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호] 재생산의 위기, 그리고 여성의 삶

우리는 자본주의가 야기하는 모순에 주목한다. 신자유주의를 반대하고, 한미FTA를 비판한다. 그런데 자본주의 체제에 비판적이라는 소위 ‘진보적’이라는 사람들조차 종종 간과하는 부분이 있다. 그것은 바로, 모든 생산양식의 배후에 있는 ‘사회적 노동력의 재생산영역’이다.

자본주의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노동력’이라는 특수한 상품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봉건제에서 자본주의로 이행하면서, 많은 사회구성원들은 노예/농노제의 ‘인격적 예속’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 하지만 여기서 ‘자유롭다’는 것은 이중의 의미를 지닌다. 즉 ‘법적’으로 자유로운 동시에 ‘생산수단으로부터’도 자유로운 것이다. 생산수단으로부터 자유롭기 때문에, 노동자들은 먹고 살기 위해서 생산수단을 소유한 사람들(즉 자본가)에게 자신의 노동력 상품을 판매해야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만이 비로소 노동을 할 수 있다. 그리하여 그 노동에 대한 대가(즉 임금)을 받는다. 그리고 그 돈으로 의식주와 관계된 상품들을 구입하고,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여기서 노동자들이 노동을 하면서 생산한 가치와, 자신의 노동력 상품을 판매함으로써 받은 대가 사이에는 ‘근원적인 격차’가 존재한다. 그것이 바로 자본주의적 착취의 원천인 ‘잉여가치’이다. 여기까지가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에 대한 고전적인 해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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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여기에 또 하나의 착취의 장소가 있다. 그것이 바로 종종 비가시적인 영역으로 치부되는 ‘자본주의적 재생산양식’ 영역이다. 노동력 상품은 한 번 쓰고 버리는 소모품이 아니다. 그것은 계속해서 ‘재생산’되어야 한다. 즉 음식물을 충분히 섭취하고 잠을 충분히 자야 한다. 또 어린 시절부터 끊임없이 양육되어야 하며, 교육받아야 하며, 보살핌을 받아야 하고, 아프면 병간호를 받아야 한다. 그리고 참혹한 노동현장에서 받은 정신적 스트레스를 해소할 기회를 가져야 한다. 바로 이러한 재생산 과정이 이루어지는 곳이 ‘자본주의적 재생산영역’이며, 그것을 전담하는 사람들이 바로 가정주부들, 즉 여성들인 것이다. 그리고 역사적으로, 여성들의 이러한 재생산노동은 어머니로서, 아내로서 당연히 해야 하는 것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에, 그 노동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도 못했을 뿐더러 충분한 대가를 받지도 못해왔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또 다른 착취의 메커니즘이다.

자본주의적 생산관계는 위와 같이 ‘상품의 생산과정’‘노동인구의 사회적 재생산 과정’ 사이의 ‘분리’를 전제로 한다. 전자의 장소가 공장/사업장이라면, 후자의 장소가 바로 가정인 것이다. 이러한 분리는 여성들만이 가지는 고유한 생계적 불안정성, 경제적 종속, 성별 분업을 야기한다.

사실 과거 농업사회는 이와는 다른 모습을 띠었다. 즉, 생산과 재생산이 거의 같은 장소에서 이루어졌던 것이다. 물론 이 때도 성별 분업과 관련된 갈등이 존재하였지만, 가정과 작업장 사이에서 지금과 같은 뚜렷한 구별은 없었다. 하지만 자본주의에 들어와, 생산과 재생산은 별개의 영역으로 분할된다. 그리고 이에 따라 “임금노동”과 “무임금 가사노동”으로 노동 또한 이분화된다.

이러한 재생산노동, 즉 무임금 가사노동은 자본축적에서 막대한 영역을 차지한다. 예를 들면, UNDP의 1995년 인간개발보고서를 보면 1993년 세계경제에서 여성들의 가구노동의 가치는 11조 달러에 달했다고 한다. (물론 이 가치가 제대로 평가받은 적은 없다.) 따라서 여성들의 재생산노동을 ‘통제’하는 것은 자본과 국가에게 사활적인 일이 된다. 특히 ‘출산’이나 ‘정서적인 보살핌(care)'은 노동의 재생산과정에서 필수적인 요소이기 때문에, 여성의 육체와 감정은 특히 강력하고 특수한 사회적 억압에 의해 통제되었다. 그리고 이를 위해 역사적으로 엄청난 이데올로기적/물리적 폭력이 가해졌다.

다들 ‘인클로저 운동’이라는 것에 대해서 들어봤을 것이다. 큰 이윤을 남길 수 있는 양모의 생산을 늘리고자, 많은 귀족과 지주들은 소작인들을 모두 쫓아내고 농토를 목축지로 바꾸었다. 인클로저 정책으로 인해 많은 농부들이 선대부터 살던 고향을 떠나 객지로 떠돌게 되었고, ‘생산수단으로부터 자유롭게’ 되었다. 이것은 프롤레타리아가 태동한 역사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렇듯 ‘노동력 상품’이라는 존재는 아주 폭력적인 방식을 통해 형성되었다. 그렇다면, ‘무임금 재생산노동자’는 어떠한 역사 속에서 형성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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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보면, 국가는 이미 15,16세기부터 인구,육체,섹슈얼리티,결혼,가족 등에 주목하고 그것들을 통제하려 했다고 한다. 그러한 통제 과정의 폭력성을 가장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바로 과거 유럽 전역의 ‘마녀사냥’이다. 출산/낙태/피임에 관한 지식에 관심을 기울인 여성들, 남편에게 반역한 여성들, 결혼을 거부하고 혼외정사를 한 여성들은 모두 마녀로 낙인찍히고 종교재판을 통해 고문, 처형당했다.

이러한 통제가 이루어진 주요 장소는 역시 ‘가족’이다. 우리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가족을 비판할 수 있다. 가족은 전 민중의 ‘사회적 연대’를 ‘사적 유대’로 대체하고 사회의 지배이데올로기를 구성원들에게 교육시키는 장소이다. 동시에 여성들의 성별 분업, 그리고 성차별적 이데올로기의 생산이 근원적으로 시작되는 곳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를 변혁하기 위해서는 가족을 변혁해야 한다. 반면 지배계급으로서는 가족이라는 이름의 국가장치를 지키는 것이 관건적인 일이다. 단적인 예로, 20세기 복지국가는 가족의 역할을 강화하려는 캠페인을 대대적으로 진행하였다. 이러한 캠페인은 가사노동을 가족과 민족을 위한 사랑의 노동으로 상징시켜냈다. 국가는 사회 서비스를 통해 가내 서비스를 위한 표준을 설정하고자 하였고, 가정에 들어가 주부의 가사노동을 직접 훈련시키고 통제할 목적으로 사회사업가의 네트워크를 창설하였다. 이 시기에 들어 가계를 위한 건강 소책자들이 널리 유통되었고, 보건 관료들은 가사노동의 질을 체크하도록 요구받았다.

기계화/도시화가 가속화되면서, 생산과 재생산은 이제 완전히 별개의 영역으로 확립된다. (‘공장’과 ‘가정’이라는 형태로…) 그리하여 여성들 입장에서는 ‘임금노동’과 ‘재생산노동’을 조화시키는 것이 더욱 어려워졌다. 여성들은 점차 노동시장에서 퇴출되어 육아와 가사를 담당하게 되었다. 그리고 생계를 위해 남성 가계부양자에게 경제적으로 더욱 종속되었다. 막대한 양의 가사노동과 자발적인 사랑의 노동이 여성에게 요구되었다. 그리고 가정 내의 종속적 관계로 인해 종종 발생하는 가정폭력은 ‘가족의 프라이버시’라는 베일 속에서 개인적 문제로 간주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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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 재생산영역의 메커니즘을 간략하게 살펴보았다. 이제 자본의 위기 속에서 재생산이 어떻게 위기에 처하게 되는지, 그리고 그것은 여성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살펴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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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우리가 ‘재생산의 위기’라 부르는 것은 다른 말로 하면 ‘핵가족의 위기’이다. 20세기 미국 헤게모니 아래에서 노동자계급에까지 보편화되었던 ‘아메리카적 핵가족’이, 자본주의의 구조적 위기 속에서 덩달아 위기에 처한 것이다.

20세기의 지배적인 가족 형태인 ‘아메리카적 핵가족’ 형태는 과거의 ‘영국적 빅토리아 가족’을 대체하면서 태동하였다. 아메리카적 핵가족을 지탱하는 주요 요소로는 크게 두 가지를 들 수 있다.

첫 번째는 바로 ‘가족임금(family wage)’이다.(핵가족의 물질적 토대) 남성 가계부양자가 가족 구성원들 전체를 먹여살릴 수 있는 임금분(즉 가족임금)을 받는 대신 여성은 가사일과 소비에만 전념하는 것이 바로 ‘가족임금’으로 유지되는 핵가족의 형태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크게 떠올라 수십 년 동안 잠깐 황금기를 누린) 미국 자본주의 체제는, ‘넉넉하지는 않지만 부족하지도 않은’ 가족임금 협약을 노동자계급에까지 대대적으로 제안하였다. 그리고 대다수의 노동자들도 이를 적극 받아들였다. “여성들이 노동시장에서 철수하면 노동 공급이 감소할 것이다. 그리하여 가장들의 임금이 인상될 것이다. 이는 여성들을 참혹한 노동현장으로부터 ‘보호’할 수도 있을 것이다.”라는 식의 논리 때문이었다. 가족임금은 현장에서 싸워온 여성노동자들을 가정주부로 전화시켰다. 가족임금은 노동자운동의 전반적인 쇠퇴와 개량화를 이야기함에 있어서도 빼놓을 수 없는 화두이다.

두 번째 주요요소는 ‘동반자적 결혼(companionate marriage)’이라는 개념이다.(핵가족의 이데올로기적 토대) 쉽게 말해, 빅토리아 가족에서 일반적이었던 『오만과 편견』 식의 ‘성장소설 연애결혼’에서 헐리우드 영화 식의 ‘데이트 결혼’으로 사랑과 결혼의 형태가 변화한 것이다. 이는 ‘1차 性혁명’에 따른 것이다. 빅토리아 시대의 性이 뭔가 엄숙하고 함부로 말할 수 없는 존재였던 것에 반해, 새로운 性혁명은 구애 행위(‘자동차데이트’를 한 번 떠올려보길)와 성적 친밀성을 새롭게 정의하였다. 물론 이는 성을 일부일처식 결혼제도로부터 완전히 해방시킨 것은 아니었다. 1차 성혁명은 가부작정 권력의 중심축을 아버지로부터 남자친구·남편으로 이동시켰다.

아메리카 핵가족은 2차 대전 이후 자본주의의 황금기 속에서 전성기를 맞이한다. ‘마이 홈’, ‘마이 카’로 상징되는 이른바 ‘아메리칸 드림’이 만인의 꿈으로 자리잡게 된다. 하지만 황금기가 끝난 후, 70년대부터 미국 자본주의의 구조적 위기와 이윤율의 저하가 다시 시작하면서 앞에서 서술한 두 가지 주요요소들이 모두 위기를 맞게 된다. 그리하여 ‘재생산의 위기’, ‘핵가족의 위기’가 시작된다.

그 위기의 양상을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일단 첫 번째 요소인 ‘가족임금’이 해체된다. 자본축적의 위기 속에서 남성 1인이 가족구성원 모두를 위한 생활임금을 획득하는 것이 실질적으로 불가능해진다. 신자유주의가 야기하는 ‘고용 없는 성장’과 ‘노동의 불안정화’, ‘빈곤의 극심화’ 속에서 이제 대다수 여성들이 노동시장에서 일을 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게 되었다.

‘2차 성혁명’의 개시로 두 번째 요소인 ‘1차 성혁명’이 해체된다. 1차 성혁명이 결혼/출산/육아의 의미를 ‘낭만적 사랑’으로 재구성한데 비해, 2차 성혁명은 아예 결혼·출산과 性을 완전히 분리시킨다. 피임 기술의 발달로 인해 “성교 = 출산”이라는 등식이 깨졌고, 여러 가지 사회적·문화적 변화 속에서 섹슈얼리티(sexuality)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었다. 바야흐로 ‘성해방’의 시대가 도래하였다. (1990년대 이후의 남한의 모습이 이 시기 미국의 모습과 흡사하다.) 하지만 2차 성혁명이 야기한 ‘성해방’은 여성에게 진정으로 해방적인 측면으로만 작용한 것은 아니었다. ‘성해방’을 빌미로 해서 여성의 성을 상품화하는 흐름이 소비문화의 붐을 타고 범람했으며, 성적 자유주의(Free Sexism)에 따른 남성들의 교묘한 성적 착취 또한 증가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성해방은 여성에게 해방적인가 억압적인가”가 이 시기 페미니즘의 중심적인 이슈였다.

이상이 ‘핵가족의 위기’ 현상이 나타난 배경이다. 물론 재생산의 장소인 가족이 흔들리는 것을 지배계급이 가만히 두고 볼리는 없을 것이다. 그리하여 신자유주의가 만개한 이후, 가족이데올로기를 강화하는 ‘가족의 재발견’ 식의 수사들이 난무하게 된다. 현재 한국에서도 정부는 틈만 나면 ‘저출산’을 언급하면서 가족을 지키자고, 사회를 위해 애를 낳자고 호소하고 있지 않는가? 신자유주의로 인한 빈곤의 극심화 속에서, 쇠퇴하는 사회적 유대를 ‘사생활’과 ‘사적 유대’로 보충하고, 또 재생산과정을 다시금 통제하는 데에는, 역시 ‘가족을 강화하는 것’만큼 좋은 방법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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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가족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지배계급의 전략 속에서 고통받는 것은 역시 여성들이다. 현재 ‘핵가족의 위기’ 속에서 여성들은 딜레마에 직면해있다. 신자유주의로 인해 가족임금이 보장되지 않는 상황에서, 여성들은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임금노동자가 되어야 한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가족임금의 보장 여부와 상관없이) 여전히 뿌리깊은 가족임금 ‘이데올로기’로 인해 여성의 노동은 항상 ‘부수적’인 것, 즉 남성생계부양자의 노동에 대한 ‘보충물’로 간주된다. 이는 여성들을 저임금·장시간노동의 늪에 빠뜨린다. 이렇게 여성들의 노동시장 진출은 여차해서 늘어나지만, 육아와 가사부담이 여성의 책임이라는 이데올로기는 또 크게 변화하지 않는다! (이것이 가장 큰 딜레마이다.)

‘가족의 위기’라고 해서 또 다시 과거의 가족으로 돌아가자는 말은 당연히 아닐 것이다. 결국 문제의 핵심은 자본주의 생산양식과 재생산양식 모두에서 차별받고 착취받는 여성들의 삶이라고 했을 때, 이 양자의 관계를 재구조화하면서 여성의 삶 전반을 보다 해방적인 방향으로 변화시키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현재의 체제는 여성들을 ‘최후의 복지 제공자(last welfare-provider)’로 여기면서, 무임금 재생산 노동자인 여성들의 착취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실제로 여성들은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에 따르는 부담을 전가받는 ‘충격 흡수자(shock absorber)’의 위치에 처해 있다. 구조조정으로 인해 감소한 가계 소득을 보충하기 위해 여성들은 자신의 소비를 줄이고 노동을 더 많이 해야 한다. 또 사회복지가 감소하고 교육, 의료와 같은 서비스가 민영화됨에 따라, 그녀들은 자신의 재생산노동(간병·보육 등 보살핌노동을 포함한 가사노동 전반)을 끊임없이 증가시켜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가사노동 부담의 증가는, 여성들의 가사 외 노동을 ’비정규직‘ 혹은 ’비공식적 고용형태‘로 더욱 주변화할 수밖에 없다.(즉 가정주부라는 이유로 또 노동시장에서 차별받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악순환에 또 악순환이 거듭된다.

물론 이러한 출혈적 착취에는 한계가 있다. 현재 끊임없이 진행되는 구조조정은, 여성이 제공하는 재생산노동이 무한히 ‘탄력적’인 것으로 가정한다. 그리고 여성에게 인내할 수 없는 수준의 노동을 끊임없이 요구한다. 이는 결국 재생산노동의 기반 자체를 붕괴시킬 것이다. 현재의 ‘젠더편향적’인 신자유주의적 발전모델은 결코 지속가능하지 않다!

그 동안 재생산영역은 비가시적인 노동이 이루어지는 영역으로 치부되면서 그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다. 이 영역은 무임금 노동이 무한하게 탄력적으로 이루어지는, 대표적인 착취의 영역이었다. 이제 생산과 재생산 사이의 상호연관성을 충분히 인지하면서, 여성들의 삶을 제약하는 조건 전반을 변혁해나가야 한다. 이는 신자유주의의 야만에 맞서 평등-자유-연대의 대안세계를 건설하겠다는 우리의 지향을 이루기 위한, 가장 관건적인 과제이다.

재생산노동과 가족에 대한 고려 없이 여성들의 노동권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캐롤 페이트만이 정식화한 것처럼 ‘울스턴크래프트의 딜레마’, 즉 ‘평등과 보호의 딜레마’에 빠질 수밖에 없다. 여성들은 남성들과 평등하게 되기 위해 자신의 재생산노동을 은폐하거나, 아니면 그것에 대한 보호를 요구해야 한다. 즉 그녀들은 노동시장에서의 형식적 평등을 추구하면서 수퍼우먼이 되거나, 아니면 ‘파트타임직’과 같은 보호조치들을 받아들여서 노동시장에서 주변화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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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페미니스트로서, 여성의 일을 비가시화하는 현 체제에 맞서 ‘사회적 재생산’에 대한 관점을 강하게 견지해야 한다. 그리고 여성권을 쟁취해나가야 한다. 지금도 한미 FTA 등 신자유주의의 폭력이 여성들의 인간다운 삶을 박탈해가고 있다. 대다수의 여성들이 비정규직으로 전락하고, 사회서비스의 유실과 출혈적 구조조정에 따른 ‘충격흡수자’의 역할을 강요받는 상황에서, 사회를 변혁하고 여성해방을 쟁취해나간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투쟁하는 여성들이 있기에, 우리는 좌절하지 않는다. ‘정치에 대한 권리’, ‘투쟁할 수 있는 권리’야말로 인간이 누릴 수 있는 가장 존엄한 권리이자, 모든 사회변혁의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여성해방을 향한 대장정’은 결코 나중으로 미룰 수 없는 현재의 가장 중요한 과제이다. 여성의 목소리로, 그녀들의 투쟁으로, 세상을 바꾸자!

Posted by 행진

2006/10/13 14:00 2006/10/13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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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 세계화와 맞서기


미국 헤게모니가 처음으로 위기에 처했던 1970년 이후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가 현재까지 지속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자본 축적의 위기를 생산과 고용이 아닌 금융적 팽창으로 해결하려 하는 금융세계화는 IMF, 세계은행, GATT 등 국제 금융,무역기구들은 자본의 초민족화를 각국에 강요하면서 금융자본의 영역을 일국차원을 넘어서게 하는데 큰 역할을 하게 된다. 이같은 과정에서 기존의 좌파정당과 노조는 선거정치와 코포라티즘에 매몰되면서 제대로 된 대응은커녕 포섭되거나 오히려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선봉장이 되기도 하는 아이러니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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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WTO가 더욱 강력하게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추동하기 위해 나타나면서 대안세계화 운동이 맹아를 보이기 시작한다. 대안세계화 운동은 세계화에 대해 배타적인 자국산업보호주의와 어설프게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교정하려 한 ‘인간의 얼굴을 한 세계화’의 한계에서 벗어난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파괴적인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대항하여, 대안을 세계화하기 위한 다양한 운동을 다양한 공간에서 펼치고자 하는 대안세계화 운동. 그 대안세계화 운동이 어떻게 펼쳐지고 있는지를 살펴보도록 하자.

대안세계화 운동의 맹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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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세계화운동의 맹아가 된 사건을 들자면,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가 발효된 날인 1994년 1월 1일에 멕시코의 치아빠스 지역에서 봉기한 싸빠띠스따 민족해방군의 투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NAFTA로 인해 멕시코 혁명이후 80년 이상을 지속해온 토지공유테를 초국적 자본들의 토지 이용을 용이하게 하려는 이유로 폐지하여 주민들의 생존과 자치를 위해 봉기했던 것이었다. 이들은 멕시코 정부로 인해 고립되는 것을 막기 위해 자신들의 투쟁을 인터넷으로 세계에 알려내었다. 아래로부터의 투쟁을 강조하는 이들의 투쟁은 무기력하게 세계화에 휩쓸려가던 세계의 운동진영에 커다란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이후 이들은 자신들의 근거지에서 국제적인 회합을 개최, 세계 곳곳에서 벌어진 신자유주의 반대투쟁들을 매개하는 데 큰 기여를 했으며, 여전히도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이후 이러한 흐름은 1998년 OECD가 추진한 다자간투자협정(MAI)에 대한 전세계적인 공동행동으로 이어졌다. 단기성 투기까지도 투자의 권리로 인정하는 등 초국적 자본에 무한한 권리를 부여하려던 이 시도는 전세계적인 사회운동의 저항에 직면하여 결국 무산되는 크나큰 성과를 얻게 된다.

이러한 경험은 1999년 WTO의 활동범위를 대폭 확대시키는 뉴라운드의 출범을 무산시켜낸 ‘시애틀 전투’로 이어졌다. 목표, 위상 등 동일하다고 할 수 없는 다양한 단위들의 직접행동이 뉴라운드를 무산시킨 것이다. 이러한 직접행동은 이후 프라하, 제노바 등에서도 이어졌다.

세계사회포럼


시애틀 투쟁은 큰 성과를 남겼지만 해결해야할 여러 문제들을 안고 있었다. WTO에 반대한다는 점에서 비슷하게 보였던 시애틀 투쟁의 내부에는 신자유주의 자체에 반대하는 각국의 사회운동가들도 있었고, 중국이 WTO에 가입하게 되면 자신들의 임금 등 노동조건이 악화될 것이라는 예상하여 투쟁에 나섰던 미국노총(AFL-CIO)도 있었으며, 단지 ‘미국 중심’의 세계화에 반대하는 제3세계의 농민들과 노동자들도 있었다. 기본적으로 각자가 신자유주의에 대한 상이한 판단을 가지고 있는 조건 속에서 새로운 세계화의 전망과 이를 위한 운동이 안정적으로 보장될 수는 없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시애틀 투쟁의 성과는 자본의 세계화에 반대하는 ‘또 다른 세계’를 가능하게 하는 대안을 토론하기 위한 ‘세계사회포럼’의 결성으로 이어졌고, 결국 2001년 첫 번째 세계사회포럼이 브라질에서 개최되었다.

이렇게 시작한 세계사회포럼은 참여자들의 구성, 조직화 방식과 형태, 주요 이슈 등 모든 측면에서 그 이전의 국제적 운동들과 다른 특징을 보였다. 세계사회포럼은 정당이나 노조 등 기존에 있었던 모든 유형의 운동들도 참여했고, 지방-지역-민족-초민족적 형태로 결성된 집단들도 포함되었다. 또한 이 모두를 총괄하고 지도하는 상부단위를 만들지 않고 활동을 벌여나갔으며, 중심부 국가와 주변부 국가의운동이 결합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여성, 이주자, 노동, 반전 등 서로 다른 문제들이 하나의 모순으로 환원되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운동들이 서로 다른 운동들과의 결합 속에서 자신의 실천과 사고방식을 변화시켜나가는 방향으로 전체운동의 수평적 교류를 실험했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새로운 운동의 원리는 전 세계 사회운동이 ‘세계사회포럼 호소문’을 통해 신자유주의 세계화 속에서 ‘모든 인민들의 권리’를 지키기 위한 ‘요구목록’을 재작성하는 원칙들을 살펴보는 과정에서 확인할 수 있다. 세계사회포럼에서는 1) 상호배제적인 권리가 아니라 상호증식적인 권리, 2) 따라서 보편화(확장)될 수 있으며, 3) 인문들의 자율적인 운동을 통해 쟁취될 수 잇는 권리라는 원칙 속에서 모든 인민들의 권리가 재작성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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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회포럼은 기존의 운동이 신자유주의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저항의 보편성, 새로운 저항의 주체를 형성하지 못했던 한계를 넘어, 신자유주의에 대한 저항을 국제적인 수준에서 보편적인 언어와 행동으로 정식화하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커다란 의의를 지닌다. 한편, 현재 세계사회포럼에서는 단순히 운동의 전망과 입장에 대한 토론과 공유, 즉 말 그대로 ‘포럼’에서 더욱 전진하여 보다 적극적인 형태의 투쟁을 벌여낼 방안 등을 중심으로 자기발전을 꾀하고 있다. 또한 올해에는 3대륙 (라틴아메리카-베네수엘라, 아프리카-말리, 아시아-파키스탄) 에서의 잇따른 개최를 통해 보다 활발한 교류와 논의를 전개하고 있다.

유럽의 대안세계화 운동


유럽연합을 출범시킨 마스트리히트조약, 유럽연합을 확대하려는 암스테르담조약(1997)·니스조약(2000)에 이어 2004년 회원국 정상들이 그 초안에 서명한 헌법조약은 유럽연합을 지지하는 다양한 조직들을 단일화하고 체계화하여 신자유주의적 금융세계화를 제도적으로 공고화하려는 데 주된 목적이 있었다. 게다가 유럽연합은 입법권과 집행권을 모두 기술관료집단인 각료평의회와 집행위원회가 장악한 반면 유럽의회는 실제로 자문기관에 불과하여 ‘민주주의의 결핍’이 드러났다. 무엇보다 유럽헌법조약은 유럽의 시민들이 직접 선출한 제헌의회에 의해 제정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헌법’일 수 없었다. 또 유럽중앙은행이 완전한 독립성을 보장받고 유럽경제인회의와 같은 초민족자본가단체가 막후에서 영향력을 행사한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우위가 명시됨으로써 유럽의 외교정책에 대한 미국의 지배가 보장된다.

한편 유럽헌법조약에서 제시되는 ‘시민권’의 내용도 지극히 제한적인 것이었다. 조약에 따르면 노동자의 기본권은 노사정 협약에 의해 크게 제약되고 피임·낙태·이혼과 같은 여성의 기본권도 카톨릭의 권위에 의해 제약된다. 특히 유럽연합의 시민은 회원국의 국적을 지닌 자로 한정됨으로써 유럽 이외 국가 출신의 이주자를 배제하고 있다.

경제위기와 그에 뒤이은 유럽통합은 결과적으로 전후 호황기에 구축된 노동 안정성과 사회복지 모델의 쇠퇴를 의미했다. 이러한 ‘사회적 민족국가’의 위기 속에서 한정된 일자리와 복지 서비스를 종족 공동체의 성원에 국한하여 배분함으로써 위기의 충격을 완화하고 낙후된 삶의 질을 회복해야 한다는 요지의 인민주의적 선동이 가세하면서 이주자에 대한 배제와 폭력이 점증한다. 프랑스 민족전선, 이탈리아 북부동맹, 오스트리아 자유당 등 극우정당은 이민 반대나 유럽연합 반대와 같이 인종주의와 인민주의적 반세계화 논리를 동원하여 세계화와 유럽연합으로 인해 피해가 가장 극심한 하층 노동자와 청년실업층으로부터 광범위한 지지를 얻고 있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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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금융거래과세시민연합>(ATTAC)이나 <공산주의재건당>(PRC)과 같이 대안세계화 운동을 추동하는 핵심적 사회운동들은 유럽헌법조약에 반대하여 ‘대안적 유럽’을 주창하며 노동권과 여성권을 핵심으로 시민권을 재구성하려는 시도를 광범하게 조직하고 있다. <금융거래과세시민연합>은 금융세계화에 대한 발본적 이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인식하게 시민교육운동을 자신의 주된 과제로 천명하는 한편 정당이나 노조의 사회운동적 개조, 사회운동적 마르크스주의의 부흥에 복무함으로써 오늘날 유럽에서 대안세계화 운동의 진원이 되고 있다. 공산주의재건당은 ‘자율적이고 동시에 세계에 개방된 유럽, 자본주의적 세계화와는 다른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모델을 가진 유럽’을 주창하며 노동자운동과 페미니즘과의 결합, 정당의 사회운동적 개조를 이러한 전망 속에서 구현하고 있다. 이들이 주축이 된 유럽의 사회운동들은 2004년 10월에 열린 유럽사회포럼에서 채택한 사회운동 호소문을 통해 유럽헌법조약이 구현하고자 하는 유럽에 명백히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러한 흐름은 유럽통합의 신자유주의적인 기획인 유럽헌법조약 체결시도에 맞선 투쟁을 조직하는데 큰힘이 되었으며 네덜란드와 프랑스에서 유럽헌법조약의 부결이라는 결과를 이끌기도 했다.

남미의 대안세계화 운동


1990년대 후반부터 촉발되기 시작한 라틴아메리카의 새로운 사회운동은 기존 정당과 노동조합이 선거정치에 매몰되거나 코포라티즘을 수용하면서 대중운동을 분할하는 상황을 극복하고 신자유주의적 금융-군사 세계화에 정면으로 맞서는 한편, 다양하게 분출하고 있는 사회운동 간의 연대를 강화하고자 했다. 이들은 지난 해 11월 아르헨티나 마르 델 플라타에서 열린 미주정상회의에 즈음하여 ‘미주지역자유무역협정(FTAA)’ 체결 논의를 중단시켰는데, 당시 차베스 대통령은 정상회의장 안팎에서 ‘미주대륙을 위한 볼리바리안 대안(ALBA)’을 주장한 바 있다. 물론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정권을 비롯한 역내 좌파 정권의 미래는 ‘무적의 제국’으로서 자신의 권력과 ‘신자유주의 정책의 비가역성’이라는 신화를 유지하기 위한 미국의 간섭과 자본의 초민족화라는 구조적·객관적 조건에 의해 크게 제약된다. 실제로 FTAA 협상 타결 실패 이후 미국은 하위-지역 협정을 병행 추진하며 경제통합을 시도 중이다. 도미니카공화국-중앙아메리카-미국 자유무역협정(DR-CAFTA)을 법제화하고 파나마와 여타 안데스 3개 국가들과 양자간 자유무역협정을 추진 중이다. 한편 역내에서 미국의 전략적 파트너인 브라질은 남미공동시장(MercoSur) 8개 회원국을 확대 규합한데 이어 2004년 10월에는 안데스공동체(CAN)와 정치·경제 협정을 수립했다. 또 2004년 12월에는 총 12개국이 남미공동체(SACN)를 결성하는데 합의했다. 이에 거의 대부분의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은 자주적인 경제정책을 실용할 수 없음을 인식하고, 미국·브라질과 협상중이거나 모종의 협정에 가입하고 있다. 따라서 ALBA가 실질적으로 역내 국가들에 끼치게 될 영향력이 얼마나 클지는 미지수다.

그러나 라틴 아메리카의 새로운 사회운동들은 최근 들어 각 국에서 좌파 정권이 줄을 이어 등장하고 있는 현상이 남미 대륙에서 폭발하고 있는 자유무역, 군사주의, 사유화 정책에 반대하고, 자연자원과 식량주권을 지켜내기 위한 사회운동의 흐름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선언했다. 또 ‘좌파 정권에 대한 정치적 자율성’과 ‘각국 정부가 신자유주의를 수용하지 않도록 압박’하는 것을 재천명하며 대안적 지역통합의 노력을 구체화하고 있다. 특히 미주사회동맹이 제출한 ‘미주대륙을 위한 대안’은 차베스 대통령이 제시한 ALBA와 최근 볼리비아 모랄레스 대통령이 발의한 인민무역협정(TPC)에도 참조되었다. 라틴아메리카 사회운동들은 ALBA 협정이 ‘아래로부터의 참여’를 바탕으로 한다는 취지와 다르게 각 국 정상들이 주도하는 협정이라는 점에서 한계를 지적하지만 신자유주의에 바탕을 둔 미국 주도의 FTAA가 아닌 다른 형태의 지역적인 교류의 가능성을 이러한 시도를 통해 제시하며 FTAA 반대 투쟁을 조직하는데 이를 활용하고 있다.

대안세계화 운동을 만들어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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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맞서 각각의 운동들이 민중적 대안을 만들어가기 위해 관계를 맺으면서 활동해나가는 대안세계화운동은 앞으로도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이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한미FTA와 평택미군기지 확장 등의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를 고착화하기 위한 시도에 맞서서 어떻게 운동을 해나갈 것인가가 바로 이와 관련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전국학생행진(준) 역시 자신의 공간, 영역에서 다양한 단위들과 민중적 대안을 만들기 위한 교육과 그에 기반한 구체적 실천들이 바로 우리가 만들어 나가는 대안세계화의 모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Posted by 행진

2006/10/13 13:50 2006/10/13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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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호] FTA, 금융세계화, 한국경제

노무현 정권은 한미 FTA 체결이 ‘수출증대’와 ‘외국인 투자 증대’를 가져올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하여 한국 경제의 위기를 극복하고 민생경제를 다시 살려낼 것이라고 역설한다. 하지만 과연 그렇게 될까? 물론 우리의 대답은 부정적이다. 이 글은 정부의 논리를 비판하면서 금융의 세계화가 한국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간략하게 살피게 될 것이다.

사실 굳이 정교하게 논리를 펼치지 않더라도, 즉 이제까지의 ‘경험’에 기초해 생각해봤을 때도 FTA는 대안이 될 수 없다. 미국과 NAFTA를 체결한 멕시코가 어떻게 되었는지를 봐도 이는 분명하다. 또 IMF 협약 이후 한국 경제가 살아났는가?

과거 김대중 정권은 한국 경제가 ‘IMF 조기졸업’에 성공했다면 자신의 개혁을 자랑하기에 급급했다. 하지만 그것은 기업매각, 금융개방, 그리고 (소위 ‘벤처붐’을 타고 잠깐 빛을 발한) 정보통신 분야에 대한 대대적인 투기성 투자가 만든, 그야말로 일시적 효과일 뿐이었다. 그렇다면 그것의 대가는 무엇이었는가? 그 일시적인 효과를 위해, 김대중은 한국 경제를 금융세계화에 깊숙이 편입시켰다. 하지만 이렇게 해서 한국 경제에 유입된 초민족 금융자본은 한국 경제의 종속성과 불안정성을 더욱 극단적으로 심화시킨다. 그리고 소위 ‘주주의 권리’를 행사하면서 온갖 반민중적 정리해고/구조조정/불안정노동化를 추동해내고, 이로써 엄청난 이윤을 누린다. 하지만 이러다가도 한국 경제 내에서의 수익성이 떨어질 기미가 보이면 거침없이 한국 경제 밖으로 빠져나온다. 이러한 자본유출로 인해 한국 경제는 궁극적으로 파국에 치닫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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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이 바로 금융세계화의 원리에 대한 요약 설명이다. 이제 이것을 보다 구체화하면서, FTA를 옹호하는 정부의 논리를 하나하나 반박해보기로 하자.

너무나도 진부한, ‘수출증대’ 논리


WTO개방을 옹호할 때마다, 쌀개방의 필연성을 설파할 때마다, 정부의 논리는 한결같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수출주도형 제조업으로 먹고산 나라이기 때문에, 쇄국정책을 고수하지 않고 세계 흐름의 대세에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쌀과 같은 것을 조금 양보하더라도, 대신 자동차나 TV를 많이 팔아 외화를 벌자는 것이다. 이 논리는 너무나도 진부하면서도, 그리고 단순하면서도, 또 너무 자명하여 논쟁을 ‘봉합’하는 효과를 불러온다.

하지만 금융자본의 동학에 주목할 때, 우리는 정부가 계속 강조하는 ‘비교우위’ 논리 - 농업을 양보하는 대신 자동차를 미국에 수출하기 - 가 얼마나 시대착오적인지 알 수 있다.

사실 정부의 논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더라도 이미 한미FTA는 대단히 해학적이다. 농업에서 피해가 생긴다는 것은 정부도 사실 어느 정도 인정하는 것이고 다만 제조업에서 대미 수출이 증가할 것이라는 것이 정부가 자신있게 제시하는 근거인데, 여러 가지 통계는 이조차도 ‘근거 없는 낙관’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설령 관세를 철폐해서 미국시장 진입이 좀 용이해진다고 해도 이미 미국의 수입관세는 불과 2~3%에 그친다. 따라서 이를 철폐한다 하더라도 그 효과는 미미할 것이다. 반면 미국보다 높은 국내 관세가 철폐된다면 미국 제품의 국내시장 경쟁력은 보다 강화될 것이다. 제품별로 차이가 있긴 하지만 자동차의 경우만 봐도 FTA 이후 한국에 유리한 결과가 낳을 것이라 장담하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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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여기서는 농업은 어떻고, 제조업은 어떻고 등 분야별 손익계산을 따지는 이런 식의 논의를 지양할 것이다. 대신 여기서는 보다 본질적인 비판을 가하고자 한다. 즉 초민족적 금융자본 주도의 신자유주의 속에서, 이미 ‘수출경제’라는 말 자체가 ‘형용모순’인 것이다! IMF 프로그램으로 한국 경제가 금융자유화된 이후, 현재 한국 경제는 외국계 초민족적 금융자본이 지배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들은 주식의 매입을 통해 회사의 실질적인 막후 지배자로 자리잡는다. 특히 김대중 때의 공기업 사유화 및 해외매각 정책으로 인해, 거대 핵심 공기업의 주식 또한 외국계 초민족자본이 대거 장악하고 있다. 이는 더 이상 ‘민족자본’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수출이 아무리 증가해도, 그것이 일국 경제상의 성장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예컨대 IMF 위기 이후 구조조정이라는 극약처방을 내리고 환율을 대거 평가절하하면서 제조업의 수출이 잠깐 증가하기도 하였지만, 이 시기에도 경제성장률(GDP)는 여전히 저조했다. 이미 초민족자본이 수출부문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상황에서, 수출증가는 내수 소비 및 투자로 연결되지 않는다.

분배 악화와 빈곤 심화


신자유주의와 FTA가 야기하는 노동자들의 권리 파괴 또한 금융자본의 동학과 연결지을 때 그 본질을 더 잘 파악할 수 있다. 흔히들 신자유주의 속에서 이루어지는 정리해고/비정규직化를 두고 노동자들 임금이 몇 푼이나 된다고 사람들을 그렇게 무지막지하게 자르나?”라는 의문을 가질 만하다. 하지만 주주들(즉 금융자본가들)의 주요 목적은 노동자의 임금 몇 푼을 절약하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다. 끊임없이 몸살을 줄이고 구조조정(downsizing)하는 그 ‘과정’ 자체만으로도 주식의 가치를 일시적으로 반등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즉 “허리띠를 잠시만 졸라매자,”라는 약속은 영구적인 구조조정을 정당화하기 위한 거짓말일 가능성이 높다. 금융자본가들의 투기적 이윤 속에서 민중들은 최소한의 삶의 권리를 박탈당하고 있다.

경제를 분석함에 있어서, 우리는 (주식과 외환시장이 주요 무대인) ‘금융 영역’과 ‘실물경제 영역’을 일정 부분 분리해서 사고할 필요가 있다. 뉴스를 보면 항상 말미에 주가 변동 일일보고가 나온다. 그것도 일기예보와 함께 연달아 나오는데, 사람들을 이를 보면서 주가가 한 나라 경제의 중추를 이루는 아주 핵심적인 수치라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하곤 한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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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의 본질을 ‘성장과 고용·분배’라고 간단하게 설정해보자. 이렇게 봤을 때 금융영역의 성장과 주가의 상승이 실물경제의 활성화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정부는 한미FTA를 통해 더욱 더 규제벽을 낮추고 투자를 유치하려 한다. 하지만 이렇게 해서 유입되는 해외자본 중 단지 5%만이 생산자본으로 투입된다. 나머지 대부분을 이루은 초민족적 금융자본은 공장을 지어 상품을 생산하고 고용을 창출하는 것에 전혀 관심이 없다. 이들은 새롭게 산업을 형성하는 것보다는 기존의 기업들을 인수·합병(M&A)하는 것을 더 선호한다. 이는 주식시장에서의 초과이윤을 창출하는 주요 수단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투기를 위한 자본이 엄청나게 넘나드는 동안, 정작 일자리는 오히려 줄어들고 가난한 사람들은 더욱 늘어나는 그런 역설적 상황이 도래하게 된다. ‘고용 없는 성장'과 ‘빈부의 양극화’가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의 특징임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한미FTA가 이러한 경향을 극단으로 밀어붙일 것은 자명하다.

소위 '재벌 개혁'에 대해


김대중 때 신자유주의 개혁이 힘을 얻은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재벌개혁’에 대한 기대였다. 물론 이는 허구적이었다. 현실에서는 재벌의 폐해라 불려졌던 독점적 성격이 없어지지도 않았던 것이다. 초민족 금융자본에게 중요한 것은 개혁이 아니라 어쨌던 이윤이며, 초민족 금융자본은 그것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할 것이다. 실제로, 금융화 속에서 대우와 같이 공중분해되고 여기저기 팔린 것도 있는 반면, 상위 몇 개 그룹은 오히려 이전보다 독점적 성격이 강화되었다. 재벌들 사이에서 광범위한 인수·합병, 즉 ‘빅딜’이 이루어졌고 그것을 지탱하기 위해 밑빠진 독에 물을 붓는 양 엄청난 공적 자금이 투입되었다. 그런데 앞에서 언급했듯, 기업을 인수·합병하면 그 기업의 상장 가치가 치솟기 마련이며 여기서 이익을 얻는 것은 주주권을 가진 초민족적 금융자본들이다. 민중들이 그 부담을 감내하는 동안, 금융자본들은 너무나 위험한 ‘돈놓고 돈먹기’를 하는 것이다.

물론 신자유주의의 전세계적 추세와 한국 재벌의 속성 사이에는 분명 ‘긴장감’이 있다. 그래서 재벌의 투명성 이야기가 종종 나오는 것인데, 이는 어디까지나 ‘자본 내부의 헤게모니 다툼’일 뿐이다. 재벌개혁의 핵심은 재벌의 족벌적 연계를 끊고 재벌을 금융세계화에 걸맞게 법인자본으로 전화시키자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개혁의 최대 수혜자는 초민족적 금융자본일 뿐이다. 법인자본의 핵심은 소유와 경영의 분리이며, 금융화의 핵심은 경영에 대한 소유의 우위라는 이 두 가지 원리를 종합적으로 파악해보자. 문제의 본질이 너무 훤히 보이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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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다시 삼성을 두고 다들 왈가왈부하고 있다. 재벌의 비대화를 막고 투명한 경영을 위해 순환출자를 금지하자는 것이 참여연대를 비롯한 신자유주의자들의 생각이다. 삼성의 경우… 1995년 반도체 호황 때문에 삼성전자가 갑자기 커져버리면서 이건희 일가의 지분을 다 합쳐도 삼성을 지배할 수 없게 되자, 이재용의 지분을 늘려 에버랜드를 지배할 수 있게 만들었다. 에버랜드가 순환출자를 통해서 삼성을 지배하는 실질적인 지주회사이기 때문이다. 그런대 만약 참여연대가 주장하는 것처럼 이재용의 지분과 순환출자를 무효화한다면, 삼성은 ‘외국계 기관투자가들’에게 지배되게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소액주주운동, 그리고 김영삼 정권 때의 ‘금융실명제’가 가지는 본질이다. (그래서 최근에는 참여연대식의 주장에 반대해서 재벌의 긍정성에 주목하자는 웃지 못할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재벌이 법인화한다 하더라도 이건희가 누리는 지배적 지위에는 본질적인 차이는 없다. (적어도 민중들이 보기에는… 물론 소유와 경영을 동시에 가져가려는 그 사람들의 욕심은 한도 끝도 없겠지만…) 90년대 들어 금융실명제 등이 시행되면서 ‘개혁’의 긍정성에 주목하자는 흐름이 운동 사회 내부에서조차 나왔지만, 이제 우리는 ‘재벌개혁 vs. 재벌수호’라는 논쟁지형이 가지는 허구성을 낱낱이 폭로해야 한다. 요컨대 ‘재벌해체’ 논쟁은 허구적인 측면이 많으며, 양자 입장 모두 민중의 권리와는 하등 관계가 없다고 볼 수 있다.

이젠 현실을 바로 볼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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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아르헨티나가 이미 겪은 절망적 상황이 바로 머지 않아 닥칠지 모르는 우리의 절망적 미래이다. 결과가 불 보듯 뻔한데, 아직까지도 FTA에 찬성할 것인가? 이젠 냉정하게 현실을 바라볼 때이다. 금융세계화는 한국 경제를 붕괴시킬 것이며, 민중들에게 절망을 안겨줄 것이다. 정부는 어설픈 통계자료를 가지고 억지 주장을 펼치는 행동을 즉각 중단하라. 그리고 자신의 반민중성에 보다 솔직해져라. 물론 우리는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명백하지 않은가?

Posted by 행진

2006/10/13 13:36 2006/10/13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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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호] 5호를 발간하며

이번 뉴스레터 5호를 관통하는 주제는 ‘한미 FTA 저지’ 입니다.

5호를 제작하면서, 편집국에서는 방침을 하나 세웠습니다. 이번 5호 기사들은 전반적으로 ‘짧게’ 쓴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A4 3쪽을 넘지 않기로 약속을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대부분’ 그 약속을 지키게 되었네요. (어떤 기사는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는데, 그렇다고 너무 핀잔주지 마세요.^^)

앞으로 계속 평가를 하면서, 개선을 해나가야겠지요. 그러기 위해서는 여러분의 피드백이 필요합니다. 행진 사이트에 뉴스레터용 게시판을 따로 만들자는 의견도 있었는데, 어떨까요? 아무쪼록 많은 의견을 주세요. 글을 써주시겠다는 분들, 언제든지 환영입니다!

글 분량의 경우 어느 정도가 적당할지, 판단을 명쾌하게 내리기가 힘드네요. 따지고 보면 A4 3쪽도 그리 적은 분량은 아니라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글을 쓰는 입장에서 계속 욕심이 나는 것이 사실입니다. 뉴스레터만큼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좋은 기회도 없기 때문에, 자꾸 이런 저런 말들을 걸고 싶어지는 것이지요.

변명 아닌 변명을 위해, 얼마 전 한 책에서 읽은 문구 하나를 인용합니다. 때때로 글이 좀 길어지더라도, 너그러이 용서해주세요.^^ 풍부한 내용을 압축적으로 담을 수 있도록, 정곡을 찌르는 글을 쓸 수 있도록, 앞으로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이해할 수 있는 것과 이해할 수 없는 것 사이에 이야기가 있다.
 즉, 이 세상에 이야기가 있다는 것은, 뭔가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있다는 것이다.”

- 김정환 시인의 어느 글에서 발췌한 문구

첫 번째 글, 「FTA, 금융세계화, 한국 경제」는 한미 FTA가 한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서술했습니다. 여러 가지 통계를 동원하기보다는 정부의 논리 저변에 깔려있는 이데올로기를 근본적으로 비판하는 데 더욱 초점을 맞췄어요. 이제 더 이상 정부의 허구적인 선전선동에 속지 맙시다.

두 번째 글, 「신자유주의에 맞서는 전 세계의 대안세계화 운동」은 전 세계에 걸쳐 용감하게 싸우고 있는 민중들의 이야기를 실었습니다. 이렇듯 우리의 싸움은 국제적인 보편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들이 자본과 폭력의 세계화를 강요한다면, 평등-자유-연대의 세계화로 되갚아줍시다.

세 번째 글, 「재생산의 위기, 그리고 여성의 삶」은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우리들이 꼭 고민해나가야 하는 내용의 글입니다. 페미니스트로서 신자유주의에 맞서 싸우기 위해서는, 신자유주의를 ‘젠더인지적’인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는 통찰력이 필요합니다. 여성해방을 향한 행진은 결코 미래로 유예할 수 없는 현재의 과제일 것입니다.

네 번째 글, 「문화예술운동에 대하여」에서는 전체운동과 부문운동영역의 관계에 대해 고민하고, 문화예술운동의 현 시기 경향성과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서술한 두 개의 문서를 첨부하였습니다. 꼭 다운받아서 읽어보세요. 각각의 파일들은 행진 자료실에도 올려다놓을게요.

마지막 글, 「학급총량제, 무엇이 문제인가?」는 이번 예비교사총궐기의 최대 쟁점이었던 ‘학급총량제’에 대한 해설을 담았습니다. 정부는 교사수를 늘리고 학급당 학생수를 떨어뜨려 교육환경을 개선하는 대신, ‘학령인구의 감소’라는 명분을 들이밀며 구조조정을 감행하려하고 있습니다. 이것 역시 신자유주의가 야기하는 폭력적인 현실의 단편입니다. 그렇기에 예비교사들의 투쟁은 단지 예비교사들만의 자기이해추구적 싸움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학급총량제를 막아내고, 신자유주의를 철폐합시다!

그리고 뉴스레터를 제작하는 와중에, 북핵 사태가 불거졌습니다. 북핵 문제는 결코 우회할 수 없는 현 시기의 핵심 정세입니다. 일단 북핵 문제에 대한 전국학생행진의 입장서를 첨부합니다. 그리고 조만간 토론 자료를 업데이트 하겠습니다.

끝으로, 지금 나오고 있는 음악은 민중문화운동연합의 1989년 앨범, 『현장의 소리1』에 실린 「밥, 자유, 평등, 평화」입니다. 밥, 자유, 평등, 평화… 그리고 인간답게 살기 위한 권리! 이것들이야말로 민중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들입니다. 소박하기 그지 없나요? 하지만 정말 절실한 것들이기도 합니다.

세월이 흘러도 결코 변하지 않는 가치가 있고, 그 속에 우리의 싸움이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멈출 수 없습니다. 역사에 대한 책임감으로, 평등-자유-연대에 대한 갈망으로, 오늘을 살아갑시다.

한미 FTA 저지! 신자유주의 반대!

음악 가사 열기

Posted by 행진

2006/10/13 08:27 2006/10/13 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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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호] 폭력에 대한 짧은 생각

전국학생행진(건) 회원 M
 

1. 글을 쓰며


나는 전국학생행진 회원이다. 어떤 계기로 인해 뉴스레터 편집국 측으로부터 ‘폭력’에 대한 글 청탁을 받게 되었다. 처음에는 글 형식을 어떻게 할지 조금 난감했던 것이 사실이다. 한참 고민해본 후 나서, 나는 “나 개인의 생각을 담은 에세이”를 쓰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편집국 측에 양해를 구했다. 이 주제에 대해서 학생행진 차원에서 토론이 이루어진 적도 없거니와, ‘폭력’이라는 것은 여러 토론거리 중에서도 대단히 ‘까칠한’ 이슈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 개인의 입장’을 뉴스레터라는 매체를 빌려 ‘행진의 입장’인 양 일반화할 엄두가 도저히 나지 않았다. 물론 이렇게 글의 위상을 한 단계 낮추더라도 자신이 없기는 마찬가지지만…^^

이번 선봉대에서도 ‘폭력투쟁’에 대한 논의가 잠깐 오고갔었는데, 앞으로 학생행진에서 이에 대한 토론을 많이 했으면 한다. 물론 우리의 곤란함이 몇 번의 토론을 통해 일순간에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그 곤란함이 어디에서부터 오는지 함께 토론해보면서 그것을 ‘언어화’하는 것은 여전히 중요하다. 이를 통해 우리는 각종 오해와 편견의 가능성을 최대한 줄이고, 생산적인 소통과 정치의 가능성을 최대한 높일 수 있다.

2. 소위 '미시적 폭력'에 대한 나의 생각


‘폭력’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아무래도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국가폭력’이다. 노무현 정권의 무자비한 평택 침탈, 하중근 열사의 죽음… 우리는 폭력의 시대 속에서 살고 있다.

그리고 또 ‘폭력’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은, 90년대 이후 한국사회에서 얼마간 논의되었던 ‘미시권력’ 혹은 ‘미시파시즘’이라는 화두이다. 물론 캠퍼스 별로 차이가 좀 있다. 어떤 캠퍼스에서는 이 같은 논의가 기층에서 하루를 멀다하고 계속 이야기되어왔어며, 또 어떤 곳에서는 이것들이 별로 큰 관심을 얻지 못했다. 내가 활동해온 캠퍼스에서는 이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왔던 편이다. 하지만 내가 볼 때 그 같은 논의가 그닥 생산적인 모습을 띤 것만은 아니었다. 어떤 때는 차라리 이 같은 것에 대한 관심을 뚝 끊고 그저 하루하루 묵묵하게 열심히 사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라고 생각될 정도였다.

‘국가폭력’의 경우는 사실 너무나 뚜렷한 분노의 대상이기 때문에, 이에 대해서는 당위적인 말 이외에는 할 말이 별로 없다.(물론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 절대 아니다!) 이에 반해 ‘미시권력’과 ‘미시파시즘’ 같은 주제에 대해서는 말이 좀 많아질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이것이 뭔지 잘 감이 안 잡히는 분들은, 당대비평의 『우리 안의 파시즘』과 같은 책들을 짬이 날 때 몇 장 읽어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당대비평은 1990년대 말, ‘우리 안의 파시즘’ 논의를 학계에 공개적으로 제안하였다.  ‘우리 안의 파시즘’이라는 이름 자체가 보여주듯이, 이것의 관심사는 ‘우리의 의식 심층에 내면화된 일상적 파시즘의 위험성’이다. 이 일상적 파시즘의 위험성은 지금도 다양한 곳에서 드러나고 있다고 한다. 반공주의, 민족주의, 규율과 복종을 내면화시키는 학교교육, 가부장주의, 그리고 많은 구성원들이 일사분란하게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학생운동 문화까지… 이러한 주장을 하는 논자들은 이것들이 모두 과거 군사독재에 따른 긴 어둠의 터널에 대한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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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9/07 08:16 2006/09/07 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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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호] 2006 여름문화학교 후기

관악 인문 05 미경


여름문화학교 웹자보를 보았을 때 느낀 감정은 ‘새로움’이었다. 프로그램을 보니 이미지, 스토리텔링을 통한 ‘나를 찾아가기라는 워크샵’, 여섯 개의 주제를 알아보고 소통하는 ‘여섯 개의 숟가락’, 그리고 고민과 소통의 결과를 문화로 표현하는 ‘길거리 문화제’까지! 새롭고 신선한 실험들, 고민들을 하고 있다고 느꼈고 그 시도들을 함께 하고 배워 오고 싶었다.

특히 반신자유주의 선봉대를 다녀와서 머릿속을 꽉 매웠던 고민들이 문화학교의 문제의식과 맞닿아 있는 부분들이 많았기에 “여행”은 일종의 탈출구이자 해방구였다. 선봉대 기간 동안 정작 대중을 만나는 것이 두려웠던 점들, 정작 대중에게 말하기가 어려운 점들이 고민으로 남았다. 소위 ‘운동권 개그’를 하면서 대중과 나는, 우리는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대중의 언어를 잃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혼란스러웠다. 9박 10일 동안 동지들과 함께 투쟁하던 나와 선봉대 이후의 나는 동떨어진 모습인가 하는 고민들. 그렇게 선봉대 이후의 나의 삶과 운동이라는 것, 이 사회와 나는 어떤 관계에 있는지 혼란과 궁금함을 가득 안고 타는 목마름으로 “여행”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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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날 나를 찾는 워크샵에서는 나에 대해 이야기하고 나와 사회, 내가 사회를 보는 시각을 나눌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학교 미술시간에 느꼈던 부담감이나 속박 없이 정말로 ‘자유롭게’ 종이를 접고 그림을 그리는 과정 자체에서 큰 해방감을 느낄 수 있었고 더욱 편하게 나를 표현할 수 있었다. 문화학교 프로그램이 모두 ‘나’에서 시작하여 처음 만난 동지들과 ‘나’의 이야기를 해야만 하는 것이 부담스럽고 힘들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여행”은 예상과 너무나 달랐다. 가족, 노동, 여성, 빈곤 등 나의 삶의 다양한 주제들에 대해서 우애로운 방식의 소통을 할 수 있다는 가능성과 희망을 발견할 수 있는 정말 소중한 시간들이었다.

사진을 골라서 고른 이유와 느낌을 이야기 하는 이미지텔링을 했는데 사진속의 모습을 신자유주의시대의 억압, 착취로만 해석하려는 나의 한계를 발견하고 부끄러웠다. 아무리 살아있다는 것은 싸우는 것이라지만 사진을 바라보는 관점이 ‘나’에서 출발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야기가 다양한 시각, 다양한 감수성으로 나의 문제의식과 고민에서 우러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사진속의 공간에서, 인물에게 나는 어떤 개입을 할 수 있을까 논의하며 끊임없이 ‘나’라는 자신과, 나의 일상과 운동을 고민할 수 있었다.

집회하러 가든, 놀러 가든 지하철에서 노숙인, 구걸인을 보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조금이라도 해방적인 관계맺음을 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고민하는 과정을 거치며 나의 일상과 운동이 이분화 되어 있음을 깨달았다. 어느새 집회에 가고 소통을 기획하는 등의 운동이 ‘일’로 여겨지고 운동과 여가시간이라는 것이 생겨난 것 같다. ‘운동 외의 여가시간에는’ 대중문화나 소비문화를 별다른 반성 없이 향유하기도 하고 지금 운동하고 있는 자신과 미래의 모습을 분리시키며 신자유주의시대의 이데올로기들을 따르기도 한다. 처음(사정상 주제가 네 개로 줄고 모두 하게 되기 전) 여섯 개의 주제 중 노동을 하고 싶었던 이유는 대학 졸업 후에 어떤 노동을 해야 즐거운 인생을 누릴 수 있을지, 신자유주의 시대의 인간이 노동을 통해 참된 해방을 누릴 수 있는지 고민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운동과 즐거움, 운동과 나의 해방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없었던 것이 나의 혼란의 근본적인 원인이었다.

각자의 활동공간을 지도로 표현하고 하나로 연결하면서, 또 무심코 지나쳤던 시장에서 가족, 여성, 노동, 빈곤의 주제들을 사진으로 포착하고 찾아내는 과정에서 피상적으로 바라봐 왔던 투쟁들을 ‘나’로부터 출발하는 삶의 고민으로 가져오고 타인의 해방과 나의 해방을 진지하게 맞대어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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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을 결의하면서 언제나 ‘나는 행복 하느냐’고 스스로에게 묻는다. 제리 루빈이 혁명이 재미있어야 한다며 “웃음이 우리의 정치적 깃발이다”라고 한 말을 계속 떠올리고 있다. 사회의 변혁을 꿈꾸고 해방세상을 추구하는 것은 단순히 정부를, 체제를 교체하는 일이 아닐 것이다. 운동은 새로운 생활방식, 새로운 사고, 새로운 원리를 우리 삶에 가져오는 일이다. 교육투쟁을 함께 하자고 말하는 것이 등록금 인상률을 몇 퍼센트 낮춰내는 것만이 아닌 교육을 바라보는 관점을, 세상을 구성하는 원리들을 바꿔내자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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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여름방학이 지나고 개강. 나의 소중한 자치 공간, 반에서 많은 학우들과 부대끼게 된다. 할 얘기가 너무 많다. FTA3차 협상, 평택, 건설노동자투쟁, 노무현 정권 퇴진……. 여전히 설렘보다는 두려움이 앞서지만 당당해져야 하겠다고 다짐해 본다. 진지하게 삶을 고민하고 투쟁하며 즐겁게 사는 것이 운동이며 그것을 보여주는 것이 운동이라고 생각한다. 아직도 문화운동이라는 것이 낯설고 무엇을 해야 할지 잘 모르겠지만 “여행”에서 얻은 이런 고민들을 소중히 여기고 있다. 문화운동을 고민하는 것은 나를 찾고 너를 만나 함께 거리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을 모색하는 것, 즉 함께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삶을 구성해 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여행” 중에 만난 동지가 했던 ‘살며, 사랑하며, 투쟁하며’라는 말을 계속 발음해 본다. 2학기에 끈질기게 살며, 사랑하며, 투쟁하며 노무현 정권을 퇴진시키겠다는 결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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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9/07 08:14 2006/09/07 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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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 전쟁기지 건설 반대! 한미FTA 저지! 비정규직 철폐!
노무현 정권 퇴진! 2006 반신자유주의 선봉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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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유난히 더웠던 여름. 전국학생행진(건)이 주관하고 다양한 단위와 개인들이 참여한 2006 반신자유주의 선봉대(이하 선봉대)는 전국 방방곡곡을 8월 3일부터 12일까지 9박10일동안 순회하면서 정세적인 투쟁을 힘차게 진행하였다. 또한 무엇보다도 여성주의적 실천을 감행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물론 짧은 기간 중의 논의와 실천이 한계적일 수밖에 없겠지만 ‘반성폭력 내부규약 논의’ 및 ‘여성노동자권리목록 작성’, 매일매일 여성주의적 실천에 대한 평가들을 진행하면서 여성의 권리를 발굴하고 이를 획득될 수 있도록 하기위한 다양한 실천을 진행하였다는 부분에 있어서 높이 평가되어야 할 지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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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봉대 기간중에 주되게 여성주의적 실천과 관련해서 논의되었던 부분을 정리해보았다. 이 과정은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환류하는 것을 넘어서서 우리에게 여성주의 운동이 가지는 함의와 이후를 내다볼 수 있도록 논의할 수 있는 기재로 활용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실천과정 속에서 하나의 실험으로서 ‘여성노동자 권리목록’ 작성은 의미있는 기획이었다고 볼 수 있겠다. 그간 구호와 투쟁과제 속에서 ‘여성노동권’에 대한 발언을 해왔지만, 명확하게 여성노동자로서의 권리를 밝히지 못함으로 인해 애매모호함이 있었다. 하기에 연대투쟁의 경험들을 통해서 10개조의 선봉대원들이 논의를 통해서 밝혀낸 쟁점을 정리하는 실천을 진행하였다. ‘여성노동자 권리목록’에 나와 있는 권리들을 쟁취해 낼 수 있도록 이후에 투쟁하는 과정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또한 연대단위의 여성주의적 재구조화를 위한 실천으로 인화학원 집회 중 있었던 발언과 관련한 성균관대 학생행진 윤영회원이 수기를 써주셨고, 선봉대 뒷풀이 자리에서의 성폭력과 관련해서 쟁점 정리 및 이후 우리의 과제에 대해서 작성하였다. 모쪼록 아래의 글이 어떤 개인만 알고 사장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서의 논의과정과 이후 실험적인 대중운동 속에서 공동체를 변화시킬 수 있는 기제로 사용되었으면 하고, 여성주의운동이 보다 일진전 하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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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9/07 08:00 2006/09/07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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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호][특집2] 3 Out Change!

지난 5.31 지방선거에서의 결과는 노무현 정권에 대한 대중적인 불신을 잘 드러내주고 있다. 최근 중앙일보에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노무현 정권의 국정운영에 대한 평가로 ‘긍정적인 평가’가 21%, ‘부정적인 평가’가 75%인 것으로 드러나 노무현 정권의 통치력이 바닥을 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한편 같은 여론조사의 항목 중 정당 선호도 조사에서 ‘지지정당이 없다’는 사람이 37%에 달하고 있는데, 이는 지배계급이 미국 중심의 금융세계화로의 편입을 통해 민중들에게 빈곤과 불안정노동, 전쟁위기를 강요함으로써 자신들의 위기를 지연시키고 있는 지금의 현실에서 지방선거에서 압승을 차지한 한나라당 역시 안심할 수 없는 ‘정치의 위기’를 보여주고 있다.

오로지 이미지와 색깔론, 원한의 정치에 의존하면서 ‘정치의 위기’를 심화시킬 뿐인 지배계급의 위기관리 전략은 일관된 신자유주의 정책에 지나지 않았으며, 사회 각 영역에서 끊이지 않는 민중들의 저항을 가져 왔다. 평택 대추리의 강제 철거와 한미 FTA에 맞선 싸움들... 하중근 열사와 현대 자동차 남문수 조합원의 죽음, 전력 산업 공공성 파괴에 맞선 발전노조 동지들의 저항이 바로 그것이다.

오점 투성이인 신자유주의 지배계급이 이미 민중들에게 어떠한 전망과 대안을 제시할 수 없는 이러한 상황에서 그들에게 남아있는 것은 오로지 ‘파산선고’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은 이미 'OUT'인 것이다. 남한사회 신자유주의 재편의 가장 큰 당사자로서 노무현 정권에게 책임을 물음으로써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의 물결을 바꾸어 내고, 지배계급을 심판하자. 이 글은 노무현 정권이 왜 ‘3OUT’으로 민중들에 의해 역사의 무대에서 끌어내려져야 하는지를 밝히기 위해 쓰여졌다. 

1 OUT!

: 평택 전쟁기지 건설은 한미간의 가장 효율적인 군사적 태세를 갖추기 위한 것으로, 상시적인 전쟁위기를 가져온다.

2006년 현재 전 세계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미군의 ‘전략적 유연성’과 ‘재배치’는 바로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를 보호하고 관리하기 위한 장치로서의 군사세계화 의도를 극명하게 드러낸다. 신속하고 기동성 있는 군대로 재편함으로써 9.11 테러 이후 미국이 천명하고 있는 군사정책인 ‘선제공격’과 ‘예방공격’을 좀 더 잘 수행할 수 있는 체제를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특히 현재 추진되고 있는 평택으로의 주한미군 재배치는 이러한 변화의 출발점이며, 따라서 동북아에서의 전쟁 위협을 증가시키고 있다. 이러한 미국의 전략에 노무현 정권은 수십 년 간 평택에 살던 마을 사람들과 그/녀들의 저항에 연대하는 수많은 민중들을 용역깡패와 경찰, 군대까지 동원하여 폭력적으로 진압하면서 편승하고 있다.

지난 1월에 합의한 주한미군 전략적 유연성은 노무현 정권 하에서 한미동맹의 질적인 변화를 대표적으로 보여준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문제의 진정한 쟁점은 친미 對 자주가 아니라 주한미군 전략적 유연성 합의와 한미 FTA 추진을 통한 한미동맹이 변화이다. 주한미군 전략적 유연성을 근거로 분쟁지역에 얼마든지 개입할 수 있고, 또한 강화된 한미동맹을 바탕으로 한국 정부에 군사상 긴밀한 협력을 요구할 수 있는 미국의 입장에서 진정 바라는 것은 주한미군이 동북아 지역 안정과 반테러전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한미 군사지휘체계를 분리하는 것이다. 전시작전통제권의 문제는 이러한 맥락에서 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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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작전통제권 환수가 한미 양국의 가장 효율적인 군사적 태세를 갖추기 위한 것일 뿐이라는 사실은 2006년 하반기 주한미군 전략적 유연성을 실행할 평택 지역을 확보하기 위해 폭력적으로 철거 작업에 돌입할 노무현 정권의 태도에서 극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정부는 용산과 의정부 북부에 있는 미군들을 평택으로 재배치하는 작업을 2008년 말까지 완료하기 위해 평택 팽성읍 대추리와 도두리에 있는 빈집들을 철거하고, 10월에는 마을의 모든 건물을 철거할 예정이다. 끝까지 마을에 남아 저항할 것을 결의하고 있는 주민들과 지킴이들을 내쫓아가면서까지 노무현 정권이 이러한 일을 적극 추진하고 있는 것은 단지 ‘미국의 강요와 협박’ 때문이라기보다는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에 대한 한국정부의 적극적인 동의’에 의한 것이다. 미국의 금융세계화 전략에 적극적으로 편입함으로써 미국과의 이해관계를 긴밀히 유지할 필요가 있는 한국정부는 주한미군 전략적 유연성과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를 계기로 한반도 내외에서 발생하는 금융세계화 체계에 있어서의 모든 위협에 대한 책임을 미국과 분담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몇몇 가진 자의 이익만을 위한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가 얼마나 피비린내 나는 것인가를 우리는 이라크 전쟁과 김선일 씨의 죽음을 통해 이미 확인하였다. 미국과 남한 정부가 금융세계화 속에서 더욱 긴밀한 이해관계를 추구하기 위해 추진하고 있는 평택 전쟁기지 건설은 동북아 전체를 전쟁의 악순환에 빠지게 할 뿐이다. 대다수 민중의 목숨을 담보로 하는 전쟁기지 건설의 책임자, 노무현의 신자유주의 정권은 이미 전범이며 자격이 없는 것이다.

2 OUT!

: 초민족적 금융자본의 이익을 위한 한미FTA는 민중생존권을 끊임없이 박탈한다.

김영삼 정권이 우루과이라운드와 OECD 가입으로 금융세계화 편입의 초석을 닦고, 외환위기 이후 김대중 정권이 IMF 구제금융협약으로 남한사회의 신자유주의 재편을 본격적으로 추진했다면, 노무현 정권은 현재 장기불황의 국면에서 금융-군사세계화로의 적극적인 편입을 시도하고 있다. 미국의 동아시아 금융-군사세계화 전략과 맞물려 진행되고 있는 한미 FTA와 전략적 유연성-주한미군 재배치는 노무현 정권에 있어서 사활적인 과제인 것이다.

한미 FTA 협상 일정상 반환점에 해당하는 3차 협상이 9월6일부터 9일까지 4일간 미국 시애틀에서 열린다. 3차 협상부터는 지난 2차 협상 때 교환한 서비스·투자 분야 유보안과 이번 관세양허안을 가지고 한미 양국이 서로 요구, 조율하는 과정이 될 것이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노무현 정권이 추진하는 한미 FTA가 초민족적 금융자본의 수탈을 보장하고, 증가하는 자금의 순환을 통해 이득을 취함으로써 초민족적 금융자본의 지배질서를 강화하고 경제적 불안정과 민중들에 대한 착취를 강화하는 금융세계화로의 편입전략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지난 2004년 농림부가 발표한 ‘농촌-농업 종합대책’은 한마디로 재벌과 초민족 자본에 의한 농업구조조정 계획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 주요내용은 농업과 축산업의 규모화, 생산·출하·가공·포장·유통·마케팅의 산업화, 신품종 육성과 재배기술 개발, 농촌의 휴양지화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는 결국 농업개방을 통한 농촌의 공동화-휴양지화와 농민의 도시 빈민화를 유도하는 한편, 농업을 규모화-특성화하고 생산에서 마케팅까지의 영역을 초민족 금융자본들에게 열어주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의약품 등에 대한 지적재산권 보호에 관해서도 노무현 정권은 ‘지적재산권 보호 강화를 통해 지식기반 경제 활성화 도모 및 지적재산권 관련 국내 제도의 선진화’라는 목표를 추구하고 있다. 2차 협상 이후 막후협상 등의 의혹이 제기된 ‘약가 적정화 방안’ 중 ‘포지티브 시스템으로의 전환’(보험적용 의약품 선정에 있어서 가격 대비 효능을 평가하여 선별하는 방식)은 향후 ‘혁신적 신약의 범위 확대, 신약의 특허 보호권 강화, 특허와 시판 허가 연계, 보험 등재와 가격결정에 대한 이의 제기’ 등 초민족적 제약자본의 이익을 보호할 수 있는 조치들로 보완될 전망이다.

또한 노무현 정권은 미국과의 FTA 체결을 기회로 삼아 교육·보건의료와 같은 공공서비스 분야와 전기·가스·수도의 개방을 통해 대외신임도를 제고하고 산업 전 영역에 걸친 금융자본의 투자유치와 구조조정의 효과들을 노리고 있다.

미국과 1994년에 FTA를 체결한 이후 삶의 질이 나락에 빠진 멕시코의 사례를 굳이 생각하지 않더라도, 노무현 정권이 추진하는 한미 FTA가 정리해고와 구조조정, 빈곤과 실업을 가져오고 민중들의 억압할 수 없는 최소한의 권리조차 착취할 뿐이라는 사실은 명약관화하다. 게다가 대부분의 다국적기업들은 비정규직 저임금 노동자로서 여성을 더 선호하기 때문에 여성들은 저임금과 초과노동, 장시간 노동에 더욱 노출될 것이며, 신자유주의와 가부장제의 결합 속에서 더욱 많은 차별과 폭력, 그리고 부담이 여성에게 전가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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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OUT!

: 노무현 정권의 금융세계화 편입/발전 전략은 불안정노동과 빈곤을 양산하면서 민중의 희생을 강요한다.

하중근 열사의 죽음과 포항 건설노조, 발전노조에 대한 지배계급의 살인적인 탄압은 구조적 무능력 속에서 유일한 발전 전망이 금융세계화로의 편입밖에 존재하지 않는 지배계급의 폭력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계속되는 불안정노동과 빈곤에 저항하는 민중들은 지배계급에게 있어서는 공권력을 동원하여 마구 억누르고 다스려야 할 무언가에 불과한 것이다.

금융세계화로의 편입을 완성하려는 노무현 정권의 전략은 각 산업, 기업에 대한 초민족적 금융자본의 지배력을 강화함으로써 상시적인 구조조정과 일상적인 실업에 의한 노동권 파괴를 가져올 것이다. 1996년 10월 김영삼 정권이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에 가입하자마자 연말 날치기 통과시킨 정리해고제와 근로자파견제로 인해 현재까지 수많은 비정규직과 불안정 노동을 양산해온 역사는 한미 FTA 체결과 비정규직 보호법안, 노사관계 로드맵 입법이 동시에 추진되고 있는 2006년 하반기를 기점으로 또다시 반복될 기로에 놓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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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9월 정기국회 통과를 목표로 하고 있는 비정규직보호법안과 노사관계법제도선진화방안은 96,7년을 거치면서 남한 사회에 폭발적으로 증가한 비정규직을 전 직종으로 확대하고 기간제 사용을 법적으로 보장하며, 노동법 상 사용자들의 권한을 대폭 확대·강화함으로써, 노동 유연화와 노동자 운동 통제를 제도적으로 완성하기 위한 것이다. 지난 2월 국회상임위 통과로 이제 본회의 통과만을 남기고 있는 비정규직 보호법안은 현행법상 26개 업종에 한정되어 있는 파견업종이 사실상 ‘불법파견 용인’으로 대다수의 직종으로 확대되어 있는 상황에서 무수히 터져 나오고 있는 노동자들의 불만과 저항을 합법적인 파견업종 확대를 통해서 법적으로 통제하는 한편, 기간제 사용기한을 2년으로 명시함으로써 기간제 사용을 합법화하고 사용자들에게 2년을 주기로 맘껏 해고할 권한을 제공함으로써 저임금 불안정 노동의 확대와 안정, 그리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동권 행사 무력화를 시도하고 있다.

한편 노사정위원회에서 논의 중인 ‘노사관계법제도선진화방안’은 공공부문을 중심으로 한 산업의 전 영역에서 노조의 노동권 행사를 원천 차단함으로써 금융세계화 편입을 위한 노동시장의 글로벌스탠다드를 추구하고 있다. 이번 ‘선진화방안’에서는 공익사업장 대체근로와 관련하여 ‘파견을 통한 대체투입’은 현행대로 금지하되 신규채용, 하도급 등을 통한 대체투입은 전면 허용함으로써 공공부문에서의 파업 자체를 무력화시키려 하고 있다. 필수공익사업장 및 직권중재제도 폐지와 관련해서는 현행법 상 존재하는 필수 공익사업장과 직권중재를 폐지하되, 공익사업장의 범위를 국민연금을 비롯한 4대 보험 등으로 확대하고, 직권중재 폐지의 보완책으로서 파업 시 최소업무 유지 의무를 통해 최소업무 수행자는 파업참여시 긴급복귀명령에 따르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이밖에도 ‘선진화 방안’ 내용 중에는 노조 자치활동의 대표성, 절차 등에 대해 법적인 통제를 강화하기 위한 방안들이 포함되어 있다. 

노무현 정권의 금융세계화 편입전략에 있어 또 하나의 사활적인 문제는 출산율 1.08명이라는 OECD 국가들 중 최저수준의 노동력 공급능력이다. 현재 강조되고 있는 저출산의 위기는 여성에게 재생산의 책임을 전가하는 것을 통해 또 하나의 굴레를 씌우고 있으며, 정권이 저출산 고령화 대책으로 제시하는 새로마지 플랜은 그러한 경향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신자유주의가 추가적인 재생산 노동 부담과 부족한 가계수입을 보충하기 위한 저임금-불안정노동 직종에서의 출혈판매를 여성에게 강요하고 있으며, 이는 가족의 해체와 출산율 저하 등과 같은 ‘재생산의 위기’로 다시 나타나는 상황에서 신자유주의 사회재편의 당사자인 노무현 정권이 정상가족이데올로기를 유포하고 출산에 대한 의무를 강화하는 새로마지 플랜을 제시하는 것은 진정 어불성설이다. 이러한 지배계급의 ‘남성의 얼굴을 한 신자유주의’는 여성에게 가장 무자비하고 무차별적인 공격을 가하고 있으며, 빈곤과 불안정 노동에 시달리는 여성들에게 또 하나의 가혹한 짐을 더하고 있다.

Change! No무현, OUT!

노무현 정권을 역사의 그라운드에서 퇴장시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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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과 노동자를 살해한 살인정권, 민중의 삶을 파탄으로 몰아넣는 신자유주의 정권에 대한 분노는 노무현 정권 퇴진으로 모아져야 한다. 사면초가, 민중의 삶을 책임질 능력도 의지도 없는 무능력한 노무현 정권의 상황이다. 노무현 정권 퇴진의 기치는 단순히 민중이 정권을 심판하고 끌어내리는 것을 넘어서서, 금융세계화로의 유일한 발전 전망을 통해 폭력적으로 민중의 삶을 담보로 하여 희생을 강요하면서 연명하고 있는 지배계급의 구조적인 무능력을 폭로하고, 민중들의 자기통치 역량을 실현하고 강화하는 것이다. 노무현 정권 퇴진이라는 기치를 신자유주의에 맞선 민중의 가장 보편적이면서도 급진적인 언어로서 만들어가면서, 신자유주의를 역사의 그라운드에서 퇴장시키자!

Posted by 행진

2006/09/07 07:50 2006/09/07 0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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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민중들은 인간다운 삶을 위해 끊임없이 싸운다. 불안정노동 철폐, 한미FTA 저지, 평택 전쟁기지 건설 저지… 이것들은 어느 것 하나도 놓칠 수 없는 절박한 사안들이다. 우리는 이러한 투쟁들에 헌신적으로 임해야 한다. 동시에 우리는 각각의 사안들이 결코 별개의 것이 아니라, ‘신자유주의’라는 거대한 흐름이 만드는 지배계급의 총공세라는 점을 명확히 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모순들을 낳는 노무현 정권의 본질, 즉 '신자유주의 위기관리정권'이 필연적으로 보여줄 수밖에 없는 폭력, 기만, 구조적 무능력을 강력하게 폭로하면서, 이를 민중의 힘으로 심판해야 한다.

신자유주의는 철저하게 이 체제의 ‘구조적 문제’이다. 즉 체제의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는 한 신자유주의는 해결될 수 없다. ‘계급타협적인 사회협약’이나 ‘실용주의적인 로비활동’ 등으로 빈곤과 불안정노동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또 민주화 투사의 명함을 팔고 다니던 김영삼과 김대중, 그리고 노동자의 친구라던 노무현이 민중에게 가한 일을 다시 한 번 똑똑히 기억하라. 민중의 이름을 등에 업고 철저하게 민중을 배신한 이들의 만행은, 90년대 이후 진행된 민주화의 본질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따라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명확하다. 오로지 강력한 투쟁, 그리고 사회변혁을 향한 대중들의 아래로부터의 운동만이 현실을 바꿔낼 수 있다.

‘신자유주의 반대! 노무현 정권 퇴진!’의 기치로, 이러한 역사의 진리를 증명해나가자. 신자유주의 위기관리정권의 분열 책동을 넘어 민중연대를 실현하고, 세상을 바꾸자!

신자유주의의 충실한 집행자, 노무현


93년 집권하면서 과거 군사독재정권과 대비되는 ‘민간정부’의 표상을 얻으려 했던 김영삼 정권의 본질은, “한국자본주의를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에 연착륙시키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김영삼 정권의 대표적인 개혁정책이었던 금융실명제, 각종 세계화 정책들(쌀개방 등)은 바로 이러한 본질의 산물이다. 또 97년 외환위기라는 특수한 정세를 틈타 ‘개혁세력’으로 표상되었던 김대중 정권은 재벌-보수 진영의 강력한 유착관계를 깨뜨릴 수 있는 세력으로 부각되었다. 김대중 정권은 자본주의의 구조적 위기, 체제의 위기라는 외환위기의 본질을 은폐하고 이를 ‘민족고난’이라는 형이상학적 수사로 치장하였다. 그리고 고통분담이라는 논리로 노동자민중에게 구조조정 프로그램을 들이밀었다. 이런 가운데 남한 경제는 99년 일시적 호황국면을 맞기도 하였으나, 2000년대부터 다시 불황기에 접어들면서 카드빚/가계부채 급증으로 상징되는 민생파탄의 시대가 도래한다. 그리고 지배세력의 통치성에 균열이 가해지기 시작했다. IMF에서 강요한 구조조정 프로그램은 김대중 정권 하에서 금융세계화에 전략적으로 조응하기 위한 계획의 일환이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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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에서, 02년에 집권한 노무현은, 실패한 김대중 정권과의 '연속성'(똑같은 신자유주의, 똑같은 개혁 이데올로기)과 '차별성'(해결되지 않은 경제위기에 뒤이은 광범위한 정치 불신을 배경으로 한 사회적 갈등과 분열에 대한 대응)을 동시에 획득해야만 했다. 따라서 그는 강화된 386정서(노무현 코드)와 업그레이드된 정치개혁을 강조하였고, ‘참여 정부’로 표상되는 ‘참여 민주주의’를 내세웠다. 그러나 노무현 정권이 말한 개혁 역시 개혁은 개혁이되 신자유주의로의 급속한 개혁이었으며, 노무현이 강조한 참여는 지배체제의 안정이 확보되는 한에서의 제한된 참여였다. 또한 노무현 정권은 노동/자본간의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사회통합적 노사관계의 필요성을 역설하였으나, 이것은 결국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기 위한 전략일 뿐이었다. 노무현 정권은 각종 공기업들을 민영화하고, 노동시장이 유연해야 경제가 성장한다며 불안정 노동을 확대해 전체노동자의 60%에 달하는 비정규직을 양산하였다. 이처럼 노무현 정권은 전 세계적인 차원으로 진행되는 자본주의의 위기를 관리하기 위한 신자유주의 정책의 충실한 집행자이자, 그의 위치에서 충실하게 계급투쟁을 수행한 민중의 착취자였다.

신자유주의 속에서 파괴되는 민중의 삶


1970년대 세계자본주의는 자본수익성의 감소, 이윤율의 저하라는 위기국면에 봉착하였고 이것을 지연시키기 위한 방법으로 신자유주가 채택되었다. 신자유주의는 실물경제를 통한 이윤획득과 체제유지가 더 이상 불가능한 자본주의 체제가, 이른바 ‘금융’부문의 팽창을 통해 이윤을 획득하며 위기를 지연시키려는 체제이다. 따라서 상품, 서비스, 화폐 등 자본의 개입이 가능한 거의 모든 부문의 급속한 자유화를 지향하고, 시장개방·민영화·규제 완화·노동시장의 유연화 등을 그 특징으로 한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또한 자본주의의 위기를 우회하여 지연시키려는 방식이라는 점에서 근본적 대안은 될 수 없다. 1970년 브레튼우즈 체제 붕괴의 주요 원인인 미국의 재정적자 심화가, 현 시기 쌍둥이적자(재정적자와 경상수지 적자)로 대표되는 미국경제의 대외불균형이라는 양상으로 되풀이되는 모습은 이러한 체제적 한계점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자본주의의 위기를 그저 ‘지연’시킬 뿐이라는 신자유주의의 ‘내재적 한계’는, 신자유주의 체제 안에서의 개별 국가권력 또한 위기를 근본적으로 타개할 수 없다는 한계로 이어진다. 이미 금융세계화에 편입된 국가 경제는 초민족적 금융자본의 지배력 하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며, 지배계급이 제시하는 ‘새로운’ 성장 모델 역시 금융세계화를 충실히 따르며 이러한 흐름을 더욱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따라서 신자유주의가 금융세계화라는 전 세계적 ‘글로벌 스탠더드’를 강요하는 지금의 질서 속에서 ‘일국의 독자적인 경제 번영 혹은 블록화’는 불가능에 가깝다. 하기에 노무현 정권 역시 신자유주의적 발전전망에 포섭되기 위한 기회만을 노리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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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설사 남한 사회가 신자유주의적 체제 재편을 완수하고 금융세계화의 흐름에 완벽히 포섭되어 지배계급이 주장하는 것처럼 GDP의 수치가 상승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오히려 대다수 민중들의 삶의 질과는 반비례한다. 노무현 정권을 비롯한 지배계급이 제시하는 새로운 성장 모델은 투자환경 개선과 규제완화로 외국계 기업 유치를 유도하면서, 특히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제시되고 있는 지식기반서비스산업(금융거래와 금융화를 보조하는 비즈니스서비스산업, IT/BT 등의 첨단기술산업, 의료·보험 등 공공서비스산업 등)을 통해 초국적 금융자본의 활동과 지배력을 보장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또한 자본유치를 위한 투자환경 개선과 규제완화는 상시적인 구조조정을 통한 불안정 노동의 심화와 이를 제도적으로 완성하기 위한 노동법 개악, 민중들의 기본적 생존권조차 박탈하는 공공분야의 민영화 등을 수반한다. 게다가 저들이 말하는 ‘투자’는 지난 론스타 사건에서 볼 수 있듯이 단기적 이익만을 얻으려는 금융‘투기’에 지나지 않는다. 이미 금융세계화로 일정부분 편입된 남한 경제에서 수출․외자유치를 통해 획득된 자금은 설비투자나 고용창출 없이 주식배당금이나 기술개발에 대한 투자로 반복되고 있을 뿐이다. GDP와 같은 가시적 경제지표가 상승하여도 민중들의 삶의 조건은 오히려 파괴되어 가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신자유주의 하에서의 위기관리 전략


앞서 살펴본 것처럼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 속에서 각 민족국가들은 개별적으로 위기를 극복하는 것이 불가능하며, 금융세계화가 야기하는 민중생존권 파괴는 필연적으로 각종 분노와 불만을 발생시킨다. 그러나 이것은 (금융세계화가 바로 그 원인이기 때문에) 금융세계화의 체제 아래에서는 결코 해결될 수 없다. 따라서 각 민족국가들은 이러한 분노와 불만이 체제 자체를 위협하는 데까지 나아가지 않게 하기 위해, 모든 쟁점들에 미봉책으로 일관하며 분노와 불만을 ‘관리’하는 것 이상으로 나아갈 수 없다. 따라서 오늘날 신자유주의 체제에 포섭된(혹은 포섭되고 있는) 국가의 성격은 ‘신자유주의 위기관리국가’라고 할 수 있고, 노무현 정권 또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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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신자유주의 위기관리국가의 전략’은 대체로 크게 두 가지 방식으로 나타나는데, 그중 한 가지는 경찰․군대와 같이 ‘억압적’성격을 가지는 국가장치들을 적극 활용하여 투쟁하는 민중들을 통제하는 방식이다. 대표적인 예로는 지난 5월의 ‘여명의 황새울’이나 7월 포스코 노동자들에 대한 폭력 탄압 등을 들 수 있다. 이처럼 공권력을 동원한 무력행사, 즉 엄청난 수의 경찰이 방패와 곤봉으로 시위대를 구타하고 수많은 사람들을 연행하는 위기관리 방식에서, ‘국가기구’가 이미 획득하고 있는 ‘공적·합법적’이라는 표상은 그 빛을 발한다. 지배계급은 거대 미디어를 이용하여 ‘소수 몇몇의 이익을 위한 불법 시위대의 이기적 폭력’에 대한 ‘시민일반을 위한 공권력의 합법적/불가피한 무력’이라는 식으로 호도하면서, 공권력이 자행하는 폭력 행사에 당위성을 부여한다. 또한 모든 투쟁을 (자신이 정한) ‘불법/합법’이라는 틀에 맞춰 ‘불법폭력시위’로 규정하면서 문제의 본질을 은폐하며, 민중들의 정치적 발언과 행동을 직/간접적으로 제한한다. (불법/합법 논쟁은, 합법적인 대화와 타협의 자리를 마련하고, 결국엔 ‘현재의 조건’에 타당한 협상안을 정리해서 정권의 의도대로 추진하려는 사회적 합의주의에서도 적극 활용된다.)

이처럼 개별 국가가 억압적 성격의 국가기구를 통해 분노와 불만을 관리하는 방식은, 전 세계적으로 금융세계화에 대한 분노와 불만을 관리하고 그것을 뒷받침하기 위한 군사세계화와도 맞닿아 있다.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의 중심축인 미국은 천문학적 국방비를 쏟아 붓고, 세계 곳곳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을 재편하며 전략적 유연성이라는 이름으로 신속성과 정밀성, 기동성을 강화하고 있다. 이처럼 미국이 막대한 예산을 들여 군사력을 강화하는 것은, 그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테러’와 ‘악의 축’과 같은 인류 공통의 적에 대한 ‘정의로운 개입’이라거나,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한 ‘성전’을 위해서가 절대 아니다.

금융세계화의 본질이 전 세계적인 자본의 자유로운 투자와 이동이라는 점에서, 그 착취 양태는 개별 국가 경계에 따라 결정되거나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초월하여 나타난다. 따라서 그에 따른 불만과 저항도 국가라는 경계 안에 매몰되지 않고, 때때로 개별 국가의 지배계급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금융세계화를 작동하는 중심축인 미국과 초국적 자본에 대한 직접적인 저항의 목소리로 나타난다. 또한 금융세계화에서 제외된 지역(그것이 자의적이든, 자의적이 아니든)은 ‘배제와 포섭’이라는 신자유주의의 기본 전략에 따라 차별과 불평등을 겪게 되고, 여기에서 발생하는 분노와 불만 세력 또한 미국에게는 위협적일 수밖에 없다. (그것이 한 국가에서 체제적으로 나타날 때는 북한이나 이란과 같은 ‘악의 축’으로 규정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불만과 저항의 세력들을 무력으로 억압하여 금융세계화를 뒷받침하고, 때로는 무력을 먼저 앞세워 금융세계화를 관철시키는 수단으로써 군사세계화가 진행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금융세계화와 군사세계화는 ‘불가분의 관계’이다.

다시 개별 국가의 위기관리 전략으로 돌아가면, 대중들의 정치적 실천에 대한 억압적 통제와 더불어 신자유주의 위기관리 국가를 지탱하는 또 하나의 축은 ‘인민주의’이다. 근시안적 미봉책으로 일관하는 신자유주의 체제 속에서 국가권력은 대중들이 제기하는 쟁점에 대해 어떠한 해결책도 내놓지 못한다. 따라서 이러한 자신들의 정치적 무능함을 은폐하고 회피하기 위해 허구적인 쟁점을 던지고, 미디어와 스타 정치인을 동원하여 정치를 희화화하는 수단으로 인민주의를 활용한다. 흔히 ‘포퓰리즘’이라고 알려진 인민주의는 자유주의, 보수주의, 사회주의 식의 체계적인 정치이념이나 전략이 부재하다. 대신에 그저 모든 권력의 정당성의 근원인 다수 인민들에게 직접 무엇인가를 호소하고, 이를 통해 끊임없이 ‘적과 아’ 사이의 허구적인 대립구도를 설정하여 기존 정치에 대한 대중들의 불만을 동원한다. 그러나 여기서 사용되는 쟁점은 그야말로 문제의 본질과는 상관없는 허구적인 것이기 때문에, 근본적 해결과는 거리가 먼 대중조작적 정치 ‘스타일’ 혹은 ‘공학’일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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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기반이 없고 현실 정치판에서 안정적인 지지기반을 갖지 못한 노무현은 인민주의 정치 스타일의 가장 극단적인 방식을 택함으로써 이를 해결하려 한다. 즉 정당을 통해 안정적인 지지 세력을 규합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아예 정당정치, 의회정치라는 것 자체를 우회한다. 지구당을 폐지하는 등 정당을 통한 대중들과의 접촉을 포기하고, 대신 텔레비전, 인터넷 등의 미디어를 통해 대통령 그 자신이 광범위한 대중들과 직접 접촉한다. (물론 이 과정에서 ‘이미지의 형성’은 필수이다. 예컨대 노무현은 이회창이 절대 따라 할래야 할 수 없는 자신의 고유한 이미지 - TV에 나와 기타를 치며 상록수를 부르고 눈물을 흘리는 모습 -를 창조해냈다.) 또한 ‘한나라당 = 보수 vs 열우당 = 개혁’ 식의 허구적인 대립 구도를 만들고 상대방의 부정부패와 스캔들을 들추어내는 등의 과정을 통해 ‘가상의 적’을 만든 다음, 그곳에 모든 대중들의 원한을 집중시키기에 바쁜 정권의 모습은 ‘원한의 정치’라는 인민주의의 전형을 보여준다.

신자유주의 반대! 노무현 정권 퇴진!


2006년 현재 남한 사회에서 지배계급이 보여주고 있는 행보는, 신자유주의라는 거대한 반민중적 흐름의 일관된 목적 아래에서, 금융-군사세계화가 작동하는 메커니즘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금융세계화로의 편입 전략은 한-미 FTA로, 그것을 예비하기 위한 체제 정비와 노동권 약화는 비정규개악안과 노사관계로드맵으로, 금융세계화를 뒷받침하기 위한 군사세계화는 평택 전쟁기지 건설로 나타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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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최근의 ‘바다이야기’ 문제만 보더라도, 정작 중요한 핵심들은 건드려지지 않고 있은 채 지배계급 사이에서 소모적인 논쟁들만 이루어되고 있는 실정이다. 사행성 게임업체에 관한 문제의 핵심은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인한 빈곤, 실업에 대한 민중들의 불만을 ‘로또’나 ‘도박’에 대한 허황된 꿈으로 관리하는 동시에, 이러한 투기성 산업 육성을 통해 민중들을 ‘두 번’ 착취하는데 있다. 따라서 한나라당의 ‘권력형 도박게이트’라는 규정은 문제의 본질은 비껴간 채, 노무현 정권의 ‘개혁세력’이라는 이미지조차 해체함으로써 반사이익을 얻기 위한 전략에 불과하다. 이러한 본질을 비켜난 저들의 허구적인 이전투구 속에서, 신자유주의 금융-군사세계화가 만들어내는 갖가지 중대한 문제들은 뒷전으로 밀려난다. 허구의 쟁점에 민중들의 불만이 동원되고, 민중들이 가상의 적을 향해 원한을 불태우고 있을 때, 노무현 정권은 한편에서 조용히 민중들의 삶의 파괴하는 신자유주의 금융-군사세계화의 정책들을 착착 진행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맞서야 할 적이다.

각각의 사안들은 관통하는 근본적 원인인 신자유주의, 그리고 그것을 기획․집행하는 정권에 반대하는 것은 우리 민중들이 임해야 할 공통적이고 본질적인 정치적 목표이다. 이러한 목표를 뚜렷하게 세우고 투쟁에 임할 때, 각각의 투쟁들은 개별적인 사안의 차원을 넘어 ‘시대적 보편성’이라는 커다란 무기를 얻을 수 있다. 만약 ‘시대적 보편성’이라는 것이 잘 머리 속에 그려지지 않는다면, 80년대 거대한 민중의 반역을 이끌었던 시대의 보편성, ‘민주주의’를 기억하라. 80년대 이루어졌던 모든 크고 작은 투쟁들은 결국 ‘민주주의’를 향한 민중들의 거대한 행진이었다. 80년 광주에서 우리는 동지들의 죽음을 목도했지만, 살아남은 자들은 살아남았다는 사실이 주는 부끄러움을 민주주의에 대한 책임감으로 승화시켰다. 80년대의 거대한 흐름이 마무리 된 후, 90년대 민중운동은 보편적인 지향성을 상실한 채 끊임없이 표류해오지 않았는가? 이제 이러한 현실에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 오로지 ‘보편적인 투쟁’ 속에서 민중들의 광범위한 연대를 이끌 수 있고, 희망을 만들 수 있다.

또 우리는 노무현 정권의 지지도가 끊임없이 추락하고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라는 식의 시니컬한 우스갯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리는 이 때, 反노무현 전선을 강화하는 것의 정세적 의미를 다시 한 번 확인해야 한다. 현재 노무현은 만인의 희화화 대상이 되고 있다. 하지만 이는 문제의 원인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생산적인 흐름으로 이어지지 않은 채 감정적인 적대와 원한, 증오만을 재생산하면서 오히려 퇴행적인 모습을 띠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정권 퇴진 기치에 대한 맹신에서 벗어나, ‘노무현 정권 퇴진’의 기치를 진정으로 ‘정세적’으로 만들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라는 식의 원한과 적대가 어떻게 정치를 불가능하게 하고 운동을 후퇴시키는지 우리는 이번 5.31 지방선거에서 확인하지 않았는가? 우리는 노무현이 왜 퇴진되어야 하는지, 그 이유를 명확하게 폭로할 수 있는 투쟁을 벌여나가야 한다. 노무현 정권 퇴진!의 기치가 신자유주의 반대!의 기치와 짝이 되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정권 퇴진 투쟁을 전면에 내세우는 것은, 어떤 이가 대통령이 되든 민중을 탄압할 수밖에 없는 현재의 사회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고 민중들의 대안 세상을 만들자는 강력한 의지의 표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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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 반대! 노무현 정권 퇴진! 의 기치로, 민중의 강력한 반격을 만들어 나가자! 신자유주의 위기관리정권을 심판하고, 대안세계를 만들어나가자.

Posted by 행진

2006/09/07 07:39 2006/09/07 0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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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호] 4호를 발간하며

다들 개강 잘 하셨나요?

이번 뉴스레터 4호는 '신자유주의 반대! 노무현 정권 퇴진!'을 위한 특집 뉴스레터입니다. 다들 이번 뉴스레터를 받아보시면서 조금이라도 더욱 힘을 얻으셨으면 합니다. 그것만으로도 이번 뉴스레터는 제 역할을 다한 것이겠지요.

이번 뉴스레터에서는 "왜 우리가 노무현 정권 퇴진 투쟁에 나서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특집1, 특집2 이렇게 두 개의 글에 걸쳐서 실었습니다. 첫 번째 글이 구조적, 역사적 분석에 좀 더 치중했다면, 두 번째 글은 2006년 하반기 현 시기의 과제를 중심으로 서술하였습니다. 물론 궁극적으로는 같은 말을 하고 있는 것이지요. 신자유주의 위기관리 정부, 인민주의 사기 정부를 우리 손으로 끌어내립시다. 그리고, "누가 대통령이 되든 상관없이 민중들을 감히 깔볼 수 없는 사회 구조, 민중의 의지가 실현되는 민중의 세상"를 우리 힘으로 만들어나갑시다! 특히 또 다시 내년에 대선을 앞두고 있는 지금, 우리는 이 말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고민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페미니즘 텀에서는 이번 선봉대에 대한 전반적인 평가를 담았습니다. 모두들 꼭 파일들을 다운받아 하나하나 꼼꼼하게 읽어보고, 각 단위에서 이에 대한 논의를 활발하게 이끌어나갔으면 합니다. 각각의 평가글들이 단순히 일개의 '사건'을 보고하는 차원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공동체에서 페미니즘의 원리, 성차의 윤리를 구현하기 위한 '뼈와 살'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페미니즘 없는 대중운동의 활성화는 '어불성설'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습니다. 평가글 쓰신 동지들, 고생 많았습니다. 그리고 여성노동자권리목록 작성에 참여한 모든 동지들도 수고 많았어요. 그간 다소간 모호하게 인식되었던 '여성노동권'을 보다 구체적으로 사고하고 실천하게 된 계기라는 점에서, 이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해도 좋을 것입니다. 앞으로 더 많이 고민하고, 실천합시다.

그리고 2006 여름문화학교 수기를 써주신 관악의 미경 동지께 모두들 박수를~ 짝, 짝, 짝! 미경 동지의 수기와 함께, 문화학교에 대한 전반적인 평가를 담은 중운위 안건지 또한 모두들 꼭 읽어보세요. 그리고 싸이월드의 여름문화학교 사이트에 가보시면, 기사에 소개한 것 외에도 많은 사진들을 보실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학생행진 회원이신 M 동지께서 기고글을 흔쾌히 써주셨습니다. '폭력'이라는 아주 민감하고 어렵고 또 철학적인 주제에 대해 용기를 내고 자신의 생각을 적어주신 M 동지께 다시 한 번 감사하다는 말씀 드립니다. M동지께서 말한 대로 그 글은 어디까지나 개인의 의견을 담은 소견서입니다. 따라서 다른 방식의 사고와 실천도 가능할지 모릅니다. 앞으로 함께 많은 고민 만들어갔으면 합니다.

아, 신문스크랩한 것도 시간날 때 하나하나 읽어보세요.^^

노무현 퇴진 투쟁의 승리를 위하여, 끝으로 노래 하나를 첨부합니다.(다들 스피커를 켜보세요.) 이 노래는 윤선애 씨가 '러시아에 대한 명상'이라는 공연에서 불렀던 '사랑'이라는 노래입니다. 이 음악 들으면서 다들 한 템포 여유를 좀 갖고 쉬어갑시다. 물론 대안적 세계를 만들기 위해 앞으로 더욱 치열하게 싸울 것을 함께 결의하면서.^^

Posted by 행진

2006/09/07 07:30 2006/09/07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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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1 지방선거가 끝난지도 이제 두 달이 훌쩍 넘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지방선거에 대한 토론의 중요성은 조금도 줄지 않았다고 확신한다. 따라서 동지들께 아래의 토론제안문을 드린다. 그리고 각 단위에서 이에 대한 입장을 적극적으로 모아갈 것을 함께 결의하고자 한다.

이번 지방선거는 그 결과 면에서나 아니면 과정 면에서나 여러모로 많은 고민거리/토론거리를 안겨주었다. 학생행진(건)에서는 관련 주제 중 비교적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을 뽑아 이에 대한 초벌적인 입장을 아래 토론문에 담았다.

참고로, 토론문의 목차는 다음과 같다.

제목 : 5.31 지방선거 결과 분석 - 저들의 위기를 우리의 기회로!
들어가며
지방선거 분석에 앞서 공유해야 할 대전제 하나
열린우리당의 참패
한나라당의 싹쓸이
진보정당의 부진
여성당선자 대거 등장
소결 : 저들의 위기를 우리의 기회로!

위 글은 어디까지나 ‘초벌적’인 입장, 즉 ‘초안’에 불과하다. 따라서 동지들의 활발한 논의와 의견개진 속에서 얼마든지 수정될 수 있는, 그런 ‘열린’ 성격의 문서이다. 그리고 실제로 각각의 주제들은 만만치 않은 논점들을 담고 있으며, 이는 단순히 몇 쪽의 문서만으로 정리될 수 있지는 않을 것 같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면… ‘여성당선자의 대거 등장’이 가져오는 효과들을 그 자체로 100% 긍정적이라든지, 혹은 100% 부정적이라든지 이렇게 일률적으로 판단할 수는 없을 것이다. (마치 ‘여성들의 투표권 쟁취’가 불러일으킨 효과에 대해서 아주 단순하게만 단정지을 수는 없는 것처럼…) 이런 상이한 판단의 가능성들을 함께 충분히 고려하면서, 풍부하고 상상력 넘치는 논의가 이루어졌으면 한다. 물론 이렇게 이루어지는 모든 논의와 정정의 최종 목표는 바로 ‘대중운동의 활성화’일 것이다.

상황은 여러모로 비관적인 것으로 보이지만, 저들의 위기를 우리의 기회로 만들 가능성은 아직 충분하다고 본다. 그렇기 때문에 낙관도, 비관도 어쩌면 무의미할 것이다. 현실에 대한 냉철한 분석 속에서, 대중운동에 대한 뜨거운 열정과 헌신의 근거를 발견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그럼 동지들의 건투를 빈다! 투쟁!

ps1. 분량이 만만치 않게 느껴질 수 있겠다. ‘5.31 지방선거’ 결과에 대해 논한다는 것은 그만큼 어려웠다. 동지들의 양해를 부탁드린다.

ps2. 본 토론문이 쓰여진 시기는 7월 초중순이다. 몇 가지 사정으로 인해 글이 늦게 발표되었다. 따라서 시간이 지남에 따라 미처 서술되지 못한 최근 한국 정치의 중요 현안들이 있을 수 있겠다. 이 점을 유의하면서 토론문을 읽어주셨으면 좋겠다.

Posted by 행진

2006/08/14 07:18 2006/08/14 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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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하대 경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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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천 지역사회 문화교육터 '언덕을 오르는 바닷길' 사무실에서 11시에 기획단을 만나기로 했다. 다행히 회의는 2시전에 시작할 수 있었다. ‘언덕을 오르는 바닷길’ 활동가들의 도움을 받아 기획단 사전 워크샵을 진행했다. 수 백 장의 사진을 슬라이드로 보고는 그 중에 기억나는 사진을 각자 한 장 씩 골랐다. 그 사진을 고른 이유와 느낌을 서로 이야기하며, 서로에 대해 알아가고 이해하는 시간을 가졌다. 사전 워크샵은 결국 세상 속에서 나의 위치를 찾는 작업이였는데, 자기의 사진에 자신을 생각을 담은 이야기도 지어보고, 이야기 속에 있는 세상을 지도로 만들었다. 마지막으로 지도 속에서 자신의 위치가 어디쯤인가 이야기했다. 서로의 지도를 연결하자 한 사람이 그린 큰 지도처럼 보였고 다들 놀라워했다. 기획단 사전 워크샵에서 우리는 무언가를 배우기보다는 내 삶과 나의운동과 서로 얼마큼 떨어져 있는지 생각하게 됐다.

# 구로 애경백화점에서 12시쯤 만났다. 기획단원들의 동선을 그린 결과 구로가 가운데 쯤 이였다. 몇 시에 만나기로 했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백화점 어디쯤에서 조그만 테이블에 5명이 앉아 사전 워크샵때 진행된 이야기들을 정리했다. 왜 문화적으로 운동이 재구성되야하는지 서로 이야기를 했다. 문화운동이 뭔지 제대로 아는게 없어서 회의는 4시까지 이어졌다. 이야기가 풀리지 않자 회의 장소를 근처 맥주집으로 옮겼다. 술을 먹어도 별로 달라진건 없었다.

# 일상에서 운동을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정세적인 활동과 집회만으로 내가 활동하는 이유를 찾을 수 있을까? 여성주의를 이야기 한다면 활동가가 아닌 사람들 사이에서도 여성주의를 실천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평화를, 전쟁에 반대하는 평화를 이야기 한다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평화적 권리도 이야기해야 해야하지 않을까?

구체적인 대답을 필요로 하는 무수한 질문들이 생겼났다. 여름 문화학교는 우리가 해결할 수 없는 질문들을 뜻이 있는 자들과 공유하기 위한 것이다. 중요한 건 상상력을 발휘하는 것일 게다. 벌써 이런 고민을 실천적으로 해결하는 활동가들이 있다. 돕고 살자.

# 활력충전소 마지막날 정세토론을 때려치고 회의를 했다. 뒤풀이 시작하기전에 회의를 끝내는 게 계획이였다. 우리의 일상과 맞다아 있는 주제들을 몇 개 정하고 하나씩 맡아 준비하기로 했다. 평화, 여성, 노동, 빈곤, 대학문화, 가족이 주제로 정해졌고 사다리를 통해 하나씩 가져갔다. 이제 부터는 힘들고 괴로운 실무의 시작이다.

# 중앙대에서의 회의는 답답했다. 무엇을 할 지, 또 할 수있을지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에서 같은 이야기, 엉뚱한 이야기, 쓸데 없는 이야기들만 잔뜩했다. 결국은 각자가 기획한 텀이 어떤 마술을 발휘할까가 아니라 과연 이게 가능할 것인가하는 실무이야기만을 주로 했다. 우리의 상상력이 바닥났다는 사실에 더 답답해졌다.

# 문화운동은 문화활동가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문화운동은 우리의 삶을 더 긍적적으로 바꾸는 일이다. 누구라도 필요한 자가 해야 할 일이다. 문화운동은 문화제를 하고, 문화제에서 공연을 한다고 해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이제부터 ‘난 문화활동가가 아냐’ 하고 문화적 상상력을 남에게 미룬다면 그 사람의 자질을 의심해야 한다. 집회를 좀 더 나은 방식으로도 만들어보고, 선전전을 더 잘 할수 있는 방식을 고민해보는 것이다. 문화운동은 사람을 만나는 방식을 민주적으로 바꾸는 것이다. 내가 가져야할 문화적인 권리를 남과 공유하는 것이고, 공유할 수 없는 구조라면 싸워서 바꾸는 것이다. 우리의 일상 모든 것이 문화이다.

이런 말도 있지 않은가~ “당당하게-일상의 모든 것과 싸워라.” “문화를 바꾸면 세상이 바뀐다.” (인천 노동문화제의 이름들이다.)

# 평화, 여성, 빈곤, 노동, 대학문화, 가족. 따로 떨어져 있는 주제가 아니란 걸 알 수 있을까? 모두 우리 삶의 일부분이다. 인간이 또 다른 인간과 더불어 살아가는 모든 방식이 이 여섯 개의 주제에 들어있다. 기획을 하며 우리가 생각한 것은  따로 떨어져 있는 이 주제들을 우리의 삶, 나의 삶속에서 하나로 인식하는 것 이였다. 삶속에서 각각의 주제들이 하나로 인식될 때 우리의 운동이 제대로 풀려나갈 수 있지 않을까

# 여름 문화학교를 준비하는데는 시간이 많이 걸렸다. 여름문화학교의 이름, “여행”을 짓는데도 몇 시간이 걸렸고, 이름을 짓기 위해 사람들이 모이는 데는 그것보다 더 많은 시간(물론 모든 회의 때마다 지각한 시간을 합친것이다. 오해하지 말기를....)이 걸렸으며, ‘여름’ ‘문화’‘학교’를 고민하고 기획하는데는 앞에서 소요된 시간의 몇 배가 더 걸렸다. 이번 여행을 준비한 시간이 결코 헛되지 않기를 여행 기획단을 대신해 빌어본다.

 # 마지막으로, “여행”에 관심있어 하는 사람들을 위해 그것이 탄생하기까지 간단하게 알아둘 필요가 있겠다. 처음 고민을 하던 것은 ‘여름문화예술학교’였다. 과거 ‘좋았던’ 한때를 보냈던 문예패가 싸그리 망해가고 있는 지금, 남은 사람들이라도 모여서 문예역량도 강화하고 문화운동에 대한 고민도 함께 나누는 워크샵을 기획했었다. 하지만 그간 수십번의 방학동안 진행된 워크샵을 한번 더 진행하는 것이 별로 도움될거 같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문예동아리들만의 워크샵이 아닌 활동가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문화워크샵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활동가들의 일상을 문화적으로 재구성하는 것이 우리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았으니 판단은 아직 이르다. 괜찮으면 또 하고, 아니다 싶으면 다른 거 고민하자.

Posted by 행진

2006/08/14 07:11 2006/08/14 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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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SUD연합노조 대표, 아닉 쿠페 초청 강연회를 다녀와서


전국학생행진(건) JC

지난 8월 8일 전교조와 철도노조의 주최로, 프랑스에서 ‘사회운동적 노조주의’를 실천하고 있는 노조연합체인 SUD노조의 강연회가 있었다. 아닉 쿠페가 설명한 것들, 예컨대 프랑스의 대표적인 노동운동조직들이 드러내고 있는 문제점들이라든가 또는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로 인해 프랑스 사회가 겪고 있는 많은 문제들은 한국사회의 현실과 매우 닮아 있었다. 반면, 기존의 프랑스 노조운동과는 다른 대안적인 실험과 사회적인 투쟁을 통해서 점점 성장하고 있는 SUD노조의 문제의식과 성과들에서, 우리는 한국의 사회운동과 노동자운동이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인가에 대해 많은 시사점을 얻을 수 있었다. 짧은 지면이지만, SUD노조의 문제의식과 실험을 살펴보면서 한국의 노동자-사회운동의 새로운 전망에 대해서 고민해 볼 수 있도록 하자.

1. 프랑스 노동운동의 지형과 SUD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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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는 공식적으로 인정되고 있는 5개의 노조연합체가 있다. 대표적으로, 신자유주의를 인정하는 토대 위에서 일정한 완화와 개혁을 주장하는 입장을 갖는 CFDT가 있고, 신자유주의를 거부하기는 하지만, ‘전투적 코퍼러티즘(노조원의 임금과 노동조건 등을 중심으로 투쟁하는데, 이것의 목적은 보다 유리한 협상 조건을 만들기 위한 것이다.)’을 통해 소속조합원들의 실리를 중요하게 사고하는 경향의 CGT가 있다. 그 외에도 3개의 노조연합체가 더 있는데, 오늘 소개하려고 하는 SUD노조는 이러한 프랑스의 일반적인 노조들과는 사뭇 다른 입장과 지향을 가진 노조연합체이다. 단적으로 SUD는 명확한 반신자유주의의 입장에서 강력한 사회적 투쟁을 통해 자본에 맞서는 사회운동적 노동운동을 지향한다.

프랑스의 노조운동은 25년 전인 81년, 좌파정부인 미테랑 정부가 들어서면서부터 두 가지 지점에서 위기를 경험하게 되는데, 이를 기점으로 노동조합운동들도 신자유주의에 대한 입장차가 명확해지기 시작한다.

첫 번째는 신자유주의가 프랑스 사회에 본격적으로 도입되어 사회보장이 축소되고, 노동의 불안정화가 심화되면서 임금노동자들이 분열된 것이 그것이다. 이를 통해, 대기업-남성-정규직노동자들과 영세-여성-비정규직노동자들 사이에 균열이 생겨났다. 기존의 노조연합체는 이러한 균열을 극복하지 못하고 자조직 노조원들(대기업-정규직-남성 노동자들 중심)의 이해를 방어하는데 치중하게 됨으로써 분열을 확대하였다.

이것과 이어지는 두 번째 위기는 정치적인 것이라고 볼 수 있는데, 81년 좌파정부와 노조연합체들이 긴밀한 협조체계를 가지면서, 미테랑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 도입 과정에서 이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로 인해 좌파를 비롯한 노동자운동 전반은 대중적인 신뢰를 잃게 되었으며, 프랑스의 주류 노동조합 및 좌파정당들은 신자유주의에 대한 효과적인 비판도 하지 못하고 점차 대중과 유리된 채 보수화/관료화되어갔다.

이러한 상황에서 SUD노조가 만들어지게 되었는데, SUD노조가 만들어지게 된 1988-89년은 프랑스에서 채신노조를 비롯해 각종 공공기업에 대한 민영화가 추진되던 시기였다. 당시 채신노조의 상급단체인 CFDT는 이러한 민영화를 채신부문의 적절한 현대화 정책이라며 찬성을 했고, 이에 반발해 민영화 반대투쟁을 조직했던 지도부와 조합원들을 축출시켰다. 이것을 계기로 해서, 축출된 노조원들을 중심으로 기존의 노조운동과는 확연히 다른, 그리고 반신자유주의적 이념과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는 새로운 노조연합체의 건설을 고민하게 되었던 것이다.

2.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맞서는 SUD노조의 지향


SUD노조는 반전-대안세계화, 빈곤-불안정노동에 맞서 민중의 사회적 권리를 확장하는 운동, 여성에 대한 차별과 억압에 맞서 여성의 권리를 확장하는 운동을 지향하고 있다. 우선, SUD노조는 프랑스 대안세계화운동의 표상이기도 한, ‘ATTAC(금융거래과세시민연합)’이 건설될 당시부터 이것의 주요한 일원이었으며, 지금까지 ‘ATTAC’과 긴밀한 연계를 맺으면서, 대안세계화운동을 확장하는데 기여하고 있다. SUD노조는 신자유주의 정책가들이 말하는 이데올로기들과 정책들을 비판하고, 새로운 비젼을 제시하는데 있어, ‘ATTAC’에 참여하고 있는 지식인들의 역할이 매우 중요함을 인식하고 있고, 이 단체와의 공동투쟁을 벌여나가고 있다. 이러한 교류는 SUD에게 뿐만 아니라, ‘ATTAC’에게도 도움이 되는데, ’ATTAC’에서 제시하는 대안과 비판을 대중 속에서 확장하는데 있어, SUD의 사회운동적 기반과 투쟁이 유의미한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SUD에서는 이렇듯, 대안세계화운동을 확장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는데, 그것은 자본이 초민족화 되고, 사회곳곳의 기반을 파괴하는 신자유주의에 맞서는 다양한 국제적인 운동들이 ‘대안세계화’운동을 매개로 교류하고, 상호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SUD에서는 자신의 소속노조의 노동조건을 방어하는 경제적 투쟁을 넘어서, 환경·빈곤·실업·이주노동자문제 등 여러 문제에 적극적인 연대투쟁을 벌여나가고 있다.

또한, 프랑스 사회 역시도 신자유주의 이후, 여성의 빈곤화가 심화되고 있는데, SUD노조에서는 이러한 여성노동자들의 권리와 그러한 권리를 정당화하는 사회전반의 여성 억압적이고, 성차별적인 가부장적 구조에 맞서 여성권을 확장하는 문제 역시도 주요하게 고민하고 있다. 단적으로, SUD노조에서 진행되는 일종의 노조원 교육프로그램에서, 여성이 처한 현실과 사회적으로, 그리고 노동자운동 내에서 여성들이 겪고 있는 이중적인 차별과 관련한 교육, 그리고 여성권을 확장하는 운동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인식할 수 있도록 하는 교육내용이 필수적인 항목을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이유들로 SUD연합노조는 다른 노조연합체에 비해서 여성들의 비율이 높은 편이라고 한다. 물론, SUD노조 역시 이와 관련해서 명확한 전망과 해답을 가지고 있지는 못하며, 앞으로 더욱 해결해 나가야 할 과제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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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실천들뿐만 아니라, SUD노조가 표방하고 있는 기본정신은 단적으로, SUD노조의 이름에서 표현되고 있다. SUD노조의 S는 Solidarity, 즉 ‘(사회운동들 간의)연대’를 의미하고, U는 Unity, 즉 ‘노동자(민중)의 단결’을 의미하며, SUD노조의 D는 Democracy, 즉 ‘민주주의’를 의미하고 있기 때문이다. 앞서 지적했던 것처럼, 사회적인 문제들에 대한 사회운동들과의 연대 및 노동자(민중)의 단결의 문제뿐만 아니라, ‘민주주의’의 문제도 SUD노조가 주목하고 있는 매우 주요한 정신이다.

SUD는 노조 역시 ‘민주주의’의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입장을 명확히 하고 있다. 이것은 앞서 설명했던 것처럼, SUD노조가 처음 건설되게 된 배경 중 하나가 노조조직 내의 관료주의였다는 것으로도 짐작할 수 있다. 때문에, SUD노조는 투쟁 속에서 새로운 민주주의를 실험하는 것을 중요한 자기과제로 삼고 있는데, 정보와 지식의 균형 문제, 그리고 권력을 조합원들이 통제하는 문제를 중요하게 사고한다. 노조의 민주적 운영을 위한 SUD노조의 몇 가지 노력들을 살펴보면, 우선, SUD에서는 소속된 모든 노조가 노조의 규모에 관계없이, 단위 노조마다 한 표의 권리를 갖고 있다. 가령, 17,000명의 조합원을 가진 노조와 800명의 조합원을 가진 노조가 똑같이 한 표의 결정권만 갖는다는 것이다. 또한, SUD노조는 사용자 측과의 협상과정이나, 현안문제 등을 조합원들에게 투명하게 공개하고 있으며, 조직에서 권력이 형성되고, 위계가 형성되는 주요한 원인으로 지적(知的) 차이를 주목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조합원 교육프로그램을 가지고 있다. 이를 통해서, 조합원 개개인이 정세를 판단하고, 자신의 입장을 조직에 제기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는 것이다.

3. 몇 가지 쟁점에 대한 SUD노조의 입장


지금까지 언급했던 것 중에서 또 우리가 주목해서 봐야 할 몇 가지 쟁점이 있다. 먼저, 국제연대과 관련한 SUD의 문제의식을 살펴보면, 각종 자본의 국제기구와 금융의 세계화에 맞서서, 자신의 해당 기업과의 협상과 타협을 뛰어넘어 국제적인 자본의 횡포와 착취에 맞서서 연대투쟁을 만들어내고 이를 통해 노동자들이 단결하는 문제가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날 강연에서 인상 깊었던 것 중 하나는 프랑스계 기업 라파즈-한라의 하청기업인 우진산업 노동자들이 이 자리에 참석해 라파즈-한라의 야만적인 착취와 횡포에 공동으로 맞설 수 있는 방안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는 것이다. 이 자리에서 아닉 쿠페는 당장에 이런저런 것들을 약속할 수는 없고, 앞으로 지속적으로 교류하면서 더욱 고민해보자는 것을 전제하면서, 앞으로 프랑스로 돌아가 라파즈를 비롯한 프랑스계 초민족자본의 행태에 대해서 프랑스에서도 이를 이슈화시키고, 해당 기업의 노조를 통해서도 이 문제에 개입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이야기 했다.

다음으로, 프랑스에서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청년세대들의 정치적인 무관심이 주요한 문제라고 한다. 높은 청년실업과 청년세대들의 기존 노동운동에 대한 반감이 주요한 원인인데, 이와 관련해서 SUD노조는 몇 가지 실험들을 진행하고 있다. 우선, SUD노조에는 학생조합이 존재하는데, 이는 SUD만의 특수한 조직구조이다. 소위,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학생노동자들을 조직하고, 이를 통해서 이들이 사회적인 문제와 노동권의 문제에 보다 긴밀하게 연결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다음으로는, SUD가 주목하고 있는 대안세계화운동에 청년들의 관심과 참여가 높은 편인데, 이러한 운동과 긴밀히 연계하고 있는 SUD노조는 이 운동들 속에서 보다 진취적이고, 활기찬 조직으로 변화되어 가고 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SUD노조는 젊은이들에게 노조에서 주요한 역할을 맡도록 보장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서, 노조에 보다 새로운 문제의식을 환류 시키고, 젊은 세대들의 능력을 제고하는데 기여하고 있다. 이것은 한편으로 SUD노조가 한 사람이 장기간, 그리고 두 가지 이상의 중책을 맡지 못하도록 제도적으로 제한하고 있는 것에 의해 가능한 부분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SUD노조는 노동자운동이 자본주의에 맞서 사회변혁적 지향을 갖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현실사회주의의 붕괴와 자본주의의 위기에 직면하면서, 프랑스 사회에서도 사회변혁 운동을 지향하던 세력들이 신자유주의 정책을 주도하는 세력이 되거나, 이러한 세력의 유력한 파트너가 되어버렸다. 이들이 추진하는 신자유주의적 정책과 금융자본의 이익을 보장하기 위한 사회재편은 민중들의 권리를 파괴하고, 불안정한 삶을 강제하는 방향으로 추진되기 때문에, 대중들로부터 신뢰를 잃어버리게 되었다.

프랑스의 대표적인 정치세력인 사회당(과 깊은 관련이 있는 CFDT)을 비롯해, 프랑스 공산당(과 깊은 관련이 있는 CGT)은 이러한 신자유주의를 주도하거나, 무기력하게 특정 집단(자신의 소속노조이거나, 노조내에서 많은 지분을 갖고 있는 세력)의 이익을 방어하는 데 급급한 세력이 되어버렸다. 뿐만 아니라, 정당은 노조라는 대중적인 기반을 이용해서, 정치적인 권력을 획득했는데, 이러한 노조와 정당간의 관계 속에서 노동자운동은 더 이상 사회의 대안을 형성하는 세력으로서의 역할과 지위를 상실하게 되고, 노동자운동의 의제와 범위를 한정하고, 노동자들의 단결된 힘과 투쟁을 봉쇄하게 된다.

따라서 SUD노조는 정당과의 관계에 있어서 독립적인 관계를 갖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사고하고 있으며, 정당의 정책이나, 입장이 노조의 문제를 결정하는데 개입하는 것을 거부한다. 그렇다고 해서, 이들이 정당 자체를 거부하는 것은 아니고, 사안에 따라 입장과 방향이 같을 때는 언제나 함께 투쟁하고 있다. 이는 CGT나 ‘ATTAC’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노동자운동이 자신의 사회변혁적 전망과 목표를 가지고 있어야 하며, 노동자운동을 단순한 노동 조건의 개선과 방어를 위한 것에 국한시킬 것이 아니라, 노동자운동이 대안형성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SUD노조는 ‘반신자유주의 헌장’같은 것을 이에 동의하는 다양한 단체들과 세력들과 함께 수립하고, 이것을 민중적인 의제, 그리고 대안으로서 제기하는 투쟁을 벌여나가는 한편, 이에 동의하는 정치 세력과 공동의 행보를 취할 수 있는 방안들을 고민하고 있다고 한다.

4. 한국 노동자운동에 시사하는 바


IMF를 기점으로 한국사회의 노동자운동이 처한 현실 역시, 프랑스의 상황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의 위험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가지고, 대안세계화 운동과 결합된 사회운동적 노동자운동이 생겨나고 있지는 않은 실정이다. SUD노조의 문제의식과 실천을 통해 한국의 노동자운동의 현실과 전망에 대해서 고민해보도록 하자.

먼저, 남한 노동자운동의 위기를 구성하고 있는 문제 중에서 대공장-남성-정규직 노동자를 중심으로 한 코퍼러티즘적 노동운동의 문제를 들 수 있다. 신자유주의는 저항적 토대가 취약한 부문을 중심으로 구조조정을 단행함으로써, 불안정 노동을 심화시키고, 이를 점점 확대해 나가는데, 한국의 노동자운동은 이러한 자본의 전략에 맞서는 효과적인 투쟁을 만들지 못했다. 여전히 대규모 조합원 동원이 가능한 노조를 중심으로 노동자운동이 진행되었고, 그로인해, 이른바 영세-여성-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노동자운동에서 주변화 되어, 자본이 만들어낸 노동자들 내부의 균열은 확대될 뿐이었다. 뿐만 아니라, 진보정당과의 깊은 연계 속에서 동원중심의 일회성 투쟁을 통해 정부와 기업주에 압력을 행사하고, 이를 통해 일정한 양보를 끌어내는 ‘전투적 코퍼러티즘’을 벗어나지 못하면서, 신자유주의의 문제를 사회적인 문제로 만들지 못하고 대중들과 노동자 내부에서 동시에 고립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와 더불어, 최근 민주노총의 산별체계에 대한 논의에 있어서도 한국노동자 운동의 위기의 징후를 읽을 수 있다.  산별 중심으로의 전환은 결국, 기업단위의 경제투쟁을 동일산업부문으로 그 범위를 약간 확장하는데 그치는 것이며, 따라서 노동자들의 협상조건을 조금 더 개선하는 역할 이상을 기대하기 힘들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이러한 전환의 계획 속에는 협상을 주도할 산별 중앙의 역할과 권력이 강화될 수밖에 없고, 산별 체계 내에서 대기업-정규직 노조의 이해가 중심이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지금의 산별체계로의 전환 논의는 여전히 지역에서의 연대투쟁의 강화와 사회적 운동의 확장이라는 문제가 맹점으로 남겨져 있기 때문에 앞서 지적했던 노동자운동의 고립을 넘어서 연대와 단결을 기대하기 힘들다. 따라서, 이러한 시도는 한국 노동자운동의 위기의 원인들을 하나도 건들이지 못하고, 오히려 기층의 노동자들을 더 수동적으로, 그리고 객체로 만들어 결국, 노동자 운동의 자기 해방적 토대를 더욱 더 침식시킬 위험을 안고 있다고 예상할 수밖에 없다.

오늘, 한국 노동자운동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자기 단위 중심의 경제적 이해관계에 국한된 투쟁을 넘어설 수 있는 운동의 기획이 매우 절실하다. 따라서, 신자유주의가 분할하고 있는 차별에 맞서서 노동자-민중의 단결을 도모할 수 있는 운동이 필요하고, 지역-사회적 문제와 쟁점에 다양한 운동들과 연대해 싸울 수 있는 노동자 운동이 필요하다. 뿐만 아니라, 자본주의와 세계화에 맞서 노동자들이 사회변혁의 주체로서 설 수 있는 운동, 대안세계화 운동의 주요한 축을 담당할 수 있는 노동자운동이 필요하다.

이러한 점에서, SUD노조와 같이 사회변혁적 지향을 분명한 자기과제로 갖는 운동, 그리고 역동적인 투쟁 속에서 끊임없는 민주주의적 실험을 하는 한편, 영세-여성-비정규직동자들을 주체화시킬 수 있는 운동, 그리고 여성, 빈곤, 환경, 이민자 문제 등에 대해서 대안적이고, 국제주의적인 연대투쟁을 실천할 수 있는 노동자운동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

Posted by 행진

2006/08/14 07:02 2006/08/14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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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호] 보육노조와의 간담회

전국보육노동조합 교육선전국장 김지희
전국학생행진(건) 회원 JS


현 정부는 출산의 위기를 극복하겠답시고 몇몇 가지 정책들을 내놓고 있지만, 보육을 사회적으로 책임지겠다면 제시된 보육정책들이 또 다시 보육시설 내의 여성노동자들의 착취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이어지는 것은 정말 슬픈 아이러니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에 당당히 맞서 싸우는 여성들이 있기에, 우리는 다시금 용기를 얻는다. 8월 10일 오후 2시, 학생행진에서는 보육노조에서 일하시는 분을 찾아뵙고 함께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인터뷰 내용을 요약해서 싣는다.

행진    안녕하세요? 저희는 전국학생행진(건)입니다. 간단한 소개 부탁드릴게요.

보육노조    저는 전국보육노동조합에서 교육선전국장을 맡고 있는 김지희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저희 노조는 2005년 1월에 출범했습니다. 아직 얼마 오래되지 않았지요. 보육을 담당하는 어린이집에서 일하는 모든 분들(교사, 청소부 등 시설관리노동자 등)이 들어올 수 있는 노조입니다. 현재 어린이집에는 생후 4개월부터 초등학생 방과 후까지, 굉장히 넓은 연령대의 아이들이 있습니다. 근무시간이 오전부터 오후까지 형식적으로 정해져있다고는 하지만, 사실 근무형태는 매우 다양합니다. 덕분에 근무시간 같은 경우도 대단히 탄력적이에요. 아이를 토요일에 맡겨 월요일에 찾아가는 사람들도 있구요, 그러면서 어린이집이 '24시간제'로 운영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합니다. 이 경우 야간교사를 따로 둡니다. 이 야간교사들은 저녁 7,8시부터 그 다음 날 아침 7,8시까지 밤새 12시간 노동을 하게 되지요. 임금의 경우 최근 어떤 통계를 보니 월 100만원이 조금 넘는다고 나왔는데, 현장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100만원이 안 되는 것 같아요. 전형적인 ‘저임금 장시간 노동’이지요. 그리고 거의 99%가 여성이지요. 여성가족부에서 조사한 남녀 비율 통계를 보니 아예 ‘100% 여성’이라고 나와있더군요.^^ 전형적인 여성 중소영세사업장이에요.

행진    24시간 노동이라… 참 충격적이군요. 이 외에도 교사들에게 주어진 ‘실제’ 점심시간은 11.1분에 불과하다는 이야기도 접했습니다. 아이를 돌보는 업무의 특수성이 반영된 것이겠죠. 노동시간과 非노동시간의 구분이 모호한 돌봄 노동의 특성이 잘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여성이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라는 인식 때문에 가치평가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 같구요.

보육노조    그렇죠. 특히 요즘 많이 생기고 있는 간병이라든가, 보육이라든가 이런 업무들은 사회의 약자들이 주로 담당해온 일이에요. 그리고 집안에서 가사노동을 하는 여성이 바로 그 약자였구요. 요즘은 간병과 보육을 나름대로 ‘사회화’한다고 하면서, 직업군이 창출되어 왔죠. 특히 IMF 전후해서 맞벌이부부가 이전보다 많이 생겨나면서 보육산업이 일반화되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보육산업이 생기고, 그리하여 보육이라는 것이 ‘노동’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고 하더라도, 그 노동에 대한 가치평가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어요. 간병과 보육 같은 것에 대해서는 “맨날 여자들이 하던거”라고 다들 ‘저평가’하는거죠. 그런데 현실적으로 봤을 때,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람돌보는 일’을 한다는 것은, 경제적으로만 따져봤을 때는 ‘가시적인 수익’이 창출되지 않는다고 여겨지거든요. 그리고 아이를 한 명 돌보는데, 여성가족부의 ‘보육비용 연구자료’에 따르면 만 1세 아동의 경우 최소 70만원 이상이 든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아이들한테 받을 수 있는 돈은 민간시설에서는 법적으로 최대 35만원밖에 안 되지요. 사실 부모들한테 그 이상을 내라고 하는 것이 굉장히 부당한 것이 아니겠어요? 그러면 그 나머지라도 나라에서 책임을 저야 하는 것이지요. 그 책임을 지지 않으면 보육이 말 그대로 ‘버려진’ 사회이고… 그런 입장에서 보면 한국은 보육이 한창 필요할 때에, 정부가 그저 시설 자체만 많이 늘려야겠다는 생각에 이를 정부 책임하에 두지 않고 민간에 모든 것을 맡겨버린 셈입니다. 지금 95% 이상이 ‘민간’ 어린이집입니다. 민간이 운영해서는 안 되는 부분을 민간에게 운영하게 함으로써, 보육공공성 자체도 엄청나게 침해되고 노동자들의 상황도 아주 열악해진 것 같아요.

행진    노동자들의 대부분이 비정규직이라고 봐도 틀린 말이 아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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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육노조    어린이집을 보면, 국공립 어린이집이 4.8%고 나머지가 완전 민간입니다. 그리고 그 4.8%의 국공립이라는 것도 사실은 정부의 직영이 아니라 ‘민간위탁’입니다. 예컨대 건물만 정부 소유이고 그 실제 운영은 민간에서 위탁받아서 하는 식이죠. 절대다수가 민간이라고 보면 됩니다. 그리고 그 운영실태를 보면… ‘근로계약서’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게요. 노조가 생긴 2005년 1월 전후로 사업장에서 근로계약서 작성 붐이 일어났어요. 즉 그 전에는 근로계약서조차 없었던거죠. 그리고 그나마 괜찮은 어린이집, 예컨대 국공립 어린이집들부터 근로계약서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노동조건이 비교적 괜찮다는 곳에서 쓴 근로계약서를 봐도, ‘1년짜리 단기 계약직’에 그쳤습니다. 즉 근로계약서를 써봤자 비정규직이니, 상황이 얼마나 열악한지 알겠지요? 사실 대부분의 민간 어린이집은 아직도 근로계약서 자체가 없어요. 원장이 “내일 나가”라고 명령하면 그냥 나가는 거죠. 이야기하다보니 한 가지 웃지못할 사례가 떠오르네요. 어떤 원장이 하루는 우리한테 전화를 한 다음 “1년짜리 근로계약서가 절실하게 필요한 것 같다.”라고 말하는 거에요. 그러면 우리는 “달랑 1년 쓰고 버릴려고 하나요?”라고 반문했죠. 그런데 그 원장의 답이 가관이었죠. 교사들이 너무 힘들어하면서 1년을 못 버티고 나간다, 그래서 적어도 1년 이상 일을 할 수 있는 강제장치가 필요하다, 이렇게 말하는거에요. 완전히 우리 의도와는 거꾸로 이야기하는거죠. 이만큼 노동상황이 많이 열악해요. 설움도 많구요. 다들 “내가 지금 당장 짤려도 나 대신 내일 누군가가 들어오겠지.”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러니 안정적인 직장이라고 생각을 못하는거죠. 현장의 관리자에게 잘 보이지 않으면 나갈 수밖에 없는 구조이고. 매우 불안정한 사업장입니다.

행진    보육노조의 요구안 가운데, ‘평가인증제’에 대한 보다 자세한 설명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보육노조    일단 ‘평가’라는 말 속에는 맥락이 좀 있는 것 같아요. 요새 워낙 저출산 고령화가 문제라고 많이 왈가왈부 하면서, 심지어 여성가족부도 ‘공공성’이라는 말을 쓰고 있습니다. 정부 부처 중에 ‘공공성’을 쓰는 데는 거의 유일무이하죠. 그리고 그 공공성을 지킨다면서 ‘평가’라는 기제를 도입하겠다고 여성가족부는 말합니다. 하지만 그 ‘평가’라는게 우리가 생각하는 긍정적인 방향과 다른 것 같아요. 현재 존재하는 시설들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를 하고, 그 평가에 따라 그 시설의 환경을 업그레이드를 충실히 하고, 또 민간 시설들의 보육여건이 낙후하면 그것을 국공립으로 전환해서 정부 책임 아래 두고, 이런 식이 아니라… 제대로 된 지원은 하지 않은 채 내부에서 경쟁만 부추기는 식입니다. 현재 평가과정을 받는 것이 ‘필수’는 아니라고 하는데, 원아모집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평가인증마크’가 필요하기 때문에 사실상 半강제적입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평가를 수행한 후, ‘평가미달’인 것은 보육시장에서 ‘날려버리겠다’, 이런 의도를 깔고 있는 것입니다. 현재 많은 아이들이 각각의 시설에 다니고 있고 그 시설이 없어지면 갈 곳이 사실상 없지요. 그런데 정부는 각각의 시설을 정상화하려고 하기는커녕 날려버릴 생각만 하고 있는 것입니다.

행진    그 평가의 항목에는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이 있나요?

보육노조    인천 같은 곳을 보면, 인천시가 ‘처우개선비’라는 수당과 관련시키면서 그 평가에 대해 굉장히 준비를 많이 하고 있는 것 같아요. 평가를 위해 한 1년 정도 기획회의를 먼저 한다고 하네요. 외관이나 이런 것들도 다 뜯어고쳐야 하고, 청소도 해야 하고, 또 보육과정에서 교사와 아이들의 상호작용 같은 것도 중요하게 다뤄진다고 합니다. 감독관이 파견되서 이를 살펴본다고 하더군요. 이러한 평가 그 자체를 나쁘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으니, 보육노조 안에서도 많은 이견과 토론이 있었습니다. 현재 노조 내에서 어느 정도 합의가 이루어진 부분은, 평가항목들 자체가 문제가 있다기보다는 지금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평가라는 것이 실제 필요한 지원은 하지 않은 채 경쟁만 부추기는 등 허구적인 면이 많다는 점입니다. 그러면서 노동자들만 죽어나는 거구요. 현장에서 들려오는 이야기들을 말씀드릴게요. 인천의 사례들을 보면, 평가인증을 준비하는 기간에도 아이들은 당연히 시설에 오지 않겠어요? 그러니 일단 아이들 보육은 하던데로 한 다음, 아이들을 보내고 나서 평가 관련된 서류준비에 모든 사람들이 동원되는거죠. 준비해야할 서류가 대단히 많다고 하더군요. 또 외관도 좀 보기좋게 고치고 청소도 해야 한다고 하면서 주말에 많은 선생님들이 동원되고 있다고 합니다. “주중에는 보육노동을 하고, 주말에는 건설노동을 한다”라고 다들 그래요. 이러니 아이들 보육에 집중을 잘 할 수 있을리 만무하지요.

행진    이번 <새로마지 플랜>을 봐도 평가인증제에 대한 언급이 있는데, 어떤 변화가 생기는 건가요?

보육노조    작년부터는 시범으로 했고 올해부터는 본격적으로 시행한다고 하는데, <새로마지 플랜>에서 ‘평가인증제’ 관련하여 뭔가 새로운 내용은 없는 것 같아요. 보육노동자 입장에서 봤을 때 이번 <플랜>에서 걸리는 부분은 두 가지입니다. 바로 ‘기본보조금 도입’과 ‘보육비 상향선 다원화’이지요. 이 두 가지가 제일 많이 걸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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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보조금’에 대해 이야기를 하자면, 아까 아이 한 명 키우는데 적어도 70만원이 든다고 이야기했지요? 그리고 학부모가 35만원만 낸다고 했지요. 그러면 70만원에서 35만원을 뺀 나머지 35만원치가 문제인데, 이 나머지 35만원 부분을 정부에서 대갰다, 이렇게 말하는게 바로 기본보조금이에요. 아이들 머릿수 당 일정액을 정부가 가정에게 지원하겠다는 거지요. 즉, 부모가 내는 돈은 이전에 비했을 때 결코 줄지 않는다는 거에요. 물론 그 동안 그 나머지 35만원분이 제대로 시설에 지원이 되지 않으면서 많은 문제가 생겼죠. 아이들 급간식비를 무리하게 깎고, 또 사람들 인건비를 깎고… 그래서 고질적인 열악함을 벗어나지 못했는데, 이번에 정부에서 선심쓰듯이 말하면서 그 나머지를 (물론 얼마까지 지원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주겠다는 거에요. 사실 아이들 머리수 당 액수를 정해서 학부모들한테 주는 방식은 여러모로 비합리적인 점이 많아요. 만약 한 보육반에 8명이 원래 들어가야 하는데 아이가 다 차지 않아 5명반 들어간다면 3명 분의 지원액의 나오지 않겠죠. 이렇게 기본보조금 지원 수준은 유동적이지만, 반면에 인건비는 고정적입니다. 아이가 5명이든 아님 8명이든 반드시 교사는 1명 이상 필요하거든요. 기본 보조금을 가지고는 임금을 비롯한 각종 문제들을 해결할 수 없습니다. 이는 이미 일본에서도 증명된 것이에요. “학부모들이 원하는 건 아동수당이 아니라 제대로 된 보육시스템이다. 보육시설이 제대로 갖추어져야 여성들의 정상적인 노동이 가능하다." 일본에서는 이런 주장이 일반적이라고 합니다. 아무튼 (시설에 대한 직접 지원 대신) 아동수당이니, 보조금이니 하면서 각 가정에게 직접 돈을 지원하는 방식은, 보육의 공공성보다는 대다수 선거권자인 부모들에게 잘 보이려는 현 노무현 정권의 선택입니다. 어쨌든 기본보조금으로 시설을 정상화하고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개선한다는 것은 저희가 볼 때는 말이 안 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보육료 상한선’ 관련해서는, 2004년 말부터 이미 이야기가 되어온 것이에요. 앞에서 말했듯이, 보육료가 원래 상한선이 있거든요. 그 이상은 보육료를 받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건 보육공공성 측면에서 대단히 중요한 부분이구요. 만약 상한선이 없다면 어디 고급시설은 100만원 이상 받고, 반면 다른 낙후한 곳은 적게 받는 대신 보육환경이 대단히 열악하고, 말그대로 부익부빈익빈이겠지요. 그런데 여성가족부에서 상한선을 없애고 자율화하겠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기본보조금을 받는 곳, 안 받는 곳 이렇게 나눈 다음, 보조금 받지 않아도 된다는 곳에서는 이전보다 상한선을 더 높여서 돈을 더 많이 받을 수 있게끔 한다고 합니다. 결국 상한선을 다양하게 한다는 거고, 이것은 상한선을 없앤다는 말에 다름아니에요.

행진    <플랜>을 보니 ‘국공립 보육시설 확충’에 대한 언급도 있던데, 실현가능성은 어떻게 보시나요?

보육노조    사실 여성가족부는 항상 의지가 없었죠. 이전에도 현재의 4.8% 수준에서 10%까지 높인다고 했는데, 물론 이 자체도 터무니없이 적긴 하지만 예산의 문제로 인해 이마저도 실행되지 않았죠. <플랜> 보면 국공립 확충에 대한 계획이 있긴 있어요. 그런데 몇 %나 될지 모르죠. 참고로 저희는 국공립시설이 적어도 50% 이상은 되어야 공공성이라는 것을 말할 자격이 있다, 이렇게 주장해왔습니다. 그런데 그 %는 차치하고, 과연 이름만 국공립인 것 외에 얼마나 공공적으로 운영이 될지 믿음이 안 가네요. 예컨대 정부 계획을 보면 국공립 시설을 확충하는 것과 더불어, 교사들에 대한 임금지원 비율을 조정하겠다고 합니다. 현재 어린 아이(영아)를 보는 교사들에게는 임금의 80%, 그리고 큰 아이를 보는 교사들에게는 30%를 지원하고 있어요. 그런데 이는 이전의 90% / 50%에서 그 비율이 준 거에요. 그리고 여성가족부 계획에 따르면 2008년에는 모두 0%입니다. 임금 지원이 하나도 없는 것이 과연 어떻게 국공립 시설이 될지 모르겠네요. 인건비가 운영부분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는데… 사실상 ‘민간’인거죠. 상식적으로, 정부 직영이 아닌 것을 가지고 국공립이라 말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또 다시 민간시설에 대해 말하지 않을 수 없네요. 자기 이윤을 챙기려고 불법비리를 저지르고, 교사들을 부당해고 하는 등 민간/민간위탁 시설장들의 횡포와 부정으로 애꿎은 아이들고 부모, 보육노동자들이 모두 피해자가 되고 있습니다. 공공성을 지키기 위해서는 ‘직영’의 방향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하지만 정부는 아직까지는 그럴 의지가 없는 것 같습니다.

행진    <새로마지 플랜>에 대한 간략한 총평 부탁드릴게요.

보육노조    제 개인의 생각을 이야기하자면, ‘저출산 고령화 위기 담론’이라고 상징적으로 이야기하면서 정부가 손쉽게 내세우는 것이 바로 보육과 노인 요양 보험, 이 두 가지입니다. 보육과 노인 요양 모두 민간화되어있는 상황에서 기본보조금 같은 것 주겠다, 이렇게 나오고 있는데, 사실 현실성이 전혀 없는 것이죠. 이도 이렇거니와, 저는 기본적으로 보육 문제를 들고 나오면서 ‘저출산 문제’를 건드린다는 것이 제대로 되었든 되지 않았든 그 영향이 실제로 대단히 미미하고 현실성도 없다고 봐요. 그저 ‘보육’이라는 것이 가장 손 쉽고 가장 외곽에서 건드리기 쉬운 아이템이니까 뭔가를 하는 것처럼 시혜적으로 보여줄 뿐이죠. 저출산 위기라고 말하지만 사실 이는 기본적으로 여성의 문제로 봐야 합니다. 따라서 출산율이 낮을 것을 가지고 사회의 위기를 운운하기 전에, 여성이 자유롭게 자신의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조건을 전반적으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지요. 여성의 문제이기 때문에 여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책, 사회구조를 여성주의적으로 바꾸고 차별을 해소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한 것입니다. 정부가 하고 있는 ‘보육’이나 ‘노인요양’같은 것은 어떻게 되었든 그 영향력이 미미할 뿐입니다.

결국 <새로마지 플랜>에 나오는 각종 경제적 지원이라는 것들은 정부의 무기력한 쇼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것이 여성의 삶을 더욱 더 악화시키는 어떤 새로운 괴물이라고 보기는 좀 그런 것이, 이것이 아니라도 이미 여성들의 삶은 구조적으로 악화될 때로 악화되었죠. 또 사회구조를 바꾸지는 않은 채 계속 이런 식으로 하다가는, 결국 출산과 보육에 대한 여성의 책임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이데올로기’가 강화될 따름입니다. 결과적으로 여성의 일만 더 늘어날 뿐입니다.

행진    ‘가사노동의 사회화’에 대한 보다 발본적인 고민이 필요한데, 저희도 그렇고 다들 어디서부터 출발할지가 막막한 것 같습니다. 일단은 보육노동자들의 투쟁에 열심히 연대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겠어요.^^ 아까 99%, 그리고 정부 통계로는 100%가 여성이라고 나왔다는데, 여성에 대한 제약이 많은 사회구조 속에서, 노동조합을 만들고 투쟁을 조직하는 것 또한 어려움에 종종 부딪힐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보육노조    아무래도 여성이 중심에 설 수 있는 조직, 조직화, 투쟁방향 이런 것에 대한 고민이 많아요. 아직 조합에 가입이 안 된 사람들을 만나고 이 사람들을 조직화를 하는데 어려움이 있는데, 사실 모든 중세 영세 사업장이 같은 경향을 보이는 것 같아요. 예컨대 5인 미만 사업장과 같은 영세 사업장이 많은데, 이 경우 시설장과 교사들, 노동자들 간의 관계가 문제가 되죠. 이중적인 면모를 보이는 것 같은데, 때로는 ‘공동체’성을 강조하면서 관계를 끈적끈적하게 만들어요. 예컨대 “내 딸 같은 애들” 운운하기도 하고. 또 때로는 “니가 이 월급을 받지 않으면 여기가 망한다.”라고 호소하거나, “너 아니어도 여기 들어올 사람 있다. 니가 이런 식으로 나가면 다른 어린이집에 들어가기도 쉬울 줄 아느냐” 식으로 협박도 종종 하지요. 이는 다른 중소 영세 사업장과 양상이 비슷한 것 같아요.

투쟁문화 관련해서는, 아무래도 다수 여성을 포함해서 이런 것들을 접해보지 않은 사람들이면 익숙하지 않을 수 있죠. 팔뚝질하는 거나, 집회 나가는 거나, 전경과 대치를 하는 거나… 물론 이는 시간이 지나면 적응이 가능하긴 해요. 하지만 이 차원을 넘어서, 문화제라든지, 아니면 가두투쟁이라든지 모든 것에 있어서 여성들이 좀 더 주체적으로 나설 수 있는 투쟁방식에 대해서는 또 많은 고민이 드네요.

그리고 노동조합 운영 역시도 바뀌어야 할 부분이 크다고 생각해요. 오히려 이 부분이 앞의 것들보다 더욱 더 적응하기 힘들 것일 수도 있죠. 안에서 성폭력 문제가 생겼을 때 노조가 처리하는 방식들도 변화할 필요가 있고. 이런 부분이 좀 걸리죠. 노조가 운영되는 것을 보면 지침을 중심으로 해서, 위원장의 지시 아래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방식이 많잖아요? 그런데 여성의 입장에서 볼 때 이런 방식이 좀 동화되기 힘든 부분도 있죠. 여성들은 남자들이 한 10분 이야기할 것을 2,3시간 동안 이야기하는 경우도 많고… 우리는 생긴지 얼마 안 된 노조인데, 일단 각 지역에서나 전체 노동조합에서나 좀 어떤 문제에 대해 심도있게 논의를 하고, 각 단위의 입장을 모으는데 시간을 많이 할애하려고 노력해온 편이에요. 그런데 이런 면이 기존의 노조 스피드와는 맞지 않게 보일 수도 있는거고…

행진    말씀 잘 들었습니다. 더 많은 이야기를 듣고 싶은데 시간이 부족하네요.^^ 행진 차원에서도 고민과 실천을 가져가고 싶은데요, 앞으로의 투쟁 계획은 어떻게 되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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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육노조    일단 올해는 여성가족부가 주무부처이기 때문에 여성가족부를 대상으로 투쟁을 계속하기로 노조 내에서 합의가 되었습니다. 일단 8월 25일까지 조합원들이 주축이 되서 1인 시위를 해나갈 것입니다. 그리고 중간에 수요일마다 ‘온라인집회’를 해오고 있구요. 그리고 8월 26일에 전국 집중 집회가 있어요. 행진을 비롯한 많은 분들의 연대 투쟁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9월부터는 서울, 인천, 부산 등 각 지역별로 지자체를 대상으로 한 투쟁을 벌일 예정입니다. 이렇게 투쟁의 경험을 쌓아나가고 정부를 압박하는 것과 동시에, 내년에는 좀 다른 단위들, 예컨대 사회복지노조나 자활노조 등과 연합을 해서 공통의 투쟁을 만들어가면 어떨까, 이런 계획도 있어요.

행진    지금 많은 학생들이 선봉대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이후에 꼭 많은 학생들과 함께 하고 싶네요. 긴 인터뷰 감사합니다.

Posted by 행진

2006/08/14 06:49 2006/08/14 0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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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안보리 결의안 통과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이 한 달이 되어가는 가운데 11일 유엔 안보리에서 ‘레바논 휴전 결의안’이 만장일치로 통과되었다. 이스라엘과 레바논 모두 유엔 결의안을 수용한다는 입장을 대외적으로 밝혔다. 그러나 결의문은 이스라엘군의 즉각 철수를 요구하지는 않았으며 이스라엘은 당분간 군사공격을 지속할 태세여서 실질적인 휴전에 이르기까지는 상당한 진통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미국과 프랑스의 주도로 채택된 이번 결의안은 이스라엘과 헤즈볼라 양측에 적대행위를 중단할 것을 촉구하였지만 전반적으로 이스라엘에 유리하게 작성되어 여러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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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결의안은 1만5천명의 ‘평화유지군’을 파견한다고 밝히고 있다. 이것은 "레바논 정부가 헤즈볼라를 해체하고, 레바논 남부를 통제하도록 돕는 다국적군을 지지한다."라는 이스라엘 외무장관의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스라엘이 주장해오던 것이다. 이처럼 ‘평화유지군’이 난민지원 등의 활동을 벌인다고 하더라도 그 본질적 성격은 이스라엘군의 공격을 막는다기보다는 헤즈볼라의 해체를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결의안은 레바논 내의 모든 무장단체가 무장을 풀고 무기소지와 거래를 전면 중단시킬 것을 담고 있는데 이것은 바로 헤즈볼라를 일방적으로 무장해제시키려는 것으로 풀이한다. 무기소지를 금지하여 무력을 약화시키고 평화유지군을 이용하여 헤즈볼라를 몰아내겠다는 것이다. 이미 7월 하순 헤즈볼라의 정책중앙회의 위원인 알리 파이야드는 "헤즈볼라를 저지하려는 다국적군이라면 레바논의 이익을 고려하지 않고 이스라엘을 방어해주는 수단이 될 것"이라면서 "그 같은 구상을 용납할 수 없다"며 다국적군의 파병을 거부하겠다는 의사를 밝힌바 있다.

중동의 민심은 헤즈볼라에게


이와 같은 헤즈볼라 ‘축출’ 조치는 헤즈볼라를 지원하고 있는 이란과 시리아에 대한 압박의 성격을 가진다. 또한 중동 내에 급속도로 퍼지고 있는 헤즈볼라 지지자들에 대한 위협의 의미로도 받아들일 수 있다. 현재 중동 내에서 헤즈볼라의 인기는 상당하다. "헤즈볼라 지도자인 하산 나스랄라와 그를 추종하는 전사들은 이스라엘과 단순히 싸워 생존하는 것만으로도 아랍권에서 광범위한 신망을 얻은 것으로 보인다"는 미국 일간지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CSM)의 보도는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수니파 정권인 사우디아라비아에서도 헤즈볼라를 지지하는 시위가 연일 벌어지고 있고, 이집트에선 무슬림형제단을 중심으로 친미 정권인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을 흔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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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이스라엘 침략 전에도 헤즈볼라는 이스라엘의 레바논 점령에 맞서 승리를 얻어내면서 이 지역에서 반(反) 이스라엘의 선두주자 역할을 톡톡히 해 왔다. 2000년 이스라엘을 레바논으로부터 몰아낸 이후에는 무장조직을 해체하려는 압력을 받았지만 이 같은 요구를 거부하고, 오히려 자신들의 무장조직은 단지 레바논만을 지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중동지역 전체를 위한 것이라고 강조해 왔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의 군사작전으로 이 지역의 긴장이 높아지자 헤즈볼라가 팔레스타인의 편을 들고 나서며 이스라엘 군인을 납치한 것도 이 같은 배경에서 나온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현재 헤즈볼라는 레바논 의회의 의석을 가지고 있는 엄연한 정당이며 의회 내에서 상당히 막강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또 하마스와 마찬가지로 사회 복지와 의료에 중점을 두고 활동을 펼쳐 광범위한 지지를 받고 있었다.

이러한 헤즈볼라의 지지 세력은 이번 전쟁을 거치면서 종교와 종파를 넘어서 레바논 전체로 광범위하게 뻗어나갔다. 7월 26일에 발표된 베이루트 조사정보센터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레바논인들의 87%가 이스라엘에 대항하는 헤즈볼라의 투쟁을 지지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것은 지난 2월에 있었던 조사보다 29%가 상승한 수치다.  지난 4주간 이스라엘의 무자비한 학살과 기간시설 파괴, 이를 관망하였던 세계사회의 모습은 중동지역에서 정의와 인정이 지배할 것이라는 희망을 앗아가고 민중들에게 절망을 가져다주었다. 그간 아랍의 모든 정부들은 이스라엘에 대한 아랍인들의 분노를 인정하면서도 그것을 해결하는 방법은 미국이 이스라엘에 압력을 가하는 것이라고 민중들을 설득해왔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은 대부분의 아랍 정부들을 이스라엘의 무력 앞에 무방비한 상태로 만들었으며, 지난 수십 년 간 이스라엘의 침략에 수많은 민중들이 희생당하는 등 실패였음이 명백히 드러났다. 이에 반해 강력한 저항노선을 천명한 헤즈볼라에 대한 지지는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이스라엘은 레바논의 기반시설을 파괴하며 레바논 정부가 그 책임을 헤즈볼라에게 묻기를 유도하였지만 지난 달 29일 사니오라 총리는 시아파 헤즈볼라와의 연대를 밝혔을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의 레바논 점령지 반환을 요구하였다. 이스라엘은 레바논 내부의 분열을 기대하였지만 너무나도 잔인한 그들의 방식은 오히려 헤즈볼라를 주축으로 하는 저항세력의 확대를 불러온 것이다.

'테러'를 양산하는 것은 누구인가


그렇다면 ‘세계의 화약고’라는 오명을 쓰고 있는 중동지역의 여러 분쟁들의 원인은 무엇인가. 그 발단은 2차대전 후 유태인들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성서의 2천 년 기록을 근거로 이 지역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면서 강대국들의 비호아래 이스라엘 국가를 건립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미국과 영국을 위시로 한 서방국가들로서는 전통적으로 서방의 기독교 국가들과 대립관계에 있었던 중동의 아랍 국가들을 제어하고, 석유에 대한 이권을 차지하는 데에 이스라엘이 존재하는 편이 유리하였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국가 수립으로 유태인들은 염원하던 ‘자신들의 국가’를 가지게 되었으나 이것은 한편으로는 2천년 넘게 이곳에서 살고 있던 수많은 팔레스타인인들이 또 다른 국제 난민으로 전락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 시기 발생한 팔레스타인 난민은 300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고 이들 또한 조상 때부터 살던 땅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강렬한 열망을 갖게 되었다. 이로써 아랍 측과 이스라엘 측의 지루한 전쟁이 잉태되었으며, 이후 네 차례의 중동전쟁이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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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 분쟁은 민족, 종교, 영토, 경제적 이권 등 다양한 요인들이 맞물려 작용하고 있는데, 또한 여기에는 미국의 중동 전략이 커다란 몫을 차지한다. 미국은 중동 지역 내에서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이스라엘을 계속적으로 지지하고, 친미·독재 정권을 지원한다. 대표적인 친미 정권인 이집트와 요르단, 사우디아라비아의 공통점은 부패한 독재 정권이 집권하고 있고 이들을 미국이 적극 지원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중동지역 내에서의 자신의 패권유지를 위한 것이다. 이렇게 일방적으로 이스라엘을 비호하며 독재 정권을 지원하는 미국의 중동정책과,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인에 대한 배제와 차별, 아랍국가들을 공격하여 자신의 영토를 늘리는 정책은 여러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그것이 바로 미국과 이스라엘이 주장하는 ‘테러’이다.

이번 사태의 중심이 있었던 헤즈볼라 역시 이스라엘의 레바논 점령에 반대하는 농민운동으로 시작하였고, 9.11사태를 일으킨 것으로 알려진 ‘알카에다’역시 미국이 지원하는 독재 정권인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발생하였다. 이와 같은 사실들은 이른바 ‘테러’와 ‘무장조직’을 발생은 다름 아닌 미국과 이스라엘의 아랍인들에 대한 차별과 배제, 석유를 통한 이권을 얻기 위한 각종 정책들, 이스라엘의 핵개발은 눈감아주고 이란에 대해서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세계 사회의 이중성, 그리고 그것들을 행하기 위한 각종 무력(군사적)조치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그러나 이처럼 아랍 민중들을 핍박하는 미국과 이스라엘에 대한 저항은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우리가 그들을 죽이면 죽일수록 더 많은 헤즈볼라 병사가 생겨난다. 모두들 결과가 어쨌든 그들이 이겼다고 생각할 것이다. 우리는 이미 진 전쟁을 하고 있다”는 한 이스라엘 병사의 말은 상징적이다.

이번 레바논 분쟁에서도 미국과 이스라엘은 찰떡궁합을 보여줬다. 이스라엘은 공격하고 미국은 이를 관망하도록 국제사회의 여론을 조작하고 무기를 공급하는 것이다. 이스라엘과 미국의 이러한 행보에는 공통의 정치적 의도가 숨어있다. 이스라엘이 인민저항위원회가 자국 병사를 생포한 책임이 하마스에 있다고 우기며 팔레스타인인들에게 공격을 퍼붓는 것은 지난 1월 아랍권에서 가장 민주적인 선거에 의해 선출된 하마스 정부를 붕괴시키기 위함으로 볼 수 있다. 이것은 하마스 정부에게 패배한 부패한 정권을 지지하던 미국에게는 반가운 일이다. 또한 헤즈볼라가 병사를 납치하자 레바논에 폭격을 퍼붓고 있는 것은 헤즈볼라를 지원하고 있는 이란과 시리아를 압박하며, 레바논에 미국의 조종을 받는 정권을 세우길 원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이스라엘의 이러한 만행은 중동지역에서 미국의 의도대로 따라주지 않는 세력을 붕괴시키려는 미국의 이해와도 함께한다. 미국은 작년 말부터 민주주의 증진법(ADVANCE Act)을 준비하며 세계45개 독재자들을 2025년까지 끌어내린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이것은 즉, 세계에서 미국의 말을 듣지 않는 정권을 끌어내리겠다는 것이고 중동지역에서는 헤즈볼라를 지원하고 있는 이란과 시리아가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미 미국은 무력침공으로 이라크 정권을 교체하였고 대규모의 지상군을 주둔시키고 있다.

전쟁과 군사세계화를 중단하라!


한 달여간 벌어진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으로 인한 레바논의 피해는 실로 어마어마하다.  천여 명이 넘는 민간인이 사망하였으며 그중 삼분의 일은 12세 이하 어린이다. 3천5백여 명의 부상자가 발생하였고 레바논 인구 4분의 1에 달하는 91만 여명이 난민이 되었다. 그중 22만 여명은 국외로 탈출하였다. 주택 6천9백 채, 공장 160곳, 공항·항구·발전소등 29곳, 교량 145개, 도로 600km가 이스라엘의 미사일에 파괴되었다. 레바논 산업시설 95%의 가동이 중단되었고, 특히 생필품 공장까지 생산을 멈추면서 그 여파가 레바논 국민의 생활고로 확산되고 있다. 이스라엘의 레바논 공습은 최악의 환경 재앙도 낳고 있는데 폭격으로 파괴된 레바논 발전소 저유고에서 흘러나온 석유가 지중해 안을 뒤덮으며 막대한 오염피해를 발생시키고 있다. 이스라엘은 지금 당장 침략전쟁을 중단하고 레바논인들이 입은 엄청난 물질적·정신적 피해를 보상하여야 할 것이다. 또한 점령지를 즉각 반환하고 자국 감옥에 가두고 있는 아랍인들을 석방하여야 한다. 그리고 차별과 억압이 아닌 이스라엘과 아랍국가들이 상호공존할 수 있는 방향을 모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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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더욱 본질적인 문제 해결방안은 바로 미국을 중심으로 전 세계에 퍼져나가고 있는 힘의 논리의 강화, 즉 군사세계화를 멈추는 것이다. 이라크 전쟁에서 보았듯이 미국은 각 지역의 분쟁에 개입하면서 무력을 행사할 준비가 되어 있다. 이는 때로는 “악의 축과 테러세력, 대량살상무기와 같은 인류 공통의 적에 대한 정의로운 개입”이 되기도 하고, 신의 뜻에 근거하여 ‘자유’와 ‘민주주의’를 퍼뜨리는 “성전(聖戰)”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결국 그러한 시도는 수많은 민중들을 끔찍한 죽음과 공포로 몰아넣었다. 또한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를 통해 초 민족 자본의 이해를 관철시키는 정책은 필연적으로 생겨나는 불만들을 관리하기 위한 가장 폭력적인 방식으로서 군사세계화를 동반한다. 미국은 이라크의 경제재건 과정에서 ‘신자유주의적 경제구조’를 건설하는 데 박차를 가하고 있으며, 중동 지역 전체에서 미국의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에 동참하지 않는 국가들을 고립시키는 데 중동전략의 대부분을 배치하고 있다. 2006년 한국 사회의 큰 화두로 자리 잡고 있는 한-미 FTA와 평택전쟁기지 건설은 금융세계화와 군사세계화의 유기적 관계 하에서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민중들을 착취하고, 무력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정책이 불러오는 것은 폭력과 혼돈의 세계일 뿐이다.

진정한 평화와 자유를 민중들의 손으로 만들어 나가자!

Posted by 행진

2006/08/14 06:47 2006/08/14 0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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