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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안] 서부지역 빈활을 제안합니다!

경제위기, 심화되는 빈곤에 맞서 희망의 연대로-!

2009 겨울 서울서부지역 反빈곤연대활동을 제안 드립니다.



1. 경제위기에서 벌어지는 빈곤의 폭발적인 증가

경제위기가 심화되고 있다는 소식이 매일 매일 들려옵니다. 미국의 큰 은행들이 파산했고, 한국의 중소기업들이 하나둘 망해가고 있으며, 노동자들의 임금은 동결되고, 반면에 물가는 오르고 있습니다. 경제 위기 상황에 이명박 정부는 서민들에게는 최저임금이 높다며 최저임금을 내리려 하고, 노동유연성이 덜 보장 되었다고 비정규직 기간도 늘리려 하며, 부자와 기업을 위해서는 법인세, 소득세를 인하하고, 종합부동산세는 무력화시켜줬습니다. 그리고 누구나 보편적으로 누려야하는 서비스인 사회공공성 영역마저 사유화시키려 하고 있습니다.

이런 현실에서 많은 이들의 삶이 힘들어지겠지만, 그 누구보다도 가장 크게 타격을 받을 이들은 한국 사회 1000만에 육박한다는 빈곤층입니다. 그리고 대부분 그/녀들의 일자리인 비정규직도 많은 타격을 받을 것입니다. 경제 위기 속에서 언제나 가장 먼저 희생이 되었던 빈곤층, 그리고 빈곤층의 희생 속에 이루어지는 빈곤의 보편화, 그렇기에 바로 지금 이들 빈곤층의 목소리를 모아내는 것은 단지 이들만을 위한 일이 아닙니다.


2. 경제 위기 상황 속에서 새롭게 ‘가난해져가는’ 사람들에 대한 주목이 필요합니다.

지난 10월 17일 빈곤철폐의 날을 맞아 10월 초에 빈곤사회연대, 민중의 집, 진보신당 마포, 서부지역 학생행진의 활동가들은 성산동 임대아파트에서 최저임금 / 최저 생계비 현실화를 위한 실천으로서 실태조사를 진행하였습니다. 비록 많은 집을 돌아다니지는 못했지만, 실태조사를 통해 영구임대아파트에 거주하는 주민들의 어려운 생활고 정부로부터 받는 기초생활수급액이 열악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실제로 그/녀들이 제대로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임금과 생계비의 2배에 해당하는 금액이 보장되어야 했습니다. 단지 일회성의 실태조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 곳 임대아파트에서 기초생활수급을 받고 있는 이들과 함께 향후 거센 공격이 들어올 사회복지적 측면을 주목하는 것이 중요할 것입니다.

그리고 서울 곳곳에의 뉴타운 붐은 서부지역에서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더 깨끗하고 살기 좋은 주택들을 건립하여, 서울의 이미지를 높이기 위해서는 뉴타운을 건설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신촌 아현동에도 뉴타운이 건립 중입니다. 세를 들어 살고 있던 많은 사람들이 한 순간에 용역 깡패들에 의해 위협을 받으며 자신이 살던 곳에서 쫓겨나고 있습니다. 주택보급률은 100%가 넘었지만 실제로 건설되는 그 주택들에서 안정적으로 살 수 있는 사람들은 소수입니다. 기초생활수급자와 장애인 등 많은 빈곤 계층이 거주하고 있는 동자동 지역도 예외가 아닙니다. 기초생활비가 끊길까봐 처우가 나쁜 비정규직에도 취업하지 못하는 그/녀들에게, 개발의 광풍은 곧 생을 포기하라는 이야기와 똑같습니다.


3. 서울 서부지역에서 반빈곤운동을 만들어가려는 분들과 함께 하고 싶습니다.

올 겨울 경제위기의 한파 속에서 거리로 내쫓겨날 사람들이 더욱 늘어날 것이라고 합니다. 서민들을 집 밖으로 내쫓고 생계 활동을 막아버리는 깨끗한 주거공간은 누구를 위한 것일까요? 열심히 일해도 빈곤해질 수밖에 없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대안은 무엇일까요? 가장 기본적인 생계조차 유지할 수 없는 기초생활비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 것일까요? 위기의 시대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연대하는 것이 현실적인 대안이라는 것을 이번 2009 겨울 서부지역빈활을 통해서 만들어 가고 싶습니다.

그러나 다들 아시듯이 단순하게 2박 3일 일정의 빈활을 만들기만 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는 아닐 것입니다. 빈활이라는 하나의 사업으로 서울서부지역에서 반빈곤운동의 방점을 찍고, 빈활 앞 뒤로 다양한 사업들을 배치하면서 이를 지속적으로 이어나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이를 함께 만들어갈 분들이 필요합니다. 서울 서부지역에서 정세적으로 그리고 새로운 모습의 반빈곤운동을 고민하고 만들어가고자 하는 분들을 아래 자리에 모십니다. 많은 참여와 관심 부탁드립니다.

※ 차기 기획단 회의가 1월 9일(금) 오전 11시 민중의 집에서 열립니다.

 

[2009 겨울 서울서부지역 反빈곤연대활동]

- 서부빈활기획단(빈곤사회연대, 사회진보연대, 민중의 집, 전국학생행진(건), 연세대학생행진, 홍익대학생행진)
- 일시 및 장소 : [가안] 2월 4일(수) ~ 6일(금) 2박 3일간, 서울 서부지역 곳곳
- 연락 : 연세대학생행진 수진) 010. 2977. 9699

Posted by 행진

2008/12/30 10:36 2008/12/30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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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장/성명] 2008 대중운동의 쟁점들

08년 대중운동을 돌아보며

 

2008년을 마무리하고 2009년을 맞이하는 지금, 1년의 대중운동을 돌아보고 이에 대한 평가를 진행하는 것은 필수적인 일이다. 이미 많은 캠행진과 단위들에서 대중운동에 대한 평가를 진행한 것으로 알고 있고, 하지 못한 단위들이 있다면 빠르게 평가를 해야 할 것이다. 이 글은 동지들의 평가를 기반으로 해서 엄밀히 작성된 글은 아니며, 평가를 촉진하기 위한 목적으로 작성된 글이다. 이 글은 전국학생행진(건)(이하 ‘행진’)에서 주되게 이야기해왔던 입장을 정리하고, 대중사업들이 그에 걸맞게 진행되었는지를 평가해 보기 위한 자료로 활용하면 될 것이다. 이를 통해서 09년의 과제들을 도출하고, 더욱 가열찬 대중운동을 만들어 가자!!

 

1. 08년 정세와 행진의 입장

이명박이 당선될 수 있었던 조건은, 신자유주의적 금융세계화로의 깊숙한 편입과 관련되어 있다. ‘IMF 환란 극복’이라는 수사를 내세우며 등장한 김대중 정권과 그 뒤를 이은 노무현 정권은, 경제위기 극복을 이유로 한국사회를 금융축적에 적합한 구조로 바꾸는 ‘신자유주의적 개혁’을 추진하였고, 이에 따르는 불만을 인민주의적 통치 형태를 통해 봉합하려고 하였다. 신자유주의적 개혁세력에 대한 불만은 지난 대선에서 ‘경제 대통령’의 이미지를 앞세운 이명박, 즉 지배계급 내 보수분파의 당선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지배세력 내의 개혁분파이든 보수분파이든 장기화된 불황과 같은 ‘특정한 정세’에서 어느 분파가 집권하더라도 대중들이 보내는 지지의 토대는 취약하다. 노무현과는 또 다른 방식의 인민주의적 요소를 동원하여 당선된 이명박 역시 조직된 지지세력을 대규모로 규합할 수는 없었고, 본격화된 경제위기의 심화 속에서 그가 선택할 수 있는 정책적 대응의 폭 역시 줄어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운동진영은 이명박에 대한 감정적 대응이나 정서적 반대를 넘어, 그 객관적 정세를 정확하게 인식해야 했다. 하지만 경제-정치의 위기와 함께 운동의 위기가 촉발하였고, 운동 세력들은 각개약진하며 ‘반신자유주의 전선’의 합력을 창출하지 못하고 있다.

의회주의ㆍ상층력 중심의 교섭력 강화라는 민주노총-민주노동당의 몰정세적 전략은 전체 운동의 위기를 가속화했다. 이것은 소위 ‘종북파’ 논쟁을 거치며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분열로 드러났다. ‘주류’ 당-노조 운동에 대한 비판으로 총자본 대 총노동의 싸움을 강조하는, ‘현장주의’ 세력들이 등장하여 계급정당 건설을 가장 중요한 정치적인 과제로 보고 있지만, 이런 행보가 정세적으로 얼마나 유의미할지는 지켜보아야 할 일이다. 지배계급의 재민주화 전략과 함께 공격을 받았던 학생운동 역시, 전체운동의 위기와 한 치도 떨어져 있지 않다. 90년대 초중반 지배계급으로부터 도덕성에 대한 심대한 타격을 받은 학생운동은, 보편적인 저항정신의 상실 속에서 학생사회의 해체라는 상황으로 끊임없이 침잠할 뿐이다. 위기에 대응하여 학생운동의 과제를 등록금 투쟁과 같이 학생들의 사안으로만 한정해야 한다는 세력이 등장하기도 하고, 노동자 운동에 대한 지원을 최우선의 과제로 삼는 세력이 등장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학생사회를 규정하는 다양한 심급의 조건들에 분석과, 운동의 위기라는 상황에 대한 엄밀한 정세 판단이 없이는 학생운동의 위기에 대응하지 못할 것이다. 학생대중들의 상태를 선험적으로 규정하거나 예비노동자로서만 간주하는 편향은, 대중들을 움직이게 하는 구체적인 이데올로기에 대해 분석하지 못한 채 위기를 그저 체험하게 된다.

2008년 행진은 운동의 위기라는 상황에 대응하며, 다시금 보편적인 이념과 전망으로 운동을 ‘재건’할 것을 밝혔다. 이는 사회운동의 재건에 복무하는 학생운동이라는 말로 정식화되었다. 이를 위해 지역을 기반으로 하여 정세적 계기들 속에 운동주체들을 형성할 것을 결의하였으며, 정세적 계기들로서 공공성 투쟁ㆍ불안정노동 철폐 투쟁ㆍ민중생존권 쟁취 투쟁 등에 주목하였다. 특히 이명박이 가시적인 성과를 얻기 위해 공공부문에 대한 구조조정을 할 것이라고 예상했고, 이에 대한 분석과 투쟁과제를 제시하기도 했다. 이를 밝히기 위해 전국학생투쟁위원회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아래로부터의 연대를 강화하여 지역운동을 활성화하자’를 주요한 투쟁방향으로 밝히고, 지구별 차없서 등의 사업에 결합하며 학생운동 세력들과의 연대투쟁을 도모하였다. 물론 지역운동이라는 과제는 08년 상반기에 갑자기 도출되지 않았다. 그것은 신자유주의가 야기하는 다종다기한 분할과 착취전략이 생산과 재생산 영역 전반; 지역을 기반으로 해서 관철되는 방식을 살피고, 반신자유주의 운동의 실내용을 밝혀내는 과정이었다. 또한 운동의 위기를 넘어, 아래로부터 운동 주체형성을 도모하는 거점으로서 지역을 사고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역운동이라는 과제를 밝히는 과정에서 지역은 생산 현장에 대비되는 일종의 생활 영역으로 인식되며 부당한 쟁점이 형성되었다. 또한 캠이 속해 있는 지역의 민중운동과 연대를 만들어야 한다는 압박으로 인식되기도 하였고, 캠이나 단위의 상황이 어렵기 때문에 지역운동은 힘들다는 평가도 있었다. 사회공공성 쟁취 투쟁이나 불안정노동 철폐 투쟁에 대한 오해도 계속해서 존재했다. 행진은 공공성이라는 것이 국가와 자본의 대립 속에서, 국가의 힘을 강화하는 방식이 아님을 밝히고, 또한 공공부문을 국가와 자본을 벗어난 시민사회 영역으로 보는 제 3섹터론 역시 비판하였다. 이와 함께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투쟁에 연대하는 것이 공공성 쟁취 투쟁과 등치될 수 없음을 밝히고, 정세적ㆍ전술적 계기로서 그리고 사회 전반에 대한 민중의 통제권을 높이는 투쟁으로서 사회공공성 쟁취 투쟁을 이야기했다. 하지만 사회공공성 투쟁의 ‘실체’가 제대로 밝혀지지 못한 채, ‘민중 통제권’ 쟁취와 같이 원론적인 수준의 인식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 조건이 지속되었다. 물론 이는 전체 운동의 연대-연합이 만들어지지 않는 상황, 촛불 정국과 같이 우발적인 정세들로 인해 공공부문에 대한 구조조정이 지연되었던 상황과 연관되어 있다. 불안정노동 철폐 투쟁 역시 비정규직 사업장에 연대하며, ‘비정규직 철폐’의 사안으로 한정되는 경우도 있었다. 불안정노동의 심화는 신자유주의 아래에서 금융우위의 축적구조를 만들어 가기 위해 민중들의 삶 전반이 통제당하는 것을 가리키며, 따라서 불안정노동 철폐 투쟁은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에 대한 반대라는 함의를 가지고 있다. 즉 노동유연화의 결과에 대한 투쟁이 아닌 원인에 대한 투쟁을 강조하는 것이며, 인간학적 차이를 타고 들어오는 분할 착취전략에 맞서 이주노동자ㆍ여성노동자와 같은 새로운 계급주체를 발굴하는 것을 의미한다.

하반기에는 그간 밝혀왔던 입장에 대한 몇 가지 오해를 정정하고, 가장 큰 정세였던 ‘촛불정국’에 대한 평가를 통해서 운동의 과제를 밝혀나갔다. 촛불정국은 ‘금융위기와 대안좌파의 과소결정’이라는 현 정세를 극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던 정세였고, 시민들의 저항으로 이명박 정권의 구조조정 공세는 주춤해졌다. 하지만 촛불정국이 소강상태에 접어들며 전열을 다진 지배계급은 경제성장 이데올로기를 다시 발동시키며, 한미 FTA 체결 촉구ㆍ공공부문 선진화 방안 등을 내세웠다. 이에 행진은 경제성장 이데올로기와 대결하고 사유화/시장화 저지투쟁을 통해, ‘反 MB’ 정서를 ‘反 신자유주의’ 연대 운동으로 전화시킬 것을 결의하였다. 이와 함께 대안세계화 운동에 복무하는 학생대중운동의 중장기적인 방향을 마련하기 위해, 학생운동의 사상적 기반을 복구하고 대중운동의 경로를 창출할 것을 결의하였다.


2. 2008년 대중운동을 돌아보며

2008년은 지난 10년간의 신자유주의 개혁분파들의 시대가 막을 내리고, ‘신자유주의적 경찰국가’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준 이명박 정권의 첫 집권기였다. 또한 금융위기라는 형태로 신자유주의의 위기가 가속화되었던 한 해로서, 한편으로는 운동의 위기가 비가역적으로 드러났던 한 해이기도 했다. 이러한 정세 속에서 행진을 포함한 운동진영은 다사다난(多事多難)한 2008년을 보냈어야 했다.

정권은 집권하기도 전에 ‘선진화’라는 이름으로 공공부문에 대한 공격을 감행하였고, 고교 다양화 300프로젝트/자사고 설립/영어 몰입교육 등 교육부문은 그 시작이었다. 2008년 교육투쟁은 시장화/사유화 저지 투쟁의 전초전이었고, 한해를 관통했던 전술 또한 공공부문에서의 투쟁을 주요한 정세적 계기로서 삼으려 했다. 공공부문에 대한 공격은 해당 부문 노동자들에 대한 구조조정 시도, 공기업의 민영화 정책 등으로 한정되지 않는다. 이는 복지부문을 포함한 재생산 영역 전반에 걸쳐 있는 것으로, 민중의 삶 전반에 걸쳐 통제를 강화하는 시도였다. 행진은 이 중 ‘사회서비스 시장화’ 전략에 주목하여, 재생산에 대한 통제가 여성들의 불안정 노동과 어떻게 맞닿는지를 밝히려고 하였다. 이런 문제의식을 ‘여성운동 네트워크’ 등과 함께 공유하고 ‘3.8 여성의 날’ 투쟁을 함께 진행하며, 사회서비스 시장화 문제를 알려나갔다. 불안정 노동과 성차화된 착취에 주목하면서, 꾸준히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연대를 진행하며 여성노동권을 알려나갔다. 특히 2008년은 경제성장이라는 미명 아래 노동자들에 대한 공격이 심화되고 장기 투쟁사업장이 늘어났던 한 해로서, 기륭/홈에버/재능/대학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에 헌신적으로 결합해왔다. 또한 민중의 삶 전반에서 빈곤의 문제가 나타남을 인식하고, 주거권-노점 등 생존권 문제에도 주목하였다.

2008년 전국학생투쟁위원회는 위와 같은 문제들을 대사회적으로 알려나가기 위한 투쟁이었다. 행진은 단독으로 ‘허세욱 열사 1주기 투쟁’을 기획하며, 07년을 관통했던 한미 FTA 정세를 알려내었고, ‘4.20 장애인 차별철폐 투쟁’과 ‘빈곤과 차별없는 서울 만들기’ 등의 사업에도 결합하며 투쟁을 만들어 갔다. 그러나 전학투위는 각 학생운동 세력 간의 인식차이를 극적으로 드러낸 투쟁이었는데, 투쟁 방향으로서 ‘지역운동’이라는 언명에 대해 지역과 현장을 부당대립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불안정노동 철폐 투쟁 역시 고용형태로서 비정규직 철폐라는 문제로 협소하게 인식되었는데, ‘총자본 대 총노동’의 투쟁이 중요하다고 인식한 세력들은 신자유주의에 대한 불완전한 인식 속에서, 당면 투쟁 과제를 ‘단사에 대한 연대투쟁’으로만 한정하였다. 또한 ‘사회서비스 시장화 저지’의 경우에는 거의 논의조차 되지 못하였는데, 이는 운동진영 내에서 재생산 영역/여성노동권과 같은 의제들이 거의 인식되고 있지 못한 현실을 보여주었다. 그간 행진의 문제의식을 아우르며 결성했던 ‘전국학생투쟁위원회’는 당면 정세를 대중들에게 알려내는 선도적인 투쟁으로서 의미가 있었다. 그러나 위에서 이야기한 인식차이를 좁히고 논쟁을 만들어 내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하지 못하는 한계를 보였다.

메이데이 바로 다음 날인 5월 2일 시작되었던 ‘광우병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문화제는, 어느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4개월간의 ‘촛불정국’을 만들어 냈다. 신자유주의의 경향으로서 궁핍화와 건강을 지켜주지 못하는 정권에 대한 민중들의 분노가 과잉결정되며 생성된 ‘촛불정국’은, 운동진영들에 대한 대중들의 불신이 나타나는 계기이기도 했다. 촛불정국 기간 동안 계속해서 ‘시민과 노동자’ 혹은 ‘시민과 운동권’을 나누는 이데올로기가 존재해 왔으며, 시민들의 자발적인 저항을 무조건 찬양하고 조직된 운동진영들의 투쟁을 폄하하거나, 인터넷을 중심으로 새로운 운동의 패러다임이 등장했다는 평가가 있었다. 행진을 비롯한 각 운동진영은 이런 촛불정국의 형세에 뒤늦게(?) 결합하였고, 개입하는 행동 역시 일정한 혼란이 있었다. 물론 시기별 정세에 따라 초반에는 ‘깃발을 숨기고’ 대중들 속에 산개되어 분산된 단위로 선전-선동을 하기도 했으며, 점차 학내의 대중들과 함께 집회에 결합하며 광우병 쇠고기 수입반대와 떨어질 수 없는 한미 FTA 체결 반대와 반신자유주의의 내용을 알려냈다.

촛불정국에서 행진은 의미있는 투쟁을 벌여냈다. 촛불집회에 헌신적으로 결합하였고 학내에서 동맹휴업을 주도하며 대중들과 투쟁을 함께 만들어갔다. 또한 ‘미국 농업체계와 광우병’을 주제로 강연회 등의 교육사업을 벌였으며, 광우병 문제의 본질을 알려나가기 위해 노력하였다. 여름에 진행된 ‘대안세계화 학생포럼’과 ‘반신자유주의 촛불 선봉대’ 역시 촛불정국에 대한 개입으로 진행되었으며, 촛불을 전국적으로 퍼뜨리고 노동자 투쟁과 만나는 촛불을 선동하였다. 이를 통해 대중들에게 너르게 퍼져있는 ‘反 MB’ 정서를 ‘反 신자유주의’ 투쟁으로 바꾸어내기 위해 시도했다. 또한 서울시 교육감 선거에서 지구별로 주경복 선본에 결합하며, 이명박 정권의 시장화/사유화 정책을 저지하는 흐름을 만들려고 시도하였다. 하지만 이런 노력들에도 불구하고 조직적ㆍ정치적 성과에 대해서는 평가의 지점이 있다. 특히 주경복 선거와 같은 경우 선거에 결합하는 정세적 근거는 무엇이며, 주경복 선본이 유의미한 연대체였는지, 지역-지구 운동의 활성화에 기여했는지에 대한 평가가 있었다. 이와 함께 촛불정국 속에서 행진은 예를 들면 회원수의 증가 등 눈에 띄는 가시적인 성과를 크게 거두지 못하였다. 물론 단기적인 양적확대가 운동의 성과로 소급될 수는 없을 것이며, 정치적 목표였던 ‘反 신자유주의’ 전선 형성에 행진의 개입이 어느 정도로 유의미했는가를 중심으로 평가를 진행해야 한다. 또한 여타 운동진영에 비해 정세에 빠르게 대응하여 대중을 선동하는 ‘정치선전단’의 역할에 미치지 못했다는 평가도 있을 것이다. 이는 정세에 대한 바빠른 대응이라는 과제의 중요성을 우리에게 남겨주었다.

촛불정국을 거치며 잠시 주춤했던 정권의 시장화/사유화 전략은, 촛불이 사그라들기 무섭게 재개되었다. 8월말부터 정권은 ‘선진화 방안 로드맵’을 발표하며 민영화를 위한 수순을 밟아나갔으며, 비정규직 개악한 확대 시행 및 한미 FTA 체결을 강하게 밀어붙였다. 이와 함께 ‘新 공안정국’을 조성하며 촛불네티즌과 운동진영에 대한 탄압을 자행하고, ‘사이버 모욕죄’와 ‘집회ㆍ시위 구역 설정’ 등 반동적인 법안들을 상정하려 시도하였다. 하반기 행진은 지배계급의 공세에 맞서는 투쟁에 결합하며 불안정노동 철폐 투쟁에 연대하고 있으며, 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흐름들에 동참하며 유의미한 연대-연합을 만들기 위한 시도를 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9월 성신여대에서 벌어진 대학 비정규직 투쟁에 연대하며, 학내에서 대중들을 설득하고 투쟁을 승리로 만든 것은 모범적인 성과라고 할 수 있다. 성신여대에서의 투쟁은 활동가들의 헌신적인 결합과 시기시기의 전술 수립 속에서 유의미한 대중운동을 만들어 갈 수 있었고, 비정규직 투쟁에 있어 값진 승리를 안겨다 주었다. 행진은 ‘서울 사회공공성 연석회의’ 등의 투쟁에 함께하며, 운동의 연대-연합을 만들기 위한 노력을 하였다. 이런 연대체를 통해 일제고사 거부 투쟁 등을 함께 했으며, 최근에는 전교조에 대한 탄압과 관련하여 공정택 퇴진운동을 진행하기도 하였다. 이와 함께 하반기를 강타했던 미국발 금융위기에 대해 지배계급들의 허구성을 알려내기 위한, 회원모임-월례포럼-강연회와 같은 일상적인 교육사업을 지속하였다.

물론 행진에서 펼쳐낸 1년의 대중운동이 위에 서술되어 있는 것만으로 한정되지 않는다. 1월 전국대학생대회와 총회, 5월의 광주순례단, 7월의 빈곤철폐 현장활동과 문예운동게릴라캠프/교육캠프, 여성행진의 사업들을 진행하였다. 물론 행진 활동가들이 학생회/동아리/문예패/생자도 등 대중단위를 통해서 활동을 벌여나갔으며, 대중과 융합하기 위해 수많은 고민과 노력들을 하였을 것이다. 하반기에 진행한 학생회 선거 평가는 다음 글에서 평가를 할 것이다.


3. 2009년 학생회 선거 평가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와 미국발 경제위기 등의 영향을 받아 ‘운동권 총학생회가 부활했다’는 분석이 들려온다. 건국대ㆍ경희대ㆍ고려대ㆍ국민대ㆍ숙명여대ㆍ한국외대ㆍ충남대 등 올해 비운동권 학생회가 수권하던 곳에서 한대련 계열의 선본들이 당선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학생회 선거를 둘러싸고 학교 당국의 개입ㆍ부정선거ㆍ세칙에 근거하지 않은 무원칙적인 행위 등이 난무했던 올해, 우리는 학생사회가 일련의 사태들을 해결할 수 있는 자정능력을 잃었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해야 했다. 우리는 지금의 상황이 총학생회 중심의 학생대중운동을 벌여내었던 이전의 상황과 같지 않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과반학생회ㆍ단과대 학생회ㆍ각종 위원회 등 총학생회와 톱니를 맞춰야 할 대중단위들은 급속도로 해체되었고, 그 위상 또한 복지를 담당하는 기구 정도로 인식되기도 한다. 또 폭발적인 대중운동의 성과를 학생운동의 자산으로 구조화할 수 있었던 80년대와는 다르게, 지금의 학생대중운동은 촛불 정국으로 터져나온 정권에 대한 불만 등 정치적 쟁점들을 확장하거는 데에 일정 실패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운동권 총학생회가 부활했다’고 분석하는 것은 굉장히 단편적인 분석에 머물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소위 비권 학생회라고 부르는 단위들에서도 ‘등록금’과 ‘촛불’에 대해 발언하며, 동맹휴업을 함께 하고 거리에 나섰으며 운동권과 비운동권의 구분이 허구적임을 스스로 말하고 있다. 이런 변화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 학생회 선거 시기에 행진에서 내었던 입장들은 얼마나 유효했고, 그것을 실천적으로 풀 수 있었는가?

행진에서는 ‘학생회 선거의 의의와 목표’를 통해 몇 가지 목표를 세웠다. 그것은 경제/정치/운동의 위기 속에서 학생운동 역시 대중과 융합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바꿔내기 위해, 현재 학생운동이 서 있는 조건을 면밀하게 분석하고, 그간의 학생회운동에 대한 평가를 바탕으로 학생운동/학생회 운동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개조’를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대학인들의 삶을 자기계발이 아닌 자기통치로 이끌기 위한 학생운동의 혁신을 지체 없이 단행하는 장(場)으로 만들 것을 결의하였다. 이를 위해서 1) 학생회라는 공간을 어떻게 대중운동의 경로로, 대안세계화 운동의 거점으로 만들 것인가에 대한 ‘계획’을 세울 것을 결의하였다. 이는 금융화에 대한 비판을 전면화하고, 대중교육을 비판하면서 지식에 대한 민중의 권리를 옹호하고, 페미니즘을 저항의 언어로 재구성하자는 등 신자유주의 비판을 더욱 구체화하는 것이었다. 2) 학생회라는 공간이 대안세계화 운동의 이념에 걸맞는 조직체계를 갖도록 개조하는 목표를 세웠다. 학생운동을 포함한 전체운동의 위기 속에서 각 운동들은 독자적으로 구조화되어 상호 영향력을 발휘하기 힘든 상황에 처해 있고, 대중운동 없는 대중조직의 분열은 위기를 심화시키고 있다. 이에 대안세계화운동의 주체형성에 가장 중요한 물적 토대로서 '지역'을 사고하고, 지역에 기반한 사회운동의 활성화를 통해 전체 운동을 혁신해 나가야 한다고 밝혔다. 3) 셋째로 학생회라는 공간을 민주주의를 학습하고 훈련하는 장으로 복원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신자유주의적 사회재편 과정이 만들어내는 폭력과 기본적 권리의 박탈에 맞서 분절화-개별화 되어 있는 대중, 그/녀들간의 상호갈등과 적대로 표상되는 대학사회에서 대학 내 제 구성원들이 보편적 권리를 쟁취하고 삶의 위기를 극복하기위한 직접행동에 나서기 위한 공존과 연대의 원리를 밝힌 것이다. (행진 뉴스레터 선거 특별호 참고)

이런 내용을 담아 ‘위기에 맞서 연대로, 당신은 리얼리스트!’라는 모토를 내걸고, 학생회-학생사회/불안정노동/교육/페미니즘 각론을 제출하였다. 제출된 모토와 각론이 선거지형에서 어떠한 효과를 만들어냈는지를 평가할 때에는 두 가지가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첫 번째는 특히 미국 발 금융위기가 심화된 이후 ‘금융위기’와 ‘연대’라는 화두가 대중들을 설득하고 주체화시킬 수 있었는지가 평가되어야 할 것이고, 두 번째는 대학의 대중의식지형과 운동주체들의 주체적 역량이 더 열악해진 시점에서 ‘선거의 의의와 목표와 모토, 각론이 선거 공간을 통해 쟁점화 되는 것이 물리적으로 가능한 것인가?’라는 문제가 토론되어야 한다. 이는 아직까지 남아있다는 ‘학생회 선거의 물질성’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엄밀하게 따져보는 것과도 연관될 것이다.

모토가 ‘바른 말’로 남는 것이 아니라 대학인들에게 행동양태를 제안하고 그 과정에서 갈등을 일으킬 수 있어야 할 것인데, 많은 경우 행진의 모토가 추상적이고 바른 말로 남아버렸다는 평가는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이는 결국 위기가 사람들의 삶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드러나는지를 포착하고, 대중들의 의식이 존재하는 바로 그 지점에서 ‘위기’에 대한 인식을 하게하고 ‘연대’의 실천태를 구체화하는 작업이 풍부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올해 성신여대처럼 미화노동자들과 학생들의 투쟁이 있었던 곳은 상대적으로 풍부하게 모토를 풀어낼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 투쟁의 경우 학내 노동자들과 학생들이 서로의 권리를 지지하고 연대하기에 좋은 조건이기도 했지만 학생활동가들이 지속적으로 선전선동하고, 학생들이 동참하고 지지할 수 있는 실천태를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수정이들의 싸움’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금융화에 대한 이해를 강조하는 것은 대중에 대한 교육과 계몽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다종다기 한 전술을 구사하는 과정에서 대중들이 위기에 처한 자본의 속성을 파악하고 그에 맞설 수 있는 다양한 실천, 저항 이데올로기를 구축하는 문제이다. 지금 세계 자본주의가 위기라는 것은 조선일보도 알고 있고, 지배계급부터 모든 운동진영에 이르기까지 ‘위기’를 말하고 있다. 행진이 발전시켜 온 금융・군사세계화에 대한 분석은 정세적인 투쟁 속에서 지배계급의 위기담론과 변별점을 드러낼 수 있어야 한다.

행진은 그간 학생회 선거에서 ‘친근하고 세련된 이미지’에 강박당하며 복지 공약을 남발하거나, 은연중에 학내/외를 가르는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정책을 낸 것에 대해서 비판적으로 평가하였다. 학생회 선거를 진행한 각 단위에서는 이주노동자한글학교/대학 비정규직 권리찾기 Project/리얼포럼/펀드 브레이크/빈곤 없는 **대 만들기 등의 공동 공약은 이런 고민에서 제출한 것이다. 즉 소박하더라도 학생사회의 재구조화에 기여하고 대중들과 함께 하며, 신자유주의가 파괴하는 권리들을 되찾기 위한 대중정책을 제시한 것이다. 이런 공약들은 2009년에 각 학생회와 대중단위에서 활용될 것이고, 대중정책을 실천하는 과정 속에서 더욱 발전할 것이다. 물론 복지공약을 남발한 것에 대한 비판이 ‘선본의 선명성을 부각시키는 것’, 입장만을 ‘남발’하는 것으로 이해되어서는 안 된다. 학생사회에서 책임감을 가지고 대중운동을 진행하기 위해 선거를 진행했다면, 대중들과의 융합을 위한 끊임없는 활동태를 고민해야 하며, 싸이클 속에 들어있는 소위 ‘조합사업’에 대한 재정비를 고민해야 한다. 그렇지 못하고 선본의 입장을 강변하는 선거는 대중운동에 대한 긴장감과 실력을 잃어버리는 것이며, 학생사회의 재구조화라는 과제는 하염없이 축소될 것이다. 또한 추후의 과제를 제출하기 위해 진행하는 선거라고 해서, 예상하지 못했던 쟁점과 단위의 정세적인 사건에 대해 기민하게 대응하지 못하는 편향은 정정되어야 할 것이다. 이에 대해 빠르게 대응을 하며 선거 시기의 논점을 만들어야 할 것이며, 그것이 학생회 선거라는 열려진 공간을 최대한 활용하는 방법이다.

행진에서 제출한 각론과 대중정책들은 학생회 선거뿐만 아니라, 각 단위에서 진행한 자치학교나 ‘금융위기 해결 실천단’과 같은 사업들을 통해 대중들에게 알려내었다. 대중정책들을 풀어내기 위해 진행된 사업들이 얼마나 의미가 있었으며, 이를 통해 대중운동에 대한 긴장감을 어느 정도 획득할 수 있었는지 꼭 평가해야 할 것이다. 이런 평가를 통해서 08년도 대중운동의 성과를 정리하고, 이를 바탕으로 더욱 힘찬 대중운동을 벌여나가야 한다.

 

4. 남겨진 과제들

연말연초! 현재 계급투쟁의 핵심대립지점은 어디이며, 우리의 대중운동은 어디에 초점이 맞추어져야 하는가? 경제위기는 실물경제로 이어져 인천-부평의 GM 자동차 공장이 휴업에 돌입하였고, 공장 공동화 현상 및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대대적인 감축이 예상된다. 대학가에서는 새삼스럽게 청년 실업과 교육연한의 증대가 이슈로 떠오르고 있으며, 정부에서는 ‘청년인턴제’의 도입 등을 통해 문제를 봉합하려고 하고 있다. 정권에서는 우선 금융분야에 대한 위기대응을 하고 있는데, 300억 달러 규모의 한-미 통화swap에 이어, 얼마 전 한-일ㆍ한-중 통화swap 체결을 통해 달러 유동성 위기 우려에 대한 선제적 조치를 취했다. 또한 실물경제의 심각한 타격에 대한 정책으로서 한국은행을 중심으로 한 중소기업에 대한 20조원 기금 조성을 통해 자기자본비율을 높일 수 있도록 한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이미 자동차ㆍ건설부문을 선제적으로 하는 이른바 실물경제에 파급되고 있는 위기의 폭이 예상을 넘는 수준이라는 것을 정부에서도 이미 알고 있다.

하지만 최근 한나라당 김성조 의원이 발의한 최저임금법 개악안이 대표적으로 보여주듯이, 지배계급은 경제위기에 대응하여 민중들을 공격하는 대대적인 조치를 취하고 있다. 지역별/연령별(60세 이상) 최저임금 차등부과 및 숙식비 공제 한도를 골자로 하는 이 법안은, 최저임금을 낮춤으로서 더 많은 일자리를 얻을 수 있는 것처럼 호도하고 있다. 비정규직법 또한 기간제와 파견근로자의 고용기간을 현행 2년에서 연장하고, 32종으로 제한된 파견 허용업무도 확대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등 크게 개악될 예정이다. 일주일에 15시간 미만 일하는 노동자를 기간제 근로자 사용계약에서 제외했지만, 개악안에서는 20시간 미만으로 적용 제외 대상을 확대할 방침이다. 전반적인 노동유연화 기조와 연관된 이러한 정책들은 자본을 지원하기 위한 ‘눈가리개’일 뿐이며, 노동자의 고용 등 전반적인 노동조건은 더욱 악화될 예정이다. 또한 정기국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복지예산안에서는 기초수급생활자의 수를 대폭 줄이고, 의료급여의 혜택 역시 축소하고 있다. 복지영역에 대한 공격은 이명박 정권의 큰 기조인 시장화/사유화 흐름과 맞물려, ‘예산 합리화’라는 이름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또한 지속적으로 민중들에게 경제성장에 대한 환상을 퍼뜨리며 이데올로기전을 퍼뜨리며, ‘사이버 모욕죄’ 도입과 언론 장악 시도에서 보이듯이 민중에 대한 통제력을 강화하고 있다.

이에 대한 운동진영들의 상황은 어떠한가? 한국진보연대 등은 최근 민주당과 함께 ‘민생민주국민회의’를 꾸리고, 사안별 연대를 통한 광범위한 ‘반이명박 정선’을 추동한다는 계획을 밝히고 있다. 하지만 사안별 연대라는 명목으로 원칙없은 조직확장에만 주력하는 것이 운동의 위기를 절대 극복할 수 없고, 당면정세에 대응한 합력창출마저 왜곡될 가능성이 크다. 원론적으로 다시 강조를 하면 현재 중요한 것은, 운동의 위기를 넘어 다시금 운동을 ‘재건’할 수 있는 보편적인 이념과 전망을 구축하는 것이다. 학생운동 역시 ‘사회운동의 재건’이라는 과제에 복무할 수 있는 재구조화가 필요한 시점이며, 이는 정세적 계기들 속에서만 확립될 수 있다. 이것은 보편적인 ‘반 신자유주의 전선’을 형성한다는 것과 조금도 다른 말이 아니다. 행진에서는 촛불정국을 거치며 확산된 ‘반 MB 정서’를 ‘반 신자유주의 투쟁’으로 전화시켜야 한다고 강조하였고, 시장화/사유화 저지투쟁이나 촛불 정국 등을 그 계기로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투쟁의 계기들을 찾아나가며 구체적인 언어로 대중들에게 말해야 하며, 구체적인 대중정책으로 융합하려는 시도를 끊임없이 해나가야 한다. 일상적으로는 강의실ㆍ자치공간을 돌아다니며 선전선동을 단행하고, 목표와 과제를 잘 설정하는 가운데 이주노동자 한글학교/학내 비정규직 권리찾기/월례포럼/빈활과 같은 실험들을 해나가야 한다. 대중운동을 실행하는 과정에서 캠 행진의 위상과 임무를 잘 설정하고 활동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대중운동을 활동가들끼리 진행하며 자족한다거나, 투쟁 동아리화가 되는 것은 언제나 경계해야 하는 편향이다. 행진의 강화는 행진 활동가들의 강화로, 이는 다시 대중운동의 강화로 이어져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자.

지금까지 08년 행진의 입장과 대중운동들을 간략하게 돌아보고, 현재의 정세와 09년도 대중운동의 과제에 대해서 언급하였다. 다시 한 번 언급하듯이 이 글은 평가를 위한 하나의 자료일 뿐이며, 엄밀하고 구체적인 평가는 동지들의 몫으로 남겨놓는다. 연말연초의 설레는 기분에 들떠 부유하지 않고, 차분하게 지난 시간의 활동을 되돌아보며 평가와 결의를 하기를 권한다. 09년도 풍성한 대중운동을 결의하며 글을 마친다!!

Posted by 행진

2008/12/30 10:35 2008/12/30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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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간사] 위기는 어디로?

 [21호 발간사]

붕뜬 시기, 마음을 다잡고 다시 앞으로!



2학기가 얼마 남지 않은 시간입니다. 11월에 진행했던 학생회 선거와 대중사업들에 대한 평가도 모두 진행하셨을 것이고, 현재는 굵직한 일정없이 기말고사를 보고 있는 동지들이 많을 것입니다. 이러는 사이에도 정세는 시시각각으로 바뀌며 한시도 눈을 뗄 수 없게 만듭니다. 각종 경제전문단체들에서는 우울한 2009년의 경제전망들을 내놓고 있으며, 더 많은 일자리를 더 창출한다는 명목으로 개악된 최저임금법을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많은 대학들이 등록금 동결을 발표하며 고통분담을 한 것처럼 생색내고 있고, 교육부는 전교조와 ‘좌파’ 교과서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을 가하고 있습니다.


굵직한 정세도 일정도 없는 것이 요즘입니다. 하지만 언제나 어떤 곳에서 계급투쟁이 터져 나올지 모르고, 일상적인 대중운동이 중요한 만큼 매일 긴장감을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시험이라는 학사일정과 연말이라는 들뜬 분위기에 갇혀 페이스를 잃고 살아갈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긴장감을 회복하고 방중 대중운동을 만들어 가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붕뜬 마음을 다잡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준비를 하는, 잘 사는 겨울방학을 만들기 위한 준비를 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21호 뉴스레터는 긴 시야에서 조망해 볼 수 있는 문제들에 대해 주로 다루었습니다. [정세동향]에서는 지난 11월에 열린 람사르 총회 등을 통해, 현재의 생태위기에 대한 지배계급들의 대응을 살펴보는 글입니다. 현재 건강문제나 생태문제를 둘러싸고 자본주의의 모순이 나타나는 경우가 많고, 우리에 이에 대해 충분히 대응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어야 합니다. [정세전망]에서는 오바마의 당선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짚어보는 글입니다. 섣불리 단정하기에는 너무 이르지만 인민주의적 통치 스타일을 예상해볼 수 있을 것이고, 이에 맞서 인민의 정치적 역량을 높이는 것이 우리의 길이 될 것입니다. [기획연재]에서는 ‘2008, 한국현대사를 만나다: 1960년대’ 편입니다. 발전주의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박정희 정권 시기에 대해 살펴보며, 당시의 경제성장과 계급투쟁 지형에 대해 살펴봅니다.


21호는 글이 적고 발간도 많이 늦어졌습니다. 좀 더 풍부한 대중운동의 무기를 담아, 2008년이 가기 전에 다시 발간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치열한 마음 놓지 않고 ‘학기 말’을 잘 보내시길 바랍니다.


Posted by 행진

2008/12/08 11:58 2008/12/08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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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회말 2아웃 미국, 오바마는 미국의 구원투수가 될 것인가?



  8년만의 공화당 정부가 끝나고, 232년의 백인 대통령 시대가 끝났다. “CHANGE” 와 “Yes, we can.”을 외치던 버락 오바마는 첫 흑인 대통령이 됨으로써 온 몸으로 ‘무언가 변하리라’ 는 것을 증명했다. 대공황에 비견되는 경제위기 상황에서 미국의 새로운 대통령과 정부가 어떻게 움직일지, 부시 대통령 시절 끊임없었던 군사개입은 축소될 것인지, 세계의 시선은 미국으로 쏠려있고 오바마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그의 정치적인 행보뿐만이 아니라 개인적인 취향과 가족관계에 이르기까지 폭넓다. 미국인들이 이렇게 ‘변화’를 외치고 실제로 지금의 자본주의의 모습을 ‘변화’시키지 않으면 도저히 미 헤게모니가 유지될 수 없는 상황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희망과 꿈을 투영하고 있는 오바마의 미국 정부 하에서 앞으로 과연 무엇이 얼마만큼 변할 것인가? 


무엇인가 변하긴 할 것이다. 


  반전운동을 비롯한 미국의 시민운동, 미국 노총을 비롯한 노동운동은 이번 2008년 대선에 '올인'했다고 한다. 그 유명한 '식코(Sicko)'의 마이클 무어 감독도 오바마를 지지했을 정도다. 이들은 모두 오바마의 정책에 100퍼센트 만족하지는 않는다고 하면서도, 어쨌든 오바마가 당선되어야 한다고 굳게 믿었다.

  미국의 운동세력이 믿었던 것처럼, 어떤 방식으로든 ‘변화’는 올 것 같다. 몇 십 년 전만해도 억울한 죽음 하나도 호소하기 어려웠던 흑인 중에 대통령이 나왔다는 사실은, 브래들리 효과를 두려워한 흑인들이 오바마 선본에 급진적인 요구를 하나도 하지 못했다는 역설적인 상황 속에서도 여러 흑인들의 자존감을 회복시키는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리고 어쨌든 ‘인종문제’ 가 사람들의 머릿속에 어떤 방식으로든 각인된 것도 확실하다.

  또한 부시와 네오콘이 주도해 온, 일방주의적인 미국의 대외정책도 새로운 전환점을 예고하고 있다. 북한과의 관계도 이전과는 달라질 것으로 전망되며, 이라크에서의 미군철수를 공약으로 내세웠던 만큼 이라크 전쟁도 전환기를 맞이할 것이다. 어쨌든 민주당은 역사적으로 공화당보다 군사행동을 좀 더 진지하게 고민해왔던 당이니 말이다.

   앞서 언급한 '식코(Sicko)'의 마이클 무어 감독이 “오바마의 정책은 단일 보편적 보험체계가 아니다. 모두를 포괄하지도 않고, 비영리의 성격도 아니다. 여전히 수십만 달러를 보험기업과 제약기업의 손에 넘길 것"이라고 지적하긴 했으나, 오바마의 주요 공약 중 하나인 국민의료보험제도 도입은 현실화 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그는 의료보험 혜택을 전 국민에게 확대하겠다고 공약을 내걸었는데, 직장에서 의료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거나 현재 연방 의료보험 프로그램에 자격을 갖추지 못한 개인들을 위한 전국의료보험 신설을 검토하고 있다. 또한 25세 이하 미국 시민들은 부모의 보험으로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기회를 열어주겠다는 방침이다.

  노동 분야에서 오바마는 노동자자유선택법안(Employee Free Choice Act)을 지지하고 있다. 이 법안은 다수의 노동자가 서명을 통해 지지할 경우 사용자는 노조결성 요구를 의무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현재 미국에서 노조를 만들기 위해서는 노동자들이 투표를 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회사의 개입이 심해서 실제로 노조를 만들기가 매우 어렵다. (참고로 한국은 2인 이상 사업장에서 자유롭게 노조를 결성할 수 있다. 물론 회사와 국가에서 노조를 깨기 위한 수많은 시도를 하여 결성된 노조가 유지되는 것이 힘든 경우가 많지만, 법적으로는 미국보다 열려있는 셈이다.) 노동자자유선택법안이 통과되면 노동자의 절반 이상이 ‘노조 결성을 지지한다.’ 는 카드에 서명하기만 하면 되므로 노동조합 결성이 이전보다 쉬워진다. 이 법안은 2003년 민주당을 중심으로 하원에서 발의됐지만, 상원과 백악관이 처리를 미루고 있었는데, 오바마가 대통령에 당선됨으로써 법추진에 가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인다.

  이외에도 부유층을 위한 감세제도의 폐지도 현실화 될 가능성이 높으며, 시간당 최저임금은 9.05달러로 인상시킨다는 것도 공약 중 하나이다.


오바마, 미국 경제의 구원투수가 될 것인가?


  그러나 미국인들이 '변화'를 위해 투표장으로 향했던 그 날에도, 미국 경제는 여전히 암울했다. 위기는 이미 실물경제에 파급되어 제조업을 크게 강타했다. 9월 공장주문은 한 달 전에 비해 2.5% 하락했으며, 자동차와 항공기 부문을 제외하면 하락률은 3.7%로, 1992년 이후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실업률도 지난 9월 6.1%로 상승해 2003년 9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재무부는 금융업계의 전망을 종합해 2009회계년도에 전체 재정적자가 1조 4천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집계했으며, 한 비정부기구는 같은 기간 재정적자가 무려 2조 6천억 달러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며칠 전에는 내년 1월 20일 오바마의 대통령 취임 당일 경제 회복과 예산 지출 법안에 바로 서명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기사가 올라오기도 했다. 보통 대통령 취임 2주전은 의회가 열려도 휴식기나 다름없는 상황이었으나, 이번엔 경제위기 등으로 인해 도저히 그럴 수 없는 상황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고 한다. 또한 오바마 행정부 중 가장 주목받았던 부분은 힐러리 클린턴이 국무장관을 맡느냐보다, 재무장관을 비롯한 경제팀 인선이었다. 이를 보더라도 역시 초미의 관심사는 경제문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초호화 인선이라고 일컬어지고 있는 이 경제팀이 어떻게 지금의 난국을 헤쳐나갈지에 전 세계의 이목이 총집중되어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이는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주도해온 미국에서의 변화가 세계 경제 질서의 재편까지 수반할 것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오바마가 구체적으로 어떤 정치학을 가지고 있든지, 그는 미국이 현재 가지고 있는 세계에 대한 지배력을 유지해야 하고, 특히 경제적인 부분에서의 헤게모니를 잃지 않기 위해 전력을 다해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 그는 9회말 2아웃까지 온 미 헤게모니 하 자본주의의 구원투수이다.


  올해, 금융이 지배하는 경제구조로 인한 위기가 파괴적으로 드러나기 전에도 미국의 경제구조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지적해 온 이들은 있었다. 이 중 프랑스의 경제학자인 뒤메닐과 레비가 미 헤게모니를 유지하기 위해서 필요한 조치가 무엇인지를 이야기한 바 있는데, 이를 살펴보자. 이들은 미국이 효율적인 제국주의 국가로서 나머지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고 하면서도 미국이 점점 더 외국자산에 종속되고 있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미국의 우위에 문제가 생길 것이라고 이야기 해 왔다. 신자유주의 시대에 미국 자본주의가 맞닥뜨린 모순의 장기적 과정은 오른쪽과 같은데, 이 고리가 무한정 연장된다면, 미국의 자본가계급은 점차 소득과 부를 빼앗기게 된다. 그렇게 되면 당연히 미국 자체의 힘도 침식될 것이다. 그러나 미국 자본주의의 미래가 이렇게 될 것 같지는 않으며, 이 말은 곧 새로운 궤적이 추진될 것이라는 뜻이다. 이는 미국 경제와 사회가 새로운 국면, 신자유주의의 새로운 단계나 신자유주의를 넘어서는 새로운 단계로 진입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같다.

거대한 자본소득(세계 다른 국가들로부터의 유입을 통해 커졌다)과 상대적으로 느슨한 통화정책

부유계급의 소비증가

경상수지 적자 확대

외채 증가

외국으로의 거대한 소득 유출

국내 자본소득의 감소


  현재 미국경제의 구조에서 새로운 방향으로 전환하기 위한 핵심적인 요소는 1) 부유층 가계의 지출 축소, 2) 국내 시장을 향한 수요의 방향 전환, 3)국내적으로 조달되는 더 큰 축적률이다. 이러한 경로설정은 가능하지만 그 길에 도달하기는 어렵다. 이 길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첫째로, 기업 내의 이윤 유지는 부유층 가계의 소득을 줄이고 투자에 자금을 조달하는 직접적 방식이 되어야 하는데, 이는 더 낮은 이자율과 더 적은 배당금 지급을 뜻한다. 그러나 이것은 경영자와 소유자 중 후자의 손을 들어주고자 하는 신자유주의의 근본목표와 모순된다. 둘째로, 국제수지의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데 엔, 유로, 위안화 등의 평가절상을 통한 달러가치 하락을 조장하는 것은 이를 위한 수단이긴 하지만 이는 미국의 금융적 지배나 효율적 제국주의 권력으로서의 역량과 모순된다. 또 다른 수단으로서 무역장벽도 가능하겠지만, 이것은 외국이 보복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세계적 지배의 양상과 어울리지 않는다.

  오바마는 이전부터 부시 행정부의 시장근본주의가 위기의 뿌리라며, 시장에 대한 정부의 적절한 규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해 왔다. 또한 보호무역을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그러나 현재 확산되고 있는 금융위기가 부시정권의 실정의 문제로만 소급될 수 없다는 점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민주당 출신의 클린턴 대통령이 1992년 대통령에 당선된 후부터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를 비롯한 자유무역이 확산되었고, 글래스 - 스티걸법 폐지하여 상업은행이 투자은행 업무도 병행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금융시장을 자율화하는데 결정적인 기회를 제공하였다. 오바마의 경제정책 방향과 경제팀의 면면을 보았을 때, 현재로서는 이러한 클린턴의 유산, ‘루비노믹스’를 뛰어넘기가 힘들겠다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루비노믹스는 클린턴 시절 재무장관이었던 로버트 루빈의 정책노선을 가리키는 말로, 균형 예산, 정부의 적절한 시장 개입, 자유무역, 금융규제 완화, 강한 달러 등으로 특징지어진다. 오바마 경제팀의 투 톱인 서머스와 가이트너가 바로 클린턴 행정부 시절 루빈과 함께 일했던, 이른바 ‘루빈 사단’이다. 루빈은 90년대 클린턴 행정부 시절 미국 경제를 초유의 성장과 안정으로 이끄는 데 성공했지만, 한국을 비롯하여 외환위기를 경험한 국가들에겐 루비노믹스는 악몽처럼 기억되기도 한다. 외환위기를 틈 타 아시아 각국의 산업ㆍ기업이 미국 자본에 속속 넘어갔던 경험 때문이다.

  이러한 경험으로 인해 루비니스트를 중심으로 강력한 미국을 재건하기 위한 시도가 시작되면 주변국은 금융ㆍ의료ㆍ서비스 등 시장을 더욱 열어젖히도록 요구받을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전문가들이 새로 출범할 오바마 행정부의 상황이 90년대식의 루비노믹스를 그대로 재현하기엔 현재의 상황이 다르다고 지적하면서, 금융규제 완화보다는 규제, 균형 예산이 아니라 적자 재정(을 통한 경기부양)의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지만 미국의 금융화의 방향을 크게 틀수는 없을 것으로 보이며, 기본적으로 강력한 미국을 만들기 위해 부담을 외부로 수출하는 부분에서는 기존의 루비노믹스를 그대로 재현할 듯하다. 강력한 금융규제와 실물경제 회복을 위한 계획이 필요함에도, 미국의 이러한 태도로 인해 신자유주의 금융화의 방향을 틀고 이를 실현시키기는 어려워 보인다. 비록 오바마가 불참하고 부시가 참가하긴 했지만 G20에서도 미국은 빠르고, 광범위하고, 강력한 규제를 추진하길 원했던 유럽의 입장과 다르게 시간을 가지고 더 조정된 정책 개입을 원했다. 결국 미국은 그 헤게모니를 관철시키기 위해 앞서 ‘부유층 가계의 소득을 줄이고 투자에 자금을 조달하는 방식’이 아니라, ‘세계 다른 국가들에게 더 압력을 행사하는 방식’을 취할 것이다. 


오바마, 전쟁을 종식시킬 것인가? 


  이번 대선에서 경제문제 다음으로 유권자의 주목을 받았던 문제는 이라크 전쟁이다. <CNN>조사결과 응답자의 10퍼센트가 이라크 문제를 관심사로 꼽았다고 한다. 2001년 9월 11일 테러에 대한 응징이었던 아프간과 이라크 전쟁은 최근 급격히 확산하고 있는 경제위기와 함께 미국의 대외적 지도력과 위상이 추락하는 결과를 낳았고, 부시 행정부와 여기에 이은 공화당 매케인 후보의 패배에 결정적 요인이 되었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오바마는 이라크에서의 철군을 공약으로 내세웠고, 새로운 미 정부는 예전보다는 군사행동을 결정하는데 많은 고민을 할 것이다. 대부분이 사람들이 이라크 문제와 대북정책 등 대외정책에서는 항상 공화당보다 민주당에게 많은 희망을 걸어온 것 또한 사실이다. 하지만 오바마가 약속한 7대 외교안보분야 정책목표 중 하나는 ‘알카에다 분쇄 및 테러리즘과의 투쟁’이다. 베트남 전쟁영웅인 매케인조차도 그가 ‘흑인’이라는 이유로 그의 애국심을 의심해서는 안 된다고 이야기했듯, 오바마 역시 미국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리라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이미 곳곳에서 “관리 스타일만 바뀔 뿐이다.” 라는 냉소적인 시각의 분석이 쏟아지고 있다. 영국 <타임>은 미국이 오바마의 철군 시간표에 따라 이라크에서 철군을 하겠지만, 2009년까지 이라크에 배치할 두 개 여단을 아프간으로 배치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의 진보 저널 <카운터펀치>의 알렌산터 콕번 편집자는 "만약 그(오바마)가 당선된다면 아프간에서 실패해서는 안된다는 약속에 스스로 갇히게 되는 결과가 될 것"이라고 꼬집고, "오바마가 승리한다면, 해외에서 가장 즉각적인 결과는 아마도 무뚝뚝한 제국의 재확인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오바마는 반테러전쟁의 중심전선은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이고, 여기에 전력을 집중하여 알카에다를 분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그는 이러한 전략적 관점에 근거해서, 이라크전은 오히려 반테러전쟁의 역량을 분산시킨 “불필요한 전쟁”이었다고 말한다. 따라서 이라크에 주둔한 미군을 재배치하여 중심전선으로 투입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파키스탄에서의 군사행동은 더 확대될 전망이다.

  부통령으로 당선된 조지프 바이든은 오바마는 최대 약점인 대외정책에 대한 경험부족이라는 비난을 불식시키기 위해 선정된 파트너 이며, 이는 대외정책에 대해서 상당부문 바이든에게 의존해야 하는 상황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그러나 바이든은 부통령 당선인은 2002년 이라크전 개전에 민주당 당론과 달리 찬성표를 던진 이력을 가지고 있으며, 1990년대 발칸반도에서의 미국의 군사행동을 지지했고, 당시 군사적 개입을 주저하고 있던 클린턴 행정부를 집요하게 압박해 미국의 군사적 개입을 이끌어 낸 장본인이기도 하다.

  오바마는 그가 흑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오히려 인종문제를 미국에 대한 애국심 혹은 민족주의 - 인종과 일치하지는 않는, 그래서 일반적인 ‘민족주의’로 보이지는 않지만 아메리카적 생활방식에서 비롯되는 민족주의 - 로 해결하려 들 것이다. 오바마를 지지했던 콜린 파월은 NBC-TV의 '언론과의 만남(Meet The Press)'에서 오바마를 공식 지지하기 위해 나와 이렇게 말했다.

  “전 (공화당의 일부 의원들이) ‘오바마는 무슬림이야’라고 말하는 것에 불편함을 느낍니다. 정답은? 그는 무슬림이 아닙니다. 기독교인입니다. 항상 그랬어요. 그러나 진짜 옳은 대답은, 만약 그렇다면? 이 나라에서 무슬림인 것이 무슨 문제라도 됩니까? 답은 '노'입니다. (문제가 된다면) 그것은 미국이 아닙니다. 7살짜리 무슬림계 미국 아이가 앞으로 미국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믿는 것에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중략)…이런 식의 행동을 우리가 미국에서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면서 그는 목이 메인 채로 이런 일화를 들려주었다고도 한다. 

  “잡지에서 본 한 장의 사진 때문에라도 특히 이 부분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복무 중인 군인들에 대한 포토에세이였어요. (버지니아의) 알링턴 군인 묘지에 있는 한 어머니가 아들의 무덤 비석에 머리를 묻고 있었습니다. 사진이 보여주는 것은 바로 그 비석의 머릿말이었는데, 자주색 하트와 동색 별이었어요. 이라크에서 죽었다는 뜻이죠. 20살이었는데, 그 다음 사진이 뭐였냐면 비석의 제일 윗 부분인데, 그것은 기독교의 십자가도 아니고 이스라엘의 다비드별도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초생달과 별로 되어있는 이슬람교도의 표시였어요. 그 병사의 이름은 카림 라샤드 술탄 칸. 그는 미국인이었습니다. 뉴저지에서 태어났고 9·11 당시 14살이었는데 군대에 들어오기만을 기다렸답니다. 그리고 목숨을 바쳤지요. 자, 지금 우리는 이런 식으로 우리 스스로를 분열시키는 행위를 중단해야 합니다.”

  그의 말을 듣고 감동했을 미국의 흑인이나 무슬림들이 미국을 지킨다는, 혹은 세계를 구원하고 “악”과 싸우겠다는 명분으로 다시 파키스탄으로, 팔레스타인으로, 이란으로 떠날 수 있다는 사실은 우리를 섬뜩하게 한다. 오바마의 애국심은 파월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는 결코 전쟁을 끝낼 수 없다.

 

인민주의자 오바마와 정치의 주체로서 인민 사이에서


  오바마가 경제위기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못하더라도, 전쟁을 완전히 종식시키지는 못하더라도, 그래도 공화당보다는 민주당이 낫다, 조금이라도 개혁이 되는 것은 바람직한 것이 아닌가, 라고 의견을 피력하는 이들이 많다. 그러나 우리는 ‘오바마가 얼마만큼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인가’ 에 여러 자료를 분석하고 정리해서 답하는 것으로는, 실은 아무것도 변화할 것이 없다고 말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 답은 정치를 그에게 온전히 맡긴다는 전제 하에 나오는 대답이기 때문이다. 

  대공황 당시 노동자들은 구조조정을 피하기 위해 노동자들끼리의 출혈적인 경쟁을 하기보다 파업과 쟁의로 맞섰고, 길고 긴 베트남 전쟁을 끝낸 것은 미국의 정권교체가 아니라 전 세계에서 일어난 반전운동 때문이었다. 지금 여기에서 금융세계화에 맞선 대안세계화 운동과, 전쟁에 맞선 평화운동이 아니라 오바마의 일거수 일투족에 기대를 품는 것은 정치의 위기를 적나라하게 드러내준다.

  인민들이 무지하고, 스스로 정치의 주체가 되고자 하지 않을 때 인민주의는 발호한다. 그가 이룩한 작은 변화를 보고 감동하는데 그친다면, 우리는 탁월한 인민주의자를 또 한 번 만들어내게 될 것이다. 그가 이룩한 작은 변화에 만족한다면, 우리의 현실적인 대안은 오히려 점점 더 이상(理想)으로만 남아 저 멀리 가버릴 것이다. 초국적 제약기업과 보험회사를 통제하지 못하면 하다못해 오바마가 약속한 국민의료보험제도도 본래의 안보다 훨씬 축소될 수 있으며, 미국 사회 내 흑인운동이 침묵한다면 실업에서 의료보험까지 모든 측면에서 불평등이 명백히 남아있는데도 많은 미국인들, 많은 백인들이 인종문제가 더 이상 중요하지 않는 문제라고 점프할 수 있다. 

  전 세계의 대안세계화 운동은 이미 구체적인 대안을 이야기하고 있다.3) G20을 넘어서는 민주적인 참여와 토론이 필수적이므로 국제 금융ㆍ화폐 질서 개혁을 위한, 세계 모든 정부와 시민사회 ․ 시민조직 ․ 사회운동 등의 대표자가 참여하는 유엔 주최 국제회의를 열자, 모든 통화와 금융상품들은 반드시 금융규제를 받아야 한다는 원칙을 세우자, 세계적 기업이나 부유한 개인들이 자국의 세금을 피하기 위한 도피처를 제공하는 조세피난처를 폐쇄하자, 등등. 이러한 대안은 운동 없이 관철될 수 없다. 오바마는 한시도 자기 스스로와 자신의 정권이 미 헤게모니를 유지하기 위한 최후의 보루라는 사실을 잊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미 흑인역사를 연구한 매러블 교수의 이 말을 빌려올 수 있을 것이다.

  “진짜 도전은 오바마가 하는 것이 아니라 진보진영이 하는 것이다. 우리는 매우 불편하고 보기 드문 상황에 있다”

  스스로 뛰어들어 변화를 꿈꾸고, 요구하고, 만들어갈 수 있는 사회운동이 아니라, 60억이 넘는 인구의 운명을 오바마의 정책 방향에 우선 맡겨버리는 현재의 상황에서 역사가 앞으로의 4년을 인민주의자 오바마의 시대로 기록할지 정치의 주체로서 인민들을 기록할지, 모든 것은 우리에게 달려있다.

Posted by 행진

2008/12/08 11:56 2008/12/08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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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보스코프스키 2008/12/15 01:57 # M/D Reply Permalink

    그림이 안 보이네요... 처리 부탁요.

 

저탄소 녹색성장? 람사르 총회?

생태위기의 해법은 어디에 있는가?



람사르 총회를 통해 본 정부의 모순


지난 10월 28일부터 11월 4일까지 경상남도 창원에서 ‘건강한 습지, 건강한 인간(Healthy Wetlands, Healthy People)’ 을 주제로 10차 람사르 협약 당사국총회가 열렸다. 람사르 협약1)은, ‘습지의 보호와 지속가능한 이용에 관한 국제 조약’으로, 165개 당사국, 국제기구, 민간단체 관계자 등 약 1,500명이 참가하는 큰 회의이다. 정부는 2006년부터 람사르 총회를 개최하기 위해 백방으로 애를 썼다. 환경선진국으로 도약하겠다는 포부일진대, 그와 동시에 환경 파괴를 지속적으로 대놓고 벌여 국내외로부터 비판받았다.


요 몇 년 간 생태계 파괴 논란을 일으킨 새만금 간척 사업은, 지난달 국무회의를 열어 농지 규모를 70%에서 30%로 축소시키고 그 자리에 산업단지 등을 조성토록 했다. 또, 람사르 총회를 3개월 앞둔 지난 7월, 중앙연안관리심의위원회를 열어 전남 신안군 23개 지구 매립을 승인했다. 인천시, 충남 서산시는 각각 조력발전소를 추진해 습지 파괴를 앞 당기려하고 있다. 지난 6월 환경부는 람사르 총회 사무국에 제출한 ‘새만금 환경 모니터링 보고’에서 “새만금과 같이 연안 습지를 대량 손실시키는 대형 매립 계획에 제한을 가하겠다”고 해놓고  한 달 뒤 낙동강 하구에 대규모 연안 습지 매립을 승인했다.


이명박 정부의 모순된 언행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니긴 하다. 시장일 때에는 청계천 개발을 생태적 복원이라고 하다가 당선 된 후 한반도 대운하를 친환경 사업이라고 하지를 않나, 이러니 8월 15일 ‘저탄소 녹색성장’을 새로운 국가 발전의 비전으로 삼겠다. 녹색성장은 온실가스와 환경오염을 줄이는 지속가능한 성장으로, 녹색 기술과 청정에너지로 신 성장 동력과 일자리를 창출하는 신 국가발전 패러다임”이라는 이 대통령의 연설은 많은 사람들을 당혹케 할 수밖에 없었다. 이어서 그는 람사르 개막식 축사로 ‘람사르 모범국가가 되겠다’고 발언 해 또 한 번 폭소를 자아냈다.


저탄소 녹색성장? '고탄소 황색성장!'

정부는 저탄소 녹색성장을 천명해 놓고도 실제로는 반대의 일을 벌이고 있다. 지난 3월 환경부의 업무계획에 제시된 보수적인 온실가스 감축계획도 지나치다며 폐기시켰다. 또 5월에는 상수원 보호지역을 대폭 축소하고 규제를 완화했다. 최근엔 경제가 당장 어려워지니 수도권 그린벨트를 해제해서 공장을 유치하겠다 발표했다. 또 정부는 스스로가 말하는 녹색성장과 배치되게도 “원전산업도 유력한 대안”이라며 “자원빈국의 입장에서 원전을 통해 대체에너지를 얻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MB식 저탄소 녹색성장론은 원자력발전소 건설기술을 보유한 대형 건설업체들에 호재로 인식되고 있다. 정부가 계획대로 2030년까지 10~11개의 원자력발전소를 짓게 되면, 이를 지을 수 있는 회사는 원자력 및 화력발전소 건설 실적을 보유한 업체로, 전기공사업 등록과 토건업·산업설비공사업 면허 등을 모두 갖고 있어야 한다. 이는 국내에 거대 건설 기업 5개사뿐이다. 최고의 부가가치업인 것이다. 원자력 경제로의 추진이, 화석연료를 대체하는 저탄소 녹색경제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원자력 에너지를 자가 동력원으로 하는 공장이나 핵자동차를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면 원자력 에너지로 대체할 수 있는 것은 전력 부문뿐이다. 그런데 전기는 최종 에너지 소비에서 고작 17%를 차지한다. 한국은 수입한 석유의 55%를 석유화학, 섬유제품으로 소비하고 있으며, 36%를 수송부문 에너지로 사용하고 있다. 총 석유 소비에서 발전용으로 사용되는 석유는 3.5%에 불과하기 때문에 고유가의 대책으로 원자력 발전은 터무니없는 이야기이다.


2003-04년 정권의 폭력 탄압에 맞서 싸웠던 부안 핵 폐기장 반대 투쟁을 돌아본다. 정부와 주류 언론에서는 님비 현상으로 몰아붙였다. 그러나 부안의 주민들은 이구동성으로 “이 땅, 우리나라, 아니 전 세계 어디에도 핵 폐기장이 들어서서는 안 된다”고 말했었다. 생태를 걱정한다는 정부는 안면도, 굴업도, 부안 등지에서 값비싼 사회적 비용을 치루고 20여 년 만에 현금 3천억 원과 각종 특혜제공 약속, 부정선거로 중저준위 핵폐기장 부지를 마련했다. 그러나 정말 위험하고 마땅한 처리방법이 없어서 문제가 되는 사용 후 핵연료 처리 방법에는 아무런 대안이 없는 상태다. 이러한 문제점이 상당 해 유엔 기후변화협약에서는 핵 산업계와 일부 국가의 로비에도 불구하고 원자력을 청정에너지원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정부는 이처럼 원자력의 비중을 과도하게 설정한 반면 기후변화와 에너지 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유일한 기술인 재생에너지 확대 목표를 낮게 설정했다. 중국조차도 2030년이면 전체 에너지의 20%를 재생에너지로 공급하겠다는 계획을 밝히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은 2030년까지 11%라는 목표를 제시했다. 더군다나 그 내용을 보면 재생에너지로 분류할 수 없는 수소에너지, 연료전지, 폐기물 소각열까지 포함하고 있다. 이미 정부는 2011년까지 신재생에너지 5%로 확대할 목표를 제시했는데 그 후 19년간 6%를 더 늘리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2030년까지 111조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게다가 예산의 확보는 어떻게 하는지에 구체적인 설명이 없다. 정부의 정책의지가 심히 의심된다.


지속가능한 재생에너지 체제로 전환해야


정부가 각 계의 비판에도 아랑곳 않고 에너지기본계획을 일방적으로 추진하는 이유는, 효율성을 최우선으로 하는 공공부문 사유화/시장화를 현실화하기 위해서이다. 이는 민중들의 최소한의 생존권마저 박탈하는 방향으로 갈 것이다. 또 에너지기본계획 5대 비전 중에서 첫 번째로 제시하고 있는 ‘에너지 자립사회 구현’의 ‘자주개발률2) 제고’가 큰 문제이다. 2005년 4.1%였던 자주개발률을 2030년 40%로 높이는 것이 목표다. 그러나 한국의 에너지 자주개발은 전 세계적인 에너지 위기와 분쟁을 가속화할 수도 있다.

이 대통령은 현재 5% 남짓한 에너지 자주개발률을 임기 중에 18%, 2050년에는 50% 이상으로 끌어올리겠다고 천명했다. 새 정부는 대통령 인수위원회 시절, 이라크 쿠르드 지역의 유전을 개발하겠다고 했다가 이라크 중앙정부의 반발을 샀다. 이밖에 가스공사 및 대기업들은 러시아의 서캄차카 유전개발과 사할린 천연가스 도입까지 추진 중이다. 정부와 언론에선 한국은 세계 95위 산유국이라며 자랑스레 홍보한다. 이것이 정녕 자랑스러운 일인가?


한국의 자주개발률 제고는 전 세계적인 에너지 위기와 분쟁을 가속화하는 방향으로 작용할 것이다. 지난 20세기부터 석유를 둘러싼 지정학적 갈등은 전쟁까지 불러왔다. 21세기에 들어와서도 계속되는데, 미국은 대테러전쟁을 빌미로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침공하고, 베네수엘라와 이란을 불량국가로 지목하며 위협하고 있다. 이는 석유 자원 확보를 위한 갈등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제국주의 깡패국가의 야망으로만 치부할 수 없는 초민족적 법인자본의 석유 통제가 새로운 전쟁을 만들어 낸 것이다. 이러한 현실에 자주개발률을 확보를 주장하는 한국정부는 이 행보에 적극적으로 참가하겠다는 선언이다. 이미 이라크 파병에서 드러났다. 국익을 위한 참전과 자원 확보 경쟁은 쿠르드 유전 개발권 논란에서 보듯이 평화는커녕 중동의 분쟁을 심화시키고 있다.


에너지 위기는 문제를 발생시킨 화석연료 중심의 에너지 체제를 지속하는 한 해결할 수 없다. 유일하게 가능한 기술적인 해결책은 지속가능한 재생에너지 체제로의 전환이다. 지속가능한 재생에너지에는 태양광, 태양열, 바이오에너지, 풍력, 지열, 해양에너지, 소수력이 포함될 수 있다. 에너지기본계획이 에너지 위기에 맞서는 한국사회의 대안이 될 수 있으려면 화석연료 중심의 에너지 체제를 지속가능한 재생에너지 체제로 전환하는데 집중해야 한다.

물론 기술적으로만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에너지 위기는 사실 국제사회의 협력이나 일국 정부의 정책으로 해결하기 어렵다. 문제의 원인이 자본주의 체제에 내재되어 있기 때문에 근본적인 변화를 추구하기가 어렵고, 기술적인 조정의 효과도 미미하다. 자본주의 역사는 인력, 축력, 나무를 대체할 수 있는 효율적인 에너지원의 발견과 응용의 역사였다. 19세기 영국 자본주의 발전을 위한 핵심 에너지였던 석탄의 시대가 끝난 후 20세기 미국 자본주의는 석유와 함께 도래한다. 유한한 화석연료의 채굴로 자원고갈이 임박했고, 자원 확보 과정에서 지정학적인 긴장과 분쟁이 심화되어 에너지 위기를 부추기고 있다. 따라서 기후변화와 에너지 위기는 자본주의의 역사와 그 모순과 직접적으로 결부되어 있으며, 문제해결을 위한 근본적인 방책도 체제의 변혁과 떨어뜨려 사고할 수 없다.


문제는 ‘자연으로 돌아가자’는 기술문명으로부터의 탈피나, 기술 개발을 위해 연구기관에 호소한다거나, 저탄소 녹색성장과 같은 허구적 정책에 희망을 건다거나, 람사스 회의 같은 전 지구적 회의로 합의를 표방하며 면죄부를 뒤집어쓰는 협약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위의 계획들이 무의미하다는 것이 아니다. 환경위기에 맞서는 운동은 반드시 급진적 상상력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인류는 45억년 지구의 역사의 끄트머리에 등장한다. 그런데 찰나 동안 이렇듯 인류가 생태계를 비가역적 위기로 몰아가고 있으니 더욱 심각한 일이라 할 수 있겠다. 인류가 만들어 낸 자본주의 체제, 그 체제가 이제는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이 위기의 뿌리가 ‘사회적’인 것임을 인정하며 그 해결책 역시 전 세계 차원의 역사적 관계에 대한 변혁이 수반되어야 할 것이다.


엥겔스의 오래된 이 말, “자연의 전통적 과정에 대한 개입을 조절하는 것은 단순한 지식 이상의 어떤 것을 요구한다. 그것은 기존 생산양식의 완전한 혁명과 아울러 동시대 사회질서 전반의 혁명을 필요로 한다.”는 지적을 떠올리며 대안세계화를 향한 생태 운동을 다져나가야 할 때이다.  


Posted by 행진

2008/12/08 11:50 2008/12/08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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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발전주의의 시대1: 1960년대

 

발전주의의 시대1: 1960년대를 중심으로



0. 들어가며

한국 경제가 어려워지거나 대선이 다가오는 시기, 각종 매체들에서는 의례적으로 가장 존경하는 대통령에 대한 설문을 실시하곤 한다. 거의 대부분의 설문에서 박정희 대통령은 압도적인 1위를 차지하고, 경제를 부흥시킨 대통령으로써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가 담긴다. 가장 좋은 평가는 ‘민족중흥의 대통령’, ‘한강의 기적’과 같은 단어들을 통해 박정희를 신격화하고, 당시의 경제성장이 추후의 민주주의의 기틀까지 마련했다고 본다. 이런 논의들은 한때 ‘박정희 신드롬’을 불러일으키며, 유명 인사들이 박정희 따라잡기를 하거나 그와 비교되고 싶어 했다. 박정희 신드롬에 대한 일반적인 반론은 1960 ~ 70년대에는 경제성장을 이루어냈을지 몰라도 장기적인 경제구조에 있어서는, 외자 의존적이고 대외 취약성을 지니고 있으며 재벌 중심의 노동 착취적이고 양극화된 구조 형성 등 매우 부정적인 영향을 줬다는 것이다. 또한 군부독재라는 반동적 정치 체제가 추후에 민주주의의 성립이나 사회적 의식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쳐, 한국 사회의 진보를 더디게 가져왔다는 입장을 강하게 내포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역사에 대해서 평가할 때, 정치/경제/사회/문화와 같은 각각의 영역들이 어떻게 발전했는지를 알아보는데 익숙하다. 그리고 당시의 시대상황에서 각각의 영역이 어느 정도까지 발전했어야 하는지에 대한 기준선을 제시해 놓고 미달한 것과 초과한 것들을 비교한다. 하지만 거듭 이야기하듯이 한국 현대사에서 정치와 경제는 결코 분리된 적이 없고, 역사란 장기적인 경향과 상이하고 불균등한 요소들이 과잉결정되며 형성되는 산물이다. 특히 계급투쟁은 다양한 제 모순들을 결합시키는 매개가 되며, 1960 ~ 70년대 강력한 발전주의가 가능했던 조건 역시 지배계급의 헤게모니가 가능했던 계급투쟁의 결과를 통해 살펴보아야 한다. 경제가 발전한 만큼의 국민 의식성이 갖추어지지 않았다, 경제에 비해 정치의 발전이 너무 늦었다는 식의 일반론적인 평가들은, 다양한 요소들에 대한 평가 없이 정치와 경제에 대한 부당대립을 전제하는 자유주의의 오류를 반복하는 것이다. 또한 이 시기는 자본주의의 상이한 발전모델에 대한 연구라는 이름 아래 국내의 경제정책들을 연구하거나, 유교 자본주의론과 같이 관념론적인 국민의 의식에 대해 매몰되기도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는 세계 자본주의의 규정력 역시 국내 정책의 한 결정요인으로 치부되기도 하고, 역사적 자본주의가 한국에서 어떤 모습을 띠고 나타나는지 잘 밝혀지지 않는다.

본 글에서는 박정희 정권의 전반부라고 할 수 있는 1960년대에 대해서 다룰 것이다. 이 시대는 한국 자본주의의 미성숙한 기원으로서 1950년대를 넘어, 본격적인 발전주의 프로그램이 작동하는 시기로 다룰 것이다. 발전주의라는 단어는 1960년대를 다루는데 있어서 특히 중요한 키워드가 될 것이다. 발전주의는 자본주의의 경제성장 이데올로기 일반을 가리키는 것이 아닌, 미국 헤게모니의 물질적 확장기에 나타난 반주변부 국가들의 상황 전반을 지칭하는데 쓸 것이다. 1960년대의 한국의 역사를 만들어 가는 데에는 발전주의 프로그램 이외에 어떤 요인들이 개입하는지 살펴보고, 이것을 역사에 대한 일반화된 관점에서 어떤 식으로 파악할 수 있는지 살펴볼 것이다. 이러한 작업이 단순히 역사를 해석하는 것을 넘어서 민중들에게 끊임없이 환기되는 발전에 대한 환상과, 그 한국적 현상으로서 ‘박정희 신드롬’을 끊어내는데 일조할 수 있기를 바란다.



1. 발전주의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한국 현대사를 크게 두 시기로 구분 짓는다면 그것은 대략 1945 ~ 1979년까지의 발전주의 시대, 1979 ~ 현재까지 이어지는 신자유주의 시대로 나뉠 것이다. 이런 시기구분은 역사적 자본주의의 세계사적 경향에 따르는 것으로, 여기서 사용하는 발전주의라는 용어는 특정한 시대에 특정한 장소를 갖는 한정된 의미이다. 사회주의 진영과의 대결에 봉착한 미국 헤게모니에 전 세계적인 포섭메커니즘이 쟁점으로 떠오르게 되고, 물질적 확장 국면에서 이를 가능하게 하는 물질성을 확보할 수 있었다. 이것은 미국의 원조와 그 변형된 정책형태들을 중심으로, 일국적 차원에서 자국민들을 포섭하는 체계를 마련하는 것이었다. 이를 통해 포섭된 지역에서 국가는 경제 발전과 국민들의 복지를 위한 담지자로 기능할 수 있었고, 이런 국가들은 UN과 NATO를 중심으로 하는 전 세계적 국가간 체계의 틀을 통하여 냉전을 수행할 수 있었다. 그런데 국가를 중심으로 하는 경제성장을 기본적으로 포함하는 일련의 포섭 프로그램은, 세계 체계에서 국가들이 차지하는 위치에 따라 상이하게 나타났다. 그것은 유럽을 중심으로 하는 중심부 국가들의 사민주의와 라틴 아메리카와 동북아시아를 주로 포함하는 반주변부 국가들의 발전주의였다.

그렇다면 발전주의를 규명하는데 있어서 반주변부라는 용어가 갖는 함의에 대해서 알아보는 것은 유의미한 일이다. 세계자본주의의 헤게모니는 단지 중심부 국가의 축적체계가 전달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중심부형 축적체계와 함께 주변부형 축적체계: 플랜테이션 단종 농업, 가내 수공업, 무기 밀매 등이 있기 마련이고, 이는 자본주의 세계체계를 구성하는데 필수적인 요소이다. 반주변부는 중심형 축적체계와 주변부형 축적체계가 동시에 나타나는 지역으로서, 주변부로부터 자신들의 민주적인 부가 유출되는 것을 막는 동시에, 중심부로의 편입을 시도하지만 결코 성공할 수 없는 지역이다. 1950 ~ 70년대 반주변부의 축적체계는 전체 산업에서 공업 비율의 증가로 나타났고, 이는 곧 선진국에 대한 따라잡기 전략으로 인식되었다. 하지만 장기간에 걸친 소득 추이를 살펴볼 때, 공업화‧산업화는 선진국에 대한 따라잡기보다는 반주변적인 국가의 위치를 공고하게 하는 형태로 나타났다. 독점적 이윤을 얻을 수 있는 선도적인 산업과 생산재 부문을 독점하고 있는 중심부 국가에 비해, 반주변부의 공업화는 중심부 국가들에 종속될 수밖에 없었고, 주변부 국가의 따라잡기 전략을 회피하기 위해 계속해서 중심부 국가에 대한 종속이 심화될 수밖에 없었다. 이것은 중심부 국가와 주변부 국가 사이의 완충지대로서 자본주의 세계체계에서 독특한 역할을 부여받는 반주변부 국가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렇듯 중심/반주변/주변으로 나뉘어지는 것은 기본적으로 장기간에 걸친 세계체계에서 부에 대한 접근도에 따라 달라진다. 아리기에 따르면 중심에서의 독점적 부, 반주변에서의 민주적 부, 주변에서의 비부(非富)가 세계체계에서 각 나라가 차지하는 위치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어떤 축적체계를 가지고 있느냐의 문제와 함께, 헤게모니의 국가 간 체계라는 문제, 어떤 방식으로 노동자 운동을 포섭하는지에 대한 문제가 포함된다. 우리가 다루고 있는 1960년대는 냉전 시기로서, 대 사회주의권에 대한 경계가 중요한 문제였다. 특히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지역은 소련‧중국과 같은 거대 사회주의 국가가 인접해 있던 지역으로서, 자본주의 세계체계의 방어를 위한 최전선으로서 전략적 위치였다. 이에 따라 이들 지역이 세계체계의 부에 대한 상대적인 접근을 용이하게 할 필요가 있었고, 원조나 차관의 형태로 자본주의적 시초축적에 필요한 자본을 마련, 비선도산업 부문에 대한 자본과 기술 이전 등이 이루어졌다. 또한 인민주의자들의 출현에 대한 경계와 계급투쟁이 극단적인 형태로 퍼져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국내적으로 강력한 정치적 억압기제를 도입하였다. 이를 통해 동아시아 지역, 특히 대만과 한국은 주변부에서 벗어나 반주변부로 편입될 수 있었다.

미국 헤게모니 시기 반주변부의 존재와 그 행위양식은, 이 시기의 통치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지표가 된다. 반주변부라는 완충지대를 설정해 놓음으로서 사회주의 국가들의 위험을 막는 한편, 그 지역의 경공업이나 중간재 공업에서 생산된 잉여가치를 끊임없이 중심부 국가로 이전하였다. 이런 가치이전 메커니즘은 반주변부 국가가 중심부 국가로 올라서는 것을 불가능하게 하는 한편, 주변부 국가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에 대한 접근을 용이하게 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반주변부 국가들의 발전주의는 ‘발전에 대한 환상’을 매개로 구성원들을 통합하고, 자본주의 세계체계에 포섭된 인민으로 기능하게 했다. 이 시기에 발전이란 곧 공업화‧산업화로 상징되었고, 또한 근대화로 상징되었다. 강력한 국가의 성장정책과 반공이데올로기의 실현은 국가를 경제성장의 담지자로 기능하게 하였고, 국가를 매개로 하는 발전주의 전략은 독특한 성장전략으로 인식되기도 하였다. 이렇듯 발전주의란 미국 헤게모니의 물질적 확장기에 반주변부에서 나타난 축적체계 및 이데올로기로서, 국가를 매개로 하는 성장전략으로 구성원들을 통합하고 자본주의 세계체계에 편입될 수 있었던 전략이었다.



2. 군부독재의 시기

1950년대 후반의 경제불황에 따른 관료자본의 위기와 정치적 불안정이 심화되는 상황은 4. 19 항쟁을 낳고, 이후 장면정권이 등장하게 된다. 장면 정권과 민주당을 중심으로 하는 당시 지배계급의 응집력은 매우 취약한 상태였고, 지배계급 안에서 헤게모니를 잡을 수 있는 분파가 등장하지 못했다. 이는 기본적으로 국가장치의 기능을 완전히 확립하지 못한 1950년대의 상황에서 기인하는 것이었고, 원조경제 아래에서 성장한 관료자본을 포섭하지 못했던 민주당 정권의 기반의 문제였다. 이러한 가운데 노동운동을 중심으로 민중운동이 활성화되어, 59년 말 558개였던 노조가 60년대 말이 되면 914개로 증가하고, 노동쟁의 총건수 역시 41건에서 218건으로 증가한다. 또한 민족자주통일중앙협의회 등의 단체를 중심으로 하는 통일운동과 담론이 확산되었다. 이에 민주당은 시위규제법과 반공특별법 등을 제정하고, 경찰을 동원한 진압‧검거‧투옥으로 맞서지만 이를 효과적으로 봉쇄하지 못한다.

이런 상황에서 1961년 5월 16일 박정희 소장이 주도하는 군부세력에 의한 군사정변이 발발하고, 5월 20일 ‘국가재건 최고회의’가 설치되며 입법·사법·행정의 3권을 행사하게 된다. 그 해 7월 초대 의장이었던 장도영이 퇴진하고, 박정희가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에 취임하게 된다. 국가재건최고회의는 혁명공약을 발표하고 새로운 통치기반을 만들기 위한 작업을 실시하였다. 1962년 3월 ‘정치활동 정화법’을 제정하여 기존 정치인들의 정치활동을 금지하였고, 각종 정당 및 사회단체들을 해산하였다. 국회와 지방의화를 해산하고 집회‧시위‧결사를 금지하였고, ‘언론‧출판보도의 사전 검열 명령’ 등을 통해 언론과 출판에 대한 통제력을 확보하였다. 또한 사치외제품 소각ㆍ불량배 및 용공분자의 색출 검거ㆍ부정축재자 처리 요강 등을 통해 쿠데타의 정당성과 지지를 획득하고자 한다. 이와 함께 군부세력은 1961년 6월 헌법적 효력을 가지는 ‘국가재건비상조치법’을 재정하고, 중앙정보부를 창설하고 공화당 창립준비를 하며 제 3공화국을 수립하기 위한 기반을 닦아나갔다. 이러한 작업을 거치며 1962년 3월 22일 대통령 윤보선의 사퇴로 박정희가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고, 1963년 10월 선거를 실시해 그해 12월 17일 박정희를 대통령으로 하는 제3공화국이 수립되었다.

1960년대 당시에 군부통치가 실시된 것은 몇 가지 필연성을 가진다. 우선 1950년대 자본주의가 미성숙한 조건에서 관료자본의 이해를 뒷받침할만한 지배계급의 분파가 출현하지 못했고 정당정치 역시 미숙한 상태였다는 점을 이야기 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군부는 당시 억압적인 국가기구의 성장 속에서, 한국전쟁을 통해서 엄청나게 성장하였다. 반공이라는 이념과 어느 분파보다 조직적인 정비를 갖추고 있던 군부는, 당시 어떤 사회세력보다도 근대적인 조직이었다. 그런데 이런 국내적인 상황과 함께 그 당시 군부통치는 한국만의 고유한 역사가 아니었다는 점을 지적해두어야 한다. 5.16 군사정변은 주한미군사령부와 미국무성에게 별다른 제지를 받지 않았으며, 오히려 그해 11월 박정희의 방미를 계기로 미국과의 협조관계를 다져나간다. 당시 미국의 행동은 한국에서의 군부통치를 최소한 용인했으며, 일각에서 제기되는 것과 같이 군사정변을 유도했다는 음모설마저 제기하기에 충분했다. 당시 미국은 1940 ~ 50년대 라틴아메리카에서 좌파적 성향을 띠는 인민주의자들이 집권하는 것을 막으려는 목적에서, 일종의 예비쿠데타를 일으키고 군부가 정권을 장악하도록 하였다. 미국은 친미적인 군부정권들을 통해서 라틴아메리카의 자원들과 1차 산품들을 들여올 수 있었으며, 그 지역에서 수입대체공업화를 실시하도록 한다. 수입대체공업화는 라틴아메리카에 고정자본과 설비를 들이는 것을 강제하며, 그 자체로 착취의 메커니즘을 갖게 되었다. 이러한 잉여이전의 메커니즘은 그 지역을 미국 헤게모니를 위한 경제적인 앞마당으로서 기능하게 하였다.

한국에서의 군부통치는 라틴아메리카의 그것과는 약간 다른 것으로, 이는 ‘경제의 과잉’이라는 정세에 있던 라틴아메리카에 비해 동아시아의 정세는 ‘정치의 과잉’이었기 때문이었다. 거대 사회주의권 국가들에 둘러싸여 있었던 동아시아 지역은, 강력한 반공주의를 매개로 자본주의에 대한 사회주의권의 실질적ㆍ상징적 위협을 막을 필요가 있었다. 이런 필요성은 원조 경제시대부터 이어져온 막대한 국방비 지원으로 나타났고, 지원이 차관으로 넘어간 이후에도 국방비와 관련된 지출의 규모는 상당히 컸다. 또한 베트남 전쟁에의 참전을 계기로 한국군의 현대화를 약속했고(브라운 각서), 1966년 한미행정협정(SOFA 협정)을 체결하여 주한 미군의 지위에 관해 합의했다. 또한 동아시아 지역은 자본주의 세계체계의 전시장(show case)으로서 기능할 필요가 있었고, 수출지향공업화를 통해 고성장을 추구하며 반공주의를 매개로 국가 구성원들을 통제해 나간다. 당시에 일련의 정책들을 추진하며 발전주의적 통치성을 확립할 수 있었던 세력은 군부밖에 없었고, 1961년 실질적으로 군부통치가 시작된 이래 1987년에야 독재체제가 마무리 될 수 있었다. 이처럼 반주변부의 발전주의 정책을 추진하기 위한 통치집단으로는 군부가 적격이었지만, 라틴 아메리카와 동아시아에서 실시했던 군부통치의 목적은 약간 달랐다고 할 수 있다.



3. 자본주의 세계체계로의 편입

군부통치의 확립과 억압적 국가장치의 기능이 강화되는 과정은, 1950년대와는 달리 정치적 안정을 가능하게 만드는 조건이 된다. 1960년대에는 이런 배경을 바탕으로 하여 국가가 경제성장을 주도했으며, 70년대까지 소위 ‘한강의 기적’이라고 부르는 고도의 경제성장을 이룩하였다. 1ㆍ2차 경제개발계획 기간 동안 9.6%의 연평균 경제성장률을 이룩하였고, 1960년대 전체에 걸쳐 수출은 1962년 5500만 달러에서 8억 8200만 달러로 연평균 40%를 넘는 수출신장률을 기록하였다. 제조업 생산의 구성 비율에서도 1950년대 대부분을 차지하던 소비재 중심의 공업화로부터, 시멘트ㆍ화학섬유ㆍ정유ㆍ비료 등 점차 수입 대체적 중화학공업의 비율이 증가한다. 이러한 ‘발전’은 그 성격이 어떠했든지 간에, 그 후에 어떤 영향을 주었든지 간에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문제는 그 시기 경제성장이 어떻게 가능했는지, 경제성장의 이유는 무엇이었는지에 대해 당시의 객관적인 시대 조건을 해명하는 것이다. 이것은 너무나 기본적인 작업 같아 보이지만, 또한 현재까지 제대로 밝혀지지 못한 부분이기도 하다. 당시의 시대 상황에 대해 규명하면서 박정희의 리더십을 강조하는 가장 반동적인 평가부터, ‘동아시아 모델론’ㆍ‘유교적 자본주의’와 같이 일국적 모델을 대상으로 하는 가설들, 이후 한국경제의 불황까지 무리하게 연결하는 모든 평가들을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계속 강조하였듯이 한국은 대 사회주의권의 최전선 방어지역으로서, 자본주의 세계체계에 밀접하게 포섭될 필요가 있는 ‘정치의 과잉’인 지역이었다. 정치ㆍ군사적으로 긴밀한 연관관계를 갖는 것과 함께 일정 정도의 경제개발과 종속적인 경제 구조를 이룩하고, 국가 구성원들에게 발전에 대한 환상을 심어주며 세계사적 포섭을 진행해야 했던 것이다. 이를 위해 우선 미국을 필두로 하는 중심부 국가들의 자본수출 양식이 원조에서 차관으로 변화한다. 이는 미국의 무모한 대외팽창정책과 그에 따른 군사비지출ㆍ원조로 말미암아 매년 30억 달러 이상의 적자가 누적됨으로서, 원조제공 방식을 중선의 무상증여에서 유상차관방식으로 변화시킨 것과 관련이 깊다. 또한 동북아에서는 일본을 미국 헤게모니의 하위파트너로 종속시킴으로써, 대소방위체제를 구축하고 일본의 대한진출을 적극적으로 주도한다. 이에 따라 5. 16 군사정변 직후부터 적극적인 한일회담이 추진되기 시작하고, 1962년 ‘김종필-오히라 메모’를 통하여 가장 중요한 안건인 대일청구권 문제가 비밀리에 타결된다. 한일회담은 어업협정 및 몇 개의 실무적인 사항들을 처리한 후에, 1965년 6월 22일 ‘한일협정’으로 조인되고 그 해 12월 비준서가 교환되어 효력이 발휘된다. 한일협정의 청구권은 무상공여 3억 달러ㆍ정부차관 2억 달러ㆍ민간차관 1억 달러를 약속하는 것으로, 일본을 중심으로 하는 동아시아 하위체계의 기틀을 다지는 동시에 차관경제로서 한국의 재편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이는 급속한 자본축적을 위해 자본수입이 절실히 필요했던 국내독점자본의 요구와 맞물리면서 수입대체 중화학 공업화와 수출산업체제로의 재편을 위한 축적의 조건들이 정비된다.

차관이 국내에 자본을 조달하는 중요한 방식이 되고, 세계 자본주의와의 연관성이 더욱 커지는 ‘개방체제’로 전환되어감에 따라 국내의 축적 조건도 그에 걸맞는 방식으로 바뀌어 간다. 본래 제1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1962~1966)에 따르면, 투자재원의 72.2%를 내자로 27.8%를 외자로 조달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이에 따라 62년 1월 증권거래법을 제정하여 증권시장의 활성화를 꾀하고, 동년 6월에는 구 10환을 1원과 교환하고 일정액 이상의 소지금을 금융기관에 강제 예치하도록 하는 ‘통화개혁’, 내자조달을 목적으로 하는 국채발행을 실시하지만 오히려 금융경색 만을 초래한다. 결국 1963년 대외의존도를 높이는 방식으로 계획내용을 대폭 수정하여, 외자도입을 위한 국내의 투자기반을 조성하기 시작한다. 63년 재정안정화 계획이 부활되었고, 64년 비현실적으로 낮았던 환율을 일시에 두 배 정도 올려 단일변동환율제를 채택하였다. 그리고 1965년의 한일협정 체결과 금리현실화 조치, 1966년 ‘외자도입법’ 제정과 1967년의 GATT 가입 및 무역자유화 조치 등을 실시한다.

이런 정책들과 함께 베트남에의 참전은, 한국이 자본주의 세계체계에 편입되는 가장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1963년 소규모의 의무부대와 태권도 교관을 파견한 것을 시작으로, 1964년 파병동의안이 국회를 통과하여 1973년까지 총 4만 7천여명이 베트남전에 참전하였다. 브라운 각서(1966.3.4)는 베트남 전쟁에 대한 참여의 대가로 한국에 대해 개발자금 1억 5천만 달러의 차관 제공, 한국군의 현대화와 베트남전에 소요되는 물품 중 한국제품 구입 등을 약속하였다. 1966 ~ 70년에 연평균 3억 3천6백만 달러의 군사원조를 받았고, 베트남에서의 송금 등으로 1965 ~ 73년간 10억 달러의 외화를 획득할 수 있었다. 또한 한진그룹 등의 독점자본과 대거 노동력 진출이 이루어져, ‘베트남 특수’로 부를 수 있는 경제성장의 토대를 마련하게 된다. 이와 함께 1966년에는 한미행정협정(SOFA)이 체결됨으로서, 정치ㆍ군사적인 연관관계도 확고하게 다져나갈 수 있었다. 이렇듯 미국 헤게모니의 유지를 위해 시작되었던 베트남 전쟁에 한국이 참전한 것은, 자본주의 세계체계로 편입되는 과정이 결코 순수한 경제적인 부분으로 한정될 수 없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었다.

차관경제에 걸맞는 방식으로 축적조건이 재편됨에 따라 외자가 대거 들어와, 제2차 경제개발계획 기간 동안 도입된 외자는 제1차 기간에 비해 7배를 상회하는 액수였다. 이러한 외자는 수입 대체적 중화학공업화에 투자되어, 수입해 오던 주요 소비재와 원자재를 직접 생산하였다. 공장건설과정에서 알 수 있듯이 이들 대부분은 막대한 규모의 차관도입이나 초민족적 기업과의 합작으로 건설된 것으로서, 노동력을 제외한 모든 생산요소를 초민족적 기업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차관은 상환을 요하는 것으로서 원리금 상환을 위한 외환을 얻기 위해서는, 수출을 우선적으로 할 수 밖에 없었다. 이에 국가는 보조금ㆍ금융과 세제상의 지원 등을 통해 수출지원 체제를 확립하였고, 1달러의 수출상품을 생산하기 위해 평균 348원(1.5달러)의 비용이 들어가는 출혈 수출이 이루어졌다. 이렇듯 수입대체 혹은 수출지향 공업화를 추진하여 경제성장을 이룩하는 것은, 경제 자립화와는 전혀 거리가 먼 것으로 자본주의 세계체계에 오히려 더욱 긴박 당하고 대외 종속성이 커지게 된 것을 의미한다.



4. 발전주의와 국가

일반적으로 자본주의가 완성되고 발전해 가는 과정은, 자본주의적 국가형태가 완성되고 발전해 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국가가 성장하고 억압적ㆍ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가 만들어지는 것은, 자본이 성숙하고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이 완성된 이후에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다.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은 국가형태(민족국가)를 필수적으로 요구하며, 국가는 자본주의적 이데올로기를 포함하는 사회구성체와 그 구성원들을 재생산하는 기능을 담당한다. 특히 자본의 시초축적 단계에서는 적극적인 경제정책을 통해 자본의 재생산을 돕고, 구성원들에게 자본제 생산에 걸맞는 규율과 통제를 강요한다. 2차 세계전쟁 이후에 식민지였던 많은 지역들이 민족국가로서 독립하고 자본주의 세계체계에 편입되지만, 대다수의 국가들은 선진국에 대한 ‘따라잡기’를 위한 시초축적을 시도할 수 없었다. 그것은 미국 헤게모니의 ‘자유기업’ 이념이 보편적인 이데올로기로 자리 잡고, GATT나 IMF 같은 국제기구들을 통해 대다수 주변부 국가들에게 ‘자유무역’을 강요하기 때문이다. 이런 나라들에게 제공되는 각종 원조는 구호물자 이상의 것이 아니었고, 지속적인 수탈구조는 주변부형 자본주의 양식의 발달 과정이기도 했다. 또는 강력한 시초축적을 통한 경제성장을 할 수 있는 정세가 만들어지지 않았다고 볼 수도 있다.

이와 반대로 1949년 중국혁명 이후 동아시아의 정세는, 미국에 의해 강력한 시초축적을 통한 경제성장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한국에서는 1950년대에 국가의 역할이 어느 정도 확립되고 농지개혁과 일종의 인클로저, 재정ㆍ금융정책, 원조물자에 대한 관리, 초기 독점재벌에 대한 지원 등을 실시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를 강력하게 추동할 수 있는 지배분파가 확립되지 않았고, 1950년대의 경제성장이란 미약한 시초축적으로서의 의미만 있었다. 1960년대 등장한 군부세력은 국가를 매개로 강력한 발전주의 정책을 펴나가기 시작했다. 1960년대 국가는 기반을 마련하는 것을 넘어 독점자본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조치를 통해 재벌체제를 성립하고, 1ㆍ2차 경제개발계획을 통해 사회간접자본과 수출 진흥 정책을 마련한다. 이런 경제정책들과 함께 민중들의 저항을 폭력적으로 막고, 국가장치의 기능을 강화해 간다. 이와 함께 교육ㆍ양육ㆍ가족 등 재생산의 영역에 대한 개입을 시도하고, 경제성장 이데올로기와 그 쌍둥이로서 반공 이데올로기를 강하게 설파한다.

국가는 경제개발계획을 추진해나가는 과정에서 자본의 재생산과정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자본 축적을 지원하였다. 우선 재정정책을 통한 지원을 살펴보면, 1961년 572억 원이었던 일반재정 규모는 1970년에 이르면 5977억 원으로 크게 확대되었다. 이런 자금의 20 ~ 30%는 재정투융자라는 명목으로 독점자본에게 지원되었으며, 제조업 부문에 전체의 45.9%가 사회간접자본 부문에 전체의 47.8%가 투자되었다. 그리고 제조업 전체 투자의 60%가 수입대체산업인 화학섬유ㆍ정유ㆍ비료ㆍ시멘트ㆍ금속 등에 투자되었다. 국가는 1962년 수출산업에 대한 특별감가상각, 65년 조세감면규제법 등을 실시함으로서 60년대 전 시기에 걸쳐 법인체에 대해 18.3%에 달하는 조세감면을 행했다. 차별적인 독점자본에 대한 세제혜택은 자본들 간의 불균등발전을 강화하였고, 간접세를 중심으로 민중들에 대한 착취를 강화하였다. 국가가 중앙은행을 비롯한 시중은행들에 대한 적극적인 규제를 실시한 관치금융 역시 독점자본을 지원하는 방법이었다. 독점자본에 대한 대출 금리는 60년대 기간 내내 도매물가상승률과 비교하였을 때 비슷한 수준이었고, 때로는 실질금리가 마이너스가 되기도 하여 정책금융을 대출받는다는 것 자체가 커다란 특혜였다. 독점자본에 대한 지원책들과 더불어 많은 수의 국가기업이 설립되고 운영되어, 1968년의 경우 매출액 규모 상위 100개 기업 중 국가기업이 18개를 차지하고 총매출액이 34.3%에 이르렀다.

국가가 자본축적을 적극적으로 지원함으로써 독점자본이 비약적으로 성장하게 되어, 2차 계획 기간 동안 10대 재벌의 부가가치 생산이 연평균 28% 성장률을 기록하였다. 1960년대 수입대체적 중화학공업 부분에 진출한 독점자본들은, 거대한 규모의 생산설비를 도입하여 건설되었고, 국가는 이들 품목에 대해 수입규제조치를 실시하여 독점적인 지위를 보장하였다. 또한 출혈수출에 따르는 결손을 보장받기 위하여 국내의 판매가격을 고가에 설정하여 초과이윤을 수취할 수 있었다. 독점적 판매가격의 보장과 함께 이 시기 독점자본의 성장을 가능하게 했던 것은, 노동자계급을 비롯한 전 민중에 대한 수탈이었다. 1960년대 수출공산품은 대게 노동집약적 산업의 생산품이었고, 자본축적의 주된 기반은 저임금 노동력이었다. 이것은 1960 ~ 70년 사이에 노동생산성이 연평균 12.9%의 비율로 증가하고 있었음에 비해, 실질임금은 고작 4.2%의 증가율에 머문 것에서 단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1950년대 미국 잉여농산물의 광범위한 원조는 국내 농업과 공업 간의 분업관련을 완전히 파괴하고, 농민들이 농촌을 떠나 광범위한 과잉인구가 되도록 강제했다. 과잉인구의 압박은 저임금을 강제하는 강력한 요인이 되었고, 국가에 의한 노동운동의 통제와 저곡가 정책 또한 저임금구조를 유지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

국가는 자본의 재생산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노동력의 재생산에 대한 영향력을 높이며 민중들의 삶을 통제해 나간다. 한국전쟁 이후 1950년대는 베이비붐이 나타났던 시기로서, 4 ~ 4.5% 정도의 높은 출산율을 가져온다. 이에 대해 인구정책의 일환으로 가족계획사업 10개년 계획을 수립하여 1962년부터 실시하게 된다. 전국에 가족계획 상담소를 설치하여 면당 1명 이상의 가족계획 요원을 배치하고, 피임법 등 보건‧의료 기술을 도입하기도 한다. 이에 따라 1962년 2.9% 정도였던 인구성장률은 그 뒤 크게 낮추어진다. 교육제도와 정책은 자본주의에 걸맞는 노동력을 재생산함과 동시에, 1960년대에는 반공 이데올로기를 통해 국민들을 규율하고 통제해 나간다. 이와 함께 당시 주변부에서 반주변부로 성장하고 있던 한국에서, 교육제도는 ‘발전에 대한 환상’을 국민들에게 내재화하는 기제가 되었다. 이것은 고등교육에 대한 접근이 곧 계층상승을 이룰 수 있는 지름길이었던 현실과 관계가 깊은 것이었고, 노동력에 대한 선별적인 통제의 방식이었다. 1960년대 이후 급속한 경제성장은 이를 가능하게 하는 물질적 조건을 마련하여, 1960년대 초중반에 초등교육이 거의 무상 의무교육이 되었고 1968년에는 중학교 입시가 폐지되기도 하였다. 이런 대중교육의 확산은 산업고도화에 따른 노동력의 수급 필요성 때문이기도 하였다. 인구‧교육 정책과 함께 가부장 이데올로기를 통해 여성을 노동집약적 산업에 대거 투입하게 한다. 여성노동자들의 ‘빠르고 싼 손’은 발전주의적 성장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이 되었던 동시에, 노동력에 대한 통제에서 성차 이데올로기를 적극적으로 도입한 결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한국 자본주의의 특징으로 국가가 주도하는 강력한 경제성장을 들고, 이런 강력한 국가가 부활하는 것이 일반적인 경제위기의 해결책인 것처럼 제시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데 자본주의가 발전한 나라들의 역사에서 국가의 강력한 경제정책과 민중들에 대한 폭력은 일반적인 것으로, 오히려 질문은 한국에서 국가에 의한 강력한 발전주의 정책이 어떻게 가능했는지를 묻는 것이 되어야 한다. 이것은 위에서 살펴본 것과 같이 자본주의 세계체계에서 한국이라는 나라가 차지하는 전략적 위치, 하위 파트너로서 동아시아 세계체계로의 편입, 지배계급 안의 강력한 분파의 형성이라는 조건들이 결합되어 생성된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이렇게 국가가 강력한 경제정책과 민중들의 재생산 영역을 통제함으로서, 한국에서는 독점자본이 강화되고 자본주의 세계체계로 강하게 편입되어 간다. 이것은 ‘독점강화 종속심화’라는 당시 한국 자본주의의 상황을 조성하였다.



5. 계급투쟁의 지형에 대하여

이승만 정권의 무능력과 50년대 말의 원조경제 위기는 4. 19 항쟁이라는 민중들의 우발적인 저항을 낳았고, 이는 계급투쟁이 남한에서 부활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민주당 집권기간 동안 학생시위는 총 1835건에 연인원 96만 9630명이 참가했으며, 노동운동 역시 활발하게 일어나게 된다. 한편 통일의제를 중심으로 하는 ‘혁신세력’이 등장하며 진보당‧민혁당‧근민당이 중심이 되어, 1960년 사회대중당이 발기하였다. 사회대중당은 남북한의 교류를 통한 통일과 한반도 내의 모든 외국세력의 철수 등을 주장했으며, 민자통 등이 중심이 되어 판문점에서 북한대학생들과의 회합 등을 주선하기도 했다. 이런 계급투쟁의 가능성은 5.16 군사정변과 그 이후 정권의 탄압으로 봉쇄되고, 발전주의를 통해 남한의 민중들을 적극적으로 포섭해간다. 물론 정권의 폭력과 포섭전략만으로 당시 계급투쟁이 미비했던 조건을 설명할 수는 없다. 이와 함께 보편적인 이념과 담론이 부족했다는 것과, 계급투쟁을 촉발시킬 주체와 조직이 성숙하지 못한 조건을 이야기해야 할 것이다.

한편 해방 이후 폭발적인 계급투쟁을 만들어 낸 좌파세력들 가운데 월북하지 못한 세력들에게 4.19 항쟁은 하나의 계기가 되었을 것이라고 추측해 볼 수 있다. 1960년대에는 64년의 ‘인민 혁명당’ 사건, 67년의 ‘동백림 사건’(동베를린 간첩단 사건), 68년의 ‘통일 혁명당’ 사건 등 중앙정보부에 의해 공개된 사건들이 있었다. 이러한 사건들은 모두 조선 로동당의 지령을 받고 국가전복을 시도한 간첩사건으로 발표되었지만, 자세한 사건의 내막은 아직까지도 밝혀져 있지 않고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가혹한 고문 등이 쟁점이 되기도 한다. 최근에 진실위 등에서 당시 사건들이 중앙정보부의 과장에 따른 사건이라고 발표하며, 민주화 투쟁의 일환으로 발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현재 진실은 알 수 없고 추후의 계급투쟁과 관련하여 이러한 사건들이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알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당시 지하조직을 통한 지식인‧혁명가 중심의 운동이 말해주는 것은, 당시 계급투쟁의 조건이 굉장히 열세였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즉 마르크스주의는 지하에 잠복해 있던 시기로서, 대중들과 만날 수 있는 기회는 없었다고 할 수 있다.

1964년 6.3 한일회담 반대 투쟁은 군사정변 이후 1960년대에 가장 규모가 컸던 대중투쟁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 비밀리에 처리되던 한일회담이 대중들에게 알려지면서, 1964년 3월 야당은 대일굴욕외교반대 ‘범국민투쟁위원회’를 결성하였고 전국 순회 유세에 들어갔다. 그 해 3월 24일에는 서울에 있는 대학생 5천여 명이 시위를 전개하여 전국적으로 퍼져나갔고, 26일에는 전국 16개 도시에서 4만 3천여 명의 학생들이 시위에 참여하였다. 그리고 청사회라는 조직이 중앙정보부와 공화당의 지원을 받아 학원사찰을 해온 것이 드러나면서, 한일회담 반대와 함께 학원사찰 중지‧구속학생 석방‧중앙정보부 해체‧매판자본 몰수와 대중생존권 등이 투쟁의 의제로 등장하였다. 6월 3일에 한일회담 반대투쟁은 절정에 달해 1만 5천여 명이 가두시위에 참가했으며, 정권은 계엄령을 내림으로서 사태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6.3 한일회담 반대투쟁은 이후의 대중운동으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1967년 대통령 선거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공화당은 압승을 거두었으며, 69년에는 3선 개헌을 통해 이후 유신체제로 가는 밑바탕을 닦아 놓는다. 1960년대 발전주의 정책은 국가를 성장과 발전의 담지자로 만들기에 충분했으며, 변혁세력들에게 보편적인 이념과 전망이 부재하였다. 하지만 6.3 투쟁을 계기로 추후 계급투쟁의 지형과 관련한 몇 가지 가능성들을 감지할 수 있었다. 6.3 투쟁 이후 서울대의 ‘한국사회연구회(한사)’ 등 써클 형태의 조직들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대학생이 아직 지식인‧특권층으로 인식되고 학생대중운동이 불가능했던 당시의 상황에서 써클 형태의 결사체로서 학생운동이 조직될 수밖에 없었고, 이러한 상황은 1970년대까지 이어진다고 볼 수 있다. 한편 신민당 등 자유주의의 색채를 띤 야당은, 공화당을 매국정당이라고 비판하며 자신의 입지를 다져나간다. 이것은 자유주의자들이 발전주의자(보수주의자)의 대안으로 인식될 수 있는 계기가 되었고 사상계를 펴낸 장준하, 신민당의 정치인인 김대중‧김영삼, 각종 재야인사들이 혁신적인 인물로 떠오른다. 어찌보면 당시 정세에서 이런 상황은 당연한 것이었지만, 이후 ‘진보 대 보수’ 혹은 ‘민주 대 반민주’와 같은 전선형성에 있어서 자유주의자들에 대한 불철저한 판단을 내리게 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그 영향은 현재까지 남아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1960년대는 차관경제로의 편입과 국가에 의한 강력한 발전주의 정책으로, 세계 자본주의 체계에 대한 종속이 심해지고 독점자본이 성장했던 시기였다. 군부정권은 발전주의 정책을 효과적으로 수행하며 민중들을 포섭했고, 강력한 반공주의를 토대로 계급투쟁을 무력화했다. 강력한 지배계급의 공세에 비해 변혁세력의 이념과 역량은 너무나 미약했다. 이러한 가운데 1960년대 말에 내적 모순이 심화되고, 그 발현으로서 일련의 위기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68년 말 외자기업 중 55개사가 은행관리로 넘어가고, 69년에는 10개사가 상환을 이행하지 못하는 대불사태에 빠진다. 이것은 주로 수입대체 중화학부문에서 발생하였는데, 차관도입을 둘러싼 무분별한 자본 경쟁으로 인해 과잉생산의 현상을 보인 것이다. 게다가 출혈수출이 이루어지는 가운데 차관에 대한 상환압박은 국제수지 위기로 나타나게 된다. 70년대로 넘어오게 되면 미 헤게모니가 위기를 노출하며, 한국에서 경제성장을 가능하게 했던 조건들이 점차 사라져간다. 경제위기가 나타나는 가운데 70년 전태일 열사의 분신은 폭발적인 노동쟁의를 가져오고, 빈민들의 운동도 성장하게 된다. 이것은 통일담론 중심의 학생‧지식인 운동과는 결이 다른, 노동자 운동이 독자적으로 성장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계급투쟁의 지형이 새롭게 형성되는 가능성을 제시해 주는 것이기도 하였다.

Posted by 행진

2008/12/08 11:47 2008/12/08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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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Ⅰ>


자본주의의 위기, 노동자들이 할 일

 

     전 세계에 금융위기의 한파가 몰아쳤다. ‘금융부문’에서 시작된 이 위기는 그러나 전 세계의 금융만 위기에 빠뜨린 것이 아니다. 산업자본 중심으로 돌아가던 세계경제가 이윤율 저하에 따른 금융화로 돌아선지 벌써 30여년이다. 그러나 그 동안 어떤 것이 금융화를 뒷받침하는 정책인지, 금융화는 어느 계급의 편을 들어주는 것인지, 또 이를 뒷받침하는 신자유주의는 무엇인지 제 때 분석하지 못한 채 ‘금융부문’ 이 모든 경제를 주도하게 놔두었으니, 투자은행들의 금융사기극으로 인해 전 세계 실물경제까지 위기가 미치는 것에 크게 놀라기도 뭣하다. 금융위기로 인해 자본주의 체제가 흔들리고, 기업도 흔들리고, 가계도 흔들린다. 자본주의에 필연적으로 맞설 수밖에 없는 노동자들은 이러한 상황에서 무엇을 해야만 하는가? 지금까지 노동자운동이 가졌던 태도와 대응들을 돌아보며 지금 이 위기에 가장 잘 맞서기 위해서는 무엇부터 해야 하는지 찾아보자.

 

자본주의의 종말이 왔으니 노동자들이여, 기뻐하라?!!

      리먼 브라더스가 파산한지 약 두 달, 그 동안 곳곳에서 위기에 대한 분석과 입장을 쏟아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두 달 만에 주가가 폭락하고 환율이 요동치고 흑자 도산하는 중소기업은 왜 생기는지에 대해 알기 위해 열심히 기사를 읽고 나름의 의견을 쏟아냈다. 이러한 수많은 입장 속에서 노동자운동으로 노동권을 쟁취하고 세상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우리들은 그럼 어떠한 태도를 가지고 있었는가?

     우려되는 반응이 있다. 자본주의 위기에 대해 “우리가 망합니까? 자본이 망하지”라는 반응, 위기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정권을 비판하는데만 급급한 나머지 위기를 진지하게 사고하지 못하는 태도, 이러한 우리의 반응과 태도는 포털사이트에서 “좌파들은 경제가 망하기를 기다리고 선동한다.”라는 근거 없는 비판의 빌미를 제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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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본주의의 종말이 가까워오니 이제 그로 인해 억압받던 우리들은 살만하게 되었나? 평범한 임금노동자들도 ‘수익률’ 만 믿고 정기예금보다는 펀드에 돈을 넣었다가 피해를 입었다. 소위 ‘개미투자자’ 들에게 미친 피해가 막심하다는 것을 더 이상 강조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엄청 많은 사람들이 금융에 투자했는데, 망했다! 는 것만으로 금융위기가 심각하다고 말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오히려 이 글을 읽고 있는 동지들 중에서도 투쟁하기보다 펀드에 기대어 노후자금을 마련할 의도로 투자했다 돈을 잃은 사람이 있다면, 혹은 주위에 있는 다른 동지들이 펀드투자를 하는 것을 말리지 못했다면 사태가 이 지경이 되어서야 금융화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알게 된 것에 대해 반성하자.

     이제 금융이외에 무엇이 더 위기에 봉착했는지 돌아보자. 물가는 올랐는데, 임금은 동결한다고 한다. 주가 폭락으로 인해 손해를 입은 회사들은 위기를 대규모 구조조정으로 넘어서려고 한다. 해고와 비정규직화의 압박이 계속되고 있다. 월급에서 계속 꼬박꼬박 돈을 떼어 냈건만, 연기금은 펀드에 투자되었다 돈을 엄청 날렸다고 하고, 낸 돈만큼도 못 받게 되었다. 당장 1년 뒤의 삶이 어떻게 될지 불안하고, 10년 뒤의 삶은 생각하기도 싫어진다. 이것이 지금까지 열심히 일한 대가일수는 없다.



     이런 상황에서도, 우리는 그래도 어쨌든 자본주의가 망하면 자연스럽게 노동자의 세상이 오지는 않을까, 누군가 들고 일어나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스스로를 돌아보자. 나는 이렇게 부조리한 현실에 저항하기 위해 스스로를 조직하고, 옆 사람을 조직하고 금융위기에 맞서 우리 노조는, 우리 단체는 무엇을 해야 하고, 지금 시기에 전태일 열사의 정신을 이어받는 것은 대체 무엇에, 어떻게 맞서 투쟁하는 것인지 진정 열심히 고민하고 행동하였는가?

     운동 없이, 대안 없이 자본주의가 붕괴하는 것은 야만으로 가는 것일 뿐이다. ‘야만’은 가난한 자국민에게 가는 구호물자를 실은 비행기를 격추시키는 아프리카에, 민주주의를 외치며 들고 일어났던 사람들을 폭력적으로 진압한 버마에 이미 존재한다. 그러나 야만은 저 멀리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남한의 이주노동자들의 노동환경과 그들이 처한 처지는 야만이 아니고 무엇인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내몰리는 벼랑 끝은 야만이 아니고 무엇인가?

     이러한 야만을 점점 더 양산하는 것이 ‘자본주의’의 위기라면, 우리는 위기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누가 이 위기를 자초했는지 평가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어떤 운동으로 이 위기와 이미 도래한, 더욱 심해질 야만적인 상황을 넘어설지를 진지하게 고민하자.

 


구제금융과 통화스왑은 진짜 해결책이 아니다.

     우리보다 더 먼저 위기를 넘어설 방향을 제시한 이들이 있으니, 당연히 자본주의가 망하면 큰일이 나는 지배계급들이다. 앞서 펀드에 대한 반성을 촉구했던 이유는, 내가 넣은 펀드 안 망하게 주가가 올라줬음 좋겠는 희망이 너무 강하다 보면, 단기적으로 주가를 올릴 수 있는 공적자금을 투입해서 금융자본부터 구해주는 구제금융이나 최근 남한과 미국이 체결한 통화스왑 등을 별 생각 없이 지지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은 진정 우리를 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에게 위기를 전가시키기 위한 것이다. 최근 자주 들려오는 ‘손실의 사회화’ 란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 미국의 금융개혁과 G20 정상회의 비판

    
미국이 긴급경제구제책으로 7000억 달러의 구제금융을 실시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모두가 익히 잘 아는 사실이다. 7000억 달러라는 큰돈을 어떻게 조달하느냐? 바로 국채를 발행하고, 그것을 판매함으로써 조달된다. 국채를 더 많이 찍어낸다는 것은 그 국가의 빚이 늘어나는 것을 의미하는데, 그래서 미국의 국민들이 왜 ‘금융자본’을 나라 빚 = 결국 국민 전체가 부담하는 빚으로 해결해야 하느냐고 반발했던 것이다. 금융자본의 잘못으로 인해 발생한 손실을 미국 사회 전체가 부담하게끔 ‘사회화’ 한 것이다.

    
그런데 이는 미국만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미국이 7000억 달러를 조달하기 위해 발행한 채권은 누가 구입하는가? 바로 미국 이외의 세계 여타 국가들이 사게 된다. 그 중에서도 특히 대미 상품 수출을 통해 경제성장을 유지˙도모해야만 하는 일본˙중국˙한국과 같은 동아시아 국가들이 살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무역흑자를 통해 확보한 달러로 미국 국채를 매입해서 다시 달러를 미국으로 돌려보내야, 미국경제가 유지되고 미국 내의 소비가 위축되지 않아 수출을 계속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손실의 사회화’는 한 국가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구 사회 전체의 문제가 되고 있다.

    
세계경제를 되살리려면 국제공조가 필수적이다. 올 11월 15일에 열릴 G20 정상회의(국제 경제 정상회의)에는 소위 선진국으로 분류되는 G8을 비롯하여 중국, 인도, 브라질, 한국, 호주 등을 비롯한 G20국가 정상들이 참여할 예정이다. ‘신브레튼우즈체제’ 를 만들어야 한다는 브라운 영국 총리의 말이 여기저기서 보도되는 가운데, 이 회의에서는 현행 금융감독체제의 개혁과 함께 IMF등 국제기구의 개혁 및 규제 권한 강화 등에 대해 논의될 전망이다. 하지만 살아남은 두 투자은행 (골드만삭스, 모건체이스)을 은행지주회사로 만들어 예금은행을 통한 자금조달능력을 키워주면서 말로만 규제를 강화하겠다는 등의 지금까지의 과정을 보았을 때, 이 규제는 자제능력이 없어 말썽을 부리고 다니는 아이를 어느 정도 제어하면서 새로운 놀이방식을 쥐어주는 것과 다름없다. 사람이야 사랑을 쏟고 도덕과 윤리가 어떤 것인지 알면 훌륭한 시민으로 거듭날지 모르겠지만, 자본은 그렇지 않다. 자본은 사람이 죽어가더라도 이윤을 획득하기만 하면 된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 한-미 통화스왑(SWAP) 비판

    
지난 10월 30일, 한국과 미국은 300억 달러 규모의 통화스왑 계약을 체결하였고, 이것이 1000선을 붕괴시킨 코스피를 급반등시킨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것이 결국 미국발 금융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미국에서 돈을 빌릴 수 있는 권리를 요구하고, 이 과정에서 수수료를 미국에 지불하게 되는 어이없는 상황이 일어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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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통화스왑계약은 한국에 달러가 부족할 때 한국은행이 미국 FRB에 원화를 제공하면 달러를 받고, 계약만기 시에는 다시 빌린 달러를 돌려주고, 원화를 돌려받을 수 있는 계약이다. 앞서도 밝혔지만 최대 300억달러까지 이렇게 하는 것이 가능한데, 미국은 언제든 이 한도를 늘려줄 수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빌린 달러의 2%에 해당하는 금액을 수수료로 미국에 지불해야 한다. 이명박은 이러한 통화스왑계약을 체결하기 위해 미국 국채 매각 카드로 ‘협박’까지 했다고 하지만, 역으로 말하면 이제 통화스왑으로 인해 미국의 국채를 자연스럽게 매입해야할 상황이 되었다. 이번에 통화스왑라인을 구축한 나라들이 앞서 이야기한 7000억 달러의 국채를 주로 매입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렇게 미국 뿐 아니라 다른 국가에서도 달러가 중요시되면서 미국경제가 위기임에도 불구하고 달러강세를 지속시키고 있다. 위기는 당장 지연될 수 있겠지만 이러한 상황은 미국을 중심으로 서로의 배를 쇠사슬로 묶어둔 것과 같다. 다 같이 재앙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 남한의 시대착오적 정책 : 자본시장통합법과 금산분리 완화

   
지금까지의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가 파괴적인 결과를 낳는다는 것을 눈으로 보고 있으면서도, 남한은 그래도 최대한 그 시스템으로 개조하기 위해 계속 여러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자본시장통합법과 금산분리가 핵심적인 정책이다.

    
자본시장통합법은 현재 증권사에게 선물사, 종합금융회사 등에서 하던 일을 가능하게끔 하고, 일정 요건만 갖추면 법에 규정되어 있지 않은 새로운 금융상품을 판매할 수 있게 만들어주며, 소액결제기능을 갖출 수 있게 되면서 월급통장 등의 개설을 유도한다. 물론 이렇게 되면 이러한 회사는 ‘증권사’가 아니라 ‘금융투자회사’ 가 되며 금융권의 거의 모든 자금을 포괄할 수 있게 된다. 이 법의 핵심 의도는 한국의 5대 증권사를 이러한 ‘금융투자회사’ 로 만드는 것이다. 이는 미국의 투자은행과 같은 것을 한국에도 만들려고 하는 것이다.

    
금산분리도 오래전부터 제기되었던 쟁점이다. 이는 금융지주회사가 제조업까지 자회사로 둘 수 있게 허용하는 것이고, 재벌이 금융지주회사로 전환하는 것도 가능해진다. 기업의 부실, 금융의 부실이 서로에게 전이될 수 있고, 재벌체제는 더욱 강고해지는 것이다. 이렇듯 위기를 불러왔거나 위기를 심화시킬 계획들이 남한에서는 단 하나도 취소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 이 땅에 사는 우리를 더욱 힘들게 하고 있다.




‘금융억압’ 을 걸고 투쟁하자!

    
위기 때문에 우리 삶도 빡빡하고, 지배계급들은 위기를 해결할 방법은 내놓지 못하고, 한국정부는 계속 위기의 한가운데로 자꾸 들어가려고만 하고… 어쨌든 이명박이 잘못하고 있는 줄은 누구나 알기 때문에 그가 무슨 말만 하면 인터넷에는 어떻게 하면 가장 잘 비웃을까를 고민한 듯한 말들이 주루룩 달린다. 하지만 그것이 진지하고 절박한 거리에서의 저항이 되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인가?

    
우리는 개인적으로 미래를 보장받으려 하지 말고, 집단적으로 현재와 미래의 삶을 쟁취해야 한다. 이명박을 욕하는 댓글에 웃으면서 스스로를 위로하지 말고, 진지하게 저항을 호소해야 한다. 우리가 저항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단결이다. 실제로 이를 증명해왔던 것이 노동자이다.

    
우리는 우선 공공부문 구조조정, 비정규직화, 임금동결에 맞서 싸울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문제들은 돈 놓고 돈 먹기를 최고로 여기는 금융화 국면이기 때문에 일어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투쟁을 지금까지와 같이 비정규직에게 비정규직 투쟁을 맡겨버리고 공공부문 투쟁도 1차적으로는 공공부문 노동자들에게 맡기고, 임금동결에 맞선 투쟁과 다른 의제들을 함께 이야기하지 못한다면 역시 지금까지와 같이 계속 각개격파 당할 뿐이다. 우리는 임금문제, 비정규직 문제, 공공부문 구조조정을 모두 얘기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1차적으로 금융화로 인해 파괴된 민중들의 삶을 구해낼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우리는 또한 ‘금융억압’의 요구를 투쟁의 한가운데에서 제기해야 한다. 자본시장통합법 등으로 한국이 계속 금융화의 한가운데로 들어가고자 하는 것을, ‘금융규제’라고 이야기하며 실제로는 ‘금융해방’을 목적으로 한 전 세계적인 해결책이 눈뜨고 통과되는 것을 우리는 우선 막아야 한다. 이걸로 당연히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물길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터져 나온 강둑을 간신히 막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의 삶이 자본주의의 물결이 다 휩쓸려 떠내려가지 않기 위해서는 우선 강둑을 막아야 한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자본주의를 넘어설 대안으로 가야한다는 것을 그 누구도 아닌 노동자가 가장 열심히 이야기해야 함은 물론이다.

     
투쟁하나 조직하기가 너무 힘들다, 내년에 임금투쟁을 할 수나 있을까 모르겠다, 다 좋은 말이지만 어떻게 하겠냐, 그렇게 결론짓지 말자. 오늘 투쟁하러 이곳에 오지 않았는가? 당신의 옆에 앉아있는 동지도 그렇지 않은가? 입을 열어 당장 토론을 시작하고, 오늘의 투쟁, 내일의 투쟁, 내년의 투쟁의 방향을 고민하자. 이곳에 앉아있는 우리부터가 진지하고, 절박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차고, 활기차야 한다. 그래야 더 많이 동지들이 조직되고, 그리고 우리는 조금이라도 더 승리할 수 있다. 투쟁!




알고 계셨나요? 금융지식 일문일답

1. FRB

연방준비은행, 줄여서 ‘연준’ 이라고도 한다. 한국에는 한국은행이 중앙은행 역할을 하듯이 미국에서는 FRB가 이러한 역할을 한다. 1913년에 중앙은행의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만들어졌다. FRB가 정하는 기준금리는 세계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는데,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일어난 것도 FRB가 경기가 회복되었다는 판단 하에 기준금리를 올렸기 때문이다.

이 연방준비은행의 활동을 결정하는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 역시 세계 경제에 대해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데. 전 의장인 그린스펀이 세계 경제에 미치는 효과가 엄청난 것을 빌어 ‘그린스펀 효과’ 라는 말까지 생겨났고, 현재 의장인 버냉키의 결정에도 사람들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자본이 이미 ‘대불황’ 혹은 ‘대공황’ 이 올 것을 예상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이유 중 하나에는 지금 연준 의장인 버냉키가 대공황 전문가라는 것도 있다.

2. 신브레튼우즈체제

지금의 변동환율제, 순수달러본위제 등의 국제통화체제를 변경하기 위해 새롭게 도입하자고 제안되고 있는 체제. 본래 브레튼우즈체제는 1944년에 전세계 44개국이 모여 고정환율제, 금-달러 본위제(달러를 세계화폐로 하되 금 1온스 = 35달러로 태환해준다는 원칙을 세운 것.) , 금융자본의 이동 금지 등을 골자로 한 국제통화체제이다. 이 체제는 서유럽지원(마셜플랜), 한국전쟁, 베트남 전쟁 등으로 달러를 너무 많이 찍어 낸 미국이 더 이상 금과 달러를 바꿔주지 못하게 되면서 붕괴했고, 이 때부터 금융자본의 이동이 서서히 가능해지고, 고정환율제에서 변동환율제로 바뀐 나라들도 계속 늘어났다. 이렇듯 본래 브레튼우즈체제가 무너진 현재의 통화체제의 불안정성이 위기를 심화시킨다고 하여 ‘신브레튼우즈체제’ 가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달러를 대체할 세계화폐가 존재하지 않는 등 진정 새로운 체제로 가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겠느냐는 전망이다. 본질적으로는 현재와 같이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은 자본에게는 이익이나 노동자들에게는 불리한 체제가 지속될 것이다.

 

Posted by 행진

2008/11/10 15:30 2008/11/10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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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Ⅱ>우려되는 현재의 산별노조 재편



지난 2월 25일 개최된 ‘금속노조 임시대의원대회’에는 500명이 넘는 대의원들이 참가한 가운데, “15만의 산별협약쟁취 중앙교섭 돌파” “가자! 투쟁의 중심 금속노조”라는 플랜카드가 걸렸다. 올 해 금속노조가 핵심 투쟁과제를 무엇으로 생각하고 있는 지 가장 단적으로 알 수 있었던 이 자리에서 정갑득 금속노조 위원장은 “2008년 금속노조는 사용자들을 중앙교섭에 참가시키고 산별교섭을 확보하기 위해 운명을 건 투쟁을 전개할 것”이라며, “자동차 완성4사는 대공장 자본들은 작년 확약서를 이행하고 산별교섭에 응해서 정상적인 산별시대 노사관계 확립에 나설 것”이라고 천명하였다.

그로부터 약 5개월이 지난 7월 11일, 금속노조 지도부는 GM대우 사측과의 대각선교섭을 통해 <의견접근안>을 발표하였고, 7월 16일 새벽 1시 10분경에 금속사용자협의회와 <중앙교섭 의견접근안>을 합의한 후, ‘새로운 파업지침’을 발표하였다. 전체사업장에 내려져 있던 부분파업을 철회하고 중앙교섭에 불참하는 사업장에 한해서 부분파업을 시행한다는 내용이었다. 이에 대한 비판이 여기저기서 일자 금속노조 지도부는 급히 <해설안>과 <문답자료>를 냈지만, 비판 여론은 가시지 않았다.
그 5개월 동안 대체 무슨 일이 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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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별재편, 지난 경과들

      <전노협>시절부터 꾸준히 쟁점이 되어 왔던 ‘산업별 노동조합(이하 산별노조)’건설은 여기에 숨어 있는 쟁점은 무수히 많고, 무엇보다 시기별로 그 양상이 조금씩 달라져 왔기 때문에, 이를 하나하나 다 검토하는 것은 무리이다. 다만 최근의 경과들을 살펴보면, 1995년에 <민주노총>의 창립과 더불어 ‘산별 현실론’이 본격적으로 힘을 얻게 되고, 현대그룹노동조합총연맹․전국자동차총연맹․민주금속연맹의 통합을 통해 98년 <금속산업노동조합연맹>(이하 금속연맹)이 출범하였다. 금속연맹은 2000년 4월에 해외매각 저지를 위한 자동차 완성4사(현대, 기아, GM대우, 쌍용 등)의 총파업을 기획하기도 하는데, IMF 이후에 더욱 강화된 구조조정에 대한 공동대응의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2001년 2월에 4만 명 규모의 <금속노동조합>(이하 금속노조)이 출범하게 된다.

     금속노조의 중앙교섭은 2003년부터 성사되기 시작하였지만, 금속노조 출범 당시부터 상당수의 대기업노조가 불참한 약 4만 명 규모의 반쪽짜리 산별노조라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이에 금속노조는 산별중앙교섭에 참가하지 않은 대기업 사용자측과 벌이는 ‘대각선교섭’을 병행하는 등 대기업 사용자들과 대기업노조를 산별교섭˙산별노조에 참가시키기 위해 부단히 애를 썼다. 그 결과 2006년 국내 최초의 사용자 단체인 <금속산업사용자협의회>가 출범하였고, 2007년에는 <산별 중앙협약>을 마련하고 대기업 사용자들에게 ‘2008년부터는 산별교섭에 참여하도록 노력한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더불어 2007년의 자동차 완성 4사 노동조합에 이어 올 해 3월에는 4-5천 명 규모의 금호타이어 노동조합이 금속노조에 가입함으로써 약 240개 지회, 약 15만 명 규모의 산별노조라는 외양을 갖추는 데에 성공한다. 



08년 금속노조 산별교섭

     금속노조는 올 해의 산별중앙협약에서 GM대우 사측과 “2009년의 중앙교섭을 노․사공동위원회에서 결정한다”는 약속을 받아내었는데, “작년 중앙교섭 합의안과 거의 다를 바가 없다”는 거센 비판을 받았다. 실제로 금속노조는 작년에 대부분의 대기업 사측과의 대각선교섭을 통해 “2008년에는 산별 중앙교섭 참여를 위해 노사가 산별 준비위원회를 구성하여 연구해”본다는 합의 한 바 있다. 이런 상황에서 금속노조 지도부가 “올 해에는 GM대우가 의견일치안을 낸 것이 성과”라는 자평한 것은 작년에 맺은 모호한 수준의 중앙교섭 참가약속과 다를 바 없는 내용을 성과라고 말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상황에서 오히려 비판여론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되었다. 즉, 애초에 08년 금속노조 투쟁의 가장 핵심적인 과제를 “중앙교섭 성사 그 자체”로 상정했던 것에 대한 진지한 반문을 던져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구분

요구안

합의안

조합활동

조합원 교육시간 연 24시간 이상간부교육시간 연 40시간 이상
(대의원, 상집, 현장조직위원 이상)

연 8시간
지회 상집 이상만 연 24시간
(조합원 교육시간 제외하고 16시간)

노동시간

10월까지 실행위원회 구성

2009년 2월 실행위원회 구성

노동안전

작업량, 인원, 시간, 내용 노사합의
안전보건담당 1인 유급
(주1일 이상)
산재불승인 시 치료 및 보상

안전중대영향 있을 시 노사협의
100인 이하 월 2일
300인 이하 월 3일
없음

비정규직

원청의 사용자성 인정
사내하청 처우 개선
비정규직 매년 5% 정규직화
비정규직 포함 총고용 보장
하청변경폐업 시 고용˙단협 근속승계

관계법령
없음 (현행유지)
없음
고용유지 노력
승계되도록 노력

불공정거래

50억 이상 표준하도급계약서 작성
단가인하 임률고정 금지

70억 이상
없음

임금

최저임금 99,4840원
기본금 134,690원

시급 4080원(월950,000원)
없음(사업장에서 논의)


     위 표에 나와 있듯이, 금속사용자협의회와 체결한 <중앙교섭 합의안>은 요구안에 한참 미달하는 것이 대부분이라는 점에서 역시 비판을 면하기 어려웠다.

     무엇보다 사용자협의회와 합의한 직후인 7월 16일에 발표한 새로운 파업지침에서 “중앙교섭에 참여한 사업장에는 ‘파업자제’라는 인센티브를 주고, 참여하지 않은 사업장에만 한해 ‘부분파업’을 개시한다”는 전술을 결정한 것은 사업장을 넘어서는 공동투쟁의 의미를 살린다는 ‘산별교섭과 산별투쟁’의 대원칙에도 어긋나는 것이었다.

     올 해 금속노조 산별중앙교섭에서의 우려되는 현상들은 다수 지도부를 비롯한 노동자 운동 내부의 산별에 대한 인식에서 비롯되는 바가 크다. 금속노조가 3월에 발표한 <산별시대, 노사교섭 어떻게 할 것인가?>에는 “산별 교섭 및 사회적 합의체제가 없는 가운데 국가와 자본에 의한 노동조합 탄압이 지속됨에 따라 자연적으로 노동조합은 자본과 국가와의 교섭보다는 총파업 등 투쟁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하지만, 진정한 평가지점은 지난 몇 년 동안 강화되어 온 지배세력의 신자유주의 금융화로 인한 노동유연화(신축화)․구조조정의 안착화에 대한 구체적인 전략과 그에 적합한 투쟁을 조직하지 못했다는 점이어야 한다. 그 결과, 지금 우리의 노동자운동은 지배세력과의 힘의 관계에서 현저하게 밀려있는 상황이다. 이는 교섭과정에서 가장 현실적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교섭을 위한 교섭’ 또는 ‘교섭을 위한 투쟁의 배치’는 올바른 전략일 수 없다. 그 단적인 예는 금속노조가 자동차 완성 4사 등 대기업의 중앙교섭을 촉구하기 위한 갖은 방도를 썼음에도, 금속노조와 금속사용자협의회의 2008년 첫 중앙교섭테이블 열리기 바로 전 날인 4월 14일에 자동차 완성 4사가 일방적으로 “중앙교섭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한 것에서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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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체적 쟁점들


주간 2교대제

      올 해 중앙교섭이 종료된 이후에 시작된 현대자동차 지부교섭에서 쟁점이 된 것은 ‘주간 2교대제’였는데, 이는 금속산업 노동자들에게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향후 금속노조의 중요한 과제가 될 수 있다.

     이번에 체결된 현대자동차 주간 2교대제 관련한 합의안의 핵심내용은 지금까지 주야 맞교대로 10시간-10시간으로 시행되던 노동시간을 8시간-9시간(8시간+1시간 연장근로)으로 바꾸어 주간에만 일 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기존의 10시간-10시간 노동시간 때의 생산량을 유지한다는 내용이 함께 합의되면서 “오히려 노동강도의 살인적인 증가가 뻔하다”는 강한 비판을 받았다. 생산량을 맞추기 위해 사측은 노동안전교육시간, 중복휴일, 각종 공휴일․휴가 등을 제도적으로 폐지하기 위한 단체협약 개악을 시도할 가능성이 벌써부터 눈에 보이려고 하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또한, 금속노조는 이렇듯 노동시간과 노동강도 등 노동자들의 기본적이면서 핵심적인 노동조건과 관련된 투쟁을 조직하기는커녕, 중앙교섭에서 제대로 논의조차 못 하고 지부교섭으로 넘어가도록 했다는 점에서 ‘과연 누구를 위한 산별노조˙산별투쟁인가’라는 의문을 낳게 했다.


비정규직

     위의 표
에서 봤듯이, 이번 중앙교섭 합의안에서 비정규직 관련한 조항들은 거의 ‘법령에 따름’이거나 ‘방안을 마련’이라는 식으로 치부되어 있다. 금속노조 지도부 스스로 “비정규직 등 전사회적 문제를 다루기 위해서는 기업별 노조의 틀을 넘어야 한다”고 천명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그런 효과는 거의 발휘하지 못 했던 것이다.

     비단 중앙교섭 뿐 아니라, 실제로 대부분의 대공장들은 원청과 하청이 제각각 교섭을 진행하였다.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생산량’(Just In Time)이라는 자동차산업의 특성 상, 하청업체들 역시 주간 2교대제를 실시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원-하청 간의 불공정거래 등 하청업체의 노동조건에 대한 실질적인 통제가 전혀 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원청에서의 생산량을 맞추기 위해 하청업체의 대부분을 구성하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훨씬 살인적인 노동시간을 그대로 감내해야 하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최근 들어 비정규직의 수 자체가 증가한다기보다는, 오히려 비정규직의 형태가 자본의 입맛에 따라 더욱 다양화되고 있다는 것을 감안해 보자. 현재와 같은 산별노조˙산별투쟁이 계속 된다고 했을 때, 과연 이에 대한 문제제기와 이에 걸맞은 노동자 주체 조직은 과연 가능할까?

 

 

Posted by 행진

2008/11/10 15:20 2008/11/10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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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별시대, 노동자운동의 전망과 과제

정세에 기반 한 운동을 위하여

     미국 발 금융위기가 자신의 파괴적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지금, 이명박 정부가 노동자·대중의 삶을 책임질 수 없다는 것 역시 이미 드러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은 대중적으로도 어느 정도 상당히 인식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문제는 이게 다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를 극복하기 위한 해결책을 지극히 개인적인 수준에서 찾거나, 기껏해야 당장의 불만을 표출하려는 마음은 많지만 이를 집단적으로 해결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이 가입한 펀드를 걱정하거나, 이명박의 실정이 담긴 인터넷 뉴스기사에 불만을 토로하는 댓글을 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 대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먼저, 97년 이후 계속된 신자유주의 금융화와 구조조정으로 인해 노동자·대중 대부분의 삶이 힘들어 진 상황에서, “경제를 살리는 지도자”라는 이미지로 등장한 이명박에게 많은 사람들이 압도적인 득표율을 보내줬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경제는 더욱 나빠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많은 사람들이 선거·정당정치로 대표되는 주류정치에 대한 지독한 불신을 보내지만, 그렇다고 이를 대체할 만한 무언가가 눈에 보이는 것도 아니다. 이미 어느 정도 ‘국민의 삶에 대한 국가의 공적인 관리가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상당히 존재하게 된 상황에서, 앞으로 신자유주의 지배세력의 무능함이 지속적으로 드러날 수밖에 없다고 할 때, 광범위한 대중적 불만은 ‘특정한 단일 이슈’나 ‘단일하게 대표되는 특정 이미지’에 대한 거부나 저항을 넘어서지 못하고 그 방향을 찾아 정처 없이 헤매게 될 가능성 역시 상당하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특히, 과거의 사회적 갈등 과정에서 ‘민주주의·사회정의를 위한 존재’로서의 ‘민주노조’라는 인식이 지극히 취약해 져 있다. 그 이유는 바로 앞서 밝힌 부분과도 연결되겠고, 무엇보다 ‘노동자 운동 자신의 철저하지 못함’에서 기인하는 것이 크다. 현재 우리 노동자 운동이 처해 있는 조건이 무엇인지 치밀하게 살펴야,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방향으로 운동을 조직할 텐데, 그렇지 못하고 있는 것이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노동자운동의 조건

     06년 금속노조의 임금구조 조사결과를 살펴보면 조합원 내 임금격차는 심각한 수준을 이미 뛰어넘었는데, 기업규모별 임금격차는 4배 이상 나고 있다. 특히, 전체 임금의 구성비를 보면 기본급의 비중은 자동차산업의 경우 전체 총액의 35.1%, 비자동차의 경우 39.9% 수준이며, 나머지 60~65%는 각종 수당과 초과근로, 특별급여로 구성되어 있다. 8시간 일해서 받는 기본급이 아닌 초과근로를 반드시 해야만 생활을 이어갈 수 있게 되어 있는 아주 기형적인 임금구조인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필연적으로 ‘더 많은 물량을 확보하기 위한 노동자들 간의 경쟁’이라는 웃지 못 할 일들이 반복된다. ‘비정규직 노조와 같은 조직이 되거나, 연대를 하면 혹시 나의 임금에 영향이 있지 않을까’ 하는 ‘경쟁과 분할’이 빈번해지는 것은, “왜 동료와 경쟁하려 드느냐”며 다그친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그 누군가의 책임이라고 덧씌운다고 해서 해결되지 않는 것이다. 운동의 전반적인 방향 속에서 체계적으로 자리 잡아왔기 때문이다.

     특히, 현재의 경제위기가 심화될수록 지배세력은 자신들에 대한 대중적인 불만과 적대를 다른 누군가에게로 돌리려 할 것이다. 얼마 전 한나라당 원내대표인 홍준표는 국회 교섭단체 대표발언에서 “현재의 경제위기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노사정간 대타협이 필요하다”고 말했는데, 이러한 대타협에 참여하지 않는 세력에겐 불이익이 돌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런 식의 ‘만들어 진 사회적 갈등’은 경제위기에 대한 책임을 허구적으로 전가시키는 방식일 것이다. “이익집단인 노동자들의 파업으로 인한 사회적 손실”이라는 오래된 래퍼토리부터, “한국의 일자리를 빼앗는 이주노동자”라거나 “꼭 돈 벌지는 않아도 되는 여성들이 파업한다”등 말이다. 즉, 이미 강화되고 있는 노동자 내부의 갈등을 더욱 활용할 가능성이 많다는 것이다. 정규직 노동자들은 ‘자신의 실리’를 위해서, 그리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정규직과의 대립을 매개로 조직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즉, 노동자 운동 스스로가 이러한 지배세력의 전략에 치명적으로 노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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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별, 가능성과 한계의 사이에서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자주 외치는 “단결과 연대”는 추상적인 구호 수준에서 머물러서는 안 된다. 노동자의 유일한 무기인 ‘단결’의 진정한 회복을 위해서는 이를 가로막는 현상적인 결과가 아닌 이유를 아주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어야 하며,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정세적인 투쟁을 적극적인 계기로 삼을 필요가 있다.

     산별재편 역시 그러한 흐름에서 좀 더 구체적으로 사고되어야 한다. 기업별 노조의 한계가 분명함은 누구나 다 알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산별이 중요하다”는 말만 강조하는 것은 아무것도 안 하는 것과 같다. 특히, ‘시기집중 임단투’에서 좀 더 많은 실리적 이득을 챙기는 것만을 위한 산별노조라면 더욱 그렇다. 단적으로 주간 2교대제의 예를 통해 알 수 있다. 노동자의 입장에서 봤을 때 야간노동과 연장근로 등을 통해 갈수록 늘어나는 노동시간을 적절히 막아내면서 노동강도를 완화시키고, 노동시간 대신 노동자로서의 자기 정체성을 확립하고 사회를 바라보는 시야를 넓히는 시간을 보다 활용할 수 있다는 의미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자본의 입장에서 보면, 야간노동을 통한 노동재해와 이에 따른 손실액이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언제까지 무한정 야간노동을 강요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대신 주간 2교대제를 합의하되, 자본에게 손실이 되는 부분을 메울 수 있는 노동에 대한 착취의 새로운 방법을 궁리할 것이다. 즉, 문제는 ‘주간 2교대제’ 그 자체가 아니라, ‘어떤 주간 2교대제인가’라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산별재편 역시 그 자체를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산별노조를’, ‘어떻게’ 건설할 것인가가 중요하다. 그래야 갈수록 심화되어 가는 금융위기 속에서의 정치에 대한 근본적인 ‘복원’이라는 방향으로 노동자 운동이 기여할 수 있는 바를 ‘현실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산별시대, 노동자운동은 어떠해야 하는가


금융위기를 비판하고 극복하는 산별노조

     ‘어떤 산별노조를 건설할 것인가’라는 고민은 ‘현재의 사회˙경제적 상황에서 산별노조가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답하는 과정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보자.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공적자금 투입기업(대우조선 등)과 기간산업(철도 등)에 대한 민영화˙사유화 정책은 금융규제 완화를 통해서 제도적으로 뒷받침되고 있는 것인데, 여기에 그치지 않고 국민연금을 이용한 금융시장 투자 등 기본적인 사회서비스에 대한 시장화까지 서슴지 않고 있다. 폭락하고 있는 증권시장을 회복시킨다는 이유로 국민연금을 이용한 투자를 하고 있기까지 하다. <산별 공공노조>는 ‘공공부문 선진화’로 불리우는 공기업 민영화에 맞서는 투쟁을 이러한 현 정부의 정책에 대한 비판을 통해 조직할 수 있어야 한다. ‘공공부문의 일자리가 줄어드는 것’과 ‘공공성 파괴’에 대한 구호를 병렬적으로 늘여놓는 것으로는 가능하지 않다. 우선, 이 두 가지 현상 간의 관계가 어떠한 지 올바르게 인식하기 위한 노동조합 내부에서의 노력과 교육의 활성화가 필요하다. 그리고 이를 대중적 요구로서 제기할 수 있는 운동의 경로에 대한 고민이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지역 노동자운동의 거점으로서의 산별노조

     이러한 문제의식의 유력한 경로 중의 하나로서 ‘지역’이 있을 것이다. 물론, 앞서 주간 2교대제나 산별노조에 대해서 말했던 것처럼 ‘지역 자체’를 강조하는 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 수 있으며, 역시 문제는 ‘어떤 지역운동인가’이다. 지역공동체만의 특수한 발전을 위한 것도, 지구당 차원에서 표 몰이만을 위한 것도 ‘지역운동’이라 불리우며, 그 이름을 오염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먼저, 사회서비스 여성노동자나 이주노동자 등 단일한 사업장만으로 묶이지 않는 불안정 노동자의 범위가 갈수록 확대되고 있는 흐름을 파악해야 한다. 더불어서, 갈수록 노동을 분할하기 위한 자본의 전략이 세밀해지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사내하청, 용역 및 도급, 파견 등 관리체계를 더욱 분할하고 이에 따라 노동자의 층위를 다양화하고 있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의 노동자에 대한 공격을 막아내기 위해서는 자본의 관리체계를 내부적으로 극복하고, 일상적으로 노동조합 활동을 지속하면서 공동의 운동을 만들어 낼 수 있어야 할 것인데, 이는 지역을 매개로 하는 연대의 일상을 통해서도 가능할 것이다.

     이렇듯이 한 지역에서 서로 다른 사업장˙업종에서 일하는 노동자더라도 같은 지역의 조직틀 안에서 일상적인 활동과 투쟁을 함께 하면서 연대의 기반을 마련할 수 있는 거점으로서 산별노조 지역본부나 지역지부가 자기역할을 분명히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임금투쟁의 혁신을 위한 산별노조

     물론, 임금투쟁에 매몰되어 당장의 자기 실리적인 이득만을 위해 임단협에 나서는 경우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예를 들어, 요즘에는 시기별 집중 임단협을 넘어 자기 사업장의 이슈만을 부각시키기 위한 시기 분산 임단협이 이루어지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이에 대한 단호한 비판이 필요한 것과는 별개로, 현재 노동자간의 갈등과 대립은 ‘임금’을 매개로 형성되는 경우가 많은 것이 현실이다. 다른 말로 하면 노동자들 간의 분할을 조장하는 지배세력의 입장에서 ‘임금’만큼 이를 관리하기에 쉬운 고리도 없다는 것이기도 하다. 특히, 기존의 실리적˙관성적 임금투쟁에 대한 근본적인 개혁이 고민되지 않는다면, 금융위기에 따라 갈수록 실업률과 대량해고가 증가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이에 대해서 대중적으로도 인정받지 못하는 ‘커다란 곤란’에 부닥칠 수 있다. 더불어, 지배세력이 현재의 경제위기를 극복한다는 명목 아래, 생산직의 최대한 많은 부분을 비정규직화 시키는 것을 목표하고 있는 것을 감안한다면, 지금 우리에게 존재하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갈등을 지양할 수 있는 방향이 설정되어야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봤을 때, 반대로 임금문제가 노동자간 단결의 가장 기초적인 매개로서 작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구체적인 고민이 활발하게 만들어져야 할 것이다. 즉, 노동자운동 내부의 분할과 갈등의 증폭을 일차적으로 예방하는 동시에 ‘단결’의 구체적이고도 정세적(전술적)인 차원으로의 고려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법정최저임금의 현실화 및 산별최저임금 체결, 지자체 교섭 등을 통한 지역 내 저임금 해소도 고려해 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이와 더불어 현재의 임금체계가 필연적으로 낳고 있는 같은 산업 내에서도 기형적으로 차이가 나는 임금차이를 축소할 수 있는 ‘요구투쟁’을 조직하고 이를 전면화함으로써, 임금투쟁이라는 노동조합의 일상적 활동이 대사회적인 정치투쟁으로 발전토록 할 수 있는 고민도 진행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는 현장과 이른바 상층에서의 ‘교섭전략’을 넘어 운동들 간의 진지한 고민과 집단적 논의, 그리고 지역으로부터의 조직을 통한 운동의 과정을 통할 때 그 의미를 보다 뚜렷이 할 수 있을 것이다.

 

Posted by 행진

2008/11/10 15:10 2008/11/10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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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MB정부의 계속되는 사유화/시장화 방안,

낭떠러지로의 무한질주를 멈춰라!


 
2mb정권, "이제 시장화˙사유화는 대세다"

    이명박은 747을 운운하며 경제성장의 공언(空言)을 내뱉던 후보자 시절부터 ‘공기업 혁신’이라는 명분의 공공부문 구조조정을 한국 사회 경제 살리기의 해법으로 제시해왔다. 최근 3차 선진화 방안을 발표하면서는 경제위기에 따른 국민적 불안감을 적극 동원하며 더 이상 “공기업을 방만하게 운영하며 국고를 낭비할 수 없다”는 식의 공격을 통해 각종 사유화/시장화 정책과 대량 구조조정을 정당화 시키고 있다. 국민을 생각한다는 야당 일부에서 정부 정책에 대립각을 세우고 있긴 하지만, 주요 주장들을 살펴보면 오히려 더 공격적인 구조조정을 주문하거나 한-미FTA와 같은 연계 현안 등 기본적으로 뜻을 같이하고 있을 뿐이다.


신자유주의의 완성을 위하여!
                       
                     - mb가 그리는 화룡점정의 전략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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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발표된 3차 선진화 방안에 따르면 안산도시개발 등 10개 기관은 민영화하고 가스공사와 방송광고공사는 경쟁체제를 도입하게 된다. 천연가스 수입과 도매시장에는 한국가스공사 외에도 2010년부터 민간기업의 참여를 허용하고 코레일 자회사 등 7개 기관을 3개로 통합하는 등 30개 기관의 경영효율화를 추진한다고 한다.

     이미 1차 선진화 방안의 발표를 통해 알려졌듯이, 금융 공기업과 공적자금 투입 기업에 대한 대대적인 민영화 계획을 통해 지주회사로의 전환을 꾀하고 있는 재벌들에 대해 특혜지원을 퍼부으며 금융 빅뱅을 시도한바 있다. 선진화 방안이 표방하는 것은 한-미 FTA와 마찬가지로 금산분리완화/출자총액 제한 폐지 등에 이어 남한사회에서 금융세계화로의 깊숙한 편입을 목적으로 한 명실공히 신자유주의의 ‘완성’을 위한 후속조치인 것이다.

 

전기, 수도, 교육비… 누구를 위하여 값을 올리나?

     지배계급은 그들이 수렁에 빠질 때 마다 ‘고통분담’이라는 말로 위기 비용을 민중들에게 전가해왔듯이, 이명박 정부 들어 추진된 선진화 방안으로 고통 받는 것은 보통 서민들일 수밖에 없다. 가뜩이나 경제 파탄으로 가계마다 산더미 같은 부채를 안게 되고, 더욱 삶의 질이 하향화 되는 속에 공공부문 사유화와 시장화가 가져다줄 결과는 명약관화하다.

      촛불정국을 거치며 민영화 계획이 없다고 발표했던 것과 달리 이후 정부는 지속적으로 물 산업 육성정책을 추진해오고 있다. 물 산업 육성이라는 명목으로 상수도 민간 위탁이 추진되면서 최근 <수돗물 페트병입 판매를 위한 수도법 개정>이 입법 예고되었다. 전경련의 규제개혁 요구의 일환을 추진되는 이 법을 시작으로 대기업이 본격적으로 ‘물’로 장사를 하게 되는 것이다. 또 쉬쉬하는 속에 국민의 질병정보를 금융위원회가 열람할 수 있도록 하는 <보험업법 개정안>이 입법 예고되며 의료민영화를 위한 사전작업이 일사천리로 정비되고 있다. 에너지나 의료민영화는 물론, 최근 국제중 설립 등으로 논란이 되고 있는 교육부문에 있어서도 신자유주의적 재편은 가속화되고 있다. 광범위한 사유화/시장화의 흐름은 민중들로부터 생존의 최소한인 공공재로의 접근을 멀어지게 하는 동시에, 대규모 인력 구조조정 등과 엮여 노동권의 박탈 역시 진행될 수밖에 없다. 정년을 보장하는 대신 일정 연령 이후 급료를 삭감하는 ‘임금 피크제’도 너르게 도입될 전망도 관측되고 있다. 그야말로 저들의 실패로 말미암은 경제 위기의 고통이 민중들에게 더할 수 없는 고통으로 되돌아오는 지금, 생존의 벼랑에서 노동자 민중이 버텨내기 위해서는 이명박 정부가 포기하지 않고 추진하는 사유화/시장화 완성 로드맵에 강력한 브레이크를 걸어야만 한다.

 

 

Posted by 행진

2008/11/10 15:04 2008/11/10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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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부문 사유화/시장화에 맞선

사람답게 살 권리!

노동자의 이름으로 요구하고 쟁취하자!


 

민주노총이 ‘총력 결의 투쟁’을 약속한 양치기 소년?

정부는 촛불의 역풍이 불기 시작하자 민영화를 하지 않겠다던 말을 금세 바꿔 민영화 대신 ‘선진화’라며 기만적인 공세를 펼쳐오고 있다. 3차까지 발표된 공기업 선진화 방안과 최근 추진되는 물/에너지 분야를 본격적으로 시장에 편입시키기 위한 작업이 착수되면서 이를 저지하기 위한 노동․사회단체들의 발 빠른 대응이 요구되고 있는 시점이다.

 하지만 지난 상반기에 민주노총의 <신자유주의 공공부문 시장화/사유화 반대와 사회공공성 강화를 위한 국민연대> 제안을 시민단체가 외면하며 연대체 결성이 좌초 된 것을 시작으로 , “하반기 총력투쟁”을 벌여보겠다는 비장한 결의가 무색하게도 노동자 운동은 이렇다 할 움직임을 만들어 내지 못했다. 올해 정부의 구조조정 정책 등에 브레이크를 걸기위해 내걸었던 파업 투쟁 선언이 공문구가 되고, ‘사회공공성 지킴이’라는 캠페인 격의 사업 역시 안타깝게도 이렇다 할 파급력 없이 끝났다. 올해 투쟁에 대한 평가에서 논의해볼만한 많은 쟁점이 있지만, 확실한 것은 IMF 이후 소위 ‘공공성 투쟁’이 답습해왔던 한계에 우리가 아직도 여전히 몸을 담그고 있음이 목격됐다는 것이다.


‘공공성’ 투쟁- 필패의 전략은 이제 그만!


 “어떻게 국가가 국민들의 건강을 사고팝니까!”라고 촛불의 시민들이 분노했다. 보통은 국가가 어느 정도 중립적인 외관을 띄면서 공공영역을 제공함이 마땅하다는 인식들이 있고, 최근 추진되는 공기업 민영화에 대한 분노도 바로 국가가 이러한 역할을 포기했다는데서 연유하곤 한다. 하지만 사실 국가가 국민들의 일반이익(?)을 대변하는 경우가 어디 흔한가? 아니 유사 이래로 ‘공공성’이란 게 존재한 적이 있기나 했는가? 자본주의 국가에서 공공부문이 등장하게 된 배경은 어디까지나 착취를 재생산하고 불만을 잠재우는데 기여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는 점을 반드시 상기 해야만 한다. 사람답게 살기 위해 보장될 최소한의 영역이기도 하지만, 자본주의 체제 유지의 방편으로 포섭된 ‘공공부문’의 ‘두 가지 모순적인 측면’을 고려치 못한다면 끊임없이 지배세력의 전략에 연루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지금까지 노동자들이 생존을 요구하며 벌인 투쟁은 마치 ‘보통 시민’들의 이해와 충돌하는 것 인 양 호도 되고, 공공 부문 투쟁 역시 ‘철밥통’의 집단이기주의로 매도당하기 일쑤였다. 하지만 우리 노동운동이 지난 10년 동안 벌여온 ‘공공성 투쟁’을 자성해보면 운동 외부의 공격과 별개로 실천적으로는 구조조정에 맞서 일자리를 ‘방어’하기 위한 투쟁에만 매몰되기도 했다. 이러한 한계들을 겸허히 짚고 반성하며 지금 사유화/시장화에 맞서는 투쟁의 의미를 명확히 해야만 한다.

일각의 주장과 같이 금융기관을 국유화한다고 경제 위기가 사라질리 만무하듯이, 노동자/민중이 실질적으로 공적 시스템들을 통제할 수 없다면 공공부문을 누가 소유하든 어떻게 사회화하든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시장화/사유화 저지 투쟁은 결코 한 두 번의 투쟁으로 단박에 쟁취 할 수 없는, 사람답게 살 제반의 권리,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합당하게 행사할 수 있어야 함을 요구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공공성’으로 뭉뚱그려지는 ‘사회 복지 확충’급의 요구에 우리의 투쟁을 가두는 것이 아니라, 단 한 번도 노동자의 편에 선 적이 없는 ‘국가’에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광범위한 연대투쟁을 통한 노동자-민중의 권력을 만들어 가는 것만이 마침내 이 투쟁의 답일 수밖에 없다.

초유의 민생파탄 경제파탄!

신자유주의의 엔딩에서 노동자들이 나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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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가 뭐래도 지금의 물/에너지/의료/교육 등의 시장화/사유화가 인간으로써 누려야 할 기본적인 권리를 더욱 삭감할 수밖에 없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일관되게 신자유주의를 추종해온 개혁 세력도 ‘공공성’을 제 이름처럼 들먹이는 지금의 현실에서 우리는 ‘공공성 쟁취’만을 지상 목표로 삼는 것을 넘어, 신자유주의 체제가 더욱 잇속을 밝히며 민생 파탄의 정책을 노골적으로 밀어붙이는 것에 맞서는 구체적인 민중의 삶의 요구들을 말해야 한다. 그들이 밝히는 ‘신자유주의 세계화’라는 전망이 민중들의 교육받을 권리, 돈 없어도 사회 서비스를 제공받을 권리, 생태를 파괴하지 않고 에너지를 이용할 있는 권리를 모조리 빼앗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말해야 하는 것이다.

초유의 경제 위기, 그리고 이명박이 벌이는 촛불에 대한 복수, 그리고 그 앞에 선 전례 없이 취약해진 우리의 노동자 운동. 이것들이 지시하는 바는 무엇인가? 이때다 하며 이명박 정부가 우리에게 한없이 뒷걸음질 치기를 요구하는 정세 속에서 총파업 허언(虛言)으로 얼마나 위기를 미룰 수 있을 것인가? 시장화-사유화 저지에 맞서 권리를 쟁취하는 투쟁들을 당장 내 일자리와 무관한 그저 ‘좋은 말’들로 남겨 둘 것인가? 지금에 있어 공공부문 시장화/사유화 저지 투쟁은 경제위기를 버텨내야 하는 지배계급이, 그리고 민생 파탄 속에 절박해진 생존의 요구가 부딪힐 수밖에 없는 두 계급의 화해할 수 없는 접점이 될 수밖에 없다. 지난 30년간 지배계급이 몰두해온 한국 사회의 신자유주의 재편에 마침내 종지부를 찍으려는 이명박의 엄지손을 꺾을 수 있는 힘은 사업장을 넘어선 우리 노동자들의 단결된 투쟁뿐이다!

Posted by 행진

2008/11/10 15:00 2008/11/10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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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노동자를

경제위기의 희생양 삼지 말라!


지난 9월 청와대에서 열린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 회의에서 법무부는 ‘비전문외국인력정책 개선방안’(이하 개선방안)을 발표하였다. 이 개선방안에는 고용주들의 불편 사항을 개선해주는 한편, 5년 이내에 체류외국인의 10% 이내로 ‘불법체류자’를 줄이고 권리를 대폭 침해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일 년 내내 단속추방, 삭감되는 임금

9.25 법무부 출입국·외국인 정책본부 보도자료에 따르면 정부는 법무부, 경찰, 노동부, 해경 등으로 구성된 합동단속반을 가동하여 이주노동자 밀집지역을 단속하고, 특히 이주노동자 노동조합에 속해 있는 사람들을 물색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또한 2004년부터 시행되고 있는 고용허가제를 더욱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이주노동자들이 사업장을 이동하지 못하도록 규제 △숙련된 인력을 활용하기 위해 고용주들이 근로계약기간을 결정 △수습기간을 늘려(현행 3개월) 임금을 삭감하고 기숙사비, 식사비용 등을 노동자 부담으로 변경 △한국어 시험 외에 추가 시험제도 도입 △의무사항이던 각종 보험을 임의로 들게 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증가하는 이주노동자, 그러나 심해지는 통제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통제가 강화되는 것은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국제노동기구(ILO)는 세계적 경기침체로 내년 말까지 2천만 개의 직업이 사라지고 하루에 1~2달러 이하로 살아가는 '일하는 빈곤층(working poor)'도 증가할 것이라 예측했다. 유럽연합(EU) 재계 단체인 '비즈니스유럽'도 내년 유럽에서 100만 명 이상이 직업을 잃을 것이라 내다보았다. 경제위기를 타개하려는 정책들은 특히 주변국의 경제를 망가뜨리고 실업률 증가 등으로 각국 서민들에게 고통이 돌아가기 때문에, 경제위기가 계속 될수록 직장을 구하지 못하고 외국을 전전하다가 미등록 노동자가 되는 인구는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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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는 80년대 후반부터 동남아 등지에서 ‘코리안드림’을 품고 이주한 이주노동자들을 저임금・無권리로 활용해왔다. 정부의 방치 아래 계속된 체불임금과 살인적인 노동환경은, 산업연수생 제도 등으로 한국에 온 노동자들이 사업장을 이탈하는 원인이 되었다. 그리하여 ‘미등록’ 처지가 된 노동자들을 한국경제는 암암리에 활용해 온 것이다. 정부는 음지에 있는 ‘불법체류자’들을 양지로 끌어올리기 위해 합리적인 정책을 세우겠다고 했지만, 2004년 고용허가제가 시행된 이후 이주노동자들의 현실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과로로 쓰러져도 사업주가 동의하지 않으면 여전히 직장을 옮길 수가 없고, 노동자에게 근로계약을 해지할 권리도 보장되지 않는다. 이주노동자에게 돌아가는 임금이 너무 많다며 최저임금 10% 감액 적용 기간을 늘리고, 기숙사비와 식대를 본인 부담으로 돌리겠다는 정책은 벼룩의 간을 빼먹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출입국관리소에서는 여전히 야만적인 단속을 자행하고 있고, 잡혀간 노동자들은 제대로 치료도 받을 수 없는 빽빽한 ‘보호소’에 갇혀 있다가 강제출국 당한다.

각국 정부와 국회는 왜곡된 세계경제를 바로잡을 능력이 없다. 또한 경제위기가 심화될수록 적당한 일자리를 찾을 수 없어 이주노동자들은 지속적으로 증가하는데, 그/녀들의 권리를 보장해줄 수도 없다. 하기에 미국, 일본, 독일, 영국, 프랑스에서도 한국과 비슷한 추세로 이주노동자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고 있다. 세상 모든 것을 ‘투기의 대상’으로 만들며 세계 경제를 지탱하고 있는 자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성(性), 인종 등의 차이를 근거로 노동자들을 분할하고, 비용을 전가하는 것이다. 바로 여기에, 이주노동자에게 범죄자 이미지를 덧씌우고 그들이 잠재적인 사회적 위험인 것처럼 선전하는 정부의 의도가 숨어 있다. 주식의 시세차익을 바라보고 들어온 외국인투자자는 환대하고, 이주여성들은 한국사회에서 ‘순종적인 며느리, 아내, 엄마’가 되는 조건 하에서만 인정하며, 정직하게 노동해 온 이주노동자들을 홀대하는 외국인력 정책은 당장 중단되어야 한다.

노동자의 가장 강력한 무기_ 연대!

정부는 그간 ‘불법체류자’의 증가가 국내 노동시장을 왜곡시키고 각종 사회·문화적 갈등을 유발하여 합리적인 외국인정책 수행을 어렵게 하고, 불법 외국인노조가 체류합법화를 요구하며 한-미 FTA체결 반대, 이라크 파병반대 등 정치적 집회에까지 참여하는 심각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리하여 정부는 지도부를 3차례 표적단속 하였고, 고등법원도 인정한 이주노동자 노동조합을 불법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정부는 이주노동자가 스스로 발언하고, 한국 노동자들과 연대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 경제위기의 책임을 전가 받고 단결할 기회를 빼앗기고 있는 이주노동자들과 함께 투쟁하는 것은, 민중들의 가장 강력한 무기인 ‘연대’를 몸소 보여주는 일이다.


위기에 맞서 연대로, 이렇게 투쟁합시다!

▸우리의 권리가 소중하다면, 함께 살아가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의 권리도 소중합니다.

▸영장도 없이 무단으로 침입하여 끌고 가는 출입국관리소 단속반에 의해 이주노동자들이 비

인간적으로 내쫓기고 있습니다. 출입국관리법이 개악되는 것에 반대합시다.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의 전면 합법화를 쟁취합시다.

▸보다 많은 이주노동자들이 노동조합에 함께 할 수 있게 하고, 이주노동자 노동조합의 합법

화를 쟁취합시다.

▸이주여성에게 가해지는 성폭력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그녀들과 함께 여성의 노동에 대한 권

리, 몸에 대한 권리를 주장합시다.

 




Posted by 행진

2008/11/10 14:55 2008/11/10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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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건리를 無Gun里(총이 없는 마을)로!


무건리를 無Gun里(총이 없는 마을)로!


 

평택, 그리고 무건리

지난 2006년 우리는 ‘여명의 황새울’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된, 극단적인 국가의 폭력을 목격했었다. 동아시아 안보를 지킨다며 전쟁기지를 확장하려는 시도는, 대추리의 기억이 채 가시기도 전에 다시 나타나고 있다. 2006년 국방부는 파주의 무건리와 오현리 일대에 703만평의 땅을 매수하겠다고 발표하고, 2009년까지 부지매입을 완료하겠다고 통보하였다. 이미 무건리와 오현리의 주민들은 1980년 파주에 350만평 규모의 무건리 훈련장이 설치되며, 그 곳에 살던 직천리 79세대 300여명, 무건리 150세대 550여명이 삶의 터전에서 쫓겨났다. 그 이후에는 주민들의 생활 공간에 포탄이 날아와 터지기도 하고, 훈련이 실시되는 기간에는 대규모 전차가 마을도로로 이동하기도 했다. 2002년 6월 13일에 발생한 故신효순, 심미선 장갑차 압사사건도 무건리 훈련장에서 훈련을 마치고 이동 중이던 미군 궤도차량에 의해 일어난 것이다. 2005년 2월 26일에는 훈련 중인 미군 아파치헬기 1대가 추락하는 사건이 나기도 했다.

  이런 사건들로 인해 주민들은 농지 훼손ㆍ농작물 파손ㆍ가축유산 등의 피해를 겪었지만, 국방부에서는 어떤 대책마련이나 보상도 없었다. 오히려 이들은 다시 한 번 강제로 쫓겨날 위험에 처해있다. 2007년에 들어 국방부는 되려 협의매수에 응하지 않은 주민들을 협박하기 위해 매수한 농지를 파괴하고 노골적으로 주민들의 영농을 방해하기도 하였고, 심지어 상수도까지 파괴하는 파렴치한 행위를 저질렀다. 국방부는 무건리와 오현리 일대의 토지에 대해 토지감정

사용자 삽입 이미지
평가를 강제적으로 진행하며, 그 부지에 포함된 주민들의 땅을 강제로 수용하기 위한 첫 번째 수순을 진행하였다. 9월 16일 경찰은 이러한 일방적인 감정평가에 항의하는 주민들 7명을 폭력적으로 연행하고, 파주경찰서 앞에 모여 연행자의 석방을 평화적으로 요구하던 주민과 사회단체 회원들 28명마저 불법 연행하였다. 그리고 18일에는 주민 3명과 김종일 무건리 공대위 집행위원장 등에게 구속영장을 신청하였다. 현재 주민들과 활동가들은 무건리에 대한 감정평가를 저지하는 투쟁을 진행하고 있다.

 

미국의 대 동아시아 전략

 

현재 미국이 전쟁기지를 확장하려고 하는 것은, 세계 각지의 분쟁과 소요에 맞서 신속하게 군대 등을 투입한다는 것이 목적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신속 기동군’을 통해 세계 각지에서 ‘윈-윈’전략을 취하겠다는 것은, 전 세계적으로 심화되고 있는 경제 위기 속에서 미국의 헤게모니를 지키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이것이 2008년 몰락한 것으로 증명되는 금융세계화를 마지막으로 부여잡으려는 발버둥에 다름 아니며, 달러자금을 환류하는 지역으로서 동아시아에 대한 통치성을 지키기 위함이다. 따라서 전쟁기지를 확장하며 미국의 헤게모니와 금융세계화를 지키려고 시도하는 것은, 장작을 지고 불섶에 들어가는 행위일 따름이다. 이런 의미에서 현재의 문제는 결코 해당 지역의 주민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전 세계적으로 지배계급들이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방식은 각종 경제조치를 명목으로 민중들을 수탈하는 것과 함께, 계속되는 전쟁의 위협과 공포를 통해 자신들의 패권을 유지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전 세계적인 전쟁과 현재 우리가 겪는 폭력들은, 무건리 참극의 원인과 한 치도 다르지 않다. 안보와 경제성장이라는 명목으로 민중들의 지식과 사상의 자유를 침해하고, 첨단장비를 동원하며 폭력적으로 집회를 가로막는 것, 건설경기 부양이라는 명목으로 서울 한복판에 용역깡패를 투입하여 주민들이 사는 집을 철거하는 것.. 이 모든 것들은 대추리의 그리고 무건리의 다른 모습들이다.



동아시아에서의 불안정성 증폭

이러한 가운데 전쟁과 테러는 우리에게 일상적인 위협이 되어가고 있다. 특히 동아시아 지역은 미국의 헤게모니가 무너지는 가운데, 정치적-군사적 불안정성이 더욱 커질 가능성 또한 존재한다. 예컨대, 동아시아에서의 수출달러를 환류시키는 방식으로 미국의 재정적 불안정성을 지탱해 왔던 지금까지의 방식이 금융위기의 본격화 속에서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을지, 이것이 미국에 선행하는 동아시아에서의 경제적 불안정성을 가져오지 않을지에 대한 고민이 진행되어야 한다. 특히, 동아시아 차원에서의 반전투쟁의 공동의 경험이 사실상 거의 미비하다는 차원에서 봤을 때, 한-미, 미-일 간의 경제적․군사적 동맹이 가져 올 파괴적 효과는 어떤 방식으로든 폭발할 가능성이 상존해 있다는 경각심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처럼 일상적인 전쟁의 위협은 생존 자체를 파괴하는 것으로, 전쟁의 이유로 드는 ‘경제성장ㆍ안보ㆍ국가경쟁’자체가 사라지는 상황이다. 게다가 이것은 전 세계 민중들에게 닥쳐온 위협이며, 무건리의 투쟁이 노동자-민중 모두의 문제인 이유는 여기에 있다. 특히, 남한과 일본이 공히 민중운동의 심대한 침체일로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는 상황을 인지하자. 그럴수록 이에 맞선 대안은 반전과 평화주의를 통해, 무건리 투쟁에 연대하고 신자유주의의 군사세계화에 맞서는 근본적이면서도 구체적인 전략을 ‘현실화’시키는 것이다. 특히 공동으로 전쟁의 참화에 휩싸일 수 있는 동아시아 지역 안에서, 반전-반핵을 매개로 평화를 지키는 투쟁을 만들어야 한다. 이런 길만이 우리가 계속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길, 무건리를 진정으로 무기 없는 마을(無Gun里)로 만드는 길이다!!


 

Posted by 행진

2008/11/10 14:50 2008/11/10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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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특호]2009 학생회 선거 의의와 목표

  2009 학생회 선거 의의와 목표

 

0.들어가며

2009년 하반기, 미국발 금융위기를 시작으로 신자유주의 금융화 정책의 모순이 전 세계적으로 폭발하고 있다. 끝을 가늠할 수 없는 금융 위기는 현재 빠르게 실물경제로까지 파급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지배계급은 위기의 책임을 놓고 끊임없이 이전투구하기에 바쁘고, 그럴수록 대중들은 자신의 삶을 해결하지 못하는 정치 일반에 대한 환멸과 무관심을 갖게 된다. 문제는 이러한 지배정치의 위기가 정치 일반의 위기로 확산된다는 것인데, 체제를 변혁하기 위한 ‘운동’ 역시도 대중들에게 세상을 바꾸기 위한 하나의 대안으로 받아들여지기보다는 지배정치와 별반 다를 것 없는 것으로 치부된다. 우리는 경제/정치/운동의 위기 속에서 학생운동 역시 대중과 융합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어떻게 바꿔낼 것인가? 우선 현재 학생운동이 서 있는 조건을 면밀하게 분석하고, 그간의 학생회운동에 대한 평가를 바탕으로 학생운동/학생회 운동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개조’를 시작해야한다. 09년 학생회 선거는 붕괴된 대중운동의 기반을 다시 세우기 위한, 대학인들의 삶을 자기계발이 아닌 자기통치로 이끌기 위한 학생운동의 혁신을 지체 없이 단행하는 장(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09년 학생회 선거를 통해서 구체적으로 무엇을 개조하고 무엇을 혁신할 것인가?

첫째로 우리는 학생회라는 공간을 어떻게 대중운동의 경로로, 대안세계화 운동의 거점으로 만들 것인가에 대한 ‘계획’을 세워야 한다. 그리고 이는 금융화에 대한 비판을 전면화하고, 대중교육을 비판하면서 지식에 대한 민중의 권리를 옹호하고, 페미니즘을 저항의 언어로 재구성하자는 등 신자유주의 비판을 더욱 구체화할 때 가능하다. 우리는 09년 학생회 선거를 통해서 신자유주의 비판을 구체화하고 이를 대중적으로 외화하기 위한 선거활동, 그리고 대중정책을 통해 '집단적 자기 통치'를 실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학생회'를 올바르게 세우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기울어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학생회라는 공간이 대안세계화 운동의 이념, 그에 입각한 정세분석(대중이데올로기 분석), 그에 잘 대응할 수 있는 조직체계를 갖도록 개조해야한다. 학생운동을 포함한 전체운동의 위기 속에서 각 운동들은 독자적으로 구조화되어 상호 영향력을 발휘하기 힘든 상황에 처해 있고, 대중운동 없는 대중조직의 분열은 위기를 심화시키고 있다. 지금은 기존의 운동 구조/양식을 뛰어넘을 수 있는 새로운 '주체화 경로'를 발굴해야 하는 시급한 상황인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대안세계화운동의 주체형성에 가장 중요한 물적 토대로서 '지역'을 사고하고, 지역에 기반한 사회운동의 활성화를 통해 전체 운동을 혁신해 나가야 한다.

셋째로 우리는 학생회라는 공간을 민주주의를 학습하고 훈련하는 장으로 복원해야 한다. 신자유주의적 사회재편 과정이 만들어내는 폭력과 기본적 권리의 박탈에 맞서 분절화-개별화 되어 있는 대중, 그/녀들간의 상호갈등과 적대로 표상되는 대학사회에서 대학 내 제 구성원들이 보편적 권리를 쟁취하고 삶의 위기를 극복하기위한 직접행동에 나서기 위해서는 그/녀들간의 차이, 적대, 갈등을 넘어 자율과 공존, 연대의 원리를 강화하고 다수가 공동의 합의를 이끌어내는 책임 있는 논쟁과 의사소통의 과정을 담보해내는 것이 필요하다. 따라서 우리는 09년 학생회 선거를 통해서, 무너진 정치적 지반을 복구하고 민주주의를 학습하는 장으로써 학생회를 만들어 나가자!

1. 학생운동의 조건을 확인하자
  1-1. 지금은 어떤 시기인가?
  1-2. 학생대중이데올로기 분석

2. 09년 학생회 선거, 학생운동의 개조를 위한 실험의 장으로!
  2-1. 대중정책으로 대중운동의 경로를 만들어내자!
  2-2. '학생회 운동'을 지역에 기반한 사회운동으로 개조하자!
  2-3. 학생회를 민주주의 학습의 장으로 만들어가자!

3. 09년 학생회선거의 의의와 목표
 
3-1. 학생회선거의 의의
  3-2. 정치적 목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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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행진

2008/10/30 18:35 2008/10/30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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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특호]2009 학생회선거 총론


 2009 학생회선거 총론



프롤로그 : 2008년을 돌아보다

# 2MB 정권 첫 해

경제성장이라는 부푼 꿈을 안고 이명박 정권이 출범했다. 인수위 시절부터 한반도 대운하와 영어 몰입교육으로 시끄러웠지만, 경제성장이라는 대의 앞에 이명박은 굴하지 않았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사태로 인한 위기는 전 세계로 확산됐다. 갈 곳 잃은 투기자본이 몰린 덕에 곡물가와 유가는 폭등했다. 한국도 이를 비껴나지는 못했다. 라면, 우유, 과자 등의 가격이 폭등하는 것을 시작으로, 민중들은 경제위기의 한파를 온몸으로 느꼈다. 그럼에도 경제 대통령 이명박은 여전히 장밋빛 미래를 포기하지 않았고, 당초의 경제성장률 목표를 7%에서 6%로 낙관적으로 다잡았다. 서민경제를 위해 물가를 잡겠다며 50여 개의 생필품 관리품목을 발표했지만, 한편으로는 공기업 민영화와 학교 자율화, 의료보험 민영화, 금산분리법 완화 등의 정책을 추진했다. 이는 이명박 정부의 ‘경제성장’이 ‘비지니스 프렌들리’라는 기조대로 기업과 자본을 위한 것이지, 민중들을 위한 것이 아님을 명확하게 보여줬다.

이랜드, 기륭, 코스콤 등 더 이상 물러설 곳도 없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은 계속됐지만, 이명박은 탄압과 폭력으로 답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절박한 심정으로 세운 천막은 공권력에 의해 수시로 철거당했고, 故이철복 열사는 사측의 구타로 사망했고, 비인간적인 단속에 쫓기던 이주노동자는 두 다리가 부러졌다.

그렇게 민중들을 내몰았지만, 애초에 그/녀들의 탓이 아니었기에 경제위기는 극복될 수 없었다. 이명박 정권은 어떻게 해서든 활로를 뚫어야 했다. 한-미 FTA를 조속히 추진하기 위해, 국민들의 건강과 안전을 팔아 넘기는 협상을 감행한다. ‘광우병위험통제국’인 미국에서 연령 제한을 풀고, 뼈까지 포함하여 쇠고기가 수입된다.

 

# 뿔난 시민들, 광장에서 촛불을 들다

청계천에 촛불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소라 광장에는 급식으로 나올 미국산 쇠고기를 먹기 싫다는 여중생, 정부의 정책 때문에 아침밥도 못 먹고 0교시부터 야자까지 학교에서 답답해하던 여고생, 치솟는 등록금과 실업률에 불안한 대학생, 광우병에 불안하고 의료민영화에 더 불안한 노동자, 도무지 서민을 염두에 두지 않는 2MB가 원망스러운 자영업자들이 모였다.

정부는 ‘광우병은 괴담’이라고 일축했고, 뿔난 국민들은 ‘끝장을 보자’며 계속해서 거리로 뛰쳐나왔다. 광장에 뛰쳐나온 시민들의 목소리가 너무나 많아서 잘 들리지 않았는지, 정부는 ‘배후세력이 있다.’ ‘광우병이 발생하면 수입을 중단하겠다.’는 동문서답만을 내놓았다.

보름이 넘게 광장에서 촛불이 타올랐지만, 정부는 꿈쩍하지 않았고, 마침내 촛불들은 이명박을 만나야겠다고 폴리스라인을 벗어나 거리로 나섰다. 정부는 본질을 드러냈다. 시민들에게 물대포, 곤봉이 날아왔다. 촛불은 급속도로 번졌다. 대학생, 주부, 종교인, 노동자들이 합세했고 ‘대운하 반대’ ‘의료 민영화 반대’ 등 보다 많은 구호들이 광장에서 거리에서 울려 퍼졌다. 촛불은 꺼지지 않고 계속 타올라, 100회가 넘게 계속되었다. 정부는 물산업지원법 입법 예고를 유보하는 등 시장화/사유화 조치들에 일정 제동을 건 것처럼 보였다.

 

# 2MB의 반격

이명박은 ‘아침이슬’을 들으며 어떻게 촛불을 흩뜨리고 자신의 계획을 추진할 것인지 생각했던 것 같다. 정부의 정책 방향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공기업 선진화’라고 이름을 바꿔 사유화/시장화 계획을 진행하고, 비정규악법을 확대 시행하고, 한미 FTA 비준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공정택의 당선에 힘입어 일제고사, 국제중 설립, 자립형 사립고 등의 교육 정책도 추진되었고, 경기활성화를 위해 부동산에 대한 규제가 풀렸다.

그와 동시에 촛불들에 대한 대대적인 ‘반격’이 시작되었다. ‘사회주의노동자연합(사노련)’의 사무실, 자택을 압수․수색하고, 참여연대, 환경연합의 압수․수색에 이어 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 간부를 국보법 위반으로 구속했다. 언론 통제․장악이라는 비난에도 불구하고 PD수첩에 대한 수사가 이뤄지고, KBS 사장 임명에 반대했던 직원들은 좌천되었다. YTN도 마찬가지이다. 시위대 진압을 위한 캡사이신 분사기가 보급되어 사실상 최루액이 부활했다는 논란이 일어났다. 한나라당은 집단소송제와 사이버모욕죄를 신설하였다.

 

# 불안에 잠식당한 시대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파생상품의 그물망을 타고 세계 곳곳으로 퍼져나가고 있다. 미국 정부는 7000억 달러를 투입하여 사태를 진정시키려 하고 있으나, 꼬리에 꼬리를 문 파생상품들 덕에 피해 금액이 산출조차 되지 않는 상황이다. 실물경제에까지 영향을 미치면서 미국에서는 정리해고 바람이 분다고 한다. 코스피 지수가 1000을 붕괴하고, 개미투자자들은 엄청난 손해를 보았다. 옆집 누구네 펀드가 반토막 났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환율과 코스피는 한때 만났다가 점점 멀어지고 있다. 상황이 이런데, 정부는 계속해서 국민연금을 풀어 주식을 사들이고 있다.

 

# 누가 답을 갖고 있는가?

한 때 이명박은 국내 경제와 증시가 호전될 것이라는 자신의 믿음을 강하게 표현했다. 그러나 금융세계화에 동참하여 경제를 발전시키겠다는 이명박의 구상은 갈수록 불투명해지고 있다. 한나라당 박희태 대표는 "금고와 장롱 속 달러 내놓는 것이 애국"이라면서 IMF때의 사기극을 떠올리게 했고, 한나라당 의원들은 '외화통장 만들기'운동을 제안했다. 한국은행은 금융시장 불안이 국내 경기 둔화를 더 가속시킬 수 있다며 금리 0.75% 포인트를 대폭 인하했지만, 피부로 느껴지는 불안을 없애주지 않는다. 상대적으로 안전하다는 CMA, 미국에 맞설 수 있는 경제권이라는 브릭스 등이 거론되고 있지만, 그 나물에 그 밥이다.

국민들이 경제위기에 허덕이는 사이에 진행된 국정감사는 더 큰 환멸을 안겨주었다. 한 해 열심히 씨 뿌리고 농산물을 기르는 농민들에게 돌아가야 할 쌀 직불금이 고위공직자와 부동산업자들에게 돌아갔다고 한다. IMF 이후 10년 동안 신자유주의 개혁에 앞장섰던 자들이 이명박과 다른 양 거드름을 피우고 있고, 이명박 뒤에 줄 서 있는 자들은 ‘잃어버린 10년을 되찾겠다’면서 정말로 시계를 10녀 뒤로 돌리는 것 같다.

지금, 그 누구도 현 시기를 극복할 수 있는 대답을 가지고 있지 않다. 정부와 언론이 내놓는 대책은 변죽만 울릴 뿐이다. 어느 정치인이, 어느 경제학자가 답을 내려줄 것을 기대하며, 불안한 미래에 나의 오늘을 내맡길 순 없다.


. 2008년 금융위기는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가? 극복할 수 있는가?
 
1. 2008년 금융위기는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가? 극복할 수 있는가?
 
2. 2008년, 우리는 촛불을 어떻게 기억하는가
  3. 미래는 오직 현실을 직시하는 우리에게 달려있다

. 실천전략
 
1. 2009년 금융위기에 대해 집단적으로 분석, 토론하는 학생회를 건설하자!
     - 경제위기의 원인이 무엇인지 알자!

  2. 각종 분할에 맞서 '연대'로 생동하는 학생회를 건설하자!
     - 금융화를 떠받치는 교육을 비판하고, 민중의 지식권을 쟁취하자!
     - 끝없이 불안한 미래, 불안정노동과 빈곤에 맞서자!
     - 여성인력활용전략의 허구성을 밝히고 진짜 페미니즘을 발언하자!

  3. 진정한 민주주의에 한 걸음 다가가는 학생회!

[한대련 비판]: 다극화 시대 경제블록 형성, 남북경협은 탈출구가 될 수 있는가?

 

>>글 전문을 보시려면 첨부파일을 다운로드 받으세요.

Posted by 행진

2008/10/30 18:26 2008/10/30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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