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호_발간사]

2009년 상반기,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싸움들

  수천억의 이윤을 남기기 위해서는 사람 목숨도 아깝지 않은 건설자본과, 법치주의를 강조하며 특공대를 투입한 정부가 다섯 명의 철거민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용산참사. 그렇게 MB집권 2기는 시작되었다. 수수료 30원을 올려달라는 요구가 너무나 버거웠던 ‘아름다운 기업’ 금호 아시아나 소속 대한통운은 문자로 노동자들에게 해고통보를 날렸고, 이것의 부당함을 알리기 위해 화물노동자 박종태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회사 측은 화물연대를 끝까지 인정하지 않았다. 2009년 한국의 노동자들은 여전히 ‘민주노조 사수!’ 라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평택의 여름은 잔인했다. 대규모 정리해고를 철회시키기 위한 쌍용자동차 노동자들과 가족대책위 분들의 투쟁이 여름 내내 전개되었다. 스티로폼을 녹일 정도의 최루액을 매일같이 뿌려대고, 온갖 악선동을 퍼붓는 경찰과 사측의 방해공작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해고자-비해고자를 가리지 않고 끝까지 서로를 믿으며 싸웠다. 극적으로 협상이 타결되었지만 고용불안은 여전하다. 파업 노동자들에 대한 구속수사와 사측의 노조파괴공작 속에서 싸움은 계속되고 있다.

2mb시대, 민주주의를 추억하는 사람들

  김대중, 노무현 두 명의 전직 대통령이 세상을 떠났다. 그들이 집권했던 시간을 두고 누군가는 진보정치 10년이라 부르고, 누군가는 잃어버린 10년이라 부른다. 사실 그들을 대통령을 만든 것은 대통령 취임 이전까지 보였던 ‘저항하는’ 삶이었다. 독재정권에 맞서고, 노동자-민중의 권리를 옹호하고, 전쟁에 반대한다고 말했던 그들에게 사람들은 민주주의의 꿈을 맡겼다. 그러나 그들이 보인 모습은 실망스럽기만 했다. “IMF= I‘m fired.”라는 씁쓸한 농담이 오고갔던 97년 이후 두 대통령은 신자유주의 정책을 적극적으로 펴면서 비정규직을 늘리고, 언제 빠질지 모르는(먹고 튈지 모르는!) 투기 자본을 유치하는 데 앞장섰다. 외환위기의 원인이었던 해외 금융자본의 투기를 유치하기 위해 기업들은 구조조정을 했고, 수많은 사람들이 직장을 잃고 거리로 내몰렸다. ‘진보’, ‘정치’에 기댈 것은 없다고 생각한 사람들은 ‘실용주의’ 이명박 정권을 택했다. 이념보다는 경제 살리기가 우선이어야 한다는 것이 대다수 사람들의 생각이었다.


  이제 사람들은 노무현과 김대중을 추모하고, 기억하고, 그리워한다. 그/녀들이 되찾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그/녀들이 추억하는 민주주의는 무엇인가? 이명박이 해도 너무하다는 사람들의 분노는 어디로 어떻게 수렴될까. 기억되지 않는 역사는 반복된다고 한다. 기억은 제대로 해야 한다. 노무현, 김대중 대통령의 재임기간동안 흘렸던 눈물이 청계천을 만들고, 한강르네상스를 만든 것 아닌가. 우리에게는 미화된 과거보다는 미래에 대한 전망과 대안이 필요하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전 세계적인 경제위기가 남한을 휩쓸었다. 코스피 지수가 오르고 환율이 안정되고 있다고 하지만 빈곤율과 실업률은 치솟고만 있다. 국민연금은 연기금으로 1조 규모의 펀드투자를 한다고 한다. 서브프라임 사태의 충격이 채 가시지도 않았는데 부동산/금융 투기열풍이 되살아나고 있다.
신종플루에 전 국민이 불안에 떨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타미플루 부족 현상을 겪고 있지만 정부가 특허 유예를 ‘강제실시’하지 않는 이상, 현재 스위스의 로슈사가 독점 생산하는 타미플루의 복제약을 만들 수 없다. 특허로 인한 고비용도 문제다. 건강의 문제에 있어서도 ‘산 자’와 ‘죽은 자’가 나뉘고 있다.
  ‘국민의 방송’ KBS는 경영상의 어려움을 이유로 비정규직 200여명을 해고하거나 자회사로 전환시켰다. 비정규직 ‘보호’법에 따르면 계약 후 2년 이상이 되면 정규직으로 채용해야 하지만, 그것을 피하기 위해 자회사 전환을 추진한 것이다.


  정부는 덩샤오핑과 마가렛 대처처럼 규제개혁에 힘써야 한다고 연일 광고를 내보내고 있다. 국민 대부분이 반대하는 4대강 살리기를 무작정 밀어붙이면서 사업 홍보에만 20억을 쓰는 정부다. 셋 이상 모이기만 해도 불법집회 운운하고, 50명도 안 되는 사람들을 몇 백 명의 전경들이 둘러싸는 풍경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그런 정부가 ‘서민의 정부’를 표방하려고 애쓰고 있다. “서민을 따뜻하게, 중산층을 두텁게”라는 지하철 광고 문구를 보며 많은 사람들이 이명박이 달라졌구나, 하고 안도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길거리에서 떡볶이와 오뎅을 먹을지언정, 이마트/홈플러스의 SS마켓(SSM; 슈퍼 슈퍼마켓)로 인해 생계가 막막해진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고용을 늘리겠다고 하면서 있던 일자리마저 잃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통제 불가능한 현실 속에서 부유하기 십상이다. 그러나 네이버 메인에 뜨는 무수한 가십 기사들을 보면서 시간을 때우기엔, 삶의 무게가 너무 무겁다. “해고는 살인이다”, “용산참사 살인진압 책임지라”는 절규는 무겁다 못해 우리를 짓누른다. 이럴 때일수록 눈을 크게 떠야 한다.
  이번 행진 뉴스레터 29호에는 불안과 위기의 시대를 살아가는 당신과 함께 나누고 싶은 이야기를 담았다.


Posted by 행진

2009/09/15 18:06 2009/09/15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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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호_시사1] 신종플루의 진정한 해결책

 지난 8월 15일 신종인플루엔자A(H1N1, Influenza A virus subtype H1N1, 이하 ‘신종플루’)로 한국에서 첫 사망자가 발생한 이후에, 9월 16일 여덟 번째 사망자가 발생하였다. 이미 9월 초에 5,000명을 넘어선 신종플루 확진 환자는, 9월 20일 현재 만여 명에 이른다고 한다. 전 세계에서 신종플루를 막기 위한 대책을 세우고 있지만 감염자 수는 점차 늘어나고 있고, 현재 3500여명에 육박하는 사망자가 나왔다. 더군다나 신종플루의 항바이러스제인 타미플루에 대한 내성 사례를 보이는 H275Y 돌연변이체가 발견되어, 신종플루에 대한 공포는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전염성이 강한 신종플루에 대한 공포를 가지고 있지만, 사실상 신종플루의 치사율은 독감보다 낫다. 게다가 아프리카 등 제 3세계 국가들이 겪고 있는 말라리아의 공포 등에 비하면, 신종플루의 위험은 그리 높지 않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신종플루는 새로운 바이러스가 출현했다는 점, 세계적 유행병이 된 배경, 치료제가 있음에도 이에 대한 공급이 충분하지 않다는 점에서, 보건-의료-생태를 둘러싼 문제가 드러나는 계기가 되었다. 1970년대 보건의료계에 있는 많은 사람들은 인류가 감염성 질병으로부터 해방되었고, 어떤 세균이 나타나더라도 과학기술의 힘으로 제압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그 후 더욱 강력한 내성과 복잡한 구조를 가진 바이러스들이 출현하였고, 인류는 지난 10년간 10차례나 세계적 유행성 질병으로 공포를 겪어야 했다. 우리는 이런 위험에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을, 개인적인 예방책에서 시작하여 일국적인 대응 방식, 자본주의의 이윤추구 과정을 연결하여 살펴볼 것이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인간사회와 자연이 어떠한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 고민할 수 있는 지점을 찾도록 하자.


○ 개인적인 예방책
 신종플루는 비교적 젊은 층에서 많이 발생한다. 그 이유가 정확히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노인층이 신종플루와 밀접하게 연관이 있는 바이러스에 노출된 적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추측된다. 신종플루로 인한 치명률(감염자 중 사망자 비율)은 계절 인플루엔자와 비슷한 약 0.1%로 알려져 있다. 신종플루의 잠복기는 1~7일로 추정되며, 발열과 기침ㆍ인후통ㆍ콧물ㆍ호흡곤란이 주요한 증상이다. 심해지면 근육통ㆍ관절통ㆍ피로감ㆍ구토 혹은 설사가 동반될 수 있으며, 면역력이 약한 어린아이나 노인의 경우 합병증으로 인해 중증으로 진행될 수도 있다. 신종플루는 증상발현 이후 7일까지 전염이 가능한 것으로 보고되고 있으며, 어린이의 경우에는 더 길어질 수도 있다고 한다.

 신종플루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질병관리본부에서 권장하고 있는 것처럼, 우선 손을 자주 씻고 손으로 눈 코 입을 만지는 것을 피해야 한다. 그리고 재채기나 기침을 할 경우에는 화장지로 입과 코를 가리고, 화장지를 버린 후에는 손을 깨끗이 씻어야 한다. 창문을 자주 열어 환기를 시키는 것이 좋다고 알려졌으며, 발열이나 호흡기 증상 등이 있는 사람과는 접촉을 피해야 한다. 그리고 감염증세가 일어나면 인플루엔자 치료제인 오셀타미비르(Oseltamivir, ‘타미플루’)와 자나미비르(Zanamivir, ‘릴렌자’)가 신종플루 치료제로 효과가 있다고 보고되었다. 그리고 중증으로 진행할 가능성이 높은 고위험 군을 제외하면 확진검사와 항바이러스제 투약은 불필요하며, 충분한 휴식과 수분 및 영양 섭취를 통해서 치유가 가능하다고 밝혀졌다.

 개인적으로 예방을 잘 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우리는 모든 세균의 위험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까? 최근에 계속해서 새로운 특징과 강력한 내성을 갖는 새로운 바이러스가 등장하고 있으며, 최근에 신종플루 역시 새로운 돌연변이가 생겨나고 있다. 우리는 이런 위험들에 대처할 수 있는 만반의 준비를 갖추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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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미플루



○ 보건의료체계의 변화가 필요하다.
 국가는 국민들의 안전과 건강을 책임질 의무를 갖고 있으며, 신종플루와 같이 국가적 공중보건의 위기 상황에 대응해야 한다. 신종플루에 대응하기 위해서 병원은 격리 병동이나 음압 시설과 같은 특수시설을 갖추어야 한다. 이윤이 낮고 일정한 규모의 시설이 필요한 전염병 관리 시설을 민간의료기관에서는 마련할 유인이 없지만, 꼭 필요한 시설이기 때문에 국가가 지원 및 관리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신종플루 사태를 보면서 국가의 보건의료 관리체계가 얼마나 허술한지 확인할 수 있었다. WHO는 2000년대 초부터 신종플루의 세계적 대유행에 대해 경고했지만, 정부는 설정한 목표량인 인구비율 20%에 훨씬 못 미치는 5% 수준밖에 마련하지 못했다. 그리고 거점병원의 준비 및 교육, 격리병상과 격리중환자실을 마련하는 것 까지 준비사항으로 되어 있지만, 사실상 신종플루 감염자가 발생한 시점에서야 실질적인 대응을 시작했다. 그리고 보건소와 국립 5대 의료원은 처음에는 신종플루를 막을 수 있다고 호언하였지만, 사태가 커지자 민간병원에 넘기는 책임감 없는 모습을 보였다.

 정부는 신종플루가 대유행으로 들어섰다고 판단되자 (반강제적으로) 치료거점병원과 거점약국을 지정하여, 고위험군ㆍ중증환자에 대한 집중치료를 하기로 하였다. 치료거점병원의 지정은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 중 폐렴치료가 가능한 병원을 기준으로, 시ㆍ군ㆍ구별 1개소 이상을 선정했으며 현재 464곳이 지정되어 있다. 하지만 이런 거점 병원은 대부분 민간의료 병원으로 신종플루 환자를 진료할만한 시설을 갖추지 못했다. 이러 인해 임시 칸막이를 설치하는 등 부실한 시설로 인해 최근에 21개 병원은 거점 병원에서 퇴출되었다. 게다가 초기에는 대표적인 공공의료기관인 서울대 병원은 격리 병동이 없다는 이유로 치료거점병원 지정을 거부하였고, 보건소는 단지 의심환자를 거점병원으로 보내는 역할을 하였다. 이런 과정들을 거치면서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하고 전염되는 사람들의 수가 증가하게 된다. 게다가 면역력이 약한 중환자들이 모여 있는 거점병원들은 대형병원들이라, 격리 병동이 없이 신종플루 환자의 1차 진료를 담당하게 되며 중증 질환자가 더욱 많이 발생하게 되었다.

 신종플루로 인해서 한국 보건의료체계의 문제가 적나라하게 드러나게 되었다. 우선 의료 공공성의 수준이 아주 낮은데 보건의료자원의 개발 및 공급이 현재 거의 90%가 민간투자에 의해 이루어지며, 정부에 의한 공공투자는 매우 미비한 상황이다. 또한 1ㆍ2ㆍ3차로 나뉠 수 있는 의료전달체계가 거의 부재한 상태이며, 사실상 1차 의료기관이 고가의료장비와 병상을 갖추고 2ㆍ3차 병원과 경쟁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환자는 과잉진료로 인해 병원비용이 증가하게 되는데, 신종플루의 대응 체계에서도 확진 검사ㆍ항바이러스제와 격리입원치료에 대해 국가가 비용을 부담하던 것을, 항바이러스제를 제외한 확진 검사와 치료비에 대해 건강보험을 적용하여 비용의 일부를 환자에게 부담시켰다. 결국 체계적이고 공고한 공공의료체계의 부재로 신종플루의 책임을 민간/민중에게로 넘기는 가운데 문제가 심각해졌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은 공공의료체계가 거의 부재한 멕시코나 미국에서 신종플루의 감염자 수가 훨씬 많다는 점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의료민영화가 추진된다면 신종 전염병으로 인한 위험이 더욱 높아질 것이다. 올해 하반기 정기 국회에서는 의료채권법ㆍ경제자유구역법ㆍ보험입법ㆍ의료법일부개정안 등의 의료민영화 법들이 다루어지게 되는데, 이를 통해 외국자본의 국내 병원 투자가 가능해지고,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의료 행위가 더욱 많아질 것이다. 신종플루와 같은 신종 전염병의 위협을 일차적으로 차단하기 위해서는, 의료 민영화를 막고 좀 더 체계적이고 국가의 책임을 강화하는 방식의 보건의료체계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 초민족적 제약자본의 횡포를 막자!
 전염병은 그 전파에 위생과 영양 상태가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여, 사회경제적으로 낮은 계층의 사람들일수록 확산을 막기가 어렵기 때문에 ‘빈곤병’이라고도 불린다. 최근 이런 실태를 보여주는 보도가 있었다. 건강보험관리공단이 작성한 ‘신종플루 치료제 처방 현황’을 분석해보면, 신종플루 치료를 위한 타미플루 등 항바이러스제 처방이 고소득층이나 강남 3구에 몰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올 6월까지 신종플루 치료제인 항바이러스제를 처방받은 사람은 모두 4139명이었는데, 10분위와 9분위에서 처방받은 사람은 1,215명으로 전체의 29.4%인데 반해, 1분위와 2분위 합계인 356명으로 전체의 8.6%에 불과했다. 신종플루를 통해 빈익빈 부익부가 나타나는 현상은 국가의 보건의료체계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지적재산권과 특허권을 독점한 초민족적 제약자본과 이를 비호하는 국제기구 때문에 더욱 심해지고 있다.

 신종플루는 민중들에게는 공포 그 자체이지만, 초민족적 제약회사들에게는 돈을 벌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2005년 WHO가 신종플루에 대비하는 치료제와 백신확보를 권고하였으나 정부는 오히려 관련 예산을 삭감하였고, 이후 위험이 확산되자 질병관리본부장이 백신을 구하러 외국 제약회사를 방문해야 했다. 정부는 최소물량만 제약회사가 부르는 값으로 사올 수 밖에 없었고, 백신과 항바이러스제 구입에만 약 3000억 원의 예산이 추가 소요된 것으로 알려졌다. 타미플루는 스위스의 제약회사인 로슈홀딩(Roche Holding)이 특허권을 가지고 있는데, 공장을 최대한으로 가공한다고 하더라도 타미플루의 수요에 맞는 공급을 하기에는 어려울 수 있다. 이에 각종 백신은 초민족적 제약회사가 부르는게 값이 되고 있고, 이는 비단 신종플루의 치료제에 대한 문제에만 해당되지 않는다.

 이에 지적재산권자의 허락 없이 강제로 특허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특허의 배타적 권리에 대한 ‘강제실시권’을 부여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제약회사는 강제실시에 대해 묵묵부답이고, 오히려 강제실시 주장을 약화시키는 가격인하나 기금마련 등으로 당장의 문제만을 해결하려 한다. 같은 맥락에서 신종 인플루엔자 유행 초기에 여행 제한 조치, 경보수준 격상 등을 주요 강대국들의 이익에 반하기 때문에 실행시키지 못하였다. 실제로 강제실시가 이루어지는 곳은 미국ㆍ영국ㆍ캐나다와 같은 주요 중심부 국가들 뿐이고, 초민족적 제약회사가 일국 정부에 행사하는 압력도 상당하다. 게다가 ‘무역관련 지적 재산권에 관한 협정’(TRIPs)은 의약품 제조과정과 의약품 자체에 대한 특허권을, 출원한 날부터 20년 동안 독점할 수 있다고 명기해 놓아, 초민족적 제약회사들의 이윤추구에 도움을 주고 있다.

 신자유주의적 금융세계화는 제약회사들의 몸짓을 키우고, 새로운 전염병이 발생할 때 마다 큰 이윤을 챙겨주고 있다. 그들은 제조원가의 수백 배 혹은 수천 배에 달하는 비용으로 판매를 하더라도 지적재산권이라는 강력한 무기가 지켜주고 있는 것이다. 이는 창궐하고 있는 전염병의 위험보다 민중의 건강에 훨씬 큰 위험을 가한다. 전 세계적 전염병이었던 천연두는 개발한 사람이 특허권을 포기하고 백신을 싸게 공급함으로서 사라지게 되었다. 각종 감염성 질병에 대응할 수 있는 지식을 민중의 손으로 가져오고, 과학이 발견한 연구성과를 제약회사들이 독점하게 만드는 현재의 체제에 저항해야 한다. 이것은 신종플루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사안 중 하나이다.


○ 진정한 해결책: 사회-생태의 변화
 지금까지의 논의를 정리하면 우리가 신종플루에 맞서는 방법은, 바이러스에 대항하는 항바이러스를 생산하고 이를 민중들과 공유할 수 있는 사회적 체제를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결론은 우선 화학-생물 분야에서의 과학기술 발전을 전제하는 것으로, 어떤 강력한 바이러스가 출현하든 이를 막아낼 수 있는 강력한 백신을 만들어 처방하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인류가 새로운 전염병의 창궐로부터 좀 더 안전할 수 있는, 원인 자체를 최대한 없앨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전염병은 세균들이 증식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춘 곳에서 발발하는데, 같은 종의 생물이 특정한 면적에 얼마나 군집해 있는지가 관건이 된다. 흑사병이나 말라리아 같은 전염병은 도시화가 어느 정도 진행된 이후에 창궐할 수 있었다. 최근에는 축산업의 사육화에 따라 각종 가축이 밀집하게 되면서 새로운 바이러스들이 복제를 통해 전염병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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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히 신종 플루가 최초로 발생한 멕스코 베라크루즈주의 라글로리아 지역은, 스미스필드푸드사의 95만 마리의 돼지 사육 공장으로부터 8.5km 떨어져 있다. 돼지의 호흡기 상피세포에 사람ㆍ돼지ㆍ조류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수용체가 있고, 이 때문에 돼지는 바이러스를 퍼뜨리는 운반자 역할을 하게 되었다. 특히 1993년부터 돼지사육두수가 증가하게 되고 이 과정에서 돼지들이 원거리 이동을 하며 바이러스가 퍼졌으며, 대규모 백신접종은 오히려 새로운 질병에 대한 돼지의 내성을 약화시켜 신종 바이러스가 생겨나는 되었다. 이 때문에 처음에 신종 플루를 돼지 인플루엔자(Swine Influenza)로 불렀고, 이는 감염의 원인을 정확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신종플루A(H1N1)는 최소한 10년 이상 돼지농장을 떠돌고 있다가, 2009년 2월 이 지역에서 집단적인 감기 및 발열 증상이 발생했다. 지난 몇 년 동안 떠돌던 신종 바이러스가 왜 이 시기에 창궐하게 되었는지는 확실히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돼지농장의 노동자들, 돼지 도축장의 노동자들, 농장주들과 그 가족들뿐만 아니라 돼지의 질병을 예방하고 치료하는 수의사들도 돼지독감 바이러스의 전염원이 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보건의료체계가 무너진 멕시코에서 제때에 바이러스를 잡지 못함에 따라, 전 세계적으로 신종플루가 퍼지게 되었다.

 축산의 산업화로 인해 돼지나 닭의 생산이 대규모로 이루어지고, 대규모 백신접종과 열악한 사육환경으로 인해 내성에 굉장히 약해진다. 대표적으로 폐쇄동물 사육시설에는 수천 마리 이상의 동물이 폐쇄된 공간에 집중되어 해로운 물질이 공장 밖으로 방출되는데, 대규모 축산시설은 보통 인구가 밀집된 도시지역의 인근에 위치한다. 하지만 도시라는 공간은 각종 폐기물과 노폐물이 순환되어 정화되는 공간이 아니며, 일방적으로 농촌에 해로운 물질들을 배출하며 사회-생태적으로 자연을 착취해 간다. 축산업의 공장화와 대규모 사육만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다. 농식물에 대한 대규모 단종경작과 생태적 종의 감소, 그리고 유전자 변형 식품 등의 출현은 전염성 바이러스의 경로가 식물을 통해서도 전파될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러한 과정은 인간사회와 자연 사이에 이루어지던 신진대사를 파괴하고 있고, 전염성 바이러스가 대규모로 급격하게 창궐할 위험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자본은 이윤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영역에라도 들어가고 있으며, 생명공학산업(BT)이 가장 중요한 산업으로 부상하고 있는 것에서 보이듯 먹거리와 환경은 이윤추구의 장이 되고 있다. 하지만 자본의 이윤추구과정은 민중의 건강, 생태적 관계에 대해서는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신종플루는 자본의 속성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건이었고 다른 바이러스가 창궐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따라서 신종플루를 근본적으로 막아내는 방법은, 인간사회와 자연의 관계를 물질적 신진대사를 복원할 수 있는 방식으로 재전환하는 것이다. 이를 위한 세계관을 확립하고 자본주의적 농업-축산 방식에 대한 문제제기를 해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신종플루에 대응하기 위한 방법을 다양한 차원에서 논의해보았다. 개인적 차원에서는 위생적인 생활을 하고 백신을 통해 예방할 수 있을 것이다. 국가 차원에서는 좀 더 합리적이고 민중적인 보건의료체계의 확립, 제약회사가 무한히 이윤을 추구할 수 있도록 하는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에 대한 저항, 궁극적으로는 자연과 인간사회의 관계를 민중의 건강을 증진시킬 수 있는 방식으로 전화하는 것이 요구된다. 단지 개인적인 예방과 과학기술의 발전을 통해 신종플루를 포함한 각종 전염성 질병에 대해 대응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바로 보지 못하는 것이다. 보건과 질병에 대한 사회-생태적 인식을 강화하고 근본적인 해결책을 모색하는 가운데서만, 우리의 건강을 지켜낼 수 있을 것이다.

Posted by 행진

2009/09/15 18:05 2009/09/15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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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호_시사2] 취업후상환학자금제 비판

‘취업후 상환 학자금 대출제도’는 무엇인가?


  지난 7월 30일 교육과학기술부는 “취업후 상환 학자금 대출제도(일명: ‘학자금 안심 대출’, 이하 ‘취업후 상환제’)”를 2010년부터 도입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제도는 학자금 대출을 원하는 모든 대학생에게 대학등록금 실소요액 전액을 대출해주고, 소득이 발생한 시점부터 원리금을 분할하여 상환하게 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정부는 ‘부모나 학생 모두 학자금 걱정 없이 학업에 전념’하게 하고, 상환 부담으로 인해 금융채무 불이행자를 만드는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제도를 도입한다고 밝혔다. 그리고 학자금 대출이 수익자 부담의 원칙에 의거하여 스스로의 상환능력에 따라 부담하여야 하고, 이 제도는 저소득층에 대한 복지정책이 아닌 미래의 성장 잠재력인 인적자원에 대한 투자라는 취지를 밝혔다. 정부는 ‘친 서민 정책’의 일환으로 몇 년간 전 사회적인 문제가 되는 고액등록금 문제에 대한 정책을 마련했다. 한편 ‘취업후 상환제’는 성장동력으로서 개인에 대한 투자를 핵심으로 하는 신자유주의적 교육정책에서 한 치도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도 자료 등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제도를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자. 우선 제도의 수혜범위는 기초생활보장자를 포함하여 소득 1~7분위(연간 가구소득 인정금액 4839만원 이하)까지 적용되는데, 기존에 기초생활수급자에게 지원하던 450만원 무상장학금과 차상위계층에게 지원하던 105만원의 무상장학금이 사라지게 되었다. 그리고 거치기간 이자 지원(현재, 소득 분위 1-3분위 전액 이자 지원, 4-5분위 4% 지원, 6-7분위 1.5% 지원)이 사라지는 대신에, 기초생활수급자에게 학기당 200만원의 생활비를 지원, 1~3분위에 대해서는 200만원 생활비 대출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한편 신용 9~10등급 학생에게도 지원이 이루어지지만, C학점 이상을 맞아야만 수혜가 가능하다. 이렇게 된다면 수혜 대상은 전체 대학생의 절반에 달하는 100만 명에 이르게 된다. 대출금의 상황은 일정소득 이상이 발생하는 시점부터 시행되고, 최장 25년간 동안 상환이 가능하다. 그 액수는 9월 말에 결정이 될 예정인데, 현행 4인 가구의 1년 최저생계비인 1,596만원 정도가 될 것으로 보인다. ‘취업후 상환제’에 대해서 ICL 제도(Income Contingent Loan, 미래소득 연계형 학자금 대출제도)라고 하여 호주나 영국 등에서 실시하고 있는 제도와 비교하기도 한다. 하지만 정부가 실시하는 제도는 학자금 대출로서, 호주나 영국 등이 실시하는 소득연계형 졸업세 제도와는 거리가 멀다고 할 수 있다.
 
  한편 교과부는 ‘취업 후 상환제’ 도입으로 연평균 2010-14년까지는 1조 5천억 원, 2015-19년까지는 2조 9천억 원, 2020-24년까지는 2조 5천억 원이 소요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런데 이 많은 예산은 어디에서 확보할 것인가? 9월 말에 좀 더 세부적인 정책이 나와야 알 수 있겠지만, 현재 정부는 채권 발행을 통해 재원을 마련한다는 계획을 세웠고, 학자금 대출을 담당하는 기관은 정부가 보증하는 ‘한국장학재단’으로 일원화하기로 했다. 7월 30일 정부에서 내놓은 “취업 후 상환 학자금 대출제 Q&A”에는 재정 확보에 대한 명확한 이야기는 나와 있지 않고, 다만 이를 통해 내수 및 저축률 진작을 기대할 수 있다고 보도하였다.

‘취업 후 상환 학자금 대출제도’, 무엇이 문제인가?

  정부가 주장하는 데로 제도가 실시된다면 학자금대출로 인해 발생한 연 1만 명이 넘는 신용불량자 문제가 해소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지금보다는 대학을 다니기가 수월해질 것이다. 이런 점들 때문에 시민들이 이 제도를 환영하였으며, 등록금 문제 해결을 촉구해 온 진보적인 시민ㆍ사회단체들도 ‘우선 환영한다’는 논평을 실었다. 하지만 이 제도가 낮아진 지지율을 회복하기 위해 펼치고 있는 ‘친 서민 정책’의 일환으로 생색내기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있다. 그리고 대선 후보 시절 주요 공약이었던 '반값 등록금' 정책에서 크게 후퇴된 것이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그리고 제도 자체만 놓고 보았을 때에도 ‘취업 후 상환제’가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 없음은 명백하다.
  2008년 한국교육개발원의 조사에 따르면 대학생이 대학교육을 받기 위해 지출하는 비용은, 등록금을 비롯해 교재비ㆍ생활비ㆍ사교육비 등을 합해 연평균 1000만원에 이른다. 그리고 2008년 경제위기의 여파로 많은 대학에서 등록금이 동결되기는 했지만, 그간 대학 등록금은 물가상승률의 3~4배에 달하며 서민 경제의 큰 부담으로 작용해왔다. 시민ㆍ사회단체들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높은 교육비용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이 없이, 학자금 대출제도만을 수정하는 것은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즉 많은 대학인들이 제도의 혜택으로 당장 대학을 다닐 수는 있어도, 최장 25년간 학자금을 상환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실제로 ‘레드 캣’이라는 단체에서 한 학기에 400만원씩 8학기를 대출받은 학생이 금리 5.8%로 25년간 상환해야 한다고 가정할 때, 그 금액이 원금과 이자 그리고 취업전 이자를 합쳐서 약 7000만원에 가까운 금액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했다. 한편 ‘취업 후 상환제’ 실시 이후 대학에서는 ‘양질의 교육’을 이유로 등록금을 인상시킬 명분이 생기며, 이에 대해서 어떻게 해결할 것이냐는 질문이 제기되어 왔다. 그러나 정부에서는 ‘합리적인 등록금 책정’을 위한 계획을 마련하겠다고 이야기만 할 뿐 구체적인 대답을 내놓고 있지 못하다. 오히려 국.공.시립대학의 법인화(민영화)를 추진하는 등, 대학의 등록금이 더욱 올라갈 가능성만 높아지고 있다.


  위에서 예산 마련 계획이 확실하지 않다는 것을 언급하였다. 이명박 정부는 현재의 학자금 관련 재정투자액인 5천억원에서 5천억원만 추가로 투자하고, 나머지는 채권 발행을 통해 해결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추가 비용이 얼마나 더 들어갈지에 대해서는 장담할 수가 없는 실정이다. 바로 대출금 회수의 문제 때문인데, 통계청의 자료를 분석해보면 한국의 대졸자 고용률은 75%로 계산된다. 따라서 ‘취업후’라는 단서가 붙는 순간 대출금 회수율은 90%에서 70%로 낮아지게 되고, 현재의 대출금 미회수율이 10%라는 점을 고려하면 MB식의 '취업후 등록금후불제'로 인한 대출금 회수율은 70%를 넘어서기 어렵게 된다. 이렇게 되면 정부가 매년 쌓아야 하는 대손충당금은 7500억 원이 아니라 그것의 3배인 2조 2500억 원이 된다. 최근 4대강 유역 정비 사업 등으로 다른 부분에 대한 예산을 대폭 삭감하고 있는 정부가, 그 많은 예산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까?

  우선 지금까지 기초수급 생활자에게 제공되던 450만원의 무상장학금, 차상위 계층에게 제공되던 105만원의 무상장학금 지원이 전면 중단된다. 그리고 1~3분위에 적용되던 거치기간 중 무이자, 및 4~7분위에 제공되던 거치기간 중 이자 지원이 중단하게 된다. 즉 기초수급 생활자와 차상위 계층에게는 이 제도가 오히려 독이 될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에도 갚아야 할 원리금은 오히려 늘어나게 되고, 회수율이 낮아질 경우 대출이자율이 증가할 가능성도 존재한다. 실제로 학자금 대출을 관장하는 학자금신용보증기금의 부실화로 인하여, 학자금 대출금리가 2006년 6.6%에서 2008년 7.8%로 급등하기도 하였다. 정부가 최근 말하고 있는 ‘중도 실용’ㆍ‘중산층 강화’ 등의 수사들이 의미하는 것은, 저소득층에 대한 실질적인 지원을 감소하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 현행 정책과 ‘취업후 상환 학자금 대출제도’ 비교 (7월 30일 민주노동당 권영길 의원실)


정부의 현행 제도(~2009년)

『취업후 상환 학자금 대출제도』(2010~)

비교

기초생활수급자

- 무상장학금 : 450만원

- 초과분 대출: 무이자

- 원리금 상환 및 이자발생: 거치기간 이후

- 무상 장학금 : 지원 중단

-원리금 상환 및 이자발생 : 이자는 대출과 동시에 발생. 상환의무만 취직이후에 생김

무상장학금 손해/무이자 손해

차상위계층

- 무상장학금 : 105만원

- 초과분 대출: 무이자

- 원리금 상환 및 이자발생: 거치기간 이후

- 무상 장학금 : 지원 중단

- 원리금 상환 및 이자발생 : 이자는 대출과 동시에 발생. 상환의무만 취직이후에 생김

무상장학금 손해/무이자 손해

1~3분위

- 이자지원: 거치기간 중 무이자

- 원리금 상환 및 이자발생 :거치기간 이후

- 거치기간 중 이자 지원 중단

- 원리금 상환 및 이자발생 : 이자는 대출과 동시에 발생. 상환의무만 취직이후에 생김

무이자 혜택 손해

4~5분위

- 이자지원: 거치기간중 이자 4.0% 지원

- 원리금 상환: 거치기간 이후

- 거치기간 중 이자 지원 중단

- 원리금 상환 및 이자발생 : 이자는 대출과 동시에 발생. 상환의무만 취직이후에 생김

이자 4.0% 손해

6~7분위

- 이자지원: 거치 기간중 이자 1.5% 지원

- 원리금 상환 및 이자발생:거치기간 이후

- 거치기간 중 이자 지원 중단

- 원리금 상환 및 이자발생 : 이자는 대출과 동시에 발생 하고 이자 상환도 해야함.

이자 1.5% 손해



한국 사회 전체 구조 변화와 연결된 비판

  ‘취업 후 상환제’의 문제점은 단지 교육비용 문제만으로 환원되지 않는다. 우리는 한국 사회 전체의 변화를 살펴보면서 제도가 갖는 의미를 살펴보는 가운데, 그것의 정확한 내용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자본주의 사회가 필요로 하는 노동력을 재생산하는 기관인 대학의 변화를 염두에 두며, ‘취업 후 상환제’의 영향력을 파악할 수 있다.
  현재 대학은 다양한 취업 프로그램들을 운영하며 ‘취업 학원’으로서의 성격을 드러내고 있고, 대학인들뿐만 아니라 전 민중에 대해서 취업을 위한 평생학습을 담당하고 있다. 그러나 불안정 노동이 일상화 되어 있는 현재의 상황에서 취업 프로그램을 통해 일자리를 얻기 되더라도, 희망 근로, 인턴제와 같은 불안정한 일자리를 얻게 될 가능성이 크다. 대학인들에게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는 청년인턴제의 경우, 올해 초 공공부문을 중심으로 처음 시행된 이후에, 사기업에까지 확장되고 있는 추세이다. 600여개 상장 기업의 ‘2009년 채용계획’을 살펴보면, 인턴사원은 2008년보다 약 4000도 늘어날 것이지만 정규직 채용은 40% 감소할 예정이다. 그리고 최근에 인턴제 교사 확대시행에서 볼 수 있듯이 사범대, 교대와 같은 특수목적대학을 졸업해도 안정적인 일자리를 획득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취업 후 상환제 같은 제도로 대학을 무사히 마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 뒤에는 불안정한 노동시장에 편입될 뿐이다. 게다가 4인 가족 기준 최저생계비 이상의 소득만 발생하면 상환을 해야 한다는 조건은, 부족한 소득에도 불구하고 상환을 하며 채무의 꼬리표를 달고 다녀야 할 것이다.

  정부의 ‘취업 후 상환 학자금 대출제 Q&A’를 살펴보면, 제도를 시행함으로서 부실한 대학을 지원하게 될 가능성에 대해 언급되어 있다. 이에 대해 대학선진화위원회를 중심으로 대학 구조조정을 본격화하고, 마이스터 교육 등 교육의 다양성, 선택성을 확대하는 교육 정책적 접근에 의해 해결한다고 밝히고 있다. 이렇듯 ‘취업 후 상환제’는 대학 구조조정을 가속화 하는 매개체가 될 가능성이 높다. 정부는 올해 11월에 부실사립대학 30여 곳을 발표하여 퇴출을 유도한다고 밝혔고, 대학들 간의 통폐합 역시 추진하고 있다. 전체적인 대학과 대학인의 수가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학과 차원에서도 경쟁의 원리를 도입하여 통폐합 등 구조조정을 유도한다고 밝혔다. 향후 학과 간 취업률이나 상환 금액 회수율 등이 대학 구조조정의 기준이 될 가능성이 존재하고, ‘학자금 상환이 가능한 노동력을 재생산하는 학과’만이 구조조정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우리는 2008년 가을을 강타한 금융위기의 원인이, 미국 부동산 시장에 대해 무리하게 투자를 한 금융자본으로 인한 서브프라임 모기지의 부실화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런데 전 세계적 경제위기를 불러일으켰던 금융자본이, 부동산 시장의 부실화가 심화되자 다른 분야로의 투기를 시작하였다. 이에 소비자 대출 분야가 주요한 투자처로 떠오르며 학자금 대출이 주요 대상이 되었고, 다양한 금융상품들이 개발되었다. 다시 한 번 금융위기가 폭발한다면 그 직접적인 원인은 학자금 대출을 위해 마련해 놓은 자금의 부실화가 될 가능성이 높다. 정부 채권을 통해 1조 5000억원의 자금을 조달하는 학자금 대출에서 금융투기가 일어날 가능성도 높으며, 학자금대출을 담당하는 기관은 정부가 보증하는 ‘한국장학재단’이 금융자본의 안정적인 투자처가 될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이렇듯 한국사회의 금융화가 심화되는 과정에서, ‘취업 후 상환제’가 한 몫을 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불안정 노동의 심화, 대학 구조조정, 한국사회의 금융화와 같은 문제들이 ‘취업 후 상환제’ 때문에 발생한다고 보는 것은 무리가 있다. 하지만 최소한 취업 후 상환제가 이러한 경향을 막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은 확실하다.

궁여지책(窮餘之策) 제도 마련을 넘어, 진정 교육받을 수 있는 권리를!

  굳이 ‘백년지대계’라는 말을 끌어들이지 않더라도, 누구나 국가의 교육정책이 중요하다는 것을 공감하고 있다. 특히 고등교육의 내용ㆍ운영방식ㆍ체계가 초중등을 포함한 전체 교육에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고려할 때, 대학과 관련된 정책을 마련하는 것의 중요성을 확인할 수 있다. 이에 따라 매년 대학관련 정책들이 쏟아지고 있고, 특히 고등교육비용을 해결하려는 정책은 중요한 관심사가 되고 있다. 취업 후 상환제 역시 그러한 정책의 일환으로서, 현 정권이 대학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가 있음을 보여주고자 제시한 작품이다. 하지만 정부의 정책에 따라 대학의 모습이 바뀌고 있다고 하더라도, 대학이 나아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극소수이며, 대학인들은 불안정한 미래에 저당잡혀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취업 후 상환제에 대해서도 지금 당장 대학을 다닐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이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것이라고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다.

  정부는 취업 후 상환제가 모든 교육비용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획기적인 정책이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정책 보고서에서도 밝히고 있듯이, 이것은 신자유주의적 교육재편의 주된 논리였던 ‘수요자 중심 교육’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다. 즉 교육정책의 핵심을 신자유주의적 금융화에 적합한 인재를 양성하고, 또한 무상장학금ㆍ무이자 대출의 모럴해저드를 지적하며 개인의 책임을 더욱 강화하는 것이다. 그리고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취업 후 상환제는 그러한 이데올로기를 더욱 강화시키는 기제로 작용할 것이다. 현재의 사회구조와 교육제도 자체가 개인들의 불안정화를 심화시키는 상황에서, 어떠한 제도를 마련하더라도 일시적이고 내용이 부실한 궁여지책(窮餘之策) 수단이 될 수 밖에 없다. 한국사회에서 교육의 목적과 위상은 무엇인지, 시민으로서 살아가기 위해 진정으로 교육받아야 할 내용은 무엇인지를 고민하는 가운데, 교육에 대한 진정한 해결책을 마련할 수 있다. 취업 후 상환제의 내용을 검토하고 그것의 한계를 되짚어 보는 것이, 진정으로 교육권을 쟁취하기 위한 방법을 고민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Posted by 행진

2009/09/15 18:04 2009/09/15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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