담보증권(MBS) - CDO로 이어지는 파생상품의 연쇄구조는 대출자들이 착실하게 빚을 갚는 구조라면 문제없지만 어느 한 고리에 문제가 발생하면 전체가 위험에 빠지게 된다. 고금리로의 전환과 주택경기의 악화로 대출자들이 빚을 갚을 수 없게 되면서 담보대출로 시작된 파생금융상품 전체가 연쇄적으로 부실해지는 결과를 낳은 것이 바로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다. 신용등급이 가장 낮은 (서브 프라임) 대출자들이 주택을 담보로 해서 돈을 빌리고, 부채의 증권화 → 주택담보부증권(= MBS) 발행 → MBS와 다른 채권을 섞은 CDO 발행. 이 연쇄구조가 주택가격 하락과 금리 인상으로 인해 채무 불이행 급증 → MBS 시장 붕괴 → CDO 시장 붕괴 → 국책 모기지 회사 위기 → 대형 금융기관 파산 → 헤지펀드 손실의 순서로 무너지게 된 것이다.

이 글에서 우리는 몇 가지 예만을 들어 아주 쉽게 설명했다. 파생금융상품 시장은 이보다 훨씬 복잡하게 얽혀 있으며 금융혁신으로 인해 몇 단계에 걸쳐 금융상품이 파생되었기 때문에 CDO에 투자한 투자자들은 이 증권이 처음에 무엇을 가지고 만들어졌는지 알 수 없다. 이러한 그물망은 또한 전 세계에 퍼져 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도 지금의 위기의 시발점이 된 MBS가 어디에 숨어있는지 찾아낼 수가 없고, 따라서 이 위기가 어디까지 영향을 미칠 것인지 정확히 예측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 옵션

옵션이란 미래의 어느 시점에 어떤 물건을 사거나 팔 수 있는 권리를 가리킨다. 살 수 있는 권리를 콜 옵션, 팔 수 있는 권리를 풋 옵션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우리가 한 달 뒤에 일본으로 여행을 갈 계획을 갖고 있다고 해보자. 한 달 뒤의 엔화 가치가 지금보다 떨어진다면 같은 돈으로 더 많은 엔화를 환전해 받을 수 있기 때문에 평상시 꿈꾸어왔던 값비싼 스시를 먹으러 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엔화의 가치가 상승한다면 그런 꿈을 접고, 편의점에서 도시락을 사먹는 것으로 만족해야 할 것이다.

이처럼 엔화의 가치가 상승할 가능성에 대비하기 위해 오늘부터 한 달 뒤에 미리 정해진 환율로 엔화를 살 수 있는 권리를 누군가로부터 사둘 수 있다. 예를 들어 오늘의 환율이 100엔당 1000원이라고 한다면, 한 달 뒤에도 이 환율로 환전할 수 있는 권리를 오늘 사두는 것이다. 다만 이런 환전의 권리를 사려면 그 대가로 ‘프리미엄’ 이라고 불리는 수수료를 외환 브로커에서 지급해야 한다. 여기까지 했다면 그것은 바로 ‘엔 콜 옵션’ 을 매입한 것이다.

엔 콜 옵션은 환율 변동에 따른 손실을 막아준다는 점에서 보험계약과 같다고 보면 된다. 만약 한 달 뒤에 100엔당 900원으로 엔화의 가치가 떨어진다면 굳이 엔 콜 옵션을 사용할 필요는 없다. 언제 콜 옵션을 행사할지는 매입자가 스스로 선택하면 된다. 사용하지 않을 경우 콜 옵션은 만기가 되어 사라진다. 반대로 100엔당 1100원으로 엔화가치가 상승했을 땐 콜 옵션을 사용하는 것이 유리하다. 그러나 실제로 이러한 콜 옵션에 붙는 수수료는 매우 높기 때문에, 앞서 예를 들었던 것처럼 외국 여행을 위해 콜 옵션을 사 두지는 않으며, 훨씬 큰 금액을 거래하는 대형 은행이나 기업들이 주로 활용한다. 통화옵션에서 가장 중요한 변수는 통화의 변동성이다. 그리고 투기 자본은 이러한 변동성을 예측하여 베팅을 한다. 예를 들어 누군가 최근 심각한 한국의 원-달러 환율의 폭등을 예상하여 달러 콜 옵션을 사두었다면, 엄청난 이익을 챙길 수 있는 것이다.

통화옵션에 대해 자세히 본 이유는, 최근 남한에서 ‘키코(KIKO)’ 라는 환헤지(환위험 회피용) 통화옵션상품에 중소기업들이 대거 가입했다가 흑자도산을 하는 등의 일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키코는 수출기업을 대상으로 환율이 미리 정한 상한선과 하한선 사이에 움직일 경우 약정 금액을 약정 환율로 팔 수 있는 권리를 주는 통화옵션상품이다. 예를 들어 A라는 수출회사가 키코 약정을 달러당 1000원~1050원에 했을 경우, 계약한 달러 가격 내에서 환율이 하락하면 기업에 이익이 발생한다. 왜냐하면 달러당 1050원에서 1000원으로 환율이 하락했을 경우에도, 여전히 달러당 1050원으로 교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다면, 10억 달러를 수출하여 이를 원으로 바꾸었을 때 500억원의 이익이 발생한다. 만약 달러당 1000원보다 환율이 하락한다면 계약해지가 된다. 문제는 1050원 이상으로 환율이 올라갈 경우인데, 이럴 때 기업은 계약한 금액 내에서 은행에 달러를 팔아야만 한다. 예를 들어 환율이 1100원으로 오르면, 10억 달러를 수출한 기업은 500억원의 손해를 보게 되는 것이다.

기업들이 키코를 구입했을 때는 세계적인 달러 약세일 때라, 환율이 하락할 것이라 예상하고 있었다. 그러나 미국발 금융위기로 외국인들이 주식을 매도하고 달러를 차입하기 어려워지면서 환율은 급등했다. LCD의 광원장치인 밸라이트유닛(BLU)을 제조하는 태산LCD라는 기업은 연 매출 6000억 원을 기록했던 중소기업이었으나, 회생신청서를 내게 되었다. 대다수 기업들은 은행이 투자위험성을 제대로 알리지 않았고, 약관 자체가 불공정(계약환율 상한선 돌파시에는 2,3배를 물어야 한다.)했다고 이야기하며 구제를 요청했고, 정부의 선별 구제책이 논란이 되고 있는 상황이다. 키코로 인한 기업의 손실액은 1조 7천억원에 달하며, 이익은 외국계은행이 60%정도를 가져갔다고 한다. 이런 방식으로 파생금융상품은 실물경제까지 뒤흔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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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위기에 대처하는 저들의 자세

위기의 시발점이 된 미국은 7000억 달러라는 사상초유의 공적자금을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시민들의 반발, 민주당과 공화당 의원 모두와 대선 주자들의 비판을 받았지만 결국 정부와 의회는 28일 구제금융안에 잠정합의했다. 이로써 미 행정부는 앞으로 2년간 7000억 달러로 금융회사를 사들이게 된다. 이는 지난해 미국 GDP의 5%를 차지하는 것이지만 (이미 올 들어 미 정부는 베어스턴스의 JP모건체이스 피인수 중재과정에서 290억 달러, 양대 국책 모기지업체인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의 국유화 과정에서 2000억 달러의 구제금융을 제공했고, 16일 AIG에도 850억 달러의 구제금융을 실시했다.) 이 금액으로도 위기를 벗어날 수 있을지는 아무도 장담하지 못한다.

어쨌든 이미 AIG는 지분의 79.9%를 미국 정부가 인수하여 거의 국유화를 하는 것과 다름이 없어졌고 투자은행 빅5 중 살아남은 골드만삭스와 모건스탠리는 은행지주회사로 전환하게 되었다. 은행지주회사가 되면 상업은행을 인수할 수 있게 되어 예금을 자금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되고, 대신 이전보다 훨씬 엄격한 규제를 받게 된다.

미국뿐만이 아니다. 전 세계 금융시장이 촘촘히 엮여 있기 때문에 한 곳에서 부실이 터지면 다른 나라로 전파되게 마련인 현 세계 경제의 상황에서, 선진국들은 미국의 위기를 막기 위한 다양한 정책 공조에 나선다. 유럽은행 역시 달러공급을 늘리는 등의 조치를 계속 취하고 있다. 미국이 금융자본에 대한 규제를 강화할 수밖에 없게 되자 유럽 각국도 ‘이제 와서’ 글로벌 규제강화를 지지하기 시작했다.

너도 나도 이야기하는 ‘규제 강화’ 는 앞서 말했지만 금융위기가 발생할 때마다 미국 내에서도 강조되어 왔던 것이며, 실은 지금 미국도 정부가 기업을 살리려고 개입하고 있지, 월가의 탐욕을 막기 위한 처벌과 금지 조항을 차근차근 마련하는 것은 뒷전이다. 또한 규제를 한다고 해서 하락하고 있는 이윤율이 반등할리 만무하고, 당연히 불황이 극복되고 호황이 올 리도 없다. 구제금융과 규제강화는 대안도 무엇도 아니다. 위기를 심화시키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규제바람이 분다.’ 거나 ‘규제가 대안이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설상가상, 우리는 이들을 비판하기에도 바쁜데 이러한 최소한의 조치가 왜 취해지고 있는지도 파악하지 못한 채 엉뚱한 소리를 계속 하고 있는 정부와 금융기관들이 있는 나라도 있다. 바로 한국이다.

한국의 지배계급은 ‘위기는 기회다!’ 라고 얘기하면서 자신들이 이전에 주장했던 내용을 번복하면서까지 금융화의 길을 계속 가야한다고 외치고 있다.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신청으로 금융위기가 확산된 지난 16일부터 나흘간만 이미 국내의 주식과 펀드 손실액이 20조가 훌쩍 넘었으며, 국민연금의 2조가 넘는 투자손실도 시민들을 불안하게 하고 있는데, 대통령은 펀드를 사겠다고 하고, 은행에는 ‘주가가 내리는 지금, 주식투자를 하셔야 합니다.’라는 식의 플래카드가 걸려있다.

바로 엊그제만 해도 노동자들의 파업과 촛불집회 등 그 어떤 저항도 외국인 투자자들 유치가 안 된다며 막았던 정부는 위기로 인해 금융시장에서 외국인 투자자 비율이 줄어들고 있으므로 바람직하다고 하고, 금산분리 완화 방안 등 금융규제 완화책을 강행하겠다고 하고 있다. 마음 같아서는 실컷 비웃어주고 넘어가고 싶지만, 이들의 이러한 결정이 또 많은 이들을 절망으로 빠져들게 할 것이다.

 
4. 1930년대가 시사하는 바

 

… ‘허리띠를 더 졸라매시오’ 라는 것이 무책임한 각국 정부 대변인들이 국민에게 하는 충고였다. 그러나 지구 전역의 실업자 수가 4천만 명에 이르게 되자. 그러한 통계 작업도 중단되어 버렸다. 그들은 지금의 사태가 단지 과잉생산의 결과일 뿐이라 말했지만, 그 어디에서도 민중들은 아무것도 갖고 있지 못했다.

세계 전역이 이해하기 어려운 모순 덩어리였다. 수백만의 사람들이 제대로 입지 못한 채 헐벗고 있었지만, 미국에서는 목화밭들을 뒤엎어버렸고, 수천만의 삶들이 굶주리고 있었지만, 캐나다에서는 수확한 밀을 태워버렸다. 길모퉁이에서마다 사람들이 커피 한잔을 마시기 위해 동전 한 닢을 구걸하고 있었지만, 브라질에서는 생산된 커피를 바다에다 무더기로 쓸어 넣었다. 몬트리올의 노동자 거주 지역에서는 어린이들이 구루병으로 앙가발이가 되고 있었지만, 남부에선 오렌지들을 짓밟아버렸다…

- 『닥터 노먼 베쑨』 중, 1930년대 초반 대공황의 상황에서

 

리먼 브라더스가 무너지자마자 많은 금융 전문가와 경제학자들은 1930년대를 돌아보았다. 19세기 말에서 대공황까지의 기간은 당시에 막 탄생한 현대금융이 헤게모니를 쥐었던 시기이다. 당시의 대공황과 지금을 비교하는 것은 무서운 일이고, 이런 파국의 가능성은 농담일 수도 있다. 우리가 잠시 숨을 고르고 잠깐 1930년대를 돌아보고자 하는 이유는 당연히 어떤 이들처럼 자본주의의 수명을 연장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며, 자본주의를 비판해 온 사람들로서 자본주의의 몰락을 비웃기 위함도 아니다. 우리는 진지하게 위기를 사고해야 한다. 어쨌든 위기는 많은 사람들의 생존을 위협할 것이기 때문이다.

대공황은, 여전히 생산시스템에서 중요하지만 후진적인 부분에 잠재되어 있던 위협과 통제되지 않는 화폐금융 시스템이라는 두 요소의 영향이 누적된 결과였다. 1929년의 경기침체는 이와 같은 과정을 거쳐 불황으로 발전했다. 모든 것은 1929년 중반 보통의 경기침체에서 시작되었다. 산업생산은 1929년 2월에 정점에 달했지만 9월에는 26퍼센트가 하락했다. 엄청나게 폭등했던 주식시장은 10월에 폭락했다. 중앙은행과 은행시스템이 주식 투자자를 구제하러 나섰고, 이전의 패닉에서 그랬던 것처럼 주가는 신속히 안정되었다. 주식시장의 위기가 경기침체나 불황을 촉발한 것은 아니었다. 1930년 초에는 경제활동이 더 이상 하락하지 않고 안정되는 듯했지만 회복되지는 않았다. 1932년 초 위기가 더 심각해졌고 1933년에는 기업이 파산하고 물가가 폭락하며 은행위기가 닥쳐왔다. 경제는 여전히 신용을 필요로 했지만 대출금 상환의 중지로 인해 은행 시스템은 신용창출의 역할을 거의 포기했다. 은행들은 대신 별로 수익이 높지 않지만 덜 위험했던 정부채권의 보유를 선호했다. 1933년 초반 이후 은행위기, 즉 은행들의 파산이 심각해졌다. 루스벨트는 후버에게서 정권을 넘겨받던 바로 그날 밤, 전국적인 차원에서 은행 시스템을 폐쇄한다고 발표했다. 이것이 뉴딜 정책의 시발점이다. 같은 해 글래스-스티걸 법이 제정되었다는 것은 앞서 이야기 했다.

대공황은 방지될 수 있었을까 아니면 필연적이었을까? 다른 정책들이 파국을 막을 수 있었을까? 이러한 질문은 또 여러 가지 문제를 제기한다.

먼저 언제가 적극적인 경제개입을 위해 최선의 시기였는지 질문할 수 있다. 위기가 처음 시작된 1932년이었을까? 과열된 경제가 임박한 불황을 예고하던 1929년이었을까? 중앙은행이 만들어지고 그 임무가 확정된 1913년이었을까? 화폐금융 메커니즘이 급성장하던 20세기 초반이었을까,. 아니면 미국경제의 이중성이 나타나기 시작하던 19세기 말이었을까?

또한 우리는 역사를 다시 쓰는 과정에서 제도들을 개혁하는 데까지 나가도 되는 것일까, 아니면 제도적인 틀은 놔두고 대안의 정책만을 생각해보는 정도에서 그쳐야 하는 것일까? 를 질문할 수 있다. 우리는 반드시 당시 미국의 통화시스템 안에서, 그리고 그것이 갖고 있던 문제점들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것은 확실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했던 것이 분명하며 이는 곧 제도에 대해 재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당시의 위기는 경제정책의 실수로 인한 것이 아니다. 위기는 이윤율의 하락 때문에 일어났다. 그렇다고 해서 당시에 실수가 없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대공황이 경제를 엄청난 위험과 전례 없는 상황에 이르도록 한 데는 몇 가지 요인들이 원인을 제공했다. 화폐금융을 통제할 제도가 늦게 발전한 것은 지배계급의 책임이다. 위기상황에서 지배계급의 경험 부재와 그들의 기득권에 대한 고수는 위기를 더욱 심화시켰다.

앞서 제기한 질문들을 현재에 다시 가져와보자. 위기는 분명 이윤율 하락을 이윤량의 증대로 상쇄하려는 금융화로 인해 일어났다. 그러나 우리는 위기가 가장 파괴적인 방식으로 드러나는 것을 막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미 늦었는가? 아직 늦지 않았는가? 우리는 아주 작은 것만을 변화시킬 수 있는가? 제도와 체제 전반을 바꿀 수 있는가? 지배계급의 책임은 어디에 있는가? 그들의 탐욕을 제어하지 못하고 우리 역시 편승했을 때 다가올 미래의 모습은 무엇인가?

 

5. 위기 해결의 원칙

 

당시의 관료들이 그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 비난하는 것은 무척이나 순진한 일이다. 지배계급은 그런 식으로 변화하지 않는다. 그들은 지식과 사건의 예상에 기초하여 행동하지 않으며 스스로 생각하기에 그들의 이익과 상충되는 행동을 하지 않는다. 오직 폭력적인 위기만이 대전환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 뒤메닐, 레비 《자본의 반격》중

 

30년대의 위기를 겪고도 지배계급은 80년대 남미의 외채위기를, 90년대 동아시아의 외환위기를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바라보았다. 그 때 그 땅에 살던 사람들이 어떤 괴로움을 겪었는지에 대해서는 철저히 무시하면서 말이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이러한 위기가 어떤 땅에서 어떤 이들을 죽음으로까지 내몰았다 하더라도 지배계급의 이익에는 그다지 영향을 미치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했다.

지배계급에게 폭력적인 위기는 피지배계급에게는 더욱 폭력적인 방식으로 드러난다. 지배계급이 지금처럼 위기 이후, 사후적으로 계속 위기를 처리한다면, 자본주의의 경향과 위기, 대혼란, 위기의 종언, 위기의 종언의 위기, 다시 대혼란… 역사는 반복될 것이다. 이러한 역사의 반복을 끊어내기 위해 우리는 지금과는 다른 위기 해결의 원칙을 제시해야 한다.

그것이 다른 국가든, 다른 계급이든 간에 위기를 외부로 이전시키는 것을 방관해서는 안 된다. 중심부 국가들이 제3세계로 위기를 수출하는 것에 대해 문제제기를 해야 한다. 이미 지구의 많은 곳은 야만적인 상황에 처해있다. 이에 대해 중심부 국가들은 최소한의 책임을 져야 하며 이들이 스스로 일어서고자 했을 때 - 그들의 혁명을 막았던 수많은 조치들을 규탄해야 한다.

구조조정과 같은 우리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방식으로 위기를 극복하려 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 그 안에서 여전히 공공적 권리들은 지켜져야 한다. 물, 전기, 가스, 주거권은 우리가 위기를 넘어 미래의 삶을 영유하기 위해 지금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사람들 사이의 유대와 연대의식을 가로막는 방식으로 위기를 해결해서는 안 된다. 여성들이 남성들의 일자리를 위협하는 것이 아니다. 이주노동자들이 정주노동자들의 일자리를 빼앗는 것이 결코 아니다. 노동의 조건을 악화시키고 우리의 생존을 힘들게 하는 것은 자본이며, 이윤 극대화라는 자본주의의 정신이다.

인간사회의 발전의 새로운 대안적 경로를 규정하는 것은 분석만으로는 가능하지 않다. 그것은 완전히 새로운 원칙을 사회화할 때만 가능하다. 앞서 제시한 몇 가지 원칙은 매우 초벌적인 것이다. 우리는 지금부터 이 원칙을 늘리고, 구체화해야 한다.

Posted by 행진

2008/09/30 15:45 2008/09/30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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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KM 2008/12/01 08:44 # M/D Reply Permalink

    글 잘 봤습니다. 근데, 한글파일로도- 항상 같이 따라올라오면 좋을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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